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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ed Band Cavalry
1. 개요
카르타고의 아스테르테 여신에게 바쳐진 최정예 중장기병대로 인원은 1,000명. 1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기원전 310년 시라쿠사와의 전투에서 전멸당한 후 카르타고의 신성 부대는 더이상 역사에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2. 활약상
귀족 자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렸을 때부터 신전에 바쳐져 고도로 훈련받았으며 카르타고에서 최고의 물적 지원을 받아 당시로서는 최고 장비를 갖춘 강력한 기병대다. 역사에 만약은 없으나 만약 이들이 카르타고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지은 자마 전투에 참여했다면 전투의 향방이 바뀌었거나 최소한 카르타고 기병대가 쉽게 밀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등자가 없던 당시로서는 그런대로 중무장한 기병이었기에 그 위력은 상당했다. 실제로 유구르타 전쟁이나 카이사르의 아프리카 원정 당시, 중무장한 갈리아 기병대 수 백이 수 천에 이르는 누미디아 기병을 격파하고 쫓아내기도 했다. 적어도 누미디아 기병이 신성대를 격파하려면 특유의 히트 앤드 런 작전을 써야할텐데, 칸나이 전투에서도 그렇듯 견제에 그쳤을 가능성도 높다. 물론 이 당시의 기병대를 과대평가 해서는 안된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에는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기병창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돌진하는 카우치드 랜스 기법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 때문이다.[1]
즉, 중세 시대의 기사들이나 아시아 중기병대를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겨드랑이에 끼고 충격하려면 등자가 있는 안장의 구조가 받쳐져야 하고 특히 캔틀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등자가 없으면 아무래도 중기병대의 묵직한 돌격력을 기대하기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을 겨드랑이에 끼고 충격하는 것과 등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기병의 핵심은 말이고, 말 자체도 충격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등자 없이도 두 손으로 창을 잡고 충격하는 전술은 고대로부터 있었고, 헤타이로이가 이 방식으로 무공을 세웠으며 심지어 마갑까지 갖춘 중장기병인 카타프락토이들도 돌격 한 번에 로마 중보병 두세명을 꿰뚫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등자 없이도 강력한 돌격을 구사했다.
즉, 중세 시대의 기사들이나 아시아 중기병대를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겨드랑이에 끼고 충격하려면 등자가 있는 안장의 구조가 받쳐져야 하고 특히 캔틀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등자가 없으면 아무래도 중기병대의 묵직한 돌격력을 기대하기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을 겨드랑이에 끼고 충격하는 것과 등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기병의 핵심은 말이고, 말 자체도 충격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등자 없이도 두 손으로 창을 잡고 충격하는 전술은 고대로부터 있었고, 헤타이로이가 이 방식으로 무공을 세웠으며 심지어 마갑까지 갖춘 중장기병인 카타프락토이들도 돌격 한 번에 로마 중보병 두세명을 꿰뚫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등자 없이도 강력한 돌격을 구사했다.
카르타고 내 주화파의 정치공세로 자마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다. 이는 아마도 PC게임 로마: 토탈 워의 카르타고 팩션에 Sacred Band Cavalry가 있고, 해당 게임의 고증 모드로 통하는 EB모드의 Sacred Band Cavalry 유닛 설명에서 위의 에피소드가 언급되어 몇몇 역덕들이 받아들인 듯 하다. 하지만 리비우스나 폴리비오스 등 신뢰할 만한 사료에서는 신성 기병대라는 존재가 언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EB모드의 후속작인 EB 2의 카르타고 유닛 소개에서 "신성 기병대"가 "카르타고 귀족 기병대"로 대체되었으며, 귀족 기병대의 설명에서 "신성 기병대는 오해의 산물이었다"라고 제작팀이 인정했다. 그리고 CA도 후속작인 토탈 워: 로마2에서 신성 기병대를 없애고 귀족 기병을 넣으면서 자신들의 실수를 수정했다.
이러한 강력한 기병들이 있었는데 카르타고 정치인들이 자마 전투 당시 일부러 투입하지 않았다는 사료는 전혀 없다.[2] 특히 한니발과 회전을 결정했을 당시엔 강경론자들이 카르타고 원로원을 장악한 상황이었는데 이들이 뻔히 이러한 강력한 기병대의 투입에 대한 방해공작을 (만일 있었다고 한다면) 방관했을 리가 없다.
또한 당시 카르타고 시민들이 카르타고 정부에 매우 성이 난 상태였는데 심지어 한니발이 오기전 스키피오에게 연이어 대패한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성난 시민들에게 맞아죽을 것을 두려워해 패전 후 목숨을 끊을 정도였다. 즉 방해공작을 하고 싶어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1] 이 당시에는 창을 양 손으로 붙들고 내리찍는 방식이나 창을 역수로 들고 내던지듯이 찔렀다고 한다. 실제로 던지기도 했다.[2] 실제 역사에서의 신성 기병대는 이전에 소멸해 투입할 수 없었다는 의견이 많다. 기원전 310년 제 1차 튀니스 전투에서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보병대 지휘관 보밀카르가 총사령관 한노를 버리고 이탈, 적전도주하는 바람에 한노와 함께 전멸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