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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9e05> 이름 | 개리 화이트 Gary White | |
본명 | 게리 존 화이트 Gary John White | |
출생 | 1974년 7월 25일 ([age(1974-07-25)]세) | |
잉글랜드 햄프셔주 사우샘프턴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 |
소속 | <colbgcolor=#e39e05><colcolor=#000000> 유스 | 사우스햄튼 FC (1986~1990) |
선수 | 보그너 레지스 타운 FC (1990~1994) 프리맨틀 스피릿 SC (1994~1996) | |
감독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대표팀 (1998~1999) 바하마 대표팀 (2004~2006) 괌 대표팀 (2012~2016) 상하이 선신 (2016) 대만 대표팀 (2017~2018) 홍콩 대표팀 (2018) 도쿄 베르디 (2019) 난퉁 즈윈 (2019~2020) 쑤저우 둥우 (2020~2022) 대만 대표팀 (2023~ ) | |
행정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대표팀 (1998~1999 / 테크니컬 디렉터) 바하마 대표팀 (1999~2009 / 테크니컬 디렉터) 시애틀 사운더스 FC (2009~2012 / 테크니컬 디렉터) | |
국가대표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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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인.2. 선수 경력
유소년 시절 사우스햄튼 FC의 기대주였으나 성장하지 못하고 하부 리그에서도 주전을 잡지못하며 결국 호주로 이적하여 거기서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였다.3. 지도자 경력
1998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감독 경력을 시작하였다. 당시 25세의 나이에 월드컵 예선에서 팀을 이끌며 화제가 되었고 1999년에는 바하마 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대표팀은 후임으로 다른 젊은 감독을 선임하였다.바하마 대표팀을 이끌고 피파랭킹만 올린 것이 아니라 테크니컬 디렉터로 바하마의 코치 시스템등을 정비하였고 이를 눈여겨본 시애틀 사운더스 FC가 그를 영입하여 워싱턴주의 유소년 선수 육성의 현대화와 엘리트화, 코칭 계획등을 수립하였다.
2012년에는 괌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그는 2015년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하였다. 무려 세계 최하위권인 괌이 투르크메니스탄과 인도를 이기고 오만을 상대로 비기는 이변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후 전패하긴했지만 이란을 제외하면 전부 1점차 패배였고 최종적으로 조 4위[1]을 기록했기에 매우 선전한 결과이다. 이 성적 덕분에 태평양의 작은 속령 괌이 FIFA 랭킹 137위까지 뛰었고, 이는 당연히 괌 대표팀 역사상 가장 높은 FIFA 랭킹으로 기록에 남았다.
괌 대표팀 성적으로 아시아에 이름을 알린 그는 이후 2016년 상하이 선신 감독직을 맡으며 처음 프로팀 감독직을 맡았다. 강등 위기였던 팀을 중도에 맡아 10위권으로 순위 상승을 시키며 성공적으로 잔류 미션을 완수했다. 특히 이 시즌 리그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하며 공격 축구가 빛을 발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시즌 종료 직후 결별했다.
2017년 9월부터 대만 대표팀을 맡아 다시 일선에 돌아왔다. 여기서도 괌에서 냈던 놀라운 성적을 초반부터 내는데, 10월 A매치 주간 몽골과 바레인에게 2연승을 거둔 것이다. 비슷한 체급인 몽골이야 그렇다고 쳐도 한 수 위의 아시아 복병 바레인에게 2019 AFC 아시안컵 예선 경기를 2-1 승리로 장식하면서 일약 대만 축구의 구세주로 등극한다. 약 1년 동안 대만의 FIFA 랭킹도 121위로 수직상승하며 야구 일색이던 대만에 다시금 축구 부활의 씨앗을 뿌린 감독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홍콩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겨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예선을 준비했다. 북한, 대만, 몽골을 연파하면서 2010년 이후 9년 만에 홍콩의 동아시안컵 본선 진출이라는 또 하나의 성과를 기록했다.
아시아에서 주가가 계속 높아지자 석 달 만에 홍콩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 2019년 일본 J2리그의 도쿄 베르디 감독직에 취임했다. 그러나 베르디에서 리그 13위로 승격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기록하자 그 해 여름 중도 경질되었다.
이후 중국 갑급 리그 난퉁 즈윈과 쑤저우 둥우, 말레이시아의 크다 다룰 아만 FC를 거쳤고, 2023년부터 다시 대만 대표팀 감독으로 컴백했다. 돌아오자마자 맞이한 6월 A매치 평가전에서 태국과 2-2, 필리핀과 3-2라는 전적으로 다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후 2026 FIFA 월드컵 1차예선에서 동티모르를 가볍게 제압하고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예선에선 최하위를 기록하며 3차예선 진출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