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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토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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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암체어 제너럴 매거진 선정 위대한 장군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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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Θεμιστοκλῆς, Themistocles
BCE 524~BCE 459

아테네정치가, 군인.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자인 명장.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 1등 공신.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서구권에서 최고의 제독을 논할 때에는 호레이쇼 넬슨과 함께 항상 언급된다.[1]

2. 생애

피리에프스 만을 새로운 아테네의 항구로 만들 것을 주장하고 대규모 함대 건조계획을 실천에 옮겨 아테네를 고대 그리스 시대 최강의 해군국으로 만든 아테네 해군의 아버지.

그는 모친이 아테네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BCE 508년 클레이스테네스가 아테네의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주는 법을 제정했을 때 비로소 아테네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일로 그는 민주제에 공감하게 되었으며, BCE 493년에 사법과 민정(民政)을 담당하는 아테네의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으로 뽑혔다. 이후 피리에프스 만의 항구 건설 사업을 추진해 만들어냈고, 밀티아데스의 재판에 참여, 그를 무죄로 만드는 데도 공헌했다. 이후 마라톤 전투에 참여했다.

그 이전까지 아테네는 마라톤 전투에서도 알 수 있듯 육군국[2]이였으나, 라우리온 일대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은을 가지고 200여 척에 달하는 갤리선을 건조해 그리스 최대의 해군을 양성하는 계획을 추진했고, 특유의 말빨과 계략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크세르크세스 1세가 직접 지휘하는 2차 페르시아 원정군이 침공하자, 사실상 그리스 해군의 사령관이 되어(명목상 사령관은 스파르타인이였다.) 아르테미시움 해전에서 페르시아 해군을 1차 저지하려 기도한다. 상당한 숫적 열세 속에서도 나름 잘 싸웠지만 테르모필레 전투가 3일만에 그리스 연합군 육군의 패배로 돌아가자 철수, 아테네로 돌아가서 시민들을 살라미스 섬으로 소개시키고 돌아가려는 다른 함대 사령관들을 설득[3]살라미스 해전을 이끌어냈고, 여기서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러나 이후에도 아테네는 안전하지 못했고, 이로인해 인기가 떨어진 테미스토클레스는 결국 BC 479년 집정관직에 선출되는 데 실패해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반 스파르타 정책을 펼치다가 친 스파르타 정치인이었던 키몬(밀티아테스의 아들)의 정치적 공세에 밀려 BC 472년 도편추방당한다. 그 다음해, 한 스파르타 인이 페르시아와 내통하다 발각된 사건이 있었는데 테미스토클레스가 관련자로 지목되어 누명을 쓰게되고, 테미스토클레스는 결국 유랑자가 되었다. 반역죄까지 뒤집어 쓴 테미스토클레스는 한 때의 적 페르시아로 도주해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인 아르타크셀크세스 1세의 부하가 되어 사트라프(페르시아의 지방총독)로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마그네시아 총독 재임기에 6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페르시아를 배반한 이집트를 아테네가 함대를 보내 원조했다는 이유로 테미스토클레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아테네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고민 끝에 친구들과 잔치를 베푼 후 음독자살했다고 되어 있지만, 자연사했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상당히 뇌물을 밝히고,[4] 계략에 능해 그의 정적인 아리스티데스를 도편추방시키기도 했다.[5] 특히 그의 계략이 빛을 발한 것은 살라미스 해전인데, 크세르크세스에게 항복하겠다고 뻥을 쳐서 퇴로를 막으러 함대를 분산시키게 하고, 그걸 다시 동맹국 함대가 일부러 눈치채게끔 해 철수하려던 동맹국 함대를 저지하고, 이로 인한 분란을 다시 크세르크세스에게 알려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해 격파했다. 그 직후에 그는 또 페르시아에 항복할테니 아테네인들의 신변보장을 해달라고 크세르크세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속임수에 능하다는 것이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던지 페르시아군이 퇴로를 막았다는 소식을 동맹국 지휘관들에게 알릴 때 자신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정적인 아리스티테스를 통해 알렸다.[6]

[1] 전쟁사에서 테미스토클레스가 인정받는 이유가 육군과 해군의 시너지를 가장 먼저 깨닫고 이것을 실전에 직접 운용했다는데 있다. 그 이전까지 해군은 병참지원이나 육군을 배에 태워서 실어주는 수송선 같은 1차 보조역할에만 국한돼왔으나 테미스토클레스이후부터는 해군도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를 해군의 아버지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2] 해양무역이 발달했지만 해군력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적대적인 도시 중 해양도시였던 아이기나와의 분쟁에서 번번이 물먹었다고... 당시 테미스토클래스의 대함대 건설 주장은 마라톤 전투의 주역이었던 중장보병파들의 강력한 반대와 더불어 찬성측도 그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 조달의 어려움으로 지지부진했지만 새로운 은광이 발견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은광의 은을 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대신 대함대 건설의 재원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면서 대함대 건설의 이유를 페르시아의 위협 대신 전통적인 앙숙이었던 아이기나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교묘하게 내세워 관철시켰다고...[3] 설득도 하고 협박도 했다. 본거지 아테네 시가 페르시아 군에게 불타버린후 회의석상에서 조롱하는 타도시 사령관들에게 "정 그러면 아테네 함대는 아테네 시민들을 모두 데리고 그리스를 떠나 식민도시로 이주하겠다"고 협박했는데 당시 그리스 연합함대에서 아테네 함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지라 모두들 조용해졌다고 한다. 즉, 육군이 좁디좁은 코린트지협에서 페르시아 육군을 막아도 아테네 함대(함선 숫자가 200척에 달했다.)가 빠진 나머지 그리스함대는 페르시아 함대에게 엄청난 숫적 열세에 처하게 되기 때문에 페르시아 함대를 막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었다.[4] 그 시대엔 그게 일상다반사라지만.[5]정직한 사람이란 평판이 너무 자자해 지긋지긋해서 추방에 표를 던진 사람이 있었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페르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돌아오지만.[6] 자신이 그런 말을 하면 절대 안믿을 거라며 그에게 맡겼다. 아리스티테스는 명성 그대로 참으로 성실하게도 남들은 다 도망치는 판에 싸우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방금 군대에 합류하면서 페르시아군을 목격한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