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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신성 로마 제국 구성국들의 군대의 경우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1789년 당시의 세속 선제후국과 그 이상급 국가만 기재. ※ 라인 동맹 및 독일 연방, 북독일 연방 구성국들의 군대의 경우 왕국 이상급 국가만 기재. ※ 독일 제국 구성국들의 군대는 독립적인 전쟁성을 가진 경우만 기재. | }}}}}}}}} |
1. 개요
바이에른 왕국군은 바이에른 왕국의 군대로, 1682년 창설되어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해체되었다.▲군기.
▲1915년,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제16바이에른예비보병연대 장병들. 제일 오른쪽의 병사가 바로 상병 아돌프 히틀러다.
2. 역사
2.1. 1682년 ~ 1790년
30년 전쟁 때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편에서 싸웠다. 그의 지도력으로 바이에른 공국은 영토를 확장했다. 1623년 막시밀리안 1세는 선제후가 되는 특권을 얻었고 바이에른 공국은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되었다.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성립되자, 바이에른 왕국군은 바이에른 선제후국의 군대의 역할을 위해 1682년 성립되었다. 1682년 10월 12일부터, 바이에른 왕국군은 공식적으로 신병들을 뽑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일곱개의 보병 연대, 두개의 용기병 연대, 두개의 기갑부대병 연대, 그리고, 포병 군단 하나가 있었다. 1684년부터, 바이에른 왕국군은 이후에도 사용될 파란색 군복을 채택하였다. 황제가 총사령관이었으며,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은 대 튀르크 전쟁에 참여하였다.당시 채택된 바이에른 왕국군의 군복 |
2.2. 1790년 ~ 1871년
1790년대에는 바이에른 왕국군에 중요한 변화들이 있었다. 바이에른 왕국군은 모두 비슷한 형태의 군복을 입게 되었다.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는 바이에른 왕국군의 훈련상태나 군기가 열악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그동안 실행되었던, 채찍질을 폐지하였다. 1800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이에른은 이전에 바이에른을 정복한 오스트리아를 적으로 만났다. 오스트리아군을 마주치고 처음에는 후퇴하였지만, 바이에른 왕국군이 훨씬 강해졌다는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왕국군도 나폴레옹처럼 추위는 못견뎠는지, 러시아 원정을 떠난 33,000명 중 4,000명만 돌아왔다. 이후에는 바이에른 왕국군은 군비를 계속 삭감해갔으며, 이는 이후 벌어지는 전쟁의 주요 패배 원인이 되었다.바이에른 왕국군은 이후에 벌어지는 보오전쟁에도 참전하였는데, 동원은 이미 너무나도 늦은 6월 22일에야 이루어졌다. 총사령관은 당시 40대였던 카를 테어도어 막시밀리안 아우구스트가 임명되었다. 하노버 왕국이 항복한 뒤에야 군사를 동원하였으나, 프로이센군은 뉘른베르크를 점령하였다. 이는 바이에른 왕국군의 사령관들이 대부분 사단급 부대도 지휘 못한 점이 초래하였다. 결국, 루트비히 2세는 전투로 훈련된 지그문트 폰 프랑크 장군을 전쟁부 장관으로 임명하였고 프랑크는 바이에른 왕국군에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다가 결국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터지자 바이에른 왕국은 오스트리아의 편에 서 두개의 군단으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제3군을 상대로 싸웠다. 바이에른 왕국군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는 프로이센과 같이 싸웠다. 5,000명 이상이 이 전쟁에서 죽었다.
2.3.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군은 독일 제국 성립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왕국의 군대를 육성하고 보유할 수 있도록 하여 평시 정규군으로 바이에른 제1군단~3군단을 보유하고 있었다.[1] 제1차 세계 대전 전까지, 제4군 감찰관이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제6군이 바이에른 왕국군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바이에른 군단과 사단들은 남아있었다. 마지막 사령관은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2]이었고, 참모총장은 콘라트 크라프트 폰 델멘징엔으로 임명되었다. 국경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단일군으로 싸웠으며, 이후에는 다른 구성국들의 군인들과 섞여서 싸웠다. 루프레히트 왕태자가 루프레히트 집단군을 가진 후부터 프로이센의 군인인 루트비히 폰 팔켄하우젠이 6군을 지휘하였다. 패전 이후에는 바이에른 왕국군은 독일 제국군, 프로이센군과 함께 해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2.4. 해체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바이에른 왕국군은 해체됐지만 바이에른 왕국군 출신의 군인들은 훗날 나치 독일의 독일 국방군이나 슈츠슈타펠에서 핵심 간부들이 된다.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3. 군복
3.1. 독일 제국
독일 제국 당시의 바이에른 왕국은 원래 입던 군복을 유지하였다. 다만,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고, 필드 그레이 색상이 독일제국군에 보급되기 시작한 후 사실상 코케이드를 제외하고는 군복은 통일되었다.4. 총사령관
- 제4군 감찰관 시절[3]
이름 |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Leonhard Graf von Blumenthal |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Leopold Maximilian Joseph Maria Arnulf, Prinz von Bayern |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Rupprecht Maria Luitpold Ferdinand |
계급 | 원수 | 원수 | 상급대장 |
임기 | 1888년 ~ 1892년 | 1892년 ~ 1913년 | 1913년 ~ 1913년 8월 |
- 제6군 시절
이름 |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Rupprecht Maria Luitpold Ferdinand | 루트비히 폰 팔켄하우젠 Ludwig von Falkenhausen | 오토 폰 벨로 Otto von Below | 페르디난트 폰 콰스트 Ferdinand von Quast |
계급 | 상급대장 | 상급대장 | 보병대장 | 보병대장 |
임기 | 1914년 8월 3일 - 1916년 8월 28일 | 1916년 8월 28일 - 1917년 4월 23일 | 1917년 4월 23일 - 1917년 9월 9일 | 1917년 9월 9일 - 1919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