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6:15:05

아이스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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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Greeks
※ 2009년 그리스 Skai TV 방송이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알렉산드로스 3세 게오르요스 파파니콜라우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소크라테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리스토텔레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플라톤 페리클레스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콘스탄티노스 카라테오도리 멜리나 메르쿠리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니코스 카잔차키스
16위17위18위19위20위
오디세아스 엘리티스 호메로스 마노스 하지타키스 레오니다스 1세 히포크라테스
21위22위23위24위25위
피타고라스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마리아 칼라스 아르키메데스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26위27위28위29위30위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엘 그레코 콘스탄티노스 11세 요르기오스 세페리스 리가스 페레오스
31위32위33위34위35위
아리스 벨루키티오스 요안니스 메탁사스 니코스 갈리스 게오르기오스 카라이코스 데모크리토스
36위37위38위39위40위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 야니스 마크리야니스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 야니스 리트오스
41위42위43위44위45위
테미스토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투키디데스 에우클레이데스 파블로스 멜라스
46위47위48위49위50위
아테네의 크리스토둘로스 아타나시오스 디아코스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 디미트리 나노풀로스 무명용사
51위52위53위54위55위
페이디아스 아리스토파네스 코스티스 팔라마스 에톨리아의 코스마스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
56위57위58위59위60위
소포클레스 니코스 벨로야니스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니콜라오스 마르지오리스
61위62위63위64위65위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에피쿠로스 알렉산드로스 파파디아만티스 오톤
66위67위68위69위70위
반젤리스 솔론 클레이스테네스 아이스퀼로스 바실리오스 2세
71위72위73위74위75위
콘스탄티누스 1세 이온 드라구미스 코스타스 시미티스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76위77위78위79위80위
테오 앙겔로풀로스 니코스 실루리스 스텔리오스 카잔티디스 차릴로스 플로라키스 에우리피데스
81위82위83위84위85위
카롤로스 코운 유스티니아누스 1세 라키스 라조폴로스 헤로도토스 다나시스 벤고스
86위87위88위89위90위
헬레네 글리카츠아흐와일러 카티나 팍시누 알리키 부지욱라키 마르코스 밤바카리스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
91위92위93위94위95위
바실리스 치차니스 피로스 디마스 마노스 로조스 마노리스 글레조스 엘레나 무잘라
96위97위98위99위100위
필리포스 2세 디미트리스 혼 라스카리나 부불리나 탈레스 프락시텔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Αἰσχύλος / Aeschylos
(523 ~ 456 BC)

1. 개요2. 작품 목록

1. 개요

아테네의 인물. 그리스 비극 3대 작가 중 가장 앞 사람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

가장 앞서 활동을 시작했고, 우리가 그리스 비극이라 부르는 저작들의 기초적인 틀을 다진 인물이기에, '그리스 비극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아이스퀼로스는 소포클레스의 스승이었으며, 소포클레스가 경연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을때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다른 두 사람과 달리 현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들이 많은데, 이는 아이스퀼로스가 페르시아 전쟁을 겪은 세대이며, 그 자신 역시 참전 경험이 있었던 까닭[1]일 것이다. 강대한 페르시아와 대결한 경험을 토대로 아테네 사회가 갖추어야할 미덕, 나아가야 할 방향, 범해서는 안 될 금기 같은 것들에 주목했으며, 따라서 그의 작품에 남아있는 테마들도 저런 것들이다. 비극 경연대회에서 13차례나 우승했고 생전 90여 작품을 발표했다고 전해지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7편 뿐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면서 저작들이 유실되었다고.

대표작은 오레스테스 3부작. 아가멤논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암살당하자 아들 오레스테스가 부친의 복수를 위해 모친을 살해한 신화를 모티브로 했다. 이의 정당성을 두고 아폴론과 복수의 여신들, 오레스테스가 법정에서 배틀을 벌이는데, 이것을 '사적인 복수'에서 '공적인 법치'로 넘어가는 이행과정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아이스퀼로스가 '사회'에 무게를 두었다고 보는 것도 이런 까닭[2].

상당히 독특한 죽음을 당했다는 야사가 있다. 그가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생긴 일이다.[3] 마침 거북이를 잡은 수염수리[4] 그 등딱지를 깨기 위해 거북이를 바위 위에 떨어트렸는데, 그 '바위'가 알고보니 아이스퀼로스의 대머리였다고 한다. 어떤 기록에서는 하늘이 그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서 그 예언을 피하려 화창한 날 아무 것도 없는 들판에 나갔다가 거북에 맞아 죽었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야사대로라면 인생의 끝 또한 그리스 비극처럼 맞은 셈.

2. 작품 목록

  • 『탄원하는 여인들』
  • 『페르시아인』
  •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 『자비로운 여신들』

[1] 마라톤 전투살라미스 해전에 모두 참전했다. 그는 군인으로서 스스로를 더욱 자랑스러워 했는지, 묘비에는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했다는 것을 알리는 글이 적혀있다.[2] 아이스퀼로스는 심지어 페르시아 왕궁에 관한 비극도 남겼다. 현재도 전해지는 '페르시아인들'이 바로 그 작품인데, 내용은 괜히 아테네 쳐들어가서 깝쳤다고 후회하는 페르시아인들과 그들의 오만(휘브리스)를 경계하는 것. 일반적으로 그리스 비극들이 - 당시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 고대의 신화 모티프에 바탕하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동시대의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 독특하다.[3] 당시 시칠리아는 그리스 본토만큼이나 번영하였다. 아이스퀼로스도 시칠리아에서 처음 공연한 작품들이 있다. 2차대전 이전의 런던과 뉴욕의 관계로 유명 극작가들이 이 두 도시를 왕복한 것과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4] 검독수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두 종 모두 육지거북을 사냥할 때 날아오른 뒤 바위에 떨어트려서 껍데기를 깨트려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