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0 09:19:56

브라이언 존스

Brian Jones
브라이언 존스
파일:브라이언존스.jpg
본명Lewis Brian Hopkins Jones
(루이스 브라이언 홉킨스 존스)
국적파일:영국 국기.png 영국
출생1942년 2월 28일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첼트넘
사망1969년 7월 3일 † (향년 27세)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 하트필드
신체168cm
직업가수 | 작곡가
소속파일:rollingstones.png 롤링 스톤스 (탈퇴)
악기기타 | 피아노 | 시타르 | 덜시머 | 멜로트론 | 하모니카
장르 | 블루스 | 블루스 록

1. 개요2. 생애3. 음악적 능력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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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his you see, remember me and bear me in your mind Let all the world say what they may speak of me as you find[1]

영국록밴드 롤링 스톤즈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리더였던 인물.

밴드 내에서는 키스 리처즈와 함께 기타 파트를 맡았지만 60년대 중반부터는 기타 하나에 치중하기 보다 다양한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용하고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 특유의 귀족적인 외모와 화려한 패션 스타일로 초기 롤링 스톤즈에서 가장 인기있던 멤버였다

2. 생애

1942년 2월 28일 영국 첼트넘 (Cheltenham)에서 웨일스 혈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여동생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브라이언 존스의 부모님은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그에게 피아노오르간을 비롯해 색소폰, 기타등 다양한 악기를 가르쳤고,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게 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그는 반항적이고 저돌적인 행동을 많이 하기로 악명 높았지만, 타고난 머리가 굉장히 좋았기에[2] 시험에서는 항상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1959년경 브라이언 존스는 학교와 집을 떠나 영국의 북부를 떠돌면서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동시에 블루스에 심취했다. 또한 이 때 롤링 스톤즈의 매니저가 되는 앤드류 루그 올드험 (Andrew Loog Oldham)을 만난다. 이후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브라이언 존스는 여러 뮤지션들과 교류하며[3], 슬라이드 기타 등의 다양한 테크닉을 습득하게 된다.

1962년 브라이언 존스는 '재즈 뉴스 (Jazz News)'지에 밴드원 모집 광고를 하고, 건반 주자인 이언 스튜어트 (Ian Stewart), 드러머 찰리 와츠,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 보컬 믹 재거, 믹 재거가 데려온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 등의 멤버를 받아 같은 해 밴드 롤링 스톤즈를 결성한다. 브라이언은 영국에 전통 블루스 및 R&B를 알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롤링 스톤스를 결성했기 때문에 결성 초기 밴드는 자작곡보다는 블루스 곡들을 커버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활동했다. 당시 브라이언은 밴드의 설립자이자 리더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공연 수익도 다른 멤버들보다 5파운드의 금액을 더 받았다고 한다. 다만 Nanker/Phelge 명의의 인세는 멤버들에게 동등하게 배분했다고.

허나 이후 밴드의 매니저가 된 앤드류 올드험 (Andrew Loog Oldham)은 반항적이고 섹시한 카리스마를 지닌 믹 재거를 앞세워서 '안티 비틀즈'로 롤링 스톤즈를 홍보하기 시작했고 밴드의 음악적인 노선도 블루스 밴드에서 브라이언이 삼류음악으로 경멸했던 로큰롤로 변경했다. 브라이언은 이런 앤드류의 정책에 반가를 들었지만 1965년에 발표한 재거-리처즈의 자작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자 밴드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크게 약해졌다. 이후 브라이언은 신경쇠약으로 인한 약물 복용을 시작하였다. 그는 롤링 스톤즈 멤버들 중 가장 먼저 마약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결국 브라이언 존스는 1966년 즈음에 패션 모델이자 자신의 약혼녀인 아니타 팔렌버그와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여 새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고 멤버들에게 '밴드에서 탈퇴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뛰어난 악기 연주 실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인기 멤버인 브라이언 존스의 탈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 매니저인 앤드류 올드험은 브라이언에게 남아있는 계약기간 동안 밴드 활동을 지속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을 했고 결국 그 요구를 받아들인 브라이언 존스는 밴드에 재가입하기 전에 지친 심신을 치료하고자 모로코에 위치한 요양소에 입원한다.

그러나 1967년이 되어 요양소에서 퇴원하고 아니타와 동거 중인 집에 돌아온 브라이언이 목격한 것은 자신의 침대에서 아니타와 키스가 성관계를 맺는 장면. 이 광경을 본 브라이언은 집기를 부술 정도로 몹시 화를 내었고 직후 아니타는 브라이언이 자신을 폭행했다며 일방적으로 결혼식을 취소한다.[4] [5] 이후 브라이언은 마약을 하면서 1년여를 완전히 폐인으로 보내고 1969년이 되자마자 공식적으로 밴드에서 해고당한다. 밴드에서 해고당한지 1달 뒤 브라이언은 자신의 집[6]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그 때 그의 나이는 겨우 27살에 불과했다. 그리고 롤링 스톤즈에서 존스의 빈자리는 믹 테일러가 대신하게 된다.

그의 장례식은 매스컴으로부터 대서특필되어 진행되었으나, 그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롤링스톤즈 멤버는 찰리 워츠와 빌 와이먼 둘뿐이었다. 나름 창시를 주도한 멤버로선 씁쓸한 최후. 키스 리처드야 틀어질대로 틀어진 사이라 그렇다쳐도 믹 재거는 참석할 용의가 있었음에도 스케줄상의 문제로 불발되었다고 한다.

사후 1972년 Exile on Main St.앨범에 그를 추모하는 곡인 Shine a Light가 실린다.

2005년 Stoned라는 전기 영화가 만들졌으나 악평 속에 반항없이 묻혔다. 무명 시절 벤 위쇼가 키스 리처즈로 출연한다.

3. 음악적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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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르를 연주하는 브라이언 존스

그야말로 천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뮤지션으로, 주 분야였던 기타를 비롯해 시타르, 덜시머, 하모니카, 건반 악기, 마림바 등 무수히 많은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특히 하모니카를 정말 기깔나게 분다. 초반에는 기타와 하모니카를 주로 연주했는데 둘 중 하모니카가 더 좋다고 하였다. 그의 편곡/악기 연주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앨범이 롤링 스톤즈의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원래 다룰 줄 알던 악기도 많았지만 밴드 활동을 하면서 배운 악기도 여럿 있는데,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악기를 배우는 것이 굉장히 빨랐다고 한다. 비틀즈 등 동료 뮤지션들의 음반에도 색소폰, 퍼커션 등 다양한 악기 연주로 참여하였다.

기타에 관한 평을 덧붙이자면 브라이언 존스는 그 지미 헨드릭스가 천재라고 공공연히 언급했던 인물이다. 더불어 슬라이드 기타 주법을 대중음악계에 처음으로 도입한 뮤지션 중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송라이터로서는 활동/재능이 없었다고들 흔히 이야기하는데, 이에 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롤링 스톤즈의 모든 자작곡들은 모두 재거/리처즈의 명의로 앨범에 수록되었고 매니저 앤드류 올드험 또한 "본래 브라이언 존스는 작곡에 흥미가 없어서 작곡을 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해서 말해왔기 때문에 브라이언 존스가 롤링 스톤즈에서 작곡한 곡들마저 모두 재거/리처즈의 곡으로 알려지기까지 했다. 1965년 잡지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존스에게 "당신은 작곡을 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브라이언 존스는 "언제나 작곡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수의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대부분 블루스 스타일이다."라고 말하며 앤드류 올드험의 발표를 반박하기도 했다.

롤링 스톤즈가 60년대 발표한 곡들 중에서 재거/리처즈의 이름으로 발표된 브라이언 존스의 곡들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확인은 불가능하나 마리안느 페이스폴과 빌 와이먼의 증언에 의하면 브라이언 존스가 작곡한 곡은 주로 Nanker/Phelge(낸커/펠지)로 발표되었으며[7] <Under My Thumb>, <Paint It Black>, <Ruby Tuesday>, <She's A Rainbow> 등의 히트곡들 작곡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Ruby Tuesday의 메인 멜로디도 브라이언이 작곡했다고. 더불어 빌 와이먼은 '낸커/펠지'로 발표되어야 했을 곡 (즉 밴드 공동으로 작곡한 곡) 중에서도 '재거/리처즈'로 크레딧에 오른 곡이 여럿 있다' 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관계 없이 믹 재거는 여전히 브라이언 존스의 작곡을 부정하며 '내가 본 사람 중 최악의 작곡 실력을 갖고 있었다' 고 평했고 키스 리처즈도 "브라이언 존스는 단 한번도 밴드 멤버에게 온전한 형태의 자작곡을 들려준 적이 없었다."며 그의 작곡에 대한 기여를 부정했다.


[1] Through the Past, Darkly (Big Hits Vol. 2) 앨범 커버 내용. 익명의 시이다.[2] 기록에 의하면 IQ가 135였다고 한다.[3] 대표적으로 크림베이시스트인 잭 브루스 (Jack Bruce)등이 있다. 브라이언은 잭과 함께 밴드를 하다가 롤링 스톤즈를 결성하였고 밴드에는 브라이언의 후임으로 당시 신인이었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가입한다.[4] 브라이언이 사망하자마자 키스 리처즈와 아니타 팔렌버그는 공식적으로 동거를 시작해서 1980년에 키스 리처즈에게 파혼당할 때 까지 사실혼 관계를 맺었다. 키스 리처즈는 자서전 Life에서 밝히기를 원래 자신의 애인은 모델인 린다 키스(Linda Keith) 였는데 린다가 미국에서 지미 헨드릭스를 보고 반해서 키스를 차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린다에게 차인 후 마음고생을 하고있던 중 브라이언이 모로코의 요양소에서 아니타에게 폭행을 가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런 그녀를 도와주려다 서로 눈이 맞아서 영국으로 같이 돌아온 것이 관계의 시작이였다고 한다.[5] 키스 리처즈는 자서전 Life에서 1968년 영화 Performance 촬영시에 아니타 팔렌버그와 믹 재거가 밀회를 즐겼다는 루머가 진실이었음을 쿨하게 인정하면서 아니타와 자신의 첫째 아들도 이 영화를 찍을때 생겼다고 밝혔다.[6] 이 집은 곰돌이 푸의 원작자 A. A. 밀른이 살았던 집인데, 브라이언이 구매했다[7] 믹 재거에 의하면 브라이언 존스는 평소 레논/매카트니, 재거/리차즈 같은 작곡 콤비 스타일을 부러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