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5-11 19:25:48

마크 벌리

마크 벌리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attachment/whitesoxcap.png
시카고 화이트삭스영구결번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 3 4 9 11 14
넬리 폭스 해롤드 베인스 루크 애플링 미니 미뇨소 루이스 아파리시오 폴 코너코
16 19 35 42 56 72
테드 라이언스 빌리 피어스 프랭크 토머스 재키 로빈슨 마크 벌리 칼튼 피스크
}}}||

파일:Rawlings_Gold_Glove_Award.png
2011 골드 글러브
(Rawlings)
{{{#!wiki style="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0%, #FFFFFF 20%, #FFFFFF 80%, #FFFFFF); margin: 0 -10px"
{{{#!folding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bottom: -15px"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National League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American League
P
클레이튼 커쇼
(LAD)
마크 벌리
(CHW)
C
야디어 몰리나
(STL)
맷 위터스
(BAL)
1B
조이 보토
(CIN)
아드리안 곤잘레스
(BOS)
2B
브랜든 필립스
(CIN)
더스틴 페드로이아
(BOS)
SS
트로이 툴로위츠키
(COL)
에릭 아이바
(LAA)
3B
플라시도 폴랑코
(PHI)
아드리안 벨트레
(TEX)
LF
헤라르도 파라
(ARI)
알렉스 고든
(KC)
CF
맷 켐프
(LAD)
자코비 엘스버리
(BOS)
RF
안드레 이디어
(LAD)
닉 마카키스
(BAL)
은색 배경인 선수는 플래티넘 글러브 수상자
}}}}}}}}} ||
파일:Rawlings_Gold_Glove_Award.png
2012 Rawlings 골드 글러브
{{{#!wiki style="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0%, #FFFFFF 20%, #FFFFFF 80%, #FFFFFF); margin: 0 -10px"
{{{#!folding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bottom: -15px"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National League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American League
P
마크 벌리
(MIA)
제이크 피비
(CHW)
&
제레미 헬릭슨
(TB)
C
야디어 몰리나
(STL)
맷 위터스
(BAL)
1B
아담 라로시
(WSH)
마크 테세이라
(NYY)
2B
다윈 바니
(CHC)
로빈슨 카노
(NYY)
SS
지미 롤린스
(PHI)
J.J. 하디
(BAL)
3B
체이스 헤들리
(SD)
아드리안 벨트레
(TEX)
LF
카를로스 곤잘레스
(COL)
알렉스 고든
(KC)
CF
앤드류 맥커친
(PIT)
아담 존스
(BAL)
RF
제이슨 헤이워드
(ATL)
조시 레딕
(OAK)
은색 배경인 선수는 플래티넘 글러브 수상자
}}}}}}}}} ||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5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9 ~ 201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마이크 무시나
(뉴욕 양키스)
마크 벌리
(시카고 화이트삭스)
제레미 헬릭슨
(탬파베이 레이스)
제이크 피비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1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클레이튼 커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마크 벌리
(마이애미 말린스)
애덤 웨인라이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로고.svg 2009 ~ 2012년 메이저 리그 투수 부문 필딩 바이블 상
케니 로저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마크 벌리
(시카고 화이트삭스 / 마이애미 말린스)
R.A. 디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56번
브라이언 워드
(1998~1999)
마크 벌리
(2000~2011)
영구결번
{{{#F9423A [[마이애미 말린스|마이애미 말린스]] 등번호 56번}}}
오스발도 마르티네스
(2011)
마크 벌리
(2012)
잭 필립스
(2013)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56번
이가라시 료타
(2012)
마크 벌리
(2013~2015)
프랭클린 모랄레스
(2016)

}}} ||
파일:Mark_Buehrle_Chicago_White_Sox.jpg
<colbgcolor=#000000> 시카고 화이트삭스 No.56
마크 앨런 벌리
(Mark Alan Buehrle)
생년월일 1979년 3월 23일 ([age(1979-03-23)]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미주리 주 세인트찰스
출신학교 제퍼슨 대학교
신체조건 188cm / 108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38라운드 전체 1139번 (CHW)
소속구단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0~2011)
마이애미 말린스 (2012)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3~2015)
수상 5× All-Star (2002, 2005, 2006, 2009, 2014)
World Series Champion (2005)
3× AL Gold Glove Award (2009~2011)
NL Gold Glove Award (2012)

4× Fielding Bible Award (2009~2012)
기록 Pitched a Perfect Game (2009.7.23)
Pitched a No-Hitter (2007.4.18)

1. 개요2. 커리어3. 은퇴4. 플레이 스타일
4.1. 명예의 전당 떡밥
5. 연도별 성적6. 기타7.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attachment/마크 벌리/Mark Alan Buehrle.jpg
2009년 7월 23일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을 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대표하던 에이스이자 저스틴 벌랜더 이전에 있었던 원조 금강불괴였고, 비록 사이 영 상이나 임팩트있는 활약을 보여준 시즌은 없지만 14년 연속 10승 - 200이닝을 기록할 정도로 은퇴할 때까지 변함없는 꾸준함을 보여준 선수다.

2. 커리어

2.1. 시카고 화이트삭스

아마추어 시절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때 야구부에서 퇴출당했지만 다행히 대학에 진학했고, 1998년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을 1년 미루고 대학 졸업 후 1999년 5월 입단하였다. 드래프트 38라운드 전체 1139번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입단 전까지는 완전 무명선수였고 메이저 승격 자체가 요원해 보였으나, 싱글 A에서 6개월만에 더블 A로 승격되었고 2000년 더블 A에서 16경기 118.2이닝 ERA 2.28 WHIP 0.98로 재능을 꽃피우며 트리플 A를 거치지않고 6월 메이저로 콜업되어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200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선발 투수로 활약하면서 16승 8패 ERA 3.29의 좋은 성적을 내면서 주목을 받았다. 화이트삭스가 사용하는 U.S. 셀룰러 필드는 오대호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타자가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구장이다. 이후로도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냈지만 당시에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성적이 나쁘다보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커리어에 대한 소개가 짧은 것은 워낙 꾸준한 성적을 계속 내기 때문으로, 11년 연속 200이닝을 달성했고, 20승은 없어도 매년 10승 이상은 꾸준하게 기록했다.[1]

임팩트가 부족해서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화이트삭스에서 4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2005년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도 한 몫 하면서 우승 반지도 차지했다. 개인 타이틀을 거의 따 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어도 팀 커리어에서는 이룰 것은 다 이뤘다.

특히 2007년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 2009년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18번재 퍼펙트 게임을 달성해 랜디 존슨에 이어 노히트 노런과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6번째 투수가 되었다.[2]

팀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서 FA로 나왔다면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굳이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007년에 4년 5600만 달러와 1년 1500만 달러의 옵션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에 FA 광풍에 비해 연봉도 높지 않은 편이고 게다가 투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9~32세의 계약이었기에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2.1.1. 2010년

최종 성적 33경기 210.1이닝 13승 13패 ERA 4.28이라는 약간은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아무래도 슬로 스타터인 관계로 시즌 초반이 약간 안 좋았고 9, 10월의 컨디션이 안 좋았던 점이 문제였던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10승과 200이닝 보증수표답게 자기 할 일은 톡톡히 해주었다. 게다가 은퇴 의사를 밝히고 있던 요 몇 년간과 달리 연장계약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1.2. 2011년

늘 그렇듯이 임팩트 없으면서도 어영부영 퀄리티 스타트를 거두면서 전반기에는 23경기 156이닝 ERA 3.06을 기록했고, 시즌 후반에 털리는 경기가 나왔지만 그래도 2001년부터 시작한 200이닝 이상 투구도 이어갔으며 최종 성적도 31경기 205.1이닝 13승 9패 ERA 3.59이라는 무난한 성적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9월 26일 경기에서는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내려가면서 화이트삭스에서의 마지막 등판이라는 것을 직감한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제이크 피비 트레이드, 알렉스 리오스 웨이버 트레이드, 애덤 던과의 계약 등 그간 수많은 삽질과 사고를 터뜨린 화이트삭스 프런트의 행각에 구단주가 조금씩 긴축재정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벌리의 재계약은 힘들어진 상황이다. 그래도 현지 팬들 사이에선 다른 선수를 팔아서라도 벌리를 붙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2.2. 마이애미 말린스

2012 시즌을 앞두고 동부지구에서 새 구장을 개장하며 흥청망청 현질을 시전한 마이애미 말린스가 4년 $58M의 계약으로 벌리를 낚아채는데 성공했다. 원래 2011 시즌 전부터 은퇴를 생각한다는 인터뷰를 했지만, 마침 아지 기옌 감독이 화이트삭스에서 말린스로 부임하고 구단에서 말린스를 새로운 강팀으로 같이 만들어보자는 말에 설득을 당해 이적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약 당시 조항에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로리아 구단주는 구두 약속으로 트레이드는 없을 거라고 약속했다고 했다. 그것을 믿은 벌리와 레예스가 바보였다.(...)

마이애미에서의 첫시즌은 워낙 임팩트가 없었고 투구 내용도 썩 좋지 않아서 올스타에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9월 28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200이닝을 초과하며 12년 연속 10승-200이닝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최종 성적 31경기 202.1이닝 13승 13패 ERA 3.74를 기록했고,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해 양대리그 골드 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2.3. 토론토 블루제이스

2.3.1. 2013년

하지만 1시즌 만에 2012년 11월 13일 조시 존슨, 호세 레예스, 존 벅, 에밀리오 보니파시오와 함께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거액의 장기계약[3]이 묶여있는 선수들, 1, 2선발감 투수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만 해도 여러가지로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라는 평이다.

한편으로 벌리는 이번 트레이드로 인해 집에서 키우던 핏불을 내보내게 생겼다. 온타리오 주에는 핏불을 키우지 못한다는 법이 있기 때문. 국경과 근접한 미국 도시에 거주하는 것과 벌리 혼자 토론토로 가고 핏불들은 미국집에 보내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벌리 혼자 토론토로 이사했고 핏불들은 가족들이 사는 세인트루이스에 보냈다. 게다가 주세가 없는 플로리다 주에서 캐나다 온타리오 주로 옮겨가며 떨어질 세금 폭탄[4]까지 딸려왔으니 당연하게도 벌리는 마이애미에게 욕을 했다.

이런 사소한(?) 문제를 집어치우고 야구 내적인 문제만 보더라도, 벌리의 이번 이적에 있어서는 굉장히 불안 요소가 많았다. 커맨드와 제구력을 앞세우지만 기본적으로 스터프가 좋지 않아서 피안타율과 피홈런 비율이 높은 유형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그나마의 스터프도 약해지면 슬슬 하락세를 탈 것이란 예측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타격 친화적인 구장과 투수들에게 가장 힘겨운 디비전인 아메리칸 리그 동부로 옮겨가는 것은 그 하락세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이는 2013년 시즌 초반 무섭게 털리면서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패스트볼 구속은 배리 지토보다 조금 빠른 수준까지 떨어져 버렸고, 그러면서도 벌리 특유의 이닝 이팅은 털리면서도 평균 6이닝 이상 먹어주긴 했다.

그리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는 이러한 우려를 비웃듯 무섭게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13년 연속 10승 달성에 성공했고, 9월 21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1실점을 거두며 13년 연속 10승 이상-200이닝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최종 성적은 33경기 203.2이닝 12승 10패 ERA 4.15를 기록해 전반기에 부진했어서 그런지 ERA는 다소 올라갔지만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던지며 토론토 선발진을 굳건히 지켰다.

한편으로 6월 시카고 화이트삭스 원정을 처음 왔는데, 비록 일정이 맞지 않아서 경기에 등판하지는 못했지만 화이트삭스 구단에서 경기 전에 따로 시간을 마련해서 No.56 마크 벌리로서 소개해줬고[5] 팬들은 당연히 기립박수로 맞아줬다. 2011년 전후로 팀 사정이 악화되지만 않았다면 삭스에서 좋은 기억만 갖고 있는 벌리가 타팀 제시액보다 조금 덜 받더라도 얼마든지 삭스 잔류를 선언했을 터라 팬들은 더 아쉬워하는 듯하다. 화이트삭스의 한 시대를 함께한 중계 캐스터 켄 해럴슨 옹도 자신의 올타임 페이버릿이자 화이트삭스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선수로서 앞으로도 많이 보고싶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2.3.2. 2014년

6월 1일까지 10승 1패 ERA 2.10을 달성하며 2009년 로이 할러데이 이후 메이저에서 가장 먼저 10승에 선착한 토론토 소속 투수가 되었다. 팀 내 1선발보다 잘 던지고 승 잘챙기는 3선발 다만 10승 이후에 페이스가 떨어졌는지, 10승 본능(?)이 발휘되어 10게임 동안 6패만 추가하다 7월 말에야 11승을 거뒀다.

9월 24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14년 연속 200이닝-10승 이상을 달성했다.[6] 중반에 승리를 못한게 있어서 아쉽게도 199승으로 200승에는 실패했다.

2.3.3. 2015년

이번 시즌이 2012년에 마이애미 말린스와 체결했던 4년 계약의 마지막 해인데,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시즌 시작 후에는 지난 시즌 기대를 모았던 마커스 스트로먼의 시즌 아웃과 R.A. 디키, 드류 허치슨 등의 부진으로 인해 흔들리는 토론토의 마운드를 외로이 끌고 가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4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6이닝 2실점 호투와 타선의 화끈한 지원을 바탕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통산 200승을 달성했고, 7월 12일 캔자스시티 로얄스를 상대로 7이닝 2실점 호투하며 15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8월 3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6이닝 2실점 1자책을 기록하며 14승을 거두었는데, 2008년 이후로 7년만에 13승을 넘게 되었다. 경기 이후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밝혔는데 결국 9월 5일 볼티모어 상대로 예정되었던 등판이 6일로 미뤄졌고, 다시 7일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으로 미뤄졌다. 아무리 금강불괴라도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듯하다. 상대 전적에 절대 열세인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를 피하기 위해 로테이션 조절이 이루어 진다면 향후 4-5경기에 선발등판을 하게되는데 매경기 6이닝 이상을 소화해야만 200이닝을 달성할 수 있다.

9월 7일 보스턴 레드삭스 경기에서 3.1이닝 5실점으로 강판되었다. 어깨 상태가 나빠서 코티존 주사를 투여하고 마커스 스트로먼이 복귀하여 벌리에게 충분한 휴식을 준다고 한다. 남은 일정에서 4경기 선발등판이 예상되고 200이닝까지 25.2이닝이 남은걸 생각해보면 200이닝 달성이 험난해 보인다.

10월 2일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이 유력한 상황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선발등판한 벌리는 6.2이닝 4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198이닝으로 200이닝에 2이닝 모자란 상황이다. 10월 4일 추가로 등판하여 2이닝을 채우려 하였으나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라이언 고인스와 에드윈 엔카나시온의 실책으로 인해 0.2이닝 5피안타 1볼넷 8실점 무자책(!)으로 내려오며 198.2이닝에 머물러 역대 최초 15년 연속 10승 이상-200이닝 이상에 1.1이닝 차로 실패했다. 토론토가 22년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포스트 시즌 기간동안 팀과 동행했다.

3. 은퇴

2015년을 마지막으로 4년 계약이 종료됐다. 벌리는 은퇴 여부에 대하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뛰는 게 아니면 은퇴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상황이다. 카디널스 측에서도 랜스 린이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면서 로테이션에 한 자리 구멍이 나면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 했지만 세인트루이스 측에선 오퍼를 날리지 않았고 타팀의 제안까지 거부하며 세인트루이스를 고대했던 벌리는 2016년 2월 이후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주위에 "메이저리그에 조용하게 들어온 만큼, 떠날 때도 똑같이 나가고 싶다"라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조용히 은퇴하는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이후에도 팀을 구하는 움직임이 없는 걸로 보아 조용히 은퇴 수순을 밟은 듯하다.
2017년 4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성공한 카즈 팬으로서 오랜만에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7년 6월 2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벌리의 등번호인 56번을 영구결번했고, 이를 기념하며 결번식을 진행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스터프가 강력한 편은 아니라 리그를 초토화할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팀의 1, 2선발급, 커리어 후반에도 어지간한 3선발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다.

사실 벌리의 가장 큰 장점은 가공할만한 이닝 소화 능력과 내구성이다. 2015년 기준으로 현역 최다이닝 투수. 커맨드와 제구력을 앞세운 피네스 피처로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연속 200이닝을 달성했고 매번 30게임 이상 등판했다. 이렇게 확실히 한 시즌 동안 로테이션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11년 연속 200이닝 달성한 선수가 1980년대 이후 스티브 칼튼, 게일로드 페리, 퍼거슨 젠킨스, 돈 서튼, 그리고 그렉 매덕스로 총 다섯 명인데, 이들 모두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4년까지 200이닝 10승을 2001년부터 14년간 기록했고 여기에 30선발 이상 매해 커버했다. 이 기록은 1966~1980년 게일로드 페리가 세운 15년 연속 기록 이후 최고 기록으로[7] 페리는 27~41세 시즌에 이 기록을 이룬 반면 벌리는 79년생에 불과하다. 특히 선발 투수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면서 선발투수의 평균 소화 이닝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기록은 향후 더 나오기 어려운데, 그야말로 꾸준함의 대명사다.

빠른 공의 평균 구속은 80마일대 중반으로 메이저에서는 뒤에서 세는게 빠를 정도로 느리지만, 다양한 구종[8]으로 타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뛰어난 제구력으로 빠르지 않은 공을 가지고도 타자들을 제압한다. 벌리를 공략하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빠른 인터벌로 투구 간격이 메이저 투수들 중 가장 짧기로 유명하다. 얼마나 짧냐면 타자가 타석에서 타격준비가 완전히 되면 벌리는 이미 투구동작을 시작하고 있을 정도여서 타자들이 타격타이밍을 잃어 공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퍼펙트게임 경기는 아예 플레이볼부터 27번째 아웃카운트까지 2시간 3분만에 경기가 끝났을 정도. 다만 이런 유형의 투수가 흔히 그렇듯이 꾸준하게 롱런은 하지만 뭔가 번쩍하는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래도 벌리는 2009년 퍼펙트 게임으로 제대로 메이저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했다.
2010년 시즌 개막전에서의 레전드급 호수비로, 왼쪽으로 온 공을 발로 트리핑 한 뒤 가랑이 사이로 스냅한 벌리도 대단하지만 저걸 맨손으로 처리한 폴 코너코도 대단하다. 그리고 켄 해럴슨 옹의 MERCY는 덤이다.[9]

좌완 투수로서 수비가 매우 좋은 편이다.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뽑는 필딩 바이블에서 2009년부터 4연패, 골드 글러브 역시 2009년부터 아메리칸 리그에서 3연패하고 2012년 내셔널 리그에서도 수상할 정도로 자타공인 정상급의 수비력을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왼손 투수 특유의 이점과 본인의 빠른 견제 동작이 더해져, 주자 견제 능력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벌리가 나올 때 주자들은 도루나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자제한다. 통산 도루 허용 갯수가 59개에 불과한데, 1년에 4개도 안 내주는 꼴이다.

투구 인터벌이 짧은 투수로도 유명하다. 16초 정도로 메이저에서 인터벌이 가장 짧은 투수다. 메이저 투수 평균은 20-21초이며 갈수록 인터벌이 길어지는 추세이다. 2015년 7월 U.S. 셀룰러 필드로 돌아와서 크리스 세일과 화이트삭스 신구 에이스의 대결을 한 적이 있는데 벌리는 8이닝 4실점 비자책, 세일은 9이닝 2실점으로 두 투수가 모두 완투한 결과 시간이 1시간 54분만에 끝났다.[10]

통산 ERA가 3.81으로 평범해보이지만 그가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낸 U.S. 셀룰러 필드와 로저스 센터가 타자들에게 유리한 타자구장이었고, 스테로이드 시대에 약쟁이들을 상대한 것을 감안하면 준수한 기록이다. 제구력이 뛰어나 볼넷이 매우 적지만, 낮은 구속 때문에 타자를 압도하지 못하고 맞춰잡는 투수로 탈삼진이 적고 피홈런이 많아 통산 FIP가 4.11로 높다. 통산 ERA - FIP = -0.30로 차이가 많이 나는 투수로 꼽히는데 세이버메트리션들은 이를 벌리의 DRS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1] 쉽게말해 꾸역꾸역 맞춰잡으면서 뛰어난 수비력으로 주루플레이와 실점을 억제하고 이닝을 많이 먹어주는 투수라고 할 수 있다. 높은 ERA-FIP의 차이로 인해 2015년까지 통산 WAR에서 bWAR는 59.2인 반면 fWAR는 52.0로 꽤 차이가 나는 편이다.

4.1. 명예의 전당 떡밥

명예의 전당 논란이 되는 선수다. 꾸준함의 대명사이고,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선발 투수는 이닝 소화라든가 다승 마일스톤을 갈수록 채우기 어려워지고 있다. 즉 2014년까지 벌리가 세운 기록은 이전 명예의 전당 수상자에 비해서는 초라해 보이지만, 10년 이상 지난다면 더욱 희귀해질 것이라는 것. 2014시즌까지 성적은 통산 199승이다. 나이도 먹어가는만큼 좀 힘들기야 하겠지만, 다승이나 탈삼진, 통산 투구이닝 등의 누적스탯 면에서 좀 더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

문제는 임팩트로, 그의 투구 유형이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것을 떠나 그는 성적으로도 메이저를 대표하는 투수급의 임팩트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올스타 다섯번, 골든 글러브 네번이 전부이고 사이 영 상 순위에 든 적이 5위 한 번 밖에 없다. 비슷한 꾸준함의 대명사인 게일로드 페리는 300승도 넘었지만 양대 리그 사이 영 상을 수상할 만큼 임팩트를 낸 시즌이 있다. 더 비슷한 경우는 페리와 동시대에 활약하고 66~80년에 똑같이 10승-30선발-200이닝 기록을 세운 돈 서튼으로, 40세가 넘어서까지 활약했지만 사이 영 상 순위에 든 건 3위 한번, 4위 한번, 5위 세번이다. 그가 명전에 들어간 원동력은 324승으로, 5수 끝에 입성했다.[12]

벌리의 명예의 전당을 지지하던 쪽도 벌리가 머지않아 은퇴한다면 명전이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벌리 특유의 꾸준함과 건강함 때문에 롱런할 가능성이 상당한 투수로 간주하고 그렇게 롱런한다면 충분히 명예의 전당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15년에 조용히 은퇴를 하면서 그의 명전행은 어렵게 되었다.

위의 평가를 반영하듯, 2021년 첫 명전행 투표는 11.0%에 그쳤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0 CHW 28 4 1 0 3 51⅓ 4.21 55 5 19 3 37 1.442 120 0.6 0.6
2001 32 16 8 0 0 221⅓ 3.29 188 24 48 8 126 1.066 140 4.0 6.0
2002 34 19 12 0 0 239 3.58 236 25 61 3 134 1.243 126 4.3 5.0
2003 35 14 14 0 0 230⅓ 4.14 250 22 61 5 119 1.350 112 4.3 2.5
2004 35 16 10 0 0 245⅓ 3.89 257 33 51 8 165 1.255 121 4.4 4.1
2005 33 16 8 0 0 236⅔ 3.12 240 20 40 4 149 1.183 144 5.9 4.7
2006 32 12 13 0 0 204 4.99 247 36 48 6 98 1.446 95 1.6 2.2
2007 30 10 9 0 0 201 3.63 208 22 45 5 115 1.259 130 3.2 6.0
2008 34 15 12 0 0 218⅔ 3.79 240 22 52 5 140 1.335 121 4.2 4.4
2009 33 13 10 0 0 213⅓ 3.84 222 27 45 5 105 1.252 122 3.1 5.4
2010 33 13 13 0 0 210⅓ 4.28 246 17 49 1 99 1.403 100 3.7 3.7
2011 31 13 9 0 0 205⅓ 3.59 221 21 45 2 109 1.295 121 3.2 3.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2 MIA 31 13 13 0 0 202⅓ 3.74 197 26 40 4 125 1.171 109 1.0 3.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3 TOR 33 12 10 0 0 203⅔ 4.15 223 24 51 9 139 1.345 99 2.1 2.1
2014 32 13 10 0 0 202 3.39 228 15 46 4 119 1.356 112 3.7 3.5
2015 32 15 8 0 0 198⅔ 3.81 214 22 33 7 91 1.243 108 2.0 1.3
MLB 통산
(16시즌)
518 214 160 0 3 3283⅓ 3.81 3472 361 734 79 1870 1.281 117 51.5 59.2

6. 기타

  • 드래프트 하위 라운더 성공신화를 꼽을때 마이크 피아자와 함께 항상 꼽히는 선수로, 당시 메이저 스카우터들 중 하나는 벌리에 대해서 "스터프가 뛰어나지도 않고 구속도 낮은 선발 투수가 메이저에서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싱글 A의 성적을 보고 더블A에서 실패할것이라 생각했고, 더블 A에서는 메이저에 가면 결국 끝날것이라 보았다. 빅리그에 데뷔 후 2-3년 시간이 흐르면 분석당할거라고 생각했지만, 10년이 넘도록 벌리는 마운드 위에 있다."고 말하였다.
  • 야구 외에는 조시 베켓처럼 사냥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으로는 동물보호에도 관심이 많아서 관련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투견판에 돈을 걸었다가 철창신세를 진 풋볼 스타를 디스하기도 했는데, 미네소타 트윈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 라이벌 팀의 팬덤에서는 이런 것을 가지고 벌리를 위선자라 깐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냥꾼들이야말로 오히려 동물군의 개체수 증가와 감소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많은 사냥꾼들이 동물보호 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사냥꾼들은 멸종 위기인 동물들은 오히려 본인들이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얘네들은 잡지 말라"는 등의 정보 공유를 하는 등 입으로만 동물보호 외치는 사람들보다 앞장서서 실천하는 면이 많이 있으니 함부로 위선자라 할 수는 없다.[13]
  • 어렸을 때는 자신의 고향[14]팀이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팬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입단해서도 고향팀인 카디널스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낸 적이 많았는데, 카디널스 모자를 자신의 라커에 두기도 했다고 하며, 200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 시리즈에서 카디널스 모자를 쓰고(...) 경기를 관전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이트삭스팬들한테 까이기도 했다.[15] 2009년엔 알버트 푸홀스가 주최하는 자선행사의 경매에 참가해서 1일 동안 카디널스의 매니저가 되는 조건으로 1만 달러를 지불하고 다운 증후군에 걸린 소녀를 돕기도 했다. 본인도 기회가 된다면 세인트루이스에서 커리어를 끝내고 싶다고 밝힌 적도 있다.
  • 2009년 결혼해서 아들 1명, 딸 1명을 두고있다. 부인은 같은 세인트루이스 출신으로 가족들 모두 세인트루이스에 살고있다. 화이트삭스 소속이던 시절에는 시카고랑 세인트루이스가 가까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플로리다-토론토로 이적한 이후 기러기 생활을 하고있다.[16] 덧붙여 가족들 모두 열렬한 카디널스팬이라고.
  • 메이저리그의 연속 타자 범타 처리 기록을 보유하기도 했다. 45타자 연속 범타 처리인데, 바로 2009년에 퍼펙트 게임을 던지고 다음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도 6회 2사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다가 볼넷을 내주며 기록이 마감되었다. 지금은 유스메이로 페팃이 46타자로 기록을 경신했지만, 불펜에서의 기록인 페팃과 달리 벌리는 선발로 두경기 연속 퍼펙트 게임을 던질 기세로 달린 것이기에 비교를 불허하며, 벌리의 장기인 안정적 피칭을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 49경기 연속 6이닝 이상 투구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이 기록은 못던져서 깨진 기록이 아니고 빈볼로 퇴장을 당해서 끊어진 기록이다.[17]
  • 매우 온화하고 친근한 성격으로 팀 케미스트리에 기여한다고 한다. 뉴욕 원정 때는 애런 산체스, 마커스 스트로먼, 랍 라스무센과 같은 루키들을 양복집에 데려가서 자기돈으로 최고급 양복을 두벌씩 맞춰줬다고 한다. 루키들은 너무 멋진 선배라고 감동했고, 이외에도 케빈 필라는 트위터에서 벌리를 팀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꼽았고,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벌리는) 모든 행동에서 배울 점이 있는 선수"라고 말하며, 어린 선수들은 아예 아빠(Papa Buehrle)라고 부를 정도로 인망이 높다.
  • 대대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이만수가 시카고 화이트 삭스 코치로 있을 때 8개월을 쫓아다녀 전도한 끝에 예배에 나가게 되었다. 이후 벌리의 부모가 이만수를 찾아와 아들이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아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런 아들을 교회로 인도해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 이름에서 어느정도 눈치 채겠지만, 독일계 미국인이다. 미주리 쪽에 독일계가 많다. 다만 미국에 독일계 미국인은 이미 차고 넘치는지라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이름이 읽기 참 괴랄한 편에 속해서 인터넷을 보면 읽는 방법을 따로 표시한 사이트도 있을 정도다.[18] 유명해져서 망정이지 안유명했으면 뷔얼레같은 해괴한 발음도 튀어나왔을거다[19]

7. 관련 문서



[1] 벌리가 한창일 때에는 거의 매번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했기 때문에 7이닝 2실점 형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2] 화이트삭스의 코치였던 이만수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퍼펙트 게임 달성 후 축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3] 벌리의 계약은 계약 후반부에 고액의 연봉을 수령하는 형태다.[4] 지독한 반미주의자인 카를로스 델가도조차 못이기고 이적을 결심하게 만들 정도로 세금이 쎄게 매겨진다.[5] 당연히 벌리 이후로 56번을 단 화이트삭스 선수는 없다. 앞으로도 벌리가 돌아오기 전까진 사실상 준 영구결번으로 봉인될 것이 분명하고 향후 행보에 따라 공식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꽤 높다.[6] 그렉 매덕스와 타이 기록이다.[7] 그렉 매덕스는 파업으로 인한 시즌 단축으로 30선발을 1994~1995년에 못 채웠으며, 2002년에 아웃카운트 두 개가 모자라 199.1이닝에 그쳤다.[8] 패스트볼 계열로 포심, 투심, 커터를 던지고, 10% 내외의 비율로 커브볼을 섞어 던지며, 리그 상위권으로 꼽히는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던진다. 2010년대에는 거의 던지지 않지만 2000년대는 슬라이더도 많이 던졌으니 타자들은 4~5개의 구종을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9] 벌리는 당시 이 공을 8살짜리 토미 멀로니라는 소년에게 줬는데, 영구결번식에 고등학생이 된 이 아이가 찾아와 은퇴 선물로 돌려줬다.[10] 퍼펙트 게임보다도 더 적게 걸렸다![11] 보통 토미 존, 톰 글래빈 유형의 좌완 똥볼러 투수라고 여겨진다. 글래빈옹 문서의 세이버메트리션 항목을 볼넷은 적고, 피홈런은 많다고 바꿔읽으면 대충 벌리의 FIP을 이해할 수 있다.[12] 사실 페리와 서튼 모두 현역일 때 부정투구의 대명사들이었다는 점이 그들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 성적 자체는 명예의 전당을 가고도 한참 남는 성적을 찍었다. 페리가 ERA 3.11 5350.1이닝 3534탈삼진 314승 bWAR 93.7, 서튼이 ERA 3.26 5282.1이닝 3574탈삼진 324승 bWAR 68.7이다.[13] 짐 코벳 항목 참조하면 이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14] 세인트찰스는 세인트루이스 광역권에 속하는 동네다.[15] 시카고 컵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붙지 않는 이상 화이트삭스 팬은 카디널스를 응원하는 법이 없다.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는 나름 지역감정이 섞여있는 라이벌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식축구나 농구같이 다른 종목도 아니고 일단 프로선수인 이상 우선 본인이 속한 연고지와 소속팀에 최선과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명한 모습이다.[16] 그래서 매년 가족들이 그리워 은퇴하고 싶다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17] 전날 팀 동료인 이구치 타다히토가 사구를 맞고 결장했고, 6회초에 A.J. 피어진스키가 사구를 맞자 6회말 2:1리드 상황에서 2아웃을 잡아놓고 B.J 서호프를 맞혀버리며 즉시 퇴장당했다. 들어가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는 모습까지 볼 때 100% 고의다. 이후 벌리는 다시 10경기 연속으로 6이닝 이상 투구를 이어갔기 때문에 팬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았던 결과이다. 여담으로 이 경기는 화이트삭스가 결국 6:3으로 승리하였고 벌리는 승리투수가 되긴 했다.[18] MLB에서도 2015년에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운 선수들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 지를 선수 소개 페이지에서 일일이 표시하고 있다.[19] 사실 독일어 발음으로는 뷔얼레가 맞는 발음이다. Buehrle에서 ue가 독일어에서 ü로 옮겨지니 Bührle가 되고, 독일어 표기법상 진짜로 '뷔얼레'가 된다. 유사한 발음의 유명인은 안드레 쉬얼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