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1 19:40:13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라파엘 판데르파르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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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아약스 역대 주장
야리 리트마넨
(2003~2004)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2004)
토마시 갈라섹
(200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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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판데르파르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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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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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Rafael van der Vaart
본명 라파엘 페르디난트 판데르파르트
Rafael Ferdinand van der Vaart
출생 1983년 2월 11일 ([age(1983-02-11)]세) /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 헤임스케르크
국적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신체 176cm, 74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소속 선수 AFC 아약스 (2000~2005)
함부르크 SV (2005~2008)
레알 마드리드 CF (2008~2010)
토트넘 핫스퍼 (2010~2012)
함부르크 SV (2012~2015)
레알 베티스 (2015~2016)
FC 미트윌란 (2016~2018)
에스비에르 fB (2018)
국가대표 109경기 25골 (네덜란드 / 200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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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클럽 기록5.2. 국가대표 기록5.3. 대회 실적5.4. 개인 수상
6. 여담

1. 소개

네덜란드의 전 축구선수. 2018년에 에스비에르 FB에서 뛰었다.

2. 클럽 경력

2.1. AFC 아약스

파일:Van_Der_Vaart_Ajax.jpg

99-00 시즌 단 한 경기뿐이지만 17살의 나이로 아약스에서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시즌 팀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며 제 2의 요한 크라이프 등장이라는 찬사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부터 판데르파르트는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하며 삐걱거리는 와중에도 7경기 연속골을 포함해 14골을 때려박으며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또한 그 다음해에도 판데르파르트는 부상에 시달리며 21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18골을 박아넣는 무서운 모습을 과시한다. 급작스러운 성공의 대가인지 03-04 시즌에는 과체중 및 여자친구에 빠진 나머지 축구에 소홀했다는 추문에 시달리나 어느새 다시 추스리고는 다시 한 번 아약스에 리그 우승을 안겨주며 명실상부한 아약스와 네덜란드의 스타로 떠오른다.

시즌마다 성공이 연이어진 끝에 04-05 시즌 판데르파르트는 감독 쿠만에 의해 주장이라는 중책을 떠맡게 된다. 그러나 이 때부터 판데르파르트의 몰락이 시작되는데 이적문제로 프런트와 큰 갈등을 빚고 있던 팀 동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판데르파르트에게 큰 부상을 입혔고, 그로인한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다.

2.2. 함부르크 SV 1기

파일:Van_Der_Vaart_Hamburger1.jpg

연이은 부상때문에 하락세를 타고 있었기에 예전과는 달리 빅클럽에서의 적극적인 영입의사가 없었고 주전보장 같은 면에서는 뜨뜻미지근한 점이 있었다. 판데르파르트도 플레이메이커로서 자신이 경기를 주도할 수 있는 팀을 찾고 있었다. 마침 돈을 쓰려는 함부르크로 이적하게 됐다.

함부르크에서도 끊임없이 잔부상에 시달렸지만 최다득점자였던 시즌도 있을 정도로 꾸준히 골망을 가르는 큰 활약으로 팬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 함부르크에서 세 시즌을 보낸 판데르파르트는 발렌시아로의 이적설이 있었지만 레알이 아니라면 함부르크에서 이적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것처럼, 마침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2.3. 레알 마드리드 CF

파일:Van_Der_Vaart_Real_Madrid.jpg

5년 계약을 맺고 레알에 입단해서 첫 해에는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전 시즌에 스네이더르가 먼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판데르파르트와 웨슬리 스네이더는 네덜란드[2] 그리고 아약스 동료 둘이 레알에서 양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는 괴상한 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입단 당시의 걱정 아닌 걱정을 뒤로 하고둘다 시망요 큰 활약 없이 점점 잊혀지게 된다. 이적한 이듬해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회장으로 재취임하고 갈락티코 정책을 펼치며 카카가 영입되고 출장기회가 줄어들었다. 결국 스네이더르가 인테르로 이적, 그리고 그 이듬해 다시 메수트 외질이 영입되자 판데르파르트는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경기를 뛸때마다 수준급의 경기력을 보여주었기에 토트넘에서의 활약 또한 기대가 되었고 레알의 갈락티코 정책이 과시적인 과소비에 가깝다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판데르파르트의 경쟁자였던 카카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고, 오히려 판데르파르트가 더 좋은 모습을 그나마 보여줬기에 문제가 되었다.

2.4. 토트넘 핫스퍼 FC

파일:Van_Der_Vaart_Tottenham.jpg

토트넘은 이미 루카 모드리치라는 걸출한 중앙 미드필더가 있었으나 경기를 조립하는 선수 외에도 경기를 결정지어버릴 만한 영향력을 가진 중앙 자원을 원했고 이에 판데르파르트를 영입했다. 피터 크라우치는 3골밖에 못 넣고, 부상을 끊었다 돌아온 저메인 데포는 전시즌 18골을 넣었던 스트라이커에서 22경기에서 4골을 넣는 부진한 스트라이커로 전락했고 파블류첸코도 대동소이한 경기력을 과시하는 가운데 가레스 베일과 함께 토트넘을 먹여살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전반기 EPL 최고의 영입 1위를 차지했으며, 겨울 이적시장 토트넘이 거절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공격수 보강을 못하자 잔부상에 시달림에도 불구 공격진의 에이스로서 토트넘을 5위에 견인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0/2011 시즌 36경기 15골 10도움 (리그 28경기 13골 9도움 , 챔피언스리그 7경기 2골 1도움 FA컵 1경기)

11/12시즌은 완벽히 에이스로 떠오른 가레스 베일을 보좌하며 토트넘을 UEFA 챔피언스리그 진입권인 4위로 끌어올렸다.

2011-12시즌 39경기 13골 8도움 (리그 33경기 11골 7도움 , 유로파리그 1경기 1골 , FA컵 4경기 1골 1도움 , 리그컵 1경기)

2.5. 함부르크 SV 2기

파일:Van_Der_Vaart_Hamburger2.jpg
2012년 시즌에는 2008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지 4년만에 다시 친정팀 유니폼을 입게되었다. 토트넘에 잔류의사를 보이는가 했는데 주전보장을 받지 못하고 고민하다[3] 친정팀의 구애를 못이기고 복귀, 이로써 대한민국의 손흥민과 같이 한솥밥을 먹게됐다. 한국시간 2012년 9월 17일 프랑크푸르트전 손흥민의 시즌 첫 골 이자 2-3으로 추격을 하는 골에 도움을 기록하며 팀 내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전번 시즌 팀내 득점 1위이던 아르티옴 루드네우스는 부상과 부진으로 무득점. 득점 2위 손흥민은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이적하면서 13-14 시즌은 그가 12차전까지 3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 중이지만 팀은 리그 14위까지 추락했다. 이후로는 팀과 함께 부진에 빠지면서 기대치에 미치진 못했다. 시즌 막판 승강 플레이오프를 승리하면서 겨우겨우 잔류에 성공했지만 14-15 시즌 또한 지난 시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량이 점점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고, 판데르파르트는 시즌 종료 이후 함부르크를 떠날 의사를 보였다. 또 다시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간신히 분데스리가 잔류에 성공한 이후 팀을 떠났다.

2.6. 레알 베티스

파일:Van_Der_Vaart_Real_Betis.jpg

2015년 6월 9일 승격팀 레알 베티스가 자유계약으로 판데르파르트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정확히 5년 만에 프리메라리가로 복귀하게 되었다.

2.7. FC 미트윌란

2016년 8월 10일 덴마크 수페르리가 소속의 FC 미트윌란맨유 잡아본 그 팀으로 이적하였다. 기간은 2년.

2.8. 에스비에르 fB

2018년 8월 5일 덴마크 리그 소속의 에스비에르 fB로 이적하였고, 등번호 10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기간은 1년.

3. 국가대표 경력

2001년 FIFA U-20 월드컵에 선발된 판데르파르트는 같은해 10월 안도라와의 A매치에서 성인 국가대표에 첫 데뷔하였고, 이후 UEFA 유로 2004, 2006 FIFA 월드컵 독일, UEFA 유로 2008,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UEFA 유로 2012에 출전하면서 국가대표로의 활약을 이어갔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은 네덜란드 국가대표 30인 예비 명단에는 뽑혔지만, 부상으로 인해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no.10 유형의 공격형 미드필더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테크닉 역시 훌륭하며, '미들라이커'라는 별명에 걸맞게 에어리어안으로 자주 침투해 들어가거 득점을 노리거나, 최전방 공격에 대한 찬스메이킹과 연계를 즐긴다. 득점감각이 상당히 뛰어나 미드필더로서는 득점력이 상당한 편. [4]. 게다가 미들라이커라는 이명 답게 득점력 그 자체뿐만 아니라 슛팅스킬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 어려운 스콜피온 슛으로 골을 기록하는 등 다양한 자세에서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선수였다.

전형적인 공미롤을 맡은 플레이메이커들의 특성답게 본인이 팀의 중심이 되었을때 그 진가가 나오는 선수이다. 반대로 말해선 판데르파르트가 막히면 팀이 죽어버린다.

판데르파르트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왼발의 킥능력인데 이 킥력을 바탕으로 셋피스나 인플레이 상황에서 나오는 슛과 패싱 양면에 걸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결정적인 찬스에 강한면모를 보이는 만들어 내는 클러치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활동량이 적고, 플레이가 좀 정적이고 찬스메이킹에는 상당한 소질은 보이지만, 절친이자 동포지션에서 활약하는 베슬리 스네이더르에 비해 게임을 풀어나가는 능력은 모자란다. 게다가 왼발만을 잘쓰는 판데르파르트와 달리 스네이더르는 양발을 잘쓰는 메리트 또한 갖춘건 덤. 이는 선수시절 중반쯤 대표팀에서 주전 경쟁에서 종종 밀리다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부터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던 이유.

발도 조금 느린 편. 토트넘에서는 루카 모드리치, 스콧 파커 등이 뒤에서 받혀주며, 판데르파르트의 이러한 한계를 보완해주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피지컬도 우수한 편은 아니라서 상대가 피지컬로 압박을 하면 고전하는 경향이 있다.

5. 기록

5.1. 클럽 기록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5] 기타 컵 대회[6]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1999-00 아약스 1 - - - - - - - - - - - 1 - -
2000-01 27 7 7 1 - - 4 2 1 - - - 32 9 8
2001-02 20 14 1 2 2 - 5 1 - - - - 27 17 -
2002-03 21 18 4 2 - - 6 2 2 1 2 - 30 22 6
2003-04 26 7 7 1 - - 7 1 - - - - 34 8 7
2004-05 22 6 5 2 - - 7 1 - 1 - - 32 7 5
6시즌 합계 117 52 24 8 2 - 29 7 3 2 2 - 156 63 26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7]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5-06 함부르크 19 9 4 2 - 3 15 7 2 - - - 36 16 9
2006-07 26 8 5 2 - 1 5 3 1 - - - 33 11 7
2007-08 29 12 10 4 4 1 11 5 5 - - - 44 21 16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8] 기타 컵 대회[9]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8-09 레알 마드리드 32 5 5 1 - - 7 - 1 2 - - 42 5 6
2009-10 26 6 5 2 1 - 3 - - - - - 31 7 5
2시즌 합계 58 11 10 3 1 - 10 - 1 2 - - 73 12 11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10]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0-11 토트넘 28 13 8 1 - - 7 2 1 - - - 36 15 9
2011-12 33 11 7 5 1 1 1 1 - - - - 39 13 8
2012-13 2 - - - - - - - - - - - 2 - -
3시즌 합계 63 24 15 6 1 1 8 3 1 - - - 77 28 17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11]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2-13 함부르크 27 5 10 - - - - - - - - - 27 5 10
2013-14 27 7 9 3 1 - - - - 2 - 1 32 8 10
2014-15 24 4 1 2 1 2 - - - 1 - - 27 5 3
6시즌 합계 152 45 39 13 6 7 31 15 8 3 - 1 199 66 55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5-16 레알 베티스 7 - - 2 - 1 - - - - - - 9 - 1
1시즌 합계 7 - - 2 - 1 - - - - - - 9 - 1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12]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6-17 미트윌란 15 2 2 2 - - 1 - - - - - 18 2 2
2017-18 2 - - - - - - - - - - - 2 - -
2시즌 합계 17 2 2 2 - - 1 - - - - - 20 2 2
19시즌 통산 411 134 88 34 10 9 79 25 13 10 2 2 534 171 112

5.2. 국가대표 기록

소속 대표팀 연도 경기 득점 도움
네덜란드
2001 1 - -
2002 2 - 1
2003 10 3 3
2004 13 1 1
2005 9 2 1
2006 5 1 1
2007 10 5 -
2008 14 1 5
2009 10 2 -
2010 14 1 8
2011 5 1 -
2012 10 4 2
2013 6 4 1
통산 109 25 23

5.3. 대회 실적

5.4. 개인 수상

6. 여담

  • 한 때 같은 팀에서 뛰었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는 원수 사이이다. 유로 2004이후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친선전에서 판데르파르트가 즐라탄의 태클에 부상당하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 되었다. 이 전부터 곪아있던 갈등이 최대치로 폭발한 것. 즐라탄이 판데르파르트의 사과요구에 고의성을 계속 부인하고 있다. 판데르파르트는 "즐라탄의 태클은 고의적이었다"고 언론에 고발했으며 즐라탄은 아약스에서 떠나게 된다. 즐라탄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은 고의로 태클을 한게 아님에도 판데르파르트가 언론 플레이로 자신을 음해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축구계에서는 보통 이 정도면 아주 악질적이고 고의적이라고 본다. 즐라탄 팬들은 링크를 타고 와서 이 항목조차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이 사건에 대해 아약스에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즐라탄보다 자국 유망주라는 이유만으로 판데르파르트가 편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시점 기준으로는 판데르파르트나 즐라탄이나 둘 다 유럽 최대급의 유망주였다. 오히려 성격이 모난 즐라탄이 잘 적응하지 못하고 다수의 팀원과 불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즐라탄이 팀 차원에서 감독과 단장에 문제를 제기했었다지만 팀 차원과 관계없이, 즐라탄은 용병이고 판데르파르트는 주장이다. 용병이 팀의 주장이랑 이런 식으로 대놓고 대립하면 도대체 누가 좋아하고 지지해주겠는가. [13] 이런 즐라탄의 모난 성격은 국가대항전에서 저런 심각한 일을 초래하고 말았다. 판데르파르트가 즐라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이 영상을 참조.....
  • 풋볼 매니저를 플레이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국민강캐 또는 국민 플메라는 별명이 유명하다. FM의 전신인 CM부터 포텐 180에 기본어빌도 출중한 유망주, 이후 FM2007에서 현 FM2011까지 꾸준한 능력치와, 적절한 나이, 미칠듯한 스탯, 저렴한 이적료[14], 판데르파르트가 곧 전술이다! 라고 할 정도로 공미면 공미, 플메면 플메, 중미면 중미, 훈련시키면 윙에서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단 재계약 할때 미칠것 같은 주급인상 요구 빼고 실축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FM시리즈에서 이렇게 시리즈마다 좋게 나온 선수도 찾기 힘들다. 특히 10~12 토트넘이 판데르파르트에 더해 전통의 꿀캐릭 데포와 이미 월클인 모드리치에 사기급 유망주 베일까지 있어서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강하고 재밌다.
  • 일반적인 선수에 비해 훨씬 낫지만 나름 운이 없는 것도 특이점.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는 요한 크루이프의 재림수준으로 네덜란드 언론의 칭송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 자국 최고 명문 아약스에서 주장완장을 차면서 잘 나갔다. 당시 링크가 난 클럽이 유럽 최고 명문들 한다발이었을 정도. 허나 같은 팀 후배인 베슬리 스네이더르가 등장한 2004년 이후에 국대/클럽 양쪽에서 자리를 위협받았고 부상 몇 번 입은 후엔 다른 클럽에서의 입질도 거진 사라져 버렸다. 2005년 함부르크로의 이적이 실현되었을때 유럽언론의 대부분 반응은 대략 '천재의 몰락' 수준이었을 정도. 함부르크 이적 후 중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홀로 먹여살려가며 챔스존으로 이끌고 그 활약을 통해 2000년대 중반 전성기를 달리던 바르셀로나를 견제하려던 당시 오렌지 커넥션이 많은 레알 마드리드로 2008년 입단했지만 초반 반짝 활약 후 이렇다할 모습은 없었고, 2009년 갈락티코 2기의 시작을 알린 카카의 이적 이후 또 벤치를 달구게 된다. 부인의 암치료를 위해 함부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2년을 후보 신세로 지낸 다음 토트넘으로 가서 나름 또 알찬 활약을 보였지만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취임 이후 팀 내 미래에 대한 확답을 듣지 못한 채 다시 친정팀인 함부르크로 복귀했다. 상술했다시피 거쳐간 클럽들이 녹록한 클럽들도 아니고 레알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팀 내 에이스 자리를 거의 놓지 않았다 할 정도이지만 2000년대 초반 네덜란드산 최고 유망주였던 그의 위상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판데르파르트의 지금까지의 발자취는 무언가 아쉬움을 남긴다.
  • 스네이더르와는 아약스때 부터 친했지만, 사실 스네이더르와 판데르파르트같은 비슷한 스타일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나이젤 데 용수비형 미드필더로 놓고 그 위에 스네이더르와 판데르파르트를 올렸고 마르코 판바스턴 감독 시절 이러한 조합이 가동되었지만 두 선수 모두 수비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 조합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리 오래 가진 못했고, 이후로는 인테르에서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한 스네이더르에게 대표팀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내주면서 후보로 내려갔다. 특히 80년대 초반 태생의 네덜란드 선수들은 2선 자원의 뎁스가 특히 빵빵했기 때문에 로번, 카위트 등의 윙어들이 득세하면서 VDV는 스네이더에게 밀리면 다른 자리도 없었으니...[15]
  • 생긴 것과 다르게 목소리가 엄청 허스키하다.
  •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16]과도 친하지만 특히 스네이더르와는 아약스시절 부터 절친으로 둘이 서로 까는 게 일상화 되있는 듯하다.
  • 전 아내는 모델인 실비 메이스(결혼 당시에는 Sylvie van der Vaart)다. 슬하에 아들도 하나 있었으나 2013년에 이혼했고 이후 9살 연하인 네덜란드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에스타바나 폴만과 딸도 낳는 등 사실혼 관계이다. 판데르파르트의 덴마크리그 이적에는 에스타바나 폴만이 덴마크 핸드볼 프로팀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 모계가 스페인계이지만 정작 스페인어는 잘 못 한다고 한다. 대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스페인어를 열심히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꽤나 할 수 있다고. 판더파르트는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처럼 영어, 독일어를 잘 한다.
  • 여타 네덜란드 선수들처럼 유리몸이다. 사실 판데르파르트 동년배의 네덜란드의 공격자원중 클라스얀 휜텔라르를 제외하면 유리몸이 아닌 선수 찾기가 더 힘들다.

[1] 공격형 미드필더[2]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두 사람 말고도 아르연 로번, 뤼트 판 니스텔로이, 로이스톤 드렌테, 클라스 얀 훈텔라르도 있어 오렌지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09-10 페레스가 돌아오고 갈락티코 정책이 재시작되면서 이들은 점차 팀에서 비중이 떨어지게 되고 휜텔라르는 AC 밀란, 로번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남아 있던 판 니스텔로이도 겨울 이적 시장에 함부르크 SV로 이적했다.그리고 손흥민의 튜터링을 해주었다. 판데르파르트도 후에 손흥민과 같이 뛰게 된다. 이 중에 로번은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기용할 마음이 있었으나 스네이더르와 휜텔라르가 이적하면서 로번도 자신의 입지에 대해 크게 불안함을 느껴 에이전트인 아버지에게 이적할 팀을 찾으라고 했고, 감독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뮌헨으로 이적했다.[3] 주앙 무티뉴 영입비를 마련하기 위해 판매했다는 루머가 있다. 결국 주앙 무티뉴 이적은 실패했다.[4] 아약스, 함부르크 첫 이적 시절 기록상으로 경기당 약 0.5골을 넣기도 했고, 이후에도 이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득점력은 뛰어났다.[5]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컵[6] 요한 크루이프 실드[7]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컵, UEFA 인터토토컵[8] UEFA 챔피언스 리그[9]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10]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11] 분데스리가 플레이오프[12] UEFA 유로파 리그[13] 이런 일의 좋은 예가 리버풀의 전 주장 스티븐 제라드와 리버풀의 전 공격수 엘 하지 디우프의 사건이 있다. 디우프는 리버풀 시절 제라드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했다고 비난했으나, 팬, 축구계 관계자, 리버풀의 전현직 선수들에게 모두 비웃음만을 샀다.[14] 레알 이적전 함부르크 시절에는 적당히 100-150억 정도만 찌르고 함부르크가 거절 3번하면 알아서 불만떠서 헐값에 나오며, 레알 마드리드 CF 시절에는 카카에게 밀려 언제나 주전 자리 찾고 싶다며 징징대며 이적요청을 한다.[15] 쉽게 말해 둘의 상성은 제라드 vs 램파드와 유사한 1+1=0(...)이었지만, 제램의 경우 둘 다 박스 투 박스 중앙 미드필더로도 한가닥 하는 선수들이었기에 뒤에 가레스 배리가 버텨주면 제각기 공수를 활발히 오가는 모습은 보여줬다. 물론 잉글랜드는 스네이더, VDV 중 하나쯤 포기해도 아니어도 2선의 대안이 차고 넘쳤던 네덜란드와 달리 제램이 아니면 별다른 대안도 없었고, 전방 스트라이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끝끝내 대권도전에 실패한 채 이들의 전성기를 흘려보내야 했다.[16] 나이젤 데 용, 아르연 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