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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불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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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스 이전의 시카고 농구2. 창단과 빠른 성장3. 길모어-시어스 콤비와 침체기4. 마이클 조던의 시대
4.1. 왕조의 포석 구축기4.2. '불스 왕조'
4.2.1. 1990 ~ 1996년4.2.2. 1996-97 시즌4.2.3. 1997-98 시즌
5. 암흑기6. 부흥기7. 데릭 로즈, 조아킴 노아의 시대
7.1. 2010-11 시즌7.2. 2011-12 시즌7.3. 2012-13 시즌7.4. 2013-14 시즌7.5. 2014-15 시즌7.6. 2015-16 시즌
8. 리빌딩
8.1. 2016-17 시즌
9. 잭 라빈의 시대
9.1. 2017-18 시즌9.2. 2018-19 시즌9.3. 2019-20 시즌9.4. 2020-21 시즌
10. 라빈·드로잔·부세비치 빅3 결성
10.1. 2021-22 시즌10.2. 2022-23 시즌10.3. 2023-24 시즌
11. 빅3 해체, 리툴링의 시간
11.1. 2024-25 시즌

1. 불스 이전의 시카고 농구

시카고 지역은 야구와 풋볼의 인기가 압도적인 곳이다. NBA 창설 이전에는 1925~1931년까지 시카고 브루인스(ABL)[1], 1944~1947년까지 시카고 아메리칸 기어스(NBL)[2]가 각각 있었지만 야구에 밀려 사라졌고, 1946-1947 BAA 시절 원년 시즌팀들 중 시카고 스태그스(Chicago Stags)[3]라는 팀이 있었지만 1950년에 같은 이유로 해체되었다. 홈구장은 시카고 스타디움으로 불스가 1994년까지 썼던 그 구장을 사용했다. 2005-06 시즌 불스가 스태그스의 유니폼을 이벤트 형식으로 잠깐 입은 적이 있었다.

이후 1961년에 다시 시카고 패커스(Chicago Packers)[4]라는 팀이 창단되었지만 1962년 팀명을 시카고 제피어스(Chicago Zephyrs)로 바꾸었다가 1963년 볼티모어로 연고이전해 볼티모어 불리츠(현재의 워싱턴)가 되었다. 아메리칸 바스켓볼 리그라는 NBA의 경쟁리그에서 시카고 메이저스라는 팀이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존재했다.

2. 창단과 빠른 성장

1965년에 농구선수 출신 사업가 딕 클라인의 주도로 창단을 선언한 후, 1966-67 시즌부터 NBA에 정식 참가했다. 구단주 클라인이 사장 및 단장을 몸소 맡아 감독은 전 시라큐스 내셔널스 주전 센터 조니 "레드" 커이며[5] 코치는 알 비안치와 제리 콜란젤로[6], 선수는 제리 슬로언, 밥 부저, 래리 보우먼, 가이 로저스, 제리 워드, 짐 워싱턴, 조지 윌슨 등이었다.

창단 첫 시즌부터 서부 지구에 배치된 후 조니 커 감독의 지도 하에 슬로언, 부저, 로저스를 축으로 하여 33승 48패로 처음 플레이오프 2라운에 직행해 레니 윌킨스의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상대했으나 3전 전패를 당했다. 1967-68 시즌에는 좀 더 분발했음에도 29승 53패로 플옵에서 엘진 베일러와 제리 웨스트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랑 맞붙다가 1승 4패로 졌다. 1968년 오프시즌에 콜란젤로 코치가 새로 창단된 피닉스 선즈의 단장으로 모셔지고, 커 감독도 같이 그 팀으로 떠나자 웨버 주립대학교에서 온 딕 모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픽으로 테네시대 출신 센터 톰 보어윙클을 뽑고 정규시즌 도중에 플라인 로버트슨을 밀워키 벅스의 창단멤버 밥 러브 및 밥 와이스랑 맞바꿔서 33승 49패를 찍었지만 5위로 플옵에 못 갔다.

1969년 오프시즌 때 클라인 구단주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영업부장 팻 윌리엄스를 단장으로 모시고, 밥 카우프먼 및 짐 워싱턴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쳇 워커 및 섈러 해밀턴과 맞바꾼 후, 워커-러브 콤비를 발동시켜 정규시즌에서 39승 43패에 3위로 플옵에 나가 월트 벨라미의 애틀랜타 호크스랑 맞붙다가 1승 4패로 졌고, 1970-71 시즌에는 처음으로 50승을 돌파하여 플옵에서 체임벌린-웨스트 라인업의 LA 레이커스를 상대해 7차전까지 맞붙다가 3승 4패로 졌다. 1971년 오프시즌에는 짐 폭스 및 1972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신시내티 로열스의 놈 밴 리어 및 1972년 3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과 맞바꿔가며 57승 25패로 플옵에 나가 레이커스랑 맞붙다가 4전 전패로 스윕당했다. 1972-73 시즌에도 51승 31패로 3연속으로 플옵에서 레이커스랑 맞붙다가 3승 4패로 졌다.

1973년 오프시즌에는 시카고 블랙호크스 구단주 아더 워츠(1901~1983)와 제너럴 다이내믹스 사장 레스터 크라운[7]이 구단을 인수했고, 윌리엄스 단장이 애틀랜타 호크스로 떠나자 모타 감독이 단장을 겸했다. 정규시즌에서 54승 28패로 플옵 첫 관문에서 밥 레이니어와 데이브 빙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혈투 끝에 4승 3패로 이긴 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카림 압둘자바와 오스카 로버트슨의 밀워키 벅스를 상대로 맞붙었다가 1975년에 두 차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4전 전패를 당했다. 1974년 오프시즌 때 클리포드 레이 및 197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네이트 서몬드랑 맞바꿔서 정규시즌에선 47승 35패로 지구 1위를 찍어 첫 관문에서 네이트 아치발드의 캔자스시티-오마하 킹스를 4승 2패로 꺾고, 컨파에서 릭 배리의 골든스테이트랑 맞붙었다가 4승 3패로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러한 활약과는 별개로 드래프트에서 두각을 못 드러냈는데, 성적이 양호한 데다 당시 NBA 드래프트는 10라운드까지 진행될 정도로 질이 낮았으며, 유망주들은 ABA나 타 종목에 뺏기는 게 다반사였다. 특히 1971년 드래프트에서 잭슨빌 대학교 출신 아티스 길모어를 7라운드에서 117번으로 뽑았으나 그는 ABA 팀 켄터키 콜로넬스로 갔다.

3. 길모어-시어스 콤비와 침체기

1975-76 시즌에는 러브의 부진으로 인해 24승 58패로 디비전 꼴찌를 기록했고, 모타는 단장 및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초기 불스를 구축하던 멤버들도 나이를 먹고, 이제 은퇴할 무렵이 되면서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 했다. 1976년 오프시즌 때 워츠 구단주는 동업자인 존 코블러를 단장으로, 에드 배저 코치를 감독으로 각각 선임했다. 드래프트에선 인디애나 대학교 농구부의 우승멤버 스캇 메이를 전체 2번으로 뽑고, NBA-ABA 통합 드래프트에서 길모어를 다시 뽑았으며 러브를 뉴욕 네츠가 가진 1977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과 맞바꿨다. 정규시즌에선 길모어와 밴 리어, 신인 메이 등의 활약으로 44승 38패로 플옵에 또 갔으나 빌 월튼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게 1승 2패로 졌고, 1977년 드래프트 때 전체 13번으로 듀크대 출신 테이트 암스트롱을 뽑았지만 데뷔 후엔 그닥 두각을 못 드러냈고, 메이의 부상 등으로 인해 40승 42패를 찍고 플옵에 못 갔다.

1978-79 시즌을 앞두고 아더 워츠 구단주는 뉴욕 네츠 코치였던 로드 쏜을 단장으로 선임하고, 초대 밀워키 벅스 감독 래리 코스텔로를 모셨다. 드래프트에서 네바다대 라스베가스 캠퍼스 출신 레지 시어스를 전체 9번으로 뽑은 뒤 밴 리어를 FA로 풀어 밀워키로 보냈다. 그러나 정규시즌 초반부터 20승 36패로 부진해지자 코스텔로 감독이 도중에 쫓겨났고, 스카티 로버트슨 코치가 자리를 메우고 길모어가 올스타에 출전하는 등 큰 활약을 했지만 31승 51패로 굴러떨어졌다. 1979년 오프시즌 때는 제리 슬로언 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했고, 드래프트 때 전체 1번픽인 매직 존슨(미시건 주립대)을 놓친 대신 2번픽 데이빗 그린우드(UCLA)를 뽑았고, 시어스를 중심으로 팀을 다시 짰다. 정규시즌 때는 길모어가 부상으로 34경기밖에 못 뛰는 등의 악재로 30승 52패를 찍었다.

1980-81 시즌을 앞두고 댈러스 매버릭스의 창단으로 인한 리그 개편에 따라 팀은 서부에서 동부 컨퍼런스로 이동했고, 센트럴 디비전에 배치됐다. 정규시즌에선 45승 37패로 밀워키에 이은 2위를 찍고 플옵에 다시 나가 1회전에서 뉴욕 닉스를 2전만에 이기고, 2회전에서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랑 맞붙다가 4전 전패를 당했다. 198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6픽으로 노터데임 대학교 출신 올랜도 울릿지를 뽑고 메이를 방출시킨 뒤, 시어스와 길모어를 중심으로 정규시즌에 임했지만, 이들은 큰 경기에선 잦은 턴오버를 일으키는 악재가 생겼다. 초반에 19승 32패를 찍고서 슬로언 감독이 잘렸고, 로드 쏜 단장이 직접 감독을 맡아 15승을 더 찍어서 34승 48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1982년 오프시즌에서 전 LA 레이커스 감독 폴 웨스트헤드를 새 감독으로 선임한 뒤 드래프트 때 전체 7번으로 샌프란시스코대 출신 퀸틴 데일리를 뽑았고, 길모어를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데이브 코진 및 마크 올버딩과 맞바꿔서 팀을 다시 짜고자 했다. 그러나 울릿지의 부상으로 연패를 거듭하여 28승 54패로 추락했다.

1983년 오프시즌에선 웨스트헤드 대신 애틀랜타 호크스를 지휘했던 케빈 로커리로 감독을 갈아치우고 드래프트에선 5번 및 13번으로 시드니 그린(UNLV)과 에니스 휘틀리(앨라배마대)를 뽑았으나 팀에서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8] 그간 감독을 많이 갈아치웠음에도 팀 성적은 하락할 대로 하락했고, 1984년 2월에는 시어스를 캔자스시티 킹스의 스티브 존슨 및 드래프트 픽 3장과 맞바꿨음에도 27승 55패를 찍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시기에 구단의 재정도 빈약한 데다 졸속 행정이 횡행해 팬들은 신뢰를 잃은 채 당시 지역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차지한 MLB 팀 시카고 컵스나 NFL 팀 시카고 베어스를 찾는 악순환이 벌어지기도 했다.

4. 마이클 조던의 시대

4.1. 왕조의 포석 구축기

1984년은 팀과 리그 역사상 전환기로 회자되는 해인데, 동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 유명 신인 마이클 조던을 지명했다. 1순위는 휴스턴 로키츠가 지명한 하킴 올라주원(휴스턴대), 2순위는 두고두고 조던과 함께 세트로 묶이는 포틀랜드의 샘 보위(켄터키대)다. 물론 당시 포틀랜드에는 이미 최상급 슈팅가드인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9] 그리고 불스는 센터를 뽑으려고 했는데 보위와 올라주원이 모두 뽑히자 당시 가드 중 최고 유망주였던 조던을 선택했다. 실제로 당시 불스엔 올랜도 울릿지란 득점력이 좋은 포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스코어러보다는 센터가 필요했다.

사실 조던이 대학 최고의 선수라곤 하나 원래 포지션 선호도에서 슈팅가드가 센터보다 훨씬 처지며, 당시엔 이게 훨씬 더 심했기 때문에 웬만한 팀들은 조던이 아닌 보위를 선택했을 것이다. 만약 당시 NCAA 우승을 한 조지타운 대학교 최고의 센터 패트릭 유잉이 졸업하라는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리고 드래프트에 나왔다면 휴스턴이 유잉을, 포틀랜드가 하킴을,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센터가 눈 앞에 온 불스는 얼씨구나하고 보위를 선택하고 폭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던을 뽑는 행운은 4순위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돌아갔을 것. 매버릭스가 원래 뽑은 샘 퍼킨스는 206cm에 불과해 프로에서 포워드 전환이 필수적인 선수였고, 조던보다 몇수 아래 선수였기 때문에 조던이 이때까지 남아있었다면 당연히 누구라도 조던을 뽑았을 것이다.[10]

조던이 합류하자마자 첫 시즌부터 포텐을 터뜨리자, 성적 또한 폭발적으로 상승해 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인기가 수직상승했다.[11][12] 이 시즌에선 38승 44패에 컨퍼런스 7등으로 플옵에 나가 강호 밀워키를 상대했지만, 1승 3패를 당했다. 1985-86 시즌을 앞두고 MLB 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가 워츠 가문으로부터 팀을 사고, 로드 쏜 단장 대신 자기 밑에서 화삭의 스카우터를 하던 제리 크라우스를 단장으로 앉혔다. 감독직도 로커리 대신 뉴저지 네츠의 감독이던 스탠 알벡을 앉혔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키스 리 및 에니스 휘틀리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9번으로 뽑은 찰스 오클리(버지니아 유니온대)랑 맞바꾸고, 그린우드를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심장인 조지 거빈과 맞바꿔서 조던, 울릿지의 곁에 합류시켰다. 불스는 첫 3경기에서 3연승을 거두는 쾌조의 시작을 했으나 하필 조던이 3번째 경기에 부상을 당해 무려 64경기를 결장하는 위기를 맞게된다. 조던이 결장한 64경기동안 불스의 성적은 21승 43패(32.8%), 조던 합류 전수준의 처참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13]

결국 최종성적은 30승 52패로 저조했지만 컨퍼런스 8위를 찍어 간신히 플옵에 나갔고, 래리 버드-케빈 맥헤일-로버트 패리시 3인방이 포진한 보스턴 셀틱스랑 맞붙다가 3전 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이 시리즈 2차전에서 조던은 현재까지도 NBA 플레이오프 한 경기 최다 득점인 63점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했고, 불스는 역대 최강팀 중 하나인 86셀틱스를 홈에서 2차 연장까지 몰아붙혔으나 결국 패하고 만다.[14]

1986-87 시즌을 앞두고 알벡 감독이 브래들리 대학교로 떠나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코치이던 덕 콜린스를 새 감독직에 앉혔고, 거빈이 이탈리아 리그로 떠나고 울릿지도 FA로 풀어 뉴저지로 떠남에 따라 조던을 중심으로 팀이 다시 짜여졌다. 조던은 정규시즌 내내 폭발적인 득점력을 발산시켜 40승 42패로 성적으로 올려 플옵에 또 나갔으나, 보스턴에게 3전 전패를 당했다. 1987년 드래프트 때 전체 8번으로 버지니아대 출신 올든 팔러니스를, 10번으로 클렘슨대 출신 호레이스 그랜트를 각각 뽑았다. 그러나 팔러니스는 드래프트 픽 2장과 묶여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뽑은 스카티 피펜(5번, 센트럴 아칸소대) 및 드래프트 픽 1장을 강탈맞바꿨으며[15], 이 두 알짜 신인을 품은 팀은 정규시즌에서 조던과 오클리의 활약으로 50승 32패로 플옵에 나가 1회전에서 클블을 3승 2패로 꺾고, 2회전에서 '배드 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1승 4패로 졌다.

1988년 오프시즌 때 오클리를 드래프트 픽 2장과 묶어 뉴욕 닉스의 빌 카트라이트 및 드래프트 픽 2장과 맞바꾸고, 드래프트에선 전체 11번으로 밴더빌트대 출신 백인 센터 윌 퍼듀를 뽑았다. 조던의 뒤에 카트라이트와 그랜트로 이어진 탄탄한 인사이드진을 바탕으로 팀은 점차 완성됐고, 시즌 초반인 동년 12월에 에드 닐리 및 드래프트 픽 1장을 피닉스 선즈의 크레이그 호지스와 맞바꿔가며 정규시즌 성적을 47승 35패로 플옵에 나갔다. 1회전에서 또 클리블랜드를 상대해 5차전까지 끌고 가며 조던의 소위 'The Shot'이란 역전극을 펼친 뒤, 2회전에서 패트릭 유잉의 뉴욕 닉스도 4승 2패로 꺾고 14년만에 컨파까지 나가서 디트로이트랑 맞붙다가 2승 4패로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1989년 오프시즌 때는 변화를 꾀하고자 콜린스 대신 필 잭슨 코치를 감독으로 승진시켰고, 잭슨 감독은 아버지뻘이자 동료 코치인 텍스 윈터로부터 터득한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적용시켜 조던에 몰빵했던 팀 스타일을 바꿨다. 드래프트에선 전체 6번으로 스테이시 킹(오클라호마대), 18번으로 B.J. 암스트롱(아이오와대), 20번으로 제프 샌더스(조지아 서던대)를 각각 뽑아 전력 보강을 한 뒤, 정규시즌에선 조던의 변함없는 기량과 피펜의 성장 등에 힘입어 55승 27패를 찍고 플옵에 나가 밀워키와 필라델피아를 차례로 꺾어 컨파에서 또 디트로이트랑 맞붙다가 3승 4패로 또 결승 진출을 못했다.

당시 불스를 플옵에서 가로막던 강호들 중 피스톤즈는 1987-88 시즌부터 1989-90 시즌까지 3년 연속으로 불스를 탈락시켰는데, 이때 조던의 기록은 27.4점(야투 49.1%), 29.7점 (46%), 32.1점(46.7%)였다. 굉장한 기록이긴 하지만 이전까지 조던의 기록에 비하면 폭락수준으로 88 시즌 당시 조던은 피스톤즈와 2라운드에서 붙기 전 1라운드 캐브스를 상대로 평균 45.2점(야투율 55.9%), 89년에는 1,2라운드 37.4점(야투율 53.4%), 90년에는 1,2라운드 40.2점(야투율 54.4%)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조던을 저렇게 막았으니 피스톤즈가 대단한 것. 어떻게 이렇게까지 집중수비가 가능했냐면 당시 불스엔 득점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1988년 당시 피스톤즈 시리즈에서 팀내 득점 2, 3위는 샘 빈센트와 호레이스 그랜트로 12.8점, 11.4점에 그쳤다. (빈센트는 야투율도 40%에 그쳤다) 1989년에는 크레이그 호지스가 12점, 빌 카트라이트가 10.5점에 그쳤다. (피펜은 2번의 시리즈에서 모두 한 자리수 득점에 그쳤다) 90 시즌엔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된 피펜이 그나마 16.6점을 올려주긴 했다.(야투율은 42.6%) 그러나 6차전까지 평균 19점을 올려주던 피펜은 7차전에서 원인불명의 편두통 증세를 호소하며 슛 10개 중 1개 성공하며 2점에 그쳤다. 조던이 31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나머지 주전 네명이 합쳐서 26점 넣고, 조던을 제외한 로스터의 10명이 평균 4.3점을 넣는 팀을 이끌고 승리하긴 역부족이었고 결국 패배하고 만다.

4.2. '불스 왕조'

4.2.1. 1990 ~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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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당시 팀의 사진.

1990년 오프시즌 당시 팀은 창단 25주년을 앞두고 있었고, 지난 시즌에서의 실패를 바탕으로 팀은 수비에 더 중점을 두고자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조던-피펜-그랜트 3인방을 축으로 정규시즌에서 초반 3연패를 한 것 빼고는 연승에 연승을 거듭하여 61승을 기록, 이로써 창단 이래 처음으로 60승 고지를 돌파했다. 플옵에선 뉴욕, 필라델피아를 차례로 꺾고 컨파에서 디트로이트를 4전 전승으로 설욕해서 창단 이래 처음으로 파이널에 갔다. 거기서 매직 존슨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4승 1패로 꺾고 대망의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매직 존슨과 마이클 조던의 대결, Old MJ와 New MJ로 화제를 모았던 경기였다. 그리고 이 경기를 끝으로 매직과 버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조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16]

팀은 이 기세를 몰아 1991-92 시즌엔 67승 15패로 플옵에 또 나가 신흥 팀 마이애미 히트를 비롯해 뉴욕, 클리블랜드를 차례로 꺾고, 파이널에 또 나가 클라이드 드렉슬러-테리 포터-벅 윌리엄스가 포진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4승 2패로 꺾어 백투백 우승을 달성했다. 1992-93 시즌을 앞두고 드래프트에선 전체 27번으로 오클라호마 주립대 출신 바이런 휴스턴을 뽑았지만, 댈러스 매버릭스 및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랑 3각 트레이드를 맺어 드래프트 픽 2장을 댈러스의 로드니 매크레이랑 맞바꾸고, 바이런 휴스턴을 골든스테이트로 넘겼다. 또 샌안에서 단기계약으로 뛰던 노장 트렌트 터커도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에서 존 팩슨의 부상에도 암스트롱이 잘 커버해 줘서 57승 25패로 또 디비전 1위를 따내 플옵에선 애틀랜타, 클블, 뉴욕을 차례로 꺾고, 파이널에서 찰스 바클리와 케빈 존슨, 댄 멀리가 포진한 피닉스랑 맞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농구 전문가들이 선즈의 탄탄한 조직력 때문에 불스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피펜의 탁월한 리딩, 조던의 뛰어난 끝마무리, 그랜트의 몸빵 수비 등이 더해져 5차전까지 3승 2패로 선즈를 궁지에 몰아갔고, 6차전에서 존 팩슨[17]의 클러치 3점슛이 백미로, 동영상 초반의 작전타임에서 존 팩슨은 마이클 조던에게 '너한테 수비가 몰릴테니 나는 오픈이 될거다. 그때 내게 패스해줘.' 라고 말했다. 경기가 재개되자 피닉스 선즈의 모든 선수들은 조던만을 바라보면서 수비를 펼치게 된다. 근데 조던이 직접 드리블을 통해 공격해들어올 것이란 예상과 달리 조던은 급작스럽게 피펜에게 패스, 피펜은 무리하게 스틸시도를 한 바클리를 가볍게 제치며 인사이드의 그랜트에게 패스. 이로 인해 피닉스의 모든 수비는 우왕좌왕 볼을 쫓게 되었고, 대니 에인지가 팩슨을 버리고 인사이드로 쫓아간 상황에서 그랜트는 다시 오픈된 팩슨에게 패스를 내어준다.[18] 그리고는 세 번째로 연속 패권을 차지했다.[19]
  • 1993 파이널 6차전 존 팩슨의 버저비터 : ##

하지만 시즌 종료 후 조던의 아버지가 괴한에게 총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조던은 그 충격으로 첫번째 은퇴를 선언하며[20] 야구선수로 전업하게 된다. 조던이 없는 1993-94 시즌, 팀은 이탈리아 베네통 트레비송에서 뛰던 크로아티아 국대 에이스 토니 쿠코치를 영입하고[21] 피펜그랜트를 필두로 짝을 이뤄 시즌을 시작했고 경기력도 좋았지만[22]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단순한 플레이오프 진출이 아니라 55승으로 동부컨퍼런스 3위에 해당했으며(전 시즌보다 2승밖에 안 떨어졌다), 그 해에 결승에 진출한 닉스와 7차전 혈전을 펼쳤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조던이 없으면 플레이오프도 간당간당하다"고 혹평한 것에 비하면 정말 대건투한 셈. 세계 최고의 선수와 함께 한 것 때문에 은근히 과소평가받던 피펜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2인자가 아닌 팀의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정받게 된다.[23]

아이러니하게 이때 너무 잘해서 오히려 피펜을 과대평가하고 조던을 과소평가하는 트렌드도 생겼는데, 1993-94 시즌의 불스는 정규 시즌 성적은 비슷할지언정 단기 싸움인 플옵에서는 결국 차이가 있었다는 걸 간과해선 안된다. 1992-93 시즌의 불스가 57승에 그친 것은 연속우승을 하면서 선수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주전 PG가 존 팩슨에서 BJ 암스트롱으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거치고, 조던의 도박 스캔들 등 여러 잡음에 시달린 것이 커서 정규 시즌에 부진한 것이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예년처럼 강력한 모습을 자랑했다. 어떻게 보면 플옵에서는 92 시즌보다 더 강력해보이기도 했는데, 92플옵에는 1라운드를 가볍게 통과했으나 2라운드에서 한수 아래로 여겨지던 뉴욕 닉스에게 고전한 끝에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으며 (정작 7차전은 조던의 대괴수급 활약으로 쉽게 이겼지만), 동부 결승에서도 당대 최고의 PG 중 하나인 마크 프라이스, 엘리트 센터 브래드 도허티 등이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6차전까지 갔다. 그러나 93플옵에서는 동부 결승 상대였던 뉴욕 닉스한테만 좀 고전했을 뿐(첫 두 경기를 패하고 4연승을 거둬 승리), 1,2라운드 모두 전승을 거둔다. 특히 2라운드에서 동부 강호 캐브스와 리턴 매치를 벌였는데, 나름 빅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4전 전승으로 끝났다. 홈에서 열린 3, 4차전에서 캐브스는 거세게 이들을 밀어붙혔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캐브스가 "조던 스타퍼"라는 특명을 띄고 야심차게 영입한 제럴드 윌킨스[24]가 조던에게 붙었지만, 이 특명이 무색하게 조던은 시리즈 평균 31점을 기록했으며 4차전에는 윌킨스 앞에서 게임위닝샷까지 적중시켰다. 다만 이 당시 조던의 플옵 성적(93년 플옵을 통틀어 평균 35.1점)을 생각하면 평균 31점을 내준건 나름 잘 막은게 맞긴 하다. 심지어 피닉스 선즈는 올-디펜스 세컨팀에 오른 1급 수비수 (수비력으로 NBA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소리이므로) 댄 멀리를 붙혔음에도 조던에게 평균 41점을 내줬다. 그러나 94 시즌에는 이와 반대로 세계최고의 선수를 잃고 나서 다들 불스를 끝장난 팀 취급하는 가운데 나머지 구성원들이 "우리가 조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쩌리가 아니란 걸 보여주자"란 강력한 동기를 갖고 시즌에 임했으며,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 BJ 암스트롱이 한층 더 상장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특히 피펜은 이 때 MVP후보로 꼽혔으며, 그랜트와 암스트롱은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25] 1993-94 시즌 종료 후 FA였던 호레이스 그랜트가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했고, 정든 시카고 스타디움을 떠나 신설구장 '유나이티드 센터'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호레이스 그랜트 등이 떠난 1994-95 시즌에는 34승 31패로 5할에서 간당간당하다가 프로야구 파업 사태로 NBA 복귀각을 보던 마이클 조던이 돌아온 후 13승 4패로 역전을 일으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성공했지만[26], 1라운드에서 샬럿 호네츠를 이겼으나 2라운드에서 샤킬 오닐호레이스 그랜트가 있는 올랜도 매직에 포스트를 유린당해 2승 4패로 석패하고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1994-95 시즌 종료 후 B.J. 암스트롱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했다.

당시 불스가 적지에서 열린 1차전에서 선전하면서 거의 이길 뻔했는데, 종료 몇초전까지 불스가 1점차로 앞서고 있었는데, 조던이 공을 몰고 오는 것을 닉 앤더슨이 기습적으로 스틸했고 페니 하더웨이가 이를 받아 그랜트에게 패스, 그가 덩크로 마무리하는 바람에 매직이 역전해버린다. 그 누구도 상상못했던, 아니 조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실수. 원래 불스는 피펜이 주로 드리블을 하지만 경기 막판에는 볼 운반까지 조던이 담당하는데 1.마지막 슛은 조던이 항상 담당하는데 패스해주다 뺏기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2.조던 본인도 한 때 포인트가드를 볼만큼 드리블이 뛰어나고 중요한 상황에서는 실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야구하던 18개월이란 공백이 뼈저리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고 마지막 공격 기회가 불스에게 있었는데 여기서 조던은 또 한번의 실수를 한다. 스스로 마지막 슛을 던지지 않고 피펜에게 패스를 했는데 피펜은 당연히 조던이 던질 줄 알고 리바운드 참여를 위해 골밑으로 쇄도하다가 패스미스가 난 것. 결국 조던이 정말 어색하게도 경기 막판에 혼자 말아드신 꼴이 됐다. 조던까 그랜트는 미소를.. 참고로 1차전의 아쉬운 패배에도 6차전까지 몰고간 만큼, 만약 이때 승리했다면 매직을 꺾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밀리지만 올랜도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만큼 전력은 강하지만, 불스 자신들이 95-96 시즌에 몸소 증명해냈듯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성향도 있었다.

하여튼 94-95 시즌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 불스는 원인을 포스트의 약점에서 찾았고, 이 와중에 샌안토니오 스퍼스로부터 데니스 로드맨을 데려오며[27] 결과론적으로 약점 없는 라인업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때 라인업은 개사기 라인업 소리를 듣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로드맨은 분명 수준급 선수였지만 당시엔 이미 나이가 들어 올스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실력에 샌안토니오에서의 말썽으로 인해 그냥 성격 더러운 노장 리바운드 스페셜리스트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분명 전년대비 수준급 파워포워드를 갖췄지만 그래도 여전히 센터는 약세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동부에 좋은 센터가 우글우글했던 당시로서는 크나큰 약점이었던 것. 심지어 포인트 가드는 사실상 없었고 피펜이 사실상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했다. 선발 PG자리에 출전하는 론 하퍼는 원래 슈팅가드였고 당시 부상으로 인해 득점력도 거의 잃은 상황. 게다가 전성기 시절에는 이를 상쇄해주고도 남았던 조던이 전년에 기력이 쇠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 터라 전년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좀 하는 정도의 분위기였다.[28] 반면 드래프트에선 20번으로 앨라배마대 출신 제이슨 캐피를 뽑았으나 주목을 못 받았다.

하지만 직전 시즌 실패에 절치부심한 시카고 불스는 오프 시즌 전력 보강과 함께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다. 그 결과 조던, 피펜, 로드맨이라는 미래의 명예의 전당급 선수 3명[29]에 식스맨으로 득점력 좋은 장신 포워드 토니 쿠코치, 3점슛 스페셜리스트 스티브 커, 왕년에 평균 20점씩 올렸던 B+급 스윙맨으로 무릎수술로 득점력은 거의 죽었지만 수비력만큼은 살아있었던 론 하퍼 등 확실한 롤 플레이어들이 조화를 이룬 이 라인업은 결국 당시 NBA 역대 시즌 최다승인 72승[30]을 거두었고, 플레이오프에서 1라운드 마이애미 히트를 3대0 스윕, 2라운드 뉴욕 닉스를 4대 1로 꺾어 작년 준우승팀이자 자신들을 탈락시킨 오닐과 하더웨이의 올랜도 매직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스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1996 NBA 파이널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만나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의 라인업의 성과를 살펴보면

물론 위에 언급한대로 선수들이 잘해서 결과적으로 보니 사기라인업으로 보이는 거지, 정말 슈퍼스타들급 선수들이 모인 팀[31]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단적인 예로 이때 조던-피펜-로드맨의 나이는 33세-31세-35세로 피펜을 빼고 노장소리 들을 만한 선수들이었다.[32]

72승 시즌 당시 불스의 인기는 그야말로 세계구급 수준이라서 우리나라 스포츠 뉴스에서도 거의 매경기 결과를 보도했었고 어쩌다가 패배라도 하는 날엔 스포츠 뉴스 탑 내지는 두 번째 뉴스였다. 미국에서는 한술 더 떠서 구단 버스로 이동하는걸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생중계 했을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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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어벤져스[33]

4.2.2. 1996-97 시즌



오프시즌 때 드래프트에서 29번으로 뽑은 트래비스 나이트(UCONN)가 지명을 거부하긴 했으나 팬들은 이에 개의치 않았고, 팀은 또 한번의 70승 시즌을 노려봤으나 69승을 거둔 상태에서 맞붙은 동부의 두 강자 마이애미 히트와 뉴욕(각각 시카고에 이어 동부 2,3위를 달리던 강팀이었다) 연달아 패배하며 70승 문턱에서 좌절한다. 그러나 이때 불스가 거둔 69승은 72년 레이커스와 더불어 역대 공동 3위의 고승률이다.[34]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불스는 1라운드에서 떠오르는 신예 크리스 웨버와 주완 하워드가 이끄는 워싱턴 불리츠를 3승으로 스윕해버리고[35] 애틀란타를 4승1패, 역사상 최초로 60승 문턱을 넘은 마이애미 히트조차 동부결승에서 4승1패로 따돌리며[36] 1997 NBA 파이널에 진출한다. NBA 파이널 상대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찰스 바클리-하킴 올라주원의 명예의 전당 트리오가 버티는 휴스턴 로케츠를 6차전만에 꺾고 올라온 유타 재즈. 불스는 시카고에서 열린 첫 두 경기를 잡아버리지만[37] 유타 원정에서 2연패를 당하며 위기에 몰린다. 심지어 5차전(원정)을 앞두고 마이클 조던이 식중독에 걸려 엄청난 고열과 설사 및 구토에 시달리고 있었다.[38] 그러나 조던은 눈에 띄게 무거워진 몸[39]에도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승부를 결정짓는 3점슛을 포함해 38점을 득점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이어진 6차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동점 상황에서 조던이 더블팀이 올 것을 예측해 스티브 커에게 패스를 빼주었고, 커가 이를 샷클락 버저비터로 성공시킨다.[40]( 이어 재즈의 인바운드 패스를 피펜이 스틸하고 이를 쿠코치가 덩크로 연결시키며 불스는 승리를 거둔다.

복귀 이후 다른 시즌에 비해 양이 적은데 타 시즌에 비해 이야기 거리가 적은 시즌이었다. 팀 성적도 69승으로 불스 역사상 2번째이고 우승도 했지만, 워낙 95/96 시즌이 올랜도 매직에 대한 복수전, 최다승 등 이슈들이 많았고 97/98 시즌은 불스왕조 마지막 해와 페이서스와의 접전 시리즈가 매우 유명하기에 상대적으로 96/97 시즌이 무난한 감이 없지는 않다.[41]

4.2.3. 1997-98 시즌


이어진 1997-98 시즌. 감독인 필 잭슨스카티 피펜은 단장인 제리 크라우스와 계약 문제를 놓고 계속 갈등을 겪었고 (자세한 상황은 각 항목 참조) 조던-피펜-로드맨은 각각 만 35세-33세-37의 노장이 되면서 팀원들과 팬들,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시즌이었다.[42] 실제로 잭슨이 시즌 개막 전에 팀원들에게 나눠준 책자에 "Last Dance"라고 적혀있었을 정도.[43] 특히 잭슨과 크라우스의 갈등은 극에 달해 크라우스가 "잭슨이 82승0패를 해도 재계약 안한다"고 면전에 대고 고함을 지를 정도였다.

시즌 초반, 피펜을 부상으로 잃은 불스는 한때 5할을 겨우 넘길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리그 개막전에서 당시 하위팀 셀틱스 원정경기를 패하면서 시작했고, 무엇보다 피펜이 빠진 상황 만 35세 조던의 부담이 가중되었다. 은퇴 복귀 이후에도 50%에 가깝던 필드골이 45%수준으로 감소했으며 3점슛도 95/96 시즌 40%, 96/97 시즌 36%에서 20% 초중반으로 크게 감소했다. 당시 불스 로스터에서 쿠코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공격력은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곧 조던을 중심으로 제 정신을 차린 불스는 승승장구하며 피펜의 복귀 전까지 이전의 위력을 찾는데 성공한다. 피펜의 복귀로 불스는 후반에 13연승을 달리기도 하는 등 초반에 까먹은 승률을 회복하며 62승을 거둔다. 지금이야 최종성적만 보고 당시 시즌을 평가하니 지난 시즌에 비해 고작 7승 떨어졌다고 볼 수 있으나, 당시 초반 불스상황은 17/18 클리블랜드 초반 상황만큼이나 답이 안 나오던 시기였다.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조던이 팀이 이끌고 초반 40경기 결장 이후 피펜이 복귀하자 쿠코치가 벤치로 내려가고 48분간 팀 전력을 유지하는 기존의 불스로 되돌아왔고 기어코 페이서스, 히트를 물리치고 동부 1위를 차지했다. 유타 재즈와 전체 공동 1위(62승20패)에 해당하는 승률이었지만, 유타와 맞붙은 정규시즌 두 경기를 모두 패배하며 규정상 유타에게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뺏긴다.

뒤이은 플레이오프에서 불스는 신예 키스 밴 혼, 케리 키틀즈 등이 이끄는 뉴져지 네츠와 붙는다. 1차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서 조던이 막판에 결정적인 스틸에 이은 덩크슛을 꽂아넣는 활약 덕분에 승리하고, 나머지 두 경기도 승리하며 2라운드에 오른다. 상대는 불스 소속으로 올스타까지 올랐던 베테랑 B.J. 암스트롱과 리그 최고의 슈터 중 하나인 글렌 라이스, 준올스타급 센터 블라디 디박 등이 이끄는 샬럿 호네츠. 1차전에서 불스는 무난히 승리하지만 2차전에서는 전 동료 암스트롱이 꽂아넣은 위닝샷에 홈에서 2점차 석패를 하고 만다. 절치부심하고 샬럿으로 자리를 옮긴 불스는 나머지 3,4차전, 그리고 홈에서 열린 5차전을 싹쓸이하며 (그 와중에 조던과 라이스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승리.

동부지구 결승 상대는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이자 인디애나 토박이인 래리 버드 감독과 역대 최고의 슈터 중 하나인 레지 밀러, 포스트업이 일품인 포인트가드 마크 잭슨 등이 이끄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였다. 이때 시카고의 필 잭슨 감독은 스몰포워드인 피펜을 잭슨에게 붙히는 승부수를 둔다. 잭슨은 PG치고 큰 덩치와 강한 힘으로 상대 PG들을 포스트업으로 괴롭혔지만 스피드는 매우 느렸는데, 이를 간파하고 잭슨보다 10cm 이상 큰 피펜을 붙여버린 것이다.[44] 결국 잭슨이 턴오버를 연발하면서 시카고는 첫 두 경기를 잡는다.

그러나 인디애나로 무대를 옮겨간 3,4차전에서는 페이서스가 2연승을 거둔다. 래리 버드 감독이 작고 빠른 가드에 약한 불스의 약점을 노리고[45] 벤치 가드인 트래비스 베스트를 무려 25분 가까이 내보냈고 이게 효력을 발휘하며 홈 2연전에서 불스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4차전에서는 밀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 중 하나가 나왔는데, 이때 밀러는 자신의 마크맨인 론 하퍼를 스크린으로 떼어버리고 수비 커버하러 들어온 마이클 조던을 대놓고 밀어버리고[46] 공을 잡아 삼점슛을 성공시켜 역전승을 거둔다. 이때 전 경기장이 환호하며 난리치는 가운데 감독인 래리 버드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표정도 안 변한채 조용히 남은 시간을 확인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역 시절 역대 최고의 클러치 슈터였던 버드인만큼, 기절할만큼 극적인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되지 않고 남은 경우의 수를 확인하고 다음 수를 계산한 것. 실제로 0.7초가 남은 상황에서 불스는 겨우 조던에게 공을 넘겼고, 클러치 대마왕으로 유명한 조던은 위에서 달려드는 수비수의 블럭을 공중에서 제치고 더블클러치 삼점슛을 던졌는데 이게 거의 들어갈 뻔하다가 림을 돌아 나왔다.

다음 5,6차전을 시카고와 인디애나가 각각 잡으면서 결국 불스는 94년 플레이오프 2라운드 뉴욕 닉스전 이후[47]처음으로 7차전을 치르게 된다. 경기를 앞두고 조던은 "우리가 7차전에서 승리할 거요"라고 기자회견에서 장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조던은 슈팅난조에 시달리고 불스는 4쿼터를 지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커는 훗날 이 경기에 대해 회상하면서 "아 이제 진짜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슛 11개 중 7개를 성공시키며 21점을 넣은 토니 쿠코치의 맹활약, 슛은 안 들어가지만 돌파를 계속하며 자유투를 얻어내면서 28점 9리바운드 8어시스트[48][49]를 곁들이면서 공헌한 조던, 불스가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3점슛을 성공시킨 커 등의 활약으로 불스는 5점차 진땀승을 거둔다. 2인자 피펜은 비록 조던보다 더한 슛난조에 시달렸지만 수비와 리바운드(12개)로 공헌했고, 조던과 피펜은 공격리바운드를 무려 5,6개씩 잡아내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 시리즈에서는 주로 하퍼가 밀러를 막았는데, 조던은 이 경기 4쿼터에 밀러를 전담마크하며 큰 경기에 강하기로 유명한 밀러가 4쿼터 무득점에 그치도록 했다.

조던이 첫 우승을 차지한 90/91 시즌 부터 97/98 시즌 까지 가장 치열했고 탈락할 수 도 있다는 느낌을 준 유일한 시리즈가 바로 1998년 동부 결승전이었다.[50] 그만큼 페이서스의 전력이 매우 강했고 조던 만큼이나 강한 승부사인 버드, 밀러가 주는 영향력도 대단했던 대결이였다.

그리고 1998 NBA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고, 6차전에서 터진 더 라스트 샷으로 유일 무이한 2번의 3-peat을 성공하게 된다. 모든 NBA, 농구팬들이 추억하는 그야말로 전설의 시대. 조던과 1990년대 왕조를 통해, 시카고 불스는 그럭저럭 인기있는 지역팀에서 전세계 차원의 인기를 자랑하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이때 불스팬들이 된 꼬꼬마 아이들은 현재의 한심한 불스를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중(...)

여담으로, '조던이 은퇴하지 않았다면 8연패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팬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떡밥 중 하나이다. 진지하게 따져보자면 전력을 그대로 보유한 94년이라면 몰라도[51] 빌 카트라이트, 호레이스 그랜트의 이적[52]으로 센터진과 파워 포워드진이 약해져서 골밑이 말 그대로 뻥 뚫린 95년은 힘들지 않겠냐는 분석이 많다. 그리고 존 팩슨의 은퇴와 BJ 암스트롱의 이적[53]으로 포인트 가드진도 약해졌기 때문에 99년은 당연히 힘들다. 물론 이 모든 건 가정에 불과하고 재미삼아 하는 얘기기 때문에 진지하게 듣고 열불 낼 필요없이 가볍게 생각하고 얘기하면 그만이다.[54]

두번째 3-peat 이후 98-99 시즌 같은 경우, 조던은 훗날 넷플릭스 다큐 라스트 댄스에서 밝히길, 구단이 다음 해 우승을 위해 좀 더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더라면 자신과 잭슨 감독, 그리고 피펜과 로드맨을 비롯한 팀원들은 전부 재계약에 응했을 것이고, 통산 7회 우승에도 도전했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5. 암흑기

1997-98 시즌이 끝나고, NBA 직장폐쇄가 일어났다. 이 와중에 두 번의 3연패를 이끌었던 필 잭슨 감독이 사임하고, 조던 역시 1999년 초에 두번째 은퇴를 선언했다.[55] 같은 시기 로드맨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피펜휴스턴 로키츠로, 스티브 커샌안토니오 스퍼스로, 룩 롱리피닉스 선즈로 이적하며 팀은 재창단했다고 해도 믿을 지경[56]으로 개박살 나고 말았다.

사실 97-98시즌부터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97년 오프시즌에 단장 제리 크라우스는 감독 필 잭슨과 갈등이 극에 달해 크라우스는 언론에 "이번 시즌이 필의 마지막이다"라고 하고 다닐 정도였고,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도 이를 묵인했다.[57] 또한 데니스 로드맨과도 오프시즌이 끝나기 직전에 계약하는 등 팀 케미스트리가 한계에 달했다. 결국 아슬아슬하던 팀 케미스트리는 조던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던 잭슨 감독이 떠나면서 와르르 무너졌고, 조던의 은퇴를 시작으로 피펜의 이적[58], 로드맨의 재계약 불발 등이 이어지면서 전 시즌 우승 스쿼드 중 론 하퍼, 토니 쿠코치, 디키 심킨스, 빌 웨닝턴, 랜디 브라운, 러스티 라루까지 단 6명만 남게 된다. 새 감독으로는 크라우스 단장과 친분이 깊은 팀 플로이드를[59] 선임했다.

당시 선수진 중 주전인 하퍼와 주전급이었던 쿠코치를 제외하면 전부 잉여 전력에 가까웠다.[60] 결국 나머지 스쿼드는 서둘러 모은 롤플레이어들로 메워야했는데, 클리퍼스와 히트에서 벤치플레이어였던 브렌트 베리, 불스 왕조의 붙박이 벤치였던 브라운, 위에 언급된 심킨스 등 커리어 내내 이름이 없던 선수들이 중용되었다. 왕조 해체 이후 첫홈경기(단축시즌이라 2월이다)에서 주전 라인업 소개를 보면, 하퍼와 쿠코치, 그나마 이름을 알린 브렌트를 제외하면 90년대 농구 광팬들도 전혀 모를 선수들 뿐이다. # 위와 같은 빈약한 로스터를 가진 채 정규시즌에 임하자, 그간 불스에게 한을 품은 상대 팀들의 집중 공격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13승 37패를 기록, 동부 꼴찌에 그치고 만다.

1999년 드래프트에선 전체 1순위로 엘튼 브랜드(듀크대), 16순위로 론 아테스트(세인트 존스대(뉴욕))를 영입했고, 불스 1차 3연패 멤버이던 BJ 암스트롱과 윌 퍼듀를 영입하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로부터 프레드 호이버그를 FA로 영입하긴 했으나, 암스트롱과 퍼듀는 은퇴 직전의 노장들이라 별 임팩트는 없었다. 이 시즌을 기점으로 불스는 왕조 시절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은퇴를 고민하던 하퍼는 필 잭슨의 부름을 받아 LA 레이커스로 이적했고[61], 쿠코치는 시즌 중에 필라델피아로 1라운드 지명권, 래리 휴즈, 존 스탁스 등이 끼인 대형 3각 트레이드를 통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이적했으며[62], 브라운은 시즌 종료 후 보스턴과 계약, 웨닝턴은 시즌 전에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 암스트롱은 은퇴 후 크라우스 단장의 특별보좌관이 됐으며, 퍼듀는 시즌 이후 방출되었다. 심킨스와 라루 둘 다 재계약하지 못하고 해외로 떠났다.

이 때 불스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는 연봉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은퇴 직전의 롤플레이어들인 퍼듀, 허시 호킨스가 연봉 1,2위이고, 트레이드 직후 방출된 존 스탁스를 빼면 루키 계약인 엘튼 브랜드가 그 다음이다. 팀 전체에서 500만 달러 이상 받는 선수가 단 한 명, 그것도 15분 뛰는 은퇴 직전 노장이란 소리다. 시즌 내내 신인인 브랜드는 명성에 걸맞게 루키임에도 평균 20.1점 / 10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아테스트도 신인치고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팀 성적은 17승 65패로 동부컨퍼런스 압도적 꼴찌를 찍었다.

2000년 오프시즌 들어 풍부한 샐러리캡으로 팀 던컨과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그랜트 힐 같은 FA급 거물들에게 입맛을 다셨으나 던컨은 재계약, 맥그레이디와 힐은 올랜도로 가면서 뜻을 못 이뤘다.[63] 대신 올랜도의 론 머서, 샬럿의 브래드 밀러를 각각 FA로 영입하고 드래프트 픽 2장을 휴스턴 로켓츠의 브라이스 드류[64]랑 맞바꾸는 한편, 드래프트에서는 아이오와 주립대 출신 마커스 파이저를 4번으로, 텍사스대 출신 크리스 밈을 7번, 크로아티아인 선수 달리보르 바가리치를 24번으로 각각 뽑았지만, 밈의 경우 이미 A.J. 가이튼(32번, 인디애나대) 및 칼리드 엘 아민(34번, UCONN) 등 PG들을 뽑아서 포지션 폭주를 우려해 클블이 8번으로 뽑은 자말 크로포드(미시건대)랑 맞바꿨다. 정규시즌에 돌입한 후 브라이스 드류의 부진, 론 머서의 부상행진 등 각종 내홍으로 연패에 연패를 거듭하다 못해 팀 플로이드 감독이 도중에 잘리자, 빌 베리 코치가 대행했다. 시즌 내내 브랜드가 2년 연속으로 20-10을 따고 호이버그도 9.1득점 3.6어시스트, 3점 슛 성공률 41.2%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년도 대비 2패를 더 했다.

2001년 오프시즌 때 1기 불스 왕조 멤버였던 빌 카트라이트 코치를 감독으로 승진시켜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팀에 다시 꽂아넣으려 했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토론토의 찰스 오클리와 샬럿의 에디 로빈슨을 영입했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 지명된 도미니게즈 고교 출신 타이슨 챈들러를 데려오기 위해 엘튼 브랜드를 팔아먹는 실책을 저지른다[65]. 뒤이어 4번으로 뽑은 '베이비 샤크' 에디 커리(쏜우드 고교)를 마이클 조던만큼 키우려는 '23 프로젝트'[66]를 진행했지만, 둘이 상성이 좋지 못했던 것인지 챈들러가 잘하면 커리가 죽쑤고, 커리가 잘하면 챈들러가 죽 쑤는 등 시너지 효과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시즌 중반인 2002년 2월에 론 아테스트, 론 머서 등 4명을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제일린 로즈[67] 등 3명이랑 맞바꿔가며 21승이나 거두지만, 로빈슨이 부상을 당해 29경기밖에 못 나오고 오클리는 팀에 불만을 품으며 크라우스 단장과 싸우는 등으로 성적은 더욱 급전직하해서 21승 61패로 네 시즌 연속 동부 컨퍼런스 전체 꼴찌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리그 전체에선 골든스테이트가 밑바닥을 깔아줘서 꼴찌는 면했고, 파이저와 로즈, 해슬이 이 시즌에서 그나마 최선을 다했으며 챈들러와 커리가 데뷔 첫 시즌에 6.1득점 / 4.8리바 / 1.3블록, 6.7득점 / 3.8리바를 각각 기록해 잠재력이 예고되는 듯했다.

2002년 드래프트에서 2픽으로[68] 전년도 듀크대 농구부의 우승을 이끌었던 포인트가드 제이 윌리엄스를 뽑고, 버지니아대 출신 로저 메이슨 주니어와 메릴랜드대 농구부 우승멤버 로니 백스터를 31번 및 43번으로 각각 뽑았다.[69] 트레이드 시장에선 유타 재즈로부터 도니엘 마샬, 포틀랜드로부터 릭 브런슨 등을 각각 사고 노쇠한 오클리를 워싱턴 위저즈로 파는가 하면, 코리 블런트도 FA로 영입해 팀을 다시 짰다. 그러나 여전히 선수들이 젊어서 어리버리한 데다 주전과 식스맨의 구분이 제대로 안 돼서 정규시즌 들어서 로즈와 챈들러를 빼고 스타팅 멤버가 매 경기마다 바뀌는 등 혼란이 있었는데, 특히 마샬은 중반까지 선발이었다가 식스맨이 되기도 했다. 또한 신인 제이윌은 로즈를 받쳐줄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시즌 전부터 세계선수권대회 때 드림팀 감독이던 조지 칼과 출장시간 문제로 다투고, 트레이닝 캠프에서도 팀의 생리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안한 채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대해 자신의 스피드한 특성을 못 살려준다 하여 불만을 품어 코칭스탭과 선수들의 실망감이 더해졌다.

정규시즌에서 제이윌은 자유로운 플레이를 보여 2002년 11월 9일 뉴저지 네츠전에서 제이슨 키드를 상대로 26득점 / 14어시 / 13리바를 기록하며 반짝 활약을 보였지만, 날이 갈수록 슛 셀렉션 문제와 턴오버 증가, 미스 패스 남발, 미숙한 수비력 등의 결점을 드러냈고, 시즌 막판 들어 언론을 통해 팀과 동료들을 비난하고 부모로부터 의존을 받는 등 개인적 문제까지 겹쳤다. 또한 커리, 챈들러, 바가리치, 해슬 등도 카트라이트 감독의 불균등한 출장시간 배분 문제에 대해 불만을 표하자 그는 플래툰 정책으로 조율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장신 위주로 굴려댔다.

그래도 제이윌은 말기 들어서 겸손한 모습으로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 크로포드와 함께 하여 9.5득점 / 4.7어시 / 2.6 리바 / 2.2 턴오버 등을 기록해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고, 브런슨의 준수한 경기 조율능력까지 더해져 최종적으로 전 시즌대비 9승을 더해 30승 52패로 끝냈다.

2003년 오프시즌 때 크라우스 대신 불스 왕조 1기 멤버이던 존 팩슨을 단장으로 앉힌 후, 전성기 때 코치였던 조니 바흐도 다시 불러왔다. 드래프트에서 캔자스대 출신 PG 커크 하인릭을 7번으로 뽑는 한편 제이윌이랑 자말 크로포드를 투 가드로 묶으려고 했지만, 동년 6월에 제이윌이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골반과 왼쪽 다리를 다치는 큰 부상을 입으면서[70] 시즌아웃되어 팀에 비상이 생겼고, 결국 팀의 중심은 크로포드에게 맡겨졌다.

다른 한편 팀은 포틀랜드에 있던 피펜이 FA로 5년만에 복귀했으며, 호이버그는 FA로 풀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떠났다. 팀 내부 상황도 여전히 안 좋아 커리가 아직 여전히 리그를 터득하지 못하고 챈들러도 등 부상을 당한 데다, 카트라이트 감독은 로즈와 크로포드를 벤치에 짱박혀놔서 갈등이 더 심해졌다. 이와 같이 온갖 내홍 속에 시즌 초반부터 연패를 거듭하자 친분 때문에 망설이기만 하던 팩슨 단장은 2003년 11월 25일에 카트라이트 감독을 자르고, 피트 마이어스 코치가 잠깐 대행하다 전 피닉스 선즈 감독 스캇 스카일스를 급히 불러왔다. 12월에는 팀 캐미스트리 강화 차원에서 도니엘 마샬, 로니 백스터와 함께 토론토 랩터스로 팔고 안토니오 데이비스, 제롬 윌리엄스, 크리스 제프리스 3명을 받았다. 또한 블런트도 2004년 3월에 FA를 통해 토론토 랩터스로 떠났다. 돌아온 피펜이 마지막 시즌에 최선을 다했지만 최종 성적은 23승 59패로 전년 대비 -7승을 거뒀다.

6. 부흥기

팩슨 단장과 스카일스 감독은 이러한 실패를 딛고 팀 물갈이에 나섰다. 2004년 드래프트에서 3번 벤 고든(UCONN), 7번 루올 뎅, 38번 크리스 듀혼(이하 듀크대) 등 유망한 신인들을 영입한 뒤, 아르헨티나 대표팀 출신 안드레스 노시오니[71]도 영입했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파이저를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신규 팀 샬럿 밥캣츠로 보내고, 자말 크로포드 및 제롬 윌리엄스를 뉴욕 닉스의 디켐베 무톰보, 오델라 해링턴, 체자리 트리반스키, 프랭크 윌리엄스 등 4명과 맞바꿨으나 무톰보는 휴스턴의 아드리안 그리핀, 에릭 피아코스키, 마이크 윌크스 3명과 또 맞바꿔졌다.

거기에 하인릭도 점차 기량이 상승하여 정규시즌 들어 47승 35패로 성적을 올려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가 길버트 아레나스의 워싱턴 위저즈에게 2승 4패로 졌고, 2005-06 시즌에도 41승 41패로 플옵에 또 나갔다가 드웨인 웨이드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에게 2승 4패로 또 2라운드를 못 갔다. 시너지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하던 타이슨 챈들러와 에디 커리를 각각 뉴올리언스 호네츠와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했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벤 월러스를 FA로 영입해 본격적으로 새 판 짜기에 돌입했다.

2006-07 시즌에는 9년만에 컨퍼런스 2라운드에 다시 진출하여 월러스의 전 소속팀 디트로이트를 상대했으나, 여전히 건재한 '배드 보이즈 2기'의 막강한 수비 탓에 2승 4패로 졌다. 이쯤 되면 나름대로 리빌딩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했지만, 스카일스 감독의 단조로운 공격전술, 포인트가드 배분 문제 등 아직 완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2007-08 시즌 도중엔 스캇 스카일스 감독이 해임되어 피트 마이어스 코치가 대행하는 등 어수선한 시즌을 보내며 최종성적 33승 4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시카고의 로컬보이인 멤피스대 1학년생 데릭 로즈를 1라운드 1순위로 픽하였다. 이 당시 불스의 1순위 픽은 그야말로 로또 당첨이었는데, 1순위 당첨 확률은 고작 1.7%였다. 그 확률을 뚫고 팀의 중심을 얻은 것이었다. 신임 감독으로 과거 샌안토니오 스퍼스 선수 출신 비니 델 니그로를[72] 선임했고, 코치진에 백전노장 델 해리스와 버니 비커스태프를 선임시켜 그를 돕도록 했다. 2008-09시즌 최종성적 41승 4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상대는 2007-08시즌 우승팀 보스턴 셀틱스. 셀틱스가 발라버리고 2라운드에 곧바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았지만[73], 불스는 시리즈를 3승 3패까지 끌고 갔다. 결국 역부족으로 마지막 게임에 패배했지만.

2008-09 시즌 종료 후 벤 고든을 FA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뺏기고, 노시오니도 새크라멘토 킹스로 떠났다. 그래도 2009-10 시즌도 기어이 플레이오프에 동부컨퍼런스 8번 시드로 진출했다. 그러나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결국 1승 4패로 탈락했다.

시즌 종료 후 베테랑 커크 하인리히를 워싱턴에 트레이드해서 자유 이적 영입금을 마련하고, 르브론 제임스나 시카고출신인 드웨인 웨이드 같은 FA대어들을 노리는 의사를 보였다. 일단 카를로스 부저를 5년간 8000만달러(추정 금액)로 영입하는데 성공. 그러나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조 존슨 같은 특급 스윙맨들을 놓치면서 약간은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대신 이사진과 선수들에게 신임을 잃은 델 니그로 감독이 잘리고, 2007-08 시즌 우승을 차지한 보스턴 셀틱스의 수비 전담 코치였던 톰 티보도 감독이 선임됨으로써 불완전하게나마 리빌딩은 일단락되었다.

7. 데릭 로즈, 조아킴 노아의 시대

7.1. 2010-11 시즌

오프시즌 동안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의 차남 마이클이 사장 겸 COO로 선임되면서 2세 경영의 포석이 마련됐고, 트레이드 시장에선 어느정도 쏠쏠한 영입들이 있었고 조아킴 노아데릭 로즈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주축선수들의 장기부상같은 불행이 없다면 플레이오프 막차를 탔던 2009-10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였다. 하지만 주전 3번 루올 뎅의 유리몸끼, 그외 2, 3번 진영의 퀄리티, 훌륭한 코치였지만 감독으로는 초보인 톰 티보도, 그리고 몇몇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강해진 동부 컨퍼런스의 팀들같은 불안요소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봐야 동부의 영원한 강자 보스턴 셀틱스나 최강의 센터 드와이트 하워드올랜도 매직, FA시장 최고의 승리자인 마이애미 히트에는 못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시즌 개막후 좋은 모습으로 동부 3위에 랭크됐지만 보스턴 셀틱스마이애미 히트를 제치고 더 위로 올라가기는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시즌 초반부터 엄청나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 데릭 로즈가 시즌 중반에 들어서더니 완전히 미쳐버렸다. 팀의 주전 4, 5번인 카를로스 부저와 조아킴 노아가 번갈아가며 부상을 입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매경기 맹활약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며 MVP 후보 1순위로 평가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후반기 다른 최상위권팀들이 부진한 것에 반해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결국 조던 시대 이후 처음으로 전체 1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팀성적을 이끈 톰 티보도 감독은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데릭 로즈는 결국 NBA 역사상 최연소 정규시즌 MVP가 되었다.[74] 팀 수비의 핵심중 한명인 루올 뎅도 올해 NBA 디펜시브팀에 들어가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규시즌 1위지만 아직 플레이오프 첫 라운드를 통과한 경험이 없는 너무 젊은 팀이고, 팀의 주축인 데릭 로즈와 카를로스 부저가 부상으로 컨디션이 100%가 아니다. 그러나 2011 플레이오프에서는 또다른 젊은 팀인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치열한 승부 끝에 4-1로 제치고 두번째 라운드에서 애틀란타 호크스도 4-2로 탈락시킨 후,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마이애미 히트와 맞붙게 되었다.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에서 마지막으로 뛰었던 97-98 시즌 이후 13년만에 오른 동부 결승이다!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가 활약한 마이애미 히트에게 1승 4패로 파이널 결승 진출을 넘겨야 했다.

7.2. 2011-12 시즌

2011-12 시즌에는 슈팅 가드 리차드 해밀튼이 합류, 빈약한 2번 포지션에 충분한 보강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고, 주전 스몰포워드 루올 뎅 또한 손목 부상을 안고 플레이했으며, 팀의 핵심 데릭 로즈마저도 여러가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하지만 오메르 아식, 타지 깁슨, 로니 브루어, 카일 코버, CJ 왓슨 등 벤치 멤버들의 엄청난 활약, 티보도 감독의 짠물수비전략이 완전히 만개하여 정규시즌 전체 1위를 다시 따내고야 만다! 한동안은 '로즈 무용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으니 특히 3번째 포인트가드 존 루카스는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등 불스는 이래저래 드라마틱한 승리를 많이 거두었다.(보고 싶으신 분들은 2012년 3/14일 경기를 찾아보자.)

시즌 말미에 데릭 로즈를 포함, 멤버 전원이 모두 컨디션을 회복했기 때문에 2012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했으나 1라운드 필라델피아와의 1차전부터 데릭 로즈가 전방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급격하게 대권 전망은 흐려지고 당장 업셋을 걱정해야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아니나 다를까, 센터 조아킴 노아 마저 발목이 심하게 꺾이면서 아웃, 공수의 두 핵심선수를 잃어버린 불스는 2-4 패배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2012년 여름, 데릭 로즈의 장기간에 걸친 부상에 더불어, 노아, 부저, 뎅, 로즈의 고액계약으로 인해 팀 샐러리가 한계치에 다다름에 따라 상당히 많은 트레이드로 팀 로스터를 변화시켰다.

일단, 노아의 백업 센터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터키 출신 오메르 아식을 휴스턴으로 보냈고, 3점 스페셜리스트 카일 코버와 백업 백코트진 C.J. 왓슨, 로니 브루어와도 결별, 11-12 시즌 동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벤치 깡패들(Bench Mob)'을 완전히 해체시켰다.

7.3. 2012-13 시즌

2012-13 시즌, 불스는 2012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9픽으로 포인트가드 마퀴스 티그(애틀랜타 호크스의 가드 제프 티그의 동생)를 픽하고, 해체된 벤치 깡패들의 빈자리를 커크 하인릭, 마르코 벨리넬리, 네이트 로빈슨, 나지 모하메드,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로 채워놓았다. 샐러리문제로 지난 시즌보다 (특히 수비 측면에서) 무게감이 떨어지는 구성이었지만, 특유의 끈끈한 경기스타일과 티보도 감독의 용병술로 로즈의 빈자리를 잘 메꿔주면서 동부 5위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특히 카를로스 부저, 네이트 로빈슨의 활약, 소포모어 지미 버틀러의 성장이 눈에 띄는 점. 다만 티보도 감독의 출장시간관리가 또 선수들의 내구성문제로 연결, 많은 선수들이 잔 부상을 당한 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3 플레이오프에서는 1라운드에서 브루클린 네츠를 맞아 시리즈스코어 4-3으로 2라운드 진출. 특히 4월 27일에 열린 4차전은 무려 3차연장까지 가는 명승부였는데, 네이트 로빈슨과 조 존슨의 클러치대결이 압권이었던 경기였다. 컨퍼런스 준결승에서는 이미 밀워키를 상대로 시원하게 스윕을 하고 올라온 마이애미 히트와 대결, 1차전은 승리했지만, 내리 4연패를 당하면서 이번 시즌의 모든 일정은 종료됐다.

특히 2013 플레이오프에서 불스가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남겼는데, 앞서 말한 대로 플레이오프 시작부터 진행하는 내내 선수들의 잔부상에 시달려왔다. 조아킴 노아는 족저근막염을 앓으면서도 경기에 출장, 리처드 해밀튼은 몇번의 부상 이후 폼을 회복하지 못했으며, 커크 하인릭은 위에 기술했던 네츠와의 경기 이후 다리 타박상이 심해서 이후 경기에는 출장할 수 없었다. 거기에 루올 뎅이 뇌수막염 의심증상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이후 심한 후유증 때문에 체중이 7~8kg 가까이 빠져버리는 통에 히트와의 시리즈에는 나올 수 조차 없었다. 네츠와의 시리즈 중반부터 팀이 7~8인 로스터로 근근히 운영됐었던 상황.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디펜딩 챔피언 히트를 상대로 첫 경기에서 대폭발 후 사라져가는 모습이 흡사 모 고교를 연상시켰다는 반응이 많다. 다만, 너무 헝그리했는지 거친 파울이 자주 나오는 등 위험한 플레이에 대한 지적도 뒤따랐고, 일부 여론에서는 팀이 이지경인데도 복귀하지 않은 슈퍼스타 데릭 로즈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7.4. 2013-14 시즌

2013-14 시즌, 드디어 데릭 로즈가 복귀했으나, 시즌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무릎 반월판 부상으로 다시 장기간 아웃됐으며, 지난 시즌 로즈의 빈 자리를 잘 메꿔줬던 백코트진, 마르코 벨리넬리와 네이트 로빈슨이 각각 샌 안토니오와 덴버로 떠났고, 그 빈자리는 밀워키에서 온 스몰포워드 마이크 던리비 주니어와 2013 드래프티 토니 스넬과 에릭 머피가 채웠다. 최근 몇 년간의 멤버중에서 가장 빈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도 주전 선수들의 잔부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나 완전히 시즌 아웃된 로즈와 잔부상으로 꾸준한 출장을 하지 못하는 커크 하인릭으로 인해 1번 포지션이 완전히 붕괴. 결국 2013년 12월 토론토에서 웨이브당한 D.J. 어거스틴을 영입함으로써 빈자리를 메꾸었다. 이 시즌 완벽한 라인업으로 스타팅을 끊은적이 초반 몇 경기 이후 거의 없을 정도로 로스터가 부상병동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순위도 급 추락, 2013년 12월 24일 기준으로 동부 9위에 랭크되어있다. 불스의 몇몇 팬들은 스퍼스의 선례(로빈슨의 시즌 아웃→팀 던컨 픽→우승!)를 들어 차라리 탱킹으로 2014년 드래프트를 노리는게 어떻겠냐라고도 하지만, 이 시즌의 극심한 서고동저 현상으로 이마저도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결국 2014년 1월 7일 2004년부터 묵묵히 불스를 지켜온 스몰포워드 루올 뎅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앤드류 바이넘과 트레이드(바이넘은 트레이드 후 바로 방출-구단의 입장에선 거액의 사치세를 절감했다)시키면서 사실상 리빌딩 선언을 하게 된다. (이 외에도 마퀴스 티그를 브루클린의 솅겔리아와 트레이드, 마이크 제임스와의 FA 계약이 진행되었다.)불스 팬들이나 여타 NBA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팀의 탱킹을 예상했으나 이게 웬걸, 2014년 4월까지도 5할 승률을 유지하면서 동부 4위에 자리잡았다.원인은 건재한 프론트코트와, 그리고 이번 시즌에도 다시금 발휘된 주워 쓰기 능력. 방출된 플레이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D.J. 오거스틴의 준수한 플레이가 공격시 나름의 활로를 뚫어주고 있다. 톰 티보도 감독 또한 슈퍼스타가 누워버리든, 팀 내 프랜차이저가 떠나든 주어진 카드만 가지고도 게임을 만들어내는 신기에 가까운 용병술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럴 거면 왜 뎅을 보냈는냐며 아쉬워하는 팬들도 나오고 있다.

최종 성적은 48승 34패(.585)로 토론토 랩터스와 동률이었지만 상대전적 부족으로 동부 4위로 진출해, 5위인 워싱턴 위저즈와 붙게 되었다.

하지만 티보도 감독이 보여주었던 신기에 가까운 용병술이 위저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노아와 하인릭은 수비에선 좋았지만 공격에선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버렸으며 많은 선수들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자유투 및 슛 난조력을 보이면서 답답한 공격력을 보이고 말았다.

심지어 핵심 식스맨이었던 타지 깁슨이 1승 3패로 물러설 곳이 없었던 5차전 4쿼터에서 왼쪽 발목을 다치는 부상을 입어 경기에서 빠지면서 포워드진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채 1승 4패로 1차전에서 탈락하고 만다. 부저의 사면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그 남은 셀러리를 어떻게 활용하고 로즈의 건강한 복귀여부가 내년 불스의 성적을 좌우할 열쇠가 될 듯하다.

7.5. 2014-15 시즌

2014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개의 픽을 가지고 있던 불스는, 덴버의 11픽, 크레이튼 대학의 포워드 덕 맥더못을 얻기 위해 두개의 1라운드 픽과 미래의 2라운드 픽을 내어줬다(덤으로 앤서니 랜돌프도 덴버에서 얻어왔으나 바로 웨이브). 기본적으로 공격재능은 출중하나 수비문제와 백인의 폭발력 한계가 공존한 선수이기 때문에 팬들의 의견은 반신반의 수준. 2014년 여름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 나름 기대감이 늘어나는 중이다.

이후 FA 시장에서는, 카를로스 부저를 포기, 레이커스의 파우 가솔을 영입했다. 한창 시장에서는 카멜로 앤서니의 옵트 아웃 선언으로 인해 시카고행 가능성이 주목받았으나 프론트진에서 강력한 골밑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는지 타지 깁슨을 계속 안고가는 형태의 연봉액을 멜로에게 제시함으로써 심각한 페이컷을 유도했고, 결국 멜로는 뉴욕과 재계약 수순을 밟으면서 없는 일이 돼버렸다. 가솔의 영입 또한 팬들은 옆그레이드다, 업그레이드다로 반반으로 갈리는 지경. 다만 3년 2,200만달러의, 상당한 염가계약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선수지명권을 보유했던 니콜라 미로티치도 계약을 확정지었으며, 로즈의 빈자리를 한시즌 동안 훌륭히 메꿔준 D.J. 오거스틴은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했고, 로니 브루어, 그렉 스미스, 루 아문슨, 마이크 제임스 등 더부살이 로스터를 웨이브 혹은 트레이드로 처분함으로써 시즌 시작 로스터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데릭 로즈와 커크 하인릭이 모두 내구성을 장담할 수 없으므로 준수한 세번째 포인트가드가 중요했는데, 이는 덴버와 휴스턴에서 뛰었던 애런 브룩스를 영입하므로써 마무리했고, 포인트 가드 이트완 무어까지 영입하면서 만약 로즈가 또 다쳐버릴경우에도 1번 포지션에 구멍이 없도록 완전히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데릭 로즈는 시즌 시작 후 발목과 햄스트링등을 다치는 등 여전히 완전치 못한 몸 상태임이 드러났으나, 백투백 원정 불참이나 출장시간 관리 등으로 지난 두 시즌 처럼 시즌아웃 급 부상은 당하지 않으며 14년 12월말 현재 계속 출장중이다. 아무리 몸상태가 옛날같지 않더라도 여전히 날카로운 플로터와 스텝백 풀업점퍼로 정규시즌을 공략하고 있으며, 간간히 터지는 MVP급 플레이(클러치 3점 그것도 플로터로!)는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몸소 입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로즈보다는 스윙맨 지미 버틀러의 엄청난 성장이 돋보이는데, 기존의 에이스 스타퍼로써의 수비능력은 여전했고, 더불어 야투율이 거의 10% 이상, 평균 득점도 10점 가까이 증가하면서 공수 양면으로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미 조던'으로 불리면서 조던 은퇴 이후 계속해서 불스가 찾아 헤맸던 2번 포지션의 적임자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 특히나 평균 출장시간이 40분에 육박, 리그 1위로 과거 루올 뎅의 노예자리를 뒤이어받고 있다. 이정도면 '사실상' 불스의 에이스라고 봐야 할 정도. 그 밖에도 노아, 깁슨의 지원 속에 파우 가솔의 인사이드 공격력이 다시 부활하여 로즈의 공격력이 무뎌지더라도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크게 답답하지 않은 공격흐름을 보여주고 있으며, 애런 브룩스의 폭발적인 득점력, 그리고 유럽 MVP 출신 루키 니콜라 미로티치도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알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반면, 미로티치와 더불어 새 시즌에 합류한 덕 맥더못은 3월 현재 데릭 로즈, 지미 버틀러의 부상으로 인해 출장시간을 받고있으며, 나름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다.여름리그 때 좋은 활약을 보여준 토니 스넬은 시즌 초반 전혀 NBA급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으나, 중반에 3점슛이 눈에띄게 좋아지면서 식스맨 혹은 주전으로 훌륭한 제원임을 입증하고 있지만, 커크 하인릭은 스팟업 3점 이외에는 리딩능력저하와 본헤드플레이가 늘어나는 등 점차 노쇠화가 심해졌다. 이트완 무어가 최근 몇경기동안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2번 포지션의 수비력을 현재 버틀러 혼자서 꾸역꾸역 막아내는 형태라 티보도 감독의 무개념 출장시간관리에 혹시라도 로즈, 버틀러가 희생당할 경우 백코트진이 초토화될 가능성에 불스 팬들은 현재 팀의 좋은 모습에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2014-15 올스타로, 정말이지 그 동안 카를로스 부저에게 바래왔던 모든 것을 보여준 파우 가솔이 주전으로 뽑혔으며, 후보로 지미 버틀러가 선발됐다. 라이징 스타 챌린지의 세계 대표에도 니콜라 미로티치가 뽑혔다. 파우 가솔은 멤피스의 센터로 뛰고 있는 동생 마크 가솔과 나란히 올스타 주전으로 뽑혔으며, 형제가 올스타 주전이 된 것은 NBA 역사상 최초이다.

2015년 3월 16일 현재 40승 28패 센트럴 디비젼 2위를 달리고 있다. (동부 컨퍼런스 전체 4위) 클리블랜드는 트레이드와 르브론의 부상복귀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 컨퍼런스 2위를 차지한 반면, 3월 현재 데릭 로즈, 지미 버틀러, 타지 깁슨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연패를 당하고 있다. 이들 모두 3월 내로는 복귀하기 어렵다고 하여 밴치멤버들을 끌어쓰고 있다. 구단에서는 4월 복귀이기 때문에 로스터를 채울 필요가 없다 판단, 트레이드나 영입없이 로스터를 진행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이다. 게다가 파우 가솔의 전봇대 수비로 인해 인사이드 수비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으며[75], 노아가 매꾸기엔 역부족이다. 애런 브룩스, 토니 스넬, 니콜라 미로티치가 이들의 빈자리를 매우려 하지만, 밴치라는 이름의 한계로 역부족이다. 동부컨퍼런스 순위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지금의 전력상태로 과연 상위시드를 차지할 수 있을것 인가에 대한 우려가 깊다.

그래도 로즈나 버틀러의 부상이 시즌 아웃급 중상은 아니라 4월에는 출전하면서 50승 32패를 찍고 3위 수성에는 성공. 1라운드에서는 밀워키 벅스와 만나게 되었다. 3승을 먼저 거뒀다가 내리 2패하면서 고전하는 듯 했지만 6차전에서 최종스코어 120-66로 아예 박살을 내버리며 세미파이널에 올라간다. 상대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하지만 세미파이널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2승4패로 탈락했고, 탈락 후 베스트 5만 주구장창 돌린다는 비판을 받던 톰 티보도 감독을 경질했으며, 그후 1999년부터 4년간 시카고에서 선수로 뛰었던 아이오와 주립대 감독 프레드 호이버그를 감독으로 내정했다.

7.6. 2015-16 시즌

15년 드래프트에서는 파워포워드 바비 포티스를 픽, 넓은 슛레인지를 보유하여 서머리그때 좋은 활약을 펼쳤다. 재밌는건, 과거 마이애미팬이였는지 불스가 히트랑 플레이오프에 맞붙었을때 불스를 씹는 트윗을 날린바 있다. 물론 불스에 픽당하자마자 포티스는 로즈가솔에게 어떤 도넛을 좋아하냐며 재치있게 사과하는 트윗을 올렸다.

개막 전부터 시끌시끌 했었다, 데릭 로즈는 윤간 혐의로 피소를 당하지 않나, 미디어 데이 인터뷰 중 자식을 위해 FA시장을 생각하고 있다는 정신줄 놓은 인터뷰를 하질 않나 게다가 그 인터뷰 이후 이뤄진 팀 연습 중 타지 깁슨과 충돌로 안와골절로 또 부상, 로즈는 시즌을 안면마스크와 복시현상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 야투율은 3할대 중반으로 MVP출신이라곤 믿을 수 없을정도로 하락한 상태다. 복시현상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볼배급에 주력하는 모양이다.

반면 팀은 새 호이버그 감독의 입맛에 맞게 구조를 개편하면서 노아-가솔의 프론트코트 스타팅이 아닌 가솔-미로티치로 조아킴 노아를 벤치로 내려앉혔다. 호이버그식 시카고 불스 오펜스에 대한 글. 전임 티보도 시절 혹사를 당했고, 사실 그전부터 기량저하가 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터라 이번 조치는 어느정도 합리적이었으며, 실제로도 상대팀들에게도 벤치타임까지도 골밑 우위를 유지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등 수술로 몇 달 자리를 비운 마이크 던리비의 빈자리는 토니 스넬, 덕 맥더멋 둘이서 충분히 메꿔주고 있고, 특히 덕 맥더멋은 지난시즌 느리고 끈덕진 디펜스팀과 정반대로 빠르고 스페이싱을 추구하는 슈팅팀으로 변모한 불스의 팀컬러에 맞게 극적으로 반등하여 불스의 외곽을 책임져주고 있다. 맥더멋은 물론, 이트완 무어까지도 로테이션에 중용되어 로즈(브룩스)-버틀러(무어)-맥더멋(스넬)-미로티치(깁슨)-가솔(노아)의 균형있는 10인 로테이션을 보여주고 있다. 더이상 시즌 말에 지치거나 부상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생각 안해도 될 만큼 팀의 관리측면은 향상된 모습이다.

12월 20일, 지미 버틀러가 호이버그 감독에게 너무 부드럽다며 좀 더 강한 지도로 팀관리를 해달라며 쓴소리를 했다. 연이어 12월 22일 호이버그 감독이 우리 팀은 단결력이 부족하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거기에 조아킴 노아의 어깨 부상까지 겹치며 팀분위기가 좀 묘해졌다. 다행히 12월 25일 오클라호마 시티에게 대승을 거두긴 했다.

이 후 분위기를 다잡은 듯, 승수를 쌓아가며 동부 2위. 클리블랜드를 바짝 뒤쫓고 있다. 호이버그 감독의 공격 전술이 조금씩 맞아들어가고 있고, 데릭 로즈가 살짝 예전의 폼을 회복하면서 팀을 돕고 있다. 버틀러와 로즈가 동시에 부진한 날에는 가솔이 캐리를 한다.

이후에 다시 어째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패하다 주축선수들이 여럿 빠진 속에서 1월 15일 필라델피아 76ers와의 경기에서 지미 버틀러가 연장까지 49분을 뛰며 53득점으로 캐리하며 연패를 끊었다.

1월 23일, 감독 교체로 어수선한 클리블랜드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문제는 불스가 결코 경기력이 좋아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클리블랜드가 훨씬 더 심각하게 못했다.

게다가 12월까지 잘 돌아가나 싶었던 로테이션도 지미 버틀러의 혹사 등으로 티보도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 아니게 된데다, 부상선수까지 속출하면서 경기력 자체가 많이 떨어졌다. 3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8위 디트로이트와 3승 차이라 플레이오프 탈락이 유력하다.

최종성적 42승 40패 동부 9위로 시즌을 끝마쳤다.

결국 시즌 종료 후 팀의 주축선수인 데릭 로즈뉴욕 닉스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데릭 로즈, 가드 저스틴 할러데이와 2017년 드래프트 2차 지명권을 닉스로 넘기고, 센터 로빈 로페즈, 가드 호세 칼데론과 제런 그랜트를 받아왔다.

8. 리빌딩

사실 밑의 기타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조던 시절에도 화끈한 투자를 한 적이 없다.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는 둘 다 드래프트로 키운 선수들이고, 심지어 그랜트는 몸값이 높아지자 바로 놓쳤다. 피펜도 여러 번 팔려고 했으나 조던 때문에 못 판거고. 또한 데니스 로드맨은 백업센터 하나 주고 데려온 선수다. 실상 불스가 조던 왕조 시절 지갑을 제대로 연 적은 딱 세번 뿐인데 첫번째는 94 시즌 종료 후 조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시 수준급 득점원이었지만 부상으로 하락세이던 론 하퍼를 데려온 것, 96 오프시즌 당시 로드맨의 재계약을 위해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액이던 9백만불을 지른 것, 그리고 조던을 마지막 두 시즌동안 어마어마한 거액인 도합 6천3백만불을 주고 잡은 것 뿐이다. 전체적으로 2차 3연패 당시엔 그나마 투자를 한 편이지만 빅마켓이라는 이름값에는 모자라다. 98 시즌 당시 로드맨의 노쇠화가 본격화되어 벤치에서 많이 출장할 정도였는데 별 보강이 없었다. 게다가 피펜도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날려먹고 플레이오프에서 극도의 공격부진에 시달려 조던에게 과부하가 왔다.

여담으로 얼핏 보기에는 2차 3연패 때는 조던의 연봉 때문에 투자를 못 한 것이라고 볼수 있으나, 당시 조던은 1년 계약을 두번 한 것이고 샐러리캡을 넘긴 상태에서 얼마든지 계약할 수 있는 래리버드 권리가 있었다. 즉, 다른 선수를 잡고 나서 조던과 계약한다면 충분히 보강이 가능했다. 물론 조던의 연봉이 워낙 어마무시했기에 2차 3연패는 그나마 정상참작이 가능하지만 1차 3연패 때까지는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존 팩슨은 당시 모든 NBA 주전 PG 중 가장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였으며, 불스 오기 전엔 후보하던 선수였다.

8.1. 2016-17 시즌

로즈와 노아가 뉴욕 닉스로, 가솔이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떠나게 되면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불스멤버가 해체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스 구단이 버틀러의 트레이드도 살짝 시도를 해보았다. 구단측의 버틀러에 대한 대접이 계속 오락가락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라존 론도를 2년 2,800만 달러에 영입했다.

드웨인 웨이드가 2년 4,750만 달러에[76] 불스 유니폼을 입는다는 놀라운 뉴스가 나왔다. 웨이드 영입을 위해 호세 칼데론과 마이크 던리비를 각각 LA 레이커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 하며 샐러리캡을 비워야 했다. 이로써 불스는 이름값만으로는 초호화 백코트를 구성하게 됐다. 그러나 버틀러-웨이드-론도 셋 다 3점슛 구사능력이 신통치 않고 페인트존 공략을 많이 하는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 과연 셋이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에다 밀워키에게 토니 스넬을 내주고 마이클 카터 윌리엄스를 얻어오는 트레이드까지 이어졌다. 리그의 대표적인 슛없는 가드를 또 모으면서 프런트가 예고한 다음 행보가 엘프리드 페이튼, 리키 루비오 같은 슛없는 가드 영입이 아니냐는 농담이 나오는 상황이다.

버틀러가 한단계 스텝업하고 웨이드 역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으나, 시즌 전 예상대로 팀은 3점 슛 시도, 성공률, 메이드 부문에서 모두 리그 꼴등을 찍고 있다. 2016년 성적은 16승 18패.

2017년 초에는 다소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어찌저찌 전반기를 28승 29패로 마무리했다. 유독 TNT 전국방송에서 홈경기를 중계할시 패배하지 않는것이 특이점. 샌안토니오 스퍼스, 보스턴 셀틱스 같은 상위권 팀들을 전국방송 홈경기에서 잡았다.

트레이드 마감일 전 지미 버틀러의 트레이드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트레이드 소식은 없었다. 버틀러 외에도 동부 각 팀의 주축 포워드들의 트레이드 설들이 돌았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는데 버틀러는 잔류했으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선수 둘+2018년 2라운드 지명권을 내주고 세 선수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문제는 트레이드 대상의 무게 차이가 너무 심각해서 불스 프런트의 향후 구단 운영 방침 및 딜 능력에 혹독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불스에서 썬더로 보낸 선수는 타지 깁슨과 덕 맥더멋인데 타지 깁슨은 불스의 파워포워드 주전이자 조아킴 노아의 뉴욕 이적 후 불스 인사이드의 버팀목이나 마찬가지인 선수고 덕 맥더멋은 이번 시즌 NBA 구단 중 3점슛 지표와 관련 전 부문 최하위를 기록중인 불스에서 니콜라 미로티치와 더불어 희귀한 3점슛 메이드 능력 보유자이자 준수한 공격옵션인 유망주다. 주전 파워포워드와 로테이션 스몰포워드/슈팅가드 겸 주요 식스맨을 내주고 받아온 자원이란게 썬더도 더 이상 육성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는 웨스트브룩과의 댄스 파트너 역할 이외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백업 포인트가드 카메론 페인, 3점 전문슈터라기에는 이번 시즌 3점슛 관련 지표가 너무나 처참한 앤서니 모로우, 센터 겸 포워드 조프리 로베르뉴다. 그나마 로베르튜의 사이즈, 운동능력과 향후 발전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는 있겠지만 팀의 핵심자원을 내주는 출혈을 하면서 정작 팀의 약점은 딱히 보강된것이 없는 누구도 불스가 이득이라고 말할 수 없는 트레이드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목적이 모호한 (탱킹도 아니고 샐러리캡 터는 용도도 아니고 억지로 이유를 찾아본다면 FA로 풀리는 킵슨을 카드로 사용한 것 정도다.) 트레이드를 하고 이번 시즌은 버린게 아닌가 했는데 웬걸, 트레이드 이후 연승을 달려 5할 승률을 넘기고 있다. 물론 상대가 르브론 제임스 가 결장한 클리블랜드[77] 등이긴 했지만 이전과는 확연하게 개선된 3점슛 관련 지표가 눈에 들어온다. 새로 영입된 자원들의 활약상은 딱히 돋보이는게 없지만 잉여자원으로 분류되던 댄젤 발렌타인의 재발견, 니콜라 미로티치의 컨디션 회복 등 호구잡혔다는 평가를 받는 트레이드르 통해 나름의 교통정리를 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펠리시오 등 신예 인사이드 자원들에게 좀 더 기회를 부여할수 있게 된 점도 긍정적인 면. 그러나 시즌 초반 트렌와 동떨어진 로스터 구성을 하고도 3연승을 내달려 팬들을 의아하게 했던 전력을 생각해보면 트레이드의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7년 3월 2일 홈에서 TNT가 전국방송을 하는 가운데 전체 1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만났다. 케빈 듀란트가 부상으로 빠졌다지만 설마 불스의 TNT 과학이 2015년 4월 이후 정규시즌 연패가 없는 골든스테이트를 상대로 이어질까 했지만, 귀신같이 94-87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정규시즌 TNT 전국방송 홈경기 19연승.

그러나 골든스테이트전 승리 이후 5연패를 끊어버리면서 하락세를 보였고 샬럿을 잡아내며 연패는 끊었지만 다시 멤피스에게 패배하며 순위가 10위까지 밀리고 말았다. 물론 플레이오프 진출이 여전히 가시권에 들어는 있지만 7위 밀워키, 그리고 8위 디트로이트와 승차 없는 9위 마이애미가 상승세를 타 버린 상황이라 부담스럽게 되었는데, 일단 시카고로서는 최대한 많은 경기를 이긴 뒤 7-8위권에 있는 밀워키, 디트로이트, 마이애미의 추락을 바래봐야 하겠지만 버틀러가 부진하고 웨이드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당해버린 걸 보면 쉽지 않다.

그런데 웨이드가 아웃된 후로 팀 전체가 상승세를 타고 디트로이트와 인디애나의 DTD가 더해져 동부 7위를 탈환했다.

이후 뉴욕 닉스브루클린 네츠에게 원정에서 발목이 잡히는 의적 본능이 나와 아슬아슬했으나 다행히 마지막에 정신을 차리고 홈에서 올랜도, 브루클린을 압살하며 41승 41패 동부 8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1라운드 상대는 동부 1위 보스턴 셀틱스.

라존 론도의 플레이오프 모드와 인사이드 우세를 앞세워 원정 1,2차전을 잡고 업셋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론도가 2차전 이후 손가락 골절로 시리즈 아웃되어 공격 흐름이 순식간에 죽어버렸으며 보스턴의 스몰 라인업의 기동력을 따라가지 못하며 내리 4연패를 당하고 탈락했다.

9. 잭 라빈의 시대

9.1. 2017-18 시즌

드웨인 웨이드가 팀에 잔류한다는 결정을 내린 가운데, 팀의 코어가 될 것으로 보였던 지미 버틀러, 그리고 2017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지명권을 결국 미네소타와 트레이드했다. 버틀러의 대가로 받은 선수들은 잭 라빈크리스 던, 그리고 2017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지명권이다.

버틀러의 트레이드는 수많은 의혹만 남겼는데, 관련한 기사# 에서 언급하듯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의문을 낳고 있다. 지미 버틀러의 계약 규모와 버틀러를 내주고 받아온 라빈의 기대 가치 및 활용가능한 기간, 크리스 던의 가치 등등 단순히 트레이드 건에 한정해서 평가를 내린다고 해도 손해가 막심하고 트레이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시카고의 리빌딩 방향 역시 지난 시즌에 이어 오리무중 이라고 밖에 표현하기 힘든,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리빌딩이 진행되고 있다. 그 와중에 무려 9명의 가드가, 그것도 비슷비슷한 스타일에 트레이드 카드로도 활용하기 힘든 애매한 가드진만 모인 로스터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결국 라존 론도와 아이재이아 캐넌을 포기했다. 플레이어 옵션을 사용, 잔류한 드웨인 웨이드 외에는 팀의 주축이 될만한 선수가 없고, 그 웨이드마저도 선수시절의 황혼기 단계라 다음 시즌은 작정하고 탱킹 모드에 들어가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가능.

이후 백업 센터-포워드 정도의 자원이자 지난 시즌 트리플더블 파괴자라는 특이한 이력으로나 유명한 크리스티아노 펠리시오에게 4년 3200만불의 계약을 안겨 라인스도프-팩슨-포먼으로 이루어진 프론트진의 머릿속을 더 의심케 만들었다. NBA 연봉 규모에 인플레이션이 있다고는 하나 펠리시오를 팀내 연봉 3위로 올려준 프런트의 행태를 보면 버틀러 측의 시카고에 대한 비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프런트의 행태에 질렸는지 당초엔 시카고에 남는다고 했던 웨이드마저도 계약 해지를 했고, 웨이드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계약을 체결하여 다시 르브론과 함께 뛰게 되었다. 결국 불스는 과거 필라델피아가 걸었던 길을 걷게 되었으나, 이번 시즌부터 로터리 픽 추첨 확률이 변경이 되어, 자칫 더욱 더 암울해 질 수도 있다.

안그래도 우울한 시즌이 예상된 불스인데, 개막 직전에 팀의 주포 역할을 해줘야 할 포워드 니콜라 미로티치가 팀 동료인 포워드 바비 포르티스한테 맞아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단순히 몇대 맞은게 아니라 안면골절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불스팬들 입장에선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7번픽으로 새롭게 합류한 루키 라우리 마카넨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팬들조차도 마카넨과 라빈의 미래를 기대하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로티치가 복귀하고 원투펀치 듀오의 힘으로 뜬금없이 6연승을 달리고 있다.

2018년 1월 16일 기준 17승 27패를 기록중이다. 초반 20경기 구간까지는 독보적인 탱킹레이스 1위였지만 지금은 탱킹레이스 9위로 최근 21경기 성적이 무려 14승 7패다. 미로티치를 기용하다가 안하는 상황이 몇번 보이면서 트레이드 루머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호이버그 특유의 용병술 호이볼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장신의 신인 라우리 마카넨의 기대 이상의 활약, 미로티치의 포텐셜 폭발, 지미 버틀러 트레이드의 댓가로 받아온 터지지 않던 유망주 크리스 던의 성장, 큰 기대 없었던 저스틴 홀리데이, 댄젤 발렌타인 등의 쏠쏠한 활약이 겹치면서 눈에 띄는 성적 상승세가 보이고 있다. 부상으로 로스터에서 제외되어 있든 잭 라빈도 출장시간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가세해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전력이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올스타전 종료 이후, 구단에서 대놓고 탱킹을 제창하면서 패배가 계속되고 있다. 베테랑 센터 로빈 로페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예 벤치에 앉혀버렸으며[78] 교묘하게 주전 라인업 중에 한 명씩을 제외하면서 프로페셔널한 탱킹을 하고 있다. 애틀랜타, 올랜도, 피닉스, 뉴욕, 새크라멘토, 멤피스 등 탱킹경쟁자가 상당히 많은 시즌.

결국 노골적인 탱킹을 하던 시카고 불스에 사무국에서 경고가 주어졌다. 하지만 좀 더 눈치를 보게 되었을 뿐, 패배 레이스에서 이탈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후보선수 위주의 라인업을 은연중에 밀고 있으며, 애틀랜타가 시전하던 타임아웃 멸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즌 최고의 패배 전문가로 등극한 멤피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막판 3점슛에 반쯤 고의적인 파울을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탱킹력을 보여준 상대에게 111-110 한점 차 승리를 거두면서 도리어 순위가 올라갔고 탱킹 7총사의 한 자리를 뉴욕에게 내주고 말았다.

최종 성적은 27승 55패. 같은 성적의 새크라멘토와의 타이브레이커를 반영하여 잠정적 6순위의 픽 순위를 확보했다.

9.2. 2018-19 시즌

2018-19을 앞둔 오프시즌, 시카고 불스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7순위를 받으며, 블루워커 빅맨 타입의 웬델 카터 주니어, 악성 계약자 오메르 아식을 흡수하면서 얻은 22순위 신인 픽으로 NCAA에서 20-7.7-3.5를 기록한 3&D 자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여겨지는 챈들터 허치슨을 영입하면서, 쏠쏠한 신인수급을 이루었다. 여기에 제한적 FA였던 잭 라빈에게 4년 8천만불을 지급하며, 잡았다(!) 여기에 자바리 파커를 FA로 영입(2년차 팀 옵션)하며, 불과 두 시즌 전 론도-웨이드-버틀러-로페즈라는 노장들로 꾸려진 라인업이 크리스 던-잭 라빈-자바리 파커-라우리 마카넨-로빈 로페즈로 꾸려지며 상당히 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9월 28일 라우리 마카넨이 연습 도중 우측 팔꿈치 인대부상을 입으며, 6~8주간 결장했고, 웬델 카터 주니어 역시 왼쪽 어깨 부상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은 시카고 불스가 최하위가 될 팀 3팀중 하나로 꼽는 상황이다.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고 5승19패 컨퍼런스 14위인 상태에서 프레드 호이버그 감독이 경질되었다. 후임은 수석코치 짐 보일렌. 전반기 성적은 14승 44패로 동부 13위.

트레이드 데드라인 즈음해서 자바리 파커, 바비 포티스, 2라운드픽과 워싱턴의 오토 포터 주니어를 트레이드했다. 대형 계약후 폼이 떨어진 선수를 다소 비싸게주고 데려왔다는 평가와 미래 플랜에 없는 선수들로 약점인 3번 자리를 젊고 검증된 선수로 보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오토 포터 주니어는 트레이드 이후 스탯이 수직상승하며 시카고의 경기력을 다소 끌어올렸다.

9.3. 2019-20 시즌

시즌 45경기를 마친 현재 16승 29패로 동부 10위, 디비전4위로 시즌 전 목표로 했던 플레이오프 진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승률 5할 미만 팀을 상대로는 나름 접전도 펼치고 가끔 잡아 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팀들에게는 승률 자판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팀의 3번과 백코트 수비 중심을 잡아야 할 오토 포터 쥬니어가 시즌 초 부터 발 부상으로 기약없는 장기 결장 상태가 되어 토마스 사도란스키[79], 잭 라빈, 크리스 던으로 이어지는 3가드 시스템으로 시즌을 운영하고 있다. 3가드의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팀 스틸 5위, 상대 턴오버 유발 1위, 상대 턴오버에 이은 득점 1위로 스틸 및 그로 부터 이어지는 속공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크리스 던잭 라빈이 상대 3번을 막게 됨에 따라 피지컬이 우수한 3번이 있는 팀에게는 탈탈 털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와 팬들이 시즌 전 3번 포지션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구장창 지적했지만 오프시즌 때 또 가드만 잔뜩 모으면서 오토 포토 쥬니어가 뻗어버리자 주전 3번을 볼 선수가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80]

거기에 1월 들어 팀의 주전 센터이자 수비 기둥인 웬델 카터 쥬니어가 발목 부상으로 결장하고, 백업으로 올라온 신인 센터 다니엘 가포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다 손가락 탈구로 아웃 되면서 라우리 마카넨, 루크 코넷[81] 두명의 백인 스트레치형 빅맨이 프론트 코트를 맡게 되어 웬델 카터 복귀 전 까지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두명다 기동력이 떨어지고 몸싸움과 수비에 약하다.) 결국 1월 중순 주전 라인업은 토마스 사도란스키와 잭 라빈, 크리스 던 3가드에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한 스트레치형 7ft 빅맨 두명이 골밑을 맡는 기묘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공격에서는 잭 라빈의 3점이 터지는 날은 강팀과도 막판까지 접전이 이뤄지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1~2쿼터 준수한 모습을 보이다 3~4쿼터에서 점수가 벌어지며 지는 패턴이 반복 중. 보일런 감독의 3~4쿼터 로테이션 운영이나(3쿼 후반~4쿼터 초반 중요한 접전 상황에 주전 멤버 투입 시점을 놓쳐 이미 경기가 넘어간 상태에서 주전을 넣는 경우가 꽤나 많다.) 상대 흐름을 끊는 타임아웃을 부르는 타이밍 등에서 아쉬운 모습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팀의 공격전술도 특출난 색깔이나 개성이 없는 상황이다.

시즌 중반까지 볼 때 긍정적인 부분은 에이스 잭 라빈이 전시즌 대비 평균득점을 끌어올리며 39%에 육박하는 3점슛 성공률을 보이는 등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82] 약점으로 지적 받던 수비도 조금은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여전히 팀수비 때 로테이션을 헤매기는 하지만 전보다 빈도수가 줄었다), 1라운드 7픽으로 뽑은 가드 코비 화이트가 이름답게[83] 난사기질이 있지만 폭발력을 보여주며 교체멤버의 주포로 나름 활약해주고 있다는 점, 2라운드로 뽑은 빅맨 다니엘 가포드가 준수한 운동능력과 공격 리바운드 능력으로 2라운드 신인 답지 않게 20점 이상을 기록한 적도 있고 웬델 카터 쥬니어 부상 이후 주전으로 나설 때는 12~15점 8~10리바운드를 해주는 등 기대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점 등이다.(단점은 슛거리가 짧고 3점은 아예 없다. 신인 빅맨 답게 파울관리도 미숙한 편이다.)

부정적인 부분은 잭 라빈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면이 큰 공격부분과 너무나 얇은 로스터 뎁스. 잭 라빈이 상대 수비에 막히거나 기복을 탈 때 다른 멤버가 뜬금포로 터져주지 않으면 여지없이 팀 전체가 수준이하의 공격력을 보이며 4쿼터에 탈탈 털리는 패턴이다.[84] 거기에 팀의 2옵션이자 기대주였던 라우리 마카넨이 성장은 커녕 올시즌 기복도 심해지고 평균득점이 4점이나 내려갈 정도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85] 잭 라빈에 대한 의존도와 부담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황. 결국 공격에서 라빈 원맨팀에 가깝게 되어버렸는데 잭 라빈이 마이클 조던급의 공격력을 꾸준히 보여주며 본인에게 수비가 몰리면 팀원에게 찬스를 만들어 줄 레벨도 아니다.[86]

전체적인 팀 로스터가 허약한 것도 큰 약점인데 빅마켓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선수영입 능력과 로스터 구성 능력은 올시즌도 역시 한숨을 자아내고 있다. 오토 포터 쥬니어의 장기 결장 상태에서 3번 포지션의 경쟁력은 리그 최하로 봐도 무리가 없으며 다른 포지션도 정상적인 팀이면 13인 로스터에도 끼기 힘든 G리그나 2Way 계약 출신 선수들이 팀의 주요 교체멤버로 나오거나 선발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한숨만...

결국 그간 99% 가깝던 홈관중 동원률이 90%까지 떨어지고 중계권료 수익도 급감하면서 1월 중순 즈음 ESPN 라디오를 통해 시즌 후 경영진 등 프론트 물갈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팬들은 경영진 뿐 아니라 무색무취의 감독 등 코치진의 교체도 원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리그가 중단 된 사이, 팬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주었던 프런트 멤버들인 부사장 존 팩슨을 구단 고문으로 영전 하고 단장 가 포먼은 해임했으며 공석이 된 부사장 자리엔 덴버 너기츠 단장으로서 능력을 보여준 아르투라스 카르니쇼바스를, 단장자리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어시스턴트 GM이었던 마크 에버슬리를 영입했다. 리그가 중단되어 우울한 와중에도 불스 팬들은 드디어 팀이 정신을 차리나 하는 희망을 갖고 오프시즌 아닌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후 시즌 재개가 예고됐지만 하위 8개 팀중 하나인 불스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아 시즌을 조기 마감하게 됐다. 시즌 종료 후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던 감독 짐 보일런이 드디어 해고당했으며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순위보다 높은 4번픽에 당첨되는 행운도 따랐다.

후임 감독으로는 그간 OKC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던 빌리 도노반이 부임하여 모처럼 A급 명장이 팀을 이끄는 모습 또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9.4. 2020-21 시즌

3월 28일 기준 19승 24패로 동부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잭 라빈 혼자서 게임을 끌고 가고 있다는 평이 나오는 상황. 잭 라빈도 이 공로를 인정받아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불스 선수 이후로는 지미 버틀러 이후 4년만. 그래서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했는데 웬델 카터 주니어오토 포터 주니어를 내주고 올스타 빅맨인 니콜라 부세비치를 데리고 온다! 시카고 프런트진의 교체 효과가 제대로 드러난셈이다.

그러나 부세비치 영입 이후 3승 8패를 기록 하고 심지어 부세비치의 친정 올랜도에게 패배하는 굴욕을 당했다. 4월 15일 기준 토론토, 워싱턴과는 한경기, 클리블랜드와는 2경기 차이가 나기 때문에 10위 사수가 아슬아슬해졌다. 그리고 이후 에이스인 잭 라빈이 COVID-19 프로토콜로 인해 경기를 출장하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연승중인 워싱턴에게 단독 10위자리를 내주었다. 특히 앞으로 남은 12경기 중 에서 2경기를 제외하면 다 플레이오프 진출권이고 심지어 이 중 절반은 밀워키, 브루클린, 필라델피아를 상대해야하는 일정이기에 플레이 인 경쟁에 꽤 불리한 상황이다.

결국 10위 워싱턴 위저즈와의 승차가 3경기 차이가 나며 플레이 인 경쟁에서 멀어진 상황이다. 남은 경기 상대 팀들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많이 이기고, 적게 져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팀의 주축 선수인 잭 라빈이 COVID-19 프로토콜으로 빠진데 이어 5월 2일 애틀랜타전에서 니콜라 부세비치가 오른쪽 내전근 통증으로 경기 직전에 결장하며 108:97 경기를 패배했다. 이로 인해 10위 경쟁에 패색이 짙어진 상황.

이후 5월 7일 샬럿전엔 부세비치가 복귀, 8일 보스턴전엔 잭 라빈이 복귀 하면서 2연승을 했다. 하지만 5경기 남은 상황에 10위의 페이서스랑 3경기 차이다 보니 페이서스가 잘해버리면 기적을 노리기 힘든 상황.

결국 플레이인을 경쟁하고 있는 팀들이 승리하면서 5월 15일 탈락이 확정되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31승 41패로 동부 11위.

황소에게는 잭 라빈의 공백기가 매우 컸다.

10. 라빈·드로잔·부세비치 빅3 결성

10.1. 2021-22 시즌

오프시즌 드로잔의 합류로 잭 라빈, 더마 드로잔, 니콜라 부세비치를 필두로 한 BIG3를 구성하여 동부의 신흥 강자가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오프시즌에 론조 볼알렉스 카루소를 데리고 왔다. 특히 수비면에서 잭 라빈과 부체비치의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는 좋은 영입이며 확실하게 플옵권에 도전할 만한 전력이 갖추어졌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8월 3일 사인 앤 트레이드로 테디어스 영알파룩 아미누, 2025년 1라운드 보호픽 1장과 2022년, 2025년 2라운드 픽 1장을 보내고 더마 드로잔을 데려오는데 성공하였다. 올 시즌은 이 향상된 스쿼드로 플레이오프 이상의 성적을 올려 만기계약자인 라빈에게 팀의 플랜에 대한 신뢰를 주고 재계약하려는 운영 방침을 세우고 있다.

69승 13패 시즌이었던 1996-97 시즌 이래 최초로 개막 4연승을 달성하며 쾌조의 출발을 하고 있다. 론조 볼과 드로잔이 가세한 공격력이 한층 다이내믹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개막 후 10경기 동안 7승 3패를 기록하며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특히 꽤 큰 점수차의 경기도 뒤집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몇몇 부분의 보완만 이루어지면 올해 기대를 해볼만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중. 드로잔과 라빈의 득점이 고르게 나오고 론조 볼, 알렉스 카루소 등 영입자원도 시너지를 내면서 상당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드로잔의 합류로 공격에서의 비중이 줄어든 부체비치의 슛감각이 올라오고 코비 화이트가 벤치에 합류하면 더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줄 것이 기대된다. 올해 PF 포지션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패트릭 윌리엄스의 손목 부상으로 인한 시즌아웃이 뼈아프지만 다행히 대신 선발로 출장중인 자본테 그린이 분전중이고 로컬보이 신인 아요 도순무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동부 2~3위권을 지키며 순항하던 중 12월에 들어서며 선수단이 무더기로 코로나에 확진되며 주춤하고 있다. 무려 10여 명이 코로나 프로토콜에 들어가며 최악의 경우 경기 연기까지 고려해야 할 지경이다.

35경기를 치른 현재 9연승을 기록하며 25승 10패로 동부지구 선두권에 있다가 3연패를 기록하면서 동부지구 선두권이 위태해지기 일보직전이다.

2월 1일(현지시간) 올랜도 매직과의 홈경기에서 126:115로 승리하면서 32승 18패가 되었다. 불스 구단은 SNS에서 지난 시즌 승수를 넘었다고 직접 언급했다.

2월 17일 새크라멘토 킹스전에서 드로잔의 38득점 활약을 앞세워 125-118로 승리하며 38승 21패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이후 올스타 브레이크동안 인디애나에서 웨이브된 센터 트리스탄 탐슨을 영입하며 빅맨진의 뎁스를 강화했다.

후반기 불스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컨텐더라고 볼 수 있는 팀과의 전적이 필라델피아 4전 전패, 마이애미 4전 전패, 밀워키 3전 전패, 피닉스 2전 전패, 골든스테이트 2전 전패, 그리즐리스 2전 전패로 강팀 상대로 전혀 경쟁력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막바지인 현재 승률 6할 이상인 팀 중 불스에 패한 팀은 셀틱스 (1패) 뿐이다.

이후 후반기 내내 눈이 썩는 경기력으로 일관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권마저 위험했으나 다행히 플레이오프에는 무사히 진출했다. 하지만 1라운드 상대가 이번 시즌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밀워키였고 결국 2차전만을 잡아낸 이후 나머지 경기는 완전히 밀려버리며 1승 4패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으로 마무리했다.

10.2. 2022-23 시즌

시즌을 앞두고 우승을 목표로 모았던 빅 3의 한계를 보강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라빈과 드로잔의 부족한 수비를 커버해주기 위해 영입했던 카루소와 론조 볼이 부상에 시달리며 후반기 수비가 완전히 붕괴되었기에 수비면에서의 영입이 필요하다. 또한 코비 화이트나 라빈을 제외하면 석점 슈터가 전무하기에 슈터에 대한 보강이 필요하며, 부체비치 원빅만으로는 골밑에서의 한계가 명확했다. 따라서 4번 포지션에서의 보강 역시 필요하며[87] FA가 된 라빈의 재계약 역시 시급한 과제이다. 문제는 만약 라빈에게 맥스 계약을 안겨주며 잔류시킬 경우 샐러리에서의 빈자리가 부족해 저 모든 것을 충원하기에는 버거우며 그렇다고 마땅한 트레이드 자원이나 픽이 남아있는것도 아니라 약점을 보강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

우선 FA로 풀리던 라빈은 레이커스 등과 진하게 연결되며 설마하는 불안감을 노출했으나 다행히 재계약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맥시멈 재계약에 서명하였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수비와 에너지레벨이 좋은 가드 데일런 테리를 영입하며 가드진을 보강했다. 백업 포인트 가드로 고란 드라기치를 영입했으며 또한 백업 센터로는 안드레 드러먼드를 영입하며 골밑을 보강하는데 성공했다. 계약이 2년 남았던 빌리 도노반 감독과 계약을 연장했다.

정규시즌에서 시즌 중반 6할 중반대 승률을 기록했던 전 시즌에 비해 4할대로 승률이 떨어지며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다. 론조 볼은 부상, 잭 라빈은 재계약 후 예년보다 크게 부진한 편이고 사실상 빅 3 중 제 몫을 다하는 선수는 드로잔이 유일한 셈. 결국 5할 승률이 무너지면서 플레이인 토너먼트 진출을 목표로 삼아야 될 정도로 팀이 망가져 가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빌리 도노반 감독과의 재계약에 대한 불만, 맥시멈 계약 후 부진한 라빈을 남길 수 밖에 없다면 만기 계약인 부체비치와 트레이드 가치가 남은 드로잔을 트레이드하며 리빌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 등 부정적인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 불스의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수비이지만 그 외에도 높은 드로잔 의존도 등으로 인하여 공격적으로도 기복이 매우 심하다.

그래도 시즌 후반 라빈이 많이 살아나며 팀 성적이 더 떨어지지는 않았고, 최종 성적 40승 42패로 10위로 플레이인 토너먼트 막차를 탔다.

플레이인 10위 결정전 토론토 원정에서 후반에만 30점을 득점한 라빈을 앞세워 19점 차 열세를 뒤집고 승리했다. 여담으로 이 경기를 관전한 드로잔의 딸이 토론토의 자유투 시도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방해했는데, 토론토의 자유투 성공률이 50%(18/36)에 그치며 시카고 공식 SNS 선정 MVP가 되었다. 7번 시드 결정전에서 패배한 마이애미와 최종전을 펼치게 된다.

4월 15일(현지 날짜 14일) 캐세야 센터에서 치른 경기가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마이애미 히트와 8번 시드를 놓고 접전을 펼친 끝에 클러치 타임 싸움에서 밀려 마이애미가 플옵에 나가고 시카고는 탈락하여 시즌을 마감했다.

10.3. 2023-24 시즌

론조 볼이 시즌 아웃이 확정되었다. 일상생활도 어렵다는 스티븐 A. 스미스의 말을 본인이 영상을 올리며 반박했으나 부상이 심각한 것은 맞는 듯 하다.

재계약. 안드레 드러먼드, 아요 도순무, 코비 화이트
OUT. 패트릭 베벌리, 마르코 시모노비치, 데릭 존스 주니어
IN. 제본 카터, 아다마 사노고, 테리 테일러

스케쥴 발표를 게임보이 컬러포켓몬스터 게임 스타일로 발표했다.

시작하자마자 동부 하위권으로 처지면서 리셋이 임박할 거라고 예상되었으나 잭 라빈이 12월 초 3~4주 부상으로 결장하자 코비 화이트가 포인트가드를 보고 팀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동부 상위권팀들을 계속해서 잡아내면서 6승 3패라는 상승세를 탔다. 문제는 팀의 족쇄에 가까운 라빈이 복귀할 타이밍인 것이 문제. 계속해서 트레이드썰이 나오고 있다.

라빈이 발목 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이 확정되었고, 팀은 드로잔과 부체비치, 화이트, 카루소, 드러먼드 등의 활약으로 오히려 중위권으로 순위를 끌어올려 39승 43패 동부 9위로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인 토너먼트에서는 10위 애틀랜타를 제압하고 8위 마이애미와 8번 시드를 놓고 격돌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그랬던 것처럼 마이애미에게 8번 시드를 내주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결국 불스의 빅3는 3년간 1라운드 진출 1회에 그치며 또 한 번의 기대 이하의 시즌 성적을 받아들었다. 화이트가 MIP 투표 2위에 오르며 잠재력을 개화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 시즌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드로잔과는 협상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며, 시즌 중반부터 라빈 트레이드설이 계속 흐르며 가뜩이나 없는 선수 가치가 더 떨어진 가운데 프론트는 도노반 감독을 재신임할 의향을 비추는 등 또다른 지지부진한 오프시즌이 예고되고 있다.

11. 빅3 해체, 리툴링의 시간

11.1. 2024-25 시즌

지난 시즌 팀의 핵심이였던 더마 드로잔을 킹스로, 알렉스 카루소를 오클라호마로 보냈다. 에이스인 드로잔과 팀의 감초같은 존재인 카루소가 빠졌기에 불스는 지난번보다 더 힘든 시즌을 보낼거라 예상하는 팬들이 많다. 실제로 별다른 트레이드가 없으면 시즌을 지난시즌 부진했던 잭 라빈니콜라 부세비치만으로 버텨야해서 걱정하는 팬들이 상당하다.

그래도 카루소 트레이드로 데리고 온 조쉬 기디, 지난 시즌 스텝업한 코비 화이트, 두각을 드러낸 신인 마타스 부젤리스 등 좋은 신예들과 베테랑 라빈, 부세비치도 건강하다면 플러스 요소가 되어주는 선수들이기에 시즌 전망이 마냥 나쁘지는 않다.

[1] NFL 팀 시카고 베어스의 창단자 조지 할라스가 구단주를 맡았다.[2] 해당 팀은 빅맨 조지 마이칸을 배출했다.[3] 팀의 상징이 숫사슴이었다. 현재 NBA에서 숫사슴을 상징으로 하는 팀은 밀워키 벅스.[4] 현존하는 그린베이 패커스라는 미식축구팀이 쓰는 팀명과 같다.[5] 감독(통산 5년)이나 선수 커리어(3회 올스타)보다는 지역해설자로서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받았던 분이다. 특유의 맛깔난 해설과 대인배적 성품으로 불스팬들, 구단 관계자들에게 평판이 좋았으며 마이클 조던 항목에 나와 있듯 조던과도 친했다. 유나이티드 센터 바깥에 동상도 세워졌을 정도.[6] 초대 피닉스 선즈 단장 및 2대 구단주. 토론토 랩터스 단장을 지낸 브라이언 콜란젤로가 그의 아들이다.[7] 머터리얼 서비스 컴퍼니 창업주 헨리 크라운(1896~1990)의 아들. 1959년에 그 회사를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합쳤다.[8] 그해 드래프트에선 랄프 샘슨과 클라이드 드렉슬러, 썰 베일리, 데릭 하퍼, 존 팩슨 등 쟁쟁한 스타들이 나왔다.[9] 정확히 말하면 최상급 유망주였다. 당시 주전 슈팅가드는 짐 팩슨(존 팩슨의 형)이었기 때문. 올스타 출신 2번에, 바로 전년도에 뽑은 훌륭한 유망주까지 같은 포지션에 있으니 조던을 뽑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10] 실제로 매버릭스는 드래프트 당시 직전 시즌에 29.5점을 기록한 마크 어과이어까지 오퍼하면서 조던을 데려오려고 했으나, 불스 측이 거절한 바 있다. 당시 불스는 이미 스몰포워드 포지션에 올랜도 울릿지가 있었으며 빈약한 골밑을 보강하려고 했기 때문에, 조던을 주고 어과이어를 데려와봤자 문제점이 해결되긴 커녕 포지션 중복 문제만 더 심해지기 때문. 어과이어는 조던과 키가 같았지만 조던은 PG까지 소화가능한 반면 어과이어의 주포지션은 포워드였다.[11] 조던이 합류하기 전 불스는 83-84 시즌에 256,430명을 동원해 리그 최하위권에 그쳤으나(84 시즌에 23팀 중 21위), 조던이 합류한 첫 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487,297명을 동원하며 리그 9위를 기록했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수직상승한 수치도 경기당 평균 11,885명에 불과해, 정원이 18,676명인 시카고 스타디움의 63.6% 밖에 안되는데도 리그 9위였단 점에서 NBA인기가 80년대 이후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84 시즌의 경우 레이커스나 셀틱스조차도 홈경기를 전부 매진시키지 못했으며, 두 팀 다 경기당 평균 1만5천명 조금 안되는 평균 관중수를 기록했다.[12] 조던이 합류한 이후 관중수는 87-88 시즌까지 매시즌 상승하며, 1987년 11월 20일 이후 조던은 은퇴할 때까지 매번 꽉찬 홈경기장에서 경기하게 된다. (불스의 연속 매진 행렬이 끝난 것은 2000년 11월 7일이 되어서였다).[13] 거빈은 전성기 시절 레전드였지만 당시는 은퇴를 앞둔 노장이었기에 기량이 들쭉날쭉했고, 울리지는 커리어 내내 득점 스탯만 좋고 팀 성적은 매번 부진한 선수였다. 조던이 뛴 경기에서 불스는 9승9패를 기록했는데, 조던이 부상에서 복귀한 후 경기당 20분 이내로 출장시간을 제한받던 6경기동안 1승5패, 출장시간이 20분 이상으로 늘어난 5승 4패를 기록한다.[14] 당시 셀틱스는 홈에서 정규시즌 1패, 플레이오프에서 전승을 했다.[15] 이 과정이 정말 재미있는 게, 원래 피펜은 NCAA대학팀이 아닌 NAIA라는 존재감이 전혀 없는 하부 컨퍼런스 팀인 센트럴 아칸소 대학을 졸업한 선수였다. 당시 대학감독이 스카우터 및 구단 관계자들에게 피펜을 적극적으로 알렸고 이걸 NBA 명 스카우터였던 마티 블레이크가 바로 당시 단장이었던 제리 크라우스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크라우스는 피펜을 보자마자 하악하악 거렸다. 피펜이 워크아웃을 통해 그야말로 NBA급 기량을 보여주자 초조함과 불안감이 극에 달해서 "너 님 하와이로 가서 잠시 숨어 지냈다 오셈" 이라 할 정도였으니... 참고로 크라우스는 좀 괴짜라 이런 식의 요상한 제안을 종종 했는데 이해에 1라운드 지명이 확실시되는 댄 멀리(썬더 댄이란 별명의 선수로 외곽슛과 수비력이 뛰어났는데 피닉스 선즈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올스타에도 뽑혔다)에게 "자네 우리가 2라운드에서 뽑아줄테니 다른팀과 워크아웃(드래프트 참가선수들이 기량을 선보이는 것)을 거부하게"란 말도 안되는 제안을 했다. 이에 멀리는 "거절하겠습니다. 1라운드에 뽑혀야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요"라고 너무나도 당연히 거절했다.[16] 이 시리즈에서 조던은 31.1점 11.4어시스트 6.6리바운드 2.8 스틸 1.4블럭 (야투율 55.8%)로 엄청난 효율을 보였다. 특히 3차전을 제외한 나머지 네 경기에서 두 자리수 어시스트로, 매직이 5차전에서 20어시스트를 기록하기 전까진 평균 어시스트수에서도 매직을 앞섰다. 이 시즌은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시기였기에 조던 본인도 85-86시즌 이후 가장 낮은 평균 득점, 평상시 밥먹듯 기록하던 40득점 이상도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번에 그치는 등 이전에 비해 득점을 자제하며 다른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왕조 시절 불스의 팀공격이 가장 잘 이뤄졌던 시기가 바로 90-91, 91-92시즌이었다.[17] 은퇴 후 팀에서 단장 및 부사장을 지냈다.[18] 사실 이 경기에서 그랜트는 33분을 뛰면서 단 1득점에 그쳤을정도로 최악의 슛난조를 겪고 있었고, 피펜이 패스를 해주었을 당시 골 밑에서 좋은 자리를 잡고 있었음에도 자기보다 15cm나 작은 에인지가 황급히 다가오자 외곽으로 볼을 빼버렸다. 그랜트가 슛난조를 겪고 있어서 쉬운 골밑슛을 못넣었을수도 있고 넣었어도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팩슨에게 빼준것이 좋은 판단일수도 있으나 경기 막판 높은 확률을 버리고 낮은 확률을 택한 플레이임은 분명하고 이 플레이에 대해 마이클 조던은 자기 공격비중 높여달라고 징징대더니 막상 공 주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패스 돌리더라며 비웃기도 했다. 팩슨이 슛을 성공시키고 이후 마지막 플레이에서 그랜트가 케빈 존슨의 마지막 슛을 블락해내서 그랜트의 패스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마이클 조던의 발언은 조던과 그랜트가 별로 좋지않은 사이인것도 감안해야 한다.[19]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북산 대 능남전에서 경기 막판 안경선배가 넣은 3점슛의 모티브가 된 장면이다. 실제 마이클 조던은 경기중에도 스카티 피펜이 패스를 안하고 자기가 슛을 던졌단 이유로 경기중에 대놓고 훈계를 하는 전권지휘자였다. 때문에 피닉스는 팩슨을 전혀 계산에 넣고 있지 않았다가 허를 제대로 찔릴 수 밖에 없었다. 북산전에서 허태환서태웅에게 더블팀 가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20] 사실 이 충격으로 은퇴했다기보다는 이때만 해도 농구에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해 일종의 의욕상실로 이전부터 은퇴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한테도 이전부터 어렴풋이 꿈꿨던 야구선수로 진짜 전업하겠다고 말해 이미 OK 사인을 받았는데, 얼마 안가 부친이 비극을 당하면서 진짜로 은퇴하게 된다.[21] 1990년 드래프트 때 이미 전체 29번으로 뽑았다.[22] 경기력 나쁘면 팀 동료들한테도 거침없이 악담을 퍼붓는 스타일의 조던에 악감정이 많던(...) 호레이스 그랜트가 조던 나갔다고 팀 폭망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 더 팀을 추스리고 화이팅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23] 여담으로, 피펜은 루키 시절 불스에 입단해 선배들에게 당시 에이스였던 조던을 꺾고 자신이 불스의 에이스가 될 거라는 식으로 말했다가 선배들에게 약간 다구리를 당한 적이 있었다.(...)[24] 레전드 포워드 도미니크 윌킨스의 동생이며, 형에 비해 실력은 한참 떨어지지만 운동능력은 형 못지 않았다.[25] 다만 엄밀히 말하면 암스트롱은 당시 꽤 높던 인기와 시카고 불스 왕조의 향수 때문에 팬투표로 선발된 것이지 올스타급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그의 성적은 14.8점 3.9어시스트 2.1리바운드 1스틸이었는데 수비력과 리딩력 둘 다 평범해 (많이 알려졌지만 불스의 리딩은 주로 피펜이, 그가 없을때는 조던이 담당했다. 사실 이걸 떠나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리딩은 별 의미가 없었다) 스탯에 드러나지 않는 공헌도도 거의 없었다. 주로 외곽지원으로 팀에 공헌하던 선수. 실제로 94 시즌에 정점을 찍고 이후론 올스타 근처에도 못 갔다. 반면 그랜트는 똑같이 통산 1회 올스타였지만 확실히 올스타에 뽑힐만한 실력을 보였던 선수고, 운이 따랐다면 한두번 정도 더 선정을 노릴만한 선수였다. 득점은 BJ랑 비슷했지만(오히려 1대1옵션은 더 부족했다) 한창 때는 리바운드 10개 언저리를 잡아주던 선수고 가장 큰 장점은 93~96 시즌 4년 연속 올디펜스 세컨팀에 선정되었던 수비력이었다.[26] 1차 은퇴 후 2년여간 야구하다 돌아와 제 컨디션이 아닌 조던이었는데도 의외로 폭풍을 일으켰는데, 뉴욕 닉스 전에서는 55점을 넣기도 했다.[27] 트레이드 상대가 백업센터 윌 퍼듀였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어이없는 트레이드라고 봐도 이상할 게 없지만, 샌안토니오 입장에선 사고만 치고 다니는 로드맨을 빨리 처리하고픈 마음에 단행한 트레이드로 보여진다. 그리고 트레이드 직후 언론에서는 로드맨이 조던과 충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지만 훗날 스티브 커의 증언에 따르면 로드맨은 애초에 조던에게 덤빌 생각 자체를 못했다고 한다.[28] 실제로 1995-96 시즌 직전 당시 동부 최강으로 예상되던 팀은 전 시즌 준우승팀이자 이 시즌에도 60승이나 한 올랜도 매직이었다.[29] 다만 이 시기의 데니스 로드맨은 이미 35세의 노장이라 전성기가 한참 지난 선수였고, 올스타급과도 거리가 멀었다. 오직 리바운드 능력과 허슬만이 살아남아 팀에 헌신했다.[30]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NBA는 한 시즌에 통상 82경기를 치른다.[31] 예를 들어 80년대 레이커스 - 매직 존슨, 카림 압둘자바, 제임스 워디와 셀틱스 - 래리 버드, 케빈 맥하일, 로버트 패리시. 2000년 이후로는 2008 보스턴 셀틱스나 2010년대 초반의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가 모인 마이애미 히트(2010~2014). 그 후 르브론이 복귀한 클리블랜드(2014~2018), 15 시즌 우승, 16 시즌 준우승팀이자 73승을 거둔 팀에 케빈 듀란트가 합류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2016~2019), 그 듀란트가 다시 이적해 큰 부상에서 성공적으로 복귀한 뒤 카이리 어빙, 제임스 하든과 결성한 브루클린 넷츠(2020~) 등[32] 사실 이런 식으로 상을 싹쓸이한 팀 중에는 01 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처럼 "원맨팀"으로 불리는 팀도 있다. 2001년 필라델피아의 경우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우승 트로피와 파이널 MVP가 없었지만 그 외에 받을수 있는 상인 시즌 MVP에서 감독상까지 개인상들을 싹쓸이 했다.[33] 여담으로 저 사진은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의 포스터 이미지로 쓰였는데, 원본과 달리 왼쪽의 로드맨을 오른쪽에 붙히고 론 하퍼와 토니 쿠코치를 지운다음 (선수로선 유명하지 않았지만 감독으로 유명해진) 스티브 커와 필 잭슨 감독을 합성해 넣었다. 사실 미국언론이 원래 노골적으로 유명인 위주로 차별을 하는데, 라스트 댄스 취재진이 룩 롱리에게는 연락조차 하지 않고 다큐에서 출연이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조던 본인도 롱리의 분량에 대해 문제지적을 했으며, 졸지에 동료들의 위치를 강탈한 커 본인도 당혹스러움을 표했다. 이것도 여담인데 저 라인업은 보통 롱리가 부상으로 빠졌을 때 종종 나오던 라인업으로, 보통 로드맨이 센터 수비를(그러나 상대 키가 지나치게 크면 쿠코치가 맡는다), 피펜과 쿠코치가 포워드 수비를 보는(보통은 쿠코치가 스몰포워드를 맡는다) 변칙 라인업. 원샷 플레이가 필요한 클러치 타임엔 저기서 하퍼가 빠지고 슛이 좋은 스티브 커가 들어간다. 로드맨은 슛도 없고 자유투도 약하지만 오펜스 리바운드 때문에 클러치 라인업에도 들어간다.[34] 당시에는 역대 2위였으나 2015-16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의해 한 계단 내려갔다.[35] 다만 매번 접전이었을 정도로 젊은 불리츠는 최강 불스를 잘 몰아붙혔다. 조던의 지배력과 불스의 노련미에 매번 밀렸을 뿐이었다.[36] 참고로 이 시리즈에서 마이클 조던은 정말 보기 드물게 슈팅난조를 겪었다. 4차전에서는 그답지 않게 난사를 하며 2할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37] 1차전에서 조던의 버저비터로 승리하였는데 현재 기준 NBA파이널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버저비터이다.[38] 조던 본인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에 출연해서 직접 밝힌 바로는 5차전 경기 당일 새벽에 배가 고파서 시켜먹은 피자 1판을 모두 먹고난 뒤 구토와 고열에 빠지면서 5차전 경기는 독감이 아닌 식중독이었다고 확실하게 인증함.(이전까지는 조던의 몸상태를 독감이라고 정설처럼 여겨서 5차전 경기를 "The Flu Game"으로 칭했으나 조던의 증언으로 이는 틀린것이 됐다. 하지만 어감이 좋아 계속 쓰이는 경우...)[39] 이때 경기를 보면 벤치에 앉을 때마다 수건을 머리에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게토레이도 먹지 한 채 헤롱거리는 조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 거의 스카티 피펜에게 안겨 퇴장했다. 이때 1등 공신은 조던이라 당연히 그가 경기 후 인터뷰를 해야했지만, 너무 몸상태가 안 좋아서 피펜이 대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40] 당시 28초가 남은 공격 직전 작전타임때 조던이 스티브 커에게 "스티브, 스티브, 준비해"라고 조용히 속삭이는데, 이는 클러치 타임에 카메라가 조던을 주로 잡아주기 때문에 작전이 새어나기지 않게 거의 복화술에 가까운 스킬로 커에게 작전을 몰래 전달한것인데... 순진한 커는 조던에게 아주 큰 소리로 "존(스탁턴)이 내게서 떨어지면 준비하고 있을게!" 라고 대답한다. 이는 스티브 커도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 출연해서 창피한 추억인듯 얘기한다.[41] 사실 플레이오프에서 위기가 없었던게 컸다. 워싱턴이 생각보다 잘 싸웠지만 그래봐야 스윕, 2,3라운드를 모두 1패만 하고 통과한데다 난적 닉스를 꺾고 올라온 히트는 불스에게 완전히 호구잡혀서 조던이 웬일로 부진하기까지 했는데도 1승밖에 못했다. 다만 파이널에선 재즈가 훌륭히 맞선데다 5차전의 드라마가 유명하다. 반면 98 시즌은 다른 선수들의 노화가 두드러지면서 파이널 쯤 되면 공격에선 거의 조던 원맨팀에 가까울 정도로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얘기거리가 많다. 특히 2옵션인 피펜까지 첫 플레이에서 등부상을 당하면서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조던이 거의 혼자 힘으로 멱살잡고 캐리한 6차전.[42] 조던이 공식 은퇴를 선언했었다는 오해가 있기도 한데, 조던은 97-98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한 적이 없다. 다만 크라우스가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번 시즌이 필 (잭슨)의 마지막입니다"라고 얘기했고, 조던은 필 잭슨이 은퇴하면 자기도 뛰지 않겠다고 했기에 팬들 대부분이 은퇴할 것이라 여긴 것. 조던 본인은 후술되듯 7번째 우승에 도전할 생각이 확고했으나, 팀이 잭슨,피펜, 로드맨 등 주축들을 정리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였기에 말년에 리빌딩 팀에서 혼자 뛰게 생긴 조던이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결과적으로 보면 99직장폐쇄 기간동안 도입된 맥시멈 계약 규정 덕분에 조던과 피펜 둘 다 98 시즌 조던의 연봉과 적은 수준의 액수를 주고 잡는게 충분히 가능했었다. 99년 협상 결과 당시 선수들의 총 보수액은 리그 수입 총액의 57%에서 55%로 줄었고, 한 선수의 최대 계약이 1천4백만 달러였다. 즉 99 시즌에 조던과 피펜을 2천8백만 달러로 쓰는게 가능했다. (노장이 된 피펜의 계약이 부담스럽다면 시즌 후 트레이드하면 된다) 즉 구단주 레인스도프가 돈을 아끼려고 크라우스 단장을 시켜 시즌 내내 언플을 하지만 않았어도 큰 금전적 부담 없이 왕조의 코어를 유지한채 99 시즌을 치르는게 가능했다는 것.[43] 2020년에 조던의 허가를 받고 ESPN이 제작한 이 시즌 불스에 대해 다룬 10부작 다큐멘터리의 제목 역시 The Last Dance다.[44] 사실 이때 불스의 PG는 잭슨보다 훨씬 큰 론 하퍼라 어차피 이게 안 통했을 것이다. 다만 하퍼는 레지 밀러를 막아야 했던 선수였기에, 그리고 조던은 주득점원이라 수비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줘야 했기에 필 잭슨 감독은 하퍼가 아닌 피펜을 선택했고 이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45] 178cm의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등에게 불스가 유독 많이 털렸다. 불스의 주전 1번인 론 하퍼는 198cm로 작고 빠른 가드를 막는덴 이 시점에선 부적합한 선수였다. 스티브 커가 감당하기에도 역부족이라 결국 그나마 스피드가 있는 조던이 맡아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아이버슨이 조던을 터는(...) 장면도 이렇게 연출된 것.[46] 이 플레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살짝 미는 것도 아니고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조던을 제치기 위해 두 손으로 대놓고 밀어버렸기 때문에. 밀러는 은퇴한 후 이 플레이에 대해 "경기 막판에 심판들은 공격자 파울을 부는 걸 주저한다는 것을 염두에 뒀다"고 언급한 바 있다.[47] 마이클 조던이 뛴 시리즈로 한정하면 92년 컨퍼런스 파이널 뉴욕 닉스전[48] 사실 조던이니까 못해보이는거지 이것만 해도 트리플더블에 가까운 활약이다.[49] 이 경기 최종 스코어가 88-83으로 피말리는 저득점 싸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못한 것이 아니었다.[50] 92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도 7차전까지 갔지만 막상 마지막 7차전 경기는 조던의 42점 대폭발로 쉽게 승리하였다.[51] 다만 94년은 파이널에 진출하더라도 우승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분석이 많다.[52] 은퇴 직전이었던 카트라이트는 그렇다 쳐도 이제 전성기에 오르던 그랜트를 잃은 건 치명적이었다.[53] 은퇴한 팩슨은 그렇다 쳐도 이제 전성기에 오르던 암스트롱을 잃은 건 치명적이었다.[54] 사실 현대 프로스포츠에서 8연패란게 비현실적인 목표이기도 하고, 조던은 어차피 8연패 없이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기 때문에 이런 가정에 큰 의미는 없다. 독보적인 최고 자리에서 아직 뛸 수 있을 때 은퇴했기 때문에 그 아쉬움에 나오는 소리일 뿐.[55] 조던은 3년 후 워싱턴 위저즈에서 잠시 선수생활을 하다가 2003년에 세번째 은퇴를 한다.[56] 사실 재창단보다 상황이 안 좋았던게 신생팀이라면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권 지명순위가 주어지는게 일반적인데 불스는 전 시즌 우승팀이자 정규시즌 2위 성적을 거둔지라 꼴찌에서 두번째 지명순위를 받고 코리 벤자민이란 실력없는 선수를 지명했다. 참고로 벤자민은 1라운드 신인들에게 보장되는 3년 계약이 끝나고 어느 팀과도 계약을 못하고 해외에서 나머지 농구커리어를 보내게 된다. (중간에 애틀란타와 단기계약으로 잠깐 뛰기도 했지만) 이때 드래프트가 디르크 노비츠키, 빈스 카터, 폴 피어스 등 슈퍼스타부터 앤트완 재미슨, 마이크 비비, 라샤드 루이스 등 준척급 선수들까지 즐비한 풍작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쉬운 점. 물론 이 시즌 시원하게 말아먹은 덕에 마찬가지로 풍작인 9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획득하긴 했다.[57]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에 보면 라인스도프가 "필 잭슨과 재계약하려고 오퍼했다"고 하는 인터뷰 장면을 보고 마이클 조던이 순간 울컥해 말을 못 잇는데,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개소리기 때문이다. 구단주의 묵인이 없다면 피고용자인 단장 입장에선 절대로 "우리 팀은 감독 재계약 절대 안 할 거임"이라고 말하고 다닐 수가 없다. 실제로 조던은 최소 1시즌 더 우승 도전해보고 싶어했지만 구단 측에서 잭슨부터 시작해 (조던만 빼고) 주축 멤버들을 잡을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에 말년에 리빌딩 팀에서 혼자 고생하고 싶지 않아 은퇴했다.[58] 피펜은 불스 시절 염가 계약으로 묶여 자신에 대한 대우에 불만이 많았으나 조던의 복귀로 인해 참고 계속뛰던 차였다. 필 잭슨과 조던이 더 이상 팀에 없다면 미련도 없는 것은 당연지사.[59] 1979년부터 9년 간 텍사스 대학교 엘패소 캠퍼스(UTEP)의 코치로 일하면서 명장 돈 해스킨스 감독을 보좌한 바 있다. 1988년부터 6년간 뉴올리언스 대학교 감독으로서 어빙 존슨을 육성한 후, 1994년부터 아이오와 주립대학교로 옮겨서 프레드 호이버그, 켈빈 케이토, 마커스 파이저, 폴 셜리 등을 배출한 바 있다. 2004년 뉴올리언스 호네츠 감독을 끝으로 프로 무대를 떠난 뒤 이듬해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감독으로 대학 무대에 돌아와 임기 4년 동안 O.J. 메이요를 육성한 바 있고, 2010년부터 7년 간 UTEP 감독으로서 빈스 헌터도 육성했다.[60] 라루는 97-98 시즌에 총 14경기에 평균 10분 뛰었고 플레이오프 로스터에서도 제외되었으며, 심킨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5.7분 뛰었다. 웨닝턴은 훌륭한 롤플레이어였으나 조던과 동갑인 노장으로 결장과 부상도 잦고, 98 시즌엔 평균 9.7분만 소화했다. 브라운은 운동능력만 좋은 단신 가드로, 불스 주전라인업의 약점인 단신 가드 수비 말고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61] 하퍼는 부상과 고령으로 인해 이때 은퇴를 고려했으나, 그의 리더십과 트라이앵글에 대한 이해를 높게 산 필 잭슨의 설득으로 레이커스와 계약해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며(다만 01 시즌엔 부상이 심해 시즌 막판부터 데릭 피셔가 주전으로 뛰고, 하퍼는 플옵에서도 거의 뛰지 못했다) 2차례 더 우승을 거두고 은퇴한다.[62] 여담이지만 쿠코치 트레이드 당시 샐러리 맞추기용 부록으로 불스에 합류한 선수 중 하나가 당시 완전한 무명이었던 브루스 보웬이었고, 트래이드 직후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방출되었다. 이후 그가 마이애미 히트에서 NBA 올 디펜스 세컨드팀에 뽑히는 정상급 수비수, 스퍼스에서 한단계 더 성장해 수비왕 후보로 꼽힐 정도로 탁월한 수비수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63] 사실 애초에 저런 거물 FA들을 노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게, 일단 저들을 잡기 위한 움직임도 없었고 이 때 오프시즌에 불스가 사인한 것은 론 머서와 브래드 밀러 밖에 없고 저 둘의 연봉을 합쳐도 천만달러 수준이었다. 00-01 시즌 리그 샐러리 캡은 3,350만 달러, 이해 불스의 총 샐러리는 리그 28위에 해당하는 2,969만 달러였다는 걸 감안하면 (꼴찌 클리퍼스와 고작 8만5천 달러 차이다) 즉 불스는 그냥 최소한의 돈만 쓰고 적당히 로스터를 유지한 것이다. 당시 규정은 샐러리캡의 최소 75%를 써야했는데(현재는 90%), 불스와 클리퍼스는 각각 샐러리캡의 88.6%, 88.4%를 쓰면서 나란히 리그 28,29위를 차지한 걸 감안하면 이 둘은 그냥 면피용 전력보강만 한 것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 두팀은 미국에서 2,3위에 해당하는 대도시를 연고지로 쓰고 있는데도...[64] 발파라이소 대학교 농구부의 레전드 감독 호머 드류의 차남이자, 현 베일러 대학교 감독 스캇 드류의 동생이다.[65] 어이가 없는 게, 당시 브랜드는 신인 시절부터 2년 연속으로 평균 20점 10리바운드 이상을 하는 탁월한 빅맨이었다. 팀성적만 폭망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올스타감이었고 실제로 트레이드되자마자 올스타에 뽑힌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203의 단신 파워포워드인 브랜드는 성장의 한계가 있고 216 장신이었던 챈들러는 케빈 가넷처럼 클거란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지만 현실은... 한마디로 주식몰빵했다 망한 꼴. 물론 훗날 챈들러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빅맨으로 크지만 불스 시절엔 거의 실망만 안겨줬다. 반면 2라운드 30번으로 뽑힌 트렌트 해슬은 수비수로서 자기 몫을 다했다.[66] 커리가 2번, 챈들러가 3번이었다.[67] 크리스 웨버, 주완 하워드와 같은 미시건 대학교 농구부 'Fab 5'의 일원이었다.[68] 야오밍 다음 순번이었다.[69] 그러나 이들은 신장 등의 결점으로 전부 잊혀졌다.[70] 그렇게 큰 부상을 입었으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듀크대 병원에서 힘겨운 접합 수술과 재활 훈련을 거쳐 다시 일어선 뒤 2006년 뉴저지 네츠와 계약했다가 5게임만 뛰고 방출되었고, 이후 NBA G 리그 소속팀 오스틴 토로스(현 오스틴 스퍼스)에서도 재기에 실패하고 농구계를 떠났다. 2007년부터 ESPN의 대학농구 방송해설가로 일하고 있다.[71] 2001년 드래프트 때 탈락함.[72] 여담으로 주석의 대표곡 '정상을 향한 독주' Mo' Smooth 버전 가사에 나오는 농구 선수다.[73] 사실 셀틱스도 팀 수비의 핵인 케빈 가넷이 부상으로 아웃된 상황이라 전 시즌보다는 전력이 크게 하락한 상황이었다. 여담으로 이 시리즈를 계기로 라존 론도가 빅3 깍두기 정도의 위치에서 슈퍼스타로 거듭난다.[74] 기존의 최연소 MVP는 1969년에 신인왕과 MVP를 모두 휩쓴 웨스 언셀드로 당시 23세(+9일)이었다. 데릭 로즈는 22세(+191일).[75] 다만 가솔은 이해 그 빡센 포워드 자리에서 해당시즌 올NBA 세컨팀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센터로 오른게 아니다! 센터 세컨팀은 드마커스 커즌즈) 원래부터 수비는 잘 못하지만 공격력만으로 종합활약이 전체 포워드 중 네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하는 선수를 데려와놓고 수비 못한다고 뭐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76] 2년째는 선수 옵션.[77] 클리블랜드는 2014-15 시즌 이래 르브론이 결장한 23게임에서 19패를 기록중[78] 그 이전까지 전경기 출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로빈이 엄청난 희생을 한 것이다.[79] 체코출신으로 워싱턴에서 준수한 게임운영 능력을 보여줬던 201cm의 장신 PG[80] 백업 3번인 챈들러 허치슨(201cm)은 시즌 초 벤치워머로 뛰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다 부상까지 당했고 결국 수비력이 좋은 193cm의 가드 크리스 던이 스타팅으로 3번을 보게 되었다. 크리스 던이 1번으로는 피지컬이 좋고 수비력도 좋지만 괴물들이 득실 거리는 3번 자리를 보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른다. 새로 영입한 베테랑 테디어스 영이 오토 포터 대신 3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올시즌 31살이 되면서 확실히 느려졌고 전성기 때도 약하던 3점이 더욱 약해져 주로 백업 PF로 출장 중이다.[81] 뉴욕에서 뛰던 선수로 218cm의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운동능력이 매우 떨어지고 주로 픽앤팝 후 받아 먹기 3점을 노리는 선수. 라우리 마카넨과 활동 반경도 겹친다.[82] 하지만 골밑 돌파 후 마무리에 약점을 드러내면서 필드골 성공률 자체는 낮아졌고 돌파 후 킥아웃도 약하다 보니 돌파의 효율은 낮은 편. 결국 라빈의 3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3점이 터지면 접전 내지는 박빙승, 안 터지면 10점차 이상 패배하는 패턴[83] 단 Coby와 Kobe로 철자는 다르다.[84] 애초에 현재 가동되는 로스터에 잭 라빈 외에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 낼 능력이 있는 선수가 거기에 잭 라빈의 돌파 후 킥 아웃 능력이 평균이하 수준이라 상대 수비입장에서는 라빈의 묻지마 3점 폭발 외에는 큰 위협이 없는 상황[85] 주요 공격 옵션인 3점슛 성공률도 2%나 하락해 더욱 효율이 낮아지고 있다.[86] 거기에 잭 라빈의 수비가 분명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비에서 까먹는 마진이 많다.[87] 현재 갈리나리, 드러먼드, 밤바 등과 연결되는 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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