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0:13:17

HMHS 브리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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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opBanner-WSL-500.jpg
화이트 스타 라인의 올림픽급 여객선
RMS 올림픽 RMS 타이타닉 HMHS 브리타닉
파일:1200px-HMHS_Britannic.jpg
HMHS[1] Britannic
1. 개요2. 제원3. 함생4. 특징5. 침몰6. 기타

1. 개요

1914년 2월 26일 진수되어 1916년 11월 21일 침몰화이트 스타 라인의 올림픽급 여객선 3번선으로 대서양 정기 여객선으로 건조되었으나 병원선으로 영국 해군에 징발되었다.

2. 제원

파일:The_White_Star_Atlantic_Mail_Steamer_Britannic_(deck_plans).jpg
선적: 영국
모항: 리버풀(Liverpool)
선급: 올림픽급 여객선(Olympic class)
소유주: 화이트 스타 해운(White Star Line) -> 영국 해군(Royal Navy)
선박 제원#
  • 진수: 1914년 2월 26일
  • 완공: 1915년 12월 12일
  • 처녀 항해: 1915년 12월 23일
  • 침몰: 1916년 11월 21일
  • 전장: 269m
  • 넓이: 28.7m
  • 흘수: 10.9m
  • 최고 속도: 23kn
  • 배수량: 53,200tn
  • 콜사인: MUC
  • 용도: 여객선(1914년 2월 26일 ~ 1915년 12월 23일), 병원선(1915년 12월 23일~1916년 11월 21일)

3. 함생

파일:Britannic_under_construction.jpg
건조중인 RMS 브리타닉
대서양 횡단을 기반으로 할랜드&울프 사에서 건조된 올림픽급 여객선의 1번선 올림픽, 2번선 타이타닉의 자매선이다.
파일:Britannic_postcard.jpg
여객선 모습의 브리타닉 상상화가 있는 우편엽서[2]

올림픽과 타이타닉이 각각 올림푸스족과 타이탄족의 이름을 땄듯이 3번함도 그리스 신화에서 따 온 기간트족의 자이갠틱(Gigantic)이라고 이름지어질 거란 소문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덤으로 독일을 꼽주기 위해 브리타닉(Britannic)이라고 지어졌다.
파일:britannic_marshall_a_grecore.jpg
병원선으로 개수된 이후의 브리타닉 그림
자매선인 올림픽과 타이타닉보다 훨씬 늦게 진수되었는데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로 인해 올림픽급 선박들에게 치명적인 결함[3]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건조 중이던 브리타닉의 수밀격벽 및 다른 부분의 설계를 바꾸어야 했기에 진수는 더 늦어졌고 1914년 2월 26일 진수 후 화이트 스타 해운에 인도되어 어찌저찌 여객선으로 활용되나...싶었으나 약 5개월 이틀 뒤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병원선으로 징발되어 개조되었다.[4] 이후 부상자들을 태우며 안정된 항해를 하였으나 독일 제국군이 깔아 놓은 기뢰를 건드려 에게 해에서 침몰하였다. 타이타닉 침몰 후 선박 안전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이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고 브리타닉에 선박의 정원을 초과하는 인원을 태울 수 있도록 대빗이라는 크레인을 설치해서 구명정 탑재량을 한계치까지 늘렸는데 이는 브리타닉이 침몰할 때 사망자 수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4. 특징

파일:2821ed661c76ae45e31401a935131720.jpg
브리타닉호의 간트리 대빗

앞서 말했다시피 선체 후방과 상부에 간트리 대빗(Gantry Davit)이라는 크레인으로 구명정 수를 늘렸는데 사진에서 보이듯 커다란 크레인에 구명정들을 줄줄이 매달아 놓은 모양이었다. 미관상으로는 배가 더럽고 난잡하게 보이는 문제가 있었으나 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더라도 기다란 대빗을 늘어뜨려서 양쪽 모두 구명정을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실제로 브리타닉이 기울어지며 침몰할 때 이 간트리 대빗 덕분에 신속한 탈출이 이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타이타닉 침몰 후에 올림픽호와 브리타닉의 격벽이 보완되었다. 15개의 격벽 중 6개의 격벽을 B데크까지 올렸으며 엔진과 보일러실은 2중 선각구조(Double-Hull)로 제작되었다. 이로 하여금 설계상 선수를 기점으로 6구획이 침수되어도 배의 부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배의 구조가 바뀌면서 브리타닉은 타이타닉보다 더 큰 배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배는 아니었다. 브리타닉이 진수됐을 때 가장 큰 여객선이라는 타이틀은 독일의 SS 임페라토어[5]가 가져갔다.

5. 침몰

첫 폭발로부터 침몰까지 브리타닉 침몰 사건을 실시간으로 자세하게 재현한 영상[6]
1916년 11월 21일 아침 에게해를 항해하던 브리타닉 호의 우현 선수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난다. 침몰 당시에는 잠수함어뢰 공격이라 추정되었으나, 훗날 독일 제국 해군 잠수함 U-73이 깔아놓은 기뢰를 건드렸던 것이라고 판명되었다.

폭발로 인해 우현(Starboard) 2구역과 3구역 사이에 구멍이 생기고 폭발의 충격으로 일부 방수격벽에 손상이 가 6구획이 침수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설계상 브리타닉은 선수를 기점으로 6구획이 침수되어도 부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선수가 가라앉으며 간호사들이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물이 들어와 다른 구획이 침수되었고 이는 침몰로 이어졌다. 찰스 알프레드 바틀렛(Charles Alfred Bartlett) 선장은 가까운 섬으로 배를 전속력으로 몰아 좌초시켜 침몰을 막으려고 했으나 이미 배가 심하게 기울어져 가망이 없었다. 이후 급히 퇴선하느라 구명정들이 다소 무질서하게 내려지긴 했어도 타이타닉 참사의 교훈으로 승선원 정원보다 훨씬 많은 이를 태울 수 있도록 넉넉히 탑재된 구명정의 숫자 덕분에 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없었다. 단, 구명정 하나가 전속력 추진 중인 배의 왼쪽 스크류에 갈려서 대략 30명이 사망했다.[7] 바틀렛 선장도 침몰하는 배에서 침착히 걸어내리는(!) 대담함을 보이고 근처의 구명정으로 헤엄쳐가 구조 작업을 전두지휘했다고 한다.

배는 기울어진 채로 버티다가 유입된 해수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해 뱃머리 부분이 뒷쪽을 끌어당기는 현상이 일어나 매우 빠르게 가라앉으며 약 55분만에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물에 빠진 많은 사람들은 타이타닉이 침몰한 북대서양과는 달리 수온이 따뜻한 지중해여서 스크류에 갈려 죽은 30명을 제외하고 전부 사고 해역 인근을 지나던 영국 해군 구축함 HMS 스커지 함에 의해 모두 구조되었다.
파일:Uㄹ홀호1.jpg
브리타닉의 잔해

해저 146m의 그다지 깊지 않은 연안에 침몰해서인지 타이타닉보다는 멀쩡하게 형상이 남아 있어 지금도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침몰선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

하지만 동남아 여행길에서 체험 다이빙하듯 처음 접하는 사람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다이빙포인트는 아니다. 비록 약 4,000m 수심의 대서양에 비하면 접시물 수준의 수심이지만 100미터가 넘는 수심에서 하는 다이빙은 테크니컬다이빙의 영역이고 그 테크니컬 다이빙에서도 트라이믹스, 어드밴스드 침몰선 다이버 등과 같은 상급 교육과정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깊이다. 링크의 영상은 재호흡기라는[8]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간 영상인데 이를 다루기 위한 교육과정은 테크니컬 다이빙 교육과정에서도 끝판왕에 속한다. 대한민국 해군SSU의 40m 잠수 훈련만 해도 이걸 못 버티고 퇴교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절대 만만한 깊이가 아니다. 자세한 건 스쿠버다이빙 항목의 테크니컬다이빙, 스쿠버다이빙/장비 문단을 참조할 것. 만약 다이빙으로 난파선 잔해를 직접 구경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사이판이나 으로 가는 편이 훨씬 낫다.

해군 예비역 장교였던 바틀렛 선장은 배를 잃은 뒤 해군에 소집되어 대령 계급으로 조지 5세전속부관 등을 맡다가 전후 1931년까지 다시 상선탔다. 은퇴 후 워털루에 정착해 1945년 2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보지 못하고 76살에 사망했다.

6. 기타

  • 이 배의 침몰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 브리타닉이 있다. 다만 스토리의 전개가 실제 침몰과는 상당히 다르다.
  • 브리타닉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침몰한 가장 큰 상선이다. 기뢰에 의한 격침 전과는 그 기뢰를 부설한 함의 전과로 인정되기 때문에, 졸지에 U-73은 1차 대전에서 가장 큰 선박을 격침시킨 잠수함이 되었다.

[1] His/Her Majesty's Hospital Ship[2] 하지만 브리타닉은 결국 이 모습으로 운항하지는 못했다.[3] 방수격벽을 끝까지 올리지 않은 점, 구명정이 부족했던 점이다.[4] 이 때 철거된 내장재들은 경매 등으로 팔려나가 아직까지도 일부를 주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5] 52,117톤급 여객선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침몰한 큐나드 라인RMS 루시타니아에 대한 보상으로 큐나드 라인으로 넘어가 RMS 베렝가리아(Berengaria)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1939년에 스크랩되었다. 비슷하게 임페라토어의 자매선인 SS 비스마르크라는 여객선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침몰한 브리타닉에 대한 보상으로 화이트 스타로 넘어가 RMS 마제스틱(Majestic)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1939년 화재로 침몰하였고 1943년 건저올려 스크랩 되었다. 임페라토어와 비스마르크의 자매선인 SS 베이터랜드라는 여객선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SS 레비아탄(Leviathan)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1938년에 스크랩되었다. 참고로 임페라토어와 마제스틱, 베이터랜드는 '임페라토어급 여객선' 이라고 부른다.[6] 언리얼 엔진 4가 활용되었다고 한다. 브리타닉 소재의 VR게임 홍보의 일환으로 제작됐다고 한다.[7] 위 영상의 22분 25초쯤 나온다.[8] 참고로 저건 지구 반대편의 일본군이 인간 기뢰로 자살특공 하려고(자돌폭뢰와 원리가 같다.) 만들었다가 결함으로 피를 본 장비이다.(재호흡기의 정화통에는 소석회가 쓰이는데 얘랑 물이 만나면 소석회의 특성상 폐가 강염기에 손상이 간다. 이리 되면 당연히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