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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9/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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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혁3. 목록
3.1. 1973~1977년3.2. 1977~1993년3.3. 1993년~현재
3.3.1. 박민 사장 취임 이후

1. 개요


KBS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KBS 뉴스 9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

2. 연혁

KBS 뉴스 9 - 역사
연도 시작 일자 방송 요일 방송 시간 편성 제목 비고
1973년 6월 11일 월~토 21:00~21:35(평일)
21:00~21:30(토)
KBS 종합뉴우스 프로그램 신설
KBS 최초의 메인 뉴스
8월 6일 평일 21:00~21:35 편성 축소
10월 8일 21:00~21:30 시간 단축
11월 12일 21:00~21:40 시간 연장
1974년 4월 1일 22:00~22:30 시간대 이동
10월 1일 21:00~21:40
1975년 1월 27일 매일 21:00~21:40(평일)
21:00~21:30(주말)
편성 확대
6월 9일 21:00~21:30 시간대 개편
10월 6일 21:30~22:00 시간대 이동
1976년 1월 19일 22:00~22:30(월~토)
21:00~21:30(일)
일요일 시간대 이동
4월 12일 21:00~21:30 시간대 개편
10월 18일 21:00~21:35(평일)
21:00~21:30(주말)
평일 시간 연장
10월 31일 21:00~21:35(평일)
21:00~21:30(토)
21:00~21:25(일)
일요일 시간 단축
1977년 4월 4일 21:00~21:40(평일)
21:00~21:30(주말)
시간 연장
10월 24일 KBS 9 뉴스 현재 타이틀 변경 및 첫 방송
1978년 12월 13일 21:00~21:35(평일)
21:00~21:30(주말)
시간대 변동
1979년 11월 12일 21:00~21:45(평일)
21:00~21:30(주말)
1980년 3월 31일 21:00~21:40(평일)
21:00~21:30(주말)
9월 22일 21:00~21:40(9 뉴스 - 평일)
21:00~21:30(9 뉴스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KBS 9 뉴스 (월~토)
뉴스파노라마 (일)
뉴스파노라마 신설
11월 17일 21:00~21:40(9 뉴스 - 평일, 토요 뉴스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KBS 9 뉴스 (평일)
KBS 토요 뉴스 (토)
뉴스파노라마 (일)
토요 뉴스 신설
1981년 7월 27일 21:00~21:40(9 뉴스 - 평일)
21:00~21:25(9 뉴스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KBS 9 뉴스 (월~토)
뉴스파노라마 (일)
메인 뉴스 통합
1982년 3월 1일 21:00~21:40(9 뉴스 - 평일)
21:00~21:30(9 뉴스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토요일 9 뉴스 시간 연장
1983년 4월 18일 21:00~21:35(9 뉴스 - 평일)
21:00~21:30(9 뉴스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평일 9 뉴스 시간 단축
1984년 4월 2일 21:00~21:40(9 뉴스 - 평일)
21:00~21:30(9 뉴스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평일 9 뉴스 시간 연장
10월 29일 21:00~21:40(뉴스센터 9 - 평일)
21:00~21:30(뉴스센터 9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KBS 뉴스센터 9 (월~토)
뉴스파노라마 (일)
9 뉴스 타이틀 변경
1985년 11월 18일 21:00~21:45(뉴스센터 9 - 평일)
21:00~21:30(뉴스센터 9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평일 뉴스센터 9 시간 연장
1986년 6월 2일 21:00~21:40(뉴스센터 9 - 평일)
21:00~21:30(뉴스센터 9 - 토)
21:00~21:50(뉴스파노라마 - 일)
평일 뉴스센터 9 시간 단축
11월 3일 21:00~21:45(9시 뉴스 - 월, 수~금, 뉴스파노라마 - 일)
21:00~21:50(9시 뉴스 - 화)
21:00~21:30(9시 뉴스 - 토)
KBS 9시 뉴스 (월~토)
뉴스파노라마 (일)
뉴스센터 9 현재 타이틀 환원
1987년 2월 23일 월~토 21:00~21:45(평일)
21:00~21:30(토)
KBS 9시 뉴스 뉴스파노라마 종영
1988년 3월 1일 KBS 9 뉴스 현재 타이틀 변경
4월 25일 평일 21:00~21:45 편성 축소
5월 2일 평일
일요일
21:00~21:50 편성 확대
7월 11일 매일 21:00~21:50(평일, 일)
21:00~21:25(토)
1990년 3월 6일 21:00~21:45(평일)
21:00~21:30(주말)
시간 단축
1991년 1월 1일 KBS 9 현재 타이틀 변경
5월 20일 21:00~21:45(9 - 평일)
21:00~21:30(9 - 토)
21:00~21:50(일요 9 - 일)
KBS 9 (월~토)
KBS 일요 9 (일)
일요 9 신설
10월 7일 21:00~21:40(9시 뉴스 - 평일)
21:00~21:30(9시 뉴스 - 토)
21:00~21:50(일요 9시 - 일)
평일 9 시간 단축
1992년 4월 6일 21:00~21:50(뉴스 9 현장 - 평일)
21:00~21:40(9 - 토)
21:00~21:20(9 - 일)
KBS 뉴스 9 현장 (평일)
KBS 9 (주말)
평일 9 타이틀 변경
메인 뉴스 통합
10월 6일 21:00~21:50(9 뉴스현장 - 평일)
21:00~21:40(9 뉴스현장 - 토)
21:00~21:55(9 일요현장 - 일)
KBS 9 뉴스현장 (월~토)
KBS 9 일요현장 (일)
평일 뉴스 9 현장 타이틀 변경
9 일요현장 신설
1993년 5월 1일 21:00~21:45(평일)
21:00~21:30(주말)
KBS 뉴스 타이틀 임시 변경
메인 뉴스 통합
10월 18일 KBS 뉴스 9 현재 타이틀 변경
1994년 5월 2일 21:00~21:45(평일)
21:00~21:40(주말)
주말 시간 연장
1995년 2월 20일 21:00~21:50(뉴스 9 - 평일, 뉴스 9 일요와이드 - 일)
21:00~21:40(뉴스 9 - 토)
KBS 뉴스 9 (월~토)
KBS 뉴스 9 일요와이드 (일)
뉴스 9 일요와이드 신설
5월 1일 21:00~21:45(뉴스 9 - 평일)
21:00~21:40(9시 뉴스 - 토)
21:00~21:50(뉴스 9 일요와이드 - 일)
평일 시간 단축
9월 4일 21:00~21:45(평일)
21:00~21:40(주말)
KBS 뉴스 9 메인 뉴스 통합
10월 2일 21:00~21:45(평일)
21:00~21:35(주말)
주말 시간 단축
1996년 5월 3일 21:00~21:45(평일)
21:00~21:30(주말)
1998년 10월 12일 21:00~21:45(평일)
21:00~21:35(주말)
주말 시간 연장
1999년 5월 24일 21:00~21:45(평일)
21:00~21:40(주말)
7월 12일 21:00~21:45 시간대 통일
12월 22일 21:00~22:00(평일)
21:00~21:45(주말)
평일 시간 연장
2003년 6월 23일 21:00~22:00(평일)
21:00~21:30(주말)
주말 시간 단축
2008년 4월 21일 21:00~22:00(평일)
21:00~21:40(주말)
주말 시간 연장
2019년 1월 1일 21:00~21:55(월~목)
21:00~22:00(금)
21:00~21:40(주말, 연휴)
월~목요일 시간 단축
4월 15일 21:00~22:00(평일)
21:00~21:40(주말, 연휴)
월~목요일 시간 연장
2020년 3월 4일 코로나19 통합뉴스룸
KBS 뉴스 9
재난 방송 체제
2022년 10월 3일 KBS 뉴스 9 재난 방송 체제 종료

3. 목록

3.1. 1973~1977년

국영방송 시절에도 저녁 뉴스는 존재[1]했으며 위상이 종합뉴스로 격상되기 이전 KBS 1TV밤 9시 뉴스 프로그램은 평범한 스트레이트 뉴스 프로그램(KBS 뉴스, KBS 뉴스와 해설)이었다. 1973년 4월 9일에 KBS가 공사화되고 KBS 뉴스가 1964년 8월 31일에 방송을 재개한 지 8년 10개월 만인 1973년 6월 11일에 KBS 뉴스와 해설과 토요일 KBS 밤 9시 뉴스를 흡수하고 KBS 종합뉴스[2]라는 타이틀로 런칭되어 4년 4개월 동안 방송했으며 포맷은 그 날의 속보 원고가 아닌, MBC 뉴스데스크, TBC 석간(현재의 JTBC 뉴스룸)과 같이 하루 동안 일어난 리포트를 한번에 정리해서 방송한다.

뉴스데스크, TBC 석간과는 달리 KBS는 아나운서가 원고를 읽어서 보도하는 유럽식 뉴스캐스터 방식을 1980년대까지, 상당 기간 유지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NHK, 본고장 유럽의 BBC, ARD가 이런 방식[3]으로 NHK는 지금도 상당수의 뉴스 원고를 아나운서 읽는 식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 점은 KBS가 NHK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3.2. 1977~1993년


1980년 5월 27일 KBS 수도권 채널에서 송출되었던 9시 뉴스의 원본 영상으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1987년 이전의 뉴스 풀버전 영상자료는 이것이 유일하다시피하다. 스튜디오는 당시 여의도 사옥 본관에서 촬영되었다. 당시 스튜디오 구성 및 보도 방식, 시각효과, 촬영 기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영상자료다. 더욱이 이날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전남도청을 점령하는 군사작전이 새벽에 진행되었으며, 시가전에서 생존한 시민군 및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시민 대부분을 체포하여 상무대로 압송한 날에 보도된 뉴스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 또한 상당하다.

1977년 10월 24일에 타이틀을 현재의 KBS 9 뉴스로 변경했으며 1981년에는 블루스크린을 겸한 '9'자의 시계에서 바늘이 9시를 가리키자 화면이 합성되며 뉴스 타이틀이 나왔다. 1980년 9월 21일에 일요일 KBS 9 뉴스가 뉴스파노라마[4]로 확대 개편되어 6년 5개월 동안 방송했고 이어 동년 11월 22일에 토요일 KBS 9 뉴스가 KBS 토요 뉴스로 확대 개편되어 8개월 동안 방송했다.

파일:1983 KBS 9시뉴스.png

1981년 7월 25일에 KBS 토요 뉴스의 타이틀을 KBS 9 뉴스로 환원했고 1984년 10월 29일에 월~토요일 KBS 9 뉴스의 타이틀을 KBS 뉴스센터 9로 변경했는데 오프닝이 1970년대 중, 후반 NHK 뉴스센터 9시와 비슷했다. 1986년 11월 3일에 타이틀을 현재의 KBS 9시 뉴스로 환원했으며 1987년 10월 10일까지 오프닝과 엔딩의 타이틀에는 '시'가 한자(時)로 표기되었다가 1987년 10월 12일부터 1988년 2월 29일까지 한글(시)로 표기되었다. 1987년 2월 22일에 뉴스파노라마가 종영되었다.

1988년 3월 1일에 타이틀을 KBS 9 뉴스로 변경했고 1991년 1월 1일에 타이틀을 KBS 9로 변경했다. 1991년 5월 26일에 일요일 KBS 9가 르포 60과 통합, KBS 일요 9로 확대 개편되어 11개월 동안 방송했다. 1992년 4월 5일에 KBS 일요 9의 타이틀을 KBS 9로 환원했고 동년 4월 6일에 평일 KBS 9의 타이틀을 KBS 뉴스 9 현장으로 변경했으며 주말에는 1992년 4월 12일부터 동년 10월 4일까지 6개월 동안 기존 KBS 9 그대로 방송했다.[5] 1992년 10월 5일에 KBS 뉴스 9 현장의 타이틀을 KBS 9 뉴스현장으로 변경했고 시간대도 토요일까지 확대되었으며 동년 10월 11일에 일요일 KBS 9가 기동취재 현장과 통합, KBS 9 일요현장으로 확대 개편되어 6개월 동안 방송했다.

3.3. 1993년~현재

1993년 4월 25일과 5월 1일에 KBS 9 뉴스현장과 KBS 9 일요현장의 타이틀을 일시적으로 KBS 뉴스로 변경했다.[6] 메인 뉴스답게 오프닝의 로고 표시 직전에 밤 9시를 상징하는 숫자 '9'가 잠깐 크게 나왔다가 사라지는 별도의 그래픽[7]을 사용하고 브릿지, 일기예보 인트로까지 별도로 송출하여 일반 KBS 뉴스와는 전혀 달랐다. 타이틀도 KBS 뉴스 그 자체를 의미하며 외적으로는 여전히 KBS 9시 뉴스로 지칭된다. 동년 7월 8일부터 오프닝도 흔히 알려진 음악으로 환원했으며, 동년 10월 18일에 타이틀을 KBS 뉴스 9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3년 5월부터 나온 브릿지는 연말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역시 로고 폰트를 KBS 뉴스 9로 변경했다. 1995년 2월 26일에 일요일 KBS 뉴스 9가 일요와이드로 확대 개편되어 6개월 동안 방송했고 동년 9월 10일에 원래의 KBS 뉴스 9로 환원했다.

그간 KBS가 '관영방송' 이미지를 지닌 탓에 시청률은 똑같이 친여 성향이었던 MBC 뉴스데스크에 뒤져 콩라인이었다가 1993년 문민정부 초기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민들도 뉴스 볼 맛을 다시금 얻어 시청률이 폭증했고, 1994년 10월 1일에 KBS 1TV의 상업광고가 폐지되고 보도 프로그램을 강화[8]하면서 기세를 얻고 덧붙여서 일일연속극 당신이 그리워질 때, 바람은 불어도의 시청률 상승까지 힘입어 90년대 중반에 마침내 MBC 뉴스데스크를 추월, 시청률 1위를 기록. 이 시청률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9] 현재 웬만한 주중 밤 10시대 드라마나 타 사의 일일극 또는 주말극이 20%를 넘기며 흥하지 않는 이상 주간 시청률에서 KBS의 주말 드라마일일 드라마에 이어 3위를 고수하고 있었으며 2013년 하반기부터는 KBS 2TV의 일일 드라마가 가세하면서 4위를 고수하는 편이다.[10]

KBS 뉴스 9의 우산효과도 한 몫 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거의 매일 평일 시청률 1위를 유지하는 저녁 8시 30분 ~ 밤 9시에 방영되는 일일 드라마의 인기도 상당히 좋아서 아무리 못해도 시청률 20%이며 주 시청층이 중·노년층이라 웬만해서는 주 시청층이 이탈되는 현상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KBS 뉴스 9가 시작하기 기다리면서 평소에 안 보던 일일 연속극을 5분 내지 10분 정도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니 대배우 이낙훈의 '옛날의 금잔디'가 공전의 히트를 쳤던 것을 시작으로, 몇 차례 MBC나 SBS에게 일일연속극 시청률을 뺏긴 것 빼고는 KBS의 일일연속극 방송 시간은 거의 절대 시간이나 다름없다. 다만 199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 뚝배기처럼 인기작도 있었으나 KBS 뉴스 9가 크게 힘을 받지는 않았는데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9시 딱 되면 뉴스데스크로 채널을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90년대 초반 1TV에서 광고를 했을 때도 일일연속극과 9시 뉴스 사이에 광고를 따로 편성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KBS 9시 뉴스 시청률이 뉴스데스크에게 월등하게 밀렸었는데 1993년 - 1995년을 전후하면서 완전히 뒤집어지게 된 것이다.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MBC 뉴스데스크가 드라마와 함께 경쟁에서 밀려나 2010년 11월 6일부터 주말 저녁 8시로, 이후 2012년 11월 5일부터 주중도 저녁 8시로 개편됨에 따라 지상파 방송에서는 유일한 9시 뉴스로 남게 되었다. 2013년 10월 21일에 가을 개편으로 JTBC 뉴스 9를 의식했는지 앵커와 스튜디오를 교체했다. 2013년 9월 6일 방영분부터는 유튜브에서도 KBS 9시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면서, KBS에 우경화가 진행되는데, 이때 9시 뉴스도 논조가 우경화된다. 이후 여러 보도를 통해 신뢰를 점점 잃어갔다. 이 때 이후로 9시 뉴스의 논조성향은 친정부[11] 성향이다. 이는 뉴스제작 실무진인 평기자들은 보수 여권에 다소 비판적인 성향이지만 상위 간부들은 친정부적 성향이 있는만큼(공영방송의 특성이기도 하고), 뉴스 편집권한을 가지고 있는 통합뉴스룸 국장과 방송주간 등 상층부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언론시민연합이 2016년 1월 6일부터 총선 전날인 4월 12일까지 지상파 3사의 프라임타임 뉴스 보도내용을 분석한 결과, 북한 관련 보도의 비중은 KBS 9시 뉴스가 624건을 보도해서 기간 중 총 보도량 대비 31.3%를 차지해서 방송3사 중 1위를 할만큼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MBC는 19%인 374건, SBS는 17%인 377건이 북한 관련 보도였다. KBS는 98일간 하루 평균 북한 관련 보도를 6.4건씩 보도한 것이다. MBC는 3.8건, SBS가 3.5건을 전했다. 선거보도와 비교해보면 북한관련 보도가 얼마나 많은 보도량인지 짐작할 수 있다. 분석 기간은 정확하게 총선 D-98일부터 D-1일이었다. 선거 관련 보도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심각하게 북한관련 보도에 편중되었다는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다. 관련 기사

하지만 이처럼 집요했던 KBS의 북풍몰이에도 불구하고 20대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한동안은 북한 관련 보도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분위기 파악을 하는 듯 했다. 그 이후 북한 관련 보도의 비중이 조금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하루에도 2, 3꼭지 이상은 할애하고 있는데, 보도 내용은 굉장히 심각하고 호들갑스럽다. 그러나 막상 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큰 의미를 두기 힘들거나, 상투적이고 일상화 된 북한 관영매체의 호전적인 논평을 그대로 전해주는 수준에 그친다. MBC, SBS 등 다른 지상파 방송에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 내용이 상당하다는 것을 감안하면(보도 성향이 크게 다르다고 보기 힘든데도) 그 보도의 영양가를 높게 쳐주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12]

이후 2017년 9월 4일에 시작된 방송사 파업방송통신위원회의 조치에 의해 고대영 사장이 2018년 1월 해임당하고 동년 봄부터 양승동이 사장으로 취임된 뒤 이루어진 뉴스 개편 과정에서 평일 앵커인 황상무 기자와 김민정 아나운서를 김철민 기자와 김솔희 아나운서로, 주말 앵커인 송영석 기자와 이슬기 아나운서를 한승연 기자와 김지원 아나운서로 각각 교체했다. 앵커를 교체 투입한 첫날인 4월 16일에는 세월호 특집으로 9시 뉴스를 진행했다.

원래는 KBS 뉴스 9만이 KBS 뉴스 단일 체제였으나 2019년 1월 1일부터는 KBS 뉴스의 개편에 따라 종합뉴스로 격상된 KBS 뉴스 7와 함께 KBS 뉴스 양대 체제를 이루고 처음 종영되었던 KBS 뉴스라인기존 포맷을 일부 계승하여, 평일 앵커에 엄경철 취재주간[13]이각경 아나운서를, 주말 앵커에 김태욱 기자[14]박소현 아나운서를 각각 새로이 교체 투입하였다. 이 시기 동안에는 JTBC 뉴스룸처럼 주말 뉴스를 금, 토, 일 체제로 확장하였다.

2019년 11월 말에는 여성 기자인 이소정 기자가 평일 메인 앵커로, 남성 아나운서인 최동석 아나운서가 평일 서브 앵커로 각각 투입되었으며, 정연욱 기자와 박지원 아나운서가 주말 앵커로 새로이 투입되었다. 특히, 평일 메인 앵커에 여성 기자를 투입시킨 것은 KBS 뉴스 9 역사상 최초이자 파격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평일 뉴스를 월~금, 주말 뉴스를 토~일 체제로 환원시켰다.

2020년 3월 4일부터 2022년 10월 2일까지 코로나19의 국내 범유행에 맞춰 한시적으로 코로나19 통합뉴스룸 체제에 편입되어 방송됐다. 동년 9월 3일부터는 한국 수어 방송을 지원한다.

3.3.1. 박민 사장 취임 이후

2023년 11월 13일 박민 KBS 신임 사장이 취임하면서 박장범 기자와 박지원 아나운서가 평일 앵커로, 김현경 기자와 박소현 아나운서가 주말 앵커로 투입되었다. 그런데 앵커 교체 과정에서 기존 앵커들에게 방송 전날 전화로 하차 사실을 통보하는 등 일방적 앵커 교체라는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더욱이 시청자들에 대한 작별 인사도 없는 상태에서의 갑작스러운 앵커 교체라서 논란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침 종합뉴스인 KBS 뉴스광장에 대한 앵커 교체 때 이 역시 갑작스러운 앵커 교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 대한 작별 인사는 있었던 것과 완전히 대조되었다.

결국 2024년부터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수도권 시청률이 MBC 뉴스데스크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2024년 10월 23일 평일 진행자인 박장범 기자가 KBS 사장 후보자로 최종 결정되면서 역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KBS 뉴스 9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15] 박장범 기자의 메인앵커 후임으로는 최문종 기자로 결정되었다.

2024년 11월에는 거의 매일 MBC 뉴스데스크보다 수도권 시청률이 낮게 나왔고, 전국 시청률도 밀리는 날도 있을 정도로 위상이 하락했다.

최문종으로 앵커가 교체된 후 TV조선에서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앵커 교체 전은 수도권 기준이고, 교체 후는 전국 기준으로 비교한 잘못된 기사다. 오히려 앵커 교체 후 수도권 시청률은 거의 매일 MBC 뉴스데스크보다 낮게 나오는 상황이고, 평일 전국 시청률도 MBC 뉴스데스크보다 낮아진 날도 나올 정도로 KBS 뉴스 9의 시청률은 심각한 수준으로 저조한 상태다.

결정적으로 2024년 12월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반정부 여론이 폭발하였고, 친정부 방송화된 KBS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KBS 본사 앞마당인 여의도 국회대로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데 시민들의 항의로 취재기자가 집회 취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평일 전국 시청률도 MBC 뉴스데스크의 절반 수준, JTBC보다도 못할 정도로 낮게 나오면서 KBS 뉴스 9의 시청률과 평가는 '몰락'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악으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트키핑마저 윤석열 정부의 눈치를 보는 식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를 비롯한 보도제작 현장에서는 사측, 경영진, 이사진의 폭거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16]

게다가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 표결 뉴스특보에서 MBCSBS와 다르게 탄핵반대 집회를 비추며 양비론까지 펼치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를 보여주듯 당일 뉴스 9의 시청률은 3.2%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17], 10.6%를 기록한 MBC 뉴스데스크[18]와는 3배 차이로 압도당했다. 심지어 수도권 시청률은 SBS 8 뉴스에도 밀리고 상위 20위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굴욕을 제대로 당했다.

또한 KBS 뉴스12에서 고의적으로 전국농민회총연맹트랙터 시위 당시 경찰을 옹호하고 시위대를 향해 왜곡보도하는 메시지를 내려다다가 비판을 받았으며, 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KBS 내부에서도 박장범 체제에 반발이 심각한 상태며, 이에 반발하여 추적 60분, 더 보다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내란옹호 세력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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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흔적이 현재 KBS 제1라디오저녁 종합뉴스로 남아 있다. KBS 제1방송 오늘의 뉴스로 신설된 당시부터 2009년까지 뉴스와 화제, 뉴스 중계탑과 마찬가지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Entrance march를 오프닝 음악으로 사용하였다가 2010년부터 KBS 뉴스 CI를 대대적으로 변경하면서 KBS 뉴스 7(2001~2002년, KBS 뉴스 8의 전신.)의 엔딩 음악을 편곡해서 사용하고 있다.[2] 당시 장음 표기에 맞추어 KBS 종합뉴우스.[3] ARD '슈프레헤만(Sprechemann)'의 권위는 아직도 상당하다. 요새는 오후 8시 뉴스(Tagesschau, 15분 뉴스 프로그램)에 방송되는 기사는 취재한 기자가 직접 읽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으며, 심층 취재(?)는 Tagesthemen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ARD 뉴스는 2009년까지도 프롬프터를 쓰는 일이 없었는데 이는 슈프레헤만의 직업적 긍지(?)와 관련있다고 한다. 요즘은 유럽도 기자를 동원하는 미국식으로 전환하는 추세다.[4] 1971년~1972년에 방송했던 뉴스파노라마와는 별개의 프로그램.[5] 토요일 KBS 9는 1992년 4월 11일부터 동년 5월 23일까지 평일과 마찬가지로 1개월 동안 KBS 뉴스 9 현장으로 방송되었다.[6] 1993년 4월 25일 방송에는 KBS 9 뉴스현장으로 나왔다.[7] 1993년 당시 일반 KBS 뉴스의 오프닝 그래픽과 동일했는지는 불명.[8] 그 이전에는 주말 9시 뉴스 전후에 블록광고를 편성했고(증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7OIDPQd0Vn4), 토요일 아침마당, 토요일 KBS 945 뉴스, 주말 KBS 정오 뉴스, 전국노래자랑 사이에도 편성했다.[9] 이 때부터 메인 뉴스 콩라인에 머물던 MBC 뉴스데스크는 2012년 김재철이 MBC 사장직에 취임한 이후 때마침 대대적인 쇄신과 함께 퀄리티가 수직상승한 SBS 8 뉴스 시청률에도 경합열세 수준으로 시청률이 하락하고 2016년 탄핵 정국 당시에는 종편인 JTBC 뉴스 9, JTBC 뉴스룸에게도 압도적으로 뒤쳐졌는데, 이 추세는 10년가량 이어지다 2020년이 되어서야 10년 전의 자신들처럼 몰락하는 JTBC 뉴스룸을 압도하고 10년 전의 KBS 뉴스 9처럼 우경화되는 SBS 8 뉴스를 추월하며 다시 콩라인 자리를 되찾았다.[10] 2013년 1월 14일주부터 2월 25일주까지 7주 연속으로 3위 고정이었다.[11]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12] 사실 KBS의 9시 뉴스가 정권의 외풍을 별로 받지 않았을 시기가 손에 꼽기는 하다. 정연주서영훈 시절 정도나 고작이고, 이병순도 큐시트는 의외로 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간부진들이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신경써서 이래저래 중간에서 걸러내는 것이 많기에 사실상 통제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13] 심야토론 진행.[14] KBS 뉴스라인 진행.[15] 사장 후보자로 최종 결정되었을 당시 박장범 기자는 이미 2일 전인 2024년 10월 21일부터 휴가를 보내고 있는 상태였으며, 주말 진행자인 김현경 기자가 임시로 평일 진행을 맡고 있었다.[16] MBC에서도 방송국 차원에서 박장범 체제 KBS 경영진의 만행을 헤드라인으로 보도하고, 박장범 퇴진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17]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시청률 기준(2024년 12월 14일).[18] 뉴스데스크는 수도권에서 11.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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