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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초상화 |
대통령의 임기가 1년 정도 남았을 때 문화체육관광부와 작가협회에서 화가들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대통령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닌 사진을 바탕으로 초안을 그린 후에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여 그리며 완성된 초상화는 마지막 국무회의 때 설치한다. 본 행사를 '초상화 헌액게첩(獻額揭帖) 행사'라 부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퇴임 직전에 이루어지므로 현직 대통령의 초상화는 걸려 있지 않다.
(대통령이 재임 중인 정권의) 국정지표 | 태극기 | 대통령 사진 |
이는 문민정부까지 관행으로 지속되다가, 1998년 2월 25일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탈권위를 이유로 외교공관과 군부대 등 특수한 기관 일부를 제외하고는 게시 금지를 지시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현지인들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을 알려야 하는 재외공관과 장병들에게 군 통수권자를 강조해야 하는 군부대의 지휘관 사무실, 지휘통제실에만 소수가 걸려 있다.
2. 역대 대통령 초상화
2.1. 제1-3대 이승만
이승만 전 대통령 초상화 (1948.7.24. ~ 1960.4.27.) |
2.2. 제4대 윤보선
윤보선 전 대통령 초상화 (1960.8.13. ~ 1962.3.24.) |
2.3. 제5-9대 박정희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화 (1963.12.17. ~ 1979.10.26.) |
세간에 알려진 국장 영정과는 다른 그림인데 국장에 쓰인 그림은 정형모 화백이 그렸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형모 화백은 1975년에 1974년 8월 15일에 서거한 부인 육영수 여사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부탁을 받고 육영수 여사 초상화를 그린 이력이 있었다.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1979년 10월 27일 오후 문공부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영정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당시 정형모 화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두려운 감정이 앞섰으나 서거 4년 전인 1975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직접 만났을 당시의 느낌[6]을 그대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주일 동안 영정을 작업했다고 한다.
2.4. 제10대 최규하
최규하 전 대통령 초상화 (1979.12.6. ~ 1980.8.16.) |
2.5. 제11·12대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 초상화 (1980.8.27. ~ 1988.2.24.) |
2.6. 제13대 노태우
노태우 전 대통령 초상화 (1988.2.25. ~ 1993.2.24.)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다른 전직 대통령의 것과 다른데, 배경을 자세히 보면 봉황 한 쌍이 마주보고 있다. 후광이 비치는 듯 띠가 둘러져 있기도 하다. 김형근에 따르면 황금색은 '영원히 변치 않는 황금의 의미'에서 가져온 것이고, 봉황은 대통령의 상징이기 때문에 넣었다고 한다.
김형근 화백에 따르면 초상화 제작 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특별한 요구 사항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잘 부탁한다”는 인사만 남겼다고 한다. “청와대에 초청 받아 갔을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을 처음 봤지. 악수 한번 하고 그분이 나가려는 거야. 내가 ‘제 앞에 몇 번 앉아 주셔야 하는데…’ 라며 무례하게도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어. 사진만 보고 그릴 재주는 없었거든. 허허.”
김형근 화백은 “대통령의 초상화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고 했다. 다만 오래 보관될 작품이니 오래 보고 즐길 수 있도록 그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초상화 속 주인공이 늙는다 해도 고유의 인상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눈빛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눈빛이 아니고, 날카로우면서도 인자한, 묘한 눈빛이라 했다. 사진을 하도 뚫어져라 봐서 아직도 얼굴이 눈에 선하다고도 했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상화에서 ‘눈빛’을 표현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초상화는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차로 가져갔다고 한다.
2.7. 제14대 김영삼
김영삼 전 대통령 초상화 (1993.2.25. ~ 1998.2.24.) |
이원희 화백은 “당시 내가 대학 교수[9]라고 하니까 대통령이 대학 다닐 때 이야기를 했다”며 “친구들 술을 사주다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긴 얘기도 했는데 대통령이 저렇게 솔직해도 되는가 싶어 놀랐다”고 말했다.
이원희 화백은 초상화를 그리기 앞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부 결이나 작은 안면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세세하게 스케치할 수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피부가 아기처럼 곱고 입 꼬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고 한다.
여느 작가들과 달리 이원희 화백은 대통령에게 직접 초상화를 전달했다. “초상화는 넥타이와 배경색을 달리해 두 점을 그려갔어요. 마음에 드시는 걸로 결정하라고 말씀 드렸지요. 수정해 달라는 말은 없었고, 웃으시며 ‘좋다’고만 짧게 말했어요. 아마 임기 말에 터진 여러 가지 문제로 어수선해서 초상화를 자세히 평할 여유가 없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이원희는 밝혔다. 매입가는 1,500만 원 이었다. 이원희 화백은 지금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당초 계획보다 작업 기간은 늘어났지만 여러모로 자신의 ‘베스트’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2.8. 제15대 김대중
김대중 전 대통령 초상화 (1998.2.25. ~ 2003.2.24.) |
정형모의 기억으로 김대중은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고 진지하게 이어나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초상화는 사진을 보면서 2개월~3개월간 그렸다고 한다.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김대중은 하나 더 그려달라고 해서, 다른 하나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도서관에 걸었다고 한다. 가격은 2,000만원으로 거래되었다.
2.9. 제16대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 (2003.2.25. ~ 2008.2.24.) |
이종구 화백은 “초상화에 두 달 정도 시간을 쏟았으나 붓이 자유롭게 놀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했다. “초상화에서 부드러움과 카리스마, 편안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지기가 쉽지 않았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쌍꺼풀과 주름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게 부드럽게 표현했습니다. 넥타이도 원래 회색이었는데 젊은 대통령을 상징하기 위해 빨간색으로 바꿨죠.”
퇴임 10개월 전 2007년 4월 중순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서명도 하지 않은 미완성 초상화를 먼저 보내 평을 들었는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자신의 초상화를 30분 정도 꼼꼼히 살펴봤다. “머리칼이 너무 단정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피부가 지나치게 깨끗하게 표현됐다고도 하셨어요. 농촌 사랑방에서 담배 피고 농담하는 보통 서민으로 그려지길 바라셨는데…. 대통령이니까 ‘있어 보이게’ 그리려 했던 게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11]초상화는 퇴임 15일 전인 2008년 2월 9일 일반에 공개되었다. 가격은 1,500만원으로 거래되었다.
2.10. 제17대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 초상화 (2008.2.25. ~ 2013.2.24.) |
2.11. 제18대 박근혜
박근혜 전 대통령 초상화 (2013.2.25. ~ 2017.3.10.) |
보통 대통령 초상화는 대통령의 임기 말기에 그려서 퇴임 전 마지막 국무회의 때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는데, 재직 중 탄핵으로 인해 파면된 박근혜는 초상화를 만들게 된 과정이 달랐다.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서 탄핵 소추가 된 후, 대통령 탄핵 선고 2개월 전 2017년 1월 초 청와대로부터 이원희 전 교수에게 의뢰가 들어왔다고 한다.[13] 과거 다른 화가들은 독대를 해서 직접 당사자를 만나고 난 뒤에 그렸으나, 박근혜의 경우는 파면과 퇴임, 다시 구속되는 과정에서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청와대 관계자는 단 1장의 사진만을 건네고 그대로 그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다른 자료도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작품은 박근혜가 탄핵된 뒤 완성되지만 탄핵 인용 10일 후 2017년 3월 20일 청와대로 넘어갔고, 그로부터 3개월 후 6월 24일에 역대 전직 대통령과 함께 작품이 걸렸다. 이 때문에 정작 박근혜는 임기 4년 차에 터진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법정 구속이 되어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초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초상화가 미묘한 느낌이 든다는 세간의 평가에 이원희 전 교수는 “어떠한 의도를 갖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 자체는 힘이 있을 때의 밝은 모습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화가의 무의식 속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그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원희 화백은 “서로 시간이 안맞는다고 사진만 갖고 그리면 죽은 그림이 되기 쉽다”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는 만큼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했을 듯하다.
2.12. 제19대 문재인
문재인 전 대통령 초상화 (2017.5.10. ~ 2022.5.9.) |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작품을 소개하는 영상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 다만 이 화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 이 사진을 참고하여 그린 듯하다. 공식 초상화로 결정된 이후 다른 대통령 초상화와 비교해 두세 번의 보정 작업을 거치긴 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림을 가지고 작가의 거주지인 창원시에 왔다가 되가져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은 선물로 받은 그림이지만 그냥 제공하면 안된다고 작가를 설득하여 대금을 지급하였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거래 금액이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 지침상 예술작품 비용을 공개한 적이 없다. 다만 비용을 좀 아꼈다고 문재인 전 대통령 본인이 언급한 만큼, 일반적인 초상화의 거래가격보다는 다소 저렴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은 한국화를 선택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역대 대통령 모두가 서양화로 해 왔는데, 혼자 한국화로 결심하기가 어려웠다면서, 앞으로 대통령들이 초상화로 한국화를 선택하는 부분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초상화에 대해 나름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
MBC경남에서 초상화 제작에 대한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
2.13. 제20대 윤석열
관례를 따를 경우 퇴임 직전 2027년 5월 4일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공개될 것이다.3. 역대 대통령 공식 영정
제1-3대 이승만 전 대통령 영정[15] (1875.3.26. ~ 1965.7.19.) (향년 90세) |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영정 (1897.8.26. ~ 1990.7.18.) (향년 92세) |
제5-9대 박정희 전 대통령 영정 (1917.11.14. ~ 1979.10.26.) (향년 61세) |
제10대 최규하 전 대통령 영정[A] (1919.7.16. ~ 2006.10.22.) (향년 87세) |
제11·12대 전두환 전 대통령 영정 (1931.1.18. ~ 2021.11.23.) (향년 90세) |
제13대 노태우 전 대통령 영정 (1932.12.4. ~ 2021.10.26.) (향년 88세) |
제14대 김영삼 전 대통령 영정[B] (1929.1.14. ~ 2015.11.22.) (향년 86세) |
제15대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정[A] (1924.1.6. ~ 2009.8.18.) (향년 85세) |
제16대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B] (1946.9.1. ~ 2009.5.23.) (향년 62세) |
4.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반 초상화
제2대 박은식 임시 대통령 초상화 (1859.9.30. ~ 1925.11.1.) (향년 66세) |
제2대 양기탁 국무령 초상화 (1871.4.2. ~ 1938.4.19.) (향년 67세) |
제4대 안창호 국무령 초상화 (1878.11.9. ~ 1938.3.10.) (향년 59세) |
제8·9대 김구 국무위원회 주석 초상화 (1876.8.29. ~ 1949.6.26.) (향년 72세) |
[1] 차이점을 꼽자면 용산 대통령실에 걸린 초상화는 정순으로, 청와대에는 역순으로 걸려있다.[2] 사진은 청와대가 집무실로 사용된 시절이다.[3] 개성시 출신. 일제강점기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 유화를 전공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화여대 미술대학 교수가 되었다. 권력지향적 성격과 독보적인 그림 솜씨 덕에 정부 요인의 초상화, 정부의 공식 도안 등을 도맡아 작업했다.[4] 구한말 최후의 어진 화사였던 김은호는 친일 행적 때문에 대통령 초상화 화가가 되지 못했다.[5]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 이전에 대통령비서실에서 구입한 그림의 가격이 일괄 1000만원으로 처리된 점을 보면 실제 가격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다.[6] 인간적이고 수줍은 듯하면서 상대방의 가슴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7] 육영수의 초상화를 그린 후 청와대 전속 화가로 활동했다. 제일 유명한 건 박정희의 영정.[8] 참고로 1990년대 당시에 대통령을 독대하는 것은 대통령의 일가족을 제외하면 국무총리와 부총리, 안기부장 등을 비롯한 국무위원과 대통령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불가능했다. 심지어 문민정부의 분위기 상 각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도 만나주지 않았고 장성급들 중 참모총장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단독 대면보고가 가능했던 국군기무사령관의 독대는 1993년을 기점으로 아예 막혔다. 여기이 더해 재벌총수와의 만남은 아예 칼국수 회동으로 퉁쳐버렸을 정도. 다만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김현철이 소통령으로 군림하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9] 2008년에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장이었다.[10] 현재는 중앙대에서 퇴임했다.[11] 이종구 화가의 일반적인 화풍은 이렇다. 대통령 초상화와 비교해 보면 어떠한 느낌이 다른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떠한 느낌을 원했는지 비교가 가능하다.[12]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다. 2006~2008 계명대 미술대학 학장, 이후 서양화과 폐과에 따라 학교를 나온 것으로 보인다.[13] 문화체육관광부와 미술계의 추천→청와대 참모진의 검토와 보고→대통령의 결정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박근혜 초상화에 대해서는 약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추정이 있다.[14] 하필 검수완박이 최종 공포된 그 국무회의라서 그런지 이 초상화 공개는 언론과 대중에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15] 당시에는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던 시절이라서 현재는 보관되어 있지 않다.[A] 존영이 영정으로 그대로 채택되었다.[B] 기존 존영을 보정하고 영정으로 채택하였다.[A]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