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르막(테이스티 사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소녀. 늘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다. 바닷가에서 일광욕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방해를 받으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모조리 없애버리려 든다. 그녀를 저지하려면 좋아하는 사람의 포옹이 가장 효과적이다.

마스터의 얼굴은 언제나 환한 미소로 빛났다.

행복한 가정을 이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마스터에게도 가끔 고민거리가 생기는지, 나에게 종종 이런 푸념을 하곤 했다.

「나시르막. 결혼한 지 벌써 1년도 넘었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걸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테니 느긋하게 생각하세요~」

난 그럴 때마다 마스터를 열심히 위로했다.

마스터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마스터의 남편 덕분이었을 거다.

마음이 따듯하고 사려 깊은 그분은 늘 누구보다도 더 따듯하게 마스터를 위로했다.

「곧 귀여운 아이가 생길 테니 걱정 마. 지금은 우리 둘만의 시간을 즐기자, 알았지?」

행복한 부부란 두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행복으로 빛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날 저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생각이 하루하루 다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스터의 남편이 마스터가 매일 마시는 물에 뭔가를 넣는 모습을 보게 됐다.

저건...?

남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마스터의 물컵에 하얀 약을 넣었다. 그 약은 물에 닿자마자 녹아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날마다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마스터한테서 들은 적 없던 터라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가 물에 약을 타면, 그 물을 버리고 다른 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을 즈음, 마스터는 깜짝 놀랄 소식이 있다며 우리를 불렀다.

「있잖아, 모두에게 들려줄 깜짝 소식이 있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신났어?」

마스터의 남편이 웃으며 물었다.

「그게 뭐냐면...」

마스터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사진 한 장을 우리 두 사람 앞에 꺼내들며 수줍은 듯 말했다.

「나 드디어... 아이가 생겼어!」

그 순간, 마스터의 물컵 속으로 사라지던 알약의 정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난 남자의 얼굴을 돌아봤다.

남자는 언제나라고 말할 정도로 항상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새하얗게 질린 표정이 미소를 대신하고 있었다.

남자의 표정을 보니 어떻게 된 상황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기쁨에 도취한 마스터가 상대의 표정을 미처 알아챌 새도 없이 남자는 금세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진심을 숨기는 남자와 아무것도 모르는 마스터를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진짜 사랑이 아니었잖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 한마디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마스터의 배가 불러올수록, 남자가 외박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일이 바빠도 그렇지, 일주일에 나흘 이상이 외박이라니. 좀 너무하잖아...」

집에 혼자 있던 마스터는 불러오기 시작한 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남자의 외박이 계속되자 마스터는 결국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나시르막. 그이가 정말 일을 하는지 알아봐 줄래?」

마스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이가 의심스러운 게 아니라 뭘 하는지 궁금해서... 관심의 표현이랄까?」

그 마음을 알듯 모를 듯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을 나섰다.

남자의 일터로 향하는 대신 마스터의 집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쪽으로 쭉 가면 집 한 채가 더 보인다.

그곳에는 남자의 애인이 살고 있었다.

마스터가 자신의 임신 소식을 전한 뒤, 난 남자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 여기까지 그의 뒤를 밟은 적 있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남자의 품속엔 다른 여자가 안겨있었다. 이 사실을 마스터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는 마스터를 속이기 위해 교묘한 계획을 세웠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마스터의 감정을 이용해 결혼을 올린 남자는 애인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은밀한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저기, 나시르막.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

마스터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항상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드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걸 도저히 참지 못하는 거지.」

마스터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날 뚫어지게 쳐다봤다.

눈을 감은 채 마스터의 무릎에 누워있는 남자와 쥐 죽은 듯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애인이 보였다.

「이제 함께할 수 있어, 영원히...」

마스터의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선혈이 나무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그 모습에, 한때 그들의 사랑을 동경했던 나의 마음도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앞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처럼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웅얼거리던 말을 뒤로하고 마스터는 내게 시선을 거둬 남자를 힘껏 끌어안았다.

「처음부터... 꽉 잡고... 절대... 놓아줘선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마스터는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