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01 08:31:37

Ca.335

제2차 세계 대전의 이탈리아군 항공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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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colcolor=#373a3c><colbgcolor=#b0e000> 복엽기 CR.30, CR.32, CR. 42 팔코, Ro.44
단엽기 C. 20x 시리즈, Re. 200x 시리즈, G.50 프레치아, G.55 첸타우로, D.520F, Bf 109G, 카프로니 캄피니 N.1z
중전투기 Ca.331, SM.91, SM.92, G.58, Bf 110G, Do 217NG, 보파이터 Mk.IFC, P-38C
폭격기 경폭격기 블렌헤임 Mk.IVC
中폭격기 Ca.311, Ca.135, BR.20 치코냐, SM.79 스파르비에로, SM.84, SM. 81 피피스트렐로, Z.1007 알치오네, Z.1018 레오네, Z.515, Ca.331
重폭격기 SM.82, P.108B, P.133, Z.506, Z.511, Z.516, Z.1011, B-24C
급강하 폭격기 Z.501, SM.85, SM.93, FC.12, Ca.355, Ba.201, Ju 87 피치아텔로G
공격기 Ba.65, Ba. 88, Ca.335, P.108A
수송기 SM. 79, SM. 75, SM. 82, SM. 95, P.108T, AL-12P, Ju 52G
정찰기 Fi 156G
※ 윗첨자 F: 프랑스 기체, G: 독일 기체, Z: 제트기, 취소선: 프로토타입 및 페이퍼플랜, C: 노획기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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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aproni Ca.335 Maestrale.png
카프로니 Ca.335 마에스트랄레(Caproni Ca.335 Maestrale)

1. 소개2. 벨기에의 의뢰3. 기체 구조4. 면허생산 승인5. 제원

1. 소개

1930년대에 벨기에의 SABCA 사에서 SABCA S.47로 면허 생산하는 것을 전제로 이탈리아의 카프로니 사에 개발을 의뢰한 복좌 전폭기로, 원형기 1대가 완성된 후 나치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생산 계획은 중단되었다.

2. 벨기에의 의뢰

1937년 10월에 벨기에의 항공기 생산업체 SABCA는 이탈리아 굴지의 항공업체인 카프로니 사에 쌍발 폭격기 Ca.135Ca.312, 그리고 고속 정찰기 Caproni Ca.310 Libeccio와 같은 군용기를 각각 SABCA S.45bis, S.46, S.48이라는 명칭으로 판매하는 협정을 맺었다. 벨기에 공군은 이 계약서를 꾸밀 때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계약자는 벨기에 공군에서 복좌 전투기와 정찰기로 쓰이고 있던 영국제 페어리 폭스를 대체할 복좌 전폭기의 설계와 시제기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SABCA가 개발을 의뢰한 신형기는 사내 명칭 Ca.335라고 불렸으며 설계와 개발은 그 무렵 카프로니의 항공기 개발주임을 맡고 있던 체사레 팔라비치노(Cesare Pallavicino : 1893~1976)가 이끌게 된다. 당시 44세의 팔라비치노는 브레다(Breda) 사에서 민간 스포츠기인 Ba.15와 Ba.19, Ba.33, 그리고 이탈리아 최초의 금속제 단엽 전투기 Ba.27, 연락기 Ba.39 같은 기체까지 두루 개발하다가 2년 전인 1935년에 카프로니 사로 스카웃된 인재였다. 입사 후 그는 지상 공격기인 Caproni A.P.1을 먼저 선보였고 Ca.335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 된다.

3. 기체 구조

팔라비치노는 A.P.1 공격기를 기반으로 Ca.335를 디자인했지만, 그 형태와 디테일은 전혀 달랐다. 동체와 날개는 크로몰리 파이프로 짠 프레임에 합판을 덧씌워 만들어졌고, 플랩이나 방향타 같은 부분은 금속 골조에 캔버스천을 입혀 제작되었다. 날씬한 기수의 카울링 안에는 860마력을 내는 이스파노-수이자 12Ycrs 수랭식 엔진이 앉혀졌다. 랜딩기어는 유압을 이용해 날개 뒤로 접히고 꼬리바퀴까지 접어넣을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조종사와 관측수는 앞뒤로 긴 조종석에서 꽤 떨어져 배치되어 전성관으로 대화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후방에 앉은 관측수는 기관총을 조작하고 조종사는 프로펠러 축을 통해 발사되는 20mm 이스파노-수이자 HS.404 기관포와 날개에 장착된 2정의 기관총을 사격할 수 있었다. 동체 내부에 마련된 작은 폭탄창에는 2발의 50 kg 폭탄을 수납하고 추가로 날개에 5개씩 설치된 파일런에도 10발의 10 kg 폭탄을 장착할 수 있었다.

4. 면허생산 승인

카프로니 사의 폰테 산 피에트로(Ponte San Pietro) 공장에서 비무장 상태로 완성된 Ca.335의 프로토타입은 비공식적으로 마에스트랄레(Maestrale : 미스트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 기체는 1939년 2월 16일에 처녀 비행에 성공을 거둔 후 날개를 분리해 열차에 실려 브뤼셀에 있는 SABCA 공장으로 보내졌다. 벨기에 기술자들은 기체를 재조립한 후 계획대로 날개와 후방 총좌에 FN 브라우닝 기관총을 설치한 후 다시 테스트 비행을 했다. 초기 테스트에 합격한 Ca.335에 만족한 SABCA는 9월 19일에 카프로니 측으로부터 면허생산권을 구매했다.

이제 벨기에에서 SABCA S.47이라고 명명된 이 전폭기는 벨기에 국방부 관계자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에게 공개되었고, 벨기에 공군 또한 1차 비행 심사에서 보여준 그 인상적인 성능에 썩 좋은 인상을 받았다. 벨기에 공군은 SABCA 측에 즉시 24대를 주문했지만, 공장은 이미 프랑스로부터 생산을 하청받은 브레게 693 폭격기 41대와 10대의 쿨호벤 F.K.58(Koolhoven F.K.58)의 생산에 쫓기고 있었던 탓에 S.47의 생산 라인을 세울 수가 없어 일단 양산이 연기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독일군은 기어코 폴란드 국경을 넘어 전쟁을 일으키고 만다.

1940년 3월 14일에 프랑스의 오를레앙으로 보내진 S.47은 프랑스 공군 관계자들 앞에서 시범 비행을 펼치고 착륙하다가 사소한 사고로 약간 부서져 수리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독일이 프랑스와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기체는 복구가 되지 않고 SABCA 본사도 생산 계획을 진행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결국, 오를레앙에 남겨진 SABCA S.47는 6월 13일에 독일군에게 포획되었다.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는 S.47를 수리하려고 시도했으나 독일은 기체를 송환시켜 주기를 거절했고, S.47은 1943년까지 프랑스에 그대로 남아있다가 스크랩되어버렸다.

5. 제원

형식 : 단발 복좌 전투폭격기
개발 : Caproni / SABCA
설계 : 체사레 팔라비치노
초도비행 : 1939년 2월 16일
승무원 : 2명
전장 : 10.61 m / 전폭 : 13.20 m / 전고 : 3.20 m
익면적 : 23.80 m2
중량 : 2,250 kg~3,240 kg~3,350 kg
동력 : Hispano-Suiza 12Ycrs 액랭식 V12 엔진 (860 hp)
최대속도 : 501 km/h
항속거리 : 1,576 km
상승한도 : 9,500 m
상승률 : 2,000 m 까지 3분 30초 / 6,000 m 까지 15분 20초
무장 : 20 mm Hispano-Suiza HS.404 동축기관포 / 7.62 mm FN 브라우닝 기관총 2정 / FN 브라우닝 기관총 1정(후방)
폭장 : 100 kg 폭탄 2발
생산수 :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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