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12 10:30:29

그루먼 F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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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기
<colbgcolor=#8ec7d0,#2e6771> 전투기 P-61 블랙위도우F-89 스콜피온
F4F 와일드캣F6F 헬캣F7F 타이거캣F8F 베어캣
F9F 팬서F9F 쿠거F-11 타이거F-5 타이거 IIF-14 톰캣YF-17 코브라FA-18 호넷F-20 타이거샤크YF-23 블랙위도우 II
공격기 A-6 인트루더/EA-6 프라울러YA-9A-10
폭격기 B-35 플라잉 윙B-49 플라잉 윙B-2 스피릿B-21 레이더
수송 C-2 그레이하운드
조기경보통제기 E-2 호크아이E-8 조인트 스타스
대잠초계기 S-2 트랙커
무인기 RQ-4 글로벌 호크RQ-180X-47
훈련기 T-38 탤론
그루먼의 1945년 이전 모델
단발기 그루먼 FF그루먼 F3F
쌍발기 XF5F 스카이로켓 ‧ X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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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먼 F3F(Grumman F3F)

1. 개요2. 제원3. 개발 배경4. 개발5. 시험비행 사고6. 기체 구조7. 일선 배치8. 파생형


1. 개요

F3F라는 미국 해군 항공국에서 부여한 정식 명칭보다는 "날으는 술통(Flying Barrel)"이라는 별명으로 흔하게 불린 이 전투기는 당시 해군기 최고의 명문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그루먼(Grumman) 사가 개발했는데, 미 해군에서 운용된 마지막 복엽 전투기였다.

2. 제원

설계 : 를로이 그루먼(Leroy Grumman : 1895~1982)
초도비행 : 1935년 3월 20일
탑승인원 : 1명
전장 : 7.06 m / 전폭 : 9.76 m / 전고 : 2.85 m / 익면적 : 24.15 m²
중량 : 1,490 kg~2,175 kg
동력 : Wright R-1820-22 공랭식 9기통 엔진 (출력 950 hp)
최대속도 : 425 km/h
순항속도 : 240 km
항속거리 : 1,577 km
상승한도 : 10,120 m
상승률 : 840 m/min.
무장 : 7.62mm M1919 브라우닝 1정(500발) /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1정(200발) / 116 lb 폭탄 2발
생산수 : 147대
운용 시기 : 1936년~1943년

3. 개발 배경


1930년에 고작 18명의 직원으로 비행기 공방을 설립한 를로이 그루먼1932년에 인입식 착륙장치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고, 이 신기술은 마침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당시의 비행기들, 특히 성능이 중요한 군용기에서는 꼭 필요한 발명이었던 탓에 순식간에 돈방석에 앉게 된다. 물론, 변화를 받아들이기 원치 않는 부류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어서 일부의 조종사들은 "손으로 핸들을 돌려 접고 펴는 바퀴라니, 미친거 아냐?"라거나 "그런 무겁기만 한 쓸데없는 장치가 왜 필요하지?"'라며 한사코 손을 내저었지만, 그 무렵 쳇바퀴를 돌고 있던 엔진과 설계 기술로 비행기가 더 빨라지는 길은 그것 뿐이었다.

그루먼은 이렇게 번 돈에 만족하지 않고 이번에는 종이 클립을 보고 날개를 접고 펴는 폴더블 윙에 관한 특허를 떠올려 스토-윙(Sto-Wing)이란 상표로 등록했다. 그루먼의 발명 전에도 날개를 떼내거나 접고 펴는 장치들은 여럿 고안되어 실험되었지만 하나 같이 실용성이 없거나 내구성이 낮았던 반면, 그가 만든 스토-윙은 마치 새가 날개를 접는 것처럼 완벽했다. 이렇게 그가 만든 두 가지 발명은 특히 함재기에는 신의 한수나 다름없었기에, 아직 30대 중반인 그루먼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해주었다.

4. 개발

미 해군은 그루먼이 특허를 출원하기 1년 전에 처음으로 인입식 랜딩기어를 채용한 그루먼 FF를 먼저 구입했고, 그것을 조금 개량한 그루먼 F2F를 1935년에 차기 함상 전투기로 채택했다. 이 기체들은 성능적으로도 해군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었지만 특허 문제 때문에 다른 회사 - 이를테면 보잉이나 커티스 - 에서 만든 기종은 가격이 더 오르게 되는 문제가 있었고, 의회에서 배정받은 예산을 전부 건함 경쟁에 쏟아붓고 있던 그 무렵의 해군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항공국은 특허로 폴딩 윙과 인입식 랜딩기어가 보호받는 기간 동안은 웬만하면 그루먼제 함재기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루먼이 퍼뜨린 신기술은 곧 항공기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던 탓에 다시 한번 전투기 진화에 불을 붙이게 된다. 해군이 종래에 쓰던 고정식 착륙장치가 달린 함상전투기 보잉 F4B는 300 km/h를 간신히 넘기고 있었지만, 바퀴를 접은 FF-1는 단숨에 10%나 빨라지고 항속거리도 10% 더 길어졌다. 엔진을 보강한 F2F에서는 372 km로 빨라졌지만, 이미 이 정도의 속도로도 일류라고 불릴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F2F는 비행특성이 좋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었던 탓에 해군 항공국은 1934년 10월에 대체 기종에 관한 소요를 제기했다.

5. 시험비행 사고


이 경합에서 먼저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그루먼 G-11(사내 명칭)이 훨씬 유리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루먼이 이끄는 기술진들은 불과 5개월 만인 이듬해 1935년 3월에 프로토타입 1호기 XF3F-1을 완성시켰고 같은 해 3월 20일에는 공장의 테스트 파일럿 지미 콜린스(Jimmy Collins)가 조종하여 첫 비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개발진들은 익면적과 수직미익을 확대시켜 실속 특성을 개선하고 방향 안정성을 높였으며, 연료탱크 용량도 늘려 항속거리를 증가시켜 경합에 참가했다.
당시는 시험비행 스케줄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1호기(BuNo. 9727)는 처녀비행하던 날 이미 3회나 비행시험을 했으며 3일째에는 급강하-회복 테스트를 10회나 수행했다. 이 날, 지미 콜린스가 고도 8,000피트에서 14G로 급기동을 테스트하던 순간 날개가 떨어져 나갔고, 조종석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추락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곧 완성된 2호기는 기체 강도를 보강하고 리 젤벡(Lee Gehlback)에 의해 재차 시험비행을 했지만 5월 9일의 실속 회복 테스트에서 자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저공에서 그대로 추락해 부서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히 조종사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기체는 수리되어 3주 후에는 다시 테스트를 받게 된다. 8월 24일, 비로소 해군 항공국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은 XF3F-1 원형 3호기는 X자를 떼어내고 F3F-1으로 54대를 주문받게 된다. 그루먼은 이제 세 번 연달아 해군에 함상전투기를 납품한 첫 번째 업체가 되었다.

6. 기체 구조

복엽기로 정리된 F3F는 동체 중앙의 양력 중심 위치에 조종석이 자리잡고 있으며, 하단 날개는 동체 아래 스파를 통과해 설치되고 상단 날개는 동체 상단의 캔틸레버와 하단 날개의 버팀대로 지탱되는 세미 파라솔 윙이었다. 안그래도 통통했던 동체는 추락사고 이후 재설계를 거치면서 더 뚱뚱해졌고, 그것이 이 전투기의 첫 인상을 술통처럼 보이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착륙장치는 그루먼이 특허를 낸 것으로 조종석 안에 비치된 핸들을 돌려 접고 펴지는 방식이었는데 F2F의 부품이 상당수 그대로 활용되었다. 초기형의 엔진은 650마력 Wright R-1535-84 공랭식 9기통 엔진이 장비되었으나, 곧 950마력 Wright R-1820-22로 보강된다.

7. 일선 배치

그루먼 F3F의 1차 생산분들은 1936년 1월 29일부터 워싱턴 부근의 애너코스티아 해군항공기지(Naval Air Station Anacostia)에서 시험 운용이 시작되었고, 3월부터는 레인저급 항공모함 USS 레인저에 VF-5B와 USS 사라토가의 VF-6B가 처음 함재기로 배치되기에 이른다. 해병 비행대인 VF-4M이 6대의 전투기를 받아들인 것은 1937년 1월이었다.

배치에 임하면서 그루먼 기술진들은 곧 출력을 950마력으로 파워업시키기 위해 수퍼차저가 달린 Wright R-1820 엔진을 달았고, 이 형식은 F3F-2가 되었다. 직경이 커진 엔진으로 교체하자 카울링도 새로 설계되어야만 했던 탓이 이 개량을 받은 신형은 더욱 더 뚱뚱해져 술통과 닮아지고 있었지만, 속력은 3,658 m(12,000 ft) 고도에서 410 km/h를 낼 정도로 더 빨라졌다. F3F-2는 1937년부터 1938년 사이에 해군과 해병대에 인도되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개발진들은 이 전투기를 NACA의 랭글리 연구소에 있는 풍동터널에 집어넣고 공기역학 데이터를 계속 수집했고, XF3F-3라는 개량형을 내놓게 된다. 직경이 더 커진 프로펠러가 설치되고 조종석에 엔진 매연이 스며드는 증상을 개선한 이 형식을 지켜 본 해군은 27대를 주문했는데, 마침 차세대 단엽 전투기로 개발되고 있던 버팔로(Brewster F2A)와 와일드캣(Grumman F4F Wildcat)의 완성이 늦어질 것을 대비한 보험이었다.

브루스터 사가 F2A-1의 납품을 개시했을 때 해군에서는 여전히 이 복엽 전투기가 쓰이고 있었는데, F3F의 마지막 기체는 1941년 말까지 일선 비행대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전투기로써 말이다 ! 구식이라곤 해도 대당 2만불이 넘는 전투기가 100대가 넘게 남아 있어서 버릴 수가 없었던 미 해군 항공국은 전쟁이 터지자 훈련과 기타 용도로 2선급 기체로 뒤로 뺐는데, 이렇게 남은 117대의 F3F는 1943년 12월에야 전부 퇴역하게 된다.

8. 파생형

XF3F-1:3대만 제작된 원형기
F3F-1:45대가 생산된 초기형으로 650마력 Wright R-1535-84 엔진을 장착.
XF3F-2:엔진을 강화한 개량 실험형으로 1대만 제작되어 1936년 7월 첫 비행.
F3F-2:엔진을 950마력 Wright R-1820-22으로 강화한 생산형
XF3F-3:F3F-2 중 1대의 프로펠러와 엔진 카울링을 교체한 실험 형식.
F3F-3:XF3F-3 사양으로 27대가 만들어진 후기 생산형.
G-22 Gulfhawk II : 걸프 오일의 스폰서로 곡예기로 만들어진 형식. 비무장에 1,000마력짜리 Wright R-1820 Cyclone 엔진으로 동력을 강화한 형식으로 1기만 제작.
G-32 Gulfhawk III : F3F-3의 무장을 제거하고 Wright R-1820 엔진을 탑재한 민수형으로 2대만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