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9:30:41

덕수궁 흥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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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4호 덕수궁
<colbgcolor=#e3ba62> 덕수궁 흥덕전
德壽宮 興悳殿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정동)
건축시기 1896년 (창건) / 1901년 (이전 중건)
1921년 (철훼)
파일:덕수궁 흥덕전.jpg
<colbgcolor=#e3ba62> 덕수궁 흥덕전
1. 개요2. 역사3. 구조

[clearfix]

1. 개요

덕수궁의 빈전이다. 빈전은 왕비, 대비가 죽은 후 발인할 때까지 을 모시던 곳이다.

덕수궁 서북쪽, 지금의 구세군회관과 덕수초등학교 맞은 편에 있었다.

2. 역사

1896년(건양 원년) 2월, 아관파천으로 고종경복궁을 떠났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환궁할 곳을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1]으로 정했다. 그런데 경운궁은 애초 임진왜란선조가 머물 곳이 없어 월산대군[2]과 그 주변 민가 몇 채를 아우른 임시 이었기에 인조 때 거의 대부분의 건물을 원 주인에게 돌려준 상태였다. 따라서 그런 경운궁에 머물려면 대공사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1896년부터 경운궁 공사를 시작했다.

이때 흥덕전은 빈전으로 덕수궁 서북쪽에 지어졌다.
파일:경운궁 영성문.jpg
<colbgcolor=#e3ba62> 선원전 영역의 정문이 된 영성문. 순명효황후(당시 황태자비)의 국장 때 촬영한 사진이다.
그런데 1900년(광무 4년) 화재로 선원전 건물과 안에 모신 어진이 전부 불탔다.# 1년 뒤 복구했는데 원래 자리에 다시 짓지 않고 경운궁 서북쪽에 있는 영성문(永成門) 안쪽의 수어청 자리에 새로 건립했으며 어진은 각 지방에 흩어진 그림을 모사[3]하여 봉안했다.이때 흥덕전 영역이 선원전과 겹쳐서 흥덕전을 약간 이건한 뒤에 어진을 모사하는 곳으로 사용했고 이후 1903년명헌태후의 사망으로 문경전 서쪽의 희안전을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옮겨 혼전으로 사용했고 1904년(광무 8년)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의 첫 번째 아내 순명효황후 민씨가 사망하자 문경전을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의효전으로 옮겨 지어 혼전으로 사용했고 흥덕전도 이때마다 빈전으로 사용하는등 주로 이 일대는 제례 기능을 담당했고 영성문을 국상 행렬의 주 출입문으로 사용해서 선원전 영역을 속칭 '영성문 대궐(永成門 大闕)'로 불렀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남아있었지만 1919년 고종승하한 이후 일제가 1921년에 덕수궁(경운궁)의 선원전을 옮겨다 창덕궁 서북쪽 옛 대보단 자리에 짓고 새로운 선원전으로 사용하게 하면서 흥덕전은 같이 헐리고 만다.
파일:AKR20180801153000005_02_i_P4.jpg
<colbgcolor=#e3ba62> 선원전 터에 들어선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
부지는 조선저축은행, 경성일보사 소유로 넘어갔다. 해방 이후에는 경기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섰다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소유했다. 2003년 6월 미국대사관 기숙사 건립을 위해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던 도중 덕수궁 선원전 터를 확인했다. 선원전 터를 용산구 미군기지 내 부지와 맞교환하기로 합의하여 2011년 다시 한국이 소유했다.
파일:고종의 길.jpg
<colbgcolor=#e3ba62> 고종의 길
이후 미국 대사관저와 선원전 부지 사이에 경계벽을 설치했다. 2017년에는 선원전 터 내에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걸었던 것으로 보이는 '고종의 길'을 완공하여 일반에 개방했다.[4]
파일:덕수궁 선원전 복원계획.jpg
<colbgcolor=#e3ba62> 덕수궁 선원전 복원계획을 담은 그림
문화재청은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선원전(璿源殿)과 빈전인 흥덕전, 혼전인 흥복전 등 주요 전각과 부속 건물(54동), 궁장(宮牆) 등을 복원할 계획을 수립했다.#

2024년 7월, 흥덕전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흔적들이 발굴되었다. 왕실의 주요 장례 때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빈전으로 주로 사용했던 흥덕전의 대문에 해당하는 흠사문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 옆으로 나무 기둥이나 벽이 들어섰던 자리가 선명하게 발견했다. 대문 주변의 좁은 도랑의 물이 빠져나가도록 만든 배수로도 확인되었다.

여담으로 사진에서 보다시피 흥덕전 마당에는 회화나무가 있었는데 현재까지 그 나무 그대로 존재한다.

3. 구조

흥덕전 본채는 정면 5칸,측면 3칸의 건물로 부속건물은 본채를 둘러싼 9자형의 행각과 본채와 내대문인 소안문의 사이의 복도각 및 외대문인 흠사문의 옆에 있는 정면 6칸,측면 2칸의 재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1] 지금의 덕수궁.[2] 성종의 형.[3] 摹寫. 베껴 그리다.[4] 다만 해당 길에 대한 논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