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6-07-28 07:41:25

김상호(야구선수)

1. OB 베어스,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전 야구선수
1.1. 소개1.2. 선수 시절1.3. 은퇴 이후1.4. 연도별 주요 성적
2.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선수
2.1. 소개2.2. 기타

1. OB 베어스,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전 야구선수


[OB 베어스]에서 뛰었을 때의 [리즈시절]


2011년 8월 2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전에 시구를 하는 모습.
이름 김상호(金湘昊)
생년월일 1965년 10월 19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선린상고-계명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8년 MBC 청롱 1차 지명
소속팀 MBC 청룡(1988~1989) br OB 베어스(1990~1998) br LG 트윈스(1999~2000)
1995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재현(LG 트윈스) br 박노준(쌍방울 레이더스) br 윤덕규(태평양 돌핀스) 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 br 김상호(OB 베어스) br 전준호(롯데 자이언츠) 김응국(롯데 자이언츠) br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br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1995년 한국프로야구 MVP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김상호(OB 베어스) 구대성(한화 이글스)
1995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김기태(쌍방울 레이더스) 김상호(OB 베어스)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LG 트윈스 등번호 33번
임선동 (1997-1998) 김상호 (1999-2000) 홍현우 (2001)

1.1. 소개

전 프로 야구 선수. 등번호는 45번(MBC 청룡) - 44번(OB 베어스) - 33번(LG 트윈스). 주 포지션은 좌익수였으며 데뷔 초기에는 3루수나 중견수로도 뛰었다. 잠실 최초의 홈런왕.

1.2. 선수 시절

1988년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에 입단하여 활동하다가 1990년에 재일교포 투수 최일언과의 트레이드로 OB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1995년 25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면서[1] OB 베어스의 2번째 우승에 기여했으며, 홈런왕과 타점왕, MVP를 수상하였다. 특히 1995년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둔 팀 소속 선수로는 최초로 홈런왕을 따낸 선수가 되었다.(이후 1998년 외국인선수인 타이론 우즈가 다시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42홈런을 기록하며 잠실팀의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했다.) 1998년 시즌을 끝으로 [류택현]과 함께 친정팀인 [LG 트윈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으나 크게 활약하지 못하고 2000년 말에 은퇴했다.

1980년대까지 소총부대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데다가[2] 1990, 1991년 2년 연속 꼴찌를 했던 [OB 베어스]는 김상호를 영입하고 나서 1990년대 말까지 김형석, 강영수, 심정수 등과 함께 OB 베어스의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하였고, 김상호는 이 클린업 트리오의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슬러거 치고는 발도 빨라서 매년 20개 가까운 도루를 했으며 1995년 홈런왕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빠른 발을 가진 중장거리 타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쓴다는 것을 감안해도 통산 기록에서 홈런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편이며(통산 136홈런) 전성기도 2~3년 정도로 짧았다. 정확성과는 거리가 먼 스윙[3]으로 곧잘 쓰러질 정도로 큰 헛스윙을 해서 '칼춤'이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단단한 체구와 강인한 체력으로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4]

안성기를 닮은 쾌남형 얼굴에 이판사판 식의 화끈한 허슬플레이[5]로 적지 않은 팬이 있었지만 사실 성실성에서는 문제가 많았다. 엄청난 주당으로 야구장에서보다 잠실 근처 술집에서 그를 봤다는 팬이 더 많았을 정도였으니...당시 신인급이었던 안경현이나 정수근도 그에게서 본격적으로 술을 배웠다는 후문. 특히 정수근은 청출어람을 이뤄냈다

게다가 1995년 1월, [이종민]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차를 두고 갔는데, 그 다음 날 [이종민]은 그가 두고 간 차를 돌려 주려고 대담하게 면허도 없는 상태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근처에서 사고를 내고 만다.

2000년대 들어서 LG의 트레이드 잔혹사가 탈쥐효과란 호칭을 얻고 주목 받으면서 '이적생 MVP 1호'인 그가 탈쥐효과의 원조로 새삼스레 주목받기도 했다.[6]

1.3. 은퇴 이후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고, 2011년 현재 프랜차이즈 전문 기업 '후인'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2011년부터는 [인천] 부평구에서 사회인 야구선수들과 중고생들을 위한 실내야구연습장 '팀 베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LG와 두산에서 선후배 사이였던 정삼흠이나 정수근등이 초빙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2011년 8월 21일 [한화 이글스]와의 3연전 마지막 홈경기에서 사인회와 시구를 했다. 과거 윤동균 감독의 강압적인 지도방식에 반발해 항명했던 선수들이 2011년까지도 구단의 초청한번 받지 못하면서 잊혀져 갔는데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상호도 당시 주동자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 정규시즌과 2011년 개막전 때 시구를 했던 불사조 [박철순]도 항명파동 요주의 인물중 한명이였지만... 박철순의 경우엔 워낙 원년 우승과 3관왕의 상징성이 강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버릴래야 버릴수도 없는 인물이긴 하다. 아무튼 김상호의 초청과 프런트진 개편을 계기로 90년대 올드스타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지는 것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7]

1.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8 MBC 청룡 88 267 .270 72 17 2 7 43 35 11 22 .427 .323
1989 109 362 .257 93 9 4 13br(5위) 56 51 21 55 .412 .35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0 OB 베어스 114 400 .275 110 18 1 14 52 61 12 61 .430 .370
1991 93 318 .208 66 10 1 5 42 33 12 36 .292 .287
1992 102 370 .300 111 26 4 12 49 61 16 46 .489 .377
1993 122 440 .264 116 17 1 11 56 53 19 47 .382 .333
1994 113 410 .249 102 11 5br(3위) 9 49 55 6 54 .366 .334
1995 126 504 .272 137br(5위) 23 2 25br(1위) 101br(1위) 79br(3위) 10 51 .474 .335
1996 117 439 .269 118 27 0 20br(4위) 75 53 5 39 .467 .324
1997 96 343 .315 108 24 3 11 52 45 4 46 .499 .393
1998 34 87 .241 21 3 0 1 7 12 0 17 .310 .36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LG 트윈스 94 221 .253 56 10 1 8 40 39 1 34 .416 .350
2000 21 31 .065 2 1 0 0 2 4 0 9 .097 .275
통산 13시즌 1229 4192 .265 1112 196 24 136 624 581 117 517 .421 .344

각주

2.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선수


상무 피닉스 야구단 No.53
김상호(金湘虎)
생년월일 1989년 5월 10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청구초-홍은중-장충고-고려대
포지션 내야수(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wiki:"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 2012년] 2차지명 7라운드(전체 58번)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2012~ )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2.1. 소개

홍은중-장충고를 거쳐 고려대에서 중심 타자로 활약한 뒤, 2012년 드래프트에서 2차 7라운드의 하위 순위로 지명되었다. 입단 2년차인 2013년에 신고선수로 전환되었지만, 퓨처스리그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 6월 정식 선수로 다시 승격됨과 거의 동시에 1군에 콜업되었다. 주로 우타 대타로 나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고, 시즌 첫 선발 지명타자로 나선 6월 13일 넥센전에서는 5타수 2안타 2루타 2개의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7월 이후부터 대타로 나오든 선발로 나오든 아웃 자판기가 되었다. 후반기 롯데의 암적인 존재1

시즌 이후 진명호,고원준과 함께 상무 야구단입대신청을 했고 세명 전부 합격하면서 2014시즌부터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

2.2. 기타

  • 같은 팀의 이름이 비슷한 김성호가 산체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 김상호에게는 산채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1] 25홈런은 홈런왕 치고는 상당히 적은 숫자지만 국내에서 가장 큰 구장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썼다는 점, 그리고 전년도의 [김기태]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작은 구장인 전주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25홈런으로 홈런왕이 되었다는 점에서 당시로선 그리 적은 숫자도 아니었다. 101타점의 기록도 1992년 장종훈 이후 역대 두 번째의 100타점 돌파였다. 거기다가 1993~1995년은 특히 투고타저 경향이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2] 1989년까지 역대 한시즌 팀 최다 홈런 선수는 1982년의 [김우열]과 1988년의 [송재박]으로 13개였다(그나마 1982~1984시즌 OB의 홈은 대전구장이었다). 1980년대의 OB는 같은 서울 팀인 [MBC 청룡]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장타력이 떨어지는 팀이었다.[3] 그래도 1992년과 1997년에 3할 타율을 두 번 기록했다. 1995년의 기록이 단순한 플루크가 아니었다는 증거.[4] 3루 수비를 볼 당시에 엉성한 수비때문에 몸이 로봇처럼 뻣뻣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5] 1995년 잠실구장에서 LG 김동수의 홈런성 타구를 엄청난 스피드로 쫒아가서 점프해서 잡아낸 플레이는 그 해 최고의 진기명기로 회자된다.[6] 다만 김상호는 트레이드되기 전 해인 1989년에도 리그 WAR에서 타격부문 7위에 오를 정도로 준수한 활약을 펼친 선수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 트레이드는 이미 1989년 세이버 스탯에서 노쇠화가 확연했던 [최일언]과 타율을 제외한 모든 세이버에서 리그 상위권이었던 김상호를 바꾼 실패한 트레이드...(비록 KBO에 신뢰할만한 수비 측정 스텟이 부족하여 KBO야수의 경우 WAR은 매우 비정확한 수치이긴 하지만서도)[7] 당시 윤동균 감독에 반발해 항명한 선수가운데 가장 구단속을 썩이던 선수가 김상호였다. 그런 김상호를 시구자로 불렀다는거 자체가 놀라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