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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코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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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종, 종교적인 배경3. 십자군 전쟁중의 활약4. 동로마 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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τουρκόπουλοι
Turcopoli

1. 개요

투르코폴레스는 동로마 제국, 십자군에 복무한 튀르크 계통의 보조병, 용병을 말한다. 이들은 투르코폴, 투르코폴레라고도 불렸으며, 11세기 말엽부터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다양한 면모로 동로마 제국에 복무했다.

2. 인종, 종교적인 배경

이들은 대부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로마인들의 영토가 협소해졌을 때부터 제국군에 복무하기 시작했다. 아나톨리아를 유린한 셀주크족과 여러 투르코만 분파들은 약탈혼, 강간, 동화, 정착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토착 그리스, 아르메니아, 이사우리아인들과 섞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수니파 무슬림이었지만, 잦은 혼혈과 접촉 속에서 동방 정교회로 개종했거나, 혹은 이미 투르크메니스탄 지방에서 이주할 때부터 정교회를 모태 신앙으로 가지고 있던 자들도 있었다. 원래 튀르크인들은 종교에 대해 유화적이었고, 무슬림이면서도 술과 돼지고기를 즐기는 등 신앙에 철저한 편은 아니었기에 별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의 땅에 살던 그리스인, 시리아인들도 튀르크족의 영향을 받아 무슬림으로 개종하거나 유목 군주의 수하가 되는 등, 쌍방의 문화 교류는 다양했다.

주요 병력 모집처인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지방을 잃은 동로마 제국은 이를 메우기 위해 튀르크족 출신 정교회 신자들이나, 그리스 - 튀르크 혼혈인, 혹은 전쟁 중 항복한 튀르크족을 정착시켜 궁기병 부대로 편성했다.[1] 제국은 이런 튀르크 부대를 튀르크족의 아들이라는 뜻인 투르코폴레스로 명명했다. 최초에는 정교회 신자이거나, 그리스 계통의 피가 섞여있어야만 제국군 복무가 가능했지만, 로마 제국이 점차적으로 만성적 병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그냥 무슬림이거나 항복한 적병이어도 상관 없이 받아주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 튀르크계 궁기병, 궁병을 뜻했던 투르코폴레스의 의미도 그냥 무슬림 출신의 보병, 시리아 출신의 용병 식으로 함의가 넓어졌다.

3. 십자군 전쟁중의 활약

아모리 왕이 이집트를 원정하러 떠난 1164년경, 누레딘은 안티오크의 템플 기사단 성채를 공성했다. 60여명의 템플러들과 그보다 많은 평민 하사관들과 투르코폴레스들은 요새를 사수했다. (중략) 이들은 2년동안 포위 공격을 견뎌내다 결국 전멸했다.

서유럽의 기록에서 최초로 투르코폴레스가 등장하는 장면은 바로 1차 십자군니케아 공방전도릴라이움 전투였다. 두 전투에서 동방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십자군을 지원하기 위해 2,000여명의 트라키아인 펠타스트와 메가스 프리미케리오스 타티키오스를 파견했는데, 이 타티키오스가 바로 투르코폴레스였다. 그는 알렉시우스의 아버지가 잡아온 튀르크인 노예 중에 한 명이었지만, 모태 신앙이 동방 정교회였기 때문에 노예보다는 알렉시오스의 가신으로써 자라난 케이스였다. 그는 이미 룸 술탄국과의 싸움에서 제국군을 이끌고 괜찮은 전적을 낸 경험이 있었고, 아나톨리아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십자군의 길잡이 노릇을 했다. 뿐만 아니라, 제국 소아시아령 각지에서 궁기병으로 복무하는 투르코폴레스 분견대가 분쟁지대를 순시하며 이탈한 십자군이나, 1100년대 초까지 당도한 후발 십자군 병력을 호송해주기도 했다.

물론 그들과 십자군의 관계는 동방 제국과 라틴인들의 알력으로 인해 썩 좋지 못했지만, 십자군 지도자들은 투르코폴레스의 유연한 기동과 기마 궁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예루살렘 왕국과 여러 십자군 공국들이 세워지기 시작할 무렵, 이들은 동로마 제국을 따라 튀르크 출신 용병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는데, 병력 보급 상황이 로마인들의 제국보다 훨씬 열악했던 이들은 그냥 튀르크인 주변에 살기만 하면 전부 투르코폴레스라고 부르며 징집, 고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튀르크인들과는 사이도 안좋은 시리아 정교회 출신 궁수, 아랍계 보병, 우트르메르에 거주하는 중동계 용병을 다 싸잡아 투르코폴레스라고 불러버리게 되었다. 이들은 십자군 기사들에게 부재한 기마 궁술, 추격 도주 전술 등을 보충해주었으며, 당연하게도 랜스메이스를 들고 기병 돌격의 제2선[2]에 서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놀랍게도 신앙심이 돈독한 기사 수도회들도 투르코폴레스를 상비하고 다녔다. 이들은 기사단 내에서 평민 기사 하사관들보다 바로 밑 계급에 속했으며, 수직적인 기사단의 위계를 따를 것을 강요받았다. 이를 테면 라틴 기사들과 겸상을 할 수 없었고, 종자들처럼 기사단원들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등이었다. 그러나 식량과 무기 보급 외에 봉급을 받지 않는 기사단의 단원들과 다르게 이들은 꽤 큰 보수를 받으며 활동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아무 검증도 받지 않은 용병단이었기에, 투르코폴레스가 주인을 통수 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트리폴리 백국의 기초를 놓은 레몽 2세도 1101년경 후발 십자군과 함께 로마-튀르크 국경을 건너다 현지 투르코폴레스들에게 배신을 당해 큰 피해를 입기도 했었다.

4. 동로마 제국에서

투르코폴레스는 튀르크인과 그리스인들의 혼혈입니다. 말하자면 사탄과 마귀의 끔찍한 잡종[3]인 셈입니다. (13세기의 한 도미니코회 수도자의 언급)
11세기부터 투르코폴레스는 일종의 부대 운용으로 제국군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한 십자군의 고용과 다르게, 이들은 제국에게 봉급과 프로니아 제도에 따른 군납토를 받으며 정착한 직업 중앙군에 가까웠다.[4] 당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땅에 사는 여러 바르바로이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단지 바르다리오타이[5], 투르코폴리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했다. 페체네그족으로 구성된 바르다리오타이는 레부니온 전투, 베로이아 전투를 거쳐 그 종족적 독자성을 잃어갔고, 초창기에는 궁기병, 황실 헌병, 기마 경찰대 등으로 활발하게 운용되었던 페체네그인들은 동화되고 나서는 14세기 초반 무렵에는 로마인들의 땅에 정착한 속주민 지방 부대로 바뀌었다. 그러나 튀르크족은 제국의 멸망까지 계속 제국군에 복무하면서도 그 종족적 독자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

콤니노스 왕조시기에는 이들을 투르코폴레스로 부르며 여러 전쟁에 참전시켰다. 이들을 이끄는 장군들이나 투르코폴레스 출신 귀족들은 콤니노스 왕조의 중흥기동안 요직을 차지하였다. 북방 마니교도의 반란 진압과 레부니온 전투, 1차 십자군에 종군한 타티키오스와 투르코폴레스들, 요안니스 2세의 심복이자 세 황제를 모신 메가스 도메스티코스 요한네스 악수스, 안티오크 공국과 킬리키아 정벌전에서 대승을 거둔 부르수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로마인들이 제어하기에는 너무나 많아졌으며,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아군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다. (요안니스 6세)
13세기동안 제국의 군사력은 하향세를 걸었지만, 이러한 직업 중앙군으로써의 투르코폴레스는 페르시콘[6]이라는 이름으로 봉급을 받으며 계속되었었다. 그러나 14세기에 이르러서는 단지 약탈과 부수입만을 제공하는 튀르크 부족들의 지원군을 받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로마인들도 십자군의 예를 따라 개종하지 않았거나, 아예 부족 단위로 모집한 군대 수만명이 제국의 기치 아래 시민들을 약탈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의 잘 훈련된 튀르크족 부대와 다르게, 이들은 천 명 단위로 탈영하기 일쑤였으며, 아예 제국령 아나톨리아나 트라키아에 터를 박아버리는 문제를 초래했다. 이들은 다니슈멘드, 룸 술탄국, 훗날에는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에서도 등장하는데, 투르크멘 제부족들이 모두 단일한 왕조의 지도 체제 하에 있는 것이 아닌 이해 관계와 종교가 상충하는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4세기 ~ 15세기동안 제국에 이러한 투르크멘 약탈자 용병들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콤니노스 왕조 시기와 별 다를것 없이 운영되는 튀르크족 중앙군도 아직 소규모나마 남아있었다. 이들은 튀르크어로 배교자를 의미한 무르타티[7]라고 불렸으며, 전과 다름없이 정예 궁기병으로써 운용되었다. 이들은 바랑기아 친위대와 함께 15세기까지 기록에 남아있었으며, 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했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도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1] 이전까지 로마인들은 기병에게 기마 궁술을 가르치는 등, 자체적으로 궁기병 양산을 위해 노력했지만, 11세기 ~ 12세기 초엽부터는 그런 추세가 사라졌다.[2] 용병이 고용주보다 뒤에 선다는게 놀라울수도 있겠지만, 십자군 기사들보다는 경갑을 두른 만큼, 충격력 극대화를 위해선 2선에 서는 것이 당연했다.[3] 여기서 엿보이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천사와 사탄'도 아니고, 유의어나 마찬가지인 '사탄과 마귀'라고 한 것이다(…). 즉 서방 카톨릭 세계의 성직자로서 튀르크 인이나 그리스 인이나 소위 도찐개찐의 상종 못할 이방인으로 본 것이다.[4] 디라히온 공방전이나, 팔라이올로고스 왕조시에 지원받았던 튀르크 용병이나 룸 술탄국의 지원군과는 다른 개념이다.[5] 제국 유럽 속주의 북방에서 거주하는 페체네그족 병력[6] 로마인들은 튀르크인들이 옛 대적 페르시아인의 아종이라고 여겼다.[7] 어원은 페르시아어와 산스크리트어로 '파멸하는 자'라는 섬뜩한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