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가 캐리하는 2차대전?! | |
<nopad> | |
장르 | 대체역사, 빙의 |
작가 | 후퇴금지 |
출판사 | 문피아 |
연재처 | 문피아 ▶ 카카오페이지 ▶ 네이버 시리즈 ▶ |
연재 기간 | 2021. 09. 26. ~ 2022. 09.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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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소설. 작가는 후퇴금지.2. 줄거리
그리스, 에티오피아한테 지는, 3배 병력으로 패배하는 '열강' 이탈리아.
근데 기절했다가 깨어났더니 이 노답 나라를 통치하는 두체가 되었다?
기왕 빙의한 거, 데드엔딩도 피해보고 이 나라를 진짜 열강으로 만들어보자.
근데 기절했다가 깨어났더니 이 노답 나라를 통치하는 두체가 되었다?
기왕 빙의한 거, 데드엔딩도 피해보고 이 나라를 진짜 열강으로 만들어보자.
3. 연재 현황
2021년 9월 26일 문피아에서 연재를 시작, 연재주기는 주 6일.2022년 8월 9일 247화로 본편이 마무리되었고 동년 9월 14일 외전이 마무리되며 총 270화로 완결되었다.
4. 등장인물
4.1. 이탈리아
4.1.1. 정계
4.1.2. 군부
- 에토레 바스티코
이탈리아의 화력전 교리 창시자. 1차 대전에서 화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결과 화력전 교리를 신봉하게 된다. 졸전에 추태를 보여준 이탈리아도 바스티코의 전선에서는 꽤 활약했을 정도로 이탈리아의 몇 안 되는 명장. 무솔리니가 새로 개발한 8.8cm 양용포와 15cm 중포를 보여주자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 조반니 메세
이탈리아의 기갑 지휘관이자 기동전 교리 창시자. - 로돌포 그라치아니
이탈리아의 방어전 지휘관이자 방어전 교리 창시자. 본인은 꿀빨고 싶은 성격이지만 전투가 닥치면 사령관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활약하는 똑똑하고 게으른 장교다.
4.2. 독일
4.3. 소련
4.4. 미국
- 허버트 후버
미국 제31대 대통령.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제32대 대통령.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다. 뉴딜 정책을 추진하나 후버의 미독소 무역 협정으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1936년 대선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신다. - 알프 랜던
미국 제33대 대통령.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당선된다. - 조지 S. 패튼
4.5. 스페인
- 마누엘 아사나 디아즈
스페인 제2공화국의 총리. 스페인 내전의 기미를 감지하고 이탈리아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친정부 민병대와 친정부 성향 군인들을 비밀리에 육성하는 등 내전을 준비한다. 이후 좌파 정당과 민병대는 물론 아나키스트까지 포용하며 내부 단결을 공고히 한 다음, 국민파의 주요인물인 프리모 데 리베라를 붙잡아 처형하고 내전을 시작한다.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 의용군의 활약으로 스페인 내전이 공화파의 승리로 끝나자 국민 통합을 위해 알폰소 13세를 복위하며 입헌군주국으로 만들고, 남아도는 숙련병력을 2차 대전 전선으로 파병하는 등 전후 복구에 최선을 다한다. - 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민파 스페인의 장군. 공화파 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민파에 가담하나 국민파가 내전에서 밀리자 공화파와 비밀리에 내통해 국민파 점령지에서 봉기, 국민파 고위인물들을 붙잡아 공화파에 넘긴다. 전후 이례적으로 무죄방면되어 장군 자리도 유지할 수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파병된 50만명 규모의 스페인 군단의 지휘관으로서 참전한다. - 엔리케 리스테르
공화파 스페인의 중령. 스페인 내전이 일찍 일어나면서 장성이 아닌 영관으로 내전에 참여한다.
4.6. 프랑스
4.7. 영국
4.8. 일본
4.9. 조선(대한민국)
5. 개변된 역사
5.1. 이탈리아
- 대연정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으로 총리 자리에 오르자마자 다른 정당들과 함께 맺기로 한 연정. 국가 파시스트당부터 보수당, 인민당, 사회당, 그리고 공산당과 기타 군소 정당까지 함께 참여한, 사실상 원내정당의 좌우를 모두 합쳐 만든 연정이다. 사실 파시스트당은 무솔리니 왈 '깡패 무리'인지라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여 있어 발보나 그라치아니 등을 빼면 인재가 부족했기에 좋든 싫든 다른 정당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른 정당들은 권력을 나눠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어 쌍수 들고 환영했고, 연정 논의에서 반대하며 조금 껄끄러웠던 공산당은 무솔리니가 그람시의 자택을 찾아가 주 42시간 근무 법제화 및 토지개혁 등 좌파적이라 보일 정도로 파격적인 정책 제안을 하자 그람시가 수락하며 이후 공산당원들을 설득해 공산당도 연정에 합류한다. - 식민지 청산 및 감세
이탈리아는 명목상 식민제국이지만, 대전쟁으로 얻어낸 식민지도 이미 영프가 단물만 뽑아먹고 남은 깻묵, 즉 계륵인 땅이고 그마저도 주둔군이 식민지 저항군에 끊임없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라 붙들고 있어 봐야 손실만 누적되는 상황이라 차라리 불필요한 식민지를 원주인 국가에게 돌려주거나 해방하고 그 대가로 외교적 입지를 다지는 카드로 쓰기로 한다. 이후 에티오피아에게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를 돌려주고 동맹을 맺고, 유고슬라비아에게 이탈리아령 식민지를 돌려준다. 그리고 리비아는 친이탈리아파 토후들을 중심으로 독립시키고 독립 후에도 원조를 제공한다. 국민들이야 식민지 줄이면 세금 덜 낸다고 홍보해주니 자본가고 서민이고 대폭 찬성했고 반대하던 정당들도 파시즘+여론빨로 밀어붙였더니 조용해졌다고.
- 마피아 토벌
원역사처럼 정부 말도 안 듣고 날뛰며 온갖 범죄를 벌이던 마피아들을 제대로 털어버린다. 이탈리아에서 오래도록 골치아픈 문제를 일으키던 마피아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원 역사에서 무솔리니의 지지율이 크게 오른 것도 마피아를 제대로 조져서 남부 시민들이 살기 좋아졌기 때문이다. 마피아 조직들에 방첩기관 정보원을 심어 일부러 거물들이 날잡고 모이게 한 다음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전면적인 군사 작전을 실시해 중무장한 정예병들로 경호원들을 사살하고 거물들을 단숨에 붙잡아 죄다 기소해서 감방에 던져넣고, 간부들이나 쫄다구들까지 제대로 소탕한다. 두목들과 거물들, 간부들이 줄줄이 잡혀서 콩밥을 먹거나 이승을 하직하는 등 정부가 초강경·무관용 대응을 실시하자 밑의 쫄따구들도 쫄아서 자수하며 기어들어왔다고. 붙잡힌 마피아 두목 중 가장 세력이 컸던 이탈리아 마피아의 거두 돈 치치오는 붙잡은 후 무솔리니가 사법거래로 약간의 밑천과 일부 조직원들을 남겨줄테니 독일로 가서 정보원 노릇을 하도록 시켰다. 돈 치치오는 미국이 아니어서 아쉬워했지만 전기의자형에 처하겠다는 반협박을 듣고 그대로 기었다. 그리고 나머지 몰수한 돈은 국고로 채워넣었는데, 그동안 마피아들이 얼마나 많이 해먹었던지 이탈리아가 여러 개혁을 진행하는 동안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대부분의 예산을 마피아에게서 뜯어온 금액만으로 충당이 가능했을 정도. - AK-23 돌격소총 개발
총덕후로서 보병용 돌격소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 무솔리니의 지시로 AK 소총이 개발된다. 개발년도에 따라 이름은 AK-23으로 정해졌다. 절삭식 대신 프레스식으로 찍어냈기에 총기 신뢰성은 조금 떨어졌으나, 생산 효율은 훨씬 높아졌고, 기존 소총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화력을 보여주며 전군 표준화를 실시한다. - 로마 조약기구 출범
1924년 5월, 이탈리아의 주도로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그리스, 알바니아, 리비아, 에티오피아, 이라크가 맺은 로마 의정서에 기초한 국제 동맹으로 회원국 간 영토 분쟁을 종식하고 동맹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등이 반발하긴 했지만 기우는 해인 국제연맹을 대신해 등장한 국제 조약기구라 다른 국가들도 관심을 보이고 타 회원국의 제안으로 프랑스도 참여한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우회하기 위해 이미 구식 전함으로 전락한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이나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 등 구형 함선을 다른 회원국에게 싼값에 팔아치워 전함 보유수를 줄여 전함 쿼터를 확보했고, 이탈리아가 회원국들의 전함 건조를 지원하고 인도하는 대신 이탈리아에 전쟁이 터지면 이탈리아에 귀속되게 하는 식으로 조약의 맹점을 꿰뚫고[1],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은 수리한답시고 도크에 얹어 놨는데 이를 이용해서 일찌감치 재건조 계획을 잡아서 도크에 얹혀 있으니 재건조 중인 거라며 우겨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는[2] 등으로 군축을 우회한다. - 남부 토지개혁 및 대지주 혁파
이탈리아 남부의 문제인 토지 개혁 건을 두고 봉건제를 이어받은 대지주들이 강하게 반발하거나 심하면 반란을 일으킬 것임을 안 무솔리니는 차라리 그렇게 뒀다가 반란이 터졌을 때 일망타진하는 방법을 썼다. 이후 3만여 명 정도의 반군이 2차 로마 진군을 벌였지만 신무기 AK-23으로 무장한 이탈리아의 정예병들에게 쓸려나가 항복했고 사로잡힌 대지주 베를루스코니는 풀려나는 대신 진군에 참여하지 않은 지주들을 설득해 자기처럼 반란 일으켰다가 땅 모조리 뺏기지 말고 유상매입 유상분배 구조의 토지개혁에 동참하게끔 유도하였다. 결과적으로 마피아도, 대지주들도 무솔리니에게 개박살이 난지라 별다른 저항 없이 토지 환수율이 95%를 기록하며 남부 자영농이 크게 늘어나면서 토지개혁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었다. - 지역 균형 발전
토지개혁을 일궈내긴 했지만 이탈리아 남부는 북부에 비해 경제력이 낮았던지라 무솔리니의 주도로 이탈리아 주요 군수산업체로 선정된 피아트사의 신축 공장이나 다른 기업들의 공장들을 대거 남부에 짓도록 하면서 남부 농민들의 소득 수준을 올려 남북 소득 격차를 줄이기로 한다. - 이탈리아군 개혁
이탈리아군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인정신 들어간 무기나 중구난방인 무기체계, 무능한 장교단을 개선하기 위해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원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무기들을 생산한 피아트 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명장인 조반니 메세를 이탈리아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해 미래의 영관, 장성이 될 사관후보생들에게 선진 교리를 교육하도록 한다. - 지중해 경제협력체 창설
로마 의정서에 서명하긴 했지만 회원국인 사우디랑 이라크가 하심 가문과 사우드 가문의 갈등으로 촉발된 충돌을 빚는 등 회원국들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했던지라 로마 조약기구 가입국 간 경제협력체를 창설한다. 이탈리아의 독주를 제한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아의 요청으로 프랑스가 추가로 가입했고 이탈리아의 요청으로 탈퇴 후 재가입 시에 절차가 까다로워질 수 있음을 명시했다. 덤으로 관세장벽 철폐로 관세동맹을 맺고, 비주력 산업 보호를 위한 경제기금을 조성하도록 했다. 이미 시대가 1920년대 중반이라 광란의 20년대의 끝을 달려가고 있었기에 얼마 안 가서 찾아올 대공황에 대비하기 위한 경제 블록의 역할도 겸하도록 하는 것. 가맹국들 사이의 주류 산업이 거의 겹치지 않는 편이라 조율이 편했다. 마지막으로 유동화폐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회원국들의 금본위제 폐지도 가결되었다. - 누오보 파또
1929년 월가 대폭락으로 대공황이 시작되자 무솔리니의 주도로 원역사의 뉴딜 정책을 실행한다. 이탈리아 전역의 고속도로를 개설하고 댐과 발전소 공사를 실시하는 등 대규모 국가주도사업을 실시하고 재정위기에 빠진 기업들에게는 정부 보조금을 지원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막고 공산당과 구제책을 도입하는 등 최대한 화폐가 돌고 소비를 살리도록 노력하고 다른 지중해 경제협력체 가입국들과 무역을 유지하며 함께 버틴 결과 기업들도 점차 혼란에서 벗어나고 실업률도 안정화되면서 이탈리아는 GDP가 10% 정도 감소하는 선에서 대공황의 초기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응에 성공해 대공황에도 서민들의 삶을 지키게 되자 사람들은 무솔리니가 거둔 성과를 직접적으로 느끼면서 정부의 지지율이 치솟는다. - 스트레사 체제
라인란트 재무장으로 위기감을 느낀 영, 프, 이 3국이 모여 독일의 야욕을 견제하기 위해 원역사처럼 형성되었다. 차이점이라면 무솔리니가 영프를 배신할 생각은 없다는 것. - 차기 육군 군사 교리 개발
이탈리아군이 스페인 내전에서 활약하며 실적을 쌓자 기갑과 기계화보병의 제병협동으로 방어선을 돌파하는 조반니 메세의 기동전, 강력한 화력으로 적의 방어선을 무너뜨린 후 돌파하는 에토레 바스티코의 화력전, 지형과 상대의 보급, 방어의 이점을 모두 살린 굳건한 방어로 적의 공세를 돈좌시킨 후 반격하는 로돌포 그라치아니의 방어전 이렇게 세 가지의 전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교리를 개발한다. 물론 충분한 시간과 장교들을 갈아서... - 레지아 마리나 재건
일본의 폭주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파기되면서 건함 경쟁이 다시 불이 붙자, 로마 조약기구 창설 당시 해군을 개편한 이후 해군 재확장 계획을 세워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의 이탈리아판에 가까운 조약기구 공동 전함인 메디테라네오급 전함(프로젝트 페라티 전함이나 리토리오급 전함 비슷한 무언가로 보인다)을 건조하고, 이탈리아도 군축 조약의 에스컬레이터 조항에 따라 함선 쿼터가 늘어나며 사우스다코타급 ~ 아이오와급 전함의 이탈리아판인 아우구스트급 전함(프로젝트 UP.41형 전함에 기반한 무언가로 보인다)을 개발하고 건조한다. 이탈리아의 해군 기술도 장기적으로 발전시켰기에 원역사의 15인치가 아닌 16인치로 3연장포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여담으로 원래는 두체급이라 하려 했으나 무솔리니가 뭐라해서 바꾼 게 저 이름이고, 아쉬운 대로(?) 기어이 3번함 이름으로 무솔리니를 붙였다. 구식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을 대개장해 만든 비토리오급 항공모함들이 스키점프대식 비행갑판과 아일랜드형 연돌 등 미래에서 베껴온 최신형 기술을 집어넣었더니 프랑스에서 똑같이 전함 개장 항모로 만들었지만 반쯤 실패작으로 끝난 베아른과는 달리 쏠쏠한 효과를 보자 카이사르급이란 명칭으로 더 발전된 설계를 적용한 항공모함도 더 건조한다. 그래도 태생적으로 영국과는 해군에서 체급의 한계가 있다 보니 비대칭전력인 잠수함을 개발해 늑대 떼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스노클과 눈물방울형 선체를 일찍 도입해 양산한다. -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무솔리니 본인은 돈 나간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미 이탈리아 월드컵을 유치했던 터라 예정대로 개최되는데, 원 역사처럼의 막장 짓거리와 추태는 없었다. 이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활약으로 이탈리아가 우승컵을 들게 된다. - 2차 세계대전 발발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로마 조약에 따라 동맹국들이 줄줄이 참전하고, 이탈리아도 오스트리아, 프랑스, 체코 방면으로 병력을 파견한다. - 북이탈리아 전선
- 이탈리아 프로야구 출범
전후 이탈리아는 주인공의 취미 때문에 이탈리아 프로 야구 리그가 출범하게 되는데, 자그마치 지지율이 95%에서 90%로 깎이는(...) 일을 겪으면서도 프로 야구 리그 출범과 정착을 강행했고, MLB>IPB>KBO>WNPB[3]로 알려지게 된다.
- 무솔리니의 퇴임
1942년, 무솔리니가 집권한 지 딱 20년이 되는 날에 무솔리니가 총리 자리에서 퇴임한다. 퇴임식 때 각국의 파시즘 지도자들이 그의 퇴임사를 들으러 왔고, 연설 후 무솔리니와 청중들이 로마식 경례를 하며 퇴임식이 끝난다.[4]
5.2. 프랑스
- 마지노선 연장
원역사처럼 프랑스가 허무하게 엘랑당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던 무솔리니가 독일의 야욕이 드러나고 대공황의 피해가 점차 잡히자 마지노선을 건설하던 프랑스를 닦달해 벨기에 국경까지 마지노선을 전면적으로 연장하도록 한다. 이 요새선은 기존 마지노선에 비해 요새선이 얇아 소(小)마지노선이라고 불리게 되고, 원역사의 에반-에마엘 요새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마지노선에 걸맞도록 튼튼하게 지어졌다. 썩어도 마지노선이었던 만큼 가장 얇은 방어선도 삼중 요새선 이상으로 건설되어 요새선으로서의 기능도 꽤나 갖추어졌다. 벨기에 입장에서는 좋게 봐야 고기방패, 나쁘게 말하면 토사구팽이나 다름없는 프랑스의 조치에 벨기에가 반발했으나 프랑스의 군사동맹인 지중해 조약기구에는 가입하지 않은 국가였던지라 평시에는 어르고 달래면서 유야무야하며 넘어갔으나 뮌헨 협정이 체결되자 히틀러의 야욕을 직접 본 프랑스 정계에서도 큰 위기감을 느껴 벨기에의 반발도 씹고 벨기에 국경까지 요새화 작업을 속행했다. - 1936년 프랑스 총선거
독소동맹 체결에 기겁한 프랑스 유권자들이 프랑스 공산당에게 줬을 표를 다른 정당들에게 돌렸고, 프랑스 공산당은 좌파 정당들의 연합인 인민전선에서도 쫓겨났고 득표율이 8%밖에 되지 않는 대참패를 당한다. 공산당이 가져갔을 표는 인민전선과 국민연합이 비등하게 표를 나눠 받으며 라발은 한번 더 총리로 선출된다. 인민전선에서 쫓겨나 원내 약소정당으로 전락한 공산당은 '크렘린의 창녀'라는 비아냥을 듣는 신세가 되었고, 대독일 선전포고 때도 의장석 점거를 일으키며 반대했으나 인민전선과 국민연합에게 무시당하고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갔다. - 프랑스 침공
프랑스가 독일에게 선전포고하긴 했지만저주받을 보수파모리스 가믈랭에 의해 마지노선에 병력을 밀어넣는 구시대적인 전술만 고집한다. - 아르덴 돌파
마지노선을 연장하긴 했으나, 아르덴 고원 지역의 방어선이 연약하다는 것이 드러나 독일군에게 아르덴이 돌파당한다. - 2차 솜 전투
- 됭케르크 철수작전
독일군이 오판을 하지 않고 더욱 강경하게 몰아친 탓에 영국 원정군이 5만 명밖에 탈출하지 못했으며, 이마저도 독일 공군과 잠수함들의 습격에 반절 이상을 잃었다. - 드골의 쿠데타
원역사처럼 프랑스 정계에서 항복하려는 모습이 보이자 울화통이 터진 드골이 쿠데타를 터뜨려 라발을 쫓아낸다. 이후 총리 자리는 조르주 클레망소가 이어받는다. - 아미앵 포위전
- 벨기에 전선
- 종전 협정
5.3. 독일
- 화염의 밤
여기서는 무솔리니의 변심을 보고 히틀러가 신중책을 실시하고 이탈리아 마피아들을 끌어들이면서 원 역사보다 더욱 치밀하게 전개된 결과 뮌헨 폭동에 성공해 권력을 잡는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민당과 함께해야만 해 나치당이 원역사에 비해 좌경화되었고, 선거로 차근차근 먹어치우며 성공했을 나치당은 쿠데타로 집권해버린게 되면서 훗날 정통성 문제가 생긴다. - 스페인 내전 참전
콘도르 군단을 원역사에 비해 더욱 증원해서 참전한다. 무려 5개 사단 규모로 파병했고 귄터 폰 클루게, 발터 모델, 에르빈 롬멜이라는 무시무시한 장교진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드리드 공방전에서 전차에서 우위에 있던 이탈리아군과 대등하게 싸우고 마지막에 프랑스군과 공화파가 포위망을 형성해 국민파와 함께 큰 피해를 입고 퇴각했음에도 공화파 주력과 거의 비슷한 피해를 입었을 정도다. 마드리드 전투에서 패전했다는 소리를 들은 히틀러는 콘도르 군단을 철군시켜버리고,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의 정변으로 공화파가 승리를 거둔다. - 라인란트 재무장
이탈리아가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라인란트가 1930년대 초반이라는 시간대로 훨씬 일찍 일어난 탓에 대공황은 해결했지만 장비 개발 문제로 아직 전쟁 준비가 덜 된 이탈리아, 대공황의 피해를 통제하지 못해 긴축정책과 군축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영국, 대공황의 피해를 떼어냈지만 아직 1차 대전의 후유증을 떼어내지 못한 프랑스의 문제가 겹쳐지면서 독일이 라인란트에 진주하는 것을 허용한다. 대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주도로 독일 기업들에 무역제재를 걸었다. - 미국-독일-소련 삼각 무역협정
대공황으로 썩어가는 농산물을 팔아서 경제를 회복해야 하는 미국, 작물은 부족한데 라인란트로 인해 따라붙은 무역제재로 공산품을 팔 곳이 줄어든 독일, 우크라이나 대기근으로 식량이 부족한 소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관세 철폐와 삼각무역관계가 형성되었다. - 뮌헨 협정
원역사처럼 히틀러가 야욕을 드러내며 주데텐 독일인당을 이용해 체코슬로바키아에 혼란을 일으키고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 후 녹색 상황을 선포하고 전시동원령을 내리고 독일군을 집결시키는 등 협정이 파토날 시 체코를 침공 준비를 한다. 이후 독일 대표단은 원 역사처럼 주데텐란트 전역 양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할을 요구하며 협상국 대표단과 평행선을 달리다 본국에서 발터 모델이 직접 히틀러를 찾아와 지금 전쟁은 안 된다며 뜯어말리고 오스터 음모가 발각되면서 급해진 히틀러는 협상국의 제안을 수용한다. - 단검의 밤
오스터 음모가 발각되자 히틀러가 급하게 협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서 검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찾아낸다. 이후 장검의 밤처럼 친위 쿠데타를 터뜨리고 원역사처럼 돌격대 숙청은 이루어졌으나 나머지도 모가지를 날린 원역사와 다르게 융커들은 충성서약서를 작성하고 퇴역시킨 후 가택연금에 처하는 정도로 끝냈고 그레고어 슈트라서 등 자유주의-진보주의 사상가들도 며칠 가뒀다가 석방하고 당내 좌파들도 숙청하지 않는 수준의 가벼운 처벌로 끝냈다. - 독소동맹
협상국과 사이가 나쁜 독일과 소련이 무역협정에서 그치지 않고 군사동맹을 맺는다. 때문에 독일군의 장비+소련군의 물량이라는 미친 콤보가 형성된다. 나치와 소련이 손을 잡았다는 소리에 프랑스 공산당, 영국 공산당 등 각국의 공산당이나 좌파 정당들은 엄청나게 동요했고, 이탈리아 공산당은 소련과 결별하고 대연정과 함께하는 독자노선을 걷는다. - 메멜 요구
소련과 함께 리투아니아를 압박해 메멜을 뜯어와 동프로이센으로 편입한다. 엽합국은 비판 성명을 냈을 뿐 추가적인 제재는 없었다. - 안슐루스
메멜을 뜯어온 후 대독일주의를 이용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려 한다. 우선은 주데텐란트 때처럼 오스트리아 나치당을 이용해 안슐루스 여론을 끌어올리려고 했으나 무솔리니의 조언을 받은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오스트리아 나치당을 해산해버리면서 방해받는다. 이에 돌푸스 암살을 시도했으나 총알이 빗맞아 실패했고, 주변국과 오스트리아인들의 경계만 늘리는 역효과를 내 안슐루스 찬성파가 60% 정도로 떨어진다. 참다 못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 최후통첩을 보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명령했고, 오스트리아는 어쩔 수 없이 수락했으나 오스트리아의 도움 요청을 받은 이탈리아의 제안으로 빈의 오스트리아 중앙방송국 청사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TV 토론회가 열린다. 워낙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윈스턴 처칠, 레옹 블룸 등 굵직한 인물들도 방청객으로 참여한다. 토론이 시작되자 히틀러가 레벤스라움이나 대독일주의로 오스트리아 합병을 외쳤으나 21세기식 토론법선동과 날조으로 무장한 무솔리니가 민족주의에서 민족의 정의를 캐묻고 나치의 약점인 유대인 문제를 꼬집어 물고늘어지면서 히틀러가 토론회에서 밀리고 파시즘의 선구자인 무솔리니가 진정한 파시즘은 철인민주주의라는 주장으로 쐐기를 박으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개표의 날이 밝자 개표 시작부터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박빙의 승부 끝에 찬성 48.2%, 반대 50.3%로 안슐루스가 부결된다. 여담으로 이때 토론회를 라디오로 들은 김구에 의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조선 파시스트당(?!)이 창당된다. - 오스트리아 침공
안슐루스가 부결되자다운폴을 찍으며분노한 히틀러가 부정선거 프레임을 씌워서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평지에서는 오스트리아군이 도주하듯 후퇴해 오스트리아 북부 평지를 손쉽게 차지했으나, 오스트리아군이 알프스산맥에서 전문 훈련을 받은 산악병으로 항전하자 심한 손실을 입으면서 전선을 더 밀어붙이지 못한다. - 폴란드 침공
폴란드군이 소련군을 막느라 정신 팔린 사이 폴란드의 뒤를 친다. 그 결과 일주일만에 바르샤바가 함락되고 폴란드가 무너져 폴란드군은 체코슬로바키아 전선까지 후퇴하고, 독소간 육로가 개방되면서 소련군이 서부전선(프랑스)과 중부전선(오스트리아-체코-헝가리-유고슬라비아)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 프랑스 침공
- 베저위붕 작전과 북유럽 침공
- 북이탈리아 전선
- 스위스 침공
- 반전주의 지하조직 설립
- 총력전 연설과 전파납치
- 반나치 민중봉기
괴링이 없는 독일 공군의 수송력을 짜내서 빌리 브란트를 베를린으로 수송기를 태워 보내서 반나치 민중봉기를 일으키게 하고, 이제 와서 협조적으로 나오면 전범 재판에서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힘러의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인해 SS가 진압에 소극적이면서 시위가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마침내 총통관저까지 몰려든다. 마침 히틀러를 만나러 베를린에 왔다가 시위에 휘말린 국방군 원수 하인츠 구데리안이 기갑부대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막아서면서 일촉즉발까지 몰리지만, 빌리 브란트의 설득 끝에 결국 구데리안은 시민들을 쏠 수 없다며 총구를 총통 관저 측으로 돌린다. 곧이어 총통 관저를 지키는 무장친위대와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으나 압도적인 수적 우위와 전술적 비대칭 전력인 5호 전차 티거의 화력에 힘입어 총통 관저가 시위대의 손에 떨어진다. - 독일의 항복
-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 독일 분할
원역사보다 영토를 덜 뜯어가는 대신, 독일을 서독일, 동독일, 남독일, 동프로이센 4개국으로 분할한다. 폴란드에게 동부 일부 지역을 더 떼어준 것 빼면 영토 손실은 적었다. 융커들의 땅엔 손을 대지 않았기에 융커들도 큰 반발 없이 자신들끼리 정부 꾸리고 자기 땅 경영하며 살게 되었다.
5.4. 체코슬로바키아
- 주데텐란트 위기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주데텐란트 내 독일인들에게 동화정책을 실시하면서 독일인들의 반발이 커지며 30년대 초반부터 반대 시위와 폭동이 일어난다. 체코슬로바키아 의회는 많아도 30~60석 수준밖에 안 되는 수많은 비례정당들이 난립한 상황이라 효과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 주데텐 독일인당이 제1당이 되자 위기감을 느끼긴 했으나 15%의 의석을 차지한 주데텐 독일인당을 배제하고 나머지 정당들이 함께하는 연정을 꾸린 것이 최선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연정에서 배제된 주데텐 독일인당이 직접적으로 사보타주를 지원하자 본격적으로 폭동과 테러를 일으키는 상황으로 준 내전 상태에 이를 정도로 주데텐란트 위기가 파국에 이른 상황이었다. - 뮌헨 협정
주데텐란트 위기가 파국에 이르자 다급해진 체코 정부는 이탈리아를 필두로 하는 로마 조약기구에 손을 내밀고, 무솔리니가 도와주긴 할 것이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만으로 독일을 상대하긴 무리고, 외교적으로도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악재니 독일에게 줄 건 줘야 한다며 서부 주데텐란트의 손실은 각오해야 한다고 했으나 워낙 급한 상황이라 체코도 영토 손실을 각오했다. 그 후 녹색 상황으로 독일이 전시동원령을 선포하고 국경지대에서 독일군의 대규모 훈련이 관측되자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분위기에 체코인들도 영토 손실에 대한 반발이 줄어들고 정부의 선택을 수용했다. 그 결과 영-프-이-독 4개국이 뮌헨에 모여 주데텐란트 위기의 해결을 모색하게 된다. 협상국 측은 처음엔 체코슬로바키아의 땅 한 뼘도 내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방식으로 협상의 고지를 점했다가 조금 나은 해결책으로 서부 주데텐란트의 양도 및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주데텐란트 내 독일인 이주 지원이라는 수정안을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 반면 독일은 원 역사처럼 주데텐란트 전역 양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할을 요구하며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서로 3주간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다가 오스터 음모가 발각되면서 히틀러가 협상국에 꼬리를 내리고 협상국의 수정안을 수용하면서 뮌헨 협정이 체결되었다. 한편 폴란드는 이탈리아의 압박으로 테신 지방의 영유권을 포기하고 협정에서 빠졌다. 헝가리는 로마 조약에 서명할 때 트란실바니아와 바나트를 제외한 모든 영유권을 포기했기에 독일의 접촉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조약 체결 후 체코인들은 뮌헨 늑약이라며 이를 갈았지만 동부, 남부 주데텐란트는 지켜내면서 체코의 국력을 아낄 수 있었기에 반독전선인 로마 조약에 가입하고 다가올 전쟁을 준비한다. - 체코슬로바키아 전선
오스트리아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주데텐란트 전역을 요구하고 체코 대통령이 직접 독일 대사관을 찾아가 요구를 거부하고 선전포고문을 발송한다. 독일과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발발하자 대통령의 주도로 주데텐 독일인당을 강제로 해산하고 주데텐란트에서 지연전을 벌이다 보헤미아-모라바 지역을 중심으로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동맹군인 헝가리 왕국군과 유고슬라비아 왕국군, 오스트리아 연방군과 함께 독소동맹에 대한 최전선으로서 독일군에 맞선다. 폴란드가 독소동맹의 침공에 무너지자 내부 진통 끝에 폴란드 망명군을 받아들여 헝가리 전선으로 보낸다.
5.5. 그리스
- 튀르키예 독립 전쟁
무솔리니의 중재로 1923년 3월 21일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리스는 트라키아 일부분을 더 얻었으며, 양국 간 150만 여 명의 인구 교환이 있었다. 그리스는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킨 국왕을 쫓아내고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었으나, 전쟁의 양상에 비해 불리한 협정을 맺은 오스만 내에서 고토회복론자들이 점점 생겨나며 불안이 퍼지기 시작했다.
5.6.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와 관계 개선
대공황이 불어닥쳐 사민당이 1당이 되었으나 기독사회당-가톨릭 중도우파 및 농민연합과 헤임웨어-극우 민족주의 준군사조직의 연정으로 인해 소외되는 등 정치에서부터 경제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이탈리아와 관계를 개선하면서 무리를 해서라도 쥐트티롤의 영유권을 포기하고 찬밥 신세였던 사민당에게 손을 내미는 등의 극약처방 끝에 지중해 경제협력기구에 가입하고 이탈리아의 도움을 받는다. 지중해 경제협력체 회원국의 도움을 받아 서로 수출입을 주고받고 이탈리아의 원조를 통해 경제를 살리면서 GDP가 20%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대공황의 피해를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이때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 GDP의 10% 정도나 되는 거액의 경제원조를 약속하자 오스트리아의 수상인 오토 엔더는 그야말로 울 뻔 했다. - 엥겔베르트 돌푸스 내각 집권
무솔리니의 조언을 들은 전 수상인 오토 엔더의 추천으로 농림부 장관이었던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오스트리아 수상 자리에 오른다. - 안슐루스
독일이 리투아니아를 협박해 메멜을 뜯어온 후 대독일주의를 이용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려 한다. 처음은 주데텐란트 때처럼 오스트리아 나치당을 이용해 안슐루스 여론을 끌어올리려고 했으나 무솔리니의 조언을 받은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오스트리아 나치당을 해산해버리면서 방해받는다. 이에 돌푸스 암살을 시도했으나 총알이 빗맞아 실패했고, 주변국과 오스트리아인들의 경계만 늘리는 역효과를 내 안슐루스 찬성파가 60% 정도로 떨어진다.
참다 못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 최후통첩을 보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명령했고, 오스트리아는 어쩔 수 없이 수락했으나 오스트리아의 도움 요청을 받은 이탈리아의 제안으로 1936년, 빈의 오스트리아 중앙방송국 청사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TV 토론회가 열린다. 워낙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윈스턴 처칠, 레옹 블룸 등 굵직한 인물들도 방청객으로 참여한다. 토론이 시작되자 히틀러가 레벤스라움이나 대독일주의로 오스트리아 합병을 외쳤으나 21세기식 토론법으로 무장한 무솔리니가 민족주의에서 민족의 정의를 캐묻고 나치의 약점인 유대인 문제를 꼬집어 물고늘어지면서 히틀러가 토론회에서 밀리고 파시즘의 선구자인 무솔리니가 진정한 파시즘은 철인민주주의라는 주장으로 쐐기를 박으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1936년 4월 8일, 개표의 날이 밝자 개표 시작부터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박빙의 승부 끝에 찬성 48.2%, 반대 50.3%로 안슐루스가 부결된다. - 오스트리아 침공
5.7. 미국
- 대공황
원역사에 비해 며칠 이른 1929년 10월 16일, 수요일에 일어난다. 따라서 1929년 월가 대폭락은 검은 수요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 전개는 비슷했다. - 미국-독일-소련 무역협정
지중해 경제협력체의 관세장벽 등으로 인해 썩을 정도로 과잉생산된 농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반민주주의자라는 비난까지 감수해가면서 독일 및 소련과 무역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 덕분에 대공황으로 흔들리던 경제가 조금이나마 안정화되고 후버도 약간은 이미지가 개선되었다. 물론 저질러놓은 짓이 엄청나다 보니 결국 낙선하고 루즈벨트에게 정권을 넘긴다. - 뉴딜 정책
후버의 미독소 무역협정으로 어느 정도 대공황의 불을 끈 상태에서 실행됐다 보니 원역사보다 체감되는 효과가 낮았고, 자본가와 중산층의 빨갱이 프레임에 시달린다. -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루즈벨트에게 악재가 겹치면서 근소하게 공화당의 알프 랜던이 당선된다. - 위대하지 않은 고립
공화당의 알프 랜던은 '위대한 고립'을 명분삼아 취임하자마자 삼국 무역협정과 뉴딜 정책을 파기한다. 그러자 뉴딜과 무역협정으로 살아나던 경제가 다시 주저앉으며 공황이 길어진다. - 진주만 공습
- 치욕의 날 연설 & 랜던 행정부 총사퇴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 전체가 들고 일어나고, 강경 고립주의자인 부통령이 탄핵되자 랜던 대통령이 의회에 출석해 치욕의 날 연설을 하고 동시에 이 사태의 책임으로 랜던 행정부 장관진 전체를 총사퇴하며 거국내각의 재무장관에 민주당인 루스벨트를 임명하자 랜던의 소속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들고일어나지만 랜던이 부통령과 재무장관(거국내각 이전 랜던 행정부의)이 독일과 연결되었다는 증거를 제출해 의회에 고발하면서 의회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후 고립주의를 주장하던 미 공화당 보수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몰락해버린다. - 미드웨이 해전
- 레이테 만 해전과 필리핀 탈환전
- 몰락 작전
5.8. 스페인
- 지중해 동맹 가입
스페인이 지중해 동맹에 일찌감치 가입하고 무솔리니가 민주주의적인 행보를 보이자 원역사에서 1923년 스페인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리모 데 리베라가 쿠데타를 단념한다. - 스페인 내전
히틀러가 화염의 밤으로 집권하자 리베라가 다시 쿠데타 계획을 세우고 국민파를 결집시켜 내전을 준비한다. 이 사실을 마누엘 디아즈가 알았을 땐 이미 군부의 6할 이상이 리베라의 편에 붙은 상황이었던지라 그 후 1년 동안 나머지 4할의 군대를 친정부 파로 만들고, 친정부 민병대를 소집하는 등 내전을 준비했다. 이후 무솔리니를 찾아가 조언을 받고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고, 무솔리니의 조언에 따라 아나키스트와 범좌파, 공산당 등의 다른 정당들에게 손을 내밀어 단결하기로 한다.
디아즈는 돌아가자마자 친정부 군인들을 동원해서 리베라의 은신처를 습격해 리베라를 체포했고, 그 결과 리베라의 편이었던 군인들이 들고일어나면서 1932년 3월 5일, 스페인 내전이 시작된다. 한편 디아즈는 연정을 실시해 다른 당들을 포용하는 동시에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이며 원래라면 떨어져 나갔을 아라곤 지역방위위원회도 공화파와 함께하게 되었고, 공화파가 체포한 국민파 인사들은 내전이 터지자 즉각 처형되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약조한 대로 1개 사단과 1개 기갑여단, 300대의 공군기의 규모와 조반니 메세와 에토레 바스티코를 지휘관으로 파병했고, 소련은 조금 늦게 파병을 한다. 독일은 콘도르 군단을 원역사보다 더 많은 규모인 5개 사단, 1개 기갑여단, 300대의 공군기를 파병했다. 프랑스는 피에르 라발의 주도로 반대파들을 찍어누르고 군사동맹국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2개 사단, 1개 기갑여단, 공군기 100대를 파병했다. 영국은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선언했으나 반공 성향의 민간 의용대가 국민파에 붙었고 포르투갈도 국민파에 1개 사단을 파병한다.
이탈리아 파병군은 독일군에 비해 수적으론 적어도 AK-23 돌격소총, 8.8cm 양용포, 15cm 야전중포, 8.8cm 판터급 성능을 내는 아리에테 중형전차, 호커 허리케인급 전투기인 피아트 5000이라는 상당히 우수한 장비로 무장했기에 1호 전차가 국민파 최고 전력이었던 바스크 전투에서 손쉽게 승리한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군은 실전을 통해 기계화보병 제병협동전술과 급강하 폭격 등 귀중한 전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랑스 의용군과 함께 작전하면서 양측 모두 전력의 1/3을 손실하는 혈투 끝에 국민파와 콘도르 군단을 박살내고 공화파와 함께 마드리드를 사수하는데 성공하고[5], 이 결정적인 승리로 국민파는 분열되고 반대로 공화파는 단결하면서 내전의 승패가 갈린다. 이후 독일 의용군이 철수하고 이탈리아-프랑스 의용군이 북부의 국민파 점령지를 박살내고,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국민파에 정변을 일으켜 고위인물들을 붙잡아 공화파에 넘기면서 내전은 끝을 맺는다. 이례적으로 프랑코는 국민파 장성이었음에도 무죄방면된 후 군대에 계속 발을 디딜 수 있었고, 공화파는 내전 당시 친 국민파적인 성향을 보이던 카를로스파에게도 어느 정도 관용을 베풀어 알폰소 13세를 복위해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는 등 전후 사회 통합을 위해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 히스패니다드 군단 파병
내전을 거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무려 5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유럽 전선에 파병한다. 스페인 내전으로 공화파 징집병이 급하게 늘었는데 내전 종결 후 국토가 쑥대밭이 된 터라 이들이 일하던 일자리가 내전 과정에서 파괴되어서 이들을 그대로 해산하면 실업자가 되어버리는 위험이 커 미루었는데, 그렇다고 유지비만 잡아먹는 군대를 놀릴 수만은 없는지라 실전 경력이 있는 이들을 유럽 전선으로 파병한 것. 장비 생산라인은 어느 정도 갖춰졌지만 인구수가 적어 알보병이라도 필요했던 이탈리아는 이들을 받아들여 보급을 빵빵하게 넣은 뒤 급한 전선으로 배치한다.
5.9. 소련
- 미국-독일-소련 무역협정
우크라이나 대기근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진 상황이라 미국 및 독일과 무역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 이후 미국의 식량을 다수 수입해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보낸다. - 대숙청
이전 독일과의 수교나 무역협정에 반발하던 이들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스탈린이 독일의 단검의 밤을 강화한 버전으로 숙청을 지시하며 시작된다. 니콜라이 부하린, 그레고리 지노비예프, 미하일 투하쳅스키 등 고위 간부나 장성 외에도 민간인들도 NKVD에 끌려갔다. 다만 스탈린이 히틀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강한 숙청에는 유형과 처형이 동반될 것이니 되돌릴 수 없고, 유능한 이들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자신처럼 살려 놓으라는 조언을 받아 중요 인물들의 체포엔 자신에게 보고할 것을 명령하고 뛰어난 군재를 가진 투하쳅스키를 석방한다. 석방된 투하쳅스키는 감방에서 예조프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를 재생하고, 스탈린은 폭주하는 예조프에게 대숙청의 책임을 떠넘겨 숙청할 준비를 한다. - 독소동맹
협상국과 사이가 나쁜 독일과 소련이 무역협정에서 그치지 않고 군사동맹을 맺는다. 이전에 대숙청 때 조언도 받았던 사이기도 하고. 때문에 독일군의 장비+소련군의 물량이라는 미친 콤보가 형성된다. - 폴란드 침공
원역사와는 반대로 소련이 폴란드를 먼저 친다. 북부군은 세묜 부됸니가 이끄는 기병대가, 중부군은 미하일 투하쳅스키가 이끄는 정예군이, 남부군은 그리고리 쿨리크가 이끄는 보병대가 맡아 진격한다. 북부는 폴란드의 기병전력이 최대한 항전하면서 발을 묶었으나 중부는 압도적인 역량에 점차 밀리던 중 남부에서 쿨리크의 뻘짓으로 인해 폴란드가 대승을 거두고 쿨리크가 모스크바로 패주하며 빈니차까지 진격하나, 독일이 뒤통수를 치고 들어온 탓에 동서로 짓이겨지며 바르샤바가 함락되고 남부전선의 폴란드군은 죽기살기로 후퇴해서 간신히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전선에 합류한다. 한편 쿨리크가 대패했다는 소식에 투하쳅스키가 조금 위험한 수준으로 쌍욕을 하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워낙 심각한 대패였던지라 지휘부에 있던 장성들은 물론, 정치장교조차 별 말을 하지 못했다. 이후 패주한 쿨리크는 스탈린의 분노를 사 그대로 숙청당한다. - 겨울전쟁 및 2차 대북방전쟁
- 반스탈린 쿠데타
- 소련의 항복
스탈린이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반스탈린파가 집권한 소련 정부가 연합국이 제시한 종전 협정에 서명하며 소련이 항복한다. 노르드 국가에 콜라반도를 양도하고, 소련 내 인민공화국들의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군축을 실시하는(재무장 가능) 등 상당히 관대한 조건이었다. - 독소전쟁
북유럽 전선이 종전되면서 소련군 중 러시아 출신과 우크라이나 출신 병사들을 뽑아 폴란드-독일 전선에 배치한다. -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나치가 민중봉기로 무너지고 탄생한 신생 임시정부가 항복안을 받아들이며 유럽전선이 정리된 뒤, 남아 있던 극동군을 만주에 투입해 약체가 되어버린 관동군을 갈아버린다. 한반도는 연합국에 가입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내진공작전으로 탈환하기로 했던지라 굳이 연합국을 다시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에 한반도까지의 진격은 포기한다.
5.10. 폴란드
- 뮌헨 협정
원역사처럼 테신 지방에 눈독을 들이다 무솔리니의 경고를 받고 포기한다. - 폴란드 침공
원역사처럼 단치히 회랑 양도를 거부한다. 이후 소련군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북부는 세묜 부됸니가 이끄는 기병대를 막기 위해 기병대를 보내 항전하고, 중부는 미하일 투하쳅스키가 이끄는 정예군을 막기 위해 바르샤바에서 항전했으며, 남부군은 그리고리 쿨리크가 이끄는 보병대를 돌파하기 위해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의 폴란드 정예기동부대가 맞선다. 북부는 폴란드의 기병전력이 최대한 항전하면서 발을 묶었으나 중부는 압도적인 역량에 점차 밀렸다. 한편 남부에서는 쿨리크의 뻘짓으로 인해 폴란드가 대승을 거두고 빈니차까지 진격하나, 독일이 뒤통수를 치고 들어온 탓에 동서로 짓이겨지며 바르샤바가 함락되고 남부전선의 폴란드군은 죽기살기로 후퇴해서 간신히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전선에 합류해야만 했다. 그나마 리츠시미그위를 쫓아낸 모시치츠키 대통령이 사태를 수습해 잔존 정예군을 남부로 후퇴시키는 데 성공해 폴란드 망명군은 원역사의 몇 배나 되는 50만 명으로 크게 불어났다. 이후 이들은 무솔리니의 중재로 헝가리 왕국군과 함께 독소동맹에 맞서 싸운다.
5.11. 북유럽(노르드 3국)
- 겨울전쟁 및 2차 대북방전쟁
핀란드는 원역사처럼 소련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하고 소련과 전쟁에 돌입한다. 폴란드가 무너진 이후 덴마크를 박살낸 독일은 노르웨이에게 협박을 하고, 스웨덴은 소련의 협박을 받는다. 하지만 둘의 요구가 모두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였기에 두 국가도 모두 거부, 전쟁에 돌입하며 노르드 3국이 단결하며 2차 대북방전쟁의 구도가 시작된다. - 북해 해전
북유럽에 상륙하기 위해 독소 연합함대가 북해에서 해전을 벌인다. 제대로 된 전함이 없던 북유럽 국가들은 모니터함과 호위함에 의지하며 항전을 펼쳤으나 점차 밀리던 중 이탈리아의 늑대 떼 함대가 수뢰전을 성공시키며 전황을 뒤집고 독소 연합함대를 박살낸다. - 레닌그라드 함락
북해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해상으로 위협이 낮아진 북유럽 3국은 겨울전쟁 전선으로 군대를 돌려 추위와 비대칭전에 시달리던 소련군을 단숨에 격파하고, 바보같은 지휘로 레닌그라드 앞에서 방어전을 벌인 소련군을 다시 박살내며 레닌그라드에 무혈입성한다. 악명 높다는 소련의 겨울도 북유럽의 혹한에 비하면 따뜻한 편이었던지라 북유럽군은 소련군을 조우할 때마다 박살내면서 모스크바를 향해 전진한다.
5.12. 에티오피아
- 하일레 셀라시에의 즉위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태자 머콘는이 무솔리니의 도움을 받아 원역사보다 8년 빨리 황위에 올랐다. 기존 여황인 저우디투도 왕좌가 짐자리라 쉽게 넘겨줬고 보수파는 이미 셀라시에의 파벌인 개혁파에게 압도당했으며 백성들도 개혁파에 우호적이라 쿠데타는 무혈로 끝났다.
5.13. 일본
6. 기타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패러독스 인터렉티브 사의 게임이 카메오로 언급된다. 구라파 유니버셜리스, 쇠염통 4 등. 이념의 조국 등 깨알같은 국민정신 설명은 덤.한창 헌터물이 유행할 때 나온 작품이라 초반에 상태창 드립이 나온다.
[1] 다른 약소 회원국들은 구식전함 한 척이라도 엄청나게 소중한 함선이었기에 구식전함을 팔아주고 최신형 전함 건조를 도와준다는 이탈리아의 결정에 환호했다.[2]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는 게 거의 재건조 수준이었기에(선수를 확장하고 비행갑판과 측면 아일랜드 설치 등으로 상당히 뜯어고쳐야 했다) 항공모함으로 재건조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듣자 외국 대표단도 수용했다고...[3] 서일본 야구 리그, 일본 자체가 반토막이 났다.[4] 원 역사에서 불명예스럽게 해임된 후 파르티잔에게 붙잡혀 총살당했던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의 무솔리니는 국민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으며 명예롭게 퇴임한 것으로 보인다.[5] 이탈리아군이 화력엔 분명히 상당한 이점이 있었지만 상대가 국방군의 숨은 명장 귄터 폰 클루게, 총통의 소방수 발터 모델,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이었고, 프랑스군과 스페인군도 샤를 드골, 엔리케 리스테르 등 명장이 맞붙었지만 질적으로 독일군에 비해 약체였던지라 프랑스와 공화파가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고기방패가 되어줄 동안 이탈리아는 독일군 주력에 맞서 상당히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