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1 02:16:34

더글러스 헤이그

더글라스 헤이그에서 넘어옴

파일:BritishArmedForces.svg
영국군
원수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원수
Field Marshal / Admiral of the Fleet
Marshal of the Royal Air Force
육군
Army
<colcolor=#000,#fff> 헨리 시모어 콘웨이 | 윌리엄 헨리 | 조지 하워드 | 프레더릭 어거스터스 | 존 켐벨 | 제프리 에머스트 | 존 그리핀 | 스터드홈 호지슨 | 조지 타운센드 | 프레데릭 캐번디시 | 찰스 레녹스 | 에드워드 어거스터스 | 아서 웰즐리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 | 아돌푸스 프레더릭 | 윌리엄 프레더릭 | *레오폴드 1세 | 찰스 무어 | 윌리엄 하코트 | 앨러리드 클라크 | 사무엘 헐스 | *앨버트 공 | *빌럼 2세 | 조지 누겐트 | 토머스 그로스베너 | 헨리 파제트 | 피츠로이 서머싯 | 스테이플튼 코튼 | 존 빙 | 헨리 하딩 | 존 콜보른 | 에드워드 블레이크니 | 휴 고프 | 조지 윌리엄 프레데릭 찰스 | 콜린 켐벨 | 알렉산더 우드포드 | 윌리엄 곰 | 휴 로스 | 존 폭스 버고인 | 조지 폴록 | 존 포스터 피츠제럴드 | 조지 헤이 | *에드워드 7세 | 윌리엄 로완 | 찰스 요르크 | 휴 로스 | 로버트 네이피어 | 패트릭 그랜트 | 존 미첼 | 리처드 제임스 데이커스 | 윌리엄 파울렛 | 조지 찰스 빙엄 | 린톤 사이먼스 | 프레더릭 헤인스 | 도널드 마틴 스튜어트 | 가넷 울즐리 | 프레더릭 로버츠 | 작센바이마르제나흐의 빌헬름아우구스트 | 네빌 보울즈 체임벌린 | *빌헬름 2세 | 헨리 노르만 |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 | 헨리 에블린 우드 | 조지 화이트 | *프란츠 요제프 1세 | 프랜시스 그렌펠 | 찰스 헨리 브라운로우 | 허버트 키치너 | *조지 5세M | 폴 샌포드 메수엔 | 윌리엄 니콜슨 | 존 프렌치 | *니콜라이 2세 | 더글러스 헤이그 | 찰스 에저턴 | *다이쇼 덴노 | 페르디낭 포슈 | 허버트 플러머 | 에드먼드 앨런비 | 헨리 휴스 윌슨 | 윌리엄 로버트슨 | 아서 바렛 | *알베르 1세 | 윌리엄 버드후드 | 클라우드 제이콥 | 조지 밀른 | *알폰소 13세 | *히로히토 | 줄리안 빙 | 루돌프 램바르트 | 필립 체트우드 | 아치볼드 몽고메리매싱버드 | *에드워드 8세M | 시릴 데버렐 | *조지 6세M | 윌리엄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 | 얀 스뮈츠 | 존 딜 | 존 베레커 | 아치볼드 웨이벌 | 앨런 브룩 | 해럴드 알렉산더 | 버나드 로 몽고메리 | 헨리 매이틀랜드 윌슨 | 클로드 오킨렉 | 윌리엄 슬림 | *필립 마운트배튼M | 존 하딩 |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 제럴드 템플러 | 프랜시스 페스팅 | *마헨드라 | *하일레 셀라시에 | 리처드 헐 | 제임스 카셀스 | 제프리 베이커 | 마이클 카버 | 로널드 깁스 | *비렌드라 | 에드윈 브래멀 | 존 스테니어 | 나이젤 바그날 | 리처드 빈센트 | 존 채플 | *켄트 공작 에드워드 공자 | 피터 잉게 | *찰스 3세M | 찰스 거스리H | 마이클 워커H
해군
Navy
조지 레게 | 에드워드 러셀 | 조지 루크 | 클라우데슬리 쇼벨 | 존 리크 | 스태포드 페어본 | 매튜 에일머 | 조지 빙 | 존 노리스 | 샬로너 오글 | 제임스 스튜어트 | 조지 클린턴 | 조지 앤슨 | 윌리엄 롤리 | 에드워드 호크 | 존 포브스 | 리처드 하우 | 피터 파커 | 윌리엄 4세 | 존 저비스 | 윌리엄 윌리엄스-프리먼 | 제임스 갬비어 | 찰스 폴 | 찰스 에드먼드 뉴전트 | 제임스 호킨스-휘셰드 | 조지 마틴 | 토마스 비암 마틴 | 조지 콕번 | 찰스 오글 | 존 웨스트 | 윌리엄 게이지 | 그레이엄 하몬드 | 프랜시스 오스틴 | 윌리엄 파커 | 루시우스 커티스 | 토마스 코크란 | 조지 시모어 | 제임스 고든 | 윌리엄 보울스 | 조지 사토리우스 | 페어팩스 모르즈비 | 휴스턴 스튜어트 | 프로보 월리스 | 헨리 코드링턴 | 헨리 케펠 | 토마스 메이틀랜드 | 로드니 먼디 | 제임스 호프 | 토마스 시몬즈 | 알렉산더 밀른 | 찰스 엘리엇 | 알프레드 라이더 | *에드워드 7세 | 제프리 혼비 | 존 헤이 | *윌리엄 2세 | 존 코머렐 | 알프레드 어니스트 알버트 | 리처드 제임스 미드 | 앨저넌 라이언스 | 프레드릭 리처드 | 노웰 살몬 | 제임스 어스킨 | 찰스 호담 | 월터 커 | 에드워드 시모어 | 존 피셔 | 아서 윌슨 | *니콜라이 2세 | 제라드 노엘 |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 아서 팬쇼 | 조지 5세 | 윌리엄 메이 | 헤드워스 뮤 | 조지 캘러헌 | 존 젤리코 | 데이비드 비티 | 헨리 잭슨 | 로슬린 웨미스 | 세실 버니 | 도브턴 스터디 | 루트비히 마운트배튼 | 찰스 매든 | 서머셋 고프-칼소프 | 존 드 로벡 | 헨리 올리버 | 오스몬드 브록 | 로저 키이스 | 프레더릭 필드 | 레지날드 티릿 | 어른 챗필드 | 에드워드 8세 | 존 켈리 | 조지 6세 | 윌리엄 보일 | 로저 백하우스 | 더들리 파운드 | 찰스 포브스 | 앤드류 커닝햄 | 존 토비 | 제임스 서머빌 | 존 커닝햄 | 브루스 프레이저 | 앨저넌 윌리스 | 아서 파워 | 필립 비안 | 필립 마운트배튼 | 로드릭 맥그리거 | 조지 크레이지 | 루이 마운트배튼 | 찰스 램브 | 캐스퍼 존 | 바릴 베그 | 마이클 르 파누 | 피터 힐-노턴 | 마이클 폴록 | 에드워드 애쉬모어 | 테렌스 르윈 | 헨리 리치 | 존 필드하우스 | *올라프 5세 | 윌리엄 스태블리 | 줄리안 오스왈드 | 벤자민 배서스트 | *찰스 3세 | 마이클 보이스
공군
Air Force
휴 트렌차드 | 존 살몬드 | *에드워드 8세 | *조지 6세 | 에드워드 엘링턴 | 시릴 뉴월 | 찰스 포탈 | 아서 테더 | 숄토 더글러스 | 아서 해리스 | 존 슬레소르 | *필립 마운트배튼 | 윌리엄 딕슨 | 더모트 보일 |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 토머스 파이크 | 찰스 엘워디 | 존 그랜디 | 데니스 스포츠우드 | 앤드류 험프리 | 네일 카메론 | 마이클 비덤 | 키스 윌리엄슨 | 데이비드 크레이그 | 피터 하딩 | *찰스 3세 | 조크 스터럽H
비고 M : 해병대, H : 명예진급(비왕실)
※ 진급시기 기준 세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일된 1707년 이후 기준으로 서술
}}}}}}}}}
더글러스 헤이그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파일:영국 국기.svg 1차세계대전기 영국군의 장성급 장교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원수
Field Marshal/Admiral of the Fleet
육군
원수
허버트 키치너 | 존 프렌치 | 더글러스 헤이그
해군
원수
존 피셔
대장
General/Admiral
육군
대장
허버트 플러머 | 에드먼드 앨런비 | 줄리언 빙
해군
대장
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 공자 | 존 젤리코 | 데이비드 비티
중장
Lieutenant-General/Vice-Admiral
육군
중장
-
해군
중장
-
소장
Major-General/Rear-Admiral
육군
소장
-
해군
소장
-
준장
Brigadier/Commodore
육군
준장
-
해군
준장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윗 첨자 : 전사

}}}}}}}}} ||
Field Marshal
The Right Honourable[1]
The Earl Haig
KT GCB OM GCVO KCIE
파일:field-marshal-sir-douglas-haig-kt-gcb-gcvo-kcie-commander-in-chief-france-from-38befb.jpg
이름 Douglas Haig
더글러스 헤이그
출생 1861년 6월 19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사망 1928년 1월 29일 (향년 66세)
영국 런던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복무 기간 1884년 ~ 1920년
최종 계급 육군 원수
(Field Marshal)
지휘 올더숏 사령부
(Aldershot Command)
제1군단
(I Corps)
제1군
(First Army)
영국 원정군
(British Expeditionary Force)
본토군 총사령관
(Commander-in-Chief, Home Forces)

1. 개요2. 생애3. 평가

[clearfix]

1. 개요

영국 육군의 장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의 승전을 이끈 장군이지만, 동시에 솜 전투파스샹달 전투에서의 무의미한 손실로 인해 비난받기도 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2. 생애

헤이그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위스키 양조장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헤이그의 집안은 18세기부터 양조장을 운영해왔으며, 헤이그의 아버지 역시 연간 £10,000[2]의 수익을 벌어들일 정도로 부유했다. 하지만 헤이그의 부모님은 모두 헤이그가 18세가 되던 해에 사망했다.

헤이그는 이후 클리프턴 칼리지에 입학했고, 형과 함께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에 옥스퍼드 대학교 브라스노즈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 헤이그는 승마와 폴로를 즐기고 프리메이슨에 입문하기도 했다. 이후 헤이그는 졸업 시험에 합격했지만, 병으로 인해 학기를 놓치면서 학위를 받지 못했다. 샌드허스트에 들어간 헤이그는 다른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상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임관했다.

중위로 제7후사르연대에 배속된 헤이그는 미국을 순회한 후, 인도로 파병되었다. 인도에서 대위로 승진한 헤이그는 참모대학 입학을 준비했지만, 수학에서 낙제점을 받아 입학하지 못했다. 인도로 되돌아간 헤이그는 자신이 복무하던 기병대대의 부대대장을 지내다가, 영국으로 되돌아와 기병 감찰감의 부관이 되었다. 그리고 기병 감찰감의 도움으로 마침내 헤이그는 참모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참모대학에서 헤이그는 별로 인기 없는 사람이었고, 사냥 클럽에서도 에드먼드 앨런비에게 회장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참모대학을 졸업한 후, 헤이그는 이집트로 파견되어 허버트 키치너 장군의 밑에서 마흐디 전쟁에 참전했다. 마흐디 전쟁 초기에 헤이그는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전투를 관전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후 헤이그는 이집트 기병여단의 참모장교로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냈고, 부상자 구출에 힘써 주변에서 빅토리아 십자무공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믿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옴두르만 전투 당시 기병대대장으로 예비대에 소속되어 있던 헤이그는 이후 임시 소령으로 승진했다.

헤이그는 전쟁성의 자리를 원했지만, 존 프렌치 장군이 지휘하는 제1기병여단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곧 정식 소령으로 진급했다. 곧 헤이그는 여단 참모장으로서 제2차 보어 전쟁에 참전했고, 지역 중령으로 진급함과 함께 기병사단의 부참모장이 되었다. 이후 헤이그는 잠시 제3기병여단장을 지낸 후 기병사단의 참모장이 되었고, 기병사단이 해산하자 지역 준장으로 진급해 게릴라 부대를 상대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의 로비를 통해 제17창기병연대장을 맡은 헤이그는 자신의 부대와 함께 남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헤이그는 임시 대령 계급을 받았다.

이후 헤이그는 계속해서 제17창기병연대장을 지내던 중, 인도 기병대 감찰감으로 임명되어 인도로 돌아가게 되었다. 인도에서 당시 최연소 소장으로 진급한 헤이그는 영국으로 돌아온 후, 폴로 경기에서 만났던 도로시 비비안과 결혼했다. 전쟁성 총참모부 군사훈련국장에 임명된 헤이그는 당시 할데인 개혁에 따라 새로운 영토군의 창설과 현역 군대의 재편을 주도했다. 헤이그는 참모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기존에 사령관이 자신의 참모장교를 지명하던 관행 대신 할당된 참모를 데려가도록 했다.

전쟁성에서 일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은 헤이그는 인도군 총참모장에 임명되었고, 중장으로 진급했다. 인도에서 헤이그는 대규모 전쟁 시 인도군을 파병하기 위한 계획을 구상했으나 이는 총독에 의해 거부되었다. 영국으로 돌아와 올더숏 사령관에 임명된 헤이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원정군이 편성되자 제1군단장으로 프랑스에 파병되었다.

헤이그는 전쟁 초기에 제1군단을 이끌고 우세한 전력을 가진 독일군을 막아냈으며, 영국 원정군의 확장과 함께 제1군사령관에 임명되고 대장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헤이그는 보병의 높은 사상률에 충격받아 공격 작전을 자제한 프렌치 총사령관에 의심을 드러냈고 정치적 공작을 통해 프렌치를 해임시켰다.

프렌치의 후임 총사령관이 된 헤이그는 솜 전투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영국군은 솜에서 첫 날에만 영국군 19,240명이 전사하고 35,49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3]를 입었고 전략적 목표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지만, 장기적으로 독일군을 소모시켰으며 피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참호전 능력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얻었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수상에 취임한 후, 로이드 조지가 영국 원정군을 프랑스군 휘하에 두려고 하면서 1917년 당시 원수로 진급했던 헤이그와 갈등을 일으켰다. 그러나 니벨 공세의 대실패 이후 프랑스에서 혼란이 지속되자 로이드 조지는 프랑스와의 협력을 재고했고, 헤이그는 파스샹달 전투를 기획한 후 실행했다. 그러나 파스샹달 전투에서의 손해에 경악한 로이드 조지에 의해 헤이그의 뒤를 받혀주던 윌리엄 로버트슨 제국총참모장이 사임하게 되었다.

하지만 본토에서의 지원이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이그는 다시 캉브레 전투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캉브레에서 영국군은 대규모 기갑세력의 집중 운용으로 초기에 성과를 냈지만, 곧 성과를 모두 잃었다.

루덴도르프 공세 초반 영국군은 제5군이 일시적으로 해산하기까지 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결국 헤이그는 페르디낭 포슈의 연합군 총사령관 임명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독일군은 제2차 마른 전투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영국군은 백일 공세 당시 큰 성과를 내면서 승전을 이끌 수 있었다.

종전 직후 로이드 조지는 헤이그에게 자작의 작위를 제안했지만, 헤이그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헤이그 백작, 다윅 자작과 버윅 카운티의 배머사이드의 헤이그 남작(Earl Haig, Viscount Dawick and Baron Haig, of Bemersyde in the County of Berwick)에 서임되었다. 영국 원정군의 해산 이후 헤이그는 잠시 본토군 총사령관을 맡은 후 1920년에 퇴역했다.

퇴역 이후, 헤이그는 영국 군단을 조직해 궁핍한 상이군인을 돕기 위한 활동에 전념했으며,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의 총장을 맡았다. 그리고 6촌의 죽음으로 헤이그 클랜의 족장 자리를 계승받기도 했다.

헤이그는 1928년 6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작위와 가문의 당주 자리는 헤이그의 네 자식 중 유일한 아들이었던 조지 헤이그가 계승했다.

3. 평가

종전 직후 헤이그는 공개적으로 찬사를 받았으나, 솜과 파스샹달에서의 사상자 수가 주목을 받으면서 비판을 받아 솜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윈스턴 처칠 역시 헤이그에 비판적이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리델 하트 역시 헤이그를 매우 비판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도 주당 사상자는 비슷했고 오히려 같은 지역 출신을 같은 부대에 배치하던 당시 영국 육군의 제도에 의해 과장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헤이그가 사용한 소모전 전략은 당시 가능했던 유일한 전략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동시에 무능한 장군들을 후원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그리고 헤이그는 신기술에 도입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도입된 신기술의 사용을 권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공군전차의 후원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1] 백작 본인에 대한 경칭[2] 2018년 기준으로 약 £1,160,000에 이르는 금액이다.[3] 즉 사단 3개분의 병력이 불구가 되거나 전사했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