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05:09:46

동로마 제국/작위 및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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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과 역사3. 구조4. 직위
4.1. 황제4.2. 황족4.3. 궁정 작위(8~11세기)
4.3.1. '수염을 기른 자들'
4.4. 황실관리4.5. 황실 근위대4.6. 군사관료
4.6.1. 육군4.6.2. 해군
4.7. 행정 관료

1. 개요


동로마 제국은 고대 시절로부터 물려받은 귀족정관료주의가 혼합된 체제로 운영되었다. 관료제의 정점에는 물론 로마 황제가 있었으나 동로마 제국의 정체는 공화적 황제정이지 완전한 왕권신수설을 따르는 전제군주정은 아니라는 견해와 전제군주인 황제는 신성한 교회의 수장이다는 관점이 나뉘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공화적 황제정이었으므로 성문화된 승계법 및 절차 같은 건 없었고 오랜 전통에 따라 군대와 원로원이 황제를 선출하곤 했는데, 황제야 물론 자기 자식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면 하니까 자식을 공동황제(카이사르)로 임명하는 등의 꼼수를 쓰곤 했다.

이러한 부제나 황제 자신을 위한 존엄 칭호가 동로마 제국이 이어지면서 다양하게 축적되었는데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바뀌니까 문화도 기존의 라틴/이탈리아 베이스의 문화가 주된 축이었던 시절에서 그리스 베이스의 문화가 주된 축인 것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황제 휘하에는 제국 운영을 위해 다층적으로 결합된 행정-사법 조직들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들을 위한 수많은 명예 창호들도 별도로 존재했다.

천년 이상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직함들이 바뀌었는데 초창기에는 동로마 제국의 정치체제도 나뉜지 얼마 지나지 않고 여전히 라틴어가 행정ㆍ법률언어이던 시절이라 이전과 같은 칭호를 썼지만 시간이 흐르며 적어도 이라클리오스 시기(610~641)에는 많은 직함들이 그리스식으로 변형되었고[1] 알렉시오스 1세(1082~1118) 시기에 재차 바뀌었으나 이후에는 대체로 유지되었다. 마지막 왕조인 팔레올로고스 왕조 때에는 점차 날아가는 영토 탓에 억지로 권위를 세우기 위해 각종 작위 인플레가 일어나기도 했다.

2. 배경과 역사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초기 동로마의 정치제도는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누스 1세의 개혁을 그대로 유지하여 민정고관과 군정고관 및 이에 상응하는 칭호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각 관직을 맡은 개인이 원로원의 일원이냐 아니냐 또한 이 칭호 및 명예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의 대두로 막대한 영토 손실을 겪으면서 기존의 체제는 크게 흔들렸고 새롭게 궁정 중심의 행정체제가 도입되었다. 테마나 타그마를 맡는 장군들이나 이국의 대공들에게 주어지던 프로토스파싸리오스[2] 칭호는 궁정의 주요 관료들에게 주어졌고 이들은 원로원의 일부로 편입하여 변화를 꾀하면서 원로원은 기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정통 후계가 단절된 공위시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여러 명문가들이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고 몇몇 제국 황제(유스티누스 2세티베리우스 2세)도 이들의 귀족정을 통해 옹립되었으며 이 체제는 콘스탄티노플 대도시 중심 도시-민정 귀족과 지방 군사 귀족의 두 집단으로 구분되었다. 후자는 지역에 기반해 대토지를 소유했지만 옆동네처럼 봉건제는 아니라서 군대는 제정 통수권 아래에 있었다.

11세기 후반에는 만지케르트 전투로 군사제도가 무너지면서 귀족정이 더욱 강해졌으며 새로운 가문들이 유력명문으로 등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은 콤니노스 왕조는 제국의 행정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나갔다. 과거의 관직들과 칭호들을 점차 없애고 대신에 새로운 관직과 칭호들로 통합해서 왕조와 인척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수여하였다. 이러한 변화로 콤니노스 왕조와 이후의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토지 소유 귀족정으로 흘러 소수의 귀족층이 요직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동로마 제국은 초기에 평민들까지도 당파별로 나뉘어 자기들 의견을 표명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벌간의 다툼이 이 시기에 이르면 귀족정으로 굳어지고 그것도 한 족벌이 위기상황 극복을 이유로 요직을 거의 독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1세기부터 12세기에는 80개 정도의 민정 귀족 가문과 64개 정도의 군사 귀족 가문이 명확히 두드러지면서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기에 이르렀고 팔레올로고스 왕조 말기에는 요르요스 코디노스[3]라는 사람이 쓴 보고서에서 기존에 있는 소수의 사람이 고관의 칭호와 존엄(황권) 칭호의 엄격한 구분들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한탄을 볼 수 있다. 이 사람이 한탄하면서 쓸 때 수세기간 축적해온 수많은 명명법들도 같이 써 준 덕분에 이 문서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니 감사하도록 하자.

종합해보면 초창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은 한때 사법권을 강화해 권력을 시민이 통제하려는 움직임까지도 보였으나 이것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체계화하지는 못하고 각 파벌 간의 균형이라는 형태로 유지되다가 그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볼 수 있다.

3. 구조

시대에 따라 구조는 계속 변하지만 공통적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는 군주이며 군사령관이고 교회와 행정부 수장을 맡는다.

이론상으로는 원로원과 시민, 군부의 지지를 받는 자가 황제로 선출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조가 유지되는 동안은 상속된다. 찬탈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역시 지지도가 중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동로마 황제는 한편으로는 전제군주이며 신에게서 받은 권위를 가진 정교회의 수장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로원의 무기명 투표로 선출되고 군대와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군대의 지지[4] 외에도 정교회의 지지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황제는 제국의 재정을 통제하고 귀족을 임명-박탈하거나 부와 토지를 하사하고 몰수할 권한을 갖는다. 서유럽국가들이 정치와 종교가 느슨하게 분리되어 있는데 반해 동로마 황제는 종교의 수장으로 주교를 선임할 수 있다. 황제는 워낙 방대한 제국을 통솔해야 하므로 공식적인 관료 외에 비선조직을 갖기도 하며 이런 궁정관료들의 영향력은 7세기 이후 강화되었다.

황궁에서 근무하는 환관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황족 여성들은 대체로 구분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정절이 필요했지만 학술에 큰 차별을 받지 않았던 걸로 보이고 간혹 여황제도 배출되는 게 특징.

콘스탄티노플의 원로원은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원로원을 모델로 만든 정부의 주요기관으로 원로원 의원은 황제가 임명한다. 실질적으로는 황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황제는 원로원과, 보다 실질적으로는 원로원의 친한 이들과 상담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원로원은 전쟁의 결정이나 외교 수립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레온 6세 시기에 권한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아무튼 로마원로원은 제국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유지되었다. 몇몇 원로원 의원은 정부의 공식 직함과 호칭을 얻어 관료로 일하기도 한다.

황제 혼자로는 정치를 담당할 수 없기에 중앙에 권력이 집중되면 중앙 행정관료들이 권한도 커지고 기구도 비대해지는 반면, 지방분권화가 되면 각지에 흩어진 유력자들이 발언권을 키운다. 동로마 제국의 관료제는 비대하고 부패한 걸로 악명 높지만 사실 9~10세기를 기록한 '관직표'[5]를 보면 중앙관청의 관료 총원이 600명에 불과하다. 그 넓은 제국 정부가 겨우 그 숫자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보라. 사실 제국 관료들은 이미지와 달리 대부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업무를 처리하는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이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말기에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행정관료들은 호메로스의 저술을 교재로 고전 그리스어 수업을 받고 인문학과 수사학, 논리학을 배웠고 군사적 재능이 탁월한 경우 외에는 이런 학문에 능숙해야 출세할 수 있었다.

동로마 제국의 중기 이후 체제는 세금 징수와 무역 관리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었다. 황궁 관리, 속주 관리(테마의 통치와 민병대 관리 담당), 공무원(정부의 공공 정책과 재정 담당). 이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견제장치는 크리티와 세크리티키 사이에 이루어진다. 이들은 모두 사법 관료이며 세크리티키는 상위 관료의 통제를 받으며 각 분과의 업무를 수행하는 로고쎄티스를 감독한다. 각 로고쎄티스는 공공 회계와 세금 징수를 담당하기도 하고 군대의 봉급이나 보급체계를 담당하기도 한다. 로고쎄티스 투 드로무(Lotothetes tou Dromou)는 정부의 외교부서나 우편업무 등을 감독하며 때로는 황제의 개인보좌관 역할을 맡기도 한다. 세크리티키 중에는 정부 감독관을 맡기도 하는 데 이들은 황실 재산의 관리를 포함해 고아원 운영, 망명자 보호 등의 사회복지 정책을 담당하기도 한다.

중앙 정부와는 별도로 지방정부들도 다수 존재하는데 4개 광역구[6]와 2개 교구 백개 이상의 속주로 구분되는 제국은 각 지역마다 지방관과 보좌기구를 갖추고 있다. 보좌기구는 해당 지역의 유력자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테마 제도가 본격화된 뒤에는 각 지역의 스트라티고스들에게 보다 분권적인 역할이 주어졌다.

4. 직위

동로마의 직위가 갖는 중요성은 일종의 신분상승 같은 것이다. 동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로서 갖는 휘황찬란한 명예와 그를 돋보이게 할 화려함을 연출해서 외교-정치적 도구로 활용했기에 고위직을 수여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제국의 말기에도 누가 더 높고 명예로운 직위를 갖느냐를 두고 많은 다툼이 벌어졌다.

이하는 대체로 높은 순서.

4.1. 황제

최고 권위의 직분이며 황족이나 황제가 친분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몇몇 극소수 외국 군주들에게만 주어지는 호칭.
  • 바실레프스: 그리스어로 군주를 의미. 중세 그리스어를 사용한 동로마 제국에서는 바실렙스 혹은 바실레프스라고 발음했다. 그리스어권에서 전통적으로 군주의 호칭이었다. 페르시아의 샤 또한 이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지배자가 동로마 황제로 단일화되어 오랫동안 남으면서 피지배인이던 그리스 사람들이 황제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라클리오스 황제가 629년에 자신의 칭호로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전통적인 아우구스투스 외의 황제의 주요 칭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 포르피로게니투스: 합법적인 황제의 혈통.[7]
  • 아프토크라토르: 직역하면 스스로 지배하는 자, 그 위에 아무도 없이 오롯한 주권을 지닌 이를 가리킨다. 임페라토르로서의 호칭을 대신하였으며 그 의미 덕분에 후술할 명칭이 쓰이게 되었다.
  • 바실레프스 아프토크라토르: 후기에 통치를 용이성 및 후계 정통성 문제로 공동 황제나 부제들을 임명하면서 다른 황제들을 통솔하는 진짜 황제를 위한 차별화된 칭호가 필요해져서 붙은 이름이다. 11세기 이후 황제의 공식 명칭은 '바실레프스 케 아프토크라토르 로메온', 로마의 황제이자 주권자로 굳어진다.

4.2. 황족

  • 데스포티스: 해당 문서 참고.
  • 세바스토크라토르: 'venerable ruler'로, 직역하면 존엄한 통치자이다. 알렉시오스 1세가 압토크라토르와 세바스토스를 합해 만들었다. 첫 세바스토크라토르는 알렉시오스의 형 이사키오스로 쿠데타 당시 제위를 양보한 형에 대한 예우였다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사키오스는 알렉시오스가 외정에 전념할 때 황태후 안나와 함께 내정에서 황제 역할을 분담했다. 형식적인 호칭이 된 뒤에도 의전 서열상 데스포티스 다음가며 이 칭호를 쓴 첫 외국인은 세르비아의 초대 대공 스테판 네마냐다.
  • 카이사르: 서로마 제국 멸망 이전 로마 제국 시대에는 황제 칭호 중 하나였으나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공동 황제나 황위계승자가 부제로써 받는 호칭이었다. 세바스토크라토르가 만들어지자 서열 3위로 밀려났고, 데스포티스가 만들어지자 4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제국 후기까지 매우 중요한 호칭이었으며, 소수의 고관만이 받는 호칭이었다. 여성 형태는 '카이사리사'이며, 외국인에게는 거의 수여되지 않았다. 최초로 외국인이 봉해진 사례는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불가리아의 칸 테르벨(Tervel)에게 수여한 것. 이때 수여받은 칭호가 변화를 거쳐 러시아의 황제 차르의 칭호가 되었다.
  • 노빌리시모스: 라틴어 노빌레스(고귀한)에 최상급 접미사 -ismos가 붙어 만들어진 칭호다. 본래 카이사르 바로 아랫단계로 황제의 친인척들에게 주는 칭호였다. 그러나 콤니노스 왕조 시기에 외국 고관들에게 봉하면서 많이 희석되었다. 대신 최상급 접두사 프로토까지 붙어 프로토노빌리시모스라는 호칭이 만들어졌지만, 그 명칭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더 높은 형태인 프로토노빌리시모히피르타토스가 만들어 대체했다. 인플레가 끝이 없다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대에 전자는 사라졌고, 후자는 결국 지방관을 뜻하는 호칭으로 남았다. 호칭의 짐바브웨 달러
  • 쿠로팔라티스: 궁전 담당관의 호칭인 라틴어 쿠라 팔라티(cura palatii) 에서 유래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만들어져 황궁의 운영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수여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처럼 황제와 매우 가까운데다 매우 큰 권력과 재력을 지닐 수 있는 직무였으므로 그 칭호 또한 시간이 흐르며 위엄을 축적해갔다.이에 따라 중요한 황족에게 수여되었으나 11세기 이후 쇠퇴하여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봉신 군주에게 주로 수여되었다.
  • 세바스토스: 라틴어 아우구스토스나 아우구스투스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황제들의 칭호였다. 11세기 후반에 등장하였으며, 알렉시오스 1세가 그의 형제와 혈연들에게 광범위하게 수여하였다. 여성 버전은 세바스테. 프로토세바스토스라는 특별한 호칭은 알렉시오스의 둘째 동생인 하드리아노스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베네치아 도제와 아이코니움의 술탄에게도 수여되었다. 12세기에는 황제와 세바스토크라토르의 자녀들, 그리고 외국의 고위 고관들에게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나 12세기 동안의 과도한 봉작과 많은 칭호들의 탄생으로 인해 접두사 pan("all"), hyper(이하 "위"), proto(이하 "첫째")를 사용함으로써, 판세바스토스, 판휘피르세바스토스, 또는 판휘피르프로토세바스토휘피르타토스 같이 '최고존엄본가' 같은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저렴한 호칭이 되었으며, 그것들 중 실제로 12세기를 지나 살아남은 것은 거의 없었고, 그 중요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4.3. 궁정 작위(8~11세기)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은 두 가지 범주로 뚜렷하게 칭호를 구분했는데, 순전히 존칭적인 궁정 칭호이자 계층의 상징으로 수여된 수여 칭호와 제국의 고관들을 위해 황제가 내린 선포 칭호다. 전자는 세 개의 하위 범주로 나뉘었는데, "바르바티(수염을 기른 자-남자-)"와 "환관"과 "여자"에게 수여하는 칭호가 각기 존재했다. 고관들은 원래 선포 칭호를 받았지만 후대로 이어지면서 수여 칭호를 받은 황제의 친인척들이 관직을 독점하자 양쪽이 자연스레 섞였고, 예를 들면 수여 칭호 마기스트로스이자 선포 칭호 로고쎄티스 투 드로무와 같은 식의 관작을 사용하게 된다.

4.3.1. '수염을 기른 자들'

  • 프로에드로스: 960년 니키포로스 2세 때 만들어졌다. 내시 파라코이모메노스인 바실리오스 레카피노스에게 처음으로 수여되었다. 궁정에서 서열이 매우 높았는데, 조스테 파트리키아 밑, 마기스트로스 위에 위치했다.이 칭호을 가진 자는 원로원 의장을 겸하기도 했으며, 타 부서의 권한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이 관직은 11세기에 널리 수여되었는데, 비내시 계열 사람들에게 수여된 이후, 선임 프로에드로스에 대한 칭호로 프로토프로에도스를 만들었다. 콤니노스 왕조 시기인 12세기 후반에 다른 궁정 명명법들과 함께 사멸했으며,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게네토스에 따르면, 960년대 프로에드로스의 의복과 휘장은 "장미색과 금색 튜닉, 보석으로 장식된 허리띠, 그리고 금색 띠와 두 개의 금색 타블리아와 담쟁이 잎장식으로 다듬어진 흰색 클라미"로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 마기스트로스: 동로마 제국 초에는 최고위 고관직인 마기스테르 오피키룸이 있었는데, 점차 직무를 여기저기서 가져가면서
    결국 8세기 쯤에는 단순한 칭호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명예는 그대로였으므로 고관을 위한 칭호로 10세기까지 유지되었다.
    10세기에는 오직 제국에서 12명만 가진 칭호였으나 칭호 인플레를 거쳐 12세기에 결국 사멸하였다.
  • 베스타체스: "베스타스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어원학적으로 '베스타리온'(황제의 옷장)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으나, 아직까지 입증된 것은 없다. 각 정부 부서와 법원 관직의 우선권 목록을 나열한 970년 편저 '에스코리알 탁티콘'에서 언급된다. 처음에는 상급 궁내청의 내시들에게 국한되었지만, 점점 상급 장교들에게도 수여되었으며, 미하일 보르츠, 니키포로스 멜리세노스, 그리고 니키포로스 보타니아티스와 그 유명한 로마노스 디오예니스같은 유명한 장교나 고위 사법 관료들에게 수여되었다. 궁정 위계서열에서는 마기스트로스와 베스테스 사이에 있었지만, 관직 인플레의 영향으로 떡락한다. 세기가 바뀐 뒤에는 프로토베스타체스라는 칭호가 궁정 관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수여된다. 12세기 초 이후에는 사멸한다.

4.4. 황실관리

  • 파라키모미노스(신변책임자): 황궁궁정직에 속해 있으며, 주로 '내시'들이 받는 직함이었다. 9-10세기에는 사실상의 최고 책임자(현대의 총리)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휘하의 에우프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내시 궁정 관리들, 테오도시우스 2세 때의 크리사피우스, 마우리키우스 때의 소유자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동로마 작가들이 썼지만, 실질적으로 썼다고 입증된 시기는 7세기 후반, 레온 4세의 통치기다. 초기에는 밤중에 황제가 있는 곳 밖에서 자는 임무를 맡은 쿠비쿨라리오리에게 주어진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관직이었다. 7,8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에피 테스 트라페지스와 같은 다른 궁성 부서들과 결합되었고, 이 관작을 가진 자들은 오스티아리오스 같이 낮은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9세기 중반부터 중요성이 급격히 높아졌고, 서열상 상관인 프레포시토스를 뛰어넘은 최고위직이 되었다. 이후 2세기 동안 이 관직을 가진 자들은 제국에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내시가 실권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모 국가와 비슷하다[8] 그런데 예외적으로 내시가 아닌 자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한마디로 약한 황제들 시기에는 수석 장관으로서 큰 권력을 휘둘렀고, 바실리오스 1세미하일 3세로부터 이 권력을 이용해 찬탈한다. 궁정 복장은 비단 카바디온 튜닉과 금으로 된 스키디온 모자, 또는 금선 장식이 달린 살구색 비단으로 덮인 돔형 스카라니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 황족 중 나이 어린이. 재무 또는 군사 담당
  • 파피아스: 황실수문장
  • 핀케지니스: 황실의 신뢰받는 어르신
  • 카니클리오스: 사실상의 황궁관리장
  • 에피 테스 트라페지스: 연회담당

4.5. 황실 근위대

  • 프로토망글라바토스: 황실 근위대의 총지휘관, 곤봉을 든 자 라는 뜻으로 황제 곁에서 무장하고 있을 수 있었다.
  • 아콜루토스: 바랑인 친위대의 친위대장. 원래는 부관이라는 말로 9세기까지 쓰이다가 콤니노스 왕조 시기부터는 바랑인의 칭호가 됨.
  • 칸디다토스: 콤니노스 왕조 전까지의 황실 친위대장 칭호. 그들이 입은 흰 옷 때문에 쓰인 이름이다.
  • 스파싸리오스; 황실 근위대의 통칭인 바실리키 이테리아의 근위병들을 뜻함. 황제 곁에 검(Spatha)을 들 수 있는 고위 귀족으로 이뤄진 근위병

4.6. 군사관료

4.6.1. 육군

  • 엑사르코스 : 이탈리아나 아프리카 속주 총독. 사실상 부왕
  • 도메스티코스 : 원래는 친위대를 말하지만 고위 장교의 호칭이 됨.
  • 메가스 도메스티코스 : 육군통합사령관
  • 도메스티코스 톤 스콜른 : 중앙군(타그마) 사령관. 한때는 육군통합사령관을 의미했다.
  • 도메스티코스 투 테마토스 : 군관구(테마) 사령관
  • 스트라티고스 : 초기엔 변경부대 사령관, 테마 설치 이후에는 테마 사령관 겸 군정총독.
  • 둑스 : 훗날 테마 제도가 약화되는 콤니노스 시기에 주요 테마나 여러 군관구를 담당하는 귀족 관리를 둑스라고 불렀다. 서유럽 봉건제의 공작과 일대일 대응된다.
  • 카테파노 : 9세기경, '이탈리아 카테판' 처럼 여러 개의 테마를 지휘하는 사람.
  • 프로토스트라토스 : 제국 후기 콤니노스 왕조 이후 등장한 '마굿간 관리' 육군 부사령관
  • 스트라토페다르키스 : 행보관. 보급담당관.
  • 호플레타르키스 : 보병 사령관.
  • 프로토켄타르코스 : 선임 백부장
  • 카발라리오스 : 기병. 제국 말기에는 황족

4.6.2. 해군

  • 메가스 둑스 : 대공, 콤니노스 왕조 시절에는 해군의 총사령관이고 그보다 말기에는 정부-관료-군부의 수장
  • 아미랄리스 : 제독, 아드미랄, 아미라르의 어원. 시칠리아의 이슬람교도들이 아미르를 칭하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 메가스 드룬가리오스 : 해군 사령관
  • 드룬가리오스 : 해군의 경우 테마 해군 사령관

4.7. 행정 관료

  • 프레토리안 프리펙트 : 원래는 프레토리안 가드(친위대)의 장교를 말했는데 수사권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는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 행정, 재무, 사법, 입법을 아우르는 부제처럼 되었다. 정치라면 거의 다 담당한다.
  • 바실레오파토르 : 일종의 대원군.
  • 프로토세크리티스 : 공문서 보존 책임자. 행정부 장관.
  • 로고쎄티스 : 각 행정 부서별 책임자
  • 카르툴라리오스 투 베스티아리우 : 재무부, 조달청
  • 프라이펙투스 우르비 : 콘스탄티노플 경찰청장
  • 퀴에스토르 : 감찰관.
  • 트리부노스 : 호민관.
  • 사켈라리오스 : 처음에는 명예직이었지만 이후 수석 재무관으로 자리잡는다.
  • 프레토르 : 세무관.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까지는 테마의 내정관.
  • 호레아리오스 : 식량 담당관.


[1] 사실 이전부터 그리스식으로 왕왕 쓰였었다. 이라클리오스는 이를 공식화 한 것일 뿐이고.[2] 원 의미는 '검을 품는 자들 중 으뜸'라는 뜻인데 의식에서 황제의 검을 운반하는 이를 의미한다. 최초에는 이 의무를 수행하던 근위대장의 칭호였다.[3] 일명 위(Pseudo), 또는 가짜 코디노스. '가짜'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중세시대에 쓰여진 다수의 로마 관련 기록이 과거의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빌렸던 것처럼 코디노스의 문헌들 또한 대부분 누군가가 코디노스의 필명을 빌려 기록한 것이기 때문.[4] 정상적인 시기에는 군대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황제로 일단 즉위한 사람에게 충성을 바쳤다.[5] 그 시대의 실제 관직들을 기록한 표. 동로마 제국의 행정조직을 알 수 있는 중요 유물이다.[6] 프레토리안 프리펙트가 관리하는 구분된 지역[7] 적통인 남녀는 꼭 황위를 계승하지 않았어도 포르피로게니투스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었다.[8]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전근대의 중앙집권 제국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황제 개인에게 강력한 권력이 집중되어있다보니 이 권력자가 신뢰하는 심복이 권력 행사를 돕는 비서 역할을 하는 동시에 권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 이는 꼭 전근대의 현상은 아니고, 현대의 대통령제를 보더라도 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이 명목상 장관급의 지위를 보장받을 뿐 아니라 정권에 따라서는 실질적인 행정부 2인자로써 부통령이나 다름없는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다고 할 정도. 하지만 현대와 같은 고도화된 관료제가 갖춰지지 못한 전근대 제국에서는 궁중에 머무르며 황제의 시중을 들던, 그리고 혈통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물려줄 수 없기에 황제 개인에게 충성할것이라 여겨지던 환관이 이러한 역할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황제가 좀 무능할 경우 환관이 실권을 잡기 쉬웠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