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화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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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포/산포 | 90식 75mm 야포, 41식 산포, 94식 산포 | |||
대전차포/전차포 | 90/97식 57mm 전차포, 94식 37mm 속사포, 1식 기동 47mm 속사포, 시제 57mm 대전차포, 시제 105mm 전차포 | |||
보병포 | 11식 37mm 보병포, 92식 70mm 보병포 | |||
대공포 | 96식 25mm 고각기총, 98식 20mm 기관포, 5식 40mm 중대공포, 88식 75mm 대공포, 99식 88mm 대공포, 5식 15cm 대공포 | |||
함포 | 98식 10cm 65구경장 함포, 3식 12.7cm 50 구경장 함포,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 3년식 155mm 60구경장 함포, 3년식 20cm 50구경장 함포, 41식 36cm 45구경장 함포, 3년식 40cm 45구경장 함포, 94식 40cm 45구경장 함포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일본군의 운용장비 | 화포 | }}} }}}}}} |
九〇式五糎七戦車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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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군이 1930년에 채용한 57mm 구경의 전차포. 89식 중형전차 치로에 최초로 탑재된 전차포다.동시기 동급 경전차의 주포에 비해 구경이 커 고폭탄의 위력은 좋았으나 포신이 짧고 탄속이 느려 대전차용으로는 부적합한 것이 단점이었다.
2. 제원
중량 | 135kg |
구경 | 57mm |
구경장 | 18.4 구경 |
포구초속 | 349.3m/s (92식 철갑탄) |
포신부앙각도 | -8도 - +30도 |
포신좌우각도 | 좌우 각 20도 |
최대사거리 | 5,400m (+30도 기준) |
포탄중량 | 2.58kg (92식 철갑탄) |
3. 개발
1926년 2월 25일에 육보(陸普) 제664호 명령으로 육군기술본부 제1과의 연구정책으로 해당 전차포의 연구가 추가된 것이 개발의 시작이었다. 당시에 전차포에 요구된 조건은 아래와 같다.- 구경은 57mm
- 포탄의 중량은 2.5kg이며 포구속도는 350m/s
- 포신부앙각도는 -8도에서 +30도이며 포신좌우각도는 좌우 20도
- 포신 중량은 90kg이며 전체 중량은 180kg
- 최대사거리는 4,000m
해당 조건을 맞추는 방식으로 1926년 3월에 설계가 시작되었으며 1926년 5월에는 일본 제국 육군의 오사카 조병창에 프로토타입 제작을 주문했다. 1926년 10월에는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고 하루키 사격장에서 완성된 시제품을 대상으로 준공시험을 실시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수정작업이 진행되었다. 1926년 12월에는 제1차 수정시험을 실시하였으며 1927년 3월에는 이라고 시험장에서 제2차 수정기능시험 및 각 부품의 작동 여부와 내구성 시험이 실시되었으며 동시에 탄도시험도 실시하였다. 해당 시험으로 일단 전차포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며 내구성도 기대에 부응하였으며 최대사거리는 5,700m이고 정확도도 양호한 편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1927년 7월에는 시제1호전차(試製一号戦車)에 시제품 전차포를 직접 탑재하여 사격시험을 실시한 결과 기능은 양호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목표의 추적을 쉽게 하기 위해서 기존의 포신부앙장치를 제거하고 포 구조물 자체에 어깨 받침대등을 설치하여 포수가 직접 어깨로 전차포 자체를 올려놓은 상태로 수동으로 직접 움직여서 조준을 수정하는 답없는 시스템을 도입하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이에 따라 전차포의 설계를 다시 수정하고 1928년 9월에 수정된 프로토타입을 주문하게 된다.
1929년 3월에 을호 57mm 전차포(乙号五十七粍戦車砲)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두번째 프로토타입은 오사카 조병창과 오쓰기와 사격장에서 완성품을 시험하고 수정작업을 실시했다. 1929년 5월에 치로의 시제품에 탑재된 해당 전차포는 후지산 기슭에서 기동시험을 실시하였고 시험결과는 조준장치를 설치하는 방식을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1929년 8월에는 구아산 연습장에서 실시한 실전운용방식 실험에서 기능이 우수하여 실제로 생산해서 배치할만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았다. 해당 전차포에 사용할 포탄도 1927년 11월과 1929년 7월에 포탄효능시험을 실시하여 적절한 위력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1930년 4월 14일에 육군기술본부는 해당 전차포를 제식채용하기 위한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하였고 곧 90식 57mm 전차포로 제식화된다.
4. 구조
치하 포탑 내부 도면 |
90식 57mm 전차포는 단일 방식의 포신과 약실을 포함한 주퇴복좌기 구조물로 구성되며 폐쇄기는 수직자동쇄전식(垂直自動鎖栓式)이다. 발사시 포신의 후퇴하는 주퇴거리는 300mm다. 중량은 135kg이고 포탑 전면에 전차포가 받침대로 고정된 상태이며 포수가 전차포의 하단에 설치된 받침대를 사용해서 어깨를 받침대에 넣은 후에 상하좌우로 움직여서 포 구조물의 후방을 움직여서 포신부앙각도와 포신좌우각도를 수동으로 조절한다. 조준경을 포함한 조준장치는 포 구조물과 일체형으로 구성되었고 포수가 있는 포 구조물 좌측에 설치된다. 주포 사격에 따른 반동은 최대한 억제하여 포수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설계하였으며 그 대신 주퇴복좌기의 일부가 포방패 밖으로 따로 돌출하여 포신 하단에 붙어버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5. 포탄
탄종 | 명칭 | 신관 | 전장 | 전폭 | 탄두중량 | 전체중량 | 내부작약 | 발사장약 | 포구초속 |
고폭탄 | 90식 유탄 | 88식 단연기신관 노야마카 (八八式短延期信管 "野山加") | 322mm | 68.5mm | 2.36kg | 2.91kg | 차갈약(茶褐薬) 250g | 1호방형약 3종 (一号方形薬3種) | 355.3m/s |
연습탄 | 90식 대용탄 | 88식 단연기신관 노야마카 (八八式短延期信管 "野山加") 88식 순발신관 노야마카 (八八式瞬発信管 "野山加") | 315mm | 68.5mm | 2.36kg | 2.91kg | 소립약(小粒薬) 75g | 1호방형약 3종 (一号方形薬3種) | 355.3m/s |
철갑탄 | 92식 철갑탄 | 92식 소연탄저신관 (九二式小延弾底信管) | 283mm | 68.5mm | 2.58kg | 3.13kg | 황색약이나 차갈약 (黄色薬, 茶褐薬) 103g | 1호방형약 3종 (一号方形薬3種) | 349.3m/s |
공포탄 | 공포탄 | 없음 | 불명 | 불명 | 없음 | 불명 | 없음 | 1호공포약 (一号空包薬) | 해당없음 |
철갑탄인 92식 철갑탄의 경우에는 철갑유탄이며 시제철갑탄 기준으로 90도 각도의 수직장갑판을 대상으로 사격한 결과 45m 거리에서 30.4mm를 관통하고 350m 거리에서 25.7mm를 관통하며 1,400m 거리에서 20.5mm를 관통하고 1,800m 거리에서 17.5mm를 관통하므로 큰 구경에 비해서 저조한 성능을 보인다. 게다가 시험에 사용한 강철판은 니세코 강판(ニセコ鋼板)으로 타국의 표면경화장갑보다 방호성능이 낮은 강판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애초에 90식 57mm 전차포가 보병포에 가까운 대보병용 전차포이기 때문에 단포신을 가졌으므로 포구초속이 349.3m/s로 낮았고 포탄의 내구성이 약해서 장갑판에 명중시 포탄이 깨지거나 부러지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57mm라는 구경으로 인해 350m 거리에서 포탄의 속도가 326m/s를 기록해서 별로 느려지지 않고 1,400m 거리에서 264m/s, 1,800m 거리에서 246m/s를 유지해서 원거리에서도 속도 하락의 폭이 낮다는 장점을 모조리 까먹었다.
포탄의 내구성이 낮은 이유는 포탄에 크로뮴같은 희귀자원을 사용하는 특수강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냥 강철을 사용했기 때문에 포탄에도 1% 정도의 크로뮴을 사용하는 크롬강을 사용하는 나치 독일이나 미국보다 포탄의 구조재 자체가 약했으며 철갑유탄 내부의 작약을 더 많이 넣기 위해 포탄 내부의 벽을 더 얇게 만들어서 철갑탄이 장갑판에 명중하면 포탄이 깨지거나 부러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대전차고폭탄은 개발하지 않았다. 전쟁 말기에라도 시험적으로 대전차고폭탄을 조금이라도 생산한 경우는 90식 75mm 야포를 전차포로 살짝 개조해서 3식 전차포라는 이름으로 탑재한 치누부터 일어난 일이고 모든 포탄이 일본 국내에 있어서 실전에서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강선포로 발사하면 강선으로 발생한 포탄의 회전력이 메탈제트를 흩뿌려버리기 때문에 대전차고폭탄의 성능이 크게 떨어지므로 8,8cm FlaK의 88mm 대전차고폭탄인 Gr. 39가 최대 관통력이 고작 90mm 수준으로 급강하할 정도였으므로 성형작약 관련 기술력이 크게 떨어지는 일본 제국이 대전차고폭탄을 개발해봤자 자돌폭뢰처럼 성능이 급하락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억지로 개발하려고 해봤자 57mm라는 이도 저도 아닌 구경 때문에 개발 난이도만 올라가고 성능은 개판이 된 물건만 나올 뿐이다.
이렇게 전차포와 포탄이 모두 대전차 성능을 제대로 보유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일본 제국에서도 90식 57mm 전차포의 대전차 성능 자체에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걸지 않았기에 전차전을 수행할 전차는 94식 37mm 속사포를 기반으로 해서 전차에 탑재할 목적으로 약간 약화시킨 94식 37mm 전차포를 탑재하는 경전차인 하고가 담당하게 했다.
고폭탄인 90식 유탄은 당대 기준으로는 57mm라는 비교적 큰 구경을 사용해서 일본군의 전차포 중에서 고폭탄 화력이 높은 편이었으나 당시에 가상의 주적으로 상정된 소련군의 45mm 전차포와 비슷한 고폭탄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1939년에 할힌골 전투에서 노획한 소련의 53-K 대전차포와 90식 57mm 전차포를 이치노미야 사격장에서 고폭탄 사격시험을 실시했다. 해당 시험의 목적은 1식 기동 47mm 속사포를 개발할 당시에 구경이 57mm에서 47mm로 줄어들고 단포신에서 중간포신으로 포신이 길어짐에 따라 고폭탄의 효율이 얼마나 감소할 것이며 여기에 따른 대책을 어떻게 수립해야 하는 가에 관한 것이었다.
3면에 20m 크기의 천으로 스크린을 설치해놓고 목표에 고폭탄을 작렬시켜서 발생한 파편 및 천으로 만들어진 스크린에 얼마나 많은 파편구멍이 뚫렸는가를 분석하는 시험이었으며 시험 결과 고폭탄 화력은 57mm가 45mm 보다 2배 높은 것으로 판정되었고 지면 위에 노출된 기관총과 기관총을 장착한 벙커에 대한 사격에서는 45mm나 57mm나 효과가 비슷하며 1발의 포탄 명중으로도 위력이 충분하다고 결과가 나왔다.
해당 결과에 따라서 구경을 줄여도 일단 고폭탄 화력이 실전에서 못쓸 정도로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57mm에서 47mm로 구경을 줄여서 대전차 화력을 늘리는 것이 인정되었다. 그리고 45mm 구경의 화포도 충분하게 고폭탄 발사가 가능한 전차포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었으며 1식 기동 47mm 속사포의 고폭탄의 경우에는 추가 실험을 통해서 위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결정되었다.
공포탄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서 연습전에서 적군을 향해 사격할 때 200m 이내 거리에서는 사용금지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에 압착된 화약을 막아주는 마개판이 블록판으로 변경되었고 발사시 포구에서 흩뿌려지는 삼각형으로 접은 종이도 치수와 형태를 변화시켜서 기존보다 좀 더 안전하게 사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6. 97식 57mm 전차포
九七式五糎七戦車砲 |
1937년에 개발된 90식 57mm 전차포의 개량형인 97식 57mm 전차포는 초기형 치하 중형전차[1]와 그 포탑을 공유하는 케루 경전차의 주포로 사용된 포다. 탄약은 기존의 90식 57mm 전차포과 공유한다.
6.1. 제원
중량 | 150kg |
구경 | 57mm |
구경장 | 18.4 구경 |
포구초속 | 349.3m/s (92식 철갑탄) |
포신부앙각도 | -15도 - +20도 |
포신좌우각도 | 좌우 각 10도 |
최대사거리 | 4,700m (+20도 기준) |
포탄중량 | 3.13kg (92식 철갑탄) |
6.2. 개발
90식 57mm 전차포를 실전에서 사용해본 결과 포방패가 소총탄이 집중될 경우 쉽게 관통당하면서 특히 주퇴복좌기가 손상이 심해지므로 포격 후에 포신이 원위치로 돌아오는 복좌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주포의 연사성능이 크게 하락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포 구조물의 후방이 너무 길어서 전투시에 걸리적거려서 지장이 오기도 했으며 조준경도 시야가 어두운 편이라 광량이 부족한 일몰이나 새벽시간, 그리고 비가 올 때 조준이 힘들어졌으며 밀폐구조에도 문제가 있어서 비가 오면 내부 렌즈에 김이 서리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일어났다. 일단 응급조치로 3mm 두께의 강판을 추가로 장착해서 주퇴복좌기 손상과 포방패 관통증상을 크게 줄였으나 일단 전차포 자체도 개선할 필요가 높았다.그래서 1936년 9월 2일에 육비(陸密) 제834호가 발령되어 육군기술본부 제1과의 연구정책으로 해당 전차포의 연구가 추가된 것이 개발의 시작이었다. 당시에 전차포에 요구된 조건은 90식 57mm 전차포와 동일했으나 포신부앙각도가 -15도에서 +20도로 조정되고 포신좌우각도가 좌우 각 10도로 줄어들었으며 약실의 최대압력이 1,750 kg/c㎡로 설정되었고 최대사정거리가 6,000m로 늘어났으며 부수적인 사항으로 포신의 후부가 250mm이고 포신의 중량이 80kg, 전체중량이 160kg이라는 상세조건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90식 57mm 전차포의 신뢰성을 향상시키고 포신 후방을 포함한 포 구조물이 짧아진 대신 중량이 약간 개선된 전차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명령을 받은 1936년 9월부터 바로 설계에 착수해서 1936년 11월에 오사카 조병창에 프로토타입을 주문하는 빠른 조치가 이루어졌다. 프로토타입은 1937년 3월에 완성되었고 완성되자마자 오사카 조병창과 오츠가와 사격장에서 완성시험을 수행했으며 빠르게 문제점을 수정했다. 1937년 5월에는 두번째 시험을 실시하여 실제로 전차포로 탑재할 경우에 발생할 각종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했고 1937년 7월에는 치하의 시제전차에 실제로 탑재해서 후지산 기슭에서 기동시험을 전개하고 오츠가와 사격장에서 사격시험을 실시하여 충분히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37년 8월에는 프로토타입 치하에 탑재된 채로 육군전차학교에 파견되어 실전방식의 테스트에 참가하여 나가노 현의 아리아케 훈련장과 훗쓰 사격장에서 시험을 실시한 결과 시제 57mm 전차포(試製五糎七戦車砲)란 명칭을 받고 실용화를 위해서 적절한 개조가 추가되었다.
이렇게 빠른 진행 끝에 제원에 나온 수치로 최종사양이 결정되었으며 당장 90식 57mm 전차포의 후속작이 필요했기에 1937년 12월 18일에 제식채용을 허가해달라는 보고서가 상부에 올라간다.
6.3. 특징
97식 57mm 전차포는 기본적으로 90식 57mm 전차포의 신뢰성 향상 및 운용 측면에서 약간의 개선을 가한 전차포라서 본질적으로는 90식 57mm 전차포와 동일한 구조이며 성능도 동일하다. 포탄도 호환되며 관통력이나 고폭탄 폭발력도 동일하다. 그래서 일선부대나 전장에서는 특별하게 따로 구분하지 않고 그냥 90식 57mm 전차포로 싸잡아서 분류하는 경우도 많았다.포탄의 경우에는 기존의 포탄 외에 철갑탄 종류로 전체중량 3.25kg의 1식 철갑탄이 존재하나 관통력은 92식 철갑탄과 비슷하며 3식 천갑유탄이라는 이름의 탄두중량 1.8kg의 철갑탄도 존재했으나 상세한 내용이 불명확하고 일선에 공급되었다는 기록도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97식 57mm 전차포가 기존의 90식 57mm 전차포에 비해 약실이 확장되고 강화되긴 했으나 탄약이 일체형이고 추가로 추진장약을 추가해서 강장탄을 만들 수 없으며 포탄이 90식 57mm 전차포와 호환되기 때문에 결국 동일한 포탄을 동일한 구경장을 가진 포신으로 사격하게 되므로 결과가 비슷하게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하라 미세이(原乙未生)의 회고록에서 97식 57mm 전차포의 포구초속이 420m/s로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위에 언급했듯이 탄약이 90식 57mm 전차포와 호환되는데다가 탄약을 현장에서 강장탄으로 만들 수가 없는 일체형 방식이라서 잘 해봐야 시험장에서 시험용 특수제조탄약을 사용했을 때의 기록 정도로 취급받는다.
실제로 저렇게 포구초속이 기존보다 크게 올라갈 경우는 추진용 장약을 더 많이 넣은 강장탄이라는 이야기인데 해당 탄약이 90식 57mm 전차포를 사용하는 기존의 전차에게 실수로라도 지급될 경우 기존 포탄과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장전 후 사격시 약실과 폐쇄기가 터져나가면서 유폭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여기에 더해서 애초에 단포신이며 포신 자체는 기본적으로는 90식 57mm 전차포와 동일하기 때문에 포구초속이 올라가봤자 포신이 너무 짧아서 에너지 손실이 많아지므로 관통력 향상이 낮아지는데다가 포탄의 내구도도 향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포탄이 깨지거나 부러지는 현상만 더 강해진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75mm 전차포 M2–M6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야포나 보병포 계열 전차포가 대전차 성능을 제대로 가지고 싶다면 구경은 75mm 수준은 되어야 하며 포구초속도 500m/s는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정도의 대전차능력은 유럽전선에서는 이미 1942년에 퇴물이 되었으며 미국은 1943년에 포구초속 792m/s를 달성한 76mm M1 전차포를 배치했으며 해당 전차포도 일반 철갑탄은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티거를 상대할 수 없으므로 1945년에나 전차 1대당 1발만 받을 정도로 희귀한 포구초속 1,036m/s의 M93 경심철갑탄을 사용하거나 아예 90mm 대공포 기반의 전차포를 가진 M36 GMC같은 대전차 자주포를 투입해야 할 정도였다.
이미 이런 문제는 일본 제국도 인식한 상황이었고 대책으로 1식 기동 47mm 속사포 계열의 1식 47mm 전차포가 개발중이었으며 치하의 개량형에 탑재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치하 중 개조되지 않는 차량은 대보병용으로 사용할 예정이었으므로 굳이 포탄 호환에 이상이 발생하고 잘못 섞여들어가면 발사시 유폭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까지 감수하면서까지 강장탄 형식의 새로운 철갑탄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
7. 문제점
일단 대전차 능력은 보병포이므로 넘어간다고 해도 고폭탄 화력 측면에서도 등장시기에서 조금만 지나더라도 75mm 에서 76mm 수준으로 구경이 더 커서 대보병 성능이 더 좋은 전차와 전차포가 등장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장 T-28이나 T-35, 심지어 BT-7A도 76.2mm KT-28 단포신 전차포를 장착해서 고폭탄 화력이 앞서며 대전차 화력도 45mm 부포를 장비하거나 주변에 45mm 주포를 장착한 경전차가 많아서 충분했다. 심지어 76.2mm KT-28 단포신 전차포의 장갑관통력도 90식 57mm 전차포나 97식 57mm 전차포를 능가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벙커나 참호에 대한 공격력이 부족하다고 소리가 나오는 판국에 57mm 수준의 고폭탄 화력은 일본의 주장과는 달리 매우 시원치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그리고 조준장치도 딱 보병포용 수준이었고 견당조준(肩当照準)방식을 고수하는 바람에 조준의 정밀도 따위는 멀리 날아가버렸다. 해당 방식은 포수가 직접 전차포를 어깨로 움직이므로 신속한 조준에는 유리한 점이 있으나 정밀한 조준에는 매우 부적합한 방식이다. 그래서 해당 방식을 도입한 전차는 A12 마틸다 II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부정확한 조준 덕분에 전차포탄이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8,8cm FlaK를 맞추지 못해서 대전차포 진지를 제압하기는 커녕 88mm 포탄을 반격타로 맞고 불덩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곧 현대 전차까지 내려오는 방식인 포신상하가동은 별도의 동력장치로 조정하고 포신좌우가동은 포탑의 선회로 맞추며 수동으로 작동할 때는 두 기능 모두 핸들을 돌리는 방식으로 변경하는데 미세조정능력이 좋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치헤에서 1식 47mm 전차포 2형을 도입할 때까지 해당 방식을 유지함으로서 전차 승무원에게 많은 부담을 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퇴복좌기가 포방패 밖으로 튀어나간 구조를 최초로 도입한 것 자체도 문제였다. 주퇴복좌기에 소구경탄이라도 제대로 명중하면 주퇴복좌가 안되므로 전차포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행운이 있어서 약간만 손상되더라도 복좌가 안되므로 전차포의 연사성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90식 57mm 전차포에서 이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3mm 두께의 철판을 추가하는 정도로 미봉책 수준의 대책을 한 후에 97식 57mm 전차포에서도 해당 구조를 계속 유지한 결과 일본 제국 최후의 전차인 치리까지 해당 문제점을 그대로 보유하는 사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8. 채택
90식 57mm 전차포는 중형전차 치로에 탑재했고 97식 57mm 전차포는 중형전차 치하 기본형 및 해당 포탑을 공유하는 경전차 케루에 탑재되었다.그 외에 일본 제국 육군 소속의 장갑정(装甲艇)이라고 불리는 18.5t의 배수량을 가지고 13명이 탑승하며 11.5노트의 저속으로 해안을 순찰하거나 상륙 작전을 지원하는 용도의 소형 군함에 주포로 90식 57mm 전차포를 저격포(狙撃砲)라는 명칭으로 1문을 탑재했다. 저격포는 기관총을 저격해서 파괴할 목적으로 만든 37mm 수준의 소구경 보병포를 일본에서 붙인 별명이다.
9. 평가
일본군 입장에서 신뢰성이 높은 보병포 형태의 전차포다. 그리고 딱 그 정도의 성능만 냈으며 97식 57mm 전차포를 개발할 시점에서 다른 전차포로 갈아탔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해서 퇴역할 시기를 놓친 전차포이기도 하다.사실 고정목표도 맞추기 어려운 보병포급 조준장치와 견당조준방식으로도 이동하는 목표에 포탄을 제대로 맞추는 일본군 전차병이 매우 대단한 것이지 장비 자체는 문제점이 많다. 살인적인 훈련에 따른 인간의 능력향상을 허접한 장비가 갉아먹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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