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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제124호 덕수궁 | ||
<colbgcolor=#e3ba62> 덕수궁 구성헌 德壽宮 九成軒 | ||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5-1) | |
건축시기 | 1899년 이전 (창건) / 1914년 이후 (철훼) |
<colbgcolor=#e3ba62> 1902년의 구성헌. 분홍색 원 안이 구성헌이고 오른쪽의 2층 전각이 중화전이다. |
구성헌 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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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덕수궁의 건물이었으며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석조전 바로 뒤에 위치해있었다.덕수궁은 근대에 지은 황궁이니만큼 서양식 건물, 양관(洋館)이 여러 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구성헌이다. 러시아 제국의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1]이 설계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2. 이름
'구성(九成)'은 《서경(書經)》 - 〈익직편(益稷篇)〉에 나오는, "소소[2]의 음악 9곡을 연주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춘다(簫韶九成 鳳凰來儀)"는 구절에서 따왔다.#현판의 글자는 북송의 문인이자 관료인 소식(소동파)의 글씨를 모아서 만들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한다.
3. 역사
정확한 창건 연대는 모른다. 다만 1899년(광무 3년) 3월에 아펜젤러가 촬영한 사진에 건물의 모습이 보이기에 그 이전에 세운 듯 하다.<colbgcolor=#e3ba62> 아펜젤러가 촬영한 구성헌의 사진. 붉은 원 안이 구성헌이고, 푸른 원 안의 글은 앞쪽 한옥의 해관 건물을 설명한 글, 'Custom House' 이다. |
<colbgcolor=#e3ba62> 《더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에 실린 경운궁 약도. 푸른색이 구성헌과 설명, 노란색이 석조전과 설명이다. |
<colbgcolor=#e3ba62> 1900년 경 러시아공사관에서 촬영한 경운궁 사진에서 구성헌 부분을 확대한 모습(붉은색 원 안). 오른쪽의 한옥 문은 대안문(현재 대한문)이다. |
1904년(광무 8년) 4월에 일어난 경운궁 대화재로 대부분의 경운궁 주요건물들이 불탔으나, 구성헌은 무사했던 듯하다. 그 해 11월에 고종이 살아남은 건물들 중 하나로 구성헌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colbgcolor=#e3ba62> 1907년 9월 30일 자 《대한제국 관보》. 노란색으로 칠해진 글자가 구성헌이다. |
3.1. 철거
현재 구성헌은 없다. 철거된 시기도 모른다.일본인 오다 쇼고(小田省吾)가 1938년에 편찬한 《덕수궁사(德壽宮史)》에 ‘석조전을 지을 때 그 부지 안에 들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적었다. 그래서 구성헌이 석조전 공사를 시작하면서 사라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틀렸다.
석조전의 공사를 시작한 것은 1900년(광무 4년)부터였다. 그런데 위의 역사 문단을 보면 알 수 있듯, 구성헌은 1907년(융희 원년)에도 존재했다. 이것만 봐도 《덕수궁사》의 내용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colbgcolor=#e3ba62> 《더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에 실린 경운궁 약도. 푸른색이 구성헌과 설명, 노란색이 석조전과 설명이다. |
<colbgcolor=#e3ba62> 히노데 상행에서 펴낸 《조선풍속풍경사진첩》에 실린 덕수궁 일대 | <colbgcolor=#e3ba62> 왼쪽 사진에서 석조전 동쪽을 확대한 사진. 붉은 색 원 안에 구성헌의 기둥이 보인다. |
그러나 석조전을 완공한 후 구성헌을 사용하긴 힘들었다. 그야말로 정말 딱 붙어있어서 건물이 석조전 그늘에 가렸기 때문이다. 아마 그게 철거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4. 구조
현재 구성헌 건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래서 후술할 내용들은 남아있는 사진을 토대로 유추한 것이다.- 남향을 하고 있다. 2층 건물로 전면 약 10.6m, 측면 약 9.7m에 약 115m²(35평) 정도의 작은 규모이다.#
- 정면은 1, 2층이 각각 6칸이고, 측면은 5칸이다. 정면 각 칸들의 폭은 대체로 비슷하나 왼쪽에서 4번째 칸만은 다른 칸에 비해 폭이 굉장히 좁다.
[1] Афанасій Іванович Середін-Сабатін. 1860 ~ 1921. 흔히 ‘사바틴’으로 부른다. 근대기 서울과 인천의 주요 건물들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을미사변 당시 현장을 직접 목격한 2명의 외국인 중 한 명이다.(다른 한 명은 시위대 지휘관이었던 미국인 다이(W. M. Dye) 대령.[2] 簫韶. 고대 중국의 순 임금이 지은 음악의 이름.[3] 당시에는 해관(海關)이라고 불렀다.[4] 아펜젤러가 세관이던 구성헌을 촬영한 시기.[5] 'New Unfinished Palace(새로 짓고있는 궁전)'이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