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23:19:24

사이버 투수

1. 개요2. 목록
2.1. KBO 리그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2.3. 일본프로야구
3. 기타

1. 개요

어원은 사이버 가수 아담으로 추정. 거액의 계약금이나 연봉을 받거나 트레이드를 통해 온 투수, 혹은 나름대로 기대를 받은 투수 중 부상이나 부진 등의 이유로 1군에 등판하기는 커녕 2군, 재활조조차 나오지 못하는 투수를 프로야구 게임의 로스터 파일 등 가상에서만 존재한다는 의미로 조롱하는 용어. 보통은 부상이 주 원인이 되기 때문에 유리몸하고도 겹친다.

이 표현은 KIA 타이거즈 - LG 트윈스 -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한 강철민에서 유래했는데, 1998년 고졸 연고우선지명을 받은 강철민은 2002년에 KIA에 입단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서 2006년 이후 1군 기록이 전무했으며, 당시만 해도 2군 기록이 미흡했던 데다가, 2군 등판 횟수도 적다보니 여러모로 까였다.

2009년 시즌 초 LG의 김상현+박기남 ↔ KIA의 강철민 트레이드 이후 2009년에 김상현이 타격 3관왕&MVP를 달성하고 팀 우승에 크게 기여하고, 박기남 역시 2009년 이후로 몇 년 동안 밥값을 한데 비해 강철민은 여전히 재활만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버 투수라 불리면서 되려 예전보다 유명해졌다.

강철민은 2006년 6월 7일 KIA에서 등판한 후 2010년 7월 18일에 드디어 1군 경기를 치렀는데, 무려 4년만의 등판이었다. 하지만 결국 2011년 5월에 일찌감치 방출되어버렸고, 2013년 한화에 입단해 재기를 노렸지만 1군 엔트리는 커녕 재활군에만 머물다 그해 6월 방출됐다.

그 뒤로 강철민 같이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지만 2군에서 길고 긴 재활만을 하거나, 혹은 아예 1군에 못 올라오는 경우에 사이버 투수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2. 목록

2.1. KBO 리그

  • 강철민: 말이 필요 없는 사이버 투수의 원조. 항목 참조. 더군다나 바꿔온 선수 둘의 활약 때문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 구본범: 2009년 한화 이글스에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며, 1억 2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그러나, 이 투수는 대학 리그 시절의 혹사로 인해 제대로 구실을 한 적이 없다. 8년 동안 1군에서 6경기에 등판했는데, 그 마저 6년간 1군에 못 올라오고 2년간 3경기씩 나누어 뛴 것. 2017년 스프링캠프 명단에 드는 등 여전히 구단에서는 희망을 갖고 있는 듯했으나, 2017년 6월 육성 말소되며 조인성, 이종환 등과 함께 방출되었다.
  • 구창모: 현재 리그를 대표하는 최악의 현역 사이버 투수. 다만, 그의 순수 기량과는 관계없는 고질적인 잦은 부상이 원인이다. 2020시즌 전반기에 리그를 맹폭하였으나 8월 6일부터 왼팔 전완부 미세 염증 때문에 올라오지 못했다. 10월 24일 오랜만에 등판해 홀드를 챙겼고,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환상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NC의 첫 통합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021시즌 개막 전 스프링캠프에서도 빠지더니, 아무런 경과가 없었다가 결국 7월 24일 왼쪽 척골 피로골절 판고정수술을 받아서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나오면 잘 던지나 나오질 않으므로 NC 팬들은 속이 타들어가는 지경을 넘어 아예 포기한 수준. 다행히 2022년 중반에 복귀에 성공했나 싶었는데 2023년 다시 두 번이나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팬들은 골밀도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중이라고.
  • 김명성 : 대학 재학 시절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3승, 평균자책점 1.20으로 활약하면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에도 승선해 병역 특례까지 받았다. 활약에 힘입어 2011년 롯데 자이언츠에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며, 1억 6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하지만 손이 무뎌지는 증상으로 인해 롯데에서 두산으로 1년 만에 팔려갔고, 이적한 후로도 별다른 활약 없이 은퇴했다.
  • 김성계: 2004년 KIA 타이거즈에 2차 5라운드에 지명되었다. 선수 생활을 통산 12년을 했는데, 1군 경기는 단 1경기 1이닝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성적도 2012시즌 최종전에 등판해서 올린 성적. 그러니까 2군에서만 9년을 보내다가 1군에 첫 등판을 했다는 소리. 이후 다시 2군에서만 던지다가 2014년에 NC로 이적했고, 거기서도 별다른 활약 없이 그대로 은퇴했다.
  • 김세현: 사이버 투수의 아이콘으로, 사실 이 문서는 김세현을 위한 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세현이 김영민이었던 시절인 2009년에 선발로 나오면 망했지만 롱 릴리프로 나올 때는 패동열급의 피칭을 선보여서 히어로즈 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2010년 1월에 어이없는 부상[1]을 당하여 2010 시즌을 통째로 날려먹은 바람에 이버 투수로 불렸다. 이 때문에 싸융짱문오에서도 싸로 구분된다.
  • 김유선: 2007년 LG 트윈스의 1차지명을 받고 무려 3억 5천만원이라는 계약금과 함께 입단했으나 고교 시절부터 부상이 있었던지라[2] 1군은커녕 2군에서도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6년을 부상과 그에 따른 재활 등으로 인해 허송세월로 날리다가 2012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강철민과 더불어 LG의 사이버 투수 원투펀치.
  • 김진웅: 한 때 삼성의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로 인해 급격히 몰락해버렸고, 팔꿈치 수술 후 군복무를 위해 구단에서 상무 입대를 제안했지만[3] 이를 무시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결국은 공익으로 복무하는 동안 살이 급격히 찌며 체중이 무려 120kg대로 불어났으며, 살이 잔뜩 찐 상태로 제대한 뒤에는 무릎 부상까지 찾아오며 살을 뺄 수도 없는 사정에 이르는 등 자기 관리에 완벽히 실패하며 사이버 투수로 전락,[4] 제대 후 1군에 한 번도 올라오지 못한 채 2010시즌 종료 후 방출되어 비교적 이른 나이인 30세에 은퇴했다.
  • 박명환: 두산 시절만 해도 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선발이었으나 이 때부터 유리몸 기질이 있었고, LG 이적 후에는 이것이 제대로 터지며 계약 첫 시즌인 2007년을 제외하면 매년 부상으로 드러누우며 사이버 투수로 전락했다. 특히 2011~2012시즌은 아예 1군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2군에서도 탈탈 털렸다. NC로 와서도 재기하는 모습을 잠깐 보이나 싶었지만 잠시 뿐이었고 2군에서 탈탈 털리다가 은퇴했다.
  • 변강득: 프로생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1군 경기를 뛰어보지 못하고 은퇴했다.
  • 서동환: 5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할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고교 시절부터 혹사를 당한 탓인지 프로 입단 후에는 어깨, 팔꿈치, 허리 등의 부상으로 인해서 수술만 몇 차례나 받았고 사이버 투수화되었다. 이후 삼성으로 이적했지만 결국 조기에 은퇴했다.
  • 석지형: 김해님의 롯데 스카우터 시절 최악의 뻘픽. 일본 사회인 야구에서 뛰던 30살 선수를 하드웨어만 보고 덜컥 4라운드에 지명해버렸다. 이 당시 드래프트 현장이 크게 술렁거렸다고 한다. 물론 실력은 처참해서 2군에서도 2년 동안 단 한 경기 등판에 그친 채 방출되었다. 현재는 이우민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투수코치로 활동하며, 이대호의 유튜브에도 통역으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성영훈: 이른바 두산 팬들의 민간신앙.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이후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마치고 나서도 기약 없는 재활에만 매진했다. 1차지명이었고 기대치도 굉장히 컸기 때문에 두산 팬들에게는 더더욱 아픈 손가락이었던 선수. 한동안 재활을 거쳐 2017년 드디어 다시 마운드에 섰고 1군 무대도 오랜만에 밟았으나, 또 다시 부상으로 이탈하며 결국 2018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 안태경: 전형적인 하드웨어만 보고 뽑은 투수. 김해님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평가되며 사이버화된 뒤 결국 방출당했다.
  • 우병걸: 고교와 대학 시절 등판 경력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KIA에 지명되면서 '사이버 투수' 별명을 얻었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으나 여기서도 별다른 활약 없이 방출되었다.
  • 윤석민: 고속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2013년까지는 류현진, 김광현과 함께 괴물투수 3인방이었으나, 메이저리그 도전 후 트리플 A 노포크를 전전하다 국내로 유턴했다. 유턴하자마자 90억 원의 FA 계약으로 대박을 터뜨렸으나 한 시즌 반 정도만 마무리로 뛰고 이후 그대로 드러누우면서 사이버 투수에 등극했다. 4년 후 연봉을 10억 5천만원이나 삭감된 2억 원에 계약했으나 그 연봉마저도 먹튀가 되었고, 결국에는 은퇴를 선언하며 KBO 역사에 남을 먹튀가 되었다.
  • 윤호솔: NC 다이노스에 6억 원을 받고 입단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나마 재능이 뒤 늦게 만개해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고, 2021년부터는 불펜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바로 부진했고, 2023년 채은성의 보상선수로 LG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적 후에도 자기관리가 안 되는 모습이 보이면서 후반기가 돼서야 1군에 모습을 비췄다.
  • 이건욱: 2014년 SK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했으나 곧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했고, 얼마 안 가 교육리그에서 발가락 골절상을 당하며 1군 데뷔가 늦어지며 사이버화가 되는 듯 싶었으나, 2016년 9월, 마침내 1군에 등록되었다. 그리고 2020년 시즌 드디어 포텐이 터지며 문승원과 함께 SK의 토종 선발투수 원투펀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1년 선발로 몇 경기 나왔다가 다른 선수들에게 크게 밀렸고, 어깨 염증으로 1군에서 말소된 뒤 다시 사이버 투수로 전향했다.
  • 이대진: 해태 타이거즈 시절 차기 에이스로 유명한 선수였고, 1993년부터 2000년까지 8년간 84승을 올렸다. 그러나 2000년에 무리한 기용으로 인해 다시 부상에 빠지며,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길고 긴 재활의 길을 걸어야 했다. 2002년에 잠시 타자로 전향했지만, 워낙 투수로 오래 활동한 탓에 타자로서의 재능은 잊혀진 상태였고, 2003~2004년에 잠시 1군에 올라왔지만, 성적은... 다행히 구단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이대진을 기다려주었고, 선수 본인 역시 이에 부응하여 성실히 재활에 임했기 때문에 2007년부터 5선발로 복귀해서 2012년까지 현역으로 뛰고 LG에서 은퇴했다.
  • 이범석: 2005년 KIA 타이거즈에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계약금 1억원과 함께 입단했다. 2007~2008년에 반짝 활약을 펼치면서 1군 레귤러가 되나 싶었지만, 상습적으로 어깨가 빠졌던데다가 2009년 이후로 부상 때문에 7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못 했다. 이대진의 선례를 본 구단에서 오래 기다려 주었지만, 끝내 부활하지 못 하고 2016년을 끝으로 방출되어 은퇴했다.
  • 이범준: 전형적인 LG 암흑기의 유망주. 2008년 LG 트윈스에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계약금 1억 3천만원과 함께 입단했고, 초반 4년에는 1군에서 적당히 등판했다. 그러나 2012년 상무 입단 이후로 존재가 실종. 결국 아예 잊혀져 버리고 말았다. 결국 2017시즌 후 방출되어 NC에 입단했으나 여기서도 별다른 활약 없이 1년 만에 방출되었다.
  • 이승호: SK의 유일무이 신인왕까지 거머쥔 SK의 에이스였으나 팀 창단 초기부터 전천후로 혹사당하다가 어깨 부상으로 3년간 재활하였고,[5] 부상 복귀 후에는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지며 불펜으로만 뛰다가 롯데로 이적했다. 이적한 뒤에는 하향세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롯데에서 NC로 이적한 이후 2군에서도 탈탈 털리며 사이버투수 + FA먹튀로 전락했다. 결국 돌고 돌아 친정 SK로 복귀한 뒤 활약 없이 은퇴했다.
  • 이정길: 먹튀라는 용어를 상용화시킨, 사이버 투수의 원조격이다.
  • 이정호: 2001년 무려 5억 3,000만 원이라는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난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으나 고교 때부터 당한 혹사로 인해 프로 입단 후에는 어깨, 팔꿈치 부상과 재활 실패로 인해 1군에서 몇 경기 뛰지도 못하고 201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1승[6] 그쳤다.
  • 이케빈: 즉시전력감이라며 큰 기대를 받고 삼성에 입단했으나 정작 2군에서도 탈탈 털렸고 이후 부상까지 당했다. 2018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되고 2019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선발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보였으나 왼쪽 눈의 시력 약화로 그 해 은퇴했다.
  • 이호중: 대학야구 최고 투수로 평가받으며 2015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에서 NC의 지명을 받고 계약금 2억원에 입단했으나 이후 1군은커녕 2군 기록조차 없었다. 입단 시즌에는 스프링캠프 출국 이틀을 앞두고 스쿼트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고, 전역 이후에는 팔꿈치 수술이 예정되면서 2018 시즌을 앞두고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그러다가 긴 재활 끝에 2020년 드디어 1군 무대를 밟으면서 사이버 투수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지만 2021시즌 도중 방출되었다.
  • 임경완: 한화 시절, 2군에서 1경기 올라온 이후로 존재가 공기화되었다. 결국 방출되어 시드니 블루삭스에 입단했다.
  • 임정우: 2018년 2경기 등판 이후 아예 소식이 끊겼다. 군복무 이후에는 2군 등판조차 없을 정도로 완전히 공기화되었고 2023시즌 종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 장진용: 2군에서는 사실 에이스지만 1군에서는 1년 평균 4경기도 못 출전하는 2군 페드로. 1차 지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후 6년 만에 1군에 출전할 정도로 사이버 선수였다. 2014년부터 2군에서의 대활약 덕분에 1군에 다시 올라왔고, 2015년에는 땜빵 5선발 구실을 하면서 11경기에 출전하여 선발승까지 거두었으나, 2016년에 땜빵 선발로 두 경기 뛴 것을 모두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두 경기만 뛰고 2군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2017 시즌 후 방출.
  • 전병두: 2012년부터 기약없는 재활에 들어갔다가 결국 2016년 은퇴했다. 다만 이는 김성근식 투수 혹사의 최대 피해자로 사이버 투수가 된 안타까운 케이스다.
  • 추승민: 2007년 삼성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2010년까지 1, 2군 통틀어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2011년 5월 28일 입단 4년만에 처음으로 2군 경기에 등판했으나, 6월 12일 경기에서 또다시 어깨 근육 파열 부상을 입었고, 결국 시즌 후 방출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한기주: 2010년 초 팔꿈치 수술을 받고 2011년 7월 복귀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부상으로 아웃, 2013~2014년에 재활하느라 등판 기록이 없다. 결국 2015년에 복귀는 했으나 2016년 선발 최다 자책점[7]을 기록하는 등 불운에 시달렸고 2017년엔 아예 1군에도 오르지 못하다가 이영욱과 트레이드되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이후 2년 더 뛰고 은퇴. 그래도 트레이드 상대였던 이영욱보다는 1년 더 뛰었다.
  • 한희: LG 시절 박종훈 감독에 의해 임찬규와 함께 어마어마하게 던졌고, 갑자기 키가 커서 투구 밸런스를 잃었다고 한다. 결국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가 방출당했다.

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네이트 피어슨: 2022년에 단핵구증이 발생했고 6~7월 복귀가 예상됐으나 막상 까고 보니 회복이 더뎌서 시즌아웃됐다. 데뷔 이래 3년 동안 고작 17경기, 33이닝(…) 등판했다.
  • 마이크 소로카: 2020년 즈음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은 이후 제대로 뛴 시즌이 한 시즌도 없다.
  •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7년 2억 4500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맺고 첫 3년 동안 7경기 등판하고 은퇴하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에서 리그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 스캇 카즈미어: 당시 다저스 구단이 사치세와 페이롤 문제로 FA 영입이 제한되었던 데다가 그나마 지명권 소모없이 영입할 수 있던 좌완 선발이라는 점 때문에 3~4선발 정도의 중간 로테이션을 지탱할 것을 3년 계약을 주고 선택했던 투수. 2016년엔 그래도 꾸역꾸역 어떻게 한 시즌을 완주했지만 2017년부터는 거의 완벽하게 드러누웠고, 결국 2018년 시즌을 앞두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된 이후 조용히 방출되었다.[8]
  • 셸비 밀러: 디백스가 엔더 인시아테댄스비 스완슨까지 내주고 영입했는데....2017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며 시즌 아웃되었다.
  • 커비 예이츠: 밀러와 비슷한 케이스로 2021년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며 한 경기도 안 뛰고 연봉만 날로 먹었다.
  • 크리스 세일
  • 제임스 팩스턴

2.3. 일본프로야구

  • 마쓰자카 다이스케 : 이 분야의 끝판왕. 세이부 시절까지의 혹사로 인해 메이저에서 부진하더니 일본에 돌아와서는 소프트뱅크4년 16억 엔에 계약했으나 3년 간 1군 등판 한 번에 방어율 18.00이라는, 윤석민도 울고 가는 세계구급, 역대급 사이버 투수 반열에 오르고 말았다. 이러면서 현역 생활 계속 하겠다고 FA를 신청하여 4억엔에서 무려 96%가 삭감된 1500만엔에 주니치와 계약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유니폼은 엄청나게 잘 팔았고 소프트뱅크 구단에서도 아예 노골적으로 자기 팀의 우승에 방해가 될 바엔 그냥 돈을 주고 자기 팀에 앉혀놓은 거라고 이야기했을 정도......[9] 결국 주니치에서 그런대로 부활해 유니폼팔이 역할을 하다가 2019년 부상악화로 인해 방출, 2020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로 돌아와 은퇴경기 1경기만 2021년에 치르고 은퇴했다.
  • 사이토 가즈미 : 2007년 시즌 도중 어깨 부상으로 낙마한 이후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6년간을 공식 경기 등판 없이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으나 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워낙 전성기의 활약이 인상적이고 유리몸임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무리하게 등판 간격을 좁힌 결과 부상이 악화된 것이라 팬들로부터 비난보다는 안타까운 시선을 받았다.
  • 타카하시 하루토: 한신 타이거스구창모라고 할 수 있다. 경기만 나오면 위력적인 패스트볼과 함께 탈삼진을 적립하며 나름대로 잘 던지지만, 정작 내구성이 구창모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쁘다... 2024년 8월, 3년 만에 복귀해 선발로 4승 1패, 방어율 1.52에 WHIP 0.81로 훌륭한 성적을 내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3. 기타

  • 지안카를로 스탠튼: 데이비드 프라이스트위터에서, 스탠튼의 생김새가 MLB the show의 생성선수(Create a player)랑 똑같이 생겼다는 트윗을 남겼다. 게임에서 만드는 사기 캐릭터급 능력이라는 칭찬이기는 한데... 워낙 거구에 근육질이라 부상이 많아 자주 DL에 내려가 사이버 타자화되기도 한다.
  • 대니 워스: KBO 팬은 물론, SK 와이번스 팬들도 입단 사실을 잘 모르는 외국인 사이버 타자. 2017년 트레이 힐만 감독의 추천으로[10] 70만 달러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했으나 정작 시범경기때 어깨 부상으로 많이 나오지 못했고, 정규시즌에서도 지명타자로 꼴랑 3경기 뛰고 2군으로 내려갔고, 결국 그 좋은 수비도 못 보여준 채 방출되었다. 결국 이 부상이 원인이 되어서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했는데, 퇴단하면서 대체 선수로 제이미 로맥을 추천해 팀에게 최후의 선물은 남기고 간 셈이 되었다.
  • 심준석 - 2023 KBO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으나 고등학교 2학년부터 부상에 시달리더니 KBO 리그 대신 미국행을 택한 뒤에도 부상이 지속되고 있다.
  • 아도니스 가르시아: 2018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외국인 타자로 실력자체는 좋았으나 잦은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빠졌고 그럼에도 실력이 좋았다는 이유로 구단에서 기다려줬다가 시즌끝나고 나서야 방출되었다. 가르시아는 근육량이 지나치게 많아 부상이 잦은 케이스다.
  • 이용헌: 성균관대학교 야구부 소속이며, 최강야구 한정. 최강 몬스터즈 합류 후 첫 등판이 2024년 16차전인 동의대전이였는데 이 이전까지는 등판을 하지 못 하다가 이 경기의 점수차가 커서 등판을 했기 때문에 선배 선수들이 먼저 앞서서 사이버 투수가 등판한다며 놀려댔다. 하지만 프로에는 지명받지 못해 사이버 투수 소리를 듣기도 어려운 상황이됐다.
  • 이현동: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잘 모를 2012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더. 원래 투수였으나 2017년 외야수로 전향한 선수로 2017년까지 한번도 1군에 못 올라오다가 2017년 1군 16경기 출장-바로 다음 시즌 1군 기록없음-2019년 2경기 출장후 2020 시즌 부상으로 1군은 커녕 퓨쳐스리그 출장 기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2021시즌 보류 선수 명단에서 살아남았다. 결국, 2021시즌 후 방출되면서 은퇴했다.
  • 잭 한나한: 2015년 100만 달러의 계약 규모로 LG 트윈스에 입단했으나 개막하기도 전에 부상으로 자취를 감추며 ‘사이버 타자’가 되었다. 개막 이후 한 달이 조금 넘어가서야 1군에 출장을 했는데 문제는 본래 포지션인 3루수로는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6월에 다시 부상이 도지면서 웨이버 공시되었다.


[1] 헬스장에서 개인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눈이 얼어붙은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2] 이는 당시 LG 스카우트 팀장이었던 이효봉의 삽질 중 하나다. 이듬해 대학 진학을 결정한 나성범을 굳이 지명하며 귀중한 드래프트 한 장을 낭비한 것 역시 포함된다.[3] 김진웅은 현역 시절 자기 관리를 잘 하지 못했던 걸로 유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삼성도 김진웅의 관리를 위해 관리가 엄격한 상무에 입대시키려고 했던 것. 반면 김진웅의 대구고 3년 후배인 손승락은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뒤 경찰청에 입대했고, 제대 후 넥센의 주축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으며 오승환에 이은 통산 세이브 2위를 달성하는 등 KBO의 레전드로 성장했다.[4] 이때 확 불어난 체중에 비유한 사이버 스모 선수라는 멸칭도 생겼다.[5] 이 때 서류상으로 임의탈퇴까지 되었다. 보호 선수 명단 작성 등에 이용하기 위한 편법이었지만...[6] 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둔 승리마저 입단 3년차이던 2003년에야 와서 거둔 승리다.[7] 3.2이닝 13실점. 1년 후 삼성 라이온즈재크 페트릭이 2이닝 14실점으로 이 기록을 깨 버렸다.[8] 결국 이 여파로 다저스는 2016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당시에 리치 힐을 영입해야했다. 리치 힐은 그나마 물집 이슈 속에서도 다저스에서 2019년 시즌까지 그럭저럭 로테이션을 돌아준 편.[9] 실제로 마쓰자카는 현역 시절에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미친 듯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10] 메이저리그에서 323.1이닝 연속 무실책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실책이 많았던 헥터 고메즈를 대신해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 영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