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8 10:32:35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잊혀진 자의 이야기 -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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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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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제1장3. 제2장4. 제3장5. 제4장6. 제5장7. 제6장8. 제7장9. 제8장10. 제9장11. 제10장12. 제11장13. 제12장14. 제13장15. 제14장16. 제15장17. 제16장18. 제17장19. 제18장20. 제19장21. 제20장22. 제21장23. 제22장24. 제23장25. 제24장26. 제25장27. 제26장28. 제27장29. 제28장30. 제29장31. 제30장32. 제31장33. 제32장34. 에필로그

1. 개요

2023년 가면 축제 지식이다.

2. 제1장

탑 시장이 점차 활기를 띠며 깨어나고 있었다. 아이도는 한숨을 쉬고 까마귀의 고스트 앞쪽 테이블에 데이터 패드를 올려놓았다.

"글린트, 이 핼 너윈에 대한 연구 덕분에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요. 당신이 말했던, '무서운' 이야기 말이에요."

"익사한 대장 이야기 같은 거요?" 글린트가 물었다.

"그거예요." 아이도가 끄덕였다. "아버지는 얼마 전에도 헌시 같은 건 아이들이나 듣는 거라고 하셨죠. 하지만 핼 너윈과 머리 없는 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문적 가치나 정확성과 상관 없이 온갖 연령과 배경의 사람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저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이런 이야기를 직접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멋진 아이디어인데요. 뭘 먼저 쓰실 건가요?"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뭐랄까… 영감이 필요해요."

"오! 저도 돕고 싶어요. 무서운 이야기를 쓸 때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때론 현실이 더 무섭단 거죠!"

3. 제2장

에리스가 임마루를 가둔 방은 매우 좁았다. 창문이 없어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해킹할 만한 전자 장치도 없었다. 다른 쪽 벽에는 해체된 방어구가 쌓인 상자들이 있었고, 방 가운데에는 작은 상자에 굵게 '너'라는 글씨와 위협적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임마루가 탑의 기밀 구역에 숨어들었다가 잡힌 후, 이 방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둔 것이었다. 아이코라는 가려진 의체를 압수하고 외부에 은신자 요원을 배치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게 했지만, 임마루를 위해 낱말 퍼즐을 몇 장 남겨두는 일도 잊지 않았다.

임마루는 상자를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지만, 곧 청소부 로봇 하나가 불쑥 들어오며 그를 놀라게 했다. 임마루는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빙빙 돌며 훑어보았다.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로봇이었다. 임마루는 실망했다.

"사바툰이 날 이렇게 만들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군." 임마루가 로봇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며 말을 걸었다. "날 담보로 맡기다니 배짱이 대단하단 말이지. 그러고는 정보까지 달라니? 흥."

그는 로봇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상자를 쓸어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알게 된 걸 전부 말하라는 법도 없지?"

임마루는 주변을 휙 둘러본 뒤 재빨리 청소부 로봇의 시스템을 해킹했다. "이쪽으로 빈 도구 가방을 가져와. 무게만 조금 줄이면 적당한 크기가 되겠어." 로봇이 순순히 복종하자 임마루는 큭큭 웃으며 장착하고 있던 군체 의체를 벗어 던졌다. "좋아… 탈옥할 시간이군."

4. 제3장

몇 번의 힘든 시도 끝에, 놀라울 정도로 순진한 고스트를 잡아 눈물 나는 이야기를 짜내며 훌륭한 연기를 펼친 임마루는 결국 구속의 의체를 얻어 걸치고 슬쩍 모습을 감췄다. 그는 새로 변장한 모습으로 회랑과 격납고, 작업실을 기웃거리며 마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스캔했다. 그는 마당에 있는 거대한 나무의 굽이진 나뭇가지 주변을 맴돌았다. 나무를 장식한 화려한 등불이 그의 모습을 가려 주었다.

그는 촛불 사이로 명상하는 수호자들과 산들바람에 깜박이는 불꽃을 지켜보았다. 곤충이나 거미 옷을 입은 이들은 즐겁게 춤을 추거나 사과 물어 올리기 게임을 하고 있었고, 흥청대는 이들 옆에는 코코넛 껍질로 놀이를 하는 수호자들도 있었다.

코스튬과 가면의 향연 속에서, 임마루의 시선이 마침내 작게 포장된 무언가를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머물렀다. 그는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살금살금 나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저기, 비켜. 그 과자는 내가 먼저 봤거든." 비웃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5. 제4장

"그 과자, 내가 먼저 찜했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고개를 돌린 임마루는, 한 고스트가 바닥에 놓여 있던 과자를 향해 돌진하는 광경을 보았다.

"너— 대체 뭘 걸치고 있는 거지? 의체를… 인간 음식에 담근 건가?!" 임마루가 혀를 찼다.

고스트가 한숨을 쉬었다. "이건 캐러멜 애플 의체야, 바보야. 뭘 좀 안다면, 이게 얼마나 특별한 의체인지 알 텐데!"

"끈적끈적해 보이는데."

"디-테-일이 살아 있잖아. 으깬 토피를 두른 우아한 장식을 좀 보란 말야." 그녀가 빙글 몸을 돌렸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나 본데, 내가 대신 좀 낮춰 줄까?" 임마루가 쏘아붙였다.

임마루의 의체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의 홍채가 좁아지며 조소했다. "풉. 네 수호자가 널 불량품처럼 입히지 않은 게 더 놀라운걸?"

"난 수호자 같은 거 없는데." 임마루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고스트가 그의 앞에서 몸을 까딱거렸다. "잠깐, 너도 수호자가 없어? 역시, 우리 같은 고스트가 더 있을 줄 알았—"

"즐거운 가면 축제예요, 친구들!"

"아, 이럴 수가." 쾌활한 글린트를 보자 임마루와 고스트가 일제히 끙 소리를 냈다.

6. 제5장

토피 장식을 두른 고스트는 글린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쌩하니 사라져 버렸다. 글린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새 친구를 사귀자고 결심한 듯 뱀 무늬 의체를 입은 고스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가면 축제는 잘 즐기고 있나요?" 글린트가 물었다.

"꺼져." 임마루가 으르렁거리자 글린트가 깜짝 놀라 뒤로 펄쩍 물러났다.

"임마루! 어떻게—"

"조용히 해, 알겠지! 그저, 어, 축제를… 즐기려고 한 거다…정체를 숨기고." 임마루가 속삭였다.

글린트가 잠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에리스의 상자에서 탈출했군요?"

"방에 있었다. 상자가 아니라." 임마루가 딱 잘라 말했다. "내보내 주길 기다리며 착하게 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난 내가 알아서 해."

"그럼 저랑 아이도랑 같이—"

"싫다."

"우린 무서운 이야기를 위한 영감을 수집하고 있어요. 머리 없는 자들과 핼 너윈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

"머리 없는 뭐?"

"머리 없는 자들이요." 글린트가 재잘거렸다. "수호자들이 싸워온 거대한 호박 머리 적이에요. 과자로 가득 찬 수수께끼의 괴물들이죠!"

"수호자들과 싸운다 이거지? 흠. 그렇다면, 네 몰락자 친구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고 싶군."

7. 제6장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탑 시장에서, 아이도는 차가 가득 담긴 잔과 함께 테이블에 편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찻잔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연구자료와 데이터를 옆에 펼쳐 놓았다.

"아이도! 임마루가 함께— 아이도? 왜… 글은 안 쓰고 차만 쳐다보고 있나요?" 뒤에 임마루를 달고 온 글린트가 당황해 그녀를 쳐다보았다.

"글을 쓰려고 했어요. 근데 오래된 연구 자료를 읽다가, 찻잎 점이라는 기술을 알게 되었죠." 그녀는 찻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찻잎과 침전물을 보고 패턴을 분석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예측하는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어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난 괴물을 찾으러 온 거다. 차가 아니라." 임마루가 으르렁거렸다. 글린트는 아이도의 어깨 너머로 찻잔 속에서 움직이는 찻잎을 구경했다.

아이도가 네 눈을 가늘게 떴다. "이 형태는 마치—"

"자발라 사령관님이네요! 카이아틀 여제와 뜨개질하고 있잖아요!" 글린트가 외쳤다.

아이도는 찻잔 속 찻잎이 빙글빙글 돌며 우툴두툴한 발톱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몸 깊은 곳에서 불현듯 날카로운 한기가 느껴졌다. "글쎄요, 이건—"

"핀치네요! 빛의 기사와 있어요! 아니, 헌터네! 아, 잠깐— 사바툰을 끌어안고 있는데요!" 글린트가 또 외쳤다.

"내가 대체 한순간이라도 뭘 기대한 거지." 임마루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8. 제7장

"차는 됐고요." 글린트가 말했다. " 더 좋은 걸 가져왔어요!"

글린트가 물건 하나를 테이블 위에 전송하자, 아이도가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심장이 마구 빨라졌다. "속삭임의 덱? 에리스의 카드를 훔쳤어요?!"

"빌린 거예요." 그가 말을 정정하고는 테이블을 빙글빙글 돌며 그녀를 마주했다.

"글린트!"

"왜요? 쪽지도 잘 남겨 뒀다고요."

아이도는 군체로 변한 에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너무 위험해요." 아이도는 얼른 카드를 밀어냈지만, 글린트도 지지 않고 카드를 다시 밀었다.

"에리스는 정보를 얻거나 결정을 내릴 때 덱을 참고한다고 들었거든요. 글쓰기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한번 시도해 봐요." 글린트가 간청했다. "어려울 것도 없잖아요?"

아이도는 한숨을 쉬며 네 손으로 카드를 집어 들고, 방랑자에게 배운 방법으로 화려하게 카드를 섞었다. "몇 장이 필요하죠?" 그녀가 물었다.

"세 장 해봐요." 글린트가 대답했다. "그리고 에리스가 하는 걸 봤는데, 카드에 질문을 하더라고요."

아이도는 잠시 생각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쓰려면 어떤 종류의 위험이 가장 위협적일까요?" 아이도는 덱의 절반을 떼고,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첫 번째 카드를 선택했다.

'선각자'

"잠깐만요, 더 좋은 질문이 있어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상황도 있나요?" 글린트가 소리쳤다.

"글린트! 그런 질문은 안 될 것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하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질문하면 딱 좋잖아요!"

아이도는 눈을 감고, 다시금 손에 솟구치는 힘을 느끼며 계속해서 카드를 골랐다.

'거짓'

'세 벌레'

그녀는 눈을 뜨고 카드를 살펴봤다. "에리스가 좀, 뭐랄까, 위협적이긴 하죠." 그녀가 선각자 카드를 가리키며 인정했다.

"아니, 아니에요. 카드는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은유로 봐야 해요!" 글린트가 말했다. "선각자와 거짓! 그건… 망자의 영혼들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대지를 방황한다는 뜻 아닐까요!" 글린트가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거짓말 카드는 역방향이잖아요. 그건 말이 안 돼요."

"제 쪽에선 똑바로 보이는데요!"

"글린트는 테이블 반대편에 있으니까요. 이건 제가 보는 점이잖아요, 안 그래요?"

"아, 맞네요." 그가 재빨리 테이블을 건너왔다. "그럼… 길을 잃은 게 아니네요. 목적이 있었어요. 바로… 복수죠! 산 자들에 대한 복수! 우리를 머리 없는 자로 만들려던 거예요! 초인과적 벌레의 힘으로! 으아아아아!"

아이도는 카드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고독과 고립이란 감정은 인간과 엘릭스니 모두의 공포심을 자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런 요소를 무서운 이야기에 넣을 수 있을까요?"

글린트가 의체를 으쓱했다. "흠, 나쁘지 않은데요. 전 제 이야기가 더 좋지만요. 한 번 더 점을 볼까요?"

아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드를 집어 다시 섞었다.

9. 제8장

최후의 도시 너머 하늘이 황혼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글린트는 탑 외곽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까마귀에게 다가갔다.

"까마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못 믿을걸요! 아이도와 얘기하고 있었는데요. 제 말은, 저희가 대화를 많이 하긴 하죠. 오늘은 머리 없는 자들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도가 무서운 이야기를 써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아이도가 글을 쓰기로 했죠. 그런데 안 썼어요. 제 말은, 쓰긴 했는데 처음엔 차를 마셨어요! 도움이 안 됐죠. 그래서 우리가—어, 제가— 에리스의 속삭임의 덱을 빌려왔거든요. 정말 대단한 카드예요! 에리스가 그렇게…"

글린트는 말을 멈추고 까마귀의 시선을 따라, 저 멀리 날아가는 전투기 편대의 비행운을 바라보았다. 고스트가 붕 떠올라 까마귀의 뺨을 쿡 찔렀다. 까마귀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글린트! 어, 거기 있는 줄 몰랐네. 무슨— 무슨 말 했어?" 까마귀가 물었다.

"그냥… 저 여기 있다고요. 이야기하고 싶으시면요."

글린트가 제 수호자의 어깨에 기댔다. 까마귀는 손을 뻗어 작은 고스트의 의체를 쓰다듬어 주었다.

10. 제9장

임마루는 케이드-6의 흉상과 멀지 않은 마당 구석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관찰을 계속했다. 수호자들이 순순히 어떤 인간 주위로 몰려들었다… 인간은 과자를 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수호자들은 그녀의 모든 명령에 복종하는 듯 보였다. 과자를 나눠주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종소리처럼 명랑하게 울렸다.

"당분을 이용한 지배라…" 임마루는 혼자 생각했다. "군체 방식보다 훨씬 덜 지저분하군. 흠, 내가 직접 해볼 수도 있겠어." 그는 자기 생각에 흐뭇해져 소리 내어 웃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타이탄 하나가 임마루 앞에 멈춰 섰다. 한 손으로는 자신이 쓴 거대한 닭 가면을 바로잡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과자 한 무더기를 안고 있었다.

"꼬끼오-오오옥!"

갑자기 닭 한 마리가 타이탄에게 돌진했다. 타이탄은 헉 소리를 내며 얼른 과자 더미를 단단한 나무 앞에 떨어트리고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닭은 흥분해서 날개를 퍼덕이며 무자비하게 그의 손가락을 쪼아댔다.

"대령! 나야, 나라고!" 타이탄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가면을 벗으려고 애썼다. "난 닭이 아니야!"

가면을 삐뚤게 걸친 채로 도망가던 타이탄이 미친 듯이 임마루가 있는 쪽으로 질주했다. 고스트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령과 부딪혔다.

"꼬끼오-오오옥!"

닭은 분노를 임마루에게 집중하며 그의 의체에 달려들었다. 은빛 뱀 장식에 올라탄 닭은 발톱으로 의체를 꽉 움켜쥐었다.

"저리! 가!" 임마루가 소리 질렀다. 군체 의체만 있었어도 닭에게 한 방 먹였을 텐데. 그는 마당을 지나 격납고를 향해 빠르게 날았다. 하지만 타이탄의 힘과 헌터의 기교, 워록의 교활함을 모두 갖춘 대령은 끝까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버텼다.

11. 제10장

아나 브레이가 졸졸 따르는 기계 강아지를 데리고 마당을 지나갔다. "즐거운 가면 축제 보내요, 에바!"

"오, 아나!" 에바가 아나를 부르며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올해는 아치도 코스튬을 입고 멋지게 축제를 즐기면 좋을 것 같구나."

조그만 망토를 펼친 아나는 기쁨에 부드러운 탄성을 질렀다. "너무 잘 어울려, 아치! 역시, 넌 헌터일 줄 알았지."

아나가 망토를 묶어주려고 몸을 구부렸을 때, 격납고 방향에서 고스트 하나가 분노에 가득 찬 닭을 의체에 매달고 쌩하니 날아왔다.

아치의 망토가 펄럭이며 고스트의 눈을 덮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고스트는 버둥거리다 마당 바닥을 따라 쭉 미끄러져, 단단한 나무 아래 던져둔 과자 더미에 파묻혔다.

충격으로 대령의 부리가 잠시 느슨해졌다. 닭은 능숙하게 몸을 움직여 과자 사이 고스트의 눈을 겨냥하고 쪼아댔다.

왕왕 짖는 기계음이 들리고, 이어서 과자 포장지 사이로 마구 휘날리는 닭털이 보였다. 마침내 꽥꽥거리는 소리가 멀리 사라졌다.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던 임마루에게 강아지가 부드럽게 코를 갖다 대며 킁킁거렸다. 그제서야 당황한 고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 저기 좀 봐! 아치가 대령의 분노로부터 작은 고스트를 구했어! 착한 꼬마 헌터 같으니!" 한 수호자의 애정 어린 탄성이 들렸다. 임마루는 마당에 있던 모든 수호자들이 일제히 과자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강아지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놀랍군." 그가 흥미진진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12. 제11장

한참 후 임마루는 저장고 안에서 담요 위에 웅크리고 자는 아치를 찾아냈다. 고스트가 목을 가다듬을 때 나는 소리를 흉내 내자, 강아지가 슬쩍 한쪽 눈을 떴다.

"그… 닭… 사건이 있고 난 뒤 말인데, 네가 뭘 하는지 다 봤다. 마당에 있던 수호자들을, 네 조그만 앞발로 쥐락펴락하는 모습 말이다. 재능이 있더군." 임마루가 말했다. "네가 날 도와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을 들은 아치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지금 수호자들은 과자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과자에 장악당해 다들 과자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지. 그러니 우리가 대신 '그걸' 통제해야 한다."

아치가 으르렁거렸다.

"수호자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다." 임마루가 진심이 담긴 척 가증을 떨었다. "돕기 위해서지. 너도… 아나를 돕고 싶을 거다. 그렇지? 아나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겠지?"

아치는 잠시 생각하더니, 동의한다는 뜻으로 짖었다. 그렇게 둘은 협정을 맺었다.

13. 제12장

그가 여기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얼마나 긴장하고—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약간의 파편 외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는—아무에게도, 어디에도 말하지 않은—그 지식이 나를 완전히 미치게 할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날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말했고, 침묵 속에서 지켜보았다.

수많은 밤을 보내며, 나는 거리를 지키며 감시를 계속했다. 그는 나를 보거나, 느끼거나, 알지 못했다. 나는 결심했다. 나는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쿵, 쿠-궁, 쿠-궁.

그때 이 소리를 들었다. 일정하고 부드럽게 박동하는 소리. 한결같은 북소리가, 나를 부르며 따를 것을 명했다. 해충이나 바람일 거라고, 무분별한 추측을 하고 있는 거라고, 나는 스스로 되뇌었다.

여기서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날 확신했기에 내게 감시를 맡겼다.

그 소리는 계속해서 내 귓속에서 울리고 울리고 또 울리다가, 결국 인내심을 전부 잃고 커지기 시작했다. 큰 소리가 사방에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포효하고 울려 퍼졌다—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나는 그를 보고, 느끼고, 그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생각은 끊임없이 나를 지배했다.

쿠-궁, 쿠-궁, 쿠-궁.

나는 그의 통에 손을 얹었다.

쿠-궁, 쿠-궁, 쿠-궁.

나는 내 손으로 그를 쥐고, 짙고 깊은 어둠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쓸쓸한 마음"에서 발췌

14. 제13장

훔칠 과자를 찾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아치가 표적을 찾아 과자를 기꺼이 넘겨받고, 텅 빈 뱃속으로 전송하는 일은 더 쉬웠다. 그들도 곧 깨달았지만, 어려운 부분은 그 과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임마루의 방은 너무 눈에 잘 띄었고, 감시원과도 지나치게 가까웠다. 그는 탑 곳곳의 숨겨진 틈새를 찾았다. 하지만 다음 숨길 곳을 찾는 일이 오래 걸릴수록 아치도 과자를 가득 담은 채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아치의 움직임은 과자의 무게 때문에 매우 느려졌고, 과자가 녹지 않게 하려다 보니 기능 지연이 발생했다.

"힘든 방법 말고, 똑똑한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임마루가 마침내 인정했다. "이 작업을 확장할 필요가 있겠어."

아치는 바닥에 뒹굴며 배를 내보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몸 안에서 과자 포장지가 자글자글 구겨졌다.

15. 제14장

나는 한때 학자였다. 거대한 기계의 영향력 너머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나는 내 가문에 말했다. 진실을 보고, 나와 함께 말하자고. 그들은 거절했고 나는 떠났다. 그들의 믿음 속 증오를 견딜 수가 없었다.

바람은 매서웠고, 따뜻하게 몸을 덥힐 열구멍 담요도 없었다. 위험으로 가득한 지역에 몸을 보호할 망토 조각 하나 없었다.

나는 소복이 뒤덮인 눈 아래 홀로 버려져 있었다.

그러던 중 깊은 잠 속에서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 비현실적으로 생명력 넘치는 별의 그림자가 내 주위에 솟아오르더니, 뇌가 끓어오를 듯 위협적으로 고조된 음성으로 내 이름을 속삭였다. 고압적인 질문의 포효가 내 혈관 속에서 끓어올랐고, 마침내 가라앉았을 때는, 질문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 통찰. 깨달음.

얼마나 간단한지.

별나면서 뻔한 것들인지.

그 단어들이 징처럼 내 귓가에 울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대를 다시 만들어,

모든 지식을 향한 길로 인도하리라.

그렇게 그대는 결속되리라.

천 의 죽 음 에.

마지막 숨결을 내뱉는 순간 그대는 굴복하고,

영원히 사로잡혀,

별들의 망령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부서지는 일을 반복하리라,

시간의 끝에 이를 때까지.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보거나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진리뿐이었다.

—"비극적 서기"에서 발췌

16. 제15장

에테르 탱크의 술집은 엘릭스니를 비롯한 도시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외로운 술꾼들. 신나게 노래 부르는 이들. 사교적인 도박꾼들. 거미는 무심하게 그 열기를 흘려들으며 데이터 패드에서 숫자를 훑어내려 재산을 세어 보고 있었다.

임마루가 착용한 구속의 의체에 은빛 뱀 문양을 따라 네온 불빛이 반사되었다. 임마루가 술집을 향하자 아치가 옆에서 종종 따라왔다.

"제안할 게 있다." 임마루가 말했지만, 거미는 그저 책을 계속 읽을 뿐이었다. "감히 두 번 말하게 만들면, 널—"

"덤벼 봐라, 내 다음 수집품이 되고 싶다면." 거미가 대답하며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마주했다. 그의 발톱에 빈 고스트 의체가 쥐어져 있었다.

"네가 누굴 건드리고 있는지 전혀 모르나 본데." 임마루가 코웃음을 쳤다.

거미는 고개를 숙여 고스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 아주 잘 알지. 당장 나가!"

"지금 이곳에서는 과자가 주요 화폐다. 모든 걸 거래할 수 있지." 임마루가 재빨리 말했다. "과자를 추출할 방법을 찾았다. 도시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어. 하지만 창고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많으면 좋고."

거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얼마나 줄 건데?"

"15%. 여기 있는 아치가 먼 거리에서 큰 시설까지 물건을 신속하게 전송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고." 임마루가 달콤한 말로 약속했다.

"50%." 거미가 답했다.

"창고 비용으로 50%라고?"

"기술료, 보관료. 그리고 그 외 부수적인 것 전부."

"미쳤나 보군. 15%."

"60%. 싫으면 가."

임마루가 홍채를 좁혔다. "50."

"60." 거미가 다시 말하고 아치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지? 이 거래에 동의하나?"

아치가 신나게 짖자, 거미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거래가 성사된 것 같군."

17. 제16장

"정말 귀여운 망토야. 언니도 꼭 봐야 해." 아나가 작업장에서 수리를 하며 헤드셋 너머로 신나게 재잘거렸다. 갑자기 컴퓨터에 알림이 뜨며 깜박였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강아지는 종이봉투를 씌워 놔도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러울걸." 엘시가 웃었다.

그러나 전화 너머는 조용했다.

"…아나? 아직 거기 있어?" 엘시가 물었다.

"어?" 아나가 컴퓨터 화면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엘시가 웃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아냐, 잠깐만." 아나가 걱정에 이마를 찌푸리고 외쳤다. "미안, 그… 아치에게 문제가 생겼어."

"다쳤니?" 엘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건 아닌데. 막 진단 보고서를 받았거든. 벌써 두 번째야. 첫 번째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된 서브루틴이 실행되고 있나 봐. 정밀 검사를 해 봐야겠어."

"보고서엔 뭐라고 나와 있는데?"

"뭐가 많아. 그런데 특정 화학 방정식, 공식과 화합물이… 반복되고 있어… 탄소 12, 수소 22, 산소 11. 탄소 6, 수소 8, 산소 7. 결정성 탄수화물의 비율. 비결정성 탄수화물의 비율. 카라기난. 인버테이스. 테오브로민. 따로따로 보면 의미가 없어. 하지만 특정 순서로 종합해 보면, 이건—"

"과자?"

18. 제17장

임마루는 그날의 과자 수확량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때 거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보지?" 거미가 툴툴거렸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임마루가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

"숫자가 맞지 않잖아. 네 개가 측정한 무게랑 내 부하들이… 창고에서 계산한 것이 다르다고."

"네놈한테 속인 건 없어. 네 부하들 관리나 잘하라고."

"숫자가 계속 다르게 나오면 거래는 끝이야, 알겠나? 그럼 네가 받을 40%도 구경하지 못하게 될 거다. 아, 하나 더. 수호자들이 계속 과자를 받으러 탑에 가던데. 어떻게 해 봐." 거미가 요구하곤 통신을 끊었다.

"흠,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임마루가 아치에게 말했다. 강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더 크게 가야겠군. 머리 없는 자가 필요해."

19. 제18장

"이봐!" 임마루가 외쳤다. 자갈이 깔린 회랑이 갑자기 찢어지기라도 할 듯, 버려진 지역 내부의 벽이 삐걱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혼자였다.

임마루는 우주선 안을 헤매다가 벽을 따라 늘어선 격납 유리 선반에 몸이 걸려 비틀거렸다. 병 속에는 끈적한 액체 속에 천천히 꿈틀거리는 눈알들이 들어있었고, 그 눈알들은 임마루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백 개의 기묘한 생물과 유기체 표본도 있었다. 몇몇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랐지만, 임마루는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앞쪽에서 말도 안 되게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초음파의 진동이 단조로운 삐걱거림에 섞여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소리는 가까이 다가오며 점차 커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멈췄다.

모든 것이 멈췄다.

고개를 돌린 임마루는 어느 고스트의 피처럼 붉은 눈을 마주했다.

"물러서!" 임마루가 꽥 소리를 질렀다.

붉은 눈의 고스트가 고분고분 말을 따랐다. 기괴하고 기형적으로 이어 붙인 의체 밖으로 눈알이 툭 튀어나와, 한쪽으로 비틀려 있었다. 고스트는 세상의 무게라도 짊어지고 있는 듯,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 있었다.

"방… 방랑자 있나?"

고스트의 홍채가 최면이라도 거는 양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빠르게 깜박였다.

"없다는 뜻인 것 같군. 너는, 어, 이름이 뭐지, 친구?"

고스트의 눈동자가 금세 다시 빨갛게 변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임마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어, 방랑자—방랑자가 머리 없는 자와 관련된 물건들을 좀 가지고 있다고 해서. 빌려도 되나? 아무거나."

고스트는 '기갑단 뇌'라고 적힌 통 앞으로 날아가 의체로 뚜껑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아니!" 임마루가 고함을 질렀다. "아니, 어, 그 뇌는 필요 없어… 아니, 그것도 필요 없다. 음, 아니… 눈도 필요 없다."

말 없는 고스트는 임마루의 주변을 빙빙 돌더니 의체 아래로 날개를 밀어 넣었다. 곧 그는 홍채가 스칠 때까지 임마루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바쁜가 보군. 나중에 오지—다신 안 오겠지만." 임마루는 중얼거리며 얼른 몸을 빼내어 이동했다.

20. 제19장

최후의 도시로 돌아온 임마루와 아치는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머리 없는 자의 데이터를 검토했다.

"이게 전부인 것 같군. 방랑자는 도움이 안 됐고." 임마루가 말하자, 아치가 답 대신 낑낑거렸다.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거— 거긴 우리가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봐, 어쨌든 글린트와 아이도의 연구자료를 얻었잖아. 현장에 있을 때 다른 수호자에게서 빼돌린 물건들도 있지. 일단 여기서 연구를 시작해도 충분해."

아치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보냈다.

임마루는 군체 의체를 장착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두고 보면 알 거다. 이제 물건을 좀 찾아다 줘. 할 일이 있다."

21. 제20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스락스가 데이터 패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아이도가 희망을 품고 물었다.

"꽤… 좋구나." 그도 결국 인정했다.

"정말요?" 아이도가 외쳤다.

미스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비극적 서기'. 무한한 지식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다니—슬프면서도 괴로운 이야기였다. 모두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더군. 자손들도 말이다. 하지만 아이도, 한 가지 경고해야겠구나."

"맞아요, 묘사가 너무 긴 부분이 있죠. 하지만 제 생각에 아마—"

"아니, 그런 말이 아니다. 너에 대한… 걱정이다. 너는 역사를 보관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일을 하지. 이 이야기를 쓰게 되면, 너는 네 이름, 서기로서의 명예와 신뢰를, 거짓된 이야기와 융합시켜 혼란을 만드는 것이 된다."

아이도는 얼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둘 다 하면 안 되는 거죠?"

미스락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사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22. 제21장

가면 축제 기간이면, 최후의 도시에서 황혼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색색의 등불이 사람들 위로 파스텔빛 모자이크를 드리웠고, 빛나는 양초는 망자들을 기리며 타올랐다.

한 헌터가 홀로 추모비 사이를 돌아다니며 각각의 장식을 구경했다. 때로는 꽃, 때로는 음식. 때로는 애장품이나 사랑을 담은 손 글씨 쪽지도 있었다. 사진이나 아이들의 그림도 있었다.

그는 한 엘릭스니 어머니가 보드라운 알껍질막 천을 놓는 걸 보고 불쑥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깨끗한 심지의 연보랏빛 양초가 들려 있었다. 그는 촛불에 불을 붙이고 공물들 사이에 놓으려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헌터는 온화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엘릭스니 어머니에게 촛불을 내밀었다.

"당신의 작은 아이를 위해." 그가 말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자기 언어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돌연 자리를 박차고 나와 탑을 지나고 시장 속을 헤매다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고개를 든 그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3. 제22장

아만다의 작업장에는 항상 많은 추모 선물이 남아 있었다. 자발라가 세어보려 해도 너무 많았다. 그는 그날 탑에서 있었던 대령의 난동으로 인한 피해를 가늠하며, 추모 선물들을 옆으로 옮겼다.

"깃털이 너무 날렸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아만다의 물건들을 덮어 두었던 덮개를 열어 아래 흩어져 있던 부서진 양초 조각들을 치웠다. 그때 작업대에서 너트와 볼트가 담긴 통이 떨어졌다. 자발라는 끙 앓으며 통에서 쏟아지는 너트와 볼트가 전부 굴러가 버리기 전에 서둘러 모았다.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서랍에 넣는 순간, 접힌 종이가 그의 손가락을 스쳤다. 그는 종이를 펼쳐 보았다.

알록달록한 그림이었다. 우주선을 그린 것도, 모험을 그린 것도 아니었다. 큰 파란색 타이탄과, 웃고 있는 어린 소녀의 그림이었다.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그림에 더 가깝게 얼굴을 갖다 댔다.

"잠이 안 오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자발라는 자기 앞에 서 있는 까마귀를 발견했다. "자네도 잠들지 못하는 것 같군." 자발라가 대답했다.

"옆에 앉아도 될까?"

자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을 주머니에 다시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는 덮개를 벗긴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반쯤 차 있는 커피잔이 보였다. 용접기 장갑. 데이터 패드와 설계도, 작업용 걸레와 공구들.

"언젠가는 여길 정리해야 하는 날이… 올 줄 알았지. 그게 오늘 밤인 것 같군." 자발라는 그렇게 말하고 조심스럽게 스패너를 집어 들었다. "이 공구들은 좋은 주인을 찾아주어야겠군. 정말 소중하게 써 줄 사람 말일세."

까마귀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적임자가 있을 것 같다."

24. 제23장

탑 깊은 곳에서, 임마루는 머리 없는 자의 사체 잔해를 조각조각 이어 만든 괴물의 몸통 프로토타입과, 수호자들을 따라다니며 훔친 호박 조각을 전부 꿰어맞췄다. 부족한 부분은 다른 걸로 메꿨다. 왼팔은 죽은 오우거에서 뗀 것이었고, 오른팔은 갓 생성된 노예에게서 뜯어낸 것이었다. 임마루는 밤새도록 선을 연결하고, 용접하고, 이음매를 메꾸고, 자르며 작업했다.

마침내 완성이었다.

임마루는 전선에 전류가 흐르게 한 뒤, 그의 창조물에 에테르가 스며들게 했다. 가슴이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부풀어 오르며 들썩였다. 눈은 밝은 푸른색으로 빛났고, 울퉁불퉁한 입에서는 에테르가 쏟아져 나왔다. 괴물의 몸통이 꼿꼿이 선 채 질질 몸을 끌며 움직였다. 테이블을 따라, 죽 이어진 씨앗과 섬유질의 주황색 과육이 흔적을 남겼다. 머리 없는 자는 자신을 만든 자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그를 왈칵 붙잡았다.

괴물의 오우거 팔이 온 힘을 다해 임마루의 의체를 움켜쥐고 제 입 쪽으로 끌어당겼다. 에테르 증기가 고스트의 눈으로 와 닿았다. 경고도 없이 머리의 이음새가 쩍 갈라졌다. 곧 머리가 쪼개져 바닥에 뒹굴었고, 몸통은 테이블에 힘없이 쓰러졌다.

25. 제24장

아이도는 시끄러운 탑 시장을 피해 자카란다 나무 아래 명상을 하던 아이코라를 찾아냈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아이코라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목소리에 즐거움이 묻어났다.

"방해해서 죄송해요." 아이도가 사과했다.

"괜찮다네." 아이코라는 대답하며 자기 옆의 땅을 툭툭 두드려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글린트가 그러던데, 무서운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가 있다지. 어떻게 되어가나?"

"처음에는 잘 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디어가 정말 많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글린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좀 '막힌'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죠. 최근 정말 겁이… 많았거든요."

아이코라가 다 이해한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에리스 말이지." 그녀가 툭 내뱉었다.

아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는데도 제 글이 나아지지는 않는 것 같아 오히려 괴로워요. 속삭임의 덱을 사용했을 때—"

아이코라가 눈썹을 치켜들자, 아이도가 한 손을 들어 그녀를 진정시켰다. "맞아요, 압니다. 글린트가 쪽지를 남기고 가져왔다고 우겼죠. 카드를 보고 우주에는 다양한 공포의 근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수많은 위협. 미지의 존재들. 그런 것들이 제게 큰 두려움의 원천이 되는 것 같아요."

"자신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게 중요하다네." 아이코라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네 혼자만이 아니라네. 카드에 휘둘리지 말게. 이 카드는 운세나 미래를 알려주는 게 아닐세. 자신을 통찰해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뿐이지.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것은 자네일세. 카드가 아니지."

26. 제25장

임마루와 아치는 두 번째로 만들어 낸 프로토타입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구해 온 유기 부품을 잘 엮는 기술은 날로 업그레이드되어, 이번에는 오른손 대신 기갑단 검이 달려 있었다. 왼팔에는 융합자 배선이 가득 감겨 있었다. 혈관을 따라서는 벡스 우유가 흐르고 있었다. 나머지는 조심스럽게 조달해 온 머리 없는 자 조각들을 모아 완전히 새롭게 재조립해 만들었는데, 수많은 조각을 누덕누덕 이은 모습이 유기적인 공포를 자아냈다. 이음매에서는 짙은 색의 젤리 같은 액체가 새어나오며 죽음의 냄새를 풍겼다.

몸통 옆에는 마지막 부위가 놓여있었다. 완벽하게 온전한 호박 머리였다. 아치가 잠든 머리 주변을 킁킁거리며 발로 긁어대자, 호박이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조심해." 임마루가 쏘아붙였다. "그 녀석은 잘못 건드리면 폭발할 수도 있다고." 그가 진저리를 쳤다. "방랑자에게 또 부탁하고 싶진 않거든."

임마루는 머리를 몸통에 붙였다. 훼손된 부분에 완벽하게 딱 맞았다. 그는 가슴 구멍을 열어 살을 늘리고 찢은 다음 변색된 군체 수정을 넣었다. 머리 없는 괴물의 몸에서 에너지가 솟구쳤고, 머릿속에서는 섬뜩한 붉은 빛이 깜빡거렸다. 괴물은 울부짖으며 으르렁거렸다.

"아하하, 완벽해. 완벽하군." 임마루가 기뻐하며 혼잣말을 했다. "과자를 원하나? 그래, 갈망하고 있겠지. 과자가 필요하겠지." 임마루가 괴물에게 말을 걸었다. 괴물은 답 대신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 나와 괜찮은 쪽 팔을 휘둘렀다.

"과자가 먹고 싶으면 나가서 가져와라. 전부." 임마루가 말하자 괴물은 두 발을 딛고 서둘러 문을 향해 달려갔다. 아치가 으르렁거리며 괴물을 쫓아갔고, 임마루는 뿌듯한 기분에 킥킥 웃었다.

"이제부터 재미있어지겠군."

27. 제26장

머리 없는 자는 재빨리 시장으로 향했다. 그를 본 상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붙들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글린트와 아이도는 공포에 질린 채 머리 없는 자가 온몸을 마구 휘두르다가 주변 상점에 불을 붙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괴물은 과자 진열대를 찢어버리더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과자를 먹어 치웠다. 과자가 사라진 후에도 괴물은 계속 날뛰었다.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랜턴이 있는 쪽으로 돌진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한 진열대에서는 과일을 으깨고 다른 곳에서는 야채를 던져 댔다. 좌절한 괴물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놓인 과자 그림을 발톱으로 쥐어뜯기 시작했다. 주먹에는 장식이 한 줌 쥐여 뜯겨있었다.

28. 제27장

"머리 없는 자?!" 아이도와 글린트가 함께 소리쳤다, 아치가 그들 곁으로 달려왔다.

"도움이 필요해요. 가서 까마귀를 찾아올게요!" 글린트가 외쳤다.

"시간이 없어요. 오래 기다릴수록, 괴물은 점점 위험해질 거예요. 누군가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 당장 막아야 해요!" 아이도가 대답하며 서둘러 괴물의 구성 성분을 분석했다. "우리가 전에 연구했던 머리 없는 자와는 다른데요. 이 부속물들은… 저건, 벡스 우유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글린트가 대답했다. "출아형 효모와 당분은 벡스 우유와 화학 반응을 일으켜요. 제 계산이 맞다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게 되면 인간이 '치약'이라고 분류하는 덩어리가 생성될 거예요. 녀석이 배설한 가스가 반응을 일으키면—"

"요점만 말해요, 글린트!"

"아무도 위험에 빠트리지 않고 머리 없는 자를 처치할 수 있어요!" 그가 재빨리 외쳤다.

"저 괴물이 촉매제를 삼켜야겠죠." 아이도가 추측했다.

"그래요. 하지만 우리가 강제로 빵을 먹일 수도 없잖아요. 과자만 먹으니까."

아치가 그들 옆에서 계속 왕왕 짖었다.

"전— 강아지 말 못 하는데요." 글린트의 말에 아이도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치는 으르렁거리더니 바닥에 과자 더미를 가득 전송했다.

아이도와 글린트가 놀란 표정을 주고받았다. 아이도가 끄덕였다. "저거면 되겠어요."

29. 제28장

아이도는 근처에 있는 엘릭스니 빵 가판대로 달려가 가장 큰 빵 한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네 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빵 덩어리를 잘게 찢어 과자 포장지에 쌌다. 자신이 엘릭스니여서 팔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글린트가 소리쳤다.

고개를 든 아이도의 눈에,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머리 없는 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발밑에는 알록달록한 "과자"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들은 허둥지둥 길을 비켰다. 머리 없는 자는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달려들더니 눈도 깜짝 않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돼요." 글린트가 당황했다.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내부에 공간이 있는 건 아닐까요? 벡스 우유가 온몸에 퍼지는 걸 막는 공간 말이에요." 아이도가 물었다.

"알아봐야죠." 글린트는 머리 없는 자를 향해 쌩하니 날아가, 맹렬히 몸을 휘두르는 그것을 스캔했다. "가슴 쪽이에요!" 글린트가 크게 외치는 순간 괴물이 그를 튕겨내 날렸다. 글린트는 공중을 빙빙 돌았다. 어지러웠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아치가 즉시 왕왕 짖으며 뛰쳐나가, 머리 없는 자가 자신을 쫓아오도록 유인했다. 강아지는 머리 없는 자를 옥수수 가판대 쪽으로 이끌면서 재빨리 다리를 걸었다. 괴물이 비틀거리는 순간, 아치가 앞으로 뛰어나가 몸을 힘껏 부딪치며 떠밀었다. 괴물은 거대한 쇠 주전자를 잡다가 땅에 미끄러져 주전자를 놓쳤다. 퍽 소리와 함께 주전자가 머리 없는 괴물의 가슴에 떨어지면서, 몸에 팝콘과 함께 뜨거운 액체 설탕이 쏟아졌다.

괴물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몸을 일으켰다. 몸이 마구 흔들렸고, 가슴팍의 상처에서는 벡스 우유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까마귀, 자발라, 아나는 글린트와 함께 달려 나갔으나 아이도가 그들을 밀어냈다. "물러서요!" 그녀가 외치며 몸을 숨겼다.

머리 없는 자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 몸이 팽창하고 호박 머리의 가장자리 또한 찢어지고 갈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괴물이 폭발했다. 거품 무지개가 하늘 높이 치솟더니 끈적끈적한 액체가 사방에 떨어지며 시장 전체를 뒤덮었다.

30. 제29장

축제의 잔해가 무더기로 쌓였다. 모든 것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 호박 진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임마루는 그 폐허를 둘러보며 춤을 추는 듯 여유롭게 날았다. "봤어? 거대한 거품 스크립 같았다고!" 임마루가 웃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지!"

"네가 한 짓이냐?!" 까마귀가 외쳤다. 임마루는 대답 대신 군체 의체를 까마귀 쪽으로 까닥까닥 기울였다.

"그저 좀 시동을 걸어 준 것뿐이지. 저기 있는 네 친구들이 다 끝냈잖나. 그나저나 이 끈적끈적한 물질, 하하, 대단한데. 이걸로 충분해! 지금 너희들 표정을 보니 보람이 넘치는군." 임마루가 낄낄거리며 날아갔다. "즐거운 가면 축제 보내라고, 고깃덩어리들!"

31. 제30장

"정말 엉망이군요." 아이도가 말했다. "시장 축제 공간이 파괴되다니 실망스럽네요. 폭발로 생성된 물질이, 음, 우리 예상보다 훨씬 끈적거립니다."

"냄새는 말할 것도 없네." 자발라가 코를 막았다. "이건… 정말 견딜 수 없군."

아나는 어깨 너머로 물질 샘플을 슬쩍 보았다. "음, 역겹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유기물이네요. 며칠 전 아치의 진단을 수행하던 중에 서브루틴에 '청소' 프로토콜이 내장되어 있는 걸 찾았는데, 코드에 접근할 수가 없지 뭐예요. 여기서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서브루틴이 있다 한들 강아지가 뭘 어쩌겠어? 전부 덩어리로 쌓나? …먹어 치우나?" 까마귀가 물었다.

아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낼 방법은 하나뿐이지. 아치? 한번 해 볼 수 있겠니?"

아치가 왕왕 짖으며 루틴을 시작했다.

32. 제31장

거미는 창고 깊은 곳에서, 창고 직원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자, 말해보시지. '도둑질 금지'라는 규칙의 어디가 그렇게 이해하기 힘들었지?"

직원은 거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제—제가 훔친 게 아닙니다!"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쁜 게 뭔지 아나?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다!" 거미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널—"

거미는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그는 공기 냄새를 킁킁 맡더니, 즉시 직원을 떨어트리고, 반사적으로 구역질을 해댔다. "이게 무슨 냄새야?!"

고개를 든 거미 위로 밝은색의 거품과 악취 나는 호박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33. 제32장

까마귀와 자발라는 엘릭스니 구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린 엘릭스니 한 무리가 기계 강아지를 둘러싸고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엘릭스니 아이 하나가 앞으로 달려가더니, 자발라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녀의 네 팔에는 과자가 가득 안겨 있었다. 아이는 자발라를 올려보고 기뻐하며 재잘거렸다. 자발라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갑작스러운 미소는 자발라 자신도 놀라게 했다. 까마귀는 아이를 따라가 보라고 자발라에게 손짓했다. 결국 둘은 작지만 인상적인 작업장 앞에 도착했다. 추진기를 제거한 참새가 리프트에 달려 있었다. 그 아래에서는 엘릭스니 하나가 무언가를 손보고 있었다.

"잘 되어가는 것 같은데." 까마귀가 외쳤다. 어린 정비공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다가 참새에 머리를 쿵 부딪혔다. 그녀는 씨근거리며 엘릭스니 말로 뭐라 중얼거렸다.

"이트제라스, 그런 못된 말은 누구에게 배웠어?" 모퉁이를 돌아온 니이크가 그녀를 꾸짖었다.

"언니한테 배웠지." 이트제라스가 씩 웃었다.

"흠, 그럴 리가 있니? 이리 와. 손님들이셔."

"이쪽은 니이크와 동생 이트제라스야. 여긴 자발라 사령관이고." 까마귀가 서로를 소개했다.

"이트제라스? 독특한 이름이군." 자발라가 말을 건넸다.

니이크가 제 동생을 두 팔로 감쌌다. "평범한 이름으로는 이 녀석을 감당할 수가 없지요." 이트제라스가 그녀의 팔을 밀어내자 니이크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만나서 반갑네. 오래 붙잡고 싶진 않네만… 오늘은 개인적으로 전해주고 싶은 게 있다네."

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은 공구 상자를 들어 보였다. 니이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이 턱 막혔다.

"아만다의 유언에 따르면, '뇌에는 기계가 있고 혈관에는 기름이 있는 존재'에게 자기 물건들을 나눠주라고 했거든. 니이크가 딱 적임자일 것 같아서." 까마귀가 설명했다.

니이크가 선물을 받아 들었다. 자발라는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이트제라스에게 내밀었다. "까마귀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아만다라면 자네에게 이걸 주고 싶어 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트제라스는 천을 풀었다. 친숙한 스패너가 나왔다. 그녀는 공구에 새겨진 이니셜을 살며시 만져보고, 가슴에 껴안았다. "사령관님… 아만다에 대해 알고 싶어요. 사령관님은 친하셨죠. 아만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서비터의 홀로그램 녹화본이 있어. 함께 볼 수 있을 거야." 니이크가 두 수호자를 손짓하며 안으로 불러들였다. "괜찮으시다면… 차 한잔하실래요?"

자발라는 이트제라스의 희망에 찬 눈빛을 내려다보며, 수년 전 어린 인간 소녀에게서 보았던 무언가를 떠올렸다… 벌써 너무나 오래전 일이었다.

"아만다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나야 영광이지."

34. 에필로그

이 놀라운 이야기는 이제 엘릭스니 기록의 일부가 되었다. 이 이야기들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믿는다면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우주는 거칠고 신비로우며 공포와 전율, 유혹으로 가득 찬 수수께끼의 공간이다. 남들이 발을 내딛기 두려워하는 곳으로 가 감각을 뛰어넘고 미지의 세계를 받아들여라. 이렇게 도전할 용기가 있는 자만이 새로운 진실과 모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빛의 가문 이타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