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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디아스 Víctor Díaz | |
본명 | 빅토르 이스라엘 디아스 Víctor Israel Díaz |
출생 | 1981년 12월 10일 ([age(1981-12-10)]세) |
산토도밍고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로베르토 클레멘트 커뮤니티 아카데미 |
신체 | 189cm, 95kg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외야수, 1루수 |
프로 입단 | 2000년 드래프트 37라운드 (전체 1107번, LAD) |
소속팀 | 뉴욕 메츠 (2004~2006) 텍사스 레인저스 (2007) 한화 이글스 (2009) 주니치 드래곤즈 (2012~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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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의 前 야구선수. 현역시절 포지션은 외야수였다.2. 선수 경력
2.1. 미국 시절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지명을 받았다. 지명 당시에는 내야수로 지명되었고, 초반에는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2003년 제로미 버니츠를 상대로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다.메츠로 트레이드된 뒤 외야수로 전향했고, 트레이드 첫 해인 2004년 9월,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는 데 성공, 15경기를 소화했다. 2005년에는 준주전으로 89경기에 출장해 타율 0.257에 12홈런을 기록, 장타력을 뽐내면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배드볼 히터 기질이 너무 강한데다 수비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보니 주전급으로 자리잡지 못하다가 2006년 시즌 후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07년 전반기 동안 37경기 9홈런으로 파워 포텐셜은 보여줬지만 1볼넷 33삼진(...)이라는 극악의 볼삼비를 보여줬다. 결국 시즌 중 지명할당되어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뒤 2007 시즌 종료 후 텍사스에서 완전 방출, 그 뒤로는 메이저에 콜업되지 못하며 그걸로 빅리그 경력은 끝났다.
2008년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트리플A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빅리그 통산 성적은 4년간 147경기 타율 0.256 24홈런 73타점.
2.2. 한화 이글스
2008년 12월, 총액 30만 달러에 한화 이글스와 계약하며 한국 무대에 발을 들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 선수의 이름을 적당히 영어식으로 '빅터 디아즈'라고 읽었기 때문에, 등록명도 이에 맞춰 디아즈로 결정되었다.한국에 오기 전 빅리그에서 비록 백업이었지만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쳐봤을 정도로 장거리형 타자로써 어느 정도 인정받은 상태였다. 실제로 시즌 초반에는 불방망이를 휘둘렀으나 문제는 그놈의 수비. 당초 한화는 디아스를 우익수로 쓰기 위해 영입했으나 시즌이 시작되고 보니 기본적인 뜬공조차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외야 수비는 거의 낙제점에 가까웠던 탓에 좌익수나 지명타자로 출장하는 일이 잦았다. 오죽했으면 김인식 한화 감독 역시 디아스의 수비를 보고 "어떻게 메이저리그에서 외야수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며 디스했을 정도.[1] 게다가 시즌 초에 비해 타격감이 떨어진 데다 훈련 중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코칭스태프한테도 찍혔고, 구단 입장에서도 계륵이었던 데다 투수진 보강을 이유로 7월 8일 웨이버 공시되면서 한국을 떠났다. 대체 선수로는 우완투수 에릭 연지가 영입되었다.
실제로 퇴출당하기 전 성적을 보면 전반기에만 62경기를 뛰며 15홈런을 쳤고, 풀타임을 뛰었다면 30홈런 이상을 기록했을 페이스로 장타력 하나는 좋았다. 하지만 0.266의 타율을 기록하는 동안 출루율은 겨우 0.323이었고, 76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볼넷은 겨우 17개에 그쳤을 정도로 선구안이 좋지 못했다. 여기에 외야 수비마서도 타구 판단능력이나 송구 능력 모두 낙제에 가까웠을 정도로 좋지 못했고, 불성실한 태도까지 겹치면서 한화의 용병 흑역사 중 하나로 남고 말았다.
3. 방출 이후
한국을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볼티모어 오리올스과 마이너 계약을 하였다. 그 후 2012년에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지만 1군에서는 4안타 .174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찍고 방출되었다.[2] 이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뛰었으나 2015년도에 은퇴하였다.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3]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2009 | 한화 | 62 | 207 | .266 | 55 | 14 | 0 | 15 | 39 | 37 | 2 | 19 | .323 | .551 |
KBO 통산 (1시즌) | 62 | 207 | .266 | 55 | 14 | 0 | 15 | 39 | 37 | 2 | 19 | .323 | .551 |
5. 관련 문서
[1] 사실 마이너리그 유망주 시절에도 장타 포텐에 비해 수비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3년 발행된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그라운드에서 열의가 없고, 집중력이 매우 떨어지는 선수' 라고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2] 사실 2012년 용병 선수가 죄다 망해서 2013년에도 잔류했으나, 시범경기에서 부진하면서 개막전 로스터에 들지 못했고, 3월 30일이라는 이례적으로 빠른 시기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일본프로야구는 용병이 무제한이라 어지간하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 2군 뎁스용으로 채워두다가 시즌이 다 끝나서야 용병을 방출한다.)[3]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