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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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융합의 시즌 아이템의 지식이다.2. 냉동마취 77K
추위보다 더 차가운 것이 있습니다.그녀는 협곡 아래쪽의 사암 바위 뒤에 쪼그리고 앉아 절박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아래쪽 두 손을 맞잡고 꼭 쥐었다. 그 압력에 조금이나마 정신이 들고, 흉부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무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가오는 벡스의 금속 발이 돌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주로 사용하는 손을 들어올렸고, 융합자 건틀릿의 방추가 찰칵, 소리와 함께 제자리로 들어가더니 회전을 시작했다. 그녀는 빛이 주위를 둘러싸는 모습을 그렸다—
무기에서 발사된 탄환이 등 뒤의 바위를 때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돌아서자 바위는 갈라졌고, 한 순간, 그녀는 뜨겁게 날리는 모래와 숨 막히는 가루 속에서 군대와 맞섰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벡스의 조준선이 진홍색과 백색으로 번쩍이며 자신의 온몸을 뒤덮는 것을 보았다. 손을 흔들어 그걸 왜곡하자, 수백 발의 총탄이 사방으로 빗나갔다.
뒤쪽 허공에서 벡스 형태의 균열이 수십여 개 나타나는 것이 느껴졌고, 그녀는 모든 균열을 하나로 통합했다. 모든 벡스가 같은 장소에 실체화되었고, 하나의 금속 덩어리로 융합된 잔해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반짝이며 땅을 뒤덮은 적들을 바라봤다. 빛은 힘을 준다, 그녀는 생각했고, 이내 벡스의 일제 사격이 그녀 주위를 휘돌아 지나갔다.
손목의 건틀릿에서 띠링, 소리가 울리고 그녀의 앞쪽 허공에 작은 차원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손을 뻗어 보니 단기 피질 융합체 큐브의 익숙한 형체가 느껴졌고, 그녀는 손으로 그것을 짓이기는 모습을 그렸다.
벡스의 빨간색 눈에 섬광이 번뜩이고, 그들은 발을 맞춰 전진하며 보이지 않는 목표물을 찾았다.
그녀는 옆으로 비켜섰고, 그들은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갔다.
마지막 미노타우르가 쿵쿵거리며 협곡을 빠져나가고, 그녀는 다시 차원문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미스라악스에 대한 벡스의 지식을 손가락에 담았다. 그의 소형선이 얼음 위로 낮게 나는 모습을 유로파 벡스의 눈으로 보았다. 그녀는 벡스의 인식을 유리판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갈라져 산산이 조각나는 모습을 그렸다.
차원문 안에서 어둠의 실이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그녀는 실이 끊어지는 모습을 그리며 손을 꺼내려고 몸부림쳤지만, 실은 타르처럼 그녀에게 들러붙었다. 그녀는 그 실이 가혹한 빛 아래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녀의 피로 축축이 젖은 모래가 손을 감싸고 말라붙었다. 그녀는 빛을 보았지만, 느껴지는 건 온몸을 감싸고 얼어붙으며 단단히 옥죄어 오는 차가운 어둠뿐이었다.
멀리서, 벡스가 모두 고개를 돌렸다.
3. 벡스 신화배격자
…무기 메커니즘 내의 캐주얼 루프에 기반하여 추론해 보면, 발사 과정에서 시공간을 결속해서…어떤 전설은 영원히 남는다. 또 어떤 전설은, 어떠한 시련이라도 정복할 수 있고, 어떠한 적이라도 말살할 수 있고, 어떠한 신이라도 끌어내릴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순수한 의지로 인해 변형되고 다시 쓰인다.
신화배격자는 머나먼 시공간의 변방에서 온 벡스의 도구로, 미지의 이유로 인해 인간의 손으로 사용할 수 있게 조정되었다. 그 기원이나 작동 방식, 궁극적인 용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무기가 모든 것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4. 왕관분쇄기
"적군은 자신들이 왕이나 신이라도 되는 양 굴고 있다.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똑똑히 보여 주자." —칼리스토 인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낮은 주택 밖에 화물 수송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여행자의 오라에서 굴절된 빛이 거리에 낯선 그림자를 흩뿌렸지만, 오늘은 아무도 그림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건너편 적갈색 벽돌집의 이웃들은 이주 업체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가구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퇴역한 1세대 레드잭들이 기다란 골동품 의자를 운반하면서 내는 윙윙, 철커덕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레드잭을 쫓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기계음을 따라다녔다. 이들 레드잭에는 선봉대의 휘장이 찍혀 있지 않았다. 대신 일련번호와 함께 장기 보관 업체의 로고가 눈에 띄었다.
"얘들아, 위험하니까 저리 비켜 줄래?"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여성이 경고했다. 그녀의 작업복에는 레드잭과 같은 로고가 찍혀 있었고, 한쪽 소매에는 '소냐'라는 이름이 자수로 표시되어 있었다.
"거기 상황은 어때?" 그녀가 현관 안쪽을 향해 외쳤다.
"의자 두 개하고 장식장이 남았어. 군수품은 도시 방위군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건물 안쪽에서 다른 직원이 대답했다.
소냐는 한숨을 쉬고는 두 명의 아이들에게 경고하는 눈길을 던졌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 건물 현관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는 동료인 마론이 데이터패드로 물품을 분류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또 다른 1세대 레드잭 두 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론이 언급한 군수품은 규모가 상당했다. 가슴 높이까지 쌓인 탄약 상자와 페로플라스틱 가방, 방어구 더미, 그리고 튼튼한 천에 감싸인 채 단단히 묶인 커다란 검이 하나 있었다.
"이게 전부 집안에 있었다고?" 소냐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마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굉장하지 않아? 무기고를 하나 차린 것 같아."
"이것까지 직계가족에게 인도하는 건가?" 소냐가 물었다.
"가족이 없어." 마론은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데이터패드를 그녀에게 건넸고, 그녀는 표시된 물품을 검토했다.
"그럼 이건 어떻게 되는 거야? 왜 옮기는 건데?" 소냐는 목록을 살피며 물었다.
마론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건물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고 해서. 거기, 어, 엘릭스니 구역 근처에서 떠나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야. 그래서 여기 주인도 이 집을 정리하고 내놓으려는 거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집은 사람들도 좋아하잖아." 그가 머리 위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키며 과장된 몸짓으로 한 손을 뻗었다. "수호자가 살았던 집."
소냐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데이터패드에서 고개를 들었다. "진짜 전쟁 영웅이 우리를 위해 싸우다 죽었는데, 집주인이라는 작자는 그 사람의 공간을 팔아서 돈이나 벌려고 한단 말이야?"
"왜 나한테 그래?" 마론은 투덜거리면서 레드잭을 향해 돌아서더니 다음에 옮겨야 할 물품을 지시했다. "그녀가 탑에 살았었다면 거기에 제단이라도 만들어 줬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없어."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장식장을 옮기는 레드잭을 따라 거리로 나섰다.
생각에 잠긴 채 남겨진 소냐는 다시 데이터패드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한 가지 품목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후 왼쪽으로, 다시 아래쪽으로 밀었다.
[품목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소냐는 초록색 확인 표시를 클릭했다. 적어도 그중 한 가지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냥 보관소에 처박아 둬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언젠가 이 일의 후폭풍이 밀려올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때려치우면 그만이었다.
슬론도 그걸 바랐을 것이다.
5. 평정의 무효화
개시 또는 제압.다섯 명의 융합자가 검은 바위에서 튀어나온 작은 접속 지점 주위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접속 지점은 부드럽게 맥동하며 자신을 불러낸 권한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 데이터 스파이크를 단단히 벡스 도메인에 밀어넣었다.
융합자들의 의식이 소용돌이치며 네트워크로 들어서자, 그들은 즉시 주위의 색상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사냥당하고 있었다.
배제의 장막이 형성되어 그들을 추적하며, 통과하는 모든 데이터 평면을 지글거리며 불태웠다. '그레인학살자'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터뜨리며 굴레를 벗어나 은빛의 분열도형이 되었다. 배제의 장막은 조각조각 분열되어 그를 쫓았다.
'연대기켈'은 서늘한 파란색 필수 프로토콜의 탑을 회전시켜 무한을 향해 뻗어 나가게 한 후, 자신의 흔적을 복제하여 모든 가능성을 향해 한 번에 자신을 내던졌다. 도메인은 그의 움직임에 따라 덜컥거리며 끌려갔다.
'이상체'가 빛을 집중시켜 도메인에서 날뛰는 파문을 붙잡고, 밀어내고, 그 아래 깊은 곳의 암호를 갈라 틈을 냈다. '충돌'과 '부식'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부식'은 복제되는 데이터의 억눌린 실을 빛의 낫으로 흉포하게 찢었다. '충돌'은 도메인의 눈부신 심장으로 들어서 디컴파일하는 줄기를 붙잡고, 그것들이 접속된 그에게서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중앙으로 이동해서 정확한 실이 앞쪽에 나타나도록 의지를 집중했다.
모든 힘과 기술을 동원해서야 그걸 구부리고 1을 0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사이 그 일은 일어났다.
접속 지점이 소멸되고 다섯 명의 융합자는 다시 어두운 석실에 남겨졌다.
그들이 '충돌'을 돌아봤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안도하며 기쁨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벡스가 미스라악스의 딸 아이도에 관해 알고 있던 지식을 삭제했다.
'충돌'은 숨을 멈추고 거짓된 겸손을 담아 어깨를 으쓱했다. "위대한 자를 자극하면—" 그가 운을 뗐다.
"—여타의 자들처럼 소멸하는 법." '부식'이 그를 대신하여 말을 맺고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6. 융합 시즌 무기
6.1. 채도 쇄도
데이터 스트림을 들이키세요.엘릭스니는 어색하게 라면 가게로 들어가 빈자리에 걸터앉으며 팔꿈치 네 개를 바에 얹었다.
모리스는 고개를 들고 커다란 국물 냄비 너머를 바라봤다. 그는 괴상망측한 헬멧을 쓴 타이탄이 점심을 먹으러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우렁차게 "어서오세요!"라고 외쳤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바에 다가간 후에야, 그는 손님의 정체를 깨달았다.
금속판이 그 생물의 이마와 얼굴 옆쪽을 덮고, 그 끝에는 푸르스름한 안개가 피어오르는 분사구가 있었다. 두꺼운 캔버스 천과 금속 직물이 뒤엉켜 어깨 위로 늘어져 있었다. 목에 걸어 놓은 선봉대 목줄이 달랑거렸다.
엘릭스니치고 체격이 큰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몸을 웅크리고 바에 앉아 있는데도 그 각진 머리는 모리스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네 개의 푸른 눈 아래에 입술 없는 입이 있었다. 그것이 입을 열자 줄지어 있는 작고 날카로운 치아가 드러났다.
"라면 수프 하나," 엘릭스니는 부자연스럽게 끽끽거렸다. "부탁해요."
모리스는 숨을 참고 연필을 꽉 쥔 후 싱긋 웃었다. 그는 긴장할 때면 웃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엘릭스니도 그를 보며 싱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그 끔찍한 입을 열었다. "밖에서 라면 냄새를 맡았는데, 냄새가 너무 좋았어요." 그것이 말했다.
모리스는 바를 둘러봤다. 다른 손님들은 전부 꼼짝도 못 하고 앉아 있고, 그들 앞에 놓인 라면 그릇만이 소리 없이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모리스의 입이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멋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매운맛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별 0개부터 5개 사이에서 골라 주세요."
엘릭스니는 그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매운맛, 별 5개." 그것은 한 손을 들어 손톱 세 개를 펼친 후, 다른 손을 들어 손톱 두 개를 더 펼쳤다. "죽은 살점을 더 받을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모리스가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에서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부글거리는 국물 냄비를 향해 돌아섰다. 근육 기억이 몸을 지배하고, 그는 별다른 의식 없이 따뜻한 김을 피워올리는 라면 한 그릇을 그 생물의 앞에 놓았다. 엘릭스니는 기분 좋게 킬킬거렸다.
모리스는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식당 앞 도로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손님들 중에도 호기심이 공포를 극복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리스는 2번 좌석의 여자에게 물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그런 건 나중으로 미뤄 두었다.
엘릭스니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더니 다시 모리스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리스는 엘릭스니의 눈들 중 어떤 것을 바라봐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라면을 바라봤다. "어, 그냥 국수와 고기와 계란을—"
"계란." 엘릭스니가 낯선 어휘를 음미하듯 그의 말을 따라했다.
"—네, 계란. 젓가락으로 그걸 전부 먹으면 됩니다. 국물은 숟가락으로 떠먹고요." 엘릭스니의 거대한 손에 비하면 도기 숟가락은 너무 작았다. "아니면 그냥 그릇을 통째로 들고 마셔도 돼요."
모리스는 그릇을 들어 입술로 가져가는 것을 몸짓으로 보여주었다. 엘릭스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앞발로 얼굴의 금속 면을 두드리자 피어오르던 푸른 안개가 쉬잇 소리와 함께 멈췄다.
엘릭스니는 젓가락을 들고 무게를 시험해 본 후 조심스럽게 바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위쪽 손들로 그릇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라면 그릇 위로, 모리스는 엘릭스니가 네 개의 눈을 살며시 감는 것을 보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가게 전체에 내려앉았다. 날카롭게 반복되는 꿀꺽 소리만 침묵을 깨뜨렸다.
한참이 지나고 엘릭스니는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파란색 안개가 다시 분무되고, 그것은 숨을 들이쉬며 모리스를 바라보았다. "전부 맛보았어요." 그것은 만족한 듯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모리스의 긴장된 미소가 머뭇머뭇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네요."
엘릭스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자의 작은 모형 같아 보이는 것을 내밀었다. 모형은 엘릭스니의 손바닥 위에서 둥실 떠올라 희미하게 빛났다. "대가." 그것이 말했다.
모리스는 그 보물을 향해 손을 뻗다가, 그냥 그대로 거뒀다. "처음 오신 손님에게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말했다. "대가는 필요 없어요.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릭스니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달그락 소리를 냈고, 모형은 그의 망토 주름 아래로 사라졌다. 그것은 모리스를 보며 활짝 웃었다.
"당신은," 그것은 그르릉 소리와 함께 목을 가다듬은 후 다시 말했다. "당신은 정말—" 그리고 그 뒤에 힘찬 말을 쏟아냈다.[1]
뒤따라온 어색한 침묵 속에서, 엘릭스니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인 후, 가게 밖으로 나가 인파와 함께 도심을 향해 걸었다.
6.2. 점화 코드
"유탄 발사기만 있으면 뭐든 해독할 수 있어." —세인트-14아르하는 수송선에서 꺼낸 금속 상자를 얼기설기 세워진 엘릭스니 거주지로 끌고 갔다. 그는 영양실조에 걸린 동료들과 보조를 맞춰 천천히 움직였다. 그도 이동 중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워낙 체격이 커서 눈에 띌 것 같았다. 그리고 구원의 가문 이탈자의 옷을 입고 있어도 사기꾼이자 침입자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웠다.
지구에 접근하는 도중에 아르하는 압도되었다. 최후의 도시는 위쪽 거대한 기계의 무심한 형체에서 한 방울 떨어진 빛의 완벽한 파문 같았다. 아르하는 평생 처음으로 수호자에 관한 거미의 말이 틀렸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수송선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의심은 사라졌다. 엘릭스니는 수정처럼 빛나는 도시가 아니라 폭탄으로 폐허가 된 옛 교전 지역에서 바글거리며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거처는 지금 당장이라도 붕괴될 것만 같았다.
아르하는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수호자들은 정말 엘릭스니를 이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선봉대에게 짓밟히고 고철이나 뜯으면서 만족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미스라악스나 각성자가 키운 그의 자손, 그리고 '공허한 방직공' 같은 멍청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미의 묵인은 그렇게 쉽게 살 수는 없었다. 아르하 생각에는 거미가 아마 1년 내로 이 거주지를 소유하게 될 것 같았다. 늘 그렇듯, 빛의 가문의 관대함과 선의는 조만간 탐욕과 자만에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거미의 조직이 거점을 확보한 후에는 선봉대도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미광체로, 무기로, 에테르로. 그리고 피로.
6.3. 작별
"폭력에서 태어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여제 에프리디트비행_기록 // VG777-T // L-221
HG01: —집중 포화를 받았어! 잭스와 클레이드가 사라졌어! 난데없이 기갑단이 나타났다고! 우리 응답기 신호를 포착한 것 같아!
VSYS: 선봉대 우주선, ID 코드가 변조되었습니다. 다시 인증해 주십시오.
HG01: 금성 전진 기지에 비상 착륙해야 해!
VSYS: 다시 인증해 주십시오.
HG01: 다섯 번! 다섯 번이나 재인증을 시도했잖아! 이봐, 도약선은 손상됐고 지금 민간 수송선을 호위하고 있다고! 착륙을 허가해 줘!
VSYS: 허가가 거부되었습니다. 금성 전진 기지의 자동 궤도 방어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HG01: 안 돼! 당장 정지시켜!
VSYS: 수행할 수 없습니다.
HG01: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 같으니!
HG01: 계획을 변경하겠어! 헨넥 함장, 아직 듣고 있어?
CC03: 잘 들립니다, 수호자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기갑단 순양함이 바싹 따라붙었습니다!
HG01: 새로운 좌표를 보낼게! 단거리 도약을 몇 번 해야 해. 놈들을 따돌리려면 리—
비행_기록 // VG777-T // L-236
HG01: —직 작동할 거야. 아, 봤지! 초록색 불이 깜빡인다는 건 동력이 공급된다는 뜻이야.
UNK1: 이 우주선은 다시는 비행하지 못할 거다, 인간. 그런데 비행 기록 장치에 무슨 가치가 있지?
HG01: 일지를 써 본 적 없지?
UNK1: 써 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가치를 모르겠다.
HG01: 뭐, 지금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당신 아니면 저 친구뿐이잖아.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리프 출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몰락자 말은 할 줄 몰라.
UNK2: [미번역]
HG01: 무슨 말인지 알겠지?
UNK1: 그러니까 차라리… 혼잣말을 하겠다는 거군.
HG01: 바로 그거야. 자, 나 좀 도와줘. 주 동력을 차단해야—
비행_기록 // VG777-T // L-238
HG01: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어. 솔직히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네.
HG01: 당신은 괜찮은지 모르겠어. 도시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겠고.
HG01: 통신은 끊어졌고, 기갑단이 채널을 통제하고 있어. 각성자에게 도움을 받아 볼까도 했지만, 그 친구들은 오릭스에게 혼쭐이 난 이후로 우리와 기갑단 일에 끼어드는 걸 꺼리더라고.
HG01: 빌어먹을, 당신이 너무 그리워.
HG01: 우리가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이런 건 아무 상관 없어. 난 리프의 요리에 대해 불평하고, 당신은 내 전술적 선택을 비판하고, 그러다가 당신 팔에 안겨 잠들 수만 있으면… 이런 건 아무 상관 없다고.
HG01: 하지만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여기, 빛의 저편에서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다고.
비행_기록 // VG777-T // L-239
HG01: 우리는 죽은 궤도의 낡은 우주선을 피난처로 쓰고 있어. 공조 장치는 아직 작동하고 있고, 난방이나 방사선 차폐도 괜찮은 것 같아. 친절한 몰락자들이 큰 도움이 돼 주었어. 처음에는 그들이 각성자의 노예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니더라고.
HG01: 헨넥 함장은 결국 병을 이겨내지 못했어. 그 사람이 떠날 때 나도 곁에 있었어.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우린 그렇게 다르지 않군요."
HG01: [긴 침묵]
HG01: 당신이 여기 있으면 좋을 텐데.
비행_기록 // VG777-T // L-240
[항목 삭제됨]
비행_기록 // VG777-T // L-241
[항목 삭제됨]
비행_기록 // VG777-T // L-242
HG01: 케스크라는 몰락자가 동족이 만든 언어 변조기를 우리 비행 기록 장치에 연결하는 걸 도와주고 있어. 그들의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줄 거야. 그다음 그 장치에 내 도약선에 있는 음성 처리 장치를 경유시키면 대답도 할 수 있고.
HG01: 발음도 잘 못 할 텐데,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야 이쪽이 빠르겠지.
비행_기록 // VG777-T // L-243
HG01: 오늘이 우리 기념일이었지. 우리가 같은 별들을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비행_기록 // VG777-T // L-244
HG01: 여행자.
UNK2: <<거대한 기계.>>
HG01: 어, 좋아.
HG01: 가족.
UNK2: <<범선.>>
HG01: 그래, 여기가 막다른 곳이야. 어근을 한번 정리해 볼까? 몰락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겠어.
UNK2: <<엘릭스니.>>
HG01: 맞다. 미안. 엘릭스니.
비행_기록 // VG777-T // L-245
[항목 삭제됨]
비행_기록 // VG777-T // L-246
HG01: 꿈을 꿨어… 기억의 기억 같은 느낌, 알아? 하지만 맹세컨대, 잠에서 깰 때 당신 웃음소리를 들었어.
HG01: 빛이 없는 것도 힘들지만, 가장 힘든 건…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환상통이야.
HG01: 내 일생이 환각지처럼 느껴져.
비행_기록 // VG777-T // L-247
HG01: 빛.
UNK2: 빛.
HG01: 이게 왜 놀라운 건지 모르겠네.
UNK2: <<우리는 모두 빛에서 벼려졌다.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HG01: 그래.
UNK2: <<당신과 나, 우린 그렇게 다르지 않다.>>
HG01: 왜… 왜 그 얘기를 하는 거야?
UNK2: <<우리 삶은, 우리가 한때 살았던 삶의 그림자 속에 있다. 우리가 죽으면, 그것이 우리 이야기의 끝이다.>>
[긴 침묵]
HG01: 그거… 말 되네.
UNK2: <<많은 것들이 그렇다,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진짜로 듣는다면.>>
[긴 침묵]
HG01: 땅파기.
UNK2: <<땅파기.>>
비행_기록 // VG777-T // L-248
[항목 삭제됨]
비행_기록 // VG777-T // L-250
HG01: 난 지구로 돌아갈 거야. 여기 주민들이 민간인들을 돌봐 주기로 했어.
HG01: 당신을 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여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어.
HG01: 내가 당신을 찾는다면, 이걸 들을 일은 없을 거야. 그러지 못하고, 또 내가 살아남는다면… 여기 있으면서 난 참 많은 것들에 눈을 떴어. 이제— 더는 이렇게 싸울 수 없어. 당신 없이는 안 돼. 목성의 위성 너머에 작은 평화주의자들의 공동체가 있어. 난 거기 있을 거야.
HG01: 내 보조 무기는 케스크에게 맡겼어. 당신이 날 찾으러 오면 당신에게 주라고 부탁했어. 혹시 당신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되면, 선봉대에 보내 달라고 했어.
HG01: 난 이제 필요 없어.
HG01: 내게 필요한 건 당신뿐이야.
// 기록 종료
6.4. 여행가
"위쪽에 별이 하나도 없어. 고개를 들지 않는 게 좋겠어." —아만다 홀리데이무슨 소리가 들려 그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또 들렸다. 위쪽에서 발톱이 달린 발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는 파동 소총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물결처럼 오르내리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타르를 바른 지붕 끝자락만 보였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놈들은 투명해질 수 있었으니까.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놈들 한두 명, 아니 열 명이 거기 앉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아른거리는 윤곽선을 찾았지만, 어두운 보라색 밤의 격자가 흔들거리며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리 위 높은 곳에서 출렁거리는 파문을 바라봤다. 거대한 장막이 도시 위에 내려앉기라도 하듯 격자가 다가오는 듯했다.
압력의 파장이 아래로 밀려들고, 맥동하며 축적되었다. 그는 한 손으로 눈을 꾹 눌렀다. 머릿속 깊은 곳이 쿵쿵 울리고, 사방의 벽에서 놈들의 발톱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 새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무기를 들고 거리를 향해 돌아섰다. 가슴 속 심장이 두근거리고 등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또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뒤쪽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돌아서 보자 놈들 중 하나가 집안에서 창을 통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땀에 젖어 축축한 손으로 안전장치를 젖혔고, 그때 상대가 입을 열었다—
"아빠!" 몰락자가 소리쳤다. "화단에 들어가면 안 돼요!"
그는 멍하니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방울토마토가 그의 맨발에 밟혀 곤죽이 되어 있었다.
아들이 다시 소리쳤다. 더는 몰락자가 아니라 그냥 잠에 취해 샐쭉거리는 가족이었다. "빨리 들어오세요!"
두 손을 덜덜 떨며, 그는 화단에서 빠져나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그는 집으로 들어갔다.
6.5. 체류자의 이야기
고향은 지평선 너머에 있습니다.파이프는 조용했다.
대량 하역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에테르 생산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거미의 은신처는 마치 무덤 같았다. 그의 왕좌가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울 만큼 도드라졌다. 거미는 한 팔로 기대앉아 다른 손에 든 죽은 고스트 의체를 이리저리 돌리며 생명을 잃은 그 회색빛 눈을 손톱으로 슬며시 긁었다. 신뢰하는 부관이 나타나 그를 상념에서 깨웠다.
"아브로크." 거미가 방어구를 두른 모습으로 알현실에 들어서는 엘릭스니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외쳤다. "뭘 찾았나?"
아브로크는 긴장한 듯 손가락을 맞잡고는 거미의 왕좌로 다가갔다. "도둑을 찾아냈습니다, 군주님."
거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왕좌를 지탱하는 케이블이 삐걱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는 탐욕스러운 기대감을 담아 물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브로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잡지는 못했습니다, 군주님." 아브로크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이 거미의 그림자 속에 파묻혔다. "하지만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당장 얘기해." 거미가 투덜거리며 말하고는 흥미가 사라진 듯 왕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까마귀입니다."
거미의 피가 뜨겁게 타올랐다. 손안의 죽은 고스트를 어찌나 강하게 움켜쥐었는지, 의체가 빠직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거미가 계속 손아귀에 힘을 주자, 결국 유리 눈알이 펑 하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는 잠시 마음을 달랬다.
"우리 작은 새가 벌써 둥지로 돌아왔다고? 자세히 얘기해 봐라."
"그 녀석이 창고에 침입해서는," 아브로크가 설명을 시작했다. "일꾼들을 꾀어내 여제에게 보내려던 화물을 다른 소형선으로 옮겨 실었습니다. 그리고… 훔쳐 갔습니다. 그때 군주님의, 어, 개인적인 소지품도 일부 가져간 것 같습니다. 양자 오팔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말을 하는 동안 아브로크는 점점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그 물품은 미스락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군주님이 보낸 선물이라면서요."
"작업자들은?" 거미가 으르렁거렸다.
"가 버린 것 아닐까요?" 그 대답이 왠지 물어보는 듯한 투로 들리는 바람에 아브로크는 후회가 막심했다.
"정확히 어디로 간 건데?"
"그들은…" 아브로크는 거미의 왕좌로부터 반걸음 물러났다. "떠난 것 같습니다." 그는 턱을 붙잡았다. "까마귀와 함께…"
거미가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지구로 간 것 같습니다." 아브로크가 말을 맺었다.
시설 다른 곳에서 에테르 생산이 재개되면서 에테르 파이프가 웅웅거리고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소음이 점점 더 커지고 귀에 익은 새된 비명이 되어 거미가 내지르는 불편한 소리에 더해졌다. 웃음소리였다.
해안의 남작은 죽은 고스트를 아브로크에게 던졌고, 그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려 날아오는 물체를 피했다.
"미스락스에게 가져갔다고." 거미는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리고 거칠게 콜록거리면서 가까스로 말했다. "내 물건을 훔쳐서 그걸 빛의 가문에 줬다고? 믿을 수가 없군." 웃음과 기침의 이면에 희미하게 감탄하는 투가 섞여 있었다. "꼬마 배짱이 아주 두둑해졌는데."
"이걸…" 아브로크가 그렇게 말하며 접힌 종이 조각을 거미에게 건넸다. "찾았습니다. 까마귀가 남겨 놓았더군요." 한쪽 면에는 대충 끼적인 거미의 인장이 있었다. "군주님께 전하는 겁니다."
거미가 쪽지를 펼치는 사이, 아브로크는 슬며시 왕좌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쪽지 안에는 서툰 그림과 함께 무례한 전갈만 남아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
파이프가 울부짖었다.
6.6. 조각난 암호
모든 문이 당신 앞에 열립니다.헬레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버려진 건물의 깨진 창을 살피며 데이터패드의 좌표를 거듭 확인했다. 도시의 이쪽 구역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엄마?" 그녀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불렀다. 텅 빈 건물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 뒤쪽이야." 어머니의 대답에 헬레나는 뱃속이 철렁 떨어지는 걸 느꼈다.
녹슨 문을 당겨 열자, 어머니는 천장이 낮은 콘크리트 방 안에서 기다란 탁자 위에 놓인 무언가를 더플 백에 쑤셔 넣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반대쪽 벽에서는 또 다른 여자가 비닐 타프를 둥글게 말고 있었다. 방안에 화학 약품 냄새가 가득했다.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어깨에 멘 남자가 그녀를 밀치고 향수와 술, 시큼한 땀 냄새를 풍기며 방으로 들어섰다.
헬레나는 작은 신호 방해기가 탁자 위에서 주황색 불빛을 깜빡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뒤에는 한 엑소가 철근이 길게 드러난 바닥의 틈에 허리까지 들어가 있었다.
"너무 좁은데." 그는 끙 소리를 내고 꿈틀거리며 틈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래도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찾아낼 수 있어." 그는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에요?" 헬레나가 물었다.
"아무것도 묻지 마." 어머니가 축축한 금발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밀어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빨리 움직여야 해." 그녀는 고갯짓으로 방 반대쪽을 가리켰다. "넌 저쪽 더미를 맡아라."
헬레나는 경계하듯 팔짱을 끼었다. "엄마,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지금은 얘기할 시간 없어." 어머니는 버럭 화를 냈다. "넌 아무것도 몰라. 그 녀석들이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보지 못했고, 이 녀석이 라면 가게에서 뭐라고 했는지도 듣지 못했어."
처음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위험하리만큼 강렬한 눈빛이 뜨겁게 타올랐다. "놈들은 어둠으로 우리 눈을 멀게 하고 있어.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알겠으면 얼른 너도 도."
헬레나는 구석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로 천천히 걸어갔다. 파란색 액체로 젖어 있는 수건들. 고무 튜브. 기이한 금속 조각. "임시"라고 적힌 코팅된 카드.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무슨 짓을 한 거예요?"
7. 미래 전쟁 교단 무기
7.1. 숫자
"아, 어느 숫자 말이지요? 왜죠? 왜 다른 숫자는 안 됩니까?" —락슈미-2"넥서스" 하드라인 조리개 분기, 통합 기록…
I:
통합 실패. 방화벽 거부.
II:
통합 실패. 방화벽 통과. 드론 상실.
III:
통합 실패. 피드백 폭발, 사망 3명. 원정 팀은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의료 허가 대기 중. 네트워크 접속의 핸드셰이크 파라미터 재평가 중.
IV:
미래 전쟁 교단-초인과적 자산 "라일리" 배치 완료.
통합 성공. 수집물이 물리적 메모리 할당량을 초과함. 중단 신호 개시.
예정 외 통합 발생 - 침투, 억제 실패. 00:00:00.02초 후 연결 단절.
V:
침투, 억제 실패. 3시간 후 침입 진압됨. 사망 92명.
억제 및 정화 절차 검토 중.
VI:
원정 팀 및 자산 작전 중 실종. 피드 오염됨.
연결 개방. 연결 개방. 연결 개방.
7.2. 플레이아데스 교정자
"아니. 용도는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너무 쉬워지거든요." —락슈미-2추가 보고 [미전교-2298j; 정전]
끝없는 밤. 그게 뭐지? 그 역할은 무엇이지? 아직 답을 모두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지금 알고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끝없는 밤"의 원격 스캔은 데이터를 반환하지 않거나 모순된 데이터만 반환했다. 이러한 결과는 전자기 방해파가 방출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이 밤이 도시 위에 투영된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방해파가 존재한다는 것은 구름 속으로 내보낸 모든 탐지정에서, 그것도 심지어 차폐된 것들까지 포함해서, 하나도 빠짐 없이 단 몇 초 내에 극심한 전기 과부하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재차 확인되었다.
이제 전자기장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우리는 초기 스캔을 재평가하며 새로운 가설에 도달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수신하는 데이터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그 데이터는 우리 자신의 스캔 결과가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쓰여진 것이라 보고 있다.
이러한 스캔 결과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수집된 데이터로 위장한 루팅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시스템에 침투하고 있다. 그들이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우리 전력 분배와 식수 정화 시설을 점거한 방법은 이 이상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은 덫을 설치했고, 우리가 거기 걸린 것이다. 이 정보는 반드시 회의의 나머지 인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내 동료들 중 일부는 실제 "밤"을 시각화하는 것이 심리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의도한 바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반 시민들이 각종 질병이나 불면증을 겪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확실히 상당한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모든 데이터 수집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지만, 내 요청은 상위 권한에 의해 번번이 묵살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제안하고자 한다. 반드시 모든 연결을 단절하고 대규모 데이터 수집 절차를 모두 중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것은 제 손으로 무덤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혹시라도 지도부 중에 그런 업링크를 아직까지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 지금은 불장난을 할 때가 아니다.
—미래 전쟁 교단 연구 개발 수장, 아르샤 사아드
7.3. 신을 죽이는 자
"전쟁 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마세요." —락슈미-2
숨겨진 대용 라우터를 통해 개인 통신 상태를 인코딩했습니다…
아이코라, 이걸 보고 싶으실 겁니다. 우리 시스템에서는 이진수로 보이지만, 뭔가로 인해 융합된 것 같습니다. 탑의 넥서스 ISO 피드로부터 추출한 내용입니다. 미래 전쟁 교단 네트워크 전체에… 그리고 그 외 장소에도 흩어져 있습니다.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01100011.# 01000101 01000110.# 01000100.# 01000010 01000100.# 01000101 01000001.# ||
제 추측으로는 이 문자가 일종의 가청음 코드 패턴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직접 들어보진 않았습니다.
제 부하 중 한 명이 미세한 음조의 변동을 따로 분리하여 "#"으로 표현해뒀습니다.
이는 보통의 이진수 코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이진수 코드의 기록 보관 정보에 관한 보고서를 첨부해 보내드립니다.
—오노르
7.4. 환영
제대로 된 폭발로 적에게 영광스러운 피해를 주십시오.락슈미-2 국장님,
적당히 하시죠. 전 당신이 뭘 사용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조만간 그에 관해 선봉대와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수십여 명의 사람을 광기로 내몬 그것을 당신만은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봐도 당신의 의사 결정 능력을 신뢰할 수는 없는 상황이며, 따라서 더는 제가 우려하는 바를 혼자만의 생각으로 묻어 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직 상부에서 또 한 명의 순다레시가 탄생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당신이 붉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을 예견했든 아니든 제게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편리하게 무시해 버린 다수의 무의미한 예측들에 관해선 뭐라고 할 생각이죠?
저도 당신의 연설을 듣고 지원을 요청하는 여러 메시지를 읽어 봤습니다. 우리 미래가 위험에 처했고,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몰락자에 대한 공포는 이 조직이 맞서 싸워야 하는 미래가 아닙니다. 당신의 피해망상 때문에 제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 아이들이 오늘 엘릭스니 구역에 음식을 가져다 줬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니, 상황이 끔찍하게 악화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공포심을 전파하는 데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도시를 분열시키고 내부의 갈등을 창출하는 데 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몰락자 가문이 제기하는 위험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이 도시는 우리가 함께하기 때문에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도 역사를 배운 사람입니다. 강철 군주가 전쟁군주를 충직한 빛의 시종으로 바꾼 과정을 알고 있잖습니까. 샤크스 경이 바로 그런 노력의 미덕을 상징합니다. 예전의 그 전쟁군주들처럼, 또 리프의 몰락자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새로운 몰락자 가문이 우리 편에 서서 동족과 맞서 싸우려 한다면 당신이 어찌 감히 그들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군대는 우리가 막아낼 수 있습니다. 수호자들이 장벽을 지킬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당신이 촉발하고 있는 내부로부터의 죽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붕괴된다면, 처음 총을 쏜 것이 미스락스가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세요. 그건 당신의 소행입니다.
이 메시지로 사직서를 갈음합니다.
노바로
7.5. 확률적 변수
"우리의 시뮬레이션을 확신하긴 하지만 예측 불가능의 요소는 늘 있게 마련입니다." —락슈미-2락슈미-2 : 진영 수장 : 엑소 : 정치가
1 : 엘릭스니 구역 : 비명 : 빠직거리는 차원문 : 배신 : 몰락자가 공격한다 : 적이 너무 많아 : 수호자는 어디 있지—
2 : 최후의 도시 : 폐허가 된 탑 : 몰락자 청소부가 잔해를 뒤적거린다—
3 : 최후의 도시 : 방사능 먼지 : 폐허 속에서 성장하는 어둠 : 여행자는 어디 있지 : 돌연변이 고스트—
4 : 엘릭스니 구역 : 빠직거리는 차원문 : 애셔가 말한다 : 몰락자가 공격받고 있다 : 머리 위 죽은 궤도 : 세인트-14이 공격받는다 : 미래 전쟁 교단은 투항한다—
5 : 엘릭스니 구역 : 끝없는 밤 : 빠직거리는 차원문 : 미스락스가 마구잡이로 사격한다 : 교단이 달아난다 : 아이코라가 승리한다—
6 : 엘릭스니 구역 : 빠직거리는 차원문 : 저격수들이 사격한다 : 배수로에 피가 흐른다 : 에테르 탱크가 폭발한다 : 끝없는 밤 : 애셔가 말한다 : 저 미래 전쟁 교단 배신자들—
7 : 봇차 구역 : 빠직거리는 차원문 : 몰락자가 달아난다 : 미래 전쟁 교단의 깃발들 : 자발라가 사라진다 : 재판에 넘겨진 미스락스 : 락슈미-2가 군중을 내려다본다—
락슈미-2 : 국가의 수장 : 엑소 : 예언자 : 구원자
8. 경이 다리 방어구
8.1. 불타는 걸음의 길
불 속을 걷는 사람은 자신의 두려움도 태워버립니다.두려움을 모르는 자에게 낙인 찍힌 말:
앞서 간 사람이 적은 길을 택한 자들을 따르지 말고,
서로의 등 뒤에 서서 기다리는 자들을 따르지 마라.
완강한 산의 돌에 새로운 각인을 새겨라.
통과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해라.
네 발걸음이 지나는 길에 잿더미를 남기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위험이 네 걸음의 밑거름이 되리라.
—파괴자의 규정
8.2. 별 포식자의 비늘
하늘의 연회. 모든 별빛을 삼켜 하늘을 검은색으로 물들이세요. 그러면 온 우주가 당신의 포효 앞에 전율할 겁니다.웅웅거리는 거친 톱니파가 에크리스를 퍼뜩 잠에서 깨웠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침상을 벗어나 조종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량의 데이터가 줄지어 놓여 있는 두꺼운 유리 화면에 쏟아져 내리고, 경보가 울려 퍼졌다. 그는 다양한 정보를 하나로 연결했다. 스캐너에는 커다란 간섭이 확인되고, 주 추진기는 오작동을 일으켰고, 근접 감지기에는 비정상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그는 지름이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현창을 내다봤다. 파란색 미립자 줄기가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충돌했나?" 그는 생각했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행성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며칠은 더 걸릴 거야. 여기엔 아무것도 없어."
에크리스는 몸을 돌려 부조종사를 바라봤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 엘릭스니의 이름을 기억해 보려 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함께 비행해 왔는데, 아직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다니.
"라크실이야." 부조종사는 계기판에 시선을 집중한 채 대꾸했다. "넌 내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짓더라고."
에크리스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외면했다. "신기한 우연의 일치네. 내겐 라크실이라는 형제도 있었어."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라크실이라는 형제와 에크리스라는 조종사는 아주 많을 거야." 부조종사는 말했다.
에크리스는 그게 사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추진기가 정지했던데." 에크리스는 말했다. "무슨 장막에 걸린 것 같아."
"걸린 게 아니야." 라크실이 그렇게 말하며 제어판을 통해 명령을 입력해 경보를 멈췄다. "그냥 느려진 거지. 속도는 나고 있어."
"제어할 수 없는 건가…" 에크리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운이 좋다면 결국엔 빠져나갈 수 있겠지."
"미스라악스를 찾으려고 너무 먼 길을 가는 거 아니야?" 라크실은 격벽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그가 켈 중의 켈이라고 생각해?"
에크리스의 머릿속을 낯선 감각이 가득 채웠다. 그런 이야기를 부조종사에게 털어놓은 기억은 없었다.
"내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이 커." 그가 말했다. "그는 다르거든. 새로운 방식으로 우릴 하나로 만들지."
라크실은 아래턱으로 달각 소리를 냈다. "그런 얘기는 처음이 아닌데."
에크리스는 상대의 말을 무시하려는 듯 발톱을 내저었다. "넌 항상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잖아."
"널 집착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은 거야." 라크실이 대답했다.
에크리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켈 중의 켈은 모든 엘릭스니에게 희망의 상징이야. 그런 희망 없이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이 신화가 우릴 분열시키고 있어, 형제." 라크실은 말했다. "우리는 찢고 부수며 산꼭대기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고만 있어.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 아래를 내려다 보면 그 산이 우리의 찢긴 깃발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될 거야."
에크리스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근질거렸다. 라크실이 지금 그를 "형제"라고 불렀나?
라크실은 계속해서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 길의 끝에 있는 건 모두의 죽음뿐이야. 켈 중의 켈은 침묵의 가문만 지배할 수 있어."
에크리스는 화가 나서 아래턱을 달각거렸다. "그렇다면 왜 엘릭스니가 이 켈의 꿈을 꾸는 거지? 그 꿈이 우리에게 해가 될 뿐이라면?"
"꿈을 꾼 게 아닐지도." 라크실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우리가 꿈꾸게 한 건지도 몰라. 우릴 갈라놓으려고 말이지."
에크리스는 발톱을 내저으며 일어서서 선실을 이리저리 걸었다. "그만해.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무리해서 그래. 잠이나 더 자는 게 좋겠어. 어서 침상으로 가 보라고."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다시 따끔거렸다. 이 우주선에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현기증이 오감을 휩쓸어, 그는 다시 비틀거렸다. 고개를 들자, 그는 혼자였다.
"이 꿈을 너무 오래 쫓은 탓에 자기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군." 라크실은 어딘가 애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에서 들려오는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조종석의 제어판은 어두워져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게기판의 수치도 느려지고, 아무런 경고도 표시되지 않았다. 에크리스는 현창을 내다봤고, 머나먼 곳에 흩뿌려진 행성의 빛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색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8.3. 어셈블러 장화
유사광자와 불가능한 수학의 발현입니다.I.
아이코라 레이는 조금 흥분해 있었다. 지난밤에 엘릭스니 야영지가 공격받은 사태에 대한 사후 보고가 조금 전에 끝났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귓속에서 울려 퍼지는 심장 박동이 커지고 손가락 끝에서 빛이 일렁였다. 이제 높은 통로를 거친 발걸음으로 걷고 있으려니, 아찔한 분노에 공중으로 떠오를 것만 같았다.
갑자기 귀에 익은 굵은 목소리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웠다. "중력이 시공간을 구부리는 것처럼, 분노는 정신을 구부린다. 그건 일종의 왜곡으로, 유용하긴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아이코라는 뒤쪽에서 오시리스의 모습을 볼 것을 기대하며 돌아섰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자였다.
"중력과 마찬가지로, 분노가 임계 질량에 도달하면 스스로 붕괴되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된다고 하셨죠." 아이코라는 싱긋 웃었다. 그녀의 스승은 곁에 없을 때조차 늘 옳은 말을 들려 주었다.
아이코라 레이는 벽감 안으로 들어가 탑의 서늘한 석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심장 박동수를 낮추는 데 집중했다. 잔뜩 긴장했던 근육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체가 평정을 되찾자, 그녀는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 오시리스가 가르쳐 준 여러 명상법 중 하나를 시작했다. 빛이 온몸을 따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엔 타오르는 불길 같던 빛이 거센 강물이 되었다가 마침내 서늘한 산들바람이 되었다. 다시 두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정신은 다시 명민하고 예리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제 상대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II.
세인트-14이 군수품 재고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오시리스가 불쑥 창고로 들어섰다. 세인트는 데이터패드를 수류탄 상자 옆에 놓고 일어섰다. 오시리스는 총과 탄약이 잔뜩 쌓인 선반을 훑어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세인트는 어색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오시리스가 뭐든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상대가 아무 말도 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세인트가 결국 입을 열었다. "오시리스. 뭘 찾고 있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조금 크고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오시리스는 선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사이온이 자발라의 고스트에게 사용한 빛 억압기. 연구에 필요해."
"자발라가 가져간 것 같은데. 가서 물어봐." 세인트가 불쾌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오시리스는 생각에 잠겨 눈을 가늘게 뜨고 파트너를 바라봤다. "그렇군." 그리고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고마워."
예전 워록이 돌아서서 떠나려고 할 때, 세인트가 다급히 말했다. "나중에 같이 시간 좀 보내면 좋겠어. 우리 둘이서만."
"뭘 하려고?" 오시리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알프스로 날아가 볼까." 세인트는 제안했다. "아니면 프라하 폐허를 산책해도 좋고. 예전처럼 말이야."
"그것도 좋겠군." 오시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쪽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도시가 잿더미가 되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잠시 후, "그게 전부인가?"
그게 전부인가? 헬멧 뒤에서 세인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것 같은데."
오시리스는 성큼성큼 방을 떠났다. 세인트는 뱃속이 어딘가 구덩이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홀로 남았다.
III.
락슈미-2는 북적이는 안뜰 건너편에 있는 오시리스를 지켜봤다. 탑의 모든 정치적인 생물들 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인물이 바로 오시리스였다.
그녀가 각별히 신경을 쓰는 건 그 예전 워록이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장치는 그의 오만한 총명함을 아무 문제 없이 해석했다. 그의 모든 움직임은 표준적인 편차 내에 존재했다.
하지만 지독한 괴짜라는 전설적인 평판을 고려해 보면, 요즘 그의 행보는 충격적일 만큼 평범했다. 그런 새로운 예측 가능성이 왠지 신경이 더 쓰였다.
어쩌면 고스트를 잃은 것이 그에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영향을 주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제 불사의 몸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의 용기를 꺾었는지도 몰랐다.
오시리스가 벡스 데이터 세트의 맹점, 즉 오직 인간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상징할 가능성도 있었다. 혹은 벡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인간인 그녀의 정신이 간과했을지도 몰랐다.
이유가 무엇이든, 오시리스는 예전 방식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그의 유용함이 사라질 때까진 그래야 했다.
9. 시즌 전설 방어구
9.1. 타이탄
9.1.1. 빛의 일족 투구
"이 밤 아래에서도, 대지는 거대한 기계의 온기로 따스하구나." —미스락스"나는 빈 곳에 집중하겠다."
그녀의 건틀릿이 방패 뒤에서 윙윙거렸다. 그 후, 사람들은 그녀가 빗발치는 총알들 사이로 걸었다고 맹세했다.
9.1.2. 빛의 일족 건틀릿
"적이 아군이 되기도 하고, 세상일이 다 그렇지.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은 다들 날 한 번씩은 죽여 봤다고!" —방랑자"내 의지의 불길은 잠재울 수 없다."
융합자는 이전보다 더 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일어섰다.
9.1.3. 빛의 일족 판금 흉갑
"우린 생각보다, 아니 우리가 인정하려 하는 것보다 공통점이 많다." —샤크스 경"나는 번개요, 해방된 에너지이지만, 나의 의지를 따른다."
융합자는 주위에서 빠직거리는 전기 에너지를 느끼며 거기에 합류했다.
9.1.4. 빛의 일족 각반
"신뢰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것처럼 서서히 쌓이는 법이네. 이 도시처럼 말이야." —자발라 사령관"나는 냉기의 침투를 차단하면서 그에 접촉할 수 있다."
융합자는 전투의 열기를 그리고 그것을 자기 안으로 흡수했다. 이윽고 결정화된 침묵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9.1.5. 빛의 일족 표식
"자기와 가족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게 인간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아." —아만다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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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FOB: 기나긴 낮의 은총을 기원한다, 미스라악스켈.
@BOTZA-GUEST: 빛이 널 축복하길, 바릭스. 시간 내 줘서 고맙다.
@EURFOB: 고민이 있는 목소리던데. 말해라. 바릭스는 듣고 있다.
@BOTZA-GUEST: 인간들이… 내가 기대한 것만큼 우리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그저 악몽의 주인공들로 볼 뿐이다.
@EURFOB: 그게 사실이 아닌가?
@BOTZA-GUEST: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EURFOB: 너는 켈이지만, 진정한 켈이 되기 위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미스라악스.
@EURFOB: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 엘릭스니에게도,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변화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는 첫 탈피처럼 아픈 것이다.
@BOTZA-GUEST: 그럴 거라 짐작한다.
@EURFOB: 아무것도 짐작하지 마라. 미스라악스켈은 너무 빨리 늑대를 잊으려 하는 것 같다. 리프의 여왕 앞에서 무릎을 꿇던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있나?
@BOTZA-GUEST: 인간들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EURFOB: 희망은 희망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모든 것을 네가 바라는 대로 융합할 수는 없다.
@EURFOB: 지름길은 없어.
@EURFOB: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인간을 위해서도, 엘릭스니를 위해서도.
@BOTZA-GUEST: 네 조언이 그립다. 상황이 진정되면 언제 한번 찾아와다오.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기계 아래에 서 봐라.
@EURFOB: 아니.
@EURFOB: 안 돼. 바릭스는 그럴 수 없다. 그건 그때의 일이고, 지금은 다르다. 내 강은 거꾸로 흐르지 않아.
@BOTZA-GUEST: 하지만—
@EURFOB: 네 승리를 만끽해라, 미스라악스켈. 지금의 고통 때문에 내일의 약속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URFOB: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따를 것이다.
9.2. 헌터
9.2.1. 빛의 일족 가면
"신성한 융합자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삶이 이토록 빠르게 바뀔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스락스"내게 필요한 건 한 순간의 고요뿐이다."
그는 건틀릿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다시 숨을 내쉬었을 때, 그는 홀로 목표물과 함께 남았다.
9.2.2. 빛의 일족 손아귀
"내 신경을 거스르지만 않으면 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문제는, 도무지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녀석이 없다는 거지." —방랑자"나는 불타고 있지만, 소진되지는 않으리라."
융합자는 손안에 타오르는 불길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걸 감싸도록 주먹을 쥐었다.
9.2.3. 빛의 일족 조끼
"네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지 않는 방패는 검만큼이나 큰 피해를 준다." —샤크스 경"어둠 속에서도, 나는 내 안에 있는 생명의 불꽃을 느낀다."
건틀릿이 포효하고, 그는 허공에 넓은 원을 그렸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9.2.4. 빛의 일족 발걸음
"누군가 내게 묻더군. 도시가 여행자를 지킬 거냐고. 난 도시를 지켜야 하는 게 바로 여행자라고 대답했네." —자발라 사령관"혼돈 한가운데에서, 나는 침묵의 저수지다."
융합자는 자신의 호흡에 집중했다. 그리고 한순간의 고요를 틈타 전장을 가로질러 거칠게 방출했다.
9.2.5. 빛의 일족 망토
"사람들이 엘릭스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됨됨이를 알 수 있어. 그게 이번 일의 가장 싫은 점인지 가장 좋은 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아만다 홀리데이// 선봉대 네트워크 // 민간 단말기 // 암호화 작동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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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ZA-GUEST: 빛의 은총을 그대에게.
@EURFOB: 바릭스도 네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미스라악스. 거기, 거대한 기계 아래에 있나?
@BOTZA-GUEST: 그렇다. 네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벡스의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EURFOB: 그건 명확하다. 그 감사의 표시로 이제 개인 교신에서도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건가?
@BOTZA-GUEST: 나는 관습을 따른다. 그리고 우릴 받아들여 준 이들이 내게 감추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원치 않는다.
@EURFOB: 정말 현명하군. 그런데 구원의 가문이 너희를 공격할 때 벡스도 그자들과 함께 공격했다. 이상한 일 아닌가?
@BOTZA-GUEST: 곰곰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EURFOB: 생존자들은 어떻지? 아이들은? 네 딸은?
@BOTZA-GUEST: 다들 잘 있다. 아이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뻐하고 있다. 그 아이는 오랫동안 이런 날을 꿈꾸면서도 실현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BOTZA-GUEST: 너는 왜 우리와 함께 오지 않았나?
@EURFOB: 거대한 기계는 이제 바릭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내가 아니면 누가 에라미스를 지켜볼 것인가?
@BOTZA-GUEST: 난 그녀가—
@EURFOB: 여전히 아이 같구나. 영원한 건 없다.
@EURFOB: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긴 침묵]
@BOTZA-GUEST: 이제 가 봐야겠다, 바릭스. 해야 할 일이 많아.
@EURFOB: 네 그림자 안에서 조용히 걸어라, 미스라악스켈.
9.3. 워록
9.3.1. 빛의 일족 덮개
"엘릭스니가 희망의 눈길로 거대한 기계를 올려다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 순간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어 정말 큰 영광이다." —미스락스"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융합자는 동시에 일백 곳의 장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했다.
9.3.2. 빛의 일족 장갑
"난 그 녀석들이 여기 살림을 차리는 것에는 아무 불만이 없어. 하지만 그 녀석들이 하늘의 저 커다란 공을 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해 봐. 지난번에는 영 안 좋게 끝났잖아.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어?" —방랑자"빛이 보인다. 그 열기가 느껴진다."
융합자는 부들부들 떠는 자손을 끌어안고 마치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몸을 쭉 폈다.
9.3.3. 빛의 일족 로브
"나는 한때 몰락자로부터 이 도시를 지켰다. 더는 우리 곁에 없는 수많은 빛들도 그랬다. 이제는 이 장벽이 빛의 가문을 보호한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어딘가 시적인 구석도 있단 말이지." —샤크스 경"나는 머리 위 별과 하늘, 구름을 품는다."
그의 건틀릿이 깨어나고, 하늘이 그와 함께 움직였다.
9.3.4. 빛의 일족 장화
"피라미드가 나타나고, 이제 엘릭스니가 최후의 도시에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게 되니, 지금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전쟁을 치러 왔던 것 같네. 그나마 이제부터는 알아갈 수 있겠지." —자발라 사령관"나는 침묵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얼음 속에서 움직임을 보고, 융합자의 눈이 그들을 쫓고 있음을 눈치챘다.
9.3.5. 빛의 일족 완장
"우리 부모님은 아주 힘겨운 길을 거쳐서 날 최후의 도시에 무사히 데려다주셨어. 그분들도 그 대가를 치러야 했지. 이 엘릭스니들은 분명 외지인이긴 하지만, 어딘가 낯익은 구석도 있어. 상실, 고통, 그리고 희망." —아만다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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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FOB: 미스라악스켈도 유로파가 지금 몇 시인지는 알고 있겠지?
@BOTZA-GUEST: 미안하다, 바릭스.
@EURFOB: 사과할 필요 없다. 어차피 모든 건 자신의 선택 아닌가? 다음에 잘하면 된다.
@EURFOB: 미스라악스켈은 지금 무엇을 원하나?
@BOTZA-GUEST: 관점이다.
@EURFOB: [벌레처럼 속삭이는 소리]
@BOTZA-GUEST: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인류의 지도자인 한 엑소와 자꾸 충돌한다. 그녀는 우리 종족을 믿지 않고, 그런 편협함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 두렵다.
@EURFOB: 신뢰는 스스로 얻어내야 하는 것 아닐까?
@BOTZA-GUEST: 이건 다르다.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냉혹하다.
@BOTZA-GUEST: 그녀는 신뢰를 주려 하지 않는다. 거래할 수도 없다. 그저… 분노할 뿐이다.
@EURFOB: 바릭스도 알고 있다. 바릭스는 미스라악스켈이 무른 껍질의 자손이던 시절을 기억한다. 항상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다. 자기를 밀쳐 대던 나이 많은 드렉들과도 친해지려 했었지.
@EURFOB: 미스라악스켈은 언제나 노력했다.
@BOTZA-GUEST: 평화는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EURFOB: 상대가 평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겠지.
@EURFOB: 하지만 오직 전쟁만 알고 전쟁만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EURFOB: 말로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BOTZA-GUEST: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를 공격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인간들의 가장 끔찍한 공포가 사실이라고 증명될 뿐이니까.
@EURFOB: 바로 그것이 미스라악스켈과 바릭스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비슷한 점일지도.
@EURFOB: 인간을 믿나?
@BOTZA-GUEST: 그래. 일부는 믿는다.
@EURFOB: 목숨을 걸 수 있나?
[긴 침묵]
@BOTZA-GUEST: 어느 정도는.
@EURFOB: 그것이 미스라악스켈의 관점이다.
@BOTZA-GUEST: 고맙다, 바릭스.
@EURFOB: 아직 바릭스에게 고마워하지 마라. 낮은 길지만, 밤은 더 길다.
10. 제로네이로 의체
디지털 꿈을 꾸는 고스트에게 적합합니다.졸루는 팔을 넓게 펼치고 정신을 집중했다. 앞쪽 낮은 탁자 위에는 닳은 장화가 놓여 있었다. 손목에 착용한 융합자 건틀릿의 날이 부드럽게 웅웅 소리를 냈다.
바스크는 애써 그를 무시하며 창으로 날아가 시련의 장 점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낡은 장화 주위에 빛을 그린다." 졸루는 엄숙하게 말했다. "이 낡은 장화—"
"소리 내서 말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바스크는 의체를 눈앞으로 끌어내려 그럴싸하게 찌푸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빛이 구부러지는 것을 그린다." 졸루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빛이 완벽한 고리를 그리며 현실로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나는 물리적 차원의 줄을 튕긴다. 나는 빛을 구부리고, 머릿속에서 다시 구체화하여…"
그는 눈을 꼭 감고 속삭였다. "지오맥 안정화기."
건틀릿의 날이 달그락거리며 축 늘어졌다. 그는 눈을 뜨고, 장화를 바라보고는 끙, 소리를 냈다. 바스크가 그의 어깨 위로 날아왔다. "제가 시장에서 중고로 한 켤레 구해—"
"미스락스가 의지만 있으면 빛을 구체화할 수 있다고 했잖아." 졸루는 한숨을 쉬며 건틀릿의 설정을 조정했다. "현실의 아주 작은 값 하나만 변경하면 돼. 지오맥 안정화기 '아님'에서 지오맥 안정화기 '맞음'으로."
"꼬마야, 아무래도 지난 번에 네 두뇌를 전부 되살리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바스크가 말했다.
"지금 난 네가 입을 다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졸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팔을 넓게 펼쳤다. "이 낡은 장화 주위에 빛을 그린다…"
11. 금지된 기억
떠나간 이들을 위해 촛불을 켜세요.자발라 사령관은 여행자의 창백한 빛으로만 밝혀진 길을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한밤중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길을 나섰다. 이 시간에는 주위의 모든 영혼이 그와 마찬가지로 대화를 피하는 데 열심일 테니까. 여기 이 어둠 속에서, 직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는 그냥 자발라로 남았다.
그는 온종일 이 여정을 두려움 속에 기대하고 있었다. 모든 걱정거리 중에서 이 짧은 걸음이 그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지웠다. 하지만 상념은 기념비에 도착하자 모두 사라졌다. 그것은 인간과 엘릭스니가 함께 제공한 다양한 물품이 뒤죽박죽 모인 상징물이었다. 자발라는 그러한 부조화가 왠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양초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그녀의 장례식으로 기억을 되돌렸다. 썰물의 내음과 지평선에 모여드는 뇌우의 우르릉거리는 소리. 그는 정전기가 짠 내음이 어린 대기를 가로질러 몸속으로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가 눈을 뜨자 심지에 불길이 피어올랐다. 자발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늘 웃음 짓게 했던 숨은 재주였다.
자발라는 이제는 꺼진 양초들 사이에 촛불을 내려놓았다. 작게 흔들거리는 불길이 주위의 친구들을 다독였다. 그는 손을 거두고 다른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얇은 이불 아래에서 여리여리한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여명을 부르는 빛이 방으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검은 곱슬머리가 하얀 베개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 알싸한 꽃향기. 그녀의 옷가지는 가구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자발라는 손을 뻗어 그녀를 깨우고 싶었다. 잠에 취한 미소를 보고,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이 경험이 기억에서 환상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예전 그대로, 완벽한 필멸의 존재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사라졌다. 그는 다시 자발라 사령관으로 돌아왔다.
12. 리이스 레이서
"아니야! 이건 여기에 넣고, 저건 저기에 조립하라고!" —아만다 홀리데이아만다 홀리데이는 격납고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 무릎에 손을 엎고 팔꿈치를 구부리며 몸을 앞으로 잔뜩 기울였다. 불꽃이 그녀의 옷과 맨팔에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용접 고글에 소리 없이 반사됐다. 피부에 불꽃이 닿는 따끔따끔한 느낌이 편안하고 익숙했다. 새로운 조수가 작업하고 있는, 반쯤 수리가 끝난 참새도 그랬다. 하지만 조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당연한 거였군." 아만다는 네 개의 손으로 전기 용접기 두 개를 들고 작업 중인 엘릭스니 반달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불꽃이 와닿는 볼을 문질렀다. "당신들 생산 속도가 왜 그렇게 빠른지 늘 궁금했는데."
니이크라는 이름의 엘릭스니 기술자는 아만다를 보며 세 개의 눈으로 윙크한 후 다시 용접 작업에 집중했다. "보기도 더 쉽습니다. 눈을 가릴 필요가 없지요." 니이크는 웃으며 설명했다. "엘릭스니의 눈은 인간보다 빠릅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예전 고향에서만큼은 아니지만…"
"무슨 뜻이야?" 아만다가 물었다. 니이크는 용접을 중단하고 도구를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등 뒤 콘크리트 바닥을 짚고 나머지 팔 두 개는 팔짱을 끼면서 몸을 뒤로 기울였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어 희미한 에테르의 안개를 내뿜었다.
"이야기 속 우리는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위대했습니다." 니이크는 그렇게 설명한 후 곁눈질로 아만다를 바라봤다. "우리는 모두 목적을 잃었습니다…" 니이크는 조심스럽게 인간의 말을 골랐다. "…우리 황금기 이후에요."
아만다가 한숨을 쉴 차례였다. 인내의 표현이었던 니이크의 한숨보다는 후회에 가까운 것이었다. "전에 참새를 타본 적 있어?" 그녀는 대화의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물었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뱉은 질문이었다.
니이크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앞쪽에 반쯤 완성된 모습으로 놓인 기계에 주의를 집중했다. "너무 작습니다." 그녀는 위쪽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파이크는 더 강하고, 더 빠릅니다."
아만다는 그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기야," 그녀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 어떤 파이크도 내 참새보다 빠르진 않아."
니이크의 두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도전을 수락하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만다는 까마귀와의 마지막 무전 교신을 떠올렸다. 그가 사용했던 엘릭스니 말이 있었다. 친선 도전. 그녀의 발음은 그리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 의도는 제대로 전달되었다. 니이크는 기꺼이 수락했다.
"괜히 큰소리를 치는군요." 니이크는 으르렁거리듯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일어났다. 아만다의 두 눈이 잠시 휘둥그레지고, 니이크가 자기를 두들겨 패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뭔가 잘못 말했거나, 실수로 반달에게 결투를 신청한 건 아닐까? 하지만 상대는 무기를 들지 않았다. 니이크는 두 손을 뻗어 아만다를 바닥에서 일으켜 주었다. 그녀 정도는 아주 가뿐한 모양이었다.
"우리… 경주해 볼까?" 그녀는 비뚜름한 미소와 함께 긴장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니이크는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경주하죠."
13. 파라드롬 큐브
벡스 도메인에서 획득한 살아 있는 코드의 큐브입니다.미스락스는 소박한 거처의 카펫에 앉아, 파라드롬 큐브를 손에 들고 집중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걱정이 앞선 아이도가 그의 곁에 앉았다. 그녀는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뭐가 보이세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끝없는 밤이 갈라져 열리는 것을 보았다. 액체가 하얀 비처럼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얕은 바다에서 거대한 미노타우르가 솟아올랐다. 탑의 수호자들이 총을 쏘아댔지만, 파문이 이는 액체에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환영을 밀쳐냈다.
백여 개의 환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다시 천 개의 환각이, 그리고 천 번의 생을 채울 환각이 나타났다.
—수정 감옥에 얼어붙은 형체 하얀색 거대한 개체 붉게 충혈된 눈에 밀려드는 인식 수많은 목소리의 도시가 한꺼번에 내뱉는 소리 형상화되는 그림자 지금껏 감시받아 왔다는 인식 금속 위로 떨어지는 눈물—
선택, 그리고 그 결과.
"거짓." 그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14. 융합자 건틀릿
플레이리스트 활동과 공개 이벤트를 완료하고, 행성계 내 원하는 곳에서 전투원을 처치하여 에테르를 얻으세요. 에테르를 사용하여 오버라이드에서 융합체 상자를 열 수 있는 키 코드를 제작하세요.빛의 가문의 신성한 융합자는 자신들이 여행자와 신비한 연결을 체결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기 "의지의 프리즘을 통해" 빛을 다시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해독단은 엘릭스니의 문화를 존중하고 있지만, 이런 주장 이면의 진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엘릭스니 외 존재의 손에 맞춰 제작된 융합자 건틀릿 중 하나(빛의 가문의 켈 미스락스가 최후의 도시 일부 주민을 위해 특별히 제작해 준 물품)를 연구해 본 결과, 우리는 손목에 장착하는 이 건틀릿이 환경에 이미 존재하는 잔류 빛을 집중시키는 변환기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숙련된 융합자는 건틀릿을 사용하여 인근의 잠재된 데이터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착용자는 일상적인 기술 영역뿐 아니라 벡스 도메인을 비롯한 더 깊이 있고 무한히 보호되는 네트워크에도 접근할 수 있다.
연결이 이루어진 후 이들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진 대상은 엘릭스니의 신성한 융합자들로 제한된다. 하지만 수호자는 빛과 고유한 관계를 기반으로 짧은 시간 동안 네트워크 내에 물질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다. 이후 그들은 타격 에너지를 집중시켜 네트워크 내의 데이터를 조장할 수 있다. 아쉽지만 해독단도 이 과정의 과학적 처리 절차는 아직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건틀릿은 결속되지 않은 에너지를 에테르로 변화하여 스스로 동력을 조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성한 융합자는 전통적으로 기나긴 여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잔류 에너지를 이용하여 건틀릿을 충전하고는 했지만, 수호자는 전투 기량을 활용하여 적을 풍요로운 에너지원으로 변환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신성한 융합자는 그저 빛을 유도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벡스 넥서스와 유사한 주파수로 공명시키고, 이를 통해 보안 수준이 낮은 특정 벡스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을 획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엘릭스니는 심오한 정신적 연결을 통해 빛을 자기들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단순한 공상으로 ㅊ1부할 수 있다. 이 또한 과도한 자긍심의 U감스ㄹ7운 부산물2ㄹ5G0|| | | | |
겨우 최근이 되어서야 우연히 거대한 기계의 은총을 받은 종족이 이토록 오만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을 듣고 있으려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빛은 가장 위대한 신성한 융합자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것이지만,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우리들이라도 거대한 기계의 은총을 일으켜 우리 주변의 세상을 다시 집중시키는 정도의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물론 거들먹거리는 해독가의 하찮은 글귀를 다시 집중시키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빛은 힘을 준다. ~아이도, 빛의 가문 서기
[1] 여기서 말하는 힘찬 말은 욕설이다. 아만다가 거미를 욕을 하는 것을 듣고 무서워하자 아만다가 거미를 칭찬한 것이라고 둘러대었고, 이 엘릭스니는 욕설은 칭찬으로 알고 잘못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