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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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후의 형체 캠페인 지식이다.2. 서문
// 선봉대 네트워크—보안-00 // 대칭_상태_검토_07.017831 // I. 레이대칭: 울란 탄의 생애 당시 위험한 비주류파로 여겨지던 진영이다. 울란 탄과 대칭론자들은 이전보다 우주의 본질적인 진실을 조금 더 이해한 듯 보이지만, 당시에 그들의 신념은 우려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맹조차 거의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빛과 어둠에 대한 다른 의견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무엇도 공식적인 선봉대의 원칙은 아니었으나, 실천의 세력 신조와 푸자리 진영의 입장은 전반적인 탑과 도시의 행동 양태에 훨씬 부합했다.*
실천의 세력 신조는 어둠의 본질은 탐구할 가치가 없으며, 우리는 어둠을 알아가기보다 어둠과 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가지론적 조항 또한 어둠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둘은 편리한 동반자이며, 우리는 오랫동안 어둠을 알아보려면 어둠에 잠식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견지를 고수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이론이 본질적으로 틀렸다고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 연구에 성공한 우리 동맹들이 노련하고 운도 좋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반면 워록 푸자리의 진영은 어둠도 도덕적 차원의 성향을 띠며, 어둠은 악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러한 도덕적 입장과 끊임없이 씨름해 왔다. 목적의 순수성에는 힘이 있다—악을 보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사람을 지켜주는 것은 의로운 일이지만, 이러한 방어 행위가 우리에게는 정의를, 상대에게는 악의를 부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다. 파국으로 이르는 길이다. 나는 이제 이런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믿는다. 푸자리의 어둠에 대한 꿈과 이해는 사실 목격자라고 알려진 존재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시 대칭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당시에 대칭을 인정하려면 어둠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체계적으로 바꿔야 했을 것이다—암흑기가 여전히 도시 시대에 어렵게 이룬 발전을 어지럽히고 있던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적인 어둠이, 영원히 처치할 수 없고, 우리의 빛 덕분에 영원히 존재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니? 그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두 힘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위안에 가까운 느낌까지도 받곤 한다. 여행자가 부상을 당하고 생존을 위한 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때 이 깊은 미지의 물속에서도, 우리의 미래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으며 견줄 데 없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빛과 어둠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할 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
세인트-14는 진실의 명백한 측면을 굳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공식적인 철학적 입장으로 낼 필요가 없다고 항변하지만, 어쨌든 그의 입장은 가장 실용적인 편에 속한다.
3. 대칭
발신자가 다중 익명화되어 아이코라 레이에게 발송된 선봉대 네트워크 편지에서 발췌:…대칭론자들은 여전히 사회의 변두리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 규정은 아직도 우리 철학을 허용하기엔 위험하다고 하지만, 한편 우월한 지위의 수호자나 모두가 보는 곳에서 유혈 스포츠를 즐기는 수호자들은 어둠 기반의 능력 사용에 별다른 반감이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신나게 시공을 휘두르고 다니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회의가 재구성되거나 도시를 대표하는 다른 비군사적 통치 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대칭론자들과 그 제자 및 추종자들도 포함하는 동시에 수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실천의 세력이 어둠에 맞서 싸울 의무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한 워록의 달뜬 꿈에 근거해 정치적, 군사적 입장을 세우는 것은—네, 푸자리 진영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잘 말해줘 봐야 잘못된 리더십일 뿐입니다. 대변자님은 제외해야겠지만, 대체 언제부터 꿈이 증언으로 인정되었습니까? 푸자리가 여행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고 주장하려면 그에 합당한 입증을 하셔야 할 겁니다.
어둠이 타협의 여지 없이 도덕적으로 사악한 힘이라는 생각은 가망 없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니, 정책을 반드시 수정해야 합니다.그림자가 우리가 가는 방향을 가린다고 해서, 그림자에 도덕적 속성이 있다고 보나요? 햇빛은 길을 비춰 주니 본질적으로 선한 것일까요? 어둠과 빛이 생겨나려면 반드시 서로가 필요합니다. 설사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매일 밤 태양을 가리는 행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행위라고 해도, 선과 악 같은 개념의 정의는 여전히 서로의 관계에 의해 보완됩니다. 악이 뭔가요? 선하지 않은 것이겠죠.
빛과 어둠, 여행자와 목격자에게 알려진 초인과적 힘은 햇빛과 그림자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빛에만 집중하기로 하든, 두 가지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로 하든 어둠에 대한 이해는 꼭 필요합니다. 그 이해를 받아들이기 거부한다면 진실은 영원히 불분명해질 겁니다.
빛이 진정 어둠을 이긴다면, 그 패배는 우리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우리 최선의 희망은 어둠을, 또 빛과의 균형을 이해하고 우주를 바로잡을 완벽한 대칭을 찾는 데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사망한 선구자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로 읽을 수도 있겠죠. 울란 탄이 의심의 여지 없이 옳았다는 것을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거고요…
주제에서 벗어났군요. 순전히 실용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입니다. 어둠과 그 힘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더 이상 도시가 대칭을 대하는 입장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의 이론과 가르침이 책으로 출판되고, 우리 지지자들이 세상의 종말을 논하는 회의에서 환영받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으시다면, 이미 감시하고 계실 게 분명한 철학자 게시판으로 신호를 보내 주십시오.
4. 잡식성
말해봐라, 지금의 방랑자. 빛과 어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지? 넌 이 오래된 은하계를 방랑하다 돌아왔으니, 그 지혜를 발휘해 주먹질에만 관심이 있는 단순한 수호자에게도 쉽게 설명해 줄 수 있겠지?뭐… 그럴 수도 있겠지. 술 한 잔 사라고, 멋쟁이.
좋아, 말이 좀 통하는군.
빛과 어둠. 사람들은 점잔 뺀답시고 "논지" 어쩌고, "진영" 저쩌고 하는 말과 섞어 툭툭 내뱉곤 하지. "조항"이니 뭐니, 다 엿이나 먹으라 해. 내 생각엔 전부 시간 낭비야. 실전에서 정신없을 땐 죄다 별 차이도 없거든.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물론 창조와 파괴도 다르고, 태양의 힘과 시공의 힘도 다르지, 그래. 차이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느껴지는 느낌이 다르고, 그것들을 볼 때 보이는 것이 다르겠지. 하지만 차갑든 뜨겁든, 둘 다 온도라는 건 같잖아? 얼음은 온도가 차갑더라도 타오르지.
공허 빛을 들어보자고, 알겠어? 당연히 알겠지. 예전에는 다들 그게 너무 어둠에 가깝다고 생각했어. 도대체 왜? 보랏빛이라서? 중력을 좀 휘게 만들고, 탄약 좀 소모하면 갑자기 다들 비판한답시고 한마디씩 나불거리지.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허로는 요리하기 어려워.
비유가 마음에 안 들어? 좋아, 좋아. 이건 어때? 불을 붙이든, 외골격을 죄다 부수든 노예가 죽는 건 어차피 똑같다고. 이해가 돼?
사람들은 빛과 친해.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존재라고 해서 빛이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지도 않아. 발사 기지에서 쇼 한은 새로운 빛들에게 빛은 강아지보다도 위험하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그러니까, 빛과 어둠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깝다고 한 내 말은…
빛이든 어둠이든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널 잡아 삼킬 거란 뜻이야.
그게 바로 대칭이지, 안 그래?
5. 물질의 변화
리이스 철학자들의 글이 더 많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대피의 광란 속에서 시간과 공간은 제한되어 있고, 어마어마한 데이터의 양도 문제가 된다. 가장 먼저 없애야 할 것은 실용적 가치가 없는 자료들이다. 즉각적인 실용적 가치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 물론 예술과 철학은 민족과 문화에 필수적인 개념이며, 그 손실 또한 뼈저리게 통감하게 된다. 그러나 급한 상황에서는 예술로 에테르를 증류할 수 없고 철학으로 우주선을 움직일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한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선택해야 하는 냉정한 현실이다.
하지만 내게 일어난 일 때문에, 나는 서기관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요청을 내걸고 누구든 대답을 줄 수 있는 엘릭스니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려 한다. (냉정한 실용성을 발휘하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부드러운 감상이 솟아나는데, 마치 도태된 줄기 옆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다. 누구든 도저히 헤어짐을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랄까.)
내가 생각해 온 요점은 이렇다.
우리 엘릭스니와 인간 동지들은 서로 다른 토대 위에 빛에 대한 관점을 세웠지만, 그 결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개념이 생겨났다. 돌이켜보면 진작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항상 다른 문제에 신경 쓰느라 바빴다. 성물을 뒤쫓느라, 빛의 가문의 안전을 도모하느라. 피라미드 함대와 목격자가 불러온 종말의 임박에 대처하느라.
이제 나아갈 길 없는 사람들이 기다림과 희망을 품는 동안, 나는 철학에 눈을 돌렸다.
내가 계속 숙고해 온 것은 이렇다. 인간의 빛에 대한 관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는 한편, 엘릭스니의 빛에 대한 관점은 무언가가 다른 것으로 변화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두 관점은 겹치는 부분이 더 많다. 화성을 예로 들어 보자. 여행자는 인간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변화시킨 것일까? 궁극적으로 그 차이가 중요한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여행자가 정원사라는 생각이 도시와 탑의 인간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듯하다. 특히 "제막"의 문구를 읽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울 만하다. 정원은 그 자체로 변화의 과정이다—정원사는, 네 개의 손에 풍성히 흙을 쥐고, 이전에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무언가를 흙에서 이끌어낸다. 씨앗은, 적절한 자원이 주어지면 자라 나무가 되지만, 씨앗의 핵심은 새로운 성장의 중심에 남아 있다. 내게는 이 그림이 특히 흥미로웠다.
리이스의 엘릭스니는 여행자를 거대한 기계로 생각했다. 거대한 기계는 정원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에테르가 물처럼 자유롭고 풍요롭게 흐르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에테르는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기계는 존재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서비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렇게 한다. 에테르를 생성하려면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피할 수 없을 만큼 잘 알고 있다.
인류와 엘릭스니 둘 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 함께 미래로 걸어갈 때, 우리의 다양한 눈을 통해 본 빛의 여러 측면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계와 정원사, 여행자 모두.
—빛의 가문 서기 아이도의 일기 중에서 발췌
6. 보존
일부 엘릭스니에게 어둠은 물질이 아니고, 맞서야 하는 거센 파도나 악랄한 힘도 아니다. 그것은 충동이다.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고자 하는 충동.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내가 오랫동안 공유했던 의견이기도 하다.인간-수호자들은 적어도, 같은 어둠으로 전투에서 싸울 수 있고, 무기로도 다룰 수 있다고 여긴다. 어둠에서 비롯된 힘은 그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나는 그런 식으로 어둠을 불러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최근, 나는 그 속에 있는 것들의 기분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군. 나는 이제 어둠은 현탁액, 또는 끈적끈적한 교질액 같은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강의 흐름을 따라 흐르지만, 고체의 성질 또한 있다. 빠져나오기 힘들고 액체처럼 흐르지만, 그럼에도… 어둠 자체가 아닌 무언가가 있다.
오시리스를 깨어 있는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네자렉의 성물을 다시 한번 수집했을 때 나는 그 힘을 다시 받아들였다. 아직도 가끔 내 외골격 밑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 휘젓고 가라앉으며, 침전물을 움직이는 액체 같은 힘.
악몽에서 깨어나면, 마치 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 감각이 살아난다.
이제 인간들은 어둠을 물질이 아닌 의식의 힘, 연결과 흐름의 힘으로 이야기한다. 그 자체로는 악하거나 잔인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생각과 감정이 맞닿을 때 현이 뜯기듯 울리는 거라면, 그것이 움직이며 더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사용했던 이들, 그것에 자신을 내어준 이들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우리의 가장 사악한 충동의 목소리로 명명한 것도 놀랍지 않다. 나도 전보다 그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적이 소총을 들고 있다면 빼앗을 수 있겠지만, 방아쇠에 여전히 적의 손이 남아 있다면 어떨까? 다른 누군가의 생각에 이끌려 방아쇠를 당긴 적이 있다면? 방아쇠를 당기고자 한 생각이 결국 자신의 것이라고 믿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 일부도 어둠에 남게 될까? 어떤 부분이 남게 될까? 그 남은 일부가 나의 최선일 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나는 아이도에게 더 나은 것을 남기고 싶다.
—빛의 가문 켈 미스라악스의 개인 로그에서 덮어쓴 데이터 섹터를 부분적으로 복원한 내용
7. 친애하는 옛 친구
여기 슬픈 책이 있다. 꼼꼼히 읽어봐라.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해 주지.
토대의 바다. 반투명한 물결이 수면을 반사한다. 손을 담그면 유리처럼 투명한 액체가 파문을 그리며 따라온다. 깊이 잠수하면 그 무게가 스스로를 짓누르며,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워지고 도망칠 수 없게 된다. 그 깊은 곳에는 압력과 어둠만이 존재하며,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만 겨우 남게 된다.
아주 우아하지. 우리가 심해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어떨까?
창공의 섬세한 아치, 다시 반사되어 돌아가는 바다의 빛깔. 충분히 높이, 멀리 날아올라 – 미끼 별을 피하고, 바람에 둥실 떠다니는 장막 같은 포식자들을 피하면 – 그곳에도, 어둠이 있다. 별과 별 사이의 빈 공간에서는 무엇이 살아남을까?
발톱을 세워 올라간 존재만이 살아남는다.
하늘이 우리를 원했다면, 더 손을 뻗어주어야 했다.
이제 나는 빛으로 풍요로워졌다. 벌레가 파고들었던 빈 공간을 빛이 채우고 있다. 기억을 되찾고 나서 생긴 사소한 문제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흉곽의 키틴질부터 날개의 비늘에 이르기까지, 내 본성은 변형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심해가 그렇게 다르다면, 어둠에서 빛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존재가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굳이 대답하지 마라.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8. 빈손
나는 고스트로서—게다가 사바툰의 고스트이기도 하니까, 그렇지—얼간이 같은 몇몇 놈들보다 빛에 대해 말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을 물었으니 말해주지.봐라, 지금쯤이면 악이 무엇이든 간에 너희 인간들이 싸우고 있는 게 악이라는 건 분명하잖아. 내가 협잡질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말라고, 친구. 하지만 이쪽에서 보면 재미가 덜하거든. "군체가 어둠을 쓰니까 어둠은 악하다."라고 생각하던 케케묵은 시절도 있었지. 하지만 이제는 어떤가? "군체가 빛을 사용하니, 빛도 악한 건 아닌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잠시 선과 악을 빼고 생각해 보자고.
군체에 대해 말해볼까. 우리의 군체. 나를 포함한 고스트 무리는 여행자의 더 나은 선택지에 진짜 기회를 주려고 한 거다. 벌레는 사라졌다. 빛은 남았다. 빛은 거기 남은 것들에 내려앉는데, 군체가 어떻게 해야 했겠어? 군체 놈들이라고 빛으로 재탄생하자마자 다들 극렬한 개인주의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건 아니야. 빛이 놈들의 어둠을 태워버린 것도 아니고, 실천의 세력 놈들이 지어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도 틀렸다. 그들은 계속 군체로 남았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야.
누구에게나 선택이 찾아오지. 언제나, 무얼 하든, 어디에 있든. 그 선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선택권이 없는 거랑은 달라. 군체는 벌레의 지배하에 있을 때도 선택권이 있었지—어쨌든, 최종적인 죽음은 많은 녀석들이 선택하고자 하는 대안은 아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여행자도 선택을 했다는 거야. 인간에게 그랬듯 군체를 일으켜 세우기로 했고, 도망칠 수 있는데도 머물렀지.
그 결정은 존중해. 여행자가 너희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도, 나는 그 뜻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그렇다면 빛의 군체는 지금 무슨 선택을 하고 있는가?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뭐든 간에, 이건 과거의 쉬운 이분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선이든 악이든, 놈들은 여전히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내가 선택했듯, 여행자가 선택했듯 말이지.
9. 악취
[선봉대 네트워크 암호화 라우터 보고 사항][A-마할//링크: C-용]
[메일-기록//0071292//발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징후는 그 징후를 만든 원인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발자국이 있으려면, 그곳을 걸어간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근 어둠을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힘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의 원인은 무엇인가? 붕괴의 도래, 군체와 그들의 어둠에 맞선 우리의 모든 전투는 정성을 들여 위장한 거짓 작전에 불과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어떻게 지금까지 인류의 적 중 누구도 빛을 휘두르며 다가오지 않았던 것일까?
불가능한 일이… 아닌데.
그렇다. 불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말하기엔 입맛이 쓰지만, 사실이다. 정말 음모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인류의 거의 모든 적이 어쩌다 보니 여행자에 대항하는 우주의 힘, 황금기를 끝내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데 사용된 그 힘을 손에 넣었을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사바툰은 속임수와 사기로 유명하다. 그녀가 빛을 받았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정말로?
정말로 어둠이 빛만큼 안전하다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우리의 최대 적이 우연히 어둠을 망토로 삼았을 뿐이더라도, 수호자들이 어둠에 손을 뻗어보라고 응원해 주는 게 진정 옳은가? 목격자가 안에 머물러 있는 의식의 힘을? 내가 보기에는 이보다 더 위험한 건 없어 보인다.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어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명확한 목적이 필요한 시기에, 그런 생각은 더 많은 의문과 불확실성만 불러왔을 뿐이다.
우리 모두 오시리스가 추방된 이유를 잊은 것인가? 그는 벡스에 집착하면서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마음껏 도덕성을 드러냈고, 벡스가 가져올 운명보다는 어둠을 택하겠다고 지껄였다. 당시 오시리스의 관점은 너무 위험했기에 결국 도시에서 추방당했고, 그의 귀환은 더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어둠과 싸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언젠가 평화가 찾아온다면, 인류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순위인 지금의 신조를 다시 검토할 날도 올 것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10. 집단
사후에 발견된 울란 탄의 글에서 발췌한 내용:…빛과 어둠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행자의 크나큰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때 존재하던 균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어둠과 빛이 동등해지려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큰 희생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행자는 고스트를 만들었고, 고스트는 수호자를 만들었다. 그 후, 여행자는 조용해졌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자도, 잠을 자는 거라 생각하는 자도 있었다.
인간이 큰 대가를 치르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이것을 부상이라 부른다. 부상에는 휴식이 필요하며, 치유를 위해 개입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받는 것처럼 간단할 수도 있고, 심각한 수술처럼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해도, 그동안 생기는 삶의 문제들을 다른 이들이 대신해 주어야 한다. 정중히 부탁한다고 문제들이 물러가 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크게 고군분투한 후 조용해졌다. 이게 다친 게 아니라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대변자는 여행자가 죽지 않았다고 했고,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여행자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잠들어 쉬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우리를 창조하느라 희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빛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즉 수호자의 빛과 고스트의 빛이 동일하며, 이는 다시 여행자의 빛과 동일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여행자의 빛 속에서 그 빛의 보호와 힘을 받은 이들이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우리 외에 누가 그렇게 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여행자가 치유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도 이 노력에 포함되는 일종의 행위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다면, 여행자의 보호를 받은 우리에겐 노력할 의무가 있다.
빛과 어둠을 생각하기 전에, 그 사실을 기억하라.
11. 손안의 새
네 생각에도 난 정도를 걷는 올바른 사람이랑은 거리가 멀 거야, 안 그래? 맞지? 봐, 너도 나 알잖아. 헌터는 수호자 세계의 고귀한 기사 역할이 아니라고.난 고지식한 인간이 아냐. 고지식은 자발라 몫이지. 난 어기면 안 되는 규칙은 죄다 어기고 아무도 지킬 거라 생각하지 않는 규칙은 지키는 놈이라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어둠에 간섭하고 싶지 않은 쪽이었어. 그런데 우리 셋 중에선 대체 손을 더럽힐 사람이 누구겠어? 명예로운 사령관, 현명한 마법사… 아니면 나인데?
어쨌든 계속 빛과 어둠이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곳에 다시 태어나서 그런지도 모르지, 지금은 전부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아닐지도 모르지만.
난 빛이 좋아. 그게 다야. 빛으로 뭘 해야 할 지 알지. 수백 년 동안 총에는 총알을, 마음에는 빛을 장착하고 이 오래된 태양계를 굴러다녔어. 까놓고 말해서, 마음의 빛도 없고 빚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나도 녹슬었군. 이걸 말장난이라고.
어쨌든. 여행자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야. 믿을 수 있지. 말도 별로 없고. 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냥… 우릴 위해 존재하잖아.
한동안 그 빛의 일부로 지냈잖아. 나와 여행자, 여행자와 나… 그리고 선댄스까지. 그래서 요즘은 감을 좀 잡았지. 내가 여행자 쪽에 편향되어 있긴 하니까 그 점은 잘 적어 둬.
하지만 난 어둠은 거의 알지 못해. 목격자를 제하면, 도대체 뭐지?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힘은 아니잖아. 나한테 어둠은 네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뒤에서 속삭여대는 군중처럼 보여. 관객일지 말썽꾼일지 모르지. 네가 깊은 인상을 남기거나, 분위기가 잘 흘러간다면 네 뜻대로 움직일 수도 있지. 하지만 널 위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어느 쪽이든, 그것에는 의존하고 싶지 않아.
신앙도 교리도 아니야. 내가 뭐 앉아서 사람들한테 여행자를 믿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거라고 전도를 하자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규칙이 있든 없든, 나한텐 빛이 더 맞아. 내가 살아온 삶, 내가 겪어 온 경험, 그리고 우리 예쁜 선댄스라면 뭐라고 했을지 생각해 보면 답은 빛이지.
난 여기서 선댄스를 생각해. 오로지 내 안의 빛이 날 이끌어주도록. 지금의 나는 예전 나의 고스트 같은 거지만—유령이란 말이야, 이해했지?—빛은 빛이야. 조금 다를 뿐,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 선댄스가 있어야 할 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 내 보겠어.
어쨌든,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뭐, 내가 네 아빠도 아니고… 네가 원하는 대로 믿도록 해. 그 믿음이 올바른 곳에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