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14:35:27

김준태(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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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롯데 자이언츠
3.1. 2012 시즌3.2. 2013 시즌3.3. 2014 시즌3.4. 2015 시즌3.5. 2016 시즌3.6. 상무 피닉스 야구단3.7. 2019 시즌3.8. 2020 시즌3.9. 2021 시즌
4. kt wiz

[clearfix]

1. 개요

kt wiz 소속 포수 김준태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파일:경남고 김준태.png

경남고 시절 2학년 때 심창민과 함께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으며 3학년 시절 경남고 타선의 4번타자를 맡았고 청소년 국가대표에 소집될 정도로 유망한 포수였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되면서 고졸 포수로는 2번째로 지명을 받았다. 이 때는 강한 어깨와 장타력이 강점이었다.

3. 롯데 자이언츠

3.1. 2012 시즌

이미 롯데 자이언츠에는 강민호라는 국대급 주전포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덕한이라는 아주 좋은 백업 포수, 여기에다 김사훈까지 2012년에 그럭저럭 활약한 덕분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3.2. 2013 시즌

4강 진출이 좌절된 후 1군에 등록되면서 다시 정식 선수가 되었다. 10월 1일 1군 첫 경기를 LG 트윈스 상대로 치렀다. 그 날 선발 포수는 김사훈이었으나 6회에 대타 박준서로 교체되었고, 박준서가 삼진으로 물러난 후 7회부터 롯데 안방을 지켰다. 그리고 10회말, 프로 데뷔 두 번째 타석에서 봉중근을 상대로 안타를 쳐냈다.[1] 그리고 그것은 끝내기! 봉중근을 시즌 처음으로 패전 투수로 만들어 버렸고, 당연히 이 경기 MVP로 선정되어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쌩신인에다 얼떨결에 얻은 인터뷰 기회다 보니 말을 버벅대고 할 말도 아끼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한명재 캐스터가 어머니에게 한마디 하라는 멘트를 했을 때 눈물을 참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롯데팬들을 찡하게 만들었다.
파일:/image/076/2013/10/01/2013100101000183800008771_59_20131001222503.jpg
위에서 언급된 끝내기 안타 직후의 모습. 여담이지만, 최초로 이 문서가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 생성되었을 당시엔 이 사진이 제일 위에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경기에서 정민태 투수 코치가 김준태를 갈구자, 최기문 배터리 코치가 "포수는 내 영역이니 건들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 결과 김시진 사단과 사이가 나빠진 최기문 코치는 이 사건 때문에 시즌 종료 후 NC 다이노스로 옮겼다는 카더라가 있다.

급기야 다음 날 삼성 라이온즈전 상대로는 선발 출장을 했다. 그 경기에서도 3타수 1안타로 나름대로 활약을 했으나, 팀은 스코어 9:2로 패해 삼성의 3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뒤로도 남은 2경기에 모두 교체 출전하며 시즌을 마쳤다.

3.3. 2014 시즌

2군에서만 시즌을 보냈다. 이미 팀 내에서 강민호, 장성우 같이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1군에 올라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3.4. 2015 시즌

6월 20일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주로 9회 대수비로 주로 출장하다가 6월 27일 넥센과의 경기 도중 강민호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해 6월 28일부터 선발 출장하고 있다.

그러나 8월과 9월 좋지 못한 타격감을 보인데다가 몇 개의 수비 실책까지 나오면서, 경쟁자 안중열에게 강민호의 백업 포수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3.5. 2016 시즌

6월 3일과 5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출장하여 안타 2개를 치고 1타점을 기록하였다.

6월 15일 멀티히트를 치고 3타점을 기록하면서 강민호의 부상공백을 메우고 있다. 볼 배합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중.

6월 28일 사직 삼성전에서, 2회말에 윤성환을 상대로 데뷔 5년만에,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그 이후 볼넷 하나 포함, 삼진을 두 차례 당하며 3타수 1안타로 마무리했다. 수비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7회 더블스틸을 허용하며 동점을 허용했다.

8월 18일 사직 KIA전에는 선발출장하여, 9회말에 임창용에게 안타를 하나 기록했고, 10회말에 곽정철에게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2]을 얻어내는 등 2타수 1안타 3볼넷을 기록했고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강민호가 빠지고 난 후 김준태가 선발로 출장하자 강민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게 된다.

번트는 한번도 성공시키지 못하고[3], 타율은 2할대인데 나름 준수하고 선구도 나름 괜찮고 포수 리드도 괜찮지만 수비가 너무나 부족하고 작전 수행 능력도 부족하고 멘탈이 약해서 어이 없는 플레이를 자주 저질러 강민호가 더욱 그리워지게 하였다.

9월 10일, 기껏 안타를 쳤는데 갑자기 덕아웃으로 향했고, 결국 런다운에 걸려서 아웃되었다.[4]gif영상1영상2 빼도박도 못하는 본헤드 플레이.[5]

강민호 부상 이후 안방을 담당하면서 위축되어 있는 플레이를 보여줬었으나 9월 8일부터 9월 14일까지 0.381의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에서는 점점 자신감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6] 수비도 점점 발전하면서 발전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했다.

10월 4일 잠실 두산전에 교체출장하여 마스크를 썼고 4:4 연장까지 돌입한 치열한 접전 중의 첫 타석에서 적시 2루타를 뽑아 내었다. 1사 만루 상황에서 손아섭의 유격수 앞 땅볼과 황재균의 우익수 플라이로 더 이상 점수를 뽑지 못했고 결국 손승락의 방화로 인해 팀도 졌다. 결승타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본인에게도 아쉬웠을 듯.

10월 9일 사직 넥센전에 선발 출장하여 5회말 3:2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 솔로홈런을 때려냈고 6회말 2사 만루에서는 주자 세 명을 모두 불러들이는 3타점 적시 2루타를 작렬시켜 4타점 경기를 펼치고 팀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종료 후 멕시코에서 개최되는 제1회 WBSC U-23 야구 월드컵에 나설 대한민국 U-23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시즌 종료 후에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서를 신청하여 군 복무에 들어갔다. 2015~2016년 동안 군대에 있던 김사훈의 복귀와 때를 맞추어 김준태를 군대에 보낸 것은 당시로서는 순리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팀으로서는 매우 아쉬운 결과를 초래했다. 김준태의 공백을 매워 줄 자원인 안중열이 당초 가벼운 부상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부상이 장기화되면서 근 2년째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김사훈 또한 복귀 직후 2016년 후반기 3할의 반짝 활약을 하여 김준태를 안심하고 군대에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2017시즌 타격, 수비 모두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2018시즌을 앞두고 강민호마저 이적하게 되었다. 결과론적이지만 롯데 포수진은 각각 최악의 IF들이 모두 터져버린 셈이다.

3.6. 상무 피닉스 야구단

부상을 달고 다니는 강민호, 처참한 타격을 보여주고 있는 강동관김사훈, 갓 데뷔하여 경험이 부족한 나종덕, 아직도 재활이 끝나지 않은 안중열 등등 롯데의 포수 인력난 속에서 김준태를 찾는 팬들이 많다. 앞으로 상무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오는 것이 중요할 듯.

그런데 2017시즌 상무에서의 성적이 상당히 좋지 못하다. 72경기, 218타석에 나서며 타율 0.252, 출루율 0.327, 장타율 0.376, OPS 0.703을 기록했다. 상무 포수 네 명 중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2017 시즌 김준태의 퓨처스 기록은 나원탁(55경기, 149타수, 타율 0.302, 출루율 0.342, 장타율 0.450, OPS 0.792)보다 좋지 않으며 나종덕(69경기, 204타석, 타율 0.211, 출루율 0.294, 장타율 0.426, OPS 0.720)과 비교해 봐도 더 낮은 OPS를 기록했다.

2017 시즌의 좋지 않은 성적이 부상[7] 때문일 수도 있으나 확실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2018년에는 강민호가 삼성으로 이적한 가운데, 공수 양면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김사훈[8]과 타석에 서 보지도 못하고 상동으로 광속으로 꺼져버리는 강동관, 아직 경험이 부족한 나종덕[9]나원탁, 안중열 등 답이 보이지 않는 롯데의 포수 인력난 속에서 팬들은 김준태의 제대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상무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더 성장해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아니 성장하지 않고 군대가기 전 그 실력만 보여줘도 당장 롯데는 양의지, 강민호를 제외하면 그래도 타팀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주전 포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팬들은 2017년 퓨처스에서 김준태가 나원탁, 나종덕보다 저조한 성적을 보인 것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기도 하고 있다.

수술[10]을 받게 되어 2018 시즌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시즌 내 복귀가 불투명하다는 얘기까지 있었으나, 5월 18일 복귀하여 출장하고 있다. 참고로 2군 성적이 타출장 232 362 321로 그닥 좋지 못 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볼삼비가 좋아서 출루율이 타율보다 매우 높다는 정도.[11] 게다가 상무에서조차도 두산 출신의 최용제와 KIA 출신의 이정훈에게 밀려서 많이 나오고 있지를 못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타출장 .269, .389, .346을 기록했다. 고무적인 건 시즌 후반기에는 이정훈을 밀어내고 최용제랑 포수를 돌아서 봤으며, 타율을 .269까지 회복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수술 이후에 장타력을 거의 상실했다. 홈런과 3루타가 하나도 없다.

3.7. 2019 시즌

나종덕, 안중열 등과 주전 포수 자리를 두고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2019 시즌 들어 전반기에 주전 포수로 출전하고 있다. 하지만 공수 양면에서 아주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타율은 좀처럼 2할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수비에서도 도루는 그냥 내주는 수준이고 투수들의 공을 제대로 포구 및 블로킹하지 못하고 빠뜨리고 있다.

3월 26일 삼성전에서 시즌 처음으로 선발 포수마스크를 썼다. 타격에서는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수비에서는 선발투수 제이크 톰슨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톰슨의 무실점 투구를 이끌었다. 이 덕에 이 날 구단 수훈 선수로 뽑혔다.

4월 10일 두산전에서는 브룩스 레일리의 위로 빠진 볼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2루 악송구까지 겹쳐 롯데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프레이밍은 커녕 블로킹도 안되며 미트에 기름칠을 해놓은 건지 매 경기 포일이 한두 개 씩은 꼭 나온다.

4월 25일 두산전에서도 한이닝에 공을 세 번씩이나 포구 못하는 등 매 경기 출장할 때마다 수비에서 상당히 심각한 모습을 보여준다. 팬들은 2군가서 수비 연습 더 하라고 하지만 양상문 감독은 안중열을 올리면서 그를 안 내리고 나종덕을 내리면서 양아들 2호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5월 2일 NC전에서도 1경기 폭투 3개를 적립하며 선발투수 톰슨을 정말 괴롭게 했다. 거기에 도루시도하는 1루주자를 잡으려다가 악송구로 3루까지 보내는 실책까지 덤으로 했다. 결국 그 날 이후 안중열이 선발 출장하고 나서 5월 6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다시 콜업되었지만 처참한 기량은 여전하다. 특히 6월 5일 한화와의 경기 5회에서는 한 이닝 낫아웃 3개, 도루 저지 상황에서 실책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 타격 분야에서도 나종덕이랑 크게 다를 게 없는 수준까지 떨어져 버려 진지하게 부상 후유증이 의심될 눈썩 경기력을 보여줬다.

요약하자면, 김준태가 먹어야 할 욕마저도 나종덕이 먹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부진했다.

3.8. 2020 시즌

파일:201004-한화전-21-김준태 적시타점KCH28415.jpg
10월 4일 한화 전에서 적시타를 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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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받은 시즌이었고, 미미하지만 발전을 보여준 모습을 보였다. 비록 2할 2푼대의 타율이지만 눈야구로 3할 중반대의 출루율을 기록하였을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을 보여주었다. 이제 타격 면에서 좌투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내년 시즌 타율이 달라질듯.

수비에서는 작년에 비해 모든 부분에서 상당한 발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풀타임이 처음이라 그런지 출장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체력이 떨어졌는지 어이없는 실수를 몇번 보여줬다.

그리고 김준태의 가장 큰 약점은 도루저지이다. 0.158은 리그 최하위의 도루저지율이며, 그나마 시즌 후반에 조금 올라서 이 정도.

3.9. 2021 시즌

2021년에는 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허문회 감독 시절에는 실력 대비 너무 많은 기회를 지시완에 비해 받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았고,[12] 래리 서튼 감독 시절에 와서도 출전 빈도가 상당히 잦아지며 여러 문제가 조명되고 있는데, 작년에 이은 도루저지 문제가 특히 대두된다는 평.[13]

그러던 와중 무릎 연골 부상으로 수술을 받게 되며 사실상 시즌 아웃되었다.

4. kt wiz

4.1.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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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 종료 이후 kt wiz로 트레이드되었다.

현재 44번은 포수 김만수가 사용 중이라 다른 번호를 사용해야 했는데, 결국 바로 앞번호인 43번[14]을 배정받았다.

이적 후 대타로 첫 타석에 나서 드류 루친스키를 상대로 유격수 라인드라이브를 기록했다. 잘 맞은 타구였고, 한 점 차로 뒤지고 있는 점수에서 2아웃 1,2루 상황이었기 때문에 역전도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타구였다.

4.2.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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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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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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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뷔 첫 안타이다.[2] 데뷔 후 두 번째 끝내기 기록이다. 첫 번째 끝내기는 2013년 10월 1일 사직 LG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에 봉중근을 상대로 때려낸 끝내기 안타.[3] 3연속 끝내기가 나온 클래식 시리즈 당시에도 번트 실패를 보여준 적이 있어 안경현 해설이 이를 지적한 적이 있었다.[4] 좌익수 플라이로 착각했다. 1루 베이스는 밟았으므로 기록상으로는 안타 후 주루선상 이탈로 아웃(태그되기 전에 주루선상을 이탈했으므로 굳이 태그하지 않아도 아웃이었다)이었는데, 그대로 2루로 갔으면 살았을 수도 있었다...[5] 오죽하면 캐스터가 이게 웬일이에여라고 무의식중 말했을 정도...[6] 다만 블로킹과 세심한 플레이에는 아쉬움이 보인다.[7] 부상 때문에 결국 2018년초 수술을 받았다.[8] 단 김사훈은 김준태의 입대로 갑작스럽게 1순위 백업 포수가 되면서 체력 저하가 심각해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9] 타격 못한다고 까이는 김사훈보다 타율이 낮다![10] 팔꿈치 내측측부인대 수술이라고 한다.[11] 참고로 이 정도로는 1군에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94년생 기아 출신 상무 선수인 이정훈이 타출장 .312, .398, .498을 보여주고 있다.[12] 하지만 김준태의 기량이 지시완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 확고한 사실이 된 지금은 허문회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중론이다.[13] 다만 의외로 도루저지 수는 가장 많은 편이다. 그 이유는 상대 주자들이 너무 많이 뛰기 때문. 라이온 힐리김태군처럼 발이 느린 주자들도 뛰는 상황이니...[14] kt의 43번은 김민의 입대로 인해 결번이었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 소속 포수였던 이해창이 사용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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