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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파라 José Parra | |
본명 | 호세 미겔 파라 José Miguel Parra |
출생 | 1972년 11월 18일 ([age(1972-11-18)]세) |
도미니카 공화국 하카과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Jacagua |
신체 | 180cm, 72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9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LAD) |
소속팀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5) 미네소타 트윈스 (1995~1996) 삼성 라이온즈 (1998)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 피츠버그 파이리츠 (2000) 퉁이 라이온스 (200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2) 한화 이글스 (2002) 퉁이 라이온스 (2003) 뉴욕 메츠 (2004) 오릭스 버팔로즈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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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스캇 베이커와 더불어 삼성 라이온즈의 첫 외국인 선수였다.2. 선수 경력
2.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
1995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데뷔했다. 이후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해 1996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2년간 메이저리그에서 47경기에 등판해 6승 10패 5.5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평범한 선수였다.2.2. 삼성 라이온즈
2.2.1. 1998 시즌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ERA- | WAR |
60 | 95.2 | 7 | 8 | 0.467 | 3.67 | 79 | 7 | 46 | 55 | 42 | 39 | 1.24 | 87.27 | 2.05 |
1998년 한국프로야구가 외국인 선수 제도를 시행함과 동시에 열린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1라운드 전체 5번으로 지명하면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외국인 선수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한국의 경우 마이너리그 죽돌이들이나 오는 것이었고, 메이저리그 경력이 한번도 없는 선수도 흔해서 메이저 콜업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기 전까지 무려 2시즌 동안 47경기나 등판한 경력이 있던 파라는 매우 우수한 경력을 지닌 선수로 평가받았고, 150km/h대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데다 나이도 26세로 젊은 편이라 그만큼 기대치도 컸다.
삼성은 파라를 당초 선발 투수로 기용하려 했지만 마무리 김태한이 1998년 시즌을 앞두고 입대하면서 공백이 생김에 따라 삼성은 호세 파라에게 마무리 투수를 맡겼다. 150km/h대의 빠른 공을 던졌지만 빠른 구속과는 다르게 구위가 묵직하지 못했고, 변화구 역시 구사할 수 있는 종류가 거의 없었던데다 그나마 던질 줄 알았던 슬라이더마저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았다.[2] 그리고 당시 삼성 불펜이 허약한 편이라 8회부터 파라가 투입되는 일이 많았는데, 한번 등판할 때마다 거의 2이닝 이상을 소화하다 보니[3] 체력적인 문제로 9회가 되면 난타를 당하곤 했다. 파라의 강속구를 살려보고자 삼성이 시즌 후반에는 선발로 급 전향시켜 기용하기도 했으나 결국 파라는 마무리로 시즌을 마쳤다.[4]
1998년 파라의 정규시즌 성적은 7승 8패 19세이브 ERA 3.67로 세이브 6위에 올랐다. 이에 삼성은 시즌 종료 후 파라와 재계약을 시도했지만, 갑자기 태도를 바꿔 뜬금없이 이적료 8만 5000달러를 받고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파라를 이적시켰다.[5] 이는 삼성이 파라의 애매한 성적으로 인해 재계약을 하기는 싫었으나 그렇다고 재계약하지 않고 자유계약으로 풀 경우 다른 팀에 가서 비수로 돌아오는 걸 막기 위해[6] 이적료를 받고 일본 구단으로 이적시킨 걸로 보인다. 마침 비슷한 시기 트레이드를 통해 임창용을 영입하는 데 성공하며 마무리 보강에 성공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파라를 쓸 이유가 없어지기도 했다.
한편 8월 8일 대구 해태전에서는 삼성 포수의 흑역사인 그 분의 대타로 나왔던 이순철과 배터리를 이뤄 2이닝 무실점 투구를 하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웠다. 당시 포수 미트를 끼고 파라의 공을 받아봤던 이순철에 의하면 공이 매우 빠른 편이었다고 평가했다.
2.3. 이후
한화 이글스 시절 |
1999년 삼성을 떠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으나 2승 3패 6.32의 평균자책점으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1년만에 방출되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뒤 2000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해 잠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고, 대만 퉁이 라이온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뛰었다.
2002년 6월 한화 이글스가 댄 세라피니의 대체선수로 파라를 영입하며 3년 반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화 시절에는 선발 등판 없이 불펜으로만 나오면서 31경기에서 3승 1패 4세이브를 거두었다. 하지만 6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04년에는 뉴욕 메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어 13경기에 등판했다.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오릭스 버팔로즈에 입단하며 6년만에 일본프로야구로 돌아왔다. 개막 이후 첫 승리를 거두는 등 초반에는 순항했으나 6월 교류전 때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결국 이탈 후로 1군에 돌아오지 못하고 8경기(7선발) 33이닝 4승 2패 ERA 4.09라는 기록을 남긴 후 8월 말 방출, 이후 은퇴했다.
3. 여담
운전을 맨발로 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995 | LAD | 8 | 10⅓ | 0 | 0 | 0 | - | 4.35 | 10 | 7 | 7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995 | MIN | 12 | 61⅔ | 1 | 5 | 0 | - | 7.59 | 83 | 24 | 29 |
1996 | 27 | 70 | 5 | 5 | 0 | - | 6.04 | 88 | 30 | 5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998 | 삼성 | 60 | 95⅔ | 7 | 8 | 19 (5위) | - | 3.67 | 79 | 46 | 55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999 | 요미우리 | 12 | 47⅓ | 2 | 3 | 0 | - | 5.32 | 43 | 26 | 25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0 | PIT | 6 | 11⅔ | 0 | 1 | 0 | - | 6.94 | 17 | 8 | 9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2 | ARI | 16 | 14 | 0 | 1 | 0 | 4 | 3.21 | 13 | 12 | 8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2 | 한화 | 31 | 39 | 3 | 1 | 4 | 0 | 6.00 | 48 | 21 | 32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4 | NYM | 13 | 14 | 1 | 0 | 0 | 1 | 3.21 | 14 | 6 | 34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5 | 오릭스 | 8 | 33 | 4 | 2 | 0 | 0 | 4.09 | 38 | 10 | 20 |
<colbgcolor=#ffff88> MLB 통산 (5시즌) | 82 | 181⅔ | 7 | 12 | 0 | 5 | 6.09 | 225 | 87 | 117 | |
NPB 통산 (2시즌) | 20 | 80⅓ | 6 | 5 | 0 | 0 | 4.82 | 41 | 36 | 45 | |
KBO 통산 (2시즌) | 91 | 134⅔ | 10 | 9 | 23 | 0 | 4.34 | 127 | 67 | 87 |
5. 관련 문서
[1] 쉽게 말하자면 ERA-는 낮을수록 좋고, 100이 투고성향 제외 시 ERA 4점 정도로 평가되니 투고성향을 제외 시 ERA 3.49 수준의 활약을 했다고 보면 편하다.[2] 이마저도 한국에 와서 커브볼을 추가로 배웠다는 얘기가 있었다.[3] 이 게시물에 의하면 7월 12일 대구 OB전과 8월 24일 잠실 LG전에서는 구원투수로 등판해 4이닝 이상을 던졌고 그 외 2이닝 이상 소화한 경기도 꽤나 많았다. 사실상 중무리 투수로 굴려진 셈.[4] 결국 삼성은 마무리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이듬해 팀의 프랜차이즈 양준혁을 해태 타이거즈의 임창용과 트레이드한다. 그리고 서정환 감독은 트레이드로 온 임창용을 중무리 투수로 철저하게 혹사시켰다.[5] 삼성과 요미우리는 자매구단 관계이고 당시 이건희 구단주와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감독의 친분은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유명하다.[6] 실제로 이 당시 삼성이 파라와 재계약하지 않을 경우 두산 베어스가 새로운 외국인 투수로 파라를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유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