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 치바 롯데 마린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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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72 미키 료 · 73 카나자와 타케시 · 75 호리 코이치 77 구리하라 켄타 · 78 오토나리 켄지 79 마츠나가 타카히로 · 82 호소야 케이 83 모로즈미 켄지 · 85 미나미 마사키 86 사부로 [[감독#s-1.1| ★ ]] · 89 오카 토모카즈''' | ||
<코디네이터> 후쿠우라 카즈야 · 오타니 토모히사 · 코사카 마코토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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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중복 지명 당첨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4) 고교생 드래프트 (5)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6) 지명 후 미입단 [1] 시즌은 난카이로 치렀지만, 드래프트 지명 당시에는 다이에로 매각되었다. |
<colbgcolor=#191919><colcolor=#ffffff> 치바 롯데 마린즈 No.78 | |
오토나리 켄지 大隣憲司 / Kenji Ohtonari | |
생년월일 | 1984년 11월 19일 ([age(1984-11-19)]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교토 부 교토 시 미나미 구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학력 | 킨키대학 |
프로입단 | 2006년 희망 입단 프레임 계약 |
소속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2017)[1] 치바 롯데 마린즈 (2018) |
지도자 |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투수코치 (2019~) |
등장곡 | AK-69 - START IT AGAIN[2][3] |
1. 개요
일본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2. 선수 경력
고등학교에서는 학내에서는 뛰어난 투수였지만 부상 등으로 그렇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킨키 대학 진학 이후로 포텐이 대폭발해서 3학년 때는 전일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평자 0.00을 기록하고 4학년 때는 리츠메이칸 대학 야구부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까지 찍었다.[4] 대학 리그 통산 성적은 41경기 22승 11패 ERA 1.14. 그야말로 대학리그를 평정해버렸고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제외한 11구단이 모두 그를 지명하기로 결정하여[5] 역대급 쟁탈전이 벌어졌다. 여기서 승리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그를 데려온다.[6]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데뷔 시즌에는 8경기밖에 나오지 못했고, 나온 경기에서도 평자 5.98로 좋지 못하면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그 후로 몇 년 동안은 그럭저럭 선발 로테를 돌아갔으나 크고작은 부상과 부진으로 툭하면 2군을 가야 했고, 2011년에는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그래도 재능이 있었기에 2008년에는 21경기에서 11승 8패 ERA 3.12를 기록하는 등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1년 시즌 이후 결혼하고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에 파견되었다.
이후 2012년에는 개막 로스터에는 못 들었지만 개막하자마자 선발 투수들이 단체로 이탈하는 바람에 바로 1군에 올라왔고, 이 해에 제대로 포텐이 터졌다. 개막하자마자 10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달성. 7월 8일 닛폰햄 전부터 8월 24일 치바롯데 전까지 7경기 연속 연승까지 거두면서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포텐이 터졌다. 아쉽게도 후반기에 0승 4패를 거두면서 승수는 많이 쌓지 못했지만 그래도 12승 5패로 개인 사상 최다승이자 리그 다승 4위를 거두었고, ERA 2.03을 찍으며 평균자책점 4위[7](팀내 2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탈삼진도 리그 5위를 기록하는 등 오토나리가 드디어 빛을 보나 싶었다.
시즌 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뽑혔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2013년에도 시즌 초에는 에이스를 맡아서 열심히 뛰었으나, 6월 1일에 통증으로 2군에 내려가고[8] 난 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황색인대골화증이라는 난치병이 발견되었다.[9] 시즌아웃. 그리고 이 병이 오토나리의 선수생활을 완전히 작살내버렸다.
다행히도 2014년 후반기인 7월 27일에 간신히 복귀하는 데 성공하여 9경기 8선발 3승 1패 ERA 1.64를 기록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와 일본시리즈까지 멱살캐리하는 등 활약하면서 2014년 후반기 팀의 에이스로 다시 복귀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제2의 전성기도 1년만에 끝났다. 2015년에도 시즌 전반기에는 무사사구 완봉승까지 기록하면서 다시 살아났지만 이번에는 팔꿈치 관절 염증이 도지며 결국 또 시즌아웃. 오토나리의 마지막 불꽃도 그렇게 사그러들어갔다.
그 후로 2016년과 2017년은 딱 1경기씩 등판했다. 몸 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었고 그냥 못해서 2군에서는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는데 016년에는 평자 4점대, 2017년에는 평자 5점대로 부진했다. 2년 간 2경기에서 1승 1패를 기록했다. 결국 포텐은 충분하지만 유리몸으로 인해 망가질 만큼 망가졌다고 구단은 판단하였다. 2017 시즌 이후 방출 통보를 받고 소프트뱅크를 떠났다.
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현역 연장을 희망하고 있었기에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 참여했고, 2018년 2월 치바 롯데 마린즈의 스프링캠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결과는 합격.2.2.1. 2018 시즌
시즌 초반은 2군에서 보내다가 5월 2일 옛 친정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결과는 폭망. 1.2이닝 7실점 7자책 7피안타 2피홈런으로 그야말로 신나게 두들겨맞았다.[10] 결국 하루만에 칼같이 2군 강등. 2군에서도 25경기 3승 무패 1세이브 ERA 4.69로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정리가 예상되었다.결국 시즌이 끝나가는 9월에 은퇴를 선언하였고, 10월 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은퇴식이 예정되었다. 롯데 선수지만 마지막 1년을 제외하면 소프트뱅크에서 뛰었기에 일부러 후쿠오카 원정에서 은퇴경기를 치른 것이다.
10월 3일에 1군에 다시 콜업되었다. 은퇴경기에서는 소프트뱅크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라 그런지 다른 롯데 선수들은 원정 선수들을 호명하는 아나운서가 이름을 불렀지만 오토나리만큼은 야후돔 장내 아나운서가 직접 이름을 호명했고, 원정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등장곡까지 틀어주었다.
오토나리는 이날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첫 타자 우에바야시 세이지만 상대하고 내려갈 예정이었고, 적극적으로 승부하겠다고 인터뷰한대로 정말 직구만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우에바야시가 그의 2구를 쳐서 안타를 만들었고,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이후 연이은 볼넷과 실책 때문에 우에바야시가 홈에 들어가면서 은퇴경기에서 오토나리는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오토나리의 강판 이후 양팀 감독이 그에게 꽃다발을 선사했으며, 경기 이후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모여 오토나리를 헹가래 쳐 줬다.[11]
2019년부터 치바 롯데 마린즈의 2군 투수코치를 맡을 예정이다. 포텐은 분명히 어마어마했고 잠깐 동안 포텐이 폭발했으나 황색인대골화증이라는 난치병으로 인해 결국 일찍 은퇴한 비운의 투수.[12][13]
3. 플레이 스타일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평균 138km/h에 최고 152km/h. 최고 속도는 빠르지만 평균 속도가 느린 편이다 보니 삼진보다는 변화구를 이용해 맞춰잡는 성향이 강했다. 프로 초반에는 억지로 삼진을 잡으려고 하다가 얻어맞는 경우가 있다 보니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받아 스타일을 바꿨다고 한다.황색인대골화증 투병 이후 평균 구속이 135km/h로 엄청나게 느려지면서 이후로는 정말 제구와 완급조절만으로 버텼다고 한다. 그런데도 2014년 후반/2015년 초반에 에이스로 활약한 것을 보면 정말 포텐 하나는 엄청났던 선수.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년도 | 소속팀 | 경기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ERA | ||
2007 | 소프트뱅크 호크스 | 8 | 2 | 4 | 0 | 0 | 43.2 | 43 | 7 | 24 | 2 | 33 | 5.98 | ||
2008 | 22 | 11 | 8 | 0 | 0 | 155.2 | 122 | 16 | 39 | 5 | 138 | 3.12 | |||
2009 | 26 | 8 | 10 | 0 | 0 | 129.1 | 144 | 19 (4위) | 41 | 5 | 107 | 4.59 | |||
2010 | 20 | 4 | 9 | 0 | 0 | 110.2 | 116 | 12 | 43 | 1 | 91 | 4.31 | |||
2011 | 9 | 3 | 0 | 0 | 0 | 34.2 | 22 | 2 | 4 | 3 | 33 | 2.34 | |||
2012 | 25 | 12 (4위) | 8 | 0 | 0 | 177.1 | 147 | 9 | 46 (5위) | 4 | 134 (5위) | 2.03 (4위) | |||
2013 | 7 | 3 | 3 | 0 | 0 | 42.2 | 42 | 3 | 10 | 1 | 29 | 3.38 | |||
2014 | 9 | 3 | 1 | 0 | 0 | 55 | 34 | 2 | 14 | 2 | 45 | 1.64 | |||
2015 | 11 | 5 | 4 | 0 | 0 | 74.1 | 62 | 9 | 15 | 9 | 35 | 2.54 | |||
2016 | 1 | 1 | 0 | 0 | 0 | 6 | 4 | 0 | 2 | 2 | 4 | 1.50 | |||
2017 | 1 | 0 | 1 | 0 | 0 | 3.2 | 9 | 3 | 1 | 0 | 1 | 14.73 | |||
년도 | 소속팀 | 경기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ERA | ||
2018 | 치바 롯데 마린즈 | 2 | 0 | 2 | 0 | 0 | 1.2 | 8 | 2 | 0 | 0 | 0 | 37.80 | ||
NPB 통산(12시즌) | 141 | 52 | 50 | 0 | 0 | 834.2 | 753 | 84 | 239 | 31 | 650 | 3.36 |
5. 기타
- 같은 해에 은퇴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혼다 유이치와 생년월일이 정확히 일치한다. 오토나리가 은퇴경기를 치르고 며칠 후에 혼다도 은퇴경기를 가졌다.
- 치바 롯데 마린즈의 홈 유니폼을 입고 공식 1군 경기에서 뛴 기록이 없다 롯데에서 뛰는 동안 딱 2경기밖에 1군에서 못 나왔기 때문. 그중 첫 경기는 All for Chiba 데이였기 때문에 붉은 유니폼을, 은퇴경기는 후쿠오카 원정이었기 때문에 원정 유니폼을 입었다.
6. 관련 문서
[1] 2011년 시즌이 끝나고 구단의 파견으로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 아길라스 시베냐스에서 뛰었다.[2] 2018년 등장곡. 2014~2015년에도 사용했던 곡이다. 공교롭게도 2014-205년은 제2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시기이며, 2018년은 방출당한 후에 새 팀을 구해서 새 팀에서 재기를 노리던 시기였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라는 이 노래의 가사와 상황이 너무 딱 맞아떨어져서 더 눈물겹다.[3] 참고로 이 노래는 2019년 롯데 신인투수인 아즈마 유스케의 등장곡이기도 하다.[4] 공교롭게도 칸사이 대학 야구리그에서 오토나리와 쌍벽으로 꼽혔던 카네토 노리히토가 리츠메이칸 대학이었다. 즉 라이벌이 보는 앞에서 라이벌의 학교를 노히트노런으로 점령해 버린 셈. 카네토 역시 희망 입단 프레임으로 요미우리에 갔으나 입단 첫 해에 19선발 7승 6패 평자 3.55를 기록한 게 커리어하이. 그 후로 4년 동안 4승밖에 못 거두면서 라쿠텐으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이후 2013년과 2016년에 중간계투로 반짝하긴 했으나 부상 때문에 길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7 시즌 이후 은퇴. 이후 라쿠텐에서 배팅볼 투수로 일하고 있다.[5] 정확히는 희망 입단 프레임이라고 원하는 구단을 선택해서 계약할 수 있는 것. 이때 히로시마는 미야자키 미치토라는, 사회인야구에서만 10년을 뛴 사실상 베테랑 선수로 일찌감치 결정한 상황.[6] 결국 오토나리의 선택을 받지 못한 나머지 10구단 중 롯데는 고졸을 중간에 한 명 더 지명하는 조건으로 희망 입단 프레임 사용 권한을 포기했고, 나머지 9구단 중 라쿠텐을 제외한 8구단은 결국 다른 선수와 계약했다.(이 중 대박난 선수로는 키시 타카유키, 타나카 코스케 등이 있다.) 희망 입단 프레임 사용권을 사용하고도 모든 후보들에게 거절당한 라쿠텐은 대신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얻고(당 해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는 1~2순위는 공석이었고 3순위부터 지명하는 방식이었다.) 제일 먼저 대졸 한 명을 뽑았다.(나가이 사토시라는 선수로 잘 하긴 했으나 빠르게 무너져서 전성기는 짧았다.)[7] 일본프로야구 통일구 도입 초기였던 2011~2012년에는 너무나 반발계수가 낮은 공인구 때문에 극도의 투고타저 현상이 계속되었다.[8] 사실 그 전에 요통으로 한번 더 2군 갔었다.[9] 이후 오토나리가 2018년에 롯데에서 뛸 때 팀메이트였던 미나미 마사키 역시 2018년에 동일한 황색인대골화증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미나미도 받기 직전까지는 필승조와 추격조를 오가는 핵심 불펜이었으나 발병 이후로 거의 나오지 못하고 3년만에 은퇴.[10] 정말 불운했던게 저 7안타에는 내야안타에다가 실책성 플레이가 안타로 기록된것까지 있었다.[11] 경기 후의 인터뷰에서는 우에바야시가 2구만에 타격을 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고 농담조로 우에바야시를 갈궜다[12] 이 병이 진짜 선수생활 잡아먹기로 유명하다. 이 병에 걸린 프로야구 선수 중 발병 후 5년을 더 뛴 오토나리가 제일 오래 뛰었을 정도. 참고로 오토나리의 마지막 소속팀 롯데에서도 2018년에 불펜 투수 미나미 마사키가 이 병을 진단받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미나미는 재활 후 복귀하여 2021년까지 뛰었으나 1군에서는 몇 경기 나오지 못하고 2군 위주로 뛰다가 은퇴.[13] 사실 황색인대골화증 외에도 이런저런 부상이 심했던 유리몸이었다. 몸만 건강했어도 역대급 투수가 될 수 있었던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