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눕 독 Snoop Dog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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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fff,#fff><colcolor=#000,#000> 본명 | 캘빈 코도자 브로어더스 2세 Calvin Cordozar Broadus Jr. |
| 별명 | Snoop Doggy Dogg[1], Snoop Dogg, Snoop Lion, Doggydogg[2] |
| 출생 | 1971년 10월 20일 ([age(1971-10-20)]세) |
| 캘리포니아주 롱비치 | |
| 국적 | |
| 신체 | 193cm |
| 배우자 | 샨테 브로어더스(1997년 ~ 현재) |
| 자녀 | 장남 코데 브로어더스(1994년생)[3] 차남 코델 브로어더스(1997년생)[4] 삼남 줄리안 코리 브로어더스(1998년생)[5] 장녀 코리 브로어더스(1999년생)[6] |
| 친척 | 브랜디, 메르세데스 모네(샤샤 뱅크스), 레이 제이, 네이트 독, 대즈 딜린저, 릴 하프 데드, RBX |
| 직업 | 래퍼, 싱어송라이터, 배우, 구단주 |
| 경영 | 스완지 시티 FC (2025~ ) |
| 종교 | 래스터패리교 |
| 데뷔 | 1991년 《Over the Counter》[7] |
| 소속사 | 캐피톨 레코드, 데프 잼 레코딩스 |
| 링크 | |
| 공식 로고 | |
1. 개요
I'm representing for them gangstas all across the world. ㅡ Still D.R.E. 中 |
2. 생애
미국 내에서 우범지대로 매우 유명한 롱비치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교회에서 노래부르며 피아노를 연주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랩에 관심을 지녔다. 그러나 롱비치 폴리테크닉 고등학교 졸업 후 '롤린 20스 크립스'라는 갱단에 합류해 마약 밀매 등 활동을 해왔고, 이 때문에 코카인 소지 혐의로 교도소살이[8]를 하기도 했으며,[9] 심지어 2013년 <롤링 스톤> 지 인터뷰에 따르면 포주 활동도 했다고 고백했다.1991년 전 N.W.A. 멤버 닥터 드레에게 스카우트되어 Death Row Records에 합류하면서 예명을 '스눕 도기 독'으로 정했고, 영화 <딥 커버> 주제곡 'Deep Cover'에 참여해 처음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1992년, G-funk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정립한 닥터 드레의 첫 솔로 앨범 "The Chronic"에서 다수의 곡을 피쳐링해 앨범의 사회현상적 평가와 더불어 주목받으며 등장하였다. 이후 1993년 드레가 전곡을 프로듀싱 한 데뷔 앨범 "Doggystyle"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성공적으로 데뷔하였다. 이 앨범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데뷔 앨범이 되었다.
이 시기(1992~94년)는 대부분 힙합 팬들이 인정하는 스눕 독의 독보적인 최전성기로, 이 시기 스눕 독은 힙합 씬은 물론 음악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정상급 인기를 구가하는 아티스트였다. The Chronic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두 트랙인 Nuthin' But A "G" Thang과 Dre Day는[10] 모두 스눕 독이 피처링했으며,[11] 그의 데뷔 앨범 Doggystyle의 What's My Name,[12] Gin and Juice는 모두 빌보드 핫 100 8위를 기록하며 상당한 히트를 쳤다. Doggystyle의 초동 기록은 7년이 지난 에미넴의 MMLP가 겨우 깼을 정도로[13], 당시 막 메인스트림에 올라온 힙합 장르의 앨범이라곤 믿을 수 없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The Chronic이야 웨스트 코스트 힙합 역대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으니 그렇다 쳐도, Doggystyle의 상당수의 곡들은 아직까지 상당수 스눕 독의 대표곡으로 남아있다. 즉, 싱글 두 개만이 아니라 모든 곡들의 평가가 매우 높다. 이렇게 스눕 독은 Death Row Records 시절 힙합 역사상 최초로 장르 불문 대중음악계 전반에 걸쳐서 지배적인 전성기를 보냈다.
자신의 1집 앨범이 발매되기 직전 1993년에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 스눕 독이 자기 손으로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가 경호원으로 고용한 갱 단원 말릭 리(Malik Lee)가 차에서 라이벌 갱단의 몇 명과의 설전 끝에 총을 꺼내 그 중 한 명이던 필립 울더매리안(Philip Woldermarian)을 죽인 것.[14] 말릭 리와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스눕 독은 패닉이 온 채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스눕 독은 경찰에게 이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는데, Death Row Records의 CEO 슈그 나이트가 경찰을 찾아가려는 스눕 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 주에는 MTV 뮤직 어워드가 열릴 참이었고 스눕 독은 거기서 1집 앨범 Doggystyle을 홍보하기로 예정되었으므로, 슈그 나이트는 스눕 독에게 이 날의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경찰에게 가라고 하였다. 실제로 현장에 경찰들이 스눕 독을 잡으러 나타나자 슈그 나이트는 경찰 측과 스눕 독이 스케줄을 다 마치면 스스로 경찰에 출두하겠다고 합의하였다. 그리고 스눕 독은 모든 것이 끝나자마자 경찰을 찾아갔다. 슈그 나이트는 스눕 독이 유치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석금 백만 불을 내주었고 스눕 독은 정상적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15] 그리고 4년간 법정 재판을 한 끝에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1996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시기에 한 가지 일화가 있다. 1994년 영국 투어 당시 스눕 독이 살인자라며 민심이 바닥을 치던 중이라서 추방하자는 기사까지 났다. 하지만 그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여왕은 당시에 스눕 독은 영국에서 죄를 지은 적이 없으니 남아도 좋다고 말했다 한다. 스눕 독 본인이 윌리엄과 해리 왕자[16]가 자기 노래를 마음에 들어해서 두 왕자가 여왕에게 부탁한 덕분에 이 아름다운 나라에 남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17]
1995년 독자 레이블 '도기스타일 레코드'를 세우고 드레가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레이블을 떠난 후 혼자 힘으로 1996년 2집 "Tha Doggfather"를 발매했지만, 투팍의 유작 정규앨범 <The Don Killunimiti>에 밀려 변변찮은 성적을 냈다. 1998년 자신도 슈그 나이트의 갑질에 빡쳐서 레이블을 떠나 당시 대세이던 마스터 P의 노 리밋 레코드와 계약하여 예명을 '스눕 독'[18]으로 바꾸었다.
그해 3집 "Da Game Is to Be Sold, Not to Be Told"를 내서 판매량은 그럭저럭 나왔으나, 커버 아트고 프로덕션이고 노 리밋 스타일로 범벅되어 전작보다 못한 완성도에 중구난방식 구성으로 퀄리티 면에서 '최악의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1999년 그는 다시 닥터 드레와 함께 작업해 4집을 내 퀄리티 면에서 균형을 맞췄고, 닥터 드레 2집에서 'Still D.R.E.', 그리고 'The Next Episode'와 같은 뛰어난 트랙을 만들어냈다. 2000년 팀벌랜드와도 합작해 5집까지 냈으나 커리어 초반만큼은 못했다. 그래도 노 리밋 시기는 상업적으로는 커리어 초반 못지 않게 상당히 성공적인 시기였다.
같은 시기 트레이 디, 골디 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ha Eastsidaz'를 결성해 2001년 정규 2집까지 냈고, 2002년 6집 이후 다수의 앨범에서 프로듀싱 팀 The Neptunes와 작업하며 대히트곡 'Beautiful', 메가 히트곡 'Drop It Like It's Hot'[19] 등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투 쇼트나 클릭의 E-40처럼 최신 트렌드에 너무 동화되어버려서 서먹함을 느낀 골수 팬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2004년 스타트렉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2009년 프리오리티 레코드 Creative Chairman으로 부임했고, 2009년 이후 저조한 성적을 내자 2013년 래스터패리교로 개종 후 레게 앨범을 냈다.
이후에는 대마초 사업을 필두로 앨범 판매량 상관없이 본인의 음악적 실험, 피처링을 통한 신예 발굴에 집중하기로 한 모양이다. 정규 앨범으로 펑크(Funk)나 가스펠 장르의 음악을 내기도 하고 뉴 잭 스윙, 트랩, Nu era G funk 등등 옛날과 현재를 넘나드는 음악적 시도에 집중하는 한편, 여전히 <Wiggle Wiggle>[20], <Young and wild,free>같은 명곡에도 활약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또한 데뷔 초 릴 디키를 비롯해 실력은 있지만 인지도가 부족한 무명 래퍼들의 노래에 자주 피처링으로 샤라웃해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12월에 크리스마스 기념 싱글 곡을 발표했다. 2022년에는 데스로우 레코즈를 인수한 후 The Chronic, Doggystyle을 포함한 데스로우 시절 작업물들을 NFT로 만들기 위해 음원 사이트에서 전부 내려 힙합 팬들의 원성을 샀다. 2023년 2월 2일 The Chronic 발매 30주년을 맞이하여 모든 음원 사이트에 다시 올라왔다.[21]
3. 디스코그래피
4. 필모그래피
4.1. 영화
- 트레이닝 데이 (2001) - 블루 역
- 스타스키와 허치(2004) - 허기 베어 역
- 무서운 영화 5 (2013) - Ja' Marcus 역
- 터보 (2013) - 스무브 무브 역
- 밀리언 달러 트러블 (2019) - 스눕 역
- 아담스 패밀리 (2019) - 잇 역
- 스폰지밥 무비: 핑핑이 구출 대작전 (2020) - The Gambler 역
- 아담스 패밀리 2 (2021) - 잇 역
- 데이 시프트 (2022) - 빅 존(블랙 카우보이) 역
- 가필드 더 무비 (2024) - 스눕 캣 역
5. 평가
5.1. 위상
1990년대 초 혜성같이 등장한 이래로,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행보를 보여주며 서부 힙합의 대부로 자리매김한 래퍼. 스눕 독은 1990년대에 지역을 불문하고 힙합씬 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고 음반을 많이 판매하는 래퍼였다. 스눕 독의 전성기는 힙합 역사를 통틀어서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전성기가 한참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도 새로운 사운드를 유행시키며 떠오른 퍼렐 윌리엄스의 프로듀싱팀 넵튠즈와 작업하면서 과감하게 음악스타일을 바꾸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 후로도 스눕 라이언이라는 이름으로 레게 앨범을 내거나 떠오르는 젊은 래퍼들과 협업 하는 등 꾸준한 시도로 자신의 음악에 변화를 주면서 오래도록 대중으로부터 넓게 사랑받는 위치에 있는 드문 케이스이다.힙합 장르는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므로 대부분 래퍼들이 짧은 전성기를 누린 후 원 히트 원더로 사라지거나, 음악으로 번 돈으로 사업에 매진하며 반은퇴하는 등, 커리어를 길게 지속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스눕 독은 매우 드물고 예외적인 커리어를 이어갔다. 현재까지도 피처링, 정규 앨범, 싱글을 몇 개월 간격으로 기복없이 꾸준히 발매하고, 30주년 동안 50에 가까운 나이에도 세월을 거스르는 센스와 실력으로 명곡을 뽑아내거나 피처링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때문에 힙합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다.[22] 그래서인지 <아메리카 힙합> 1권에선 그를 '웨스트코스트의 지박령'이라 평하기도 했다.
또한, 본토 힙합 역사상 손에 꼽히는 임팩트 있는 데뷔를 한 래퍼이다.[23] 데뷔 직후 몇 년간은 힙합 씬은 물론 대중음악계 전체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가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라킴, 에미넴, 나스, 비기, JAY-Z, 투팍, 닥터 드레 등과 함께 미국 힙합의 전설이라고 평가받으며, 1990년대 힙합의 황금기를 이끈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24]
5.2. 음악 스타일
무덤덤하게 말하는 톤으로 읊조리면서 랩을 하는데, 스눕 독의 음색과 랩 스타일 자체가 아주 독특해서인지 비기 스몰즈, 에미넴, 투팍만큼 발성이 크지 않음에도 [25] 굉장히 임팩트있게 들린다. 제이지는 스눕 독이 "1,2,3,4"만 외쳐도 노래를 씹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음색이 좋다고 칭찬한 적 있다. 이 때문에 소위 말하는 빡센 래핑보다는 여유롭고 펑키한 래핑을 구사하며, 스눕 독의 디스코그래피는 대부분 가벼운 붐뱁과 펑키한 지펑크 곡이 주를 이룬다.[26]스눕 독 최고의 장점은 엇박과 정박을 넘나드는 본인만의 독창적인 랩 스타일이다. 듣는 순간 누구나 바로 스눕 독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플로우가 개성적이고 독보적이다. 빡센 랩과 거리가 먼 그의 랩 스타일 특성상 청각적으로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을 변칙적인 리듬감과 이를 받쳐주는 라임 설계로 보완한다. 이런 랩은 강한 톤과 정박의 리듬이 주를 이루던 당시 힙합 씬에서 본 적 없던 스타일이었고, 무명이던 그를 닥터 드레의 정규 1집 앨범 피처링 참여 하나로 미국 최고의 래퍼 자리로 올려놓았다.
역대 최고의 MC를 꼽을 때에는 스눕 독 말고도 여러 MC들이 거론되지만, 플로우가 뛰어난 MC를 꼽을 때에는 스눕 독이 대다수 매체에서 1순위로 거론된다. 랩 음악이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방식의 랩 스타일이 등장했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 래퍼들이 스눕 독만큼 엇박을 구사하기 난해해 하거나, 펑키함과 여유로운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50세를 넘은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27]
물론 미국의 대다수 MC는 켄드릭 라마나 조이 배드애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엇박과 정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래퍼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엇박은 똑같은 박자가 몇 마디 동안 계속 반복된다거나, 최대한 많은 가사를 비트 안에 우겨넣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비트와의 조화보다는 뛰어난 랩 실력에 더욱 강조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스눕 독의 엇박은 비교적 적은 가사를 노래 안에서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랩이 비트에 스며드는 듯한 효과를 준다. 이런 그만의 음악적 연출은 스눕 독만이 낼 수 있는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다. 게다가 전성기 시절엔 닥터 드레의 완성도 높은 비트와 함께 어울리는 래핑을 구사하였고, 이러한 조합은 1990년대 초반 서부 힙합을 상징하는 The Chronic, Doggystyle같은 전설적인 명반들을 만들어 냈다.
가사의 특징이라면 서부 힙합과 G-funk, 대마초의 상징답게 섹드립과 마약에 관한 것을 많이 집어넣는다. 크립스 갱단 출신이라서 갱스터 문화와 관련된 가사를 많이 넣기도 하는데, 정작 크립스 갱단과 원수 지간인 블러즈 갱단 출신 래퍼인 더 게임과 함께 노래를 낸 적도 있다. 그리고 본인의 고향인 롱비치에 대한 가사도 종종 넣는다. 또한, 가사에서나 평소 언행에서나 정치적인 행보도 보인 적이 있는데, 반트럼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흑인 래퍼들에게 경고하기도 했고,[29] 트럼프를 디스한 에미넴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2024년 1월 트럼프를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밝히는 인터뷰를 했다. # 해당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나에게 어떤 나쁜 일도 하지 않았다"며 "그는 좋은 일만 했을 뿐"이라고 밝히면서 구체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힙합 레이블 데스로 레코드의 설립자인 마이클 해리스를 사면한 것을 언급했다.
상술했듯 힙합 외의 음악에도 관심이 있어서 '스눕 라이언'이라는 명의로 레게, '스눕질라'라는 명의로 펑크(Funk) 음악 활동을 시작해서 두 명의 모두 정규 앨범까지 냈다. 앨범 단위가 아닌 싱글이나 단발상 시도로는 오토튠 싱잉 랩, 트랩, 딥 하우스, 디스코, 뉴 잭 스윙, 아카펠라, 가스펠 등의 음악을 시도한 적 있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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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콜베어 (스티븐 콜베어의 2020년 선거의 밤) | → | 닥터 드레, 스눕 독, 메리 제이 블라이즈, 에미넴, 켄드릭 라마, 50 센트 (펩시 슈퍼볼 LVI 하프타임 쇼)[30]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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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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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ath Row Records 시절 사용하던 예명으로 Nuthin' but a 'G' Thang, Doggystyle 시절에 이 예명이었다.[2] 트위치에서 방송하면서 본인이 사용중인 닉네임.[3] 2015년생 아들이 있다.[4]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2015년 UCLA 소속으로 대학 리그에서 뛰었다. 191cm의 장신으로 현재는 모델 겸 ShareStix의 CEO. 2024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Creating Brand Value 과정을 수료했다.
[5] Laurie Holmond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6] Choc Factory란 브랜드를 창업하였다.
.[7] 고교 졸업 직후 1989년부터 녹음한 스튜디오 앨범이다. 정식 데뷔는 4월 9일 싱글 Deep Cover로 영화 Deep Cover의 사운드 트랙. 닥터 드레와 같이 한 트랙이며, 닥터 드레는 N.W.A를 탈퇴한 후 처음으로 발표한 노래다.[8] 이원복의 <현대문명진단> 만화에서도 나온 바 있다. 흑인들이 부르는 랩이 너무 과격하고 어둡다는 백인 기득권층들의 비난에 바로 스눕 독이 반격을 가했는데, 자신이 어릴 적에 빈민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 나온 20명 가운데 대부분이 총에 맞아 죽거나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서 인생이 아름답고 예의 바르게 살자는 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며 비꼬았다고 한다.[9] 감옥살이를 하면서 래퍼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10] 조지 클린턴의 Atomic Dog과 펑카델릭의 (Not Just) Knee Deep을 샘플링 및 차용한 곡이다.[11] 참고로 Nuthin' But A "G" Thang은 정통 힙합 역사상 최초의 메가히트곡이며, Dre Day는 역사상 가장 크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스곡이다. Dre Day의 디스 대상은 Eazy-E.[12] 조지 클린턴의 Atomic Dog과 펑카델릭의 (Not Just) Knee Deep을 샘플링 및 차용한 곡이다.[13] 물론 MMLP는 Doggystyle의 2배를 상회하는 초동을 기록했다.[14] 정확히는 필립 울더매리안이 자신이 갖고 있던 총 쪽으로 손을 움직이자 말릭 리가 재빠르게 반응하여 먼저 총을 쏘았음.[15] 일각에서는 이 살인 가담 혐의가 오히려 스눕 독의 1집 앨범 성공에 마케팅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특히 Murder Was The Case 트랙은 제목부터가 당시 스눕 독의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16] 당시 윌리엄과 해리는 11살과 8살이었다.[17] 출처, 번역[18] 개명 이유는 원래 예명 '스눕 도기 독'의 판권이 Death Row Records에 있기 때문이다.[19] 퍼렐 윌리엄스가 피쳐링했다.[20] 개그콘서트 니글니글의 그 곡 맞는다.[21] 여담으로 닥터 드레의 유튜브 채널에도 The Chronic 전 트랙 및 뮤직비디오가 올라옴과 동시에 기존 뮤직비디오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22] 1990년대에는 <Nuthing but a G Thang>, <What's my name>, <Gin and juice>, 2000년대에는 <Still D.R.E.>, <The Next episode>, <drop it like hot> 2010년대에는 <Wiggle Wiggle>, <Young, wild, and free>, <Professional Rapper>, <Earth> 등등. 힙합계에서 상징적인 명곡이거나 힙합을 잘 안 듣는 사람들도 어디서 한 번씩 들어봤을 유행가, 비트에는 한번씩 스눕 독의 손길이 묻어있다.[23] 1992년 닥터 드레와 함께 Deep Cover라는 노래로 데뷔하여 인지도를 올린 후 닥터드레의 The Chronic의 대부분 트랙에 피처링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Nuthin' But A "G" Thang이 대히트를 치며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 다음 해에 데뷔 앨범인 Doggystyle은 첫 주 80만 장의 판매량으로 2000년 MMLP 이전까지 힙합 앨범 중 역대 최다 첫 주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즉 당시 투팍과 함께 Death Row Records에서 나온 대표적 슈퍼스타였던 것. 이 중에서도 스눕 독이 투팍보다 먼저 인기를 얻어서 Doggystyle을 대박냈으며, 지금에 와서도 1992년~1994년 당시 인기의 임팩트는 1999~2002년 에미넴이나 2003~05년 50 센트, 2004~08년 칸예 웨스트 이전에 등장한 힙합씬을 대표하는 전성기이며, 힙합의 역사를 통틀어보아도 상당한 축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24] 예명인 스눕 독은 그 유명한 피너츠의 스누피에서 따왔다. 얼굴이 스누피를 닮아서 어머니가 붙여준 별명이다.[25] 그렇다고 발성이 부족하고 라이브가 약한 것은 아니다. 평균 이상은 하는 편.[26] 이런 단조로운 톤의 랩 스타일은 그가 존경하는 래퍼 슬릭 릭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슬릭 릭 또한 힙합 최고의 스토리텔러로 평가받을 정도로 그 독특한 랩 스타일을 인정받았다.[27] 2022년 2월 LA에서 열린 슈퍼볼 하프타임쇼에도 출연해 건재함을 과시했다.[28] 50센트가 자 룰이 고용한 킬러에게 총격을 당했을 때 총알이 혀를 관통하여 혀가 부어올라 기도가 막혔고, 결국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발음이 독특해졌음은 유명한 사실이다.[29] 카녜 웨스트를 돌려 깠다는 말도 있었으며, 트럼프의 선거 구호를 비꼰 것으로 보이는 제목의 <Make America Crips Again> EP 앨범을 내기도 했다. 참고로 카녜는 2016 대선 때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지지자다.[30] 퍼포머로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