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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락/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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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현대 유니콘스
3.1. 2005~2007 시즌
4.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4.1. 경찰 야구단4.2. 2010 시즌4.3. 2011 시즌4.4. 2012 시즌4.5. 2013 시즌4.6. 2014 시즌4.7. 2015 시즌4.8. FA
5. 롯데 자이언츠6. 국가대표 경력7. 은퇴8.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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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 유니콘스,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소속 우완 투수 손승락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2001년 신인지명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 2차지명 3라운드에서 지명되었으며, 대구고등학교 졸업 후 영남대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에는 유격수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1] 영남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투수로 전향[2]에 성공하며 대학 리그 최고의 파이어볼러로 거듭났다. 대학에 와서 변화구 등 투구 메커니즘을 습득할 수 있었다. 다만 본인은 정작 투수를 하고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투수가 된 계기는 고교 3학년 시절 경기 도중 후배였던 에이스 윤길현이 무사 만루를 만들어놓고 강판되었는데 던질 투수가 없어서 스파이크도 없이 등판을 했더니 무사 만루를 막아버려서 정식으로 투수 전향을 했다고 한다.[3]

2002년 8월 2일부터 8월 11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심수창, 정재복, 이택근, 조영훈 등과 함께 출전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조별 예선 A조[4]에 편성되었다. 이때 심수창과 룸메이트를 하게 되면서 둘의 긴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5] 4일 첫 경기에서 홈 팀 이탈리아에 패배#, 5일 중국에 승리#, 6일 캐나다에 승리#, 7일 미국[6]에 패배#하며 2승 2패(23득 23실)로 8강에 진출했으나 10일 일본과 8강전에서 6-1로 패배했다.#. 12일 대회 5.6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꺾어# 최종 결과는 3승 3패(24득 29실)로 5위[7]를 기록했다.

영남대학교에서 4년 간 51경기, 199 1/3이닝, 10승, 5패, 평균책점 1.85, 215 탈진, WHIP 1.27을 기록했다.

3. 현대 유니콘스

3.1. 2005~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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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동료 조용준과 함께.
뒤에 풋풋하던 정근우와 매의 눈 김기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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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5년에 입단한 신인 선수들 중 대졸 최대어로 꼽혀 왔기에, 입단 첫 해부터 팀 내에서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았었다.[8] 그 해 사상 처음으로 열린 미디어데이에는 조용준과 함께 팀을 대표해서 참석했을 정도.

입단 첫 해에는 3선발로 주로 등판했다. 데뷔 첫 경기인 사직 롯데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해 선발승을 챙겼으나, 이후 등판에서는 대체로 난타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9] 그 해 5승 10패와 함께 평균자책점은 5점대 중반을 기록했다. 이해 피홈런이 18개로 공동 2위를 기록했는데, 1위였던 리오스가 200이닝을 넘게 던진지라 공동피홈런 기록으로 봐도 무방하다.[10]

이듬해 4선발로 등판하여 시즌 초반에는 굉장한 호투를 보여 주었으나[11] 6월 들어서부터 체력 저하로 난조를 종종 보였고, 팔꿈치 부상까지 겹치며 중후반부터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전천후 투수로 활동했다. 6승 5패에 평균자책점 4.17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 결국 시즌이 끝나자마자 포수 강귀태와 함께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2007년에는 시즌 내내 재활에 몰두하며 마운드에 올라서지 못했다.

4.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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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3일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4.1. 경찰 야구단

2007년 말 재활을 마치고 경찰청에 입대했다.[12] 그가 경찰청에 입대하고 나서 이듬해 현대 유니콘스는 해체되었고, 선수단은 우리 히어로즈로 인계되었다. 그 때문인지 손승락은 야구와 재활에만 전념하면서 구위를 회복했다.

4.2. 2010 시즌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넥센 히어로즈에 합류하며 장장 4년 만에 1군 무대를 밟았다. 2010년 시즌 시작 전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이 재발하며 이탈한 조용준을 대신하여 마무리 보직을 맡게 됐다.[13] 팬들은 '오랜 기간 동안의 공백이 있는데 과연 잘 해줄까?'라는 반응이었으나, 개막전이자 1군 복귀전인 3월 27일 사직 롯데전에서 9회말 등판하여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데뷔 첫 세이브를 챙겼다. 3:2라는 다소 아슬아슬한 스코어에 등판한 손승락은 첫 타자 박기혁을 무난하게 뜬공으로 잡아내며 기분좋은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이어진 김주찬의 타석에서 홈런성 타구를 허용하는데, 이 타구가 관중의 손을 맞고 그라운드 안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홈런이 인정 2루타로 둔갑하며 손승락을 구해냈고[14] 손승락이 다음 두 타자를 삼진과 땅볼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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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의 다른 불펜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일명 BOSS라인[15]이라 불리는 넥센 불펜진의 기둥이 되었으며, 2010년 넥센은 불펜 평균자책점 2위 기록[16]을 세웠다.

감독 추천으로 생애 첫 올스타전에도 참가했다. 올스타전에서는 전반기 막바지에 롯데로 트레이드된 황재균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는데, 경기가 끝나고 손승락 및 넥센 선수들이 황재균을 둘러싸고 축하의 세레머니를 벌이며 넥센팬들을 짠하게 하기도 했다.

9월 24일 금요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6:3으로 넥센이 앞서 있던 8회 2아웃에 등판하여 네 명의 타자를 삼진 처리하며 26세이브를 기록, 세이브왕이 되었다. 넥센 히어로즈 선수로서는 최초의 타이틀 홀더.[17] 아시안 게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어차피 경찰청에서 갓 제대했기 때문에 병역혜택이 필요하지는 않은 상황.[18]

2010년 53경기 2승 3패 26세이브 1홀드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계속해서 넥센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게 될지는 의문인 것이, 7개 구단에서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기 때문. 실제로 트레이드 제의가 들어왔고, 이를 스폰서 측에서 거절하고 있는 듯했으나 결국 2010년 12월 트레이드 관련 기사가 났다. 그것도 6일 트레이드설은 타 구단의 언론 플레이라고 발언했는데 7일 트레이드 논의가 드러났다. LG 트윈스에 1명의 주전급 야수와 2009년 말에 트레이드했던 이택근과 비슷한 현금[19]을 요구했다고. 이에 LG는 해당 선수를 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황재균을 팔지 않겠다던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팔지 않는다고 하며 뒤로는 트레이드를 진행하는 행태에 넥센 팬들은 뒷통수가 얼얼할 지경. 넥센 관계자는 "LG쪽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만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카드가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우린 돈보다 전력 보강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넥센팬은 없었다.

한편 넥센이 손승락의 트레이드 상대로 작은 이병규를 요구했다는 기사가 났다. 12월 20일 손승락의 트레이드설, 강정호의 연봉 합의 난항기사 등을 보며 떡밥 하나 나왔다가 지나가려니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통수를 당하며 넥센 팬들은 손승락, 강정호에 대해서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게 됐다.[20]

그 해 12월 4일에 결혼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4.3. 2011 시즌

김시진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이정훈을 마무리로 쓰고 손승락은 선발로 전환시키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동계 훈련에서 생각만큼 선발 전환이 쉽지 않자 원래대로 손승락의 마무리 보직을 결정지었다. 항간에는 이장석 대표의 처지를 고려해서 그냥 한 말이라는 설도 있다.

선발 전환을 준비하다가 다시 마무리로 돌아섰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시 어깨가 좋지 않아 시즌 개막 전에는 강진 베이스볼 파크에서 재활에 매진했다. 다행히도 재활이 순조롭게 끝나 4월 25일에 1군으로 복귀했다. 문제는 한화와의 3연전이 워낙 1점차 승부였는데다가, 송신영이 무시무시한 페이스를 보이면서 4월 28일 세이브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손승락은 복귀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4월 29일 LG전에서 드디어 복귀, 8회말에 등장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다시 한 번 마무리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했다.

5월 27일 LG전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달성했고, 이날 넥센은 8연패를 탈출했다.

부상 우려와 함께 시즌 초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LG 트윈스작은 이병규와 맞바꾸었더라면 LG 트윈스가 많이 아쉬울 뻔했다는 말이 현실이 될 뻔했으나, 고질적인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안고 있던 이병규가 아예 드러누웠다는 소식이 들리며 만약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더라면 넥센 히어로즈의 큰 손해였을 거라는 의견이 강해졌다.[21]

8월에는 오승환에 버금가는 든든한 마무리로 돌아왔다.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피칭 직후 디딤발로 점프를 하는 등 투구폼이 더욱 더 역동적으로 변화하였다.

부상의 여파로 전년도만큼의 세이브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평균자책점을 1점대로 끌어내리며 나름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4.4. 2012 시즌

주자 있는 위기 상황에 나오기는 했지만 등판할 때마다 주자를 출루시키는 모습을 보였고, 블론 세이브도 간간이 기록하며 시즌을 불안하게 출발했다. 대표적으로 406 대첩. 4월 15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도 팀 타선이 분발하며 승은 챙겼지만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3일 롯데와의 목동 홈 경기에서도 8회 2아웃에 나와 강민호에게 동점타를 맞으며 벌써 시즌 세 번째 블론을 기록했고, 9회에 만루 위기를 자초하고 강판되었다. 결국 뒤이어 마운드에 올라온 김상수전준우에게 적시타를 맞으면서 2점을 헌납했고, 이 점수를 고스란히 자신의 자책점으로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초까지의 손승락은 평균자책점은 나쁘지 않지만, 내용이 좋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손승락이 처음 등판시에는 안타를 허용하거나 한다는 점을 들어 손승락을 오승환 같이 철저한 관리 하에 등판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을 정도.

다만 이전 시즌들과 비교했을때 전체적으로 피안타율이 많이 높아진 것을 보아서 투구폼 변경으로 인한 구위 하락 내지는, 어느 정도 약점이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22][23]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매우 높은 확률로 선두 타자의 출루를 허용한다는 것. 9회말 시작하자마자 등판하는 상황에서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경기를 지켜보는 넥센 팬들을 긴장에 빠뜨리곤 했다.

5월 22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1로 앞선 9회말 등판해 강정호의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내기는 했지만, 병살타를 유도하여 주자까지 말끔히 지워버리며 깔끔하게 세이브를 달성, 시즌 10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들면서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 가는 듯.
그러나 5월 30일 8회초 3:2로 앞선 2사 3루 상황에서 올라와 일단 8회는 막았지만, 9회 연속 4안타를 맞고, 후속 투수인 심수창이 주자를 모두 분식하며 4자책점을 내주어 시즌 4번째 블론세이브와 시즌 2패를 기록했다.

다음 날인 5월 31일 9회초 9:4로 앞선 무사 만루에서 올라와 김강민은 3루 땅볼을 유도해 2아웃을 잡았지만, 최정에게 인정 2루타를 맞으면서 1점을 허용했다. 세이브를 챙기는 데는 성공했다지만, 세이브 내용이 계속 깔끔하지 못하다. 5월까지 기록한 12세이브 중 출루 없이 해결한 것은 단 4경기 뿐.

6월 9일 한밭구장에서 열린 한화의 경기에 3:1로 앞선 9회말 등판해 선두 타자 장성호에게 볼넷을 내 주었다. 이후 김태균은 2루수 플라이로 잘 잡았지만, 최진행에게 동점 투런 홈런을 허용하면서 시즌 5번째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다행히 팀은 연장 12회 접전 끝에 4:3으로 이겼지만 확실히 마무리로서 가장 불안한 시즌인 것은 분명하다.

6월 2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3:2로 앞선 9회초 등판하여 최주환을 투수 앞 땅볼, 이종욱을 삼진, 김현수 역시 삼진으로 강타자 세 명을 깔끔하게 돌려 세우며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직구구속은 150까지 찍혔다!!

7월 3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대2로 앞선 9회초에 등판했다. 오선진과 정범모는 삼진으로, 이대수는 뜬공으로 처리했다. 시즌 17번째 세이브.

7월 11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7대2로 크게 앞선 9회초 1사 이후에 등판하여, 김재현은 유격수 앞 땅볼로, 정근우를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처리했다. 비 때문에 오랫동안 등판할 수 없어서 몸 상태 점검 차원에서 마운드에 올렸는데, 공을 3개밖에 못 던졌다.

7월 17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6대3으로 앞선 9회초에 등판했다. 이승화는 3루수 앞 땅볼, 황재균은 삼진, 정훈은 삼진으로 처리했다. 시즌 18번째 세이브.

7월 19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대3으로 앞선 8회초 2사 이후에 등판했다. 황재균은 뜬공, 박준서는 2루수 앞 땅볼, 이승화는 뜬공, 전준우는 3루수 앞 땅볼로 처리하면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19번째 세이브.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8회초 2아웃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9회초에 2아웃까지 잘 잡아놓고 김민성의 실책에 이어진 연속 피안타와 볼넷으로 2사 만루 상황을 자초하며 양 팀의 팬들을 긴장시켰지만, 만루 상황에서 나온 김문호를 풀카운트까지 끌고간 끝에 헛스윙삼진으로 잡아내며 김병현의 3승과 팀의 5위, 자신의 31세이브를 달성하였다. 이 날 유독 그의 투구폼이 더욱더 역동적이었으며, 특히 마지막 경기를 끝내는 삼진을 잡아낼 때(147km/h)는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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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최종 성적은 53경기 3승 2패 33세이브 5블론세이브 평균자책점 2.15. 숫자만 보면 무난한 성적이나 기록한 블론세이브가 전부 다 팀의 4강 분수령에 터진 터라 임팩트가 상당히 컸다.

12월 27일 1억 8천만 원에서 8천만 원이 오른 2억 6천만 원에 연봉 계약을 완료했다. 신임 염경엽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2013년에도 넥센의 주전 마무리로 낙점받았다고 하며, 잘 하면 2013시즌에 구단 첫 100세이브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4.5.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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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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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의 독특한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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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마무리 투수로서는 역대 5번째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24][25]

4.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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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KBO 리그 세이브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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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 8회말 무사 만루를 막아낸 후.
지금의 폼은 내가 원래 폼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과 싸워 이긴 것. - 플레이오프 4차전 후 인터뷰에서

4.7.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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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에서의 마지막 시즌.

4.8. FA

2015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이택근, 마정길이 원 소속 구단 우선협상 기간 마감을 앞두고 넥센과 재계약에 성공한 반면 손승락, 유한준과는 기간 내에 더 이상 협상할 예정은 없다고 히어로즈 구단에서 밝히면서 사실상 협상이 결렬, FA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FA 시장에 나간 유한준kt wiz와 계약한 뒤, 11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와 4년 총 60억(계약금 32억, 연봉 7억)에 FA 계약을 체결하였다.#. 롯데의 홈인 사직 야구장은 그의 1군 복귀전 무대이자,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하여 마무리 보직의 첫걸음을 딛은 인연이 있고, 심수창의 18연패 뒤 1승을 지키며 세이브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보상선수를 선택하지 않고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5억 9,000만 원의 FA 보상금만 받아 갔다. 이는 2008 시즌 후 LG로 이적한 정성훈에 이어 7년 만이다.[26] 그런데 이 보상금이 엄청난 것이... 이런 계산이 있다. 즉 넥센은 사실상 손승락을 공짜로 쓴 셈이다...

다만 여기에는 뒷이야기가 있는데, 넥센 히어로즈에서도 보상 선수를 원했다는 것.

바로 심수창의 보상 선수로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된 투수 박한길을 노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2011 시즌 후 리턴 픽으로 임훈을 빼앗긴 기억 때문에 보상선수 지명과 KBO 리그 이적 공시일 사이의 갭을 노린 롯데 프런트가 절묘한 시기에 히어로즈 구단에 보호선수 명단을 제출했고, 명단을 낸 다음 날 박한길의 이적이 KBO에서 공시됐다. 넥센 히어로즈에서도 규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심 박한길을 지명하고 싶어했으나 KBO는 롯데 구단이 히어로즈에다가 보호선수 명단을 넘긴 날짜(12월 10일) 기준으로 롯데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만을 대상으로 보상선수를 지명해야 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즉, 명단을 넘긴 날에 박한길은 한화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롯데에서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음에도 박한길은 한화 소속 선수로 알아서 보호됐던 것이었다. 그리고 롯데가 히어로즈에 명단을 넘긴 다음 날에 박한길KBO에 정식으로 이적 공시되면서 넥센은 입맛만 다신 채 FA 보상금만 받아야 했다. 그래서 프로야구판 한수지의 케이스가 나오지 않은 것.

KIA 타이거즈도 마무리 보강을 위해 FA 시장에서 손승락 영입을 노렸다고 한다. 실제로 김기태 감독도 전문 마무리가 필요하다며 손승락을 잡아달라고 구단에 요청했고, 협상 테이블을 차려 롯데와 똑같이 60억을 제시했지만[27] 최종적으로 협상이 결렬되어 영입이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이때 협상이 결렬되었던 KIA에는 은퇴 후 코치로 입단, 2024년에는 우승까지 경험한다.[28]

한편 넥센 연간회원권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이 디자인하여 특별주문제작한 배터리 충전기를 돌렸다고 한다.[29]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키는 자세 덕분인지 넥센 팬들은 그동안 고마웠고 롯데 가서도 잘 하라는 분위기. FA로 친정 팀을 떠나게 된 선수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넥센의 팀 케미가 얼마나 좋은지 보여 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김포시에 살고 있다가 롯데 자이언츠 이적 후 부산으로 이사가게 되면서 최준석과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됐다고 한다.

샤다라빠는 2015년의 꼴데툰에서 손승락의 영입을 반대하는 내용을 그렸다.

5.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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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공식 경기 첫 투구를 하기 전[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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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7일, 자신의 35번째 세이브를 완성하며

5.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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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엄지척 세리머니.

5.2.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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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KBO 리그 세이브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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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던지겠습니다." - 2017년 8월 4일 넥센전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 중
"점점, 가을야구가 다가옵니다." - 2017년 8월 9일 KT전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 중

5.3.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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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손승락 9년 연속 10세이브.jpg파일:손승락 개인통산 250 세이브.jpg
파일:손승락_7년_연속_20세이브.jpg파일:손승락 개인통산 260 세이브.jpg

5.4.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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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6. 국가대표 경력

6.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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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WBC에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 처음으로 국가대표 A팀에 합류하며 본인이 항상 꿈꿔 왔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강정호와 함께 넥센에서는 둘밖에 없는 국가대표.

1라운드 1차전인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한국이 스코어 0:3으로 뒤진 6회말 1사 1루 상황에 등판해 후속타자들을 범타로 처리하며 좋은 출발을 알렸지만, 7회말에 2루타와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 무사 1, 2루 위기를 만들고 강판당했다. 이어 2루타와 실책으로 손승락이 남겨놓은 주자가 전부 홈에 들어오면서 이날 기록은 0⅔이닝 1피안타 2실점 1자책점이 되었다.

2차전인 호주와의 경기에서는 한국이 스코어 5:0으로 앞선 8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등판했다. 첫 타자에게 2루타를 허용했으나 후속타자들을 내야땅볼로 잡아내며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다.

3차전인 대만과의 경기에서는 한국이 스코어 0:2로 뒤진 7회초에 등판,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실점 없이 1이닝을 막아냈다.

손승락의 WBC 성적은 3경기 2⅓이닝 2피안타 1볼넷 2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3.86이었고, 한국은 2승1패를 기록했음에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7. 은퇴

2019 시즌 후 FA를 신청했으나 타 팀에서 오퍼도 없었고 원 소속팀 롯데와도 금액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스프링캠프 개막 이후까지 협상을 진행했으나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건지[31] 2020년 2월 7일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32] 은퇴 이유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어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애초 FA를 신청한 의미가 현역 연장을 위해 신청한 것으로 보이기에 궁색하다는 비판이 있었다.[33] [34]

손승락 측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추가로 알려진 바로는 롯데 측이 "함께하고 싶다"고 의사를 비쳤는데, 협상과정에서 금액 등 차이로 인해 결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엠스플 유튜브 채널의 토크쇼 영상인 스톡킹에서 밝힌 비화에 따르면 “롯데에서 그만두고 싶었다” 라고 언급했다. 선발 첫승, 첫세이브, 100세이브, 200세이브까지를 전부 사직에서 했기에 사직은 자신에게 너무 각별하고 롯데에서 야구 인생을 그만두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고. 다만 그런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상술한 FA 과정은 야구팬들의 해석 결과가 다양하게 벌어질 수 있는 과정이었기에 이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야구팬들의 몫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오승환에 이어 통산 2위의 세이브 기록(271개)를 남기고 은퇴했고 이후 2020년 5월 22일~24일에 키움과의 시리즈 중 한 경기에서 은퇴식을 연다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5월 시리즈가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8월 14~16일 시리즈나 8월 27~28일 시리즈 중 손승락의 은퇴식이 열릴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관중 입장이 시작되어서 더욱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또 다시 무관중으로 진행되어 아직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롯데는 손승락의 은퇴로 차기 마무리를 찾아야 했다. 유력 후보는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향한 김원중인데 위기 상황에 약하다고 알려진 김원중이 마무리를 잘할수 있을지 우려가 많다. 김원중이 마무리가 잘 안될시 박진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김원중이 마무리 전향 후 1점대 방어율로 굉장한 모습을 보였고 마무리가 잡히자 필승조들도 활약하며 롯데 불펜이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위기상황에 약한 새가슴이 팩트인것을 알려주듯 김원중은 마무리 블론세이브도 1위를 달리며 롯빠들에게 욕을 먹고있다.[35]

은퇴 후에도 구속이 시속 150km대가 나온다고 한다. 심수창을 비롯한 주변의 많은 전 동료들이 은퇴번복을 고려해보라고 하지만 본인 성미에 한 번 정한 것을 바꾸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은퇴 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일정이 많이 연기되었다.

2020년 8월 20일 롯데 자이언츠 vs 두산 베어스의 잠실 경기에 MBC SPORTS+의 초청으로 특별 해설로 출연해 한명재 캐스터와 넥센 시절 팀 동료였던 심수창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췄다. 특별 해설을 하면서 롯데 팬들을 위해 롯데에서 기록한 94세이브를 의미하는 글러브 94개를 선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1년 손승락이 KIA의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합류했고 2022년 KIA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은퇴식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손승락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ab93d>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05 현대 26 5 10 0 0 134⅓ 5.43 154 18 0.333 58 80 1.50 127.87 0.82
2006 24 6 5 0 2 95 4.17 112 5 0.545 27 48 1.40 117.03 0.68
2007 1군 기록 없음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08 우리 군 복무 (경찰 야구단)
2009 히어로즈
2010 넥센 53 2 3 26
(1위)
1 63⅓ 2.56 47 2 0.400 19 64 1.01 55.73 2.50
2011 49 4 2 17
(4위)
2 52⅓ 1.89 41 2 0.667 14 41 1.03 44.71 2.34
2012 53 3 2 33
(4위)
0 50⅓ 2.15 50 2 0.600 15 47 1.29 54.45 1.88
2013 57 3 2 46
(1위)
0 62⅔ 2.30 50 1 0.600 21 52 1.12 49.75 2.70
2014 62 3 5 32
(1위)
0 62⅓ 4.33 69 6 0.375 13 53 1.28 78.55 1.14
2015 58 4 6 23
(4위)
0 61⅓ 3.82 73 6 0.400 16 63 1.40 74.90 -0.12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6 롯데 48 7 3 20 0 50⅔ 4.26 61 5 0.700 27 48 1.68 77.08 1.29
2017 61 1 3 37
(1위)
0 62 2.18 59 7 0.250 12 62 1.13 41.02 2.20
2018 57 3 5 28
(2위)
0 57⅔ 3.90 53 1 0.375 21 60 1.27 71.18 2.27
2019 53 4 3 9 2 52⅔ 3.93 54 3 0.571 22 44 1.39 89.69 0.88
KBO 통산
(12시즌)
601 45 49 271
(2위)
7 804⅔ 3.64 823 58 0.479 265 662 1.31 80.52 18.58

[1] 도루도 잘 했고 센스도 있었다고 한다.[2] 비슷한 사례로 정재복이 있으며, 동갑내기 입단 동기인 장민석은 이와 반대로 좌완투수로 입단했다가 프로에서 타자로 전향했다.[3] 상대했던 첫 타자가 성민규 現 롯데 단장이라고. 은퇴 당시 성민규 단장이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조명된 바 있다.[4] 미국, 이탈리아, 대한민국, 중국, 캐나다[5] 은퇴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심수창은 당시 2학년이던 손승락과 조영훈에게 숙소를 지키라고 말한 뒤, 비키니를 보러 시칠리아 섬을 배회(?)하고 다녔다고 고백했다. 손승락은 매번 어딜 나가는 건지 궁금했다고 한다.[6] 선발 필립 험버[7] 1위 쿠바, 2위 미국, 3위 일본[8]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재영 이렇게 3년 연속으로 신인왕이 탄생했었다. 그러니 입단 당시 손승락이 당연히 신인왕을 차지할 것이라 믿었던 팬들이 꽤 많았다.[9] 신인 때 선발로 삼성만 만나면 그야말로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맞았다. 이 영향인지 마무리 투수전향한 후에도 삼성전에 유독 취약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10] 다만 채병용이 던진이닝이 조금 더 적다.[11] 5월까지만 해도 5승 무패, 평균자책점 0점대였던 때도 있었을 정도였다.[12] 사회복무요원으로 갈 수 있었지만, 당시 그가 자기관리를 못하는 성격인 걸 알고 있던 구단이 상무 입대를 권했는데 정작 간 건 경찰청... 대구고 선배 김진웅과는 정반대 케이스다.[13] 결국 조용준은 시즌 후 방출되었다.[14] 관중방해 장면은 6분 18초부터[15] 박준수, 오재영, 송신영, 손승락. 그러나 이후 박준수는 부상이 잦았던 데다 2011년 시즌에 크게 부진해 시즌 후 방출되며 KIA로 이적했고 결국 KIA에서도 방출되었다. 송신영은 LG, 한화, NC 등을 옮겨다니며 저니맨이 되었다가 2013년에 다시 트레이드되어 넥센 히어로즈로 돌아왔다. 오재영은 좌완 원포인트로 활용되다 2013년 시즌 후기부터 선발로 전향.[16] 1위는 삼성, 3위는 SK.[17] 그 해 오승환은 시즌 중 또 다시 찾아온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고 이전까지 1위였던 이용찬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시즌을 마감했기 때문에 손승락이 세이브 경쟁에서 낙승했다.[18] 대신 같은 팀 내에서는 유격수 강정호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 A팀에 발탁됐고,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출된 김시진 감독과 함께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과 병역 혜택을 획득하며 여러 모로 넥센 히어로즈에 경사를 안겼다.[19] 25억 원.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돈을 포함하면 50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20] 그나마 이 두 선수는 트레이드로 이적하지 않고 각각 FA와 MLB 포스팅 제도로 이적했다.[21] 덤으로 이병규는 그 해 시즌 막판이 되어서야 1군에 복귀했으며, 박종훈 당시 LG 감독이 복귀 지연에 대해 이병규를 강하게 질타했다.[22] 평소에는 수정한 투구폼으로 투구하지만 위기상황이 되면 다시 뛰어오르는 투구폼이 나온다.[23] 정민태가 이 투구폼을 수정했다고 해서 정민태는 2012시즌 욕을 많이 먹었는데, 정작 2012시즌 손승락이 다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김시진감독의 해임 후였다.다시 뛰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변했다.[24] 첫 번째는 1993년에 ERA 0.78에 최초로 30세이브를 달성한 선동열, 두 번째는 1994년에 ERA 1.36에 40세이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정명원. 세 번째는 1996년에 다승왕과 구원왕,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가져가고 시즌 MVP까지 차지한 구대성, 네 번째는 2001년에 다승왕, 구원왕, 승률왕 타이틀을 가져간 불펜 투수로서는 이례적으로 144⅓이닝을 소화하며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한 신윤호. 다만 손승락을 제외한 위의 넷은 전부 100이닝을 넘기고 수상한 케이스이다. 따라서 1이닝 클로저의 개념이 자리잡힌 현대야구의 트렌드로 볼때 앞으로는 어지간히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 않는 한 마무리 투수가 수상하는 사례가 다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무리가 아무리 잘해도 선발투수의 기여도나 이닝, 승수 등을 넘기기는 힘들기 때문.[25] 다만 더욱 뛰어난 성적을 거둔 외국인 선수가 배제되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26] 실제로 히어로즈는 창단 후 FA 유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1월 한현희의 보상선수로 이강준을 지명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보상선수를 선택하지 않고 보상금만 받아왔다. 정성훈과 손승락의 경우 아예 보상선수를 선택하지 않고 연봉의 300%에 해당되는 보상금만 받았으며, 유한준은 당시 kt가 신생팀이었기 때문에 특례 규정에 의거해 어쩔 수 없이 보상금만 받았다. 등급제 시행 이후 이적한 박병호의 경우 C등급이라 보상선수가 발생하지 않아 보상금만 받았다.[27] 같은 금액임에도 왜 KIA가 아닌 롯데를 선택했을까 의문이 들 법 한데, 손승락이 이 때 롯데와 계약한 내역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60억 전액 보장 조건이다. 반면 KIA가 제시한 조건은 총액으로 보면 똑같은 60억이지만 실제로는 각종 옵션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KIA는 또다시 LG와의 옵션 차이로 인해 장현식을 놓치게 된다.[28] 한편 10년 가량 지난 현재 KIA 팬들은 결과론적이지만 손승락 영입 실패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15년 겨울 손승락 영입전에서 롯데에 밀리고 철수한 바로 이듬해 스토브리그에서 최형우를 4년 100억으로 데려오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양현종과 나지완을 모두 잡는데 성공했기 때문. KIA는 이들을 바탕으로 17년에 11번째 우승을 기록했다.[29] 더 많은 팬들에게 주고 싶었으나 구단이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팬들이 시즌권 소지자들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즌권 소지자 500명에게 돌렸다고 한다.[30] 뒤에 배경은 보면 알겠지만 전 소속팀의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찍힌 사진이다.[31] 야구부장 박재호 기자에 따르면 롯데가 1년 계약에 3억을 제의했다고 한다.[32] 동갑내기인 롯데 성민규 단장은 은퇴를 만류했으나 손승락 본인이 은퇴를 결정했다.[33] 정말 은퇴를 하기로 했으면 FA를 신청하지 않고 2019시즌 종료 후 바로 선언을 했을 것이다.[34] 5천만원을 받고 뛰는 송승준과 3천만원을 받고 뛰는 장원삼과 비교되었다. 은퇴전에 한번 찔러봤다는게 팬들의 의견[35] 그러나 이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던게, 애초에 마무리 첫 시즌이고 전반기까지는 평균자책이 1점대로 첫 시즌 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모 감독이 후반기에 마구잡이로 기용해서 당연히 체력적으로 지치니까 블론세이브도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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