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등장인물
1. 개요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의 설정을 정리한 문서.2. 역사적 배경
이 작품은 도입부 기준 1250년대 후반~126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며, 이 시기는 동쪽에선 쿠빌라이 칸이 예케 몽골 울루스의 대칸으로 집권하고 압바스 왕조를 멸망시키는 등 몽골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권이 크게 번영한 반면 서쪽에선 대공위시대가 일어나고 키예프 공국, 불가리아 제2제국의 몰락으로 타타르의 멍에가 시작되는 등 유럽, 특히 동유럽이 크게 쇠퇴한 시기이다. 작중에서의 니케아 제국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몽골의 압박은 압박대로 받고 유럽의 혼란도 혼란대로 겪으며, 거기에 더해 동방에서 쇄도해오는 유목민 러쉬까지 막아내야 하는 큰 딜레마에 놓인다.한편, 당대의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속되어 고중세(High Middle Age)의 대규모 문명 발전을 견인했던 온난화의 시기인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가 유사 이래 최대의 화산 폭발 중 하나인 1257년 사말라스 화산 분화로 인해 촉발된 13세기 후반~14세기 초반의 소빙하기로 급격한 종말을 맞이했고, 이는 1315년에 시작되어 1317년에 끝나는 유례없는 규모의 대기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 더해 찾아올 흑사병 크리는 보너스. 실제로 이때 일어난 급격한 기후 변화는 팔레올로고스 왕조가 여러 차례에 걸친 정치적 삽질을 해댈 무렵 변방에서 목축과 교역으로 근근히 먹고 살던 유목민들의 성향을 적대적으로 변화시키고 아나톨리아 내륙과 그 너머에서 더 많은 유목민들을 유입시켜 제국의 동부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끝내는 오스만 제국의 흥기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나비효과를 만들었다.
따라서, 작중에서 유일하게 미래 지식을 보유한 주인공 요안니스 4세[1]는 안드로니코스 2세의 치세에 이르러 제국을 급격하게 쇠퇴시킨 주요 요인인 주변을 둘러싼 정치외교적 혼란, 유목민들의 끊임없는 유입 및 적대화와 지하드의 선포, 기후변화 때문에 벌어진 13세기 말~14세기 초의 극단적인 재정난의 3가지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하며, 이와는 별개로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의료제도를 크게 혁신하면서 의도치 않게 미래에 닥쳐올 흑사병까지 어느 정도 대비하는 데 성공한다.
3. 관직
작중에 등장하는 주요 관직들 및 그 서열은 요르요스 코디노스[2]가 1347년에서 1368년 사이의 시점에 궁정의 관직들과 의전에 대해 집필한 문서인 데 오피키스(De Officiis)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3] 또한, 관직명 번역은 작가의 블로그에 업로드된 적이 있는 연재글과 작중에서 등장한 관직명을 절충한 것을 따른다.3.1. 작위급 관직
품계 | 원 명칭 | 번역 명칭 | 주요 역임자 |
군호 | |||
1위 | 데스포티스(Despotes) | 군주 | 미하일 2세 |
2위 |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or) | 존엄군 | |
3위 | 카이사르(Kaisar) | 부제 | |
4위 | 메가스 도메스티코스(Megas Domestikos) | 육군총사령관 | 요르요스 무잘론 |
5위 | 판휘피르세바스토스(Panhypersebastos) | 초전존자 | |
관작 | |||
6위 |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Proto-vestiarios) | 수석의상관 | 카리야니티스 |
7위 | 메가스 둑스(Megas Doux) | 연합함대제독 | 카코스 세나히림 |
8위 | 프로토스트라토르(Proto-strator) | 기병대장 | 요안니스 앙겔로스 |
9위 | 메가스 로고쎄티스(Megas Logothetes) | 총리대신 | 요르요스 무잘론 |
10위 | 메가스 스트라토페다르키스(Megas Stratopedarches) | 대군영관 | |
11위 | 메가스 프림미케리오스(Megas Primmikerios) | 대수석관 | |
12위 | 메가스 코노스타블로스(Megas Konostaulos) | 대용병관 |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
13위 | 프로토세바스토스(Proto-sebastos) | 수석존자 | |
14위 | 핀케르니스(Pinkernes) | 상주관 | 야코보스 |
15위 | 쿠로팔라티스(Kouropalates) | 시위관 |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
16위 | 파라키모미노스 테스 스펜도니스(Parakoimomenos tes Sphendones) | 궁내장관 | 니키포로스 |
17위 | 파라키모미노스 투 키토노스(Parakoimomenos tou Koitonos) | 침전숙위환관 | |
18위 | 로고쎄티스 투 예니쿠(Logothetes tou Genikou) | 재무부장관 | 필론 |
19위 | 프로토베스티아리티스(Proto-vestiarites) | 수석의상원 | |
20위 | 도메스티코스 테스 트라페지스(Domestikos tes Trapezes) | 수라내부경 | |
21위 | 에피 테스 트라페지스(Epi tes Trapezes) | 수라관 | |
22위 | 메가스 파피아스(Megas Papias) | 대수문관 | |
23위 | 에파르코스(Eparkos) | 판윤 | 엑프라시스 |
24위 | 메가스 드룬가리오스 테스 비글리스(Megas Droungarios tes Vigles) | 대경비파수관 | |
25위 | 메가스 이테리아르키스(Megas Hetairearches) | 대용병관[4] | |
26위 | 메가스 카르툴라리오스(Megas Chartoularios) | 대사무관 | |
27위 | 로고쎄티스 투 드로무(Logothetes tou Dromou) | 체신부장관 | 마누일 참플라콘 |
28위 | 프로토세크리티스(Protosekretis) | 대서기관 | |
29위 | 에피 투 스트라투(Epi tou Stratou) | 마부관 | |
30위 | 뮈스티코스(Mystikos) | 밀직관 | 시몬 |
31위 | 도메스티코스 톤 스콜론(Domestikos ton Scholon) | 근위대장 | 미하일 글라바스 |
32위 | 메가스 드룬가리오스 투 스톨루(Megas Droungarios tou Stolou) | 중앙함대제독 | 리카리오 |
33위 | 프림미케리오스 테스 아블리스(Primmikerios tes Aules) | 궁정수석관 | |
34위 | 프로토스파싸리오스(Protospatharios) | 수석호위관 | 에르토르 |
3.2. 기타 주요 관직
지역 | 주요 역임자 |
변경군사령관(둑스) | |
아드리아노폴리스 | 세바스티아노스 |
파플라고니아 | 미하일 글라바스 |
군관구사령관(스트라티고스) | |
트라키아 | 알렉산드로스 |
마케도니아 | |
테살로니키 | |
테살리아 | |
이피로스 | |
엘라도스 | |
메소튀니아 | 아가피티스 |
파플라고니아 | |
아르메니아코스 | |
카라만드로스 | |
트로아스 | |
마게돈 | |
트라키시오스 | 니키포로스 타르카니오티스 |
프뤼기아 | |
카리아 |
4. 국가
4.1. 동방 국가
4.1.1.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의 국기 | |||||||||||
[5] | |||||||||||
국명(한국어) | 로마 제국 | 건국년도 | 기원전 753년[6] | ||||||||
국명(원어) | Βασιλεία Ῥωμαίων Basileía Rhōmaíōn | 수도 | 콘스탄티노폴리스[7] | ||||||||
정치체제 | 로마식 전제군주정 | 통치자 | 황제 요안니스 4세 | 종교 | 정교회 |
일반적으로 이 시기의 동로마 제국은 해봤자 제4차 십자군 전쟁 크리로 폭삭 망해가다가 마지막 여력을 쥐어짜내서 콘스탄티노플 수복하고 그대로 200년간 쇠퇴일로를 걷다가 멸망... 이런 식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다. 당시 테오도로스 1세, 요안니스 3세, 테오도로스 2세라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군주들이 줄줄이 집권하면서 크게 발전한 제국은 작중에서 묘사되듯 인구 700만에 1년 국가예산이 금화 270~80만 개에 달하는 강대국으로 다시금 발돋움했으며, 이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봐도 봉건제의 정착으로 국력의 집중 투사가 힘든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왕국, 거기에 더해 수많은 도시국가들로 쪼개져있던 이탈리아 왕국 정도만이 비견할 수 있는 정도였다.
군사력 측면에서도 상비군인 중앙야전군(타그마타)+정예 예비군인 비튀니아/파플라고니아 군단 등을 합친 규모가 최소 1만 4천[8]에다가 각지의 방위군까지 모두 동원했을 경우 무려 3만에 달하는 정병을 투입 가능하며, 펠라고니아 전투에 참전한 4개국 연합군이 농번기에 농민과 농노를 긁어모으면서까지 동원한 잡병까지 포함해도 2만이 될까말까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격의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국력과는 별개로 내부 분열이 상당히 심각하기도 하다. 태생부터 테오도로스 1세가 유럽 출신 대가문들과의 타협을 통해 재건했고, 요안니스 3세가 각종 유화책을 통해 아시아에 새로 자리잡은 대가문들을 잘 구슬리면서 원만한 통치를 이어나간 반면 요안니스 3세가 말년에 뇌전증으로 몸져누울 때부터 일선에 나섰던 테오도로스 2세는 아버지나 외할아버지와는 달리 대가문들을 혐오하다시피하는 인물이었으며, 그가 비록 제국의 각종 학문과 문화를 다시금 꽃피우는 명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귀족들에 대해 일관적이지 못한 공안정국을 펴고 소가문 또는 평민 출신의 인사들을 낙하산 인사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치게 중용, 정책 면에서도 앞서 언급한 군사력 증강을 위해 특별세를 남발하기까지 하자 결국 사회 각계각층이 등을 돌리고 말았으며, 특히 그에게 가장 많이 부조리한 탄압을 받은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형제를 중심으로 반황제 성향 대귀족들이 집결하면서 마치 암군 이사키오스 2세의 말년이 생각나게 할 정도로 정국이 막장이 된다.[9]오죽하면 주인공이 원로원에서 반황제 성향 대귀족들을 한차례 쫓아내고 그 자리에 근황파 신진인사들을 기용했는데도 원내 세력균형이 비등비등해질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
거기에 교회 문제까지 얽히면 정쟁은 더욱 심각해진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수복 및 라틴 제국의 멸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인 교회통합은 선대 황제들이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바람에 그야말로 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놓았으며, 심지어는 (작품 내에서는 없는 일이 되었지만) 미하일 8세의 킹메이커나 다름없는 큰누나 이리니 팔레올로기나가 남동생을 교회통합을 위해 서방에 굴종한다는 이유로 규탄하고 적국인 불가리아 제2제국에 붙어 모국을 그야말로 박살내놓는 만행을 저지르게 만들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제국 내의 정파는 근황파-중도파-반황제파의 3대 파벌에 더해 친통합파-중도파-반통합파[10]의 3대 파벌까지 사분오열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미래지식을 보유한 주인공의 등판으로 대부분 해소된다. 우선 근거지를 뉨페온에서 니케아로 옮겨 대부분 아나톨리아 서해안 일대에 정착한 대가문들의 영향력을 다소 완화시키고, 원로원 내의 불순분자들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최대한 쓸어낸 뒤 할아버지인 요안니스 3세의 선례를 본받아 일부 대귀족 유화책을 펼치면서 특별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를 소폭 올리는 방식으로 세수 확보와 대중의 지지라는 2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데 성공한 주인공은 일부러 니케아에서 폭동을 유도해 반교회통합 세력을 일망타진한 뒤 교회통합 떡밥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은 채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에 성공함과 동시에 교황청과의 커넥션도 유지한다. 덕분에 작중에서 주인공의 외교관이나 종교관에 대한 것이라면 몰라도 교회통합 자체에 크게 반발하는 정파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으며, 미하일의 동생으로 대귀족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요안니스 팔레올로고스가 제 살길을 찾아 중도파로 돌아서는 등 반황제파 또한 분열을 일삼다 못해 지리멸렬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계략으로 반황제파들은 모조리 숙청당하고 그 중심인 미하일 팔레올로고스가 비참하게 죽고 청색당은 황제의 거수기로 만들게 된다.
게다가 주치 울루스, 제노바, 맘루크 연합군을 무찌르고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면서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과 함께 십자군의 주축이 되면서 주가가 상승했으며 이후 외전을 보면 나스레딘 호자 사후 룸 술탄국이 내전과 혼란으로 붕괴된 이후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수복했다. 그리고 주인공 사후 오스마노스 가문이 황가가 되면서 사실상 원역사 오스만 제국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으며
4.1.2. 룸 셀주크 왕조
룸 셀주크 왕조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룸 셀주크 | 건국년도 | 1077년 | ||||||||
국명(원어) | سلجوقیان روم Saljūqiyān-i Rūm | 수도 | 콘야 시바스 | ||||||||
정치체제 | 봉건군주정 | 통치자 | 술탄 기야스 알딘 메수드 2세 | 종교 | 수니파 정교회 |
게다가, 가뜩이나 훌레구인 울루스에게 완전히 종속당해서 등골을 빨아먹히고 있는데 내부 정파간의 투쟁도 장난이 아닌 수준이다. 주치인 울루스에게 인정받아 술탄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는 술레이만을 제외하고도 중앙정부에서 사실상 각지의 토후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종교적 분열도 장난이 아니다. 술탄국령 각지에서 군웅할거하고 있는 이들 정파를 성향에 따라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5개 정파로 나눌 수 있다.
- 셀주크 궁정 관료/군사귀족: 아미르 하산을 중심으로 뭉친 '카라만', 또는 '유화파' 일파. 수피즘과 강경 수니파 사이에서 정통 수니파를 지지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술탄의 권력이 약화되고 술레이만의 권력이 커지면서 규모가 심각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술레이만이 숙청당하면서 그리스계 정파와 손잡고 토착 및 유목민 계층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한다.[13]
- 지방 그리스계 유력자 계층: 마브로조미스 가문의 당주인 콘스탄티노스를 중심으로 뭉쳐 있으며, 룸의 전체 인구에서 30~50%가량을 차지하는 강력한 파벌이다. 다만 술탄국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이들이 대거 친제국 성향으로 돌아서려는 경향을 보이는 중.
- 친술레이만 성향 토착 계층: 술탄보다는 몽골의 권위에 의존하는 이들. 술레이만의 본진인 시노피를 중심으로 시바스, 카이세리 등등 몽골과 인접한 북동부 일대에 몰려있다. 술레이만이 숙청된 이후 대부분 몰락하고, 남은 이들도 일개 재야세력이 된 것으로 묘사된다.
- 강경 수니파 성향 유목민: 몽골이 도래하면서 호라즘 등지에서 도망쳐온 이들로, 가장 강경한 대외정책과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을 띤다. 실제 역사에서도 제국을 목표로 삼은 가지[14]를 주도하면서 룸 술탄국을 붕괴시키고 아나톨리아쪽 영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만큼 주인공이 가장 신경써서 관리한다.
- 친제국/온건 수피 성향 토후: 룸이 흔들리자 무역 특권과 군사적 보호 등을 약속한 주인공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이들. 명목상으로는 룸의 봉신이지만, 동부 아나톨리아 원정 당시 대놓고 상당한 규모의 병력을 지원하고 게르미얀의 토후는 아예 둑스 작위를 받는 등 술탄의 통치력이 전혀 닿지 않는다. 다만, 이들 사이에서도 왕초 노릇을 하려 드는 게르미얀의 토후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앙카라 공화국의 아히 형제단이 알력다툼을 하는 등 내부 투쟁이 존재한다.
원 역사대로라면 아르슬란 4세가 사망하고 뒤를 이은 카이휘스레브 3세의 치세에 사실상 멸망하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주인공이 적극 개입해 룸을 대몽골 방파제
4.1.3. 주치인 울루스
주치 울루스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킵차크 칸국 | 건국년도 | 1237년 | ||||||||
국명(원어) | اولوس جوجي Ulūs-i Jūchī | 수도 | 사라이 | ||||||||
정치체제 | 군주정 | 통치자 | 몽케 테무르 | 종교 | 수니파 텡그리 |
4.1.3.1. 불가리아 제2제국
불가리아 제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불가리아 제국 | 건국년도 | 1185년 | ||||||||
국명(원어) | ц︢рьство бл︢гарское ts'rstvo bl'garskoe | 수도 | 터르노보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정[21] | 통치자 | 차르 차르 이반 아센 3세[22] | 종교 | 정교회 |
그나마 주인공의 누나인 이리니가 차르와 결혼해서 일종의 불가침을 맺은 덕분에 현실과는 달리 미하일 8세의 대규모 침공으로 인한 트라키아 영토의 상실을 막고, 거기에 주치 울루스의 패전으로 반쯤 독립에 성공하면서 국체 보전에는 성공한 것이 위안. 거기에 주인공의 지원을 대가로 세르비아와 대군벌인 사무일, 미하일로비치 일가를 견제하기 위해 제국의 병력을 빌리기로 하면서 그 대가로 서부 마케도니아의 대부분을 고스란히 내어주지만, 오히려 애초부터 군벌들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들을 대부분 쳐내면서 국력을 결집한 데에 더해 루테니아 국왕 다닐로와의 협력을 통한 대몽골 북방동맹의 결성으로 완전한 독립을 목전에 둔다. 거기에 미초 아센과 이바일로로 대표되는 국내외의 불안정 요소 또한 일단은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며, 외전에선 마리아 칸타쿠지니가 의붓아들인 이반 아센 3세를 보좌해 수십년간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4.1.3.2. 노브고로드 공국
4.1.3.3. 블라디미르 공국
4.1.4. 예루살렘 왕국
예루살렘 왕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예루살렘 왕국 | 건국년도 | 1099년 | ||||||||
국명(원어) | Regnum Hierosolimitanum | 수도 | | ||||||||
정치체제 | 봉건군주정 | 통치자 | 샤를 당주 | 종교 | 가톨릭 |
4.1.4.1. 안티오키아 공국
안티오키아 공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안티오키아 공국 | 건국년도 | 1098년 | ||||||||
국명(원어) | Principatus Antiochenus | 수도 | 안티오키아 | ||||||||
정치체제 | 봉건군주정 | 통치자 | 보에몽 6세 | 종교 | 가톨릭 |
4.1.4.2. 소 아르메니아 왕국
소 아르메니아 왕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소 아르메니아 왕국 | 건국년도 | 1198년 | ||||||||
국명(원어) | Կիլիկիոյ Հայոց Թագաւորութիւն | 수도 | 시스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정 | 통치자 | 헤툼 1세 | 종교 | 가톨릭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
4.1.4.3. 키프로스 왕국
키프로스 왕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키프로스 왕국 | 건국년도 | 1192년 | ||||||||
국명(원어) | Royaume de Chypre | 수도 | 니코시아 | ||||||||
정치체제 | 봉건군주정 | 통치자 | 위그 3세 | 종교 | 가톨릭 |
4.2. 서방 국가
4.2.1. 신성 로마 제국
4.2.1.1. 시칠리아 왕국
시칠리아 왕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시칠리아 왕국 | 건국년도 | 1130년 | ||||||||
국명(원어) | Regno di Sicilia Regnu di Sicilia | 수도 | 나폴리 | ||||||||
정치체제 | 봉건군주정 | 통치자 | 콘스탄체 | 종교 | 가톨릭 |
4.2.1.2. 제노바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제노바 공화국 | 건국년도 | 1005년 | ||||||||
국명(원어) | Repubblica di Genova[25] | 수도 | 제노바 | ||||||||
정치체제 | 귀족공화정 | 통치자 | 민중대장[26] 굴리엘모 보카네그라 | 종교 | 가톨릭 |
거기에 작중 시점 몇 년 전에 벌어진 제1차 베네치아-제노바 전쟁[28]은 물론 맘루크 왕조 및 주치인 울루스과의 적극적인 협력, 심지어는 십자군 국가를 공격할 무슬림들의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배편을 제공하는 등 각종 막장 행보를 보이면서 지중해 일대의 기독교 국가들에게 완전히 찍혔으며, 반교황 운동의 중심인 시칠리아와도 협력 각을 보는 중이라 교황령 주도로 파문-전쟁-멸망 테크트리를 탈 가능성이 있어 여러모로 앞날이 밝지 못하다.
4.2.2. 교황령
교황령의 국기[29] | |||||||||||
국명(한국어) | 교황령 | 건국년도 | 754년[30] | ||||||||
국명(원어) | Stato della Chiesa | 수도 | 로마 | ||||||||
정치체제 | 신정 | 통치자 | 교황 알렉산데르 4세 | 종교 | 가톨릭 |
4.2.3.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베네치아 공화국 | 건국년도 | 697년 | ||||||||
국명(원어) | 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 Serenìsima Repùblica Vèneta | 수도 | 베네치아 | ||||||||
정치체제 | 귀족공화제 | 통치자 | 도제 레니에로 제노 | 종교 | 가톨릭 |
4.2.4. 프랑스 왕국
프랑스 왕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프랑스 왕국 | 건국년도 | 987년[31] | ||||||||
국명(원어) | Royaume de France | 수도 | 파리 | ||||||||
정치체제 | 봉건군주정 | 통치자 | 국왕 필리프 4세 | 종교 | 가톨릭 |
실제 역사에선 2차례의 십자군이 실패하고 꿩 대신 닭으로 시칠리아 왕국을 장악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주변국의 어그로만 잔뜩 끌고 앙주쪽 분가까지 반쯤 이탈해버리는 결과를 맞이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모략을 통해 제8차 십자군이 성공을 거두었고, 거기에 나비효과로 시칠리아 대신 예루살렘 왕국이라는 막대한 대토보상과 성묘수호자 타이틀, 교황 주관하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치러지는 대관식까지 챙기면서 당장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박살나게 생긴 신성 로마 제국과는 달리 장기적으로 쏠쏠하게 이득을 본 세력. 거기에 덤으로 블랑헤를 통한 백록동맹 체결로 로마와 우호적인 관계를 마련하나 싶었는데, 루이 9세 사후 즉위한 필리프 3세가 야심만만한 인물이라 백록동맹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래도 사돈지간이라고 최후의 선은 안 넘은 필리프 3세와 달리 그 뒤를 이은 필리프 4세 시기에 오면 교황령을 침공하는 것으로 모자라 일개 기사가 당대 교황인 보니파시오 8세의 뺨을 때리는 일명 '아나니 사건'이라는 대형사고를 저지르며 제국의 여론을 그대로 폭발시켜버린다.[34] 시칠리아 안보동맹을 명분으로 양국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다. 결과는 주인공에게 덤빈 만큼 당연히 작살이 나는데 제3차 가릴리아노 강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개박살 나고[35] 로마를 포함한 중부 이탈리아 각지를 제국군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등 대외정책에서 실패를 거둔다.
4.2.5. 잉글랜드 왕국
잉글랜드 왕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잉글랜드 왕국 | 건국년도 | 927년 | ||||||||
국명(원어) | Kingdom of England | 수도 | 런던 | ||||||||
정치체제 | 봉건군주정 | 통치자 | 국왕 에드워드 1세 | 종교 | 가톨릭 |
4.3. 중동
4.3.1. 훌레구인 울루스
훌레구인 울루스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일 칸국 | 건국년도 | 1256년 | ||||||||
국명(원어) | ᠬᠦᠯᠦᠭ ᠦᠨ ᠤᠯᠤᠰ Hülegü-yn Ulus | 수도 | 타브리즈 솔터니예 테오폴리스[36] | ||||||||
정치체제 | 군주정 | 통치자 | 아바카 칸 | 종교 | 텡그리 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 |
외전에서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룸 술탄국이 내전과 사루 바투의 난동으로 붕괴하자 로마 제국과 함께 개입하여 튀르크 세력을 몰락시키는데 일조 한다.
4.3.2. 맘루크 왕조
맘루크 술탄국의 국기 | |||||||||||
국명(한국어) | 맘루크 술탄국 | 건국년도 | 1250년 | ||||||||
국명(원어) | سلطنة المماليك Salṭanat al-Mamālīk | 수도 | 카이로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정 | 통치자 | 술탄 바이바르스 | 종교 | 수니파 |
5. 연표
자세한 내용은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연표 문서 참고하십시오.[1] 원 역사에선 1305년에 사망하며, 작중에서 회귀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50대 초중반이라 1300년 이전에 벌어진 주요 사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2] 일명 위-코디노스(Pseudo-Kodinos).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과거에 존재했던 코디노스라는 인물의 필명을 빌려 작품을 집필했기 때문이다.[3] 작중에서 등장하는 관직들은 군사조직의 붕괴로 소멸한 소아시아쪽 군관구사령관들이나 그 반대급부로 떡상한 대제독 정도를 제외하면 13세기 중후반에도 거의 동일하게 기능했다.[4] 12위의 메가스 코노스타블로스와는 다른 관직이니 유의할 것.[5] 이 깃발은 정확히는 바타치스-라스카리스 가문의 문장으로, 이 당시엔 '국기'라 할 만한 물건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실질적인 국기로 쓰였다. 참고로 황금색 쌍두독수리 자체가 국장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대략 이사키오스 1세의 치세즈음의 일이다.[6] 공화정 수립부터 따지면 기원전 509년, 제정수립으로 할 경우 기원전 27년, 동서분할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엔 서기 395년. 애초에 고대 로마에서 쭉 이어지는 연속성 때문에 어떠한 년도가 건국 시점이라고 정확히 찝어서 정하기가 힘들다.[7] 친로마 저항세력인 '염원단'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라틴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한 뒤 주변세력들과 교황의 간을 본 뒤 1년간의 초기 복구기간을 거쳐 완전히 천도한다.[8] 원래 테오도로스 1세와 요안니스 3세 시절 상비군 병력규모가 8천이었던 것을 테오도로스 2세가 전선의 추가로 인한 병력소요의 증가와 귀족들의 사병에 대한 우위 확보, 향후에 있을 고토 수복 등의 갖가지 이유를 대어가면서 5할 가까이 병력을 증강, 여기에 주인공 요안니스 4세가 에르토르를 중심으로 한 유목민 순민들을 아주 싼값에 동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작중의 규모가 된다. 물론 테오도로스의 대규모 군사력 증강은 막대한 세입 지출과 각종 특별세의 소요까지 동반했기에 주인공이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몸을 비틀어야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9] 이에 대해 소설상에서도 테오도로스 2세의 충신들이 테오도로스 2세가 이 점에서는 어설펐다고 한탄하기도 한다.[10] 참고로 이들은 제국 내의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뭉쳤으며, 실제 역사에선 헤시카즘을 비롯한 각종 신비주의 신학을 추종하면서 교회통합운동에 최종적인 사형선고를 내린다.[11] 술레이만에게 조종당하는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대적 성향의 토후들을 마구 숙청하던 도중, 궁정 쿠데타를 일으킨 술레이만에게 살해당한다.[12] 아르슬란 4세가 살해당하자 주인공의 지원을 받아 옹립되었으나, 자기 나라가 타국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지나치게 성급한 공세를 감행했다가 술레이만에게 매복을 당해 전사한다.[13] 묘사상으로는 중앙 민회에서 그리스계와 힘을 합치면서 3분의 2에 달하는 압도적 과반수를 차지했다는 듯.[14] Ghazi - 성전이라는 뜻으로, 특히 정통 칼리프 시기와 오스만 팽창기에 무슬림들이 펼친 전쟁을 의미한다.[15] 튀르크식으로는 바르딜리야. 일단 제국 출신이긴 하지만 순수하게 룸을 살리려는 의도만 가진 참애국자로 묘사된다.[16] 술탄 일가에 적대적이고 술레이만에게 헌신적인, 룸 버전의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라고 할 수 있다. 조지아에서 성군으로 추앙받는 타마르 여제의 친손녀로 본명은 타마르 바그라투니이며, 훌레구인 울루스의 두 주요 봉신인 조지아와 룸 셀주크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고 있다. 카이휘스레브의 세 아들 중에서는 카이쿠바드를 지지.[17] 베르케 칸의 여식으로, 함께 크리미아에서 고생한 프로둘리아와 사이가 좋긴 하지만 출신 때문에라도 주치 울루스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으로 대립한다.[18] 작중에서는 옛 부켈라리온 군관구의 이름을 따온 부켈라리온 통치령(archontia)을 설치한다. 앙카라 공화국이 해당 지역에서 자치권을 부여받긴 했지만, 앙카라가 게르미얀과는 다르게 제국 정치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사실상 실효지배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19] 휴전을 깨고 바그다드 공략을 목표로 원정에 나섰다가 눈먼 화살을 맞고 사망[20] 역사상으로 바투 칸이 수여받았던 만호들이 튀르크화 및 약체화되는 것은 베르케가 사망하고도 한참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21] 다만, 이 시기엔 몽골의 침략으로 차르의 권위가 크게 약화된 것에 더해 각지의 보야르들이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우면서 사실상 봉건제로 기능했다.[22] 외전에서 블랑헤의 후원 하에 계모인 마리아와 함께 불가리아로 향해, 차르 자리를 거머쥔 것으로 나온다.[23] 단적으로 사실상 불가리아의 초대 차르로 취급받는 칼로얀은 10년간, 이반 아센 2세는 23년간 권좌에 있었던 반면, 이반 아센 사후 약 16년간 차르 자리가 5번이나 갈아치워졌다.[24] 오죽하면 이웃나라의 황제인 주인공의 귀에까지 소문이 들어가 대놓고 '불가리아 접경 지역엔 군벌들이 득시글거린다'라고 깔 정도.[25] 리구리아 방언으론 Repúbrica de Zêna.[26] Capitano del Popolo. 1257년에 처음으로 생겨난 국가원수 직책으로, 도시귀족 및 대상인들 간의 권력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았다.[27] 제노바의 첫 식민지는 1261년에 룸 술탄국으로부터 할양받은 아마스트리스 항이었는데, 룸의 흑해 연안 및 크리미아 영토를 제국이 고스란히 가져갔고 에게 해의 도서지역을 지킬 해군력도 건실한 이상 레반트 식민지로 눈을 돌린다면 모를까 제노바가 현실처럼 식민제국으로 도약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28] 또는 성 사바스 전쟁. 1256년부터 1270년에 걸쳐 벌어졌으며, 제노바가 티레 백작령을 중심으로 잔존 십자군 국가를 갈라치기하면서 안그래도 약체화돼있던 예루살렘 왕국에 상당한 내상을 입혔다. 결국 몽골과 맘루크라는 강대한 적을 앞두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십자군 국가를 보다못한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1258년에 개입해 반강제로 4년간의 휴전을 체결시킨다.[29] 일반적으로 교황령의 국기가 베드로의 열쇠에서 따온 깃발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성 베드로의 열쇠는 교황령의 '국기'가 아닌 '국장'에 해당하고 백황기 또한 '일단은' 근대에 사용한 것이다. 이 시기의 교황령 국기는 적황기였고 이는 현재 로마시의 상징이기도 하다.[30] '피핀의 기증' 기준[31] 카페 왕조의 시작 기준[32] 제8차 십자군에서 귀환하자마자 풍토병이 악화되어 사망.[33] 실제 역사에서처럼 샤를 당주와 함께 아라곤을 공략하려다 실패하고 병사한 것으로 추정.[34] 이걸 현대에 비유하자면 중국군 장교가 한국 대통령의 뺨을 갈긴, 그야말로 최악의 무례다.[35] 얼마나 크게 털렸으면 안드로니코스가 개선 행렬에 노획한 프랑스 군기를 앞세울 정도.[36] 아바카 칸이 정식으로 네스토리우스교도로 개종하면서 천도 및 개명을 실시한다. 하필 테오폴리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바그다드의 원 의미가 '신이 내려준 도시'라는 설이 유력하기 때문.[37] 원 역사대로 사망함[38] 원 역사대로 아인 잘루트 전투 이후 귀국하던 도중 바이바르스에게 살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