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3:59:02

봉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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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e4a71><colcolor=#fff> 대한민국 제49대 대검찰청 차장검사
봉욱
奉旭 | Bong Wook
파일:봉욱차장.jpg
출생 1965년 7월 24일 ([age(1965-07-24)]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학력 여의도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가족 장인 예상해[1]
아내 예주연[2], 슬하 1남 1녀
현직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경력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1부장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법무부 인권국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부 법무실장
사법연수원 운영위원회 위원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종교 천주교
1. 개요2. 생애3. 경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변호사.

2. 생애

1965년, 서울 종로구에서 장기신용은행장을 역임한 아버지 봉종현과 어머니 유가매 사이에 1남 1녀 중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4살 터울의 여동생 봉주희는 현재 미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4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하여 1988년 학사 졸업하였다.[3] 법대 4학년 재학 시절이던 1987년에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9기. 연수원 수료 후 검사 생활을 시작하였다.[4]

법무부 검찰국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원을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첨단범죄수사과장, 대검찰청 기획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1부장,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등 수사·기획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 파견 근무하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 84학번으로서 4학년 때 소년급제하였으며 연수원 19기 내에서도 우수한 성적이었고[5] 검찰에 투신했다는 점에서 우병우와 자주 비교되었다. 실제로 우병우와 라이벌이었는데, 검사 발령 이후 인사 이동때 마다 항상 우병우보다 더 잘 나갔다. 예를 들어 2008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1부장검사였을 때, 우병우는 같은 서울지검의 금융조세조사2부장검사로 언제나 한 끗발씩 낮은 자리에 있었다. 둘 다 능력이 뛰어난 검사로 불렸지만, 봉욱은 온화한 사람, 우병우는 오만한 사람으로 평가 받았다.

2012년 7월에 검사장 승진 1순위인 법무부 인권국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2013년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초임 검사장 중 선두 보직인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되었다. 2차 보직으로 법무부 법무실장이 되어 정책 기획과 법무·검찰 행정 능력도 검증받았다. 그러나 2015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우병우가 검찰을 한손에 장악하면서 3차 보직으로 퇴직 준비하는 검사장이 맡는 한직인 서울동부지검장으로 밀려났다.[6]

그러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5월 21일에 검찰총장 직무대행[7]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임명되었다. 고검장 승진을 못한다는 동부지검장 자리에서 살아남아[8]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화려하게 서초동에 복귀한 것이다. 이후 7월 25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취임할 때까지 검찰총장 직무대행으로서 전국의 검사들을 지휘하였다.

2019년 6월에, 자신보다 아랫 기수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지명되자, 사의를 표명했다. 그의 마지막 자필편지.

2019년 8월, 변호사 개업을 했다.

2021년 5월, 퇴임하는 박상옥 대법관 후임으로 천대엽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함께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렸었다. 최종적으로 천대엽 판사가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2022년 10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

3. 경력

  • 1987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 1990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
  • 1993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2003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 2005 대검찰청 첨단범죄수사과장
  • 2007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
  • 2008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1부장검사
  • 2009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 2010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2012.07 ~ 2013.04 법무부 인권국장
  • 2013.04 ~ 2013.12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 2013.12 ~ 2015.02 제19대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 2015.02 ~ 2015.12 법무부 법무실장
  • 2015.12 ~ 2017.05 제16대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 2017.05 ~ 2019.06 대검찰청 차장검사

4. 여담

  • 국내 검사 최초로 예일 대학교 로스쿨 방문학자로 연수한 경험을 살려 책을 펴냈다.


[1]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와 인천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 봉욱은 셋째사위이다. 또한 처형 예지희도 연수원 22기 출신의 판사이다.[2] 여의도고 동문이다.[3] 여담으로 부친도 서울대학교 출신이다.[4] 검사 임관 당시 수석이었다고한다.[5] 검사 임관 성적이 1등이라고 한다.[6] 일선 지검장이 3차보직이라고 해서 퇴직준비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견해가 있지만 봉욱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3차보직으로 검찰국장, 반부패부장, 중앙지검장 같은 보직을 못 단 것은 사실상 옷 벗을 준비하라는 뜻에 가깝다.[7] 이 시기에는 법무부장관도 없었는데(...) 김현웅 장관은 박근혜 정부와 마찰을 빚고 사직했고 김수남 검찰총장은 5월초에 사직했다. 그래서 김주현 대검찰청 차장검사가(18기)가 검찰총장 대행, 이창재 법무부차관(19기)이 법무부장관 대행을 맡던 상황이었다.[8] 2010년대 들어서 해당 보직은 암울한 보직이었는데 석동현 검사장은 부하 검사가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책임을 지고 사직하였고, 석동현 이후에 취임한 한명관, 황윤성, 송찬엽 검사장은 이 보직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박민표 검사장은 대검 강력부장으로 이동했지만 고검장이 되지는 못했고 봉욱의 뒤를 이어 해당 보직을 맡은 연수원 동기인 조희진 검사장 역시 고검장 승진에 실패하고 용퇴했다. 조희진의 뒤를 이어서 동부지검장이 된 한찬식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하다가 문재인 정부의 눈밖에 나면서 사직했다. 그러나 이후 지검장이 된 조남관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서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지검장이 된 고기영은 임명된지 3개월만에 법무부차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