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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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Greeks
※ 2009년 그리스 Skai TV 방송이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 100명'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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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데모크리토스
Δημόκριτος | Democritus
파일:democritus.jpg
출생 기원전 460년경
그리스 압데라
사망 기원전 380년경
직업 철학자
관심분야 철학, 수학, 천문학

1. 개요2. 생애 및 일화3. 사상
3.1. 원자론3.2. 인식론3.3. 윤리학
4. 어록5. 여담

[clearfix]

1. 개요

βούλεσθαι μᾶλλον μίαν εὑρεῖν αἰτιολογίαν ἢ τὴν Περσῶν οἶ βασιλείαν γενέσθαι.
페르시아의 왕국을 갖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원인설명을 찾아내길 원한다.
― 단편 118[1]

고대 그리스철학자. 원자론을 주장했으며, 이를 통해 후대의 유물론에 영향을 끼쳤다.

2. 생애 및 일화

그리스 북동부 트라케 연안의 압데라(Abdera)에서 태어났다. 압데라는 그리스의 고대 철학과 근동의 사상이 모여든 곳으로 이러한 환경은 데모크리토스의 성장과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중에 레우키포스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에게는 적대적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트라쉴로스에 따르면, "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찬양자였던 것 같으며, 더구나 피타고라스 본인에 대해서도 동명의 저작에서 그에 대해 경탄하는 글을 썼다. 그는 이 사람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온 것 같고, 만약 시간의 문제가 방해가 되지 않았다면 그로부터 배웠을 것이다"라고 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정원에 일부를 떼어 내 쪽방 하나를 만들고 거기서 사색과 집필 활동에 몰두했다. 그는 철학뿐 아니라 문학, 천문학, 수학, 물리학, 의학, 농학, 지리학, 사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에 박학자라 불렸지만 명성을 하찮게 생각해서 남에게 알려지는 데 열을 내지 않았다.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아테네에 가서 그가 한 말이 유명하다. "나는 아테네로 왔으며,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했다." [2]

데모크리토스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여행에 모두 쏟아부었다. 그는 기하학을 배우기 위해 이집트에 가서 사제들을 만났고, 페르시아로 가서 칼다이오스[3]를 여럿 만났으며 홍해에도 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인도에서 나체 현자들과 교류했으며 에티오피아에도 갔다왔다고 말한다.

그는 여행에서 모든 재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무렵에는 너무 가난해져서 형제인 다마소스에게 생계를 지원받으며 살았다. 또한 당시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탕진하는 것은 죄가 되었기에 재판정에 불려나가게 되었는데, 재판정에서 자신이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낱낱이 진술하자 재판관은 "그는 유산을 탕진한 게 아니라 마르지 않는 지식으로 바꾸었다"며 무죄 방면을 선고했다고 전한다. 이후 미래의 일을 예언함으로써 명성을 얻었고, 자신의 책 《대우주 체계》를 사람들에게 낭독해주고 어마무시한 돈을 벌게 된다. 그의 명성은 널리 퍼졌으며, 심지어 생전에 청동상까지 세워졌다. 백세 넘게 장수하다가 죽을 때는 국가에서 장례를 치러줬다.

그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는 너무 연로해서 임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누이는 테스모포로스 축제[4] 사이에 그가 죽을 참이라는 걸 알고, 축제 때 그녀가 여신에게 해야 할 마땅한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 그 모습을 본 데모크리토스는 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자신에게 따뜻한 빵을 매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이 빵을 코에 대고서 스스로 축제 기간 동안 살아 있었다. 3일이 지나고 그는 아무런 고통 없이 생을 마감했고 이때 그의 나이 109세[5]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자신의 책 《팜메트로스》에서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그리고 누가 이렇게 타고난 지혜를 가졌을 것이며
누가 모든 것을 아는 데모크리토스가 이룬 만큼의 일을 이룩했겠는가?
그는 죽음이 사흘 동안 곁에 있을 때 집에서 견디며
빵의 따뜻한 기운으로 씻어내고 있었네.

3. 사상

3.1. 원자론

그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우주 전체의 근원은 원자(a-tom)[6]와 허공 뿐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관습적으로 믿어지는 것들이다. 세계는 무수하며 생성하고 소멸한다. 어떤 것도 있지 않은 것에서 생성되지 않으며 있지 않은 것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또한 원자들은 크기와 수에 있어서 무수하고 우주 전체 속에서 회오리치며 이동하고 그렇게 해서 혼합물들인 불, 물, 공기, 흙을 낳는다. 이것들도 어떤 원자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원자들은 단단한 성질이 있어 영향받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 태양과 달은 그런 미세하고 둥근 입방체들로 합성된 것이고 영혼도 비슷한 방식으로 혼합된 것이다. 영혼은 지성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모상들이 우리 눈에 떨어지는 데 따른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7]
데모크리토스는 엘레아 학파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상을 그저 분리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하나의 있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을 '있는 부분'(완전하게 채워진 입자, 즉 '원자 a-tom')와 '없는 부분'(아무것도 없는 빈곳, 즉 '허공')으로 구분하여 그 둘을 모두 중요시 여겼다.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해석하면 "원자는 구형의 형태로 크기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며 수적으로 무한하다. 이것들은 허공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부딪힘으로써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떤 것들은 아무데로나 튀어나가고, 어떤 것들은 형태, 크기, 위치, 배열의 일치에 따라 서로 얽히고 하나로 뭉쳐, 그렇게 해서 결합체들의 생성을 일으킨다. 그리고 어떤 필연이 그것들을 마구 흔들어서 따로따로 흩어놓을 때에야 그 결합체는 소멸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자는 어떠한 성질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만물에 수많은 다양성이 생기는 것은 그것들이 결합할 때 형태, 배열,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또한 무수히 많은 다른 세계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세계에는 해도 없고 달도 없으며, 어떤 세계는 우리의 것들보다 훨씬 더 크다. 세계들 사이의 거리들은 똑같지 않아서, 어떤 곳에는 세계들이 더 많고, 어떤 곳에는 더 적다. 그리고 어떤 세계들은 커지고 있고, 어떤 세계들은 전성기에 달했으며, 어떤 세계들은 쇠퇴하고 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세계들이 생겨나고 있고 어떤 곳에서는 사라지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충돌함으로써 소멸한다. 몇몇 세계에서는 동물도 식물도 없고 물기도 전혀 없다.[8][9]

3.2. 인식론

우리가 보는 것은 모상들이 우리 눈에 떨어지는 데 따른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
같은 맛일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
테오프라스토스 『식물의 원인에 관하여』 [11]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감각은 원자들의 접촉으로 이뤄진다.[12] '보는 것'은, 보이는 대상과 모양이 닮은 어떤 상들보이는 것으로부터 계속 흘러나와 시각에 부딪히는 데 기인한다. 따라서 감각은 각 사람이 느끼는 의견에 불과하며 이것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각자는 감각에 따르는 한, 그 자신은 언제나 같은 것에 대해서 같은 판단을 내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된 것은 '원자'와 '허공'만이 있을 뿐, 나머지 감각은 '관습상' 그러한 것에 불과하다고 데모크리토스는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인식이 진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사고를 통한 인식'과 '감각을 통한 인식'을 나눈다. 사고 작용은 감각자극에 의해 혼 내부에서 생긴 운동이 균형을 이룰 때 생기는 것으로, '사고를 통한 인식'은 진리의 판결에 신뢰성을 보증해 주는 '적법한' 인식이다. 반면, '감각을 통한 인식'은 틀림없이 참된 것을 식별할 수 없는 '서출(첩이 낳은 자식)적' 인식이며, 그것에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있다.[13]

따라서 데모크리토스는 판단의 기준을 3가지로 나눈다. ① 불분명한 것들의 파악을 위한 기준으로서 현상 ② 탐구의 기준으로서 개념 ③ 선택과 기피의 기준으로서 느낌이다. [14]

3.3. 윤리학

궁극의 목적은 쾌활함인데,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잘못 배우고 받아들였듯이 쾌락과 같은 것이 아니라 쾌활함에 따라 잠잠하고 고요하게 영혼이 지내는 것이며 어떠한 두려움이나 미신 또는 다른 어떤 상태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안녕 (euesto) 이라고도 불렀고 다른 여러 이름으로도 불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5]
유쾌해지고자 하는 사람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많은 일들로 분주해서는 안 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자신의 능력과 본성 이상으로 취해서도 안 되며, 행운이 찾아와서 과도한 평판으로 이끌어져 갈 때에도, 그것을 하찮게 여기며 능력 이상의 것에 손을 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적절한 크기는 지나친 크기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단편 3. 스토바이오스 『선집』 4. 39. 25 [16]

데모크리토스는 인생의 최고목적이란 쾌활함에 있으며, 모든 일에서의 온건함과 문화적 고양을 통해 그것이 잘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쾌와 불쾌는 이로운 것들과 이롭지 못한 것들을 구별하는 경계"이고,[17] 이런 의미에서 "사람에게 가장 최선은, 가능한 가장 유쾌하게 그리고 가능한 가장 괴롭지 않게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18]

하지만 그것은 "육체보다는 혼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혼의 완전함은 육체의 결함을 바로잡지만, 육체의 강함은 헤아림이 함께 하지 않으면 혼을 조금도 더 낫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9]

데모크리토스의 '쾌활함'은 이후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4. 어록

"나는 우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키케로 『아카데미카 1』 Ⅱ.23.73 [20]

사람은 작은 우주와 같다.
―단편 34. 다비드 『철학서설』 38.14 [21]

"세계는 무대, 삶은 한편의 연극, 그대는 와서, 보고, 떠나네." [22]

"광기 없이는 그 어떤 누구도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없다." [23]

5. 여담

파일:헨드릭_테르_브루겐-웃는_데모크리토스.jpg
헨드릭 테르 브루겐, 데모크리토스, 1628년 그림
  • 별명은 "웃음의 철학자". 그가 자주 웃어서 사람들이 그를 히포크라테스에게 데리고 갔는데, 정작 히포크라테스는 그가 웃는 것은 병들어서가 아니라 지혜로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을 싫어했으며, 심지어 데모크리토스의 저작들을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아서 다 불태워 버리기를 원했으나,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어서 소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얼마나 싫어했던지 플라톤은 옛 사상가들에 대해서 거의 모든 사람을 언급했으면서도, 데모크리토스에 대해서는 그에 반대하는 주장을 할 필요가 있는 곳에서조차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의 훌륭함을 질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현재 남은 자료를 살펴보아도 그 사상이 매우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 중세에 이르러 "데모크리토스 = 무신론자" 비슷하게 취급되어서, 루크레티우스 등과 함께 묶여 그에 대한 언급이 거의 금기시되었다. 이 때문인지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은 거의 필사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전승되는 자료가 적다. 학문계에서 찬밥 신세였던 데모크리토스와 그의 학문이 재조명 받은 것은 근현대 원자론이 주류 과학 안에서 입지를 다진 후였기에, 근현대 학자들은 그의 고대 원자론을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에 종종 아쉬워했다[24].
  • 안정복이 천주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진 천학문답에서 덕목(德牧)이라는 이름으로 헤라클레이토스와 함께 언급되었다. #


[1] 에우세비오스의 『복음의 준비』 ⅩⅣ.27.4에서 인용.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39[2] 키케로는 데모크리토스의 이 말을 높게 평가했다. 키케로는 "대중적인 명성은 그것 자체를 위해서 추구되어서도 안되고 명성을 얻지 못한다고 크게 안달이 나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견실하며 진중한 사람, 그런 사람은 명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며 데모크리토스의 이 말을 인용했다. 막상 키케로 본인은 외부의 평판에 엄청 집착했지만 말이다.[3] 점성술에 능한 페르시아 사제들.[4] 가을에 이루어지는 여자들만의 축제.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 3일간 축제를 한다.[5] 혹자는 80세라고 말하기도 한다.[6] 고대 그리스어로 "나눌 수 없는 것"을 뜻한다.[7]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262[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58~559[9] 세계가 성계라고 하는 설도 존재한다.[10]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262[11]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67[1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비판하면서, "그럼 다른 감각도 접촉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반박했지만, 실제로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시각(시세포와 광자의 접촉), 청각(고막과 공기의 접촉으로 인한 진동), 후각(후각세포와 냄새 분자의 접촉) 등의 다른 감각들도 '입자의 접촉'임이 밝혀짐으로써 데모크리토스가 결과적으론 옳았다.[13]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72[14]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74[15]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262[16]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79[17]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607[1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607[19]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606[20]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38[21]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582[22]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600[23]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662[24] 사실 중세 유럽에서는 이슬람 세계에서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관련된 지식이 거의 잊혀진 상태였다. 12세기에 들어서 아랍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이 서유럽에 전해지자, 서유럽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매우 낮설어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