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07:53:24

유모

내니에서 넘어옴
1. 개요
1.1. 상세1.2. 피양육자와의 친분1.3. 유모의 친자식들1.4. 현대1.5. 창작물에서
2. 삼국지의 인물3. 有(유) 모자이크4.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의 등장인물5. 융커스의 엔진 제품군

1. 개요

乳母, (wet) nurse, nanny[1], Mammy[2]

다른 이의 아기모유를 먹이고 키워주는 여자. 순우리말로는 젖어미, 젖어멈이라 한다.

1.1. 상세

과거에는 (영아돌연사증후군기근, 전쟁, 낙후된 의학 수준 등의 이유로) 영아 사망률이 높아서 자신의 젖먹이 아기가 죽으면 남은 젖을 파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산모사망도 많았기에 산모가 사망한 후 남겨진 아이들은 남의 젖이라도 먹어야 했다.[3] 그러나 꼭 아이를 잃은 여자들만 유모를 하는 건 아니었고, 아이가 살아있는데 유모로 취직한 경우 친자식에게는 젖 대신 암죽[4] 등을 먹였다고 한다.

수요 측은 수유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을 수 있고, 무엇보다 수유를 하면 배란이 억제되어 임신이 늦어지므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후계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5] 왕/귀족들은 모두 유모를 고용했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무려 16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출산한 것은 유모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유럽 왕실은 왕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고용인들은 귀족으로 뽑았다. 그러나 유모라는 직무는 하루종일 아기와 함께 있으면서 집중적으로 보살펴야 했다. 따라서 귀족이라면 응당 나가야 하는 사교활동이 거의 불가능해지므로 평민을 고용했다. 다만 왕족들 입장에서도 왕족이 평민의 손에서 자라면 체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유모로 뽑히면 하급 귀족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래서 명목상 귀족부인 신분으로 왕궁에 출입했다.

1.2. 피양육자와의 친분

유럽에서 유모를 고용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귀족이었다. 귀족여인들은 사교 활동을 하느라 아기를 돌볼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육아는 보모가 전담했다. 그래서 3~4살 정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얼굴을 마주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귀족 아이들은 친부모와는 가족의 유대를 쌓지 못하고, 오히려 유모를 친부모보다 더 가깝게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시절부터 애착 관계를 형성해온 존재이다보니 돌보는 아이가 젖을 떼고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보필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왕족/귀족 여자의 경우 결혼해서 친정과는 왕래도 힘든 타국으로 가더라도 유모만은 함께 가서 최측근으로 섬기는 경우가 있었다. 문자 그대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기원전 고대에 작성된 성경 창세기에도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시집갈 때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가 함께 갔다는 내용이 있으며, 드보라가 사망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구절도 있다.

18세기가 되면 일반인들에게도 유모제가 보편화되면서 1769년 프랑스 정부는 유모의 보수 문제만을 전담하는 기관인 유모국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며, 영국과 프랑스에서 친모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고작 15명에 1명 꼴이었다고 한다. 근대 계몽주의 지식인들, 대표적으로 장 자크 루소린네 같은 이들은 이런 유모의 범람을 개탄하여 "모성애"의 개념과 모유 수유를 매우 중시했다. 심지어 "포유류"란 단어도 이런 수유 장려 차원에서 지어졌다고 한다.[6][7] 개신교에서도 "모성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여겼다.

아이들에게는 유모가 부모나 마찬가지인 존재여서 어른이 된 뒤에도 유모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못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며 유모의 지위는 사실상 하녀를 넘어서 가족의 일원에 가까운 존재였다고도 한다.[8] 그래서 유모를 고용한 부모도 다른 메이드들보다 훨씬 후하게, 친척 아주머니 대하듯이 배려해 주었다. 윈스턴 처칠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에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유모 엘리자베스 에버레스트(Elizabeth Everest)가 돌아가셨다는 비보에는 통곡하며 죽기 직전까지 머리 맡에 유모의 사진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미츠[9]도 친어머니와는 사이가 심히 좋지 않았고[10], 유모 카스가노츠보네가 죽었을 때 친부모 때보다 더 슬퍼했다고 한다. 조선의 제10대 국왕 연산군의 경우도 제일 사랑한 사람이 유모였다고 한다.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유모를 봉보부인으로 삼은 것은 물론 유모의 8촌까지 면천시키고 죽은 그녀의 남편에게는 벼슬도 주었다. 이 일로 대간과 갈등까지 빚었을 정도. 현대에서도 피고용자인 베이비시터 아주머니에게 쩔쩔매는 부모들이 꽤 많은 것처럼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돌봐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 입장에서 유모는 '때로 친부모보다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내가 원하거나 내게 필요한 것을 마술처럼 해주는 믿음직한 존재'인데,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판타지 요소를 결합해 '마술처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법으로 해결해 주는 유모 캐릭터를 다루는 작품이 뮤지컬 및 영화로 유명해진 '메리 포핀스'와 내니 맥피 시리즈이다. 이쪽은 '젖어머니'라는 전통적 의미의 유모 보다는 보모 내지는 가정교사의 느낌이 더 강하다.[11]

동아시아에서도 아이가 맨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유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유모의 상을 당하면 3달 동안 상복을 입어야 했다. 특히 왕실에서는 유모를 고르는 과정도 꼼꼼했고,[12] 수유 기간에 지켜야 할 것도 많았다.[13] 또 현대에는 1~2년 젖을 먹는 것과 달리 과거 왕실에서는 적어도 4살, 길게는 7살까지도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왕족들을 보살피고, 심지어 차기 대권을 물려 받을 왕세자도 보살피는 만큼 유모의 존재감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왕의 유모는 봉보부인이라고 하여 세자의 딸들보다도 높은 품계인 종1품에 봉해졌으며[14] 녹봉 역시 정승보다도 후하게 받았다. 품계 외에도 왕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보니 일가친척들도 같이 면천되거나, 벼슬을 받을 수도 있었고 사고를 치면 눈감아 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유모가 되는 순간 신분상승 내지는 인생역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었다. 성종의 유모가 성종에게 대놓고 청탁을 넣었을 때 성종은 크게 꾸짖는 정도로 끝냈고, 연산군은 유모가 궁중의 물건을 훔치다 걸리자 궁궐에서 내쫓았다가 결국 다시 불러들였다. 왕비의 경우에도 왕비의 유모가 같이 입궁해 본방상궁이라 하여 왕비의 심복이 되곤 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같은 유모가 기른 아이들은 혈통상 연관이 없어도 형제자매로 여긴다고 한다. 실제로 친척 관계인 사촌 남매 간에는 결혼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나, 오히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라도 같은 유모의 젖을 먹은 적 있을 경우 근친혼처럼 여겨져 결혼할 수 없다.

유모들도 대부분 자신이 돌보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애정을 보이고 아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정이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 유모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주인집 자손을 모시고 탈출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내려오고, 실제 사례도 많다.

물론 친부모 중에도 막장 부모가 있듯이 유모도 모두가 자애롭지는 못했다. 이전부터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전근대에 들면서 간혹 자기가 양육해야 할 피보호자를 오히려 자기 입맛에 맞춰 통제하기 위해 혹은 재미로 가스라이팅하거나 악의를 푸는 화풀이 대상이나 자기 우월감을 채우기 위한 존재로 보고 학대, 심지어는 살해(!)하는 질 나쁜 유모들의 행각이 부각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건 특히 지배국 귀족-피식민지 하녀 유모 경우가 많았는데, 보통 나라를 점령한 지배국이 피지배국의 여인들을 하녀로 삼으면서 유모로 쓰는 경우에 그 유모가 악감정을 가지고, 지배국의 귀족이나 무관 집안의 자식을 해코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15]

1.3. 유모의 친자식들

상전의 아이와 같은 성별이라면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아들이라면 젖형제로서 무술 훈련 및 공부를 같이 하며 전투에서 옆을 지키는 시종이나 친위병이 되기도 하였다. 주인과 똑같은 무술 / 병법훈련을 받아서 높은 전투력을 갖추게 되어 자신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정말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하고는 했다.

이들에게 최고의 영광은 말 그대로 친구이자 형제인 주인을 대신해 죽는 것이었다. 이들은 정말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동참해서 경계를 했기 때문에 근대 유럽에서 귀족을 노리는 암살자들에게는 가장 성가신 존재였다. 만약 이런 암살 시도에서 주인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만 살아남으면, 이들은 주인을 지키지 못한 존재라고 비난받고 자결로 생을 마감하곤 했다. 반대로 귀족들도 자신을 대신해 몸종이 희생당하면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형제 같은 존재를 잃었기에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이케다 츠네오키의 어머니 요우토쿠인(養徳院)이 노부나가의 유모였다. 그래서 이케다 츠네오키와 노부나가를 같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의미로 유형제(乳兄弟)라고 부른다. 이케다 츠네오키는 노부나가가 살아있을 적에도 중신이었으며 노부나가 사후에도 가신들 중에서 그 비중이 컸다.

키무라 시게나리의 어머니도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유모였는데, 그 덕에 시게나리는 히데요리의 소꿉친구 격으로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후에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시게나리는 분투하다 전사하는데, 그의 아버지로 알려진 키무라 시게코레가 히데요리 때문에 죽은 것이나 다름 없음을 생각해보면 젖형제의 정과 의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딸이라면 젖자매로서 상전의 아이인 귀부인/아가씨의 몸종이 되어 모시게 된다. 젖자매는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되니 자매 이상의 존재가 된다고 한다. 게다가 친자매라면 보통 혼인하면서 서로 다른 집안으로 시집가 흩어지게 마련이지만 젖자매는 유모의 아이가 시녀로서 죽을 때까지 곁에서 모실 수 있다. 같은 지위에 있어 사이가 나쁘고 싸울 수도 있는 친자매에 비해 계급 차이로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젖자매는 분란의 여지가 없이 믿음직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예시로 <여자의 일생>의 잔과 그녀의 시녀 로잘리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로잘리의 공식적 신분은 하녀지만 잔의 부모 역시 그녀를 친딸처럼 대하며 잔의 남편에게 강간을 당해(!)[16] 임신한 뒤 떠났음에도 결국 세월이 흐른 후 돌아와 다시 잔을 모실 정도. 본인도 잔을 모시지 못하는 게 제일 괴로웠다고 한다. 몇몇 매체에서는 젖자매가 모시는 아가씨 남편의 첩(!)이 되는 경우도 나온다. 자신의 지위(때로는 아가씨의 남편의 총애)에 기대어 그녀가 모시던 아가씨를 배신하고 괴롭히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즉, 아가씨네 아이의 이복형제)와 더불어 아가씨와 아가씨의 아이에게 계속 충성하는 걸로 묘사되기도 한다. 대체로 아가씨의 부모나 아가씨의 주선, 본인의 선택 등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면서 자기 어머니처럼 아가씨의 아이의 유모가 되거나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등 계속 아가씨와 가깝게 지내는 걸로 나온다. 젖자매가 호위의 역할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에로게에서는 새벽녘보다 유리색인미아 클레멘티스피나 팜 아슈라이트와 젖자매로 나온다.

유모의 친자식이 다른 성별일 경우에는 남매같이 지내거나, 때로는 연인이 되기도 하는 걸로 묘사된다. 실제 사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요도도노가 있다. 젖형제 오오노 하루나가(大野治長)와 굉장히 친하게 지내서 불륜설까지 돌았을 정도다.

현대에도 이런 관계를 맺은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세계적인 테너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자신의 유모의 딸이던 미렐라 프레니와 죽을 때까지 의남매 사이로 지냈다. 대한민국도 분유 보급이 부진하던 90년대 초반까지는 부인이 병약하거나 아예 부인과 사별해버린 아버지들이 어린 자녀를 위해 젖동냥하러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남이지만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일이 흔했다. 서로 성별이 다르면 아예 결혼에 이르기도 했다.[17]

1.4. 현대

육아에 대한 인식과 지식 수준이 발달한 현대에는 직접 모유 수유를 못하더라도 미리 모유를 짜둘 수 있는 유축기가 있고, 여러 사정이 있어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상황에 대체하는 분유 등 현대문명의 산물들이 있어서 아기가 남의 젖을 먹고 자랄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현대의 유모는 보모의 의미가 더 강하다.

사실 이런 경향은 19세기부터 어느 정도 존재했다. 이 시기에는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정서상 좋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18] 그래서 이 시기부터는 어느 정도 돈 좀 만지는 중산층들이 주로 베이비시터 역할로서 유모를 고용했기 때문에, '유모=보모'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전근대시대에도 유모는 아기를 돌봤기 때문에 수유를 제외하면 보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대의 유모는 꼭 젖을 안 먹여도 유모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19세기 말엽부터는 나이 지긋한 여성들도 유모로 고용되기도 했다. 한 예로,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어린시절에 대해 회상하기를, 자신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재혼을 통해 들인 후처라서 자기 이복형과 동년배일 정도였으나(!), 정작 자기를 어릴 적에 돌봐주던 유모는 아버지와 비슷하거나 더 연상이었던 사람이어서,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어머니보다는 유모가 아버지와 더 잘 어울리는 사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회고했다.[19] 이 시기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있던 때로, 전통적으로 주로 집안일에 종사하는 경향이 컸던 여성들이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부쩍 늘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만 해도 보모 역할을 할 중노년 여성들을 고용했는데, 이 때문에 아이들이 유모를 보모에 준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다.

현대에도 부모가 다 바빠 애들을 키울 시간이 없거나 육체적으로 힘들 때 고용한다. 대부분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한 중년 및 노년 여성이 많이 하는데, 일단 중노년일수록 육아의 경험이 많고 불륜 같은 불미스러운 일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베이비시터를 항상 고용하는 문화인 서양에서는 아이 아버지와 젊은 베이비시터가 바람이 나서 이혼했다는 기사가 굉장히 흔하고, 요람을 흔드는 손같은 영화에서도 미모의 젊은 베이비시터가 남편을 유혹하여 가정을 파탄내는 존재로 등장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베이비시터인 주인공에게 남편이 반하자 이를 눈치챈 부인[20]이 주인공을 불러 떠나주기를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보통 나이 지긋하고 경험이 있는 보모(영미권에서는 '내니'라고 한다)는 엄연한 전문직으로 실제로 영국에는 보모 사관학교가 존재한다. 이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담당하며, 짬이 있는 보모의 경우 아이 엄마보다 훨씬 능숙하게 애를 돌볼 수도 있다.[21] 미국 등에서 고등학생~대학생 정도의 젊은 여자들이 용돈벌이 삼아 아이를 잠깐 돌봐주는 베이비시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특히 외국인의 경우 숙식을 제공받으며 이러한 일을 하는 경우에 오페어(Au Pair)라고 칭한다.

1.5. 창작물에서

서구권에서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에서 베이비시터[22]가 아닌, 본격적인 유모 캐릭터들은 거의 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대부분 유모 보다는 보모에 가까운 존재로서, 전근대시대에는 흔하던 젖형제에 대한 묘사도 없다. 처음부터 중노년인 사람을 고용했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이다.[23] 젊은 사람이 유모로 등장하는 몇 안되는 예외가 메리 포핀스지만, 여기도 실질적으로는 보모로 등장하며, 길바닥에서 떠돌이 악사로 일하는 버트라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주인공인 메리 포핀스 본인은 기본적으로 결혼도 안 한 처녀인 것으로 나온다. 19세기 이후로 유모를 보모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반영되다보니, 유모라도 아이들에게 젖 한번 물리지않는 것으로 묘사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창작물에서는 유모가 고용되었을때, 아이들의 나이가 이미 모유수유를 할 시기를 한참이나 넘긴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이렇게 온 보모 할머니가 사실 이혼당한 아빠라는 재미있는 역발상을 한 작품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역사상의 유모와 동일한 존재들이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제2의 어머니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나온다. 이는 실제 전근대시대 상류층들이 친어머니 대신 유모에게 자기 아이를 도맡아 키우게 하는 풍습이 반영된 부분인데, 그래서 종종 유모의 자녀들인 젖형제를 친형제처럼 여긴 것도 같이 묘사하여, 젖형제나 젖자매 사이끼리의 돈독한 우애가 강조되기도 한다. 때문에 아동 학대가 일어나는 막장 가족을 묘사할 때 유모를 자주 갈아치워서 아이가 정서적으로 기댈 곳을 갖지 못하게 하는 클리셰가 있을 정도. 또 이런 점 때문에 유모를 친어머니 못지않은 자애로운 캐릭터로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다는 설정 때문에, 캐릭터의 어리숙한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유모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도 주인공인 아이신기오로 푸이의 어린시절의 고독과 유약함을 부각시키고자 그의 유모와의 애틋한 관계를 보여주었다.[24]

간혹 자애롭다는 스테레오타입을 뒤집어 작중 최강자로 밝혀져 어마무시한 괴력을 발휘해 적들을 간단히 때려 눞히는 경우도 있다. 예시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로빈 훗의 등장인물인 클럭 부인이 있다.[25]

2. 삼국지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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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有(유) 모자이크

有(유) 자이크의 준말. 즉, 노모의 반대말이다. 각종 성인 대상 포르노물에서 검열을 위한 모자이크가 있음을 의미하는 속어. 노모에 비하면 비율이 적지만[26] 유모가 검색 금지어인 공유 사이트에서는 유재석이라고 쓰기도 한다.[27] 특정 사이트에서는 특정 정치인으로 쓴다.

통상적으로 유모의 포르노물은 특성상 딜도보다는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

4.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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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융커스의 엔진 제품군



[1] 영국 구어.[2] 19세기~20세기 존재했던 미국 흑인 여성 가정부 '매미'에 대한 번역어로 쓰이기도 한다.[3]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례는 심청전. 심청전에서 심청이 동냥젖을 먹고 자랐다.[4] 곡식이나 밤의 가루로 묽게 쑨 죽. 원시적인 분유라 할 수 있다.[5] 유아 시기를 넘기고 장성했다고 하더라도 죽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예를 들어 튜더 왕조헨리 7세에게 장성한 아들이 아서 튜더헨리 8세밖에 없었고, 아서도 결혼한 후 후계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헨리 8세 역시 왕이 되고도 28년이 지나서야 겨우 에드워드 6세를 얻었고, 에드워드 6세마저 자식 없이 죽어 결국 튜더 왕조는 엘리자베스 1세를 마지막으로 118년 만에 막을 내렸다. 헨리 8세가 첫 부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 소동을 벌이고 두 번째 부인 앤 불린의 목을 친 것도 여러 정치적 사정이 있었지만, 두 부인 모두 헨리 8세의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낳아도 사산되거나 요절하면서 후계 문제가 불안정해졌다는 점도 있었다.[6] 다른 이유로 사람을 "네발동물류"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반발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다.[7] 관련논문[8] 동물의 각인 효과처럼, 아기는 영유아기 시절에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본능적으로 부모라고 인식한다. 특히 잦은 피부접촉과 체향인식은 물론이고 섭식까지 해결해주는 수유는 가장 확실한 각인 효과를 보여주는 행위이다.[9] 에도 막부의 3대 쇼군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10] 친어머니 때문에 여성혐오증까지 생겼다고 한다. 특히 신분이 높은 여성을 싫어했고 그로 인해 정실부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다. 때문에 유모 카스가노츠보네와 이모 조코인이 이에미츠의 대를 이을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의 눈에 들 측실감을 찾아다녔다.[11] 작중 등장하는 아이들도 대부분 수유를 요하는 영유아보다는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 유아들이다.[12] 조건은 몸매와 젖의 색깔이 합격점에 들어야 했고, 온화한 성격을 가져야 했다. 유모가 온화해야 유모를 보고 자라는 아기도 온화한 성격을 가질 것이라 여겼다.[13] 맵거나 짠 음식을 먹지 말고 덥거나 추운 곳에 있지 말고 술 마시지 말고 합궁은 피해야 했다.[14] 단, 종1품은 성종 때의 일이며 세종대왕 때 종2품에 봉해진 것이 최초다.[15] 제국주의 시대만 하더라도 유럽 백인 지배층 가문에서 식민지 여성을 유모로 썼다가 해코지로 아이가 해하거나, 아이가 죽으면 그 범인으로 식민지 하녀나 유모가 지목되는 클리셰의 추리물이나 시대극이 많이 나온걸 보면 알수 있다.[16] 로잘리는 잔의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잘생겼다고 생각해 얼굴을 붉혔다고 묘사되는 등으로 그에게 호감은 갖고 있었으나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신분 때문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17] 2004년에 개봉한 영화인 첫사랑 사수궐기대회가 이에 대해 다뤘다. 주연을 맡은 차태현이 상대역인 손예진과 젖남매 사이다보니, 그녀와 무척 친하게 지내다가 아예 연심까지 품었다는 설정이다.[18] 그래서 이 시기에는 좋은 부모가 되는 육아법같은 류를 다룬 책이나 잡지가 인기가 많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단편 애니인 Donald's Nephews에서는 비록 부모는 아니지만 좋은 삼촌이 되려고 도날드 덕이 육아에 관한 책을 집에 구비해두고 있다가, 조카인 휴이, 듀이, 루이가 온 집안을 어질러놓으면서 말썽을 피우자 이를 틈틈이 읽는 장면이 나온다.[19] 여담으로, 이 유모는 프로이트가 아직 어릴 때 고용주인 프로이트의 부모 몰래 집 안의 물건을 도둑질하다 그의 큰형에게 발각되어서 경찰에 끌려갔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유모가 자신을 친아들처럼 귀여워하여 성심성의껏 돌봐줬기에, 그녀가 절도 혐의로 체포되면서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크게 슬퍼했다고 술회했다.[20] 정확히는 재혼을 앞둔 과부. 서로 아내와 남편을 사별하여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21] 단, 집안일은 안 하고 아이만 보는 경우는 베이비시터라고 한정해서 부른다.[22] 베이비시터들은 10대 소녀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티미의 못 말리는 수호천사비키가 대표적이다.[23] 영화 디 아더스를 보면 주인공인 니콜 키드먼이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역할을 맡기려고 밀스 부인이라는 노인을 유모로 고용했다는 설정이 나온다. 이 밀스 부인에게는 리디아라는 성인인 딸과 밀스 선생이라는 남편이 있긴 하지만, 리디아는 니콜 키드먼의 아이들의 젖자매가 아니라 그냥 집안의 하녀일 뿐인 것으로 나온다. 아예 처음부터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을 고용했기 때문이다.[24] 결국 아이신기오로 푸이의 유모는 푸이가 7살이 되자 궁중의 법도에 따라 강제로 출궁당하는데, 이때 유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강조되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25] 작품의 히로인인 메리앤 공주의 유모로서 그녀에게는 매우 자상한 면모를 보이지만, 메리앤의 남자친구인 로빈 후드존 왕의 손에 처형당할 위기에 몰리자, 직접 왕의 군대를 육탄으로 돌파하는 괴력녀이기도 하다.[26] 거의 대부분의 일본 av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굳이 검색할 필요가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27] 반대로 노모가 금지어인 경우에는 노홍철이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