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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 Ζήνων | Zeno | |
[1] | |
이명 | 키티온의 제논 Ζήνων ὁ Κιτιεύς | Zeno of Citium |
출생 | 기원전 334년경 |
아케메네스 제국 속국 키프로스 키티온[2] | |
사망 | 기원전 262년경 |
고대 그리스 아테네 | |
직업 | 철학자 |
분야 | 논리학, 물리학, 윤리학 |
학파 | 스토아 학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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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이다.2. 생애 및 일화
제논은 무역상 므나세아스의 아들[3]로서 키프로스의 키티온 출신이다. 제논은 포이니케[4]에서 뿔고둥을 배에 싣고 가다가 페이라이에우스 근처에서 배가 난파되고 말았다. 당시 30세였던 그는 페이라이에우스에서 아테네로 상경하였고, 어느 서점에 가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 2권을 다 읽었다.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이런 분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지 서점 주인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때마침 크라테스가 지나가는 걸 본 서점 주인은 뜬금없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을 따라가세요." 그때부터 그는 크라테스[5]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훗날 제논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 난파 당한 것은 정말 성공적인 항해였다"고 말한다.크라테스로부터의 철학 공부는 정말 만족했지만 크라테스는 키니코스 학파였고 기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6] 제논은 스승이 창피스러웠다. 크라테스는 그의 바로 이 점을 고쳐주고 싶어서 렌틸 수프가 든 사발을 주고 그것을 들고 케라메이코스[7] 지역을 지나가게 했다. 그가 창피해서 그것을 덮어 감추는 것을 보고 크라테스는 지팡이로 그 사발을 박살내 버렸다. 자기 다리로 렌틸콩 수프가 흘러내리는 채로 제논이 달아나자 그가 말하길, "왜 달아나는가, 포이니케의 애송이야? 무시무시한 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
그는 이후 아테네에 학파를 창설했고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그는 페이시아낙스[8]의 채색 주랑에서 거닐며 강의를 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주랑(柱廊)[9](stoa; 스토아)에 있는 학파라고 하여 스토아 학파라 불리게 되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제논을 대단히 존경하여 자신들의 성벽 열쇠를 맡길 뿐만 아니라 황금 왕관과 청동상으로 그를 기릴 정도였다. 심지어 주변 도시들도 앞다투어 동상을 만들고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 주장했다. 마케도니아의 왕 안티고노스 2세도 그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아테네에 갈 때면 언제나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고 자신에게 와 달라고 몇번이나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논은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자신의 제자를 보냈다고 한다.
평소 그는 마르고 키가 크며 가무잡잡했으며 다리는 굵고 목이 기울어져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기운없어 보였다. 또한 무뚝뚝했고 날카로우며 얼굴은 항상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인내심이 많고 극히 검소해서 불을 사용하지 않은 음식과 얇은 넝마를 애용했다. 특히 말리지 않은 무화과 열매를 좋아했고 햇볕 쬐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희극작가 필레몬은 《철학자들》이라는 연극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빵은 한 조각, 반찬은 말린 무화과, 마시는 것은 물.
이 사람이 생경한 철학으로 지혜를 탐구하기 때문에,
그는 굶주리는 법을 가르치지만 학생들을 얻는다.
제논은 병없이 건강하게 제자들을 가르치며 평생을 살다가 98세에 생을 마쳤다.[10] 그의 죽음은 이러했다. 그는 학원을 나오다 넘어져서 발가락이 부러졌다. 그는 땅을 손으로 내려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진해서 간다. 왜 나를 부르고 그러는가?" 그리고 바로 그는 스스로 숨을 멈춰 죽었다. 루키아노스는 제논이 이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아사했다고 한다.이 사람이 생경한 철학으로 지혜를 탐구하기 때문에,
그는 굶주리는 법을 가르치지만 학생들을 얻는다.
3. 사상
3.1. 마땅한 것과 아파테이아
제논은 철학을 3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는 자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에 관한 것[11]이다. 제논은 첫번째로 말에 관한 것을 가르치고, 두번째로 자연학을 가르치며, 세번째로 윤리학을 가르친다.[12] 이 중, 결국 제논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윤리학이다. 제논은 윤리학에서, 인간 본성의 궁극적 목적은 자연(본성[13])에 일치하며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충동에 휘둘리는 동물과는 다르게 이성(로고스)을 가진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제논은 주장한다. 즉, 인간은 이성에 따라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것.그렇다면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논에게 있어서 '마땅한 것'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땅한 것' (to kathēkon)은 종종 '의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14] 본래는 '일정 수준에 맞는 적당한 것'을 뜻한다. 동식물부터 현자에 이르기까지 다섯 단계마다 '그 수준에서 적당한 것'이 있고, 그것을 해내는 것이 '마땅한 것'이 된다. 이러한 '마땅한 것'은 어떤 행위가 이루어졌을 때 '이성'에 따라 이치에 맞는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논이 볼 때,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들에게 '마땅한 것'이란, 부모, 형제, 조국을 공경하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이성'이 선택하는 공동체의 덕에 따라 사는 삶이다. 그 덕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행복을 위해 자족적인 것이기도 하다.[15] 반대로 마땅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성'이 선택하지 않는 것들로서, 앞선 예의 반대가 된다. 또한 마땅히 해야 할 것들 중 어떤 것들은 상황과 무관하고 어떤 것들은 상황에 의존한다. 더 나아가 마땅한 것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하고 어떤 것들은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16] 이성에 근거한 '마땅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상황과 조건에 따라 구분하고 '마땅한 것'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인간은 '비이성적인 감정의 충동'에서 벗어나 평온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감정의 평온 상태가 바로 아파테이아 (apatheia)다.
제논은 감정 자체는 기본적으로 비이성적이고 영혼의 본성에 어긋나는 과도한 움직임이거나 충동으로 보았다. 이러한 감정은 괴로움, 공포, 욕망, 쾌락의 4종류로 구분된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감정도 있는데 기쁨, 신중함, 바람이 그것이다. 제논은 기쁨이 쾌락과 반대되며 이는 이성적인 팽창이라고 말하고, 신중함은 두려움과 반대되며 이를 이성적 거부라고 말하고, 욕망과 반대되는 것을 바람이며 이를 이성적 욕구라고 말한다.[17] 즉, 이성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감정은 나쁘지만, 이성으로 통제되는 감정은 좋다는 것이다.
현자는 어딘가에 빠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한편 다른 사람도, 즉 열등한 사람도 냉정하고 냉담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한다. 또한 현자는 자만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자는 남이 알아주는 것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한결같은 태도를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다른 사람도 자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열등한 사람으로서 아무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는 사람도 그렇다고 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18]
또한 제논은 현자와 열등한 사람을 비교하면서, 현자란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 한결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냉정한 사람'이 되어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얘기한다. 따라서 제논은 '감정은 (이성에 의해) 적절히 통제받아 순화된 감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지, 인간의 감정이 아예 없어져야 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19]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18]
3.2. 제논 사상의 의의
제논은 '도덕적인 영역'과 '아무래도 상관없는 영역'을 구분한다.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쾌락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강함과 연약함, 부유함과 곤궁함, 출생의 귀천, 정치적 이력 등은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것,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 차별성을 두어서는 안 되며 그저 운명이 닥치는 대로 다 받아들여야 한다.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인 '도덕적인 영역'은 제논에게는 일종의 '의무(마땅한 것)'이다. 가령, 삶에 대한 사랑,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자연적 경향에 부응하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 동포애도 사회적 본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에 부응한다. 따라서 결혼을 하고 정치적 이력을 쌓고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등의 모든 행위들은 인간 본성에 '마땅한 것'들이고 일종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마땅한 행위'의 특징은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그런 행위가 도덕적 의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행위는 부분적으로는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 성공 여부가 우리의 의지에도 달려 있지만, 타인들, 상황, 외부 사건들, 나아가 종국적으로는 운명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의무(마땅한 것)'가 있음으로해서 그의 행동이 설혹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선택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제안하며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즉, 행위의 결과보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도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제논은 "만약 운명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것을 원한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는 그의 '마땅한 것'을 적극적으로 행할 것이나,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는 그것에 아무런 감정도 두지 않으며 아예 신경을 끄고 살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길 항상 기다리며 자신의 행할 '마땅한 것'을 준비할 것이며 마침내 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 그는 담담하게 그것을 행할 것이다.
4. 제논의 어록
nullum malum gloriosum est; mors autem gloriosa est; mors ergo non est malum.
악은 결코 영광스럽지 않다. 그러나 죽음은 영광스럽다. 그러므로 죽음은 악이 아니다.
― 단편 196 [20]
악은 결코 영광스럽지 않다. 그러나 죽음은 영광스럽다. 그러므로 죽음은 악이 아니다.
― 단편 196 [20]
ἕνα Ἰνδὸν παροπτώμενον ἐθέλειν ἰδεῖν ἢ πάσας τὰς περὶ πόνου ἀποδείξεις μαθεῖν.
고통을 감내하는 것에 대한 모든 논증을 배우기보다는, 오히려 불에 타고 있는 한 명의 인도인[21]을 관찰하길 원한다.
― 단편 241 [22]
고통을 감내하는 것에 대한 모든 논증을 배우기보다는, 오히려 불에 타고 있는 한 명의 인도인[21]을 관찰하길 원한다.
― 단편 241 [22]
5. 여담
그의 스토아 학파는 상황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매우 충실히 이행하여 체제 순응적인 면들을 보여왔기 때문에, 로마황제들이 매우 좋아한 사상이었다. 로마가 기독교로 넘어가는 전환기에도 에피쿠로스 학파, 회의주의 등의 다른 사상들은 아예 깡그리 사라졌으나 스토아 학파의 철학만큼은 살아남아 기독교에 흡수되었다.유로화 전환 이전 키프로스 20센트 주화의 도안으로 새겨져 있었다
[1]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원본을 로마 시대(기원전 23년 - 서기 14년) 때 수집가들이 똑같이 제작한 로만 카피(Roman Copy)이다. 현재 흉상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있으며, 사진은 이탈리아의 사진작가 Paolo Monti가 1969년에 찍은 사진.[2] 키프로스 섬의 남쪽에 있었던 소왕국.[3] 데메아스의 아들이라고 하기도 한다.[4] 현재 그리스와 알바니아 사이의 지역. 그리스의 북서부.[5] 앞서 말한 크세노폰이 아니다. 크라테스는 당시 키니코스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6] 키니코스 학파의 가르침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의 태도' (anaischyntia)였기 때문에 기행에 거리낌이 없었다.[7] 케라메이코스(Kerameikos): 아테네 북서쪽에 위치한 넓은 지역. 도자기를 생산하던 곳이라 '세라믹'(ceramic; 도자기)이라는 말이 이 지명에서 연원했다. 국립묘지가 있었고, 엘레아 성지 순례가 출발하는 도로가 있으며, 아테네성 밖으로 나가는 성문이 있는 곳이어서 사람의 출입이 잦은 번화한 곳이었다.[8] 페이시아낙스는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 키몬의 처남으로, 그가 이 회랑을 지었다.[9] 지붕을 갖추고 있으면서 한쪽은 벽, 다른 한쪽은 야외로 터진 복도를 가진 건물을 말한다.[10] 페르사이오스는 그가 72세 죽었다고 한다.[11] "말에 관한 것은 통상 '논리학'이라고 하나, 스토아학파에서 말하는 '로기콘'이란, 수사학과 변증론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넓은 의미로 번역하였다." ㅡ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40[12] 말에 관한 것은 언어 논리적인 면이 강해서 마치 문법사전을 읽는듯하다. 자연학에 관한 것도 별 색다를게 없다. 윤리학이 유명한데, '덕'이라는 본성에 따라, 감정의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마음의 평정을 추구한다.[13] 퓌시스(physis)는 '자연'이라는 뜻이지만, 고대 그리스 당시에 '본성'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14] 키케로가 'officium'(공직자의 임무)라고 번역한 데서 비롯되었다.[15]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93[16] " '마땅한 것'은 부모, 형제, 조국을 공경하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이성'이 하기로 선택하는 것들이다. 마땅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성'이 선택하지 않는 것들로서, 부모를 보살피지 않고 형제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친구들을 사귀지 않으며 조국을 경시하는 것 등이다. 마땅한 것도 아니고 마땅한 것에서 어긋나는 것도 아닌 것은 이성이 하기로 선택하지도 않고 금하지도 않는 것으로서, 예를 들면 잔가지를 꺾는다거나 필기구나 긁개를 손에 잡는다거나 이와 유사한 것들이다. 또한 마땅히 해야 할 것들 중 어떤 것들은 상황과 무관하고 어떤 것들은 상황에 의존한다. 상황에 무관한 것들은 건강과 감각기관들을 돌보는 것 등이다. 상황에 따르는 것은 자신을 불구로 만든다거나 재산을 버리는 일이다. 마땅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도 대비해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마땅한 것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하고 어떤 것들은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덕에 따라 사는 것은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하지만, 묻고 대답하고 산책하는 등의 일은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82[17] 제논에 따르면 감정 자체는 나쁘고 비이성적이라고 말하지만, 감정은 충분히 이성적일 수도 있으며 그런 감정은 좋다고 말한다. 아마도 여기서 제논이 말하는 '이성적인 감정'은 '이성으로 그 충동이 통제가 되는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은 감정이 비이성적일 경우가 많지만...)[18]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86~87[19] 제논은 '자연(본성)에 일치하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인간은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인간이 가진 본성으로서의 이성은, 감정을 통제할 수 있을 뿐이지, 감정을 아예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논도 감정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며, 감정 자체를 아예 없애야 된다고도 주장하지 않는다. 제논은 단지 '이성의 통제를 통해, 과도한 감정의 악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추구했을 뿐이다. 즉, 제논은 (이성을 통한) 감정의 절제를 말했지, 감정의 소거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도 절제된 기쁨, 절제된 바람 등의 감정을 용인한다. 요새 철학책을 보면 제논을 감정이 소멸된 사이코패스로 만들어 놓고 있다. [20]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82. 7[21] 여기서 말하는 인도인이란 인도의 현자들, 특히 칼라노스(Καλανός)를 일컫는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만난 인도의 현자 중 한 명이였으며, 그와 함께 페르시아로 갔다. 죽을 때가 다가오자 그는 수사에서 분신자살을 감행했는데, 모든 사람이 놀랐지만 정작 본인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2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양탄자』 2. 20.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