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7 22:52:02

에드워드 제너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00 Greatest Britons
※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
TOP 10
<rowcolor=#ffe> 1위 2위 3위 4위 5위
윈스턴 처칠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다이애나 스펜서 찰스 다윈 윌리엄 셰익스피어
<rowcolor=#ffe>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이작 뉴턴 엘리자베스 1세 존 레논 호레이쇼 넬슨 올리버 크롬웰
11위~100위
<rowcolor=#ffe>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어니스트 섀클턴 제임스 쿡 로버트 베이든 파월 알프레드 대왕 아서 웰즐리
<rowcolor=#ffe>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마거릿 대처 마이클 크로포드 빅토리아 여왕 폴 매카트니 알렉산더 플레밍
<rowcolor=#ffe>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앨런 튜링 마이클 패러데이 오와인 글린두르 엘리자베스 2세 스티븐 호킹
<rowcolor=#ffe>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윌리엄 틴들 에멀린 팽크허스트 윌리엄 윌버포스 데이비드 보위 가이 포크스
<rowcolor=#ffe>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레오나르드 체셔 에릭 모어캠브 데이비드 베컴 토머스 페인 부디카
<rowcolor=#ffe>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스티브 레드그레이브 토머스 모어 윌리엄 블레이크 존 해리슨 헨리 8세
<rowcolor=#ffe>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찰스 디킨스 프랭크 휘틀 존 필 존 로지 베어드 어나이린 베번
<rowcolor=#ffe>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보이 조지 더글러스 베이더 윌리엄 월레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웨슬리
<rowcolor=#ffe>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아서 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로버트 스콧 이넉 파월
<rowcolor=#ffe>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클리프 리처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프레디 머큐리 줄리 앤드류스 에드워드 엘가
<rowcolor=#ffe>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애튼버러 제임스 코널리 조지 스티븐슨
<rowcolor=#ffe>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찰리 채플린 토니 블레어 윌리엄 캑스턴 바비 무어 제인 오스틴
<rowcolor=#ffe>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윌리엄 부스 헨리 5세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로버트 1세 밥 겔도프 (아일랜드인)
<rowcolor=#ffe>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무명용사 로비 윌리엄스 에드워드 제너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찰스 배비지
<rowcolor=#ffe>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제프리 초서 리처드 3세 J. K. 롤링 제임스 와트 리처드 브랜슨
<rowcolor=#ffe>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보노 (아일랜드인) 존 라이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도날드 캠벨 헨리 2세
<rowcolor=#ffe>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J. R. R. 톨킨 월터 롤리 에드워드 1세 반스 월리스
<rowcolor=#ffe>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리처드 버튼 토니 벤 데이비드 리빙스턴 팀 버너스리 마리 스톱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colbgcolor=#000><colcolor=#fff> FRS FRCPE[1]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
파일:Edward Jenner (1749~1823).jpg
출생 1749년 5월 17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사망 1823년 1월 26일 (향년 73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국적
[[그레이트브리튼 왕국|]][[틀:국기|]][[틀:국기|]](1749~1801)

[[영국|]][[틀:국기|]][[틀:국기|]](1801~1823)
직업 의학자, 동물학자
학력 파일:St-Georges_Logo.jpg 세인트 조지 대학교
파일: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원형 아이콘.png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영국의학자. 예방 의학의 기초를 만들어 현대 의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의학자다. 그래서 면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제너의 가장 큰 업적은 우두 접종으로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 실험을 통해 최초로 입증한 것. 이를 통해 학회의 인정을 받아 인류를 천연두로부터 구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최초의 백신 개발자이다. 백신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다. 백신(Vaccine)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를 뜻하는 vacca에서 따왔는데, 이 천연두 백신을 우두를 이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두 접종에 대한 천연두 예방법 자체는 당시 민간 요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기록에 남겨진 최초의 우두 접종을 행한 영국의 농부 벤저민 제스티(Benjamin Jesty)라는 사람도 있었고 고대 중국에도 인두 접종(virolization 점막, 이 경우는 코로 균을 침입시키는 방법)이 그림으로 나타나있다. 이를 제너가 과학적인 실험으로 입증해내 학회의 인정을 받고 정부 차원에서 백신의 의무화를 가져왔다는 점이 중요한 업적이다.

동물학자이기도 했으며, 에 대하여 흥미가 많아 새를 해부하고 자세한 생태를 조사하며, 뻐꾸기 생태 연구에도 제법 공을 남긴 학자다.

2. 생애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출생. 13세 때부터 의학을 공부했으며, 1770년에 존 헌터(1728년 ~ 1793년)로부터 2년간 외과학을 배우고, 그들의 우정은 헌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인트조지 병원에 근무하다 1773년에 고향 마을에서 개업의가 되었는데, 이 지방에서는 우유 짜는 부인이 의 우두를 경험한 뒤에는 사람이 앓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우두란 소나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와 비슷한 질병인데, 천연두에 비해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대부분 자연 치유가 되고 증상 및 후유증도 심하지 않는 편이었다.[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enner_phipps_01.jpg
제너는 이러한 사실을 의학에 응용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한 인체 실험이 필요했는데 존 필립이라는 당시 62세의 노인이 9세 때 우두를 앓았다고 실험에 자청하였다. 제너는 천연두의 병균을 노인에게 접종한다. 결과는 접종 부위에 약간의 발진이 발생했지만 5일 후 회복되었다. 한 번 우두에 걸리고 나면 50년이 지나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 후 1796년 우두농을 8세 소년 제임스 핍스(James Phipps, 1788년 ~ 1853년)의 팔에 접종하고 6주 후 천연두농을 소년에게 접종하였으나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_cow_pock.jpg
제너의 진가가 인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는데, 제너의 실험 결과가 인정받기까지는 종두법에 대해 편견이 상당했다. 우두법 개발 초기에는 "소 고름을 맞으면 사람이 소로 변한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일례로 당시 신문 삽화에는 우두법을 처방받은 사람의 몸에서 소가 튀어나온다거나 소처럼 변하고 소를 숭배하는 모습으로 그린 경우도 있었다.[3] 지금이야 저런 것을 무지하다고 보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도 한 것이, 저 때는 종두법 자체가 검증되기 전이었는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같은 의사들이나 과학계 사람들도 "제너가 검증되지도 않은 방법을 사람을 상대로 쓴다!"라고 비판하며 한 마음으로 깠다고 한다. 구한말~일제강점기 당시 지석영에 의해 우두법이 조선에 들어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일본놈들이 소 고름을 사람에게 놔서 순하고 반항하지 못하게 만들려 한다더라"라는 유언비어가 돈 적이 있다.

그는 1798년까지 23번의 실험을 실시하여 그 결과를 왕립학회에 보고했다. 실험 대상자 중에는 11개월 된 자신의 아들도 포함돼 있다. 영국 왕립 학회는 결과를 보고 우두법의 효능을 인정했으나, 그 대신에 우두법을 특허로 낼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그러나 제너는 돈이 아닌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끝까지 거절하고 우두법을 다른 의사들이 무료로 처방할 수 있게 했다.

이로 인하여 왕립 학회에게 무시당했지만 대신 세계 곳곳의 학회로부터 명예 회원으로 존경받으며 우대받았다. 그가 천연두 백신을 무료로 풀었음에도 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 병원 운영과 세계 각국의 연구비와 기부금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 의료 아카데미 회원, 스웨덴 왕립 학회 회원, 독일 의학 협회 회원 등. 그리고 제너의 무상 봉사는 그만큼 대우를 받아 세계 곳곳에서 거액의 기부금을 받았으며 여러 유럽 나라에서 깍듯이 우대를 받고 위대한 의학자로도 존중받았다.

이후 1805년에는 우두법의 효능을 알아본 나폴레옹이 자신의 군대에 우두 접종을 실시하기에[4] 이르렀는데 이는 군대 내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낮추는 역할을 하였고, 결국 그의 유럽 대륙 정복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었다. 아미앵 조약 이후로는 영국 포로를 절대 석방하지 않던 나폴레옹이 제너가 포로 석방을 부탁하자 '인류의 은인의 부탁을 거절할수는 없다.' 라며 부탁한 포로들을 [5] 석방해서 보내줬다고.

이러다 보니 영국 왕립 학회도 백기를 들고 제너를 받아주면서 영국의 자랑이라고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천수를 누리던 그는 1823년 만 73세 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제너는 종두법이 의학계에서 검증된 후에 부자가 되자 이전에 살던 집을 맨 먼저 접종을 받았던 소년인 핍스에게 주었다. 정확히는 핍스의 가족에게 무료 임대를 준 것이다. 그 후 그의 후손이 영국 국교회에 매각하여 현재는 제너를 기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여담

  • 허현회는 저서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에서 제너가 만든 백신은 예방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남는다며 그의 백신 이론을 엉터리라고 비난했다. 그 뿐만 아니라 제임스 핍스는 20세에, 제너의 아들은 21세에 사망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핍스 역시 당시에는 천수에 가까운 나이인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제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였으며, 30년을 더 살고 제너가 묻힌 교회에 함께 묻혔다. 반면 허현회는 대체의학을 신봉하다가 몸을 망치고 핍스보다 10년 빠른 55세에 사망했다.


[1] Fellow of Royal College of Physicians of Edinburgh[2] 우유를 짜는 여성의 손에 종기가 생기긴 하지만 이로 인해 죽거나 병을 앓지는 않았다. 또한 손에 생기는 종기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료되었다.[3] 저 그림을 그린 작자는 의외로 영국의 사회비평가이자 화가인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 1756~1815)다. 사회 풍자화나 만평을 많이 그렸던 화가로 유명하다. 일례나폴레옹 정부를 비판하는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4] 이 때 우두법의 보급을 지원하고 진행한 인물로 기요탱 박사가 있다. 단두대의 어원이 된 그 사람 맞다. 기요탱은 본래 의사 출신으로 우두법의 보급과 같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활동했다.[5] 그중에는 스파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