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06:22:29

난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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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용어 문제3. 개념4. 연구5. 여담

1. 개요



원시시대결혼에 대한 가설이다. 평생을 함께할 짝을 이루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살아가는 것. 쉽게 말해 프리 섹스(free sex)다.

2. 용어 문제

사실 난혼이라는 용어는 '난' 자를 보면 알겠지만 표현 자체가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담겨 있다. 영어로 칭하는 Promiscuity도 그렇다. 애초에 사회진화론자 등이 난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난혼이 이상적이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난혼이 지금의 부계나 모계 사회보다 '진화가 덜 된'[1] 사회라는 맥락에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난혼(Promiscuity)은 말이 '혼'이지 실제로는 '프리섹스'에 가까울 정도로 욕망에 치중한 표현이다. 다양한 상대와 자유롭게(혹은 동시에) 만나고, 성적 관계 및 육아 공동체를 구성하며, 유대감을 유지한다고 하는 모든 사례들 및 가설들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소리이다. 그래서 지금도 거의 문란하다는 늬앙스가 많이 배어들어간 채로 사용된다.

3. 개념

사회진화론자들에 의해 19세기부터 주장되었다. 원시시대에는 결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집단내의 모든 이들이 근친상간이나 혹은 정절의 터부 없이 집단내에서 누구와도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는 단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확실히 아는 것이 불가능한 아버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출산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어머니가 중요한 모계 사회가 인류 사회의 진화의 첫 단계에 있었다고 한다.

모계사회와 결합된 난혼가설은 19세기의 유산으로 고전적인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원시시대에 '난혼'에 해당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딱히 모계사회론을 주장할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모계사회론을 부정하면서도 난혼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2] 모계사회론과 난혼가설은 별개의 것으로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난혼 가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지적들이 존재한다. 사실 원시시대의 문화에 대해서는 정보가 극히 모자라서 어떤 주장이든 가설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니깐 말이다. 한가지는 염두에 둬야 하는데, 난혼 가설을 부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일부일처제의 초역사적 존재[3]를 긍정하는 것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서술했듯이 난혼과 일부일처제 사이에도 많은 영역이 존재한다. 폴리아모리같은 사례나 개념들을 봐도 딱히 난혼과 동일시하기는 힘들다.

다만 학술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초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라는 명제는 사람들의 통념에 많이 스며들어 있고(보수적일 수록 더더욱), 일부 정치나 종교 집단에서는 공리처럼 취급된다. '지금과 같은 가정제도가 태초부터 존재했고 신성하다'라는 주장은 종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종교 내부에서 그 의견에 비판적인 신자나 교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공교육 역사과목을 비롯한 주류 역사학에서는 난혼가설(혹은 그와 유사한 주장)의 명제를 통설로 인정하고 넘어간다. 역사학의 특성상 이런 인류학적인 논제에 대해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청동기 시대계급 발생에 대해 다룰 때 계급발생-가부장제-결혼제도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즉 결혼제도는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지, 일부일처제 결혼제도가 인류의 탄생부터 존재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결혼제도가 등장한 원인을 조금 더 깊게 서술할 경우에는 고전적 난혼가설이나 현대적 난혼가설 등을 차용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일부일처제일부다처제의 약점을 보완한 결혼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일부일처제의 경우, 저출산 위험이 크다는 약점이 있고, 일부다처제의 경우 유전자 다양성을 저해할 수 위험성이 있는데, 난혼의 경우, 일부일처제만큼은 아니지만 결혼형태가 여러 가지가 되어, 유전자의 다양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4. 연구

20세기에 인류학이 발달되면서 이러한 가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검증이 이루어졌으며, 여러가지 비판과 의견들이 나오게 된다. 현대에 남아있는 원시 부족을 찾아가서 조사한 결과, 난혼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4] 따라서 난혼제 사회는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으며, 인류는 태초부터 결혼과 가족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인류학 역시 과학이기 이전에 이념에 바탕을 두므로, 기반을 두고 있는 이념에 따라 극히 다양한 의견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실험으로 재현할 수도 없고 고고학적 증거도 희미한 오랜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념 문제를 따지면 어떤 학문도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며, 현대에 남아있는 원시 부족에 대한 연구라는 근거가 있다.

또한 19세기 학자들이 원시 사회의 난혼제를 설명하면서 예로 든 영장류의 경우에도 이후의 동물사회학 연구에서는 난혼보다는 가족의 개념이 보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연구에서도 난혼제는 부정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가족의 개념이란 것도 정도의 문제이고, 가족의 개념과 "난혼"은 양립 가능하기도 하다.[5] 무엇보다 사람과 다른 영장류는 종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에도 한계는 있다.

심지어 유전적으로 거의 같은 종인 산악들쥐와 초원들쥐의 경우, 초원들쥐들은 대부분 일부일처제인데 반해, 산악들쥐는 대부분 난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의 수용체가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교미를 하고 나서 배우자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는게 아니라 불안에 떨면서 더더욱 다른 상대와 불륜을 하게 된다고 한다. 참고로 초원들쥐의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수용체를 강제적으로 산악들쥐에게 주입하면, 산악들쥐도 일부일처제를 이루고, 반대로 초원들쥐의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을 차단하면 난혼관계로 바뀌게 된다.# 늑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개는 대부분 난혼관계인데, 늑대는 대부분 일부일처제다.

참고로 조류의 대략 90%는 일부일처제를 실행하며, 조류 전체에서 대체로 약 10% 정도의 부성불일치를 보인다.[6] 하지만, 인간의 부성불일치는 1%에 불과하다. # 이를 근거로, 대부분의 인간이 본능적으로 일부일처제이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를 법적으로 강제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위에 언급된 것과 같은 친자확인 자료와 통계학적으로 조합해서 보더라도 조금 높아지기만 할 뿐 전체 인구의 4%를 절대 넘지 않는다. #

또한 문화적, 혹은 언어적인 차원에서 "난혼"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도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19세기와 21세기 학자들이 영장류를 연구하면서 난혼제에 대해 얻은 결론들이 상반되는 이유는, 단순히 19세기 학자들의 관찰 이론에 오류가 있었다거나 하는 문제로만 귀결되는 게 아니라 200년 가까이 흐르면서 "난혼"이란 단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장류 사회에서 보이는 가족의 개념은 인간 사회에서 보통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족의 형태에 비교했을 때는 일시적인 면이 강하며 그 이후에도 한 개체가 다른 가정을 다시 책임지는 일도 있는데, 사회 윤리가 훨씬 보수적이던 19세기 시각으로는 가족을 일시적인 관계로 취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난혼의 흔적임을 제시했으나 비교적 잦은 이혼 및 재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21세기 관점에서는 이를 반드시 "난혼제" 및 그 흔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본다.[7]

자연계에서 난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사회로 침팬지 사회를 흔히 꼽곤 하는데, 침팬지 암컷들은 딱히 반려자라는 개념이 없이 가능한 수컷들마다 저마다 교미를 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러한 방식은 원론적으로 수컷 간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정자 간의 경쟁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으며, 앞선 수컷이 남긴 정액을 전부 걷어내고 자기 정액을 대신 사정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근데 그러면 마지막에 하는 침팬지가 가장 확률이 높은 거 아닌가[8]

그러나 이 역시 사회적인 수준에서의 수컷 간 경쟁을 피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침팬지들도 어쨌건 권력의 차이, 서열의 차이에 따라 교미의 기회에 차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암컷 침팬지는 서열이 높은 침팬지들과 주로 교미를 하다가 가끔가다 서열 낮은 침팬지와 교미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혼제라고 해서 꼭 그렇게 "프리"한 섹스가 가능하다고 보장할 수 있지는 않다.

물론 법에서 제약을 해제하는 것과 제약을 느슨하게 묶는 건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저 기회에 차등이 달라지기는 한다. 경쟁에서 이긴 남자는 일부일처제든 난혼이든 많은 여자와 결혼하는 짓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경쟁에서 진 남성들은 일부일처제에서는 결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난혼에서는 서로 모여 한 여자와 결혼하는 짓이 가능하다.

다소 다른 시각에서는, 애초에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갖고 살아본 적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언제나 성매매, 처첩 제도 등을 통해서 일부다처제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비판적인 좌파의 계급적 시각에서는 남성들이라고 해도 다양한 계급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성매매 등의 성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가족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혼인'과는 별도로 논의돼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5. 여담

  • 한국의 소설가 이영도의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가가 이런 형태의 혼인을 유지하고 있다.
  • 미국SF 소설가 로버트 A. 하인라인1966년에 발표한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달 식민지의 가족구성 방식이 이 방식과 '일처다부제'이다. 본래 죄수 수용소이다보니 성비가 10:1로 여자가 부족했기에 이루어진 방식이라고.
  • 버프소녀 오오라에서는 주인공인 오오라가 자신의 고향인 레비아탄에는 남녀의 관계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다부다처제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언급했다. 사실 다부다처제는 새로운 것이 아닌 것이, 폴리아모리와 유사하다. 다만 폴리아모리 주의자가 제도적 결혼을 인정할 경우에만 다부다처제가 될 수 있다.
  • 플라톤은 '국가' 에서 이상적인 국가에 대해 논하다가 치안과 국방을 맡을 수호자 계급은 공정성을 위해 사유재산을 금지해야 한다면서, 혼인도 사람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행위니 금지시키고 수호자 계급의 남녀는 공동생활을 하며 수호자로서의 좋은 형질을 남기기 위해 공평하게 관계를 맺고 태어난 아이들은 공동육아를 해야 한다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매우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지구상에 이 말과 비슷하게라도 구현된 지역은 성적으로 매우 개방된 유럽 일부 지역 정도가 있겠으나 이조차도 혼외출산이 많다에 그칠 뿐이다.

[1] 어폐가 있는 표현인데, 사회진화론 항목 참조.[2] 모계사회론 자체가 가족의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원시적 난혼을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태초의 인류는 가족 개념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완전한 집단양육 방식으로, 남자는 물론 여자도 자신의 아이와 다른 여자의 아이를 차별하지 않고 같이 길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3] 성경 등에서 주장하는 인류가 태초부터 일부일처제였다는 주장.[4] 원시부족의 가족구조는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등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결혼상대가 아닌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것은 남녀 모두 엄격하게 금지된다. 예를 들어 여자가 적은 부족은 일처다부제를 하지만 아내가 2~3명의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은 금지된다.[5] 지금과 같은 결혼제도가 확립된 이후에도 인류는 일회성의 성관계를 (강간 포함) 소위 "혼외정사"의 형태로 분명히 지속해왔다. 여전히 태어나는 아이들의 70%는 배우자의 아이란 말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달리 말하면 30%는 혼외정사로 태어났단 얘기다. 인류와 달리 수천만년동안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어 살아온 일부 동물의 경우는 (가령 여우나 자칼이 이렇다.) 혼외자 비율이 거의 0%에 인접한다. 즉,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혼외자라는 현상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6] 반대로 포유류의 경우는 일부일처제를 실행하는 종들이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95%가 전부 난혼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포유류 중에는 다른 부류의 동물들에 비해 선천적으로 암수성비가 전혀 맞지 않는 종들이 많다. 이런 경우는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처럼 보이겠지만 난혼은 아니다.[7] 이에 대해서는 현생 인류의 생태는 "반복적 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로 설명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8]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자는 암컷의 몸 안에서 꽤 오래 생존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임신 자체도 수컷의 사정 직후에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난혼제를 택한 동물의 암컷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짝짓기 상대라는 개념은 모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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