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쇼 진품명품 방영 목록 | |||||
1995~1999년 | 2000~2005년 | 2006~2010년 | 2011~2015년 | 2016~2020년 | 2021~2025년 |
TV쇼 진품명품-출장감정 방영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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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기록들 |
1. 2016년
회차 | 방송일 | 지역 | 감정위원 | 감정품 | 연대 | 최종감정가 |
1031 | 1월 3일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 이상문 | 토기 목긴항아리[1] | 1800년 정도 | 200만원 |
양의숙 | 양산 반닫이[2] | 100년 이하[3] 100년 이상[4] | 100만원 | |||
김영복 | 내방가사 | 약 70년 전[5] | 50만원 | |||
진동만 | 석하(石下) 김우범(金禹範)[6]의 <금강산 영원도> | 1930년대 | 150만원 | |||
1032 | 1월 10일 | 충청북도 옥천군 | 이상문 | 백자 매병 | 약 450년 전 | 50만원 |
양의숙 | 손화로(유기) | 약 102년 전 | 80만원 | |||
김영복 | 정입 선생 문집 | 1592년 | 30만원 | |||
진동만 | 한북문(漢北門)도[7] | 1974년 | 150만원 | |||
1033 | 1월 17일 | 경기도 광주시 | 이상문 | 청자흑백 상감국화 문잔과 잔받침 | 약 700년 전 | 150만원[8] |
진동만 | 단오풍경 방(倣)작 | 5만원[9] | ||||
김영복 | 방윤명의 교지[10] | 1867년 | 50만원 | |||
1034 | 1월 24일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 이상문 | 청화백자 대나무 사각연적 | ? | 200만원 |
양의숙 | 실첩[11] | 약 100년 전 | 80만원 | |||
진동만 | 우후(雨後) 금강도 | 200만원 | ||||
김영복 | 설정집 3권 | 1820년 | 60만원[12] | |||
1035 | 1월 31일 | 전라남도 구례군 | 이상문 | 음양각꽃무늬청자대접 | 약 900년 전 | 300만원 |
양의숙 | 나주 반닫이 | 약 200년 전 | 350만원 | |||
진동만 |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기명절지도> | 1955년 | 150만원 | |||
김영복 | 무이구곡시 10폭 병풍 | 1955년 | 500만원 | |||
1037 | 2월 21일 | 울산광역시 동구 | 이상문 | 청자 흑백상감 연꽃문 소병[13] | 약 600년 전 (조선시대 초기) | 100만원 |
양의숙 | 백동 화로[14] | 약 100년 전 | 200만원 | |||
진동만 | 청전 이상범의 <춘경산수도>[15] | 450만원 | ||||
김영복 | 예조 입안[16] | 200만원 | ||||
1038 | 2월 28일 | 대구광역시 동구(1편) | 이상문 | 청화진사 개구리 양각면적 | 약 120년 전 | 300만원 |
양의숙 | 물허벅 | 1894년 (광서 20년) | 30만원 | |||
진동만 |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춘경산수도>[17] | 130만원 | ||||
1039 | 3월 6일 | 경상북도 영천시 | 양의숙 | 다식판[18] | 약 100년 전 | 50만원 |
진동만 |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석죽도> | 1942년대 | 100만원 | |||
김영복 | 초등대한지지[19] | 1909년 | 30만원 | |||
1040 | 3월 13일 | 인천광역시 연수구 | 이상문 | 청화백자용무늬주병 | 200만원 | |
양의숙 | 통영 2층농 | 약 100년~ 120년 | 400만원 | |||
진동만 |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화> | 250만원[20] | ||||
1041 | 3월 20일 | 대구광역시 동구(2편) | 이상문 | 청자흑백상삼딸기국화문발[21] | 약 800년 전 | 200만원 |
양의숙 | 고이댕기 2점 | 50만원 | ||||
진동만 | 규당(葵塘) 한유동(韓維東)의 <설경산수도>[22] | 1953년 | 50만원 | |||
1042 | 3월 27일 | 경기도 양평군 | 이상문 | 청화백자모란문항아리 | 약 180년 전 | 100만원 |
양의숙 | 먹줄통 | 년대 | 40만원 | |||
진동만 | 청전 이상범의 <풍죽도> | 1967년 | 150만원 | |||
김영복 | 땅 매매문서 | 1862년 | 50만원 | |||
1043 | 4월 10일 | 대전광역시 유성구 | 이상문 | 녹청자광구편병 | 약 900년 전 | 50만원 |
양의숙 | 고창 받닫이 | 약 200년 전 | 150만원 | |||
김영복 | 논어+논어언해 9권 | 1403년 | 300만원 | |||
1044 | 4월 17일 | 서울특별시 중랑구 | 이상문 | 철화백자탕기 | 약 400년 전 | 100만원 |
김영복 | 최남선의 <시조유취> | 1938년 | 50만원 | |||
1045 | 4월 24일 | 충청남도 부여군 | 이상문 | 청화백자국화나비문항아리 | 400만원 | |
양의숙 | 방짜 대야와 주물 양푼 2점 | 80만원[23] | ||||
진동만 | 석연(石蓮) 이공우(李公愚)의 묵매도[24] | 18세기 | 150만원 | |||
1046 | 5월 1일 | 전라남도 광양시 | 이상문 | 청화백상감국화문8각접시[25] | 약 800년 전 | 5만원[26] |
양의숙 | 전라도 반닫이 | 약 200년 전 | 350만원 | |||
김영복 | 설주(雪舟) 송운회(宋運會)의 글씨[27] | 1955년 | 20만원 | |||
진동만 | 최북(崔北)의 하경산수화(위작)[28] | 0원(위작)[29] | ||||
1047 | 5월 8일 | 전라북도 고창군 | 이상문 | 순청자 잔과 잔대 | 약 700년 ~ 800년 전(잔) 약 900년 전(잔대) | 150만원[30] |
양의숙 | 3단 목침 | 약 50~ 60년 | 40만원 | |||
김영복 | 창암 이삼만의 <글씨 체본(體本)>[31] | 200만원 | ||||
1048 | 5월 15일 | 전라북도 군산시 | 이상문 | 청자 매병 | 약 900년 전 | 500만원 |
진동만 | 취장(翠堂) 장덕(張德)의 <효금도(孝禽圖)>[32] | 1927년 | 35만원 | |||
김영복 | 원교 이광사(李匡師)의 글씨[33] | 200만원 | ||||
1049 | 5월 22일 | 대구광역시 남구 | 이상문 | 청화백자용문주병 | 약 150년 전 | 300만원 |
양의숙 | 남방위 | 약 13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춘초 지성채의 <관폭도>[34] | 1977년 | 35만원 | |||
김영복 | 성재 김태석의 글씨[35] | 18세기 | 100만원 | |||
1050 | 5월 29일 | 경상북도 문경시 | 이상문 | 청자백상감인화문발 | 약 600년 | 100만원 |
양의숙 | 교의와 위패함 | 약 120년 ~ 13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중광 선학도[36] | 년대 | 150만원 | |||
김영복 | 상설고문진보[37] | 1700년대 말 | 50만원 | |||
1051 | 6월 5일 | 경상북도 청송군 | 이상문 | 분청인화문주병 | 약 500년 전 | 200만원 |
양의숙 | 빗접 | 약 200년 전 | 300만원 | |||
진동만 |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화>(관폭도) | 300만원 | ||||
김영복 | 번암 채제공의 <글씨> | 18세기 | 1,000만원 | |||
1052 | 6월 12일 | 전라남도 완도군 | 이상문 | 청자발(靑磁鉢) 4점[38] | 9세기~ 10세기 | 100만원[39] |
양의숙 | 놋새 약제 도구 | 약 200년 전 | 40만원 | |||
진동만 | 미산 허형의 청해전경(凊海全景) [40] | 1935년 | 3,000만원 | |||
김영복 | 김평묵(金平默)의 <중암선생별집>[41] | 1881년 | 100만원 (권당 20만원) | |||
1053 | 6월 19일 | 인천광역시 부평구 | 이상문 | 청화백자 용무늬 주병 | 약 150~160년 전 | 80만원 |
양의숙 | (먹간나무로 만든) 2층 농 | 약 200년 전 | 500만원 | |||
진동만 | 의도인 허백련(許白鍊)의 <노안도(蘆安圖)>[42] | 1960년 | 150만원 | |||
김영복 | 국조시산(國朝詩刪)[43] | 약 200년~250년 전 | 500만원 | |||
1054 | 6월 26일 | 경기도 의왕시 | 이상문 | 순백자 제사용 주병 | 약 150년 전 | 70만원 |
김영복 | 윤제술(尹濟述)의 글씨[44][45] | 100만원[46] | ||||
1055 | 7월 3일 | 대구광역시 남구(2부) | 이상문 | 분청귀얄문항아리[47] | 약 500년 전 | 70만원 |
양의숙 | 호패[48] | 약 25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청전 이상범의 <풍경화> | 1940년대 전후 | 700만원 | |||
김영복 | 설송(雪松) 최규상(崔圭祥)의 <10폭 병풍>[49][50] | 1940년대 전후 | 500만원 | |||
1056 | 7월 10일 | 서울특별시 금천구 | 이상문 | 옹기 연적 | 약 100년 전 | 5만원 |
양의숙 | 우각 빗치게[51], 어피 안경집[52] | 년대 | 65만원[53] | |||
진동만 | 남농 허건의 <추경산수화(秋景山水畵)> | 1960년대 | 300만원 | |||
김영복 | 동리 김시종의 글씨 | 1973년 | 100만원 | |||
1057 | 7월 17일 | 대전광역시 대덕구 | 이상문 | 청화백자 용준(용항아리 약 170년)[54][55] 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56][57][58] | 약 170년[59] 약 200년 전[60] | 400만원[61] |
양의숙 | 호패술 2점(무관:짙은 색+문관:밝은 색)[62][63][64] | 약 150 ~ 200년 | 100만원 | |||
진동만 | 미산(米産) 허형(許瀅)의 하경산수화[65][66] | 년대 | 30만원 | |||
1058 | 7월 24일 | 부산광역시 동래구 1편 | 이상문 | 분청자 마상배[67] | 약 600년 전 | 200만원 |
양의숙 | 풀무(궤풀무)[68] | 약 50년 ~ 60년 전 | 150만원 | |||
김영복 | 위창 오세창(吳世昌)의 글씨[69] | 150만원 | ||||
진동만 | 동방삭도(東方朔圖)[70] | 35만원 | ||||
1059 | 7월 31일 | 전라북도 김제시 | 이상문 | 청자 퇴화문 유병[71][72][73] | 12세기 | 300만원 |
진동만 | 기로세련계도 모작[74][75] | 100만원 | ||||
김영복 | 황익한의 교지[76] | 1832년 | 200만원 | |||
1060 | 8월 7일 | 대구광역시교육청 1편 | 이상문 |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 청화백자산수죽무늬사각연적[77][78][79][80][81] | 450년 ~ 500년[82] | 0원(위조품) |
양의숙 | 문서함[83][84][85][86][87][88][89] | 약 180~200년 전 | 180만원 | |||
진동만 | 책가도(柵袈圖)[90][91][92][93][94][95] | 250만원 | ||||
김영복 | 신정심상소학 2권[96][97][98][99][100][101][102][103] | 1986년 | 500만원 | |||
1061 | 8월 14일 | 부산광역시 동래구 2편 | 이상문 | 청자주전자형 연적[104][105][106] | 900년 전 | 500만원 |
양의숙 | 경상도 반닫이[107][108][109][110] | 약 200년 전 | 200만원 | |||
김영복 | 무과 중시 교지[111][112][113][114][115][116] | 1886년 (광서 12년) | 200만원 | |||
진동만 |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의 풍속화[117][118][119][120][121][122] | 0원(위작) | ||||
1062 | 8월 21일 | 충청북도 괴산군 | 양의숙 | 찬합 | 약 100년 전 | 150만원 |
진동만 | 미산 허형의 10폭 묵화[123][124][125][126][127][128][129] | 300만원 | ||||
김영복 | 김노양의 교지[130][131][132][133][134] | 1859년 | 200만원 | |||
1063 | 8월 28일 | 충청남도 서천군[135] | 이상문 | 청화백자 칠보문필세연적 | 년대 | 800만원 |
양의숙 | 전통 혼례품 일습 | 년대 | 200만원 | |||
김영복 | 설송 최규상의 10폭 전서 병풍 | 년대 | 100만원 | |||
1064 | 9월 4일 | 광주광역시 서구[136] | 이상문 | 분청 인화문 발[137] | 15세기 말 ~ 16세기 초 | 250만원 |
양의숙 | 방짜양푼과 방짜요강 | 약 20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화조도 10폭 병풍 | 1937년 | 300만원 | |||
1067 | 9월 25일 | 경상남도 함안군[138][139] | 이상문 | 청화백자운학죽문주병[140][141][142][143][144][145][146] | 약 180년 전[147] | 1,000만원 |
양의숙 | 나주반(羅州盤)[148][149][150][151][152][153][154][155][156][157][158][159][160] | 조선 시대 | 400만원 | |||
진동만 |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의 산수화(山水畵)[161][162][163][164][165][166][167][168][169] | 1927년 3월 | 150만원 | |||
김상환[170] | 예조입안(禮曹立案)[171][172][173][174][175][176][177] | 1882년 | 200만원 | |||
1068 | 10월 2일 | 대구광역시 교육청(2편)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69 | 10월 16일 | 경기도 가평군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0 | 10월 23일 | 전라남도 화순군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1 | 10월 30일 | 서울특별시 마포구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2 | 11월 6일 | 서울특별시 송파구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3 | 11월 13일 | 부산광역시 금정구(1편)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4 | 11월 27일 | 경상북도 안동시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5 | 12월 4일 | 대구광역시 중구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6 | 12월 11일 | 전라남도 곡성군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7 | 12월 18일 | 부산광역시 금정구(2편)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2. 2017년
회차 | 방영일 | 감정 의뢰 지역 | 감정위원 | 감정품 | 연대 | 최종감정가 |
1079 | 1월 8일 | 충청북도 영동군 | 이상문 | 청자흑백상감유문주병[178] | 14세기 | 500만원 |
진동만 |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화 위작[179] | 연대 미상 | 0원 | |||
양의숙 | 말과 부손 | 연대 미상 | 50만원 | |||
1080 | 1월 15일 | 인천광역시 서구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1 | 1월 22일 | 경상남도 산청군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3 | 2월 5일 | 경기도 양주시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3 | 2월 12일 | 전라북도 임실군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4 | 2월 19일 | 경상남도 통영시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5 | 2월 26일 | 대구광역시 달서구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6 | 3월 5일 | 전라남도 장흥군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7 | 3월 12일 | 경상북도 경주시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8 | 3월 19일 | 서울특별시 노원구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9 | 3월 26일 | 서울특별시 구로구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0 | 4월 2일 | 전라남도 담양군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1 | 4월 9일 | 경기도 의정부시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3 | 4월 23일 | 강원도 강릉시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4 | 4월 30일 | 부산광역시 영도구(1편)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1] 주둥이 부분이 깨져 다시 붙임[2] 느티나무로 제작, 서랍에는 장서 문서 보관[3] 서랍과 장식[4] 반닫이 몸통[5] 일제강점기 말 ~ 해방 직후 작품[6] 1880년~1930년대 근대 문인화가[7] 유형문화재 제33호 홍지문(弘知門)의 다른 이름.[8] 잔받침 100만원 + 잔 50만원[9] 신윤복의 도장도 없고, 크기나 구도가 진품과 다르다.[10] 방씨 집안의 교지[11] 북한에서 쓰던 실책[12] 한 권에 20만원씩 총 3권[13] 조선 초기 상강기법이 쇠퇴해가던 시기에 만든 청자[14] 손잡이의 박쥐 문양은 복을 상징[15] 청전 이상범의 40대 때 작품으로, 10년 전에 방송되어 감정가 50만원정도 였다고 한다.[16] 친정어머니가 주신 문서. 아버지의 대변 맛을 보며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시묘(侍墓)룰 극진히 했다.[17] 의제 허백련(1891~1977) - 근대 한국화가로 전형적 남종화(南宗畵) 풍을 그렸던 상징적 인물[18] 남편이 수집한 의뢰품이다.[19] 경주시에서 온 의뢰품으로, 증조부가 남긴 책이다.[20] 해당 작가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기에 감정가 하락[21] 바깥쪽은 흑백상감+역상감 기법을 사용[22] 규당 한유동(1913~1992) - 인물화와 화조화에 뛰어난 근현대 화가[23] 방짜 대야(60만원), 주물 양푼(20만원)[24] 석연 이공우(1805 ~ ?)[25] 40년 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자기[26] 이가 빠져서 감정가 하락[27] 설주 송운회(1874 ~ 1935) - 전라남도 보성군 태생으로 중국의 서체와 동국전체를 섭렵해 설주체라는 독특한 필체를 만들었다.[28] 최북(생년 미상) - 조선 후기의 화가 산수화와 메추라기를 특히 잘 그렸음. 1747년~1947년 통신사 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기록이 있다.[29] 최북(崔北)사라는 글씨도 위작. 1985년에 80만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하는데, 최북의 진품은 약 8,000만원 ~ 1억원의 가치라 한다.[30] 잔 : 100만원, 잔대 : 50만원[31] 창암 이삼만(1770~1947) - 조선 후기의 서예가.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서체를 창암체라 함.[32] 취당 장덕(1907~1976) - 화조도와 매화를 잘 그렸음.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경력이 있다.[33] 이광사(1705~1777)[34] 춘초 지성채(1899~1980)[35] 청채 김태석(1985~미상)[36] 중광 스님(1934~2002)[37] 과거 시험 때 참고하던 책[38] 해무리굽(그릇을 굽을 깍아내 모양이 햇무리 같은 굽) 청자로 고흥과 강진에서 주로 생산되어 남은 수가 많은 편이라 한다.[39] 도자기(접시) 1점당 25만원[40] 25년 지인이 산 그림으로, 을해년(乙亥年)인 1935년에 완도의 실제 경치를 그린 그림. 지역을 한정해 그린 병풍은 아주 귀한 편이라 한다.[41] 김평묵(1819~1891) – 조선 말기의 학자. 이향로의 제자로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을 후원함. 돌아가신 후 1906년 서울에서 제자들이 문집을 발행했고, 본 별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제자들도 중암 선생의 글과 출판비를 모아 1912년 발행한 것이다.[42] 노안도(蘆安圖/蘆雁圖) - 갈대와 기러기가 그려져 있는데, 갈대 노(蘆)자와 기러기 안(雁)자와 소리가 노안(老安)과 같아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그림[43] 국조시산 - 허균(許均)이 엮은 시선집으로 정도전부터 퇴계 이황, 송강 정철, 석주 권필까지 조선 초 중기에 활동한 234명이 시 877수가 실려 있음. 의뢰품은 필사본으로 총 9권 중 6권이 들어있음[44] 윤제술(1904~1986) - 교육자이자 정치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였으며, 정계에서 은퇴한 뒤 서예로 말년을 보냄. 퇴계 이황의 시 퇴계(退溪)를 적었다.[45] 신퇴안우분(身退安愚分) - 벼슬에서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데, 계상시정거(溪上始定居) - 시냇가 위에 비로소 자기 거처를 정하고, 임류일유성(臨流日有省) - 흐르는 물을 굽어보며 날마다 반성하네[46] 좋은 글씨이지만 남은 작품수가 많아 감정가 하락[47] 청자 위에 백토로 분을 발라 구워낸 '분청자기'로, 생활도자기로 대량 생산한 물건이다.[48] 신분과 품계에 따라 재질이 다른데, 의뢰품은 '소뼈'로 제작된 호패로 바깥 부분은 비단으로 제작되었다.참고로 신분이 낮은 사람은 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49] 설송 최규상(1891~1956) - 전서(箭書)와 예서(豫書), 전각에 능했던 근대 서예가.[50] 중국의 시 중에서 좋은 구절만 골라 쓴 병풍이다. 愛看春山疑讀畵(애간춘산의독화) - 봄 산을 사랑스럽게 보니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하고 / 靜淵古默似聽香(정연고묵사청향) 고요히 먹을 갈다 보면 마치 향기를 듣는 것 같네.[51] 빛치개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머리에 가르마를 타는 데 사용한 물건으로 우각(소뿔)으로 만든 빗치개는 고급품임[52] 상어 껍질을 붙여서 만든 안경집으로, 어피(魚皮)는 고급 물건에 주로 사용하며, 작은 크기로 보아 여성용 돋보기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됨.[53] 빛치개 35만원 + 안경집 30만원으로 최종감정가 총 65만원 책정[54] 용준(龍樽) : 용문의 항아리[55] 술을 담기엔 크기가 작은 편[56] 아말감으로 입술 부분을 수리[57] 꿀이나 약을 넣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됨.[58] 모란문 항아리는 최종 감정가가 300만원인데 흠이 나서 최종감정가 150만원 평가함[59] 용항아리[60] 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61] 250만원(청화백자 용준) + 150만원(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 도자기 2점 최종감정가 책정[62] 호패술은 명주를 꼬아서 만든 것으로 호패를 장식하는데 사용됨. 높은 신분의 인물이 주로 사용[63] 무관의 호패술은 짙은 색이고 문관의 호패술은 밝은색임[64] 호패는 호대에 만든 것[65] 미산(米産) 허형(許瀅) / 1862년 ~ 1938년 : 19세기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남종문인화의 대가[66] 남아있는 작품 수가 많은 편임. 화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30만원 평가함[67] 계속 들고 마셔야 하는 찻잔. 약 600년 전 분청사기 보안이 하나로 없다. 청자 빛깔이 흐린 편. 마상배(馬上杯)는 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으로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주로 사용했다.[68] 풀무(궤풀무) : 화덕에 공기를 불어 불 온도를 조절하는 기구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흡입구를 통하여 공기가 들어가고 밀면 압축된 공기가 풍로를 따라 화덕으로 들어감[69] 심정창해월(心靜創海月) - 마음이 고요해야만 푸른 바다의 달을 볼 수 있다.[70] 동방삭(東方朔) - 중국 한(漢)나라의 저명한 문학가로 한무제(漢武帝)의 총애를 받은 관리로 서양모의 복숭아를 훔쳐먹고 삼천갑자(18만 년)를 살았따는 설화 속 인물[71] 분을 갤 대 필요한 물이나 기름을 담아두던 병으로 호리병박 모양, 잎이 붙어있는 연꽃 문양이 있음[72] 퇴화문(堆花文)은 도자기 몸체에 물감을 두껍게 올려서 표한한 문양 무냥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특징[73] 완전한 경우 1,000만원 이상이나 입 부분이 보수되어 감정가 하락[74] 기로소(耆老所) - 조선 시대 70세기 넘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문관들으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75]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稽圖) - 1804년 계성 만월대에서 열린 기로연(耆老宴)을 그린 그림으로 원본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의뢰품은 후대에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며, 김홍도의 서명까지 똑같이 베꼇다면 위작(僞作)이지만 의로품은 서명 없이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모작(模作)이다.[76] 정부에서 감사의 의미로 내린 교지. 1732년(영조 8년)에 재해로 나라가 어려워지자 태인아 사는 황익한(黃益漢)이 돈 18냥을 기부하여 그에 대한 감사의미로 종2품(從二品)의 벼슬을 내린다는 내용이다.[77] 연적 구멍 2개 - 1, 원하는 만큼 물이 나오도록 공기를 조절하는 구멍 2, 물이 나오는 구멍[78] 청화백자산수죽무늬사각연적이 진품미 아닌 이유 - 공기조저 구멍에 손때가 전혀 없음[79]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은 후에 문양을 파서 철화를 넣었음[80] 진품은 유약이 번져있지 않음[81] 그림을 나중에 인위적으로 넣어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82]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83] 은행나무로 만든 함[84] 장식은 놋쇠[85] 꽃 모양 거멀보다 일자모양 거멀이 더 오래된 장식[86] 얹혀 있던 선반은 사라진 상태[87] 중요한 문서나 지필묵 등을 보관했던 문서함[88] 원형 그래도 보존[89] 120만원에 구입[90] 책가도(柵袈圖) - 민화의 하나로 책, 부채, 향로, 도자기 등을 그린 그림[91] 중국의 책을 그렸음[92] 정조 이후 -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아서 많이 그렸음[93] 원근법이 뒤바뀐 역원근법의 그림[94] 석류의 의미 - 자손 번창[95] 원래 8폭 이상의 병풍에 있던 그림[96] 우동기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육감 의뢰[97] 1896년 근대교육이 시작되면서 발간한 교과서 "심상소학(尋常小學)으로 알고 있습니다."[98]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 - 1896년 초등학교용 국어과 교과서로 발행한 책으로 총 3권으로 구성[99] 국한문이 혼용된 책[100] 국민소학독본에 이어 근대 교과서 중 2번째로 나온 책으로 자연, 사회, 역사, 일상생활 등 -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101] 한글이 제일 처음 등장[102] 그림과 내용이 함께 있어 교육 계묭에 많은 영향을 미침[103] 3권이 모두 있지 않아 감정가 하락[104] 상감기법이 나오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용도는 연적[105] 주전자 형태이므로 "청자 주전자형 연적"[106] 뚜껑이 있었다면 평가 가격의 2배![107] 문이 반쪽만 열린다 해서 반닫이[108] 책이나 옷을 보관[109] 앞판 가운데 달린 들쇠가 경상도반닫이의 특징[110] 경첩은 진주반당이의 특징을 보임[111] 백패(白牌) - 소과(小科) 합격 교지, 홍패(紅牌) - 대과(大科) 합격 교지[112] 김영옥(金榮玉) 무과중시[113] 중시(重試)- 조선 시대 당하관(堂下官)들을 대상으로 10년에 한 번씩 보던 과거시험 함격하면 더 높은 벼슬로 진급됨[114] 무과(武科) 중시 교지는 흔치 않아~[115] 20, 30대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던 중 40, 50대에 다시 중시에 합격[116] 문과(文科) 교지였으면 감정가 20~30만원[117] 남편이 중국 출장 중에 구입한 그림[118]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라 샀대요[119]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년 ~ 1897년) - 조선 말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원 화가로 불림[120] 천과 종이 모두 인위적[121] 소 그림 역시 이 당시에 물소가 아니라 한국소를 그렸음[122] 어디서든 좋은 그림을 제값을 줘야 살 수 있어 싸다고 구입하는 것은 금물[123] 구한말을 거쳐 활동한 삼대(三代) 화가로 아버지가 소치,아들이 남농으로 알고 있습니다[124] 사군자를 곁들인 수묵화를 많이 그림[125] 나이 들어서 그려 완숙미가 느껴짐[126] 연, 오동나무, 소나무 등을 더 그려 10폭을 완성[127] 아버지 소치 허련과 아들 남농 허건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한 미산 허형[128] 3대가 남종화를 현대화로 이어주는 역할을 함[129] 산수화, 사군자 등 남긴 작품이 많은 편[130] 철종 때 통정대부 김노양의 벼슬을 숭정대부로 올려준 교지?[131] 통정대부(通政大夫) - 조선 신대 문신 정3품 당상관(堂山官)의 품계명[132] 숭정대부(崇政大夫) - 조선 시대 종1품 하계 문신의 품계명[133] 함풍(咸豊) 9년 - 1869년[134] 100세가 되어 특별히 숭정대부로 벼슬을 올려준다는 교지 조선 시대에 보기 어려운 특별한 교지[135] 2016년 8월 9일 서천군 문예의전당 소강당에서 촬영[136]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촬영[137]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138]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139] 출장감정 - 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 3명, 할머니 3명)이 감정 의뢰했다.[140]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141]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142]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던 도자기[143] 학, 대나무, 구름 모두 십장생[144]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145]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146] 보관상태가 좋은 편[147] 약 180년 정도 된 작품[148]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149]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150]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151]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152]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153]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154]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 - 죽절) 모양으로 깎음[155]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156]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157]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158]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159]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160]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161]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162]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163]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164]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165]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166]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167]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168]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169]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170] 새 감정위원의 글씨, 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171]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172]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173]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 박동로, 박시로 3형제[174]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175]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176]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177]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 있음[178]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179]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
서구청에서 촬영[137]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138]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139] 출장감정 - 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 3명, 할머니 3명)이 감정 의뢰했다.[140]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141]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142]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던 도자기[143] 학, 대나무, 구름 모두 십장생[144]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145]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146] 보관상태가 좋은 편[147] 약 180년 정도 된 작품[148]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149]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150]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151]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152]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153]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154]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 - 죽절) 모양으로 깎음[155]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156]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157]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158]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159]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160]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161]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162]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163]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164]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165]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166]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167]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168]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169]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170] 새 감정위원의 글씨, 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171]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172]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173]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 박동로, 박시로 3형제[174]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175]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176]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177]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 있음[178]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179]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