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7:02:40

윤호솔/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윤호솔
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NC 다이노스
3.1. 2013 시즌3.2. 2014 시즌3.3. 군 복무3.4. 2017 시즌
4. 한화 이글스
4.1. 2018 시즌4.2. 2019 시즌4.3. 2020 시즌4.4. 2021 시즌4.5. 2022 시즌
5. LG 트윈스
5.1. 2023 시즌5.2. 2024 시즌

1. 개요

LG 트윈스 소속 우완 투수 윤호솔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파일:북일고윤형배.jpg

북일고 3학년 당시의 기록은 17경기 8승 1패 방어율 0.89 82K.

2012년 대전고 조상우와 라이벌로 불리며 가장 기대를 모은 투수로 북일고의 에이스로 군림하였다. 공식 최고구속은 2012년 5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기록한 153km/h. # 윤형배는 고교성적도 더 좋았고 완성도면에서 높게 평가받았지만 체격조건이나 직구 스피드, 구위, 체력에서는 조상우가 더 좋아 조상우와 많이 비견되었다.[1] 그래도 윤형배는 2010년대 고교야구 최대어 소리를 들으며 전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고 조상우가 지금 시점에서는 자신보다 윤형배가 위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당시 윤형배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냐면 2012년 청소년야구대표팀에 차출되었을 때 당시 160km/h를 던진 고교투수로 유명했던 오타니 쇼헤이와 비견될 정도였다.누가 더 괴물인가…다양한 변화구 韓 윤형배 vs 160km 던지는 日 오타니, 윤형배 “日 괴물 잡고 안방서 V6 쏜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110만불에 영입 제의를 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이후 NC 우선지명에서 예상대로 첫 번째로 지명되었다. 그리고 NC와 계약금 6억원에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그러나...

3. NC 다이노스

3.1. 2013 시즌

1군으로 올라올 NC의 에이스로 기대를 받고 있다. 다만 프로 입단 후 북일고 시절의 구속을 끌어올리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어깨 통증도 겹치며 1군 엔트리에 못 들어오고 있는 상태. 6월 복귀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는 그를 사이배(사이버 투수+윤형배)라고 부른다. 여담이지만 마찬가지로 4월에 나오지 못했던 나성범사이버 타자 소리를 들었지만 나성범은 유구골 골절로 수술을 받은 상태라 5월부터 1군에서 뛰었다.

신고선수로 이적한 손민한이 봉인해제일인 6월 1일에 정식 선수로 재등록되면서 54번을 달고 있던 손민한과 번호를 맞바꿨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6월 14일부터 2군 팀인 C팀에 올라왔다. 그리고 15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첫 공식 경기를 가졌고 7회에 등판에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홀드를 기록했다.

3.2. 2014 시즌

4월 1일, 3일 퓨처스 경기에서만 출장하고 오른쪽 발목 염좌 부상으로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9월 4일 목동 넥센전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1군 등판을 했으나 3이닝 3피홈런 5실점이라는 좋지 못한 내용을 보였다.

결국 2014 시즌 1군 2경기에 등판, 3⅓이닝 동안 5실점하며 승패 없이 평균자책 13.50을 기록한 채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가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런데 애리조나에서 팔꿈치 통증을 느껴 귀국했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팔꿈치 수술 판정을 받아 사실상 재활 확정.

3.3. 군 복무

팔꿈치 수술로 인해 4급 판정을 받았다. 재활을 위하여 2015년 3월 9일 사회복무요원 입대가 확정되었다. 기사 훈련 후 아산시청에서 복무 중이지만, 복무지가 팀 연고지 창원시와 2군 훈련장 소재지 고양시에서 모두 거리가 있는지라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3.4. 2017 시즌

3월 16일 윤형배에서 윤호솔로 개명했다.기사

시즌 막바지에 경찰 야구단에서 전역한 유영준에게 등번호를 내준 데 이어 마무리 훈련에서도 제외되었다. 이유는 9월에 팔꿈치 수술을 또 받았기 때문. 첫 수술 때 인대가 90%나 손상되었고 전술했듯이 연고지와 본가 사이가 멀어 재활 훈련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또 수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결국 2018년 들어서 육성선수 신분으로 전환되었다. 기사 이렇게 잊혀지는가 싶었지만...

4. 한화 이글스

4.1. 2018 시즌

시즌 개막을 4일 앞둔 2018년 3월 20일, 한화 이글스의 정범모와 트레이드로 이적했다.기사 이로써 고향 팀으로 돌아온 셈이 되었다. 우완 투수들 중 강승현, 이동걸, 심수창, 배영수 등 노장이 많아 젊은 우완 파이어볼러 수집에 집중하던 한화는 박상원, 김재영, 문동욱에 이어 이번엔 1라운드급 유망주를 얻게 되었다. 재활만 무사히 끝나면 투수진이 허약한 팀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듯. 인터뷰를 통해 박종훈 단장이 밝힌 바로는 재활 상태에 있지만 장기적으로 선발감으로 보고 당장 쓸 수 없음을 감수하고도 유망주까지 정리하면서 영입한 듯하다. [인터뷰] '새 출발' 윤호솔, "야구하고 싶은 마음 크다"

통증은 없지만 18시즌은 재활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화 팬들은 아깝지만 송창식을 시작으로 수술 후 무리해서 당겨 쓴 투수들이 무슨 꼴이 났는지 많이들 봐왔던 터라 무리하지 말고 건강할 때 마운드로 돌아오라는 반응. 결국 실전 복귀는 아마도 18시즌 후반기나 19시즌이 되어야 할 수 있을 듯 하다.

NC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는 올해 말에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재활을 임했다고 이야기했지만 한화로 이적한 이후 박종훈 단장과 한용덕 감독 모두 내년에 맞춰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기존의 재활일정을 늦췄다고 한다. [오!쎈 인터뷰] 고향 돌아온 윤호솔, "다시 150km 던질 날 기다리며"

9월 30일, 체크카드 사건 탓인지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름이 사라졌으나 10월 29일 발표한 마무리 캠프 명단에 들어갔다.

4.2. 2019 시즌

아직 재활을 마친 직후라 몸 상태가 완전하진 않지만 현장의 기대를 받고 있는지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여 무려 1603일만에 마운드에 섰다. 관련기사

그 이후엔 여전히 재활을 하고 있는지 2군에서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가 5월 8일 정식 선수로 1군에 등록되었다.

SK와의 경기에서 6회초 12:2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올라왔지만,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은지 ⅓이닝 1삼진 2피안타 1사사구로 1사 만루를 만들어 놓고 내려갔다. 3자책 ERA 81.00. 그 이후 박주홍을 상대로 한동민이 만루 홈런을 때려내면서 점수 차는 16:2으로 벌어졌다.

3일 뒤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9일 1⅔이닝 2실점으로 팀은 패배했다.

4.3. 2020 시즌

불펜피칭에서 최고 151km/h의 구속을 기록했지만, 불펜 피칭에서조차 제구가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군으로 올라오려면 제구부터 잡아야 할 듯.

6월 9일 1군 대거 콜업때 올라와 1이닝을 등판을 했다. 1이닝 1K 1실점, 첫타자 삼진만 잡을 때만 해도 기대에 찼던 한화 팬들이지만 그 이후부터 제구가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간신히 1실점으로 막고 내려왔다.

이후 2군에 있다가 박상원과 정은원이 1군에서 말소되자 안영명과 함께 올라왔다. 월요일 경기를 치르면서 투수가 많이 필요해졌다는 게 그 이유.

7월 30일 삼성전에 1대 1로 동점인 11회말 등판했으나 볼넷을 내준 뒤 번트와 삼진으로 2사 2루까지 잡아놓고는 2볼에서 폭투로 2사 3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고의사구로 만들어진 2사 1, 3루 상황에서 끝내기 포일로 실점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웃긴 건 포수의 실책으로 기록되면서 자책점은 내려갔다는 것.

8월 6일 NC전에 1대 3으로 지고 있던 7회 등판해 2아웃을 잡아냈고 8회 등판해 나성범에게 솔로포를 맞았으나 더 이상의 실점없이 이닝을 마무리하며 1⅔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다음날 우측 견쇄관절 염좌로 말소되었다. 2~3주간의 휴식을 거치고 돌아올 예정이다.

4.4. 2021 시즌

파일:210306 윤호솔.jpg

3월 6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연습경기에 등판해 1이닝 3K 무실점을 기록했다.# 직구 평균구속은 148km/h에 최고 149km/h, 슬라이더 구속도 평균 136km/h, 최고 137km/h였다. 제구와 구속 모두 괜찮아졌지만 살이 많이 쪘다.

정규시즌인 4월 7일 SSG 랜더스를 상대로 9회에 올라와 공 6개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경기를 종료 시켰다.

4월 9일 두산을 상대로 8회에 올라와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10일 두산전에선 1⅔이닝 3실점(1자책)으로 부진했다.

4월 14일 삼성을 상대로 9회말 1사 2루에 올라와 폭투와 중견수 플라이로 주자를 분식한 후 2루수 뜬공으로 경기를 끝냈다.

4월 23일 LG전에 9회초 0:1로 지고 있는 가운데 등판했으나 김현수에게 솔로포를 맞으면서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1:2로 패하면서 더욱 아쉬운 등판이 되었다.

필승 상황이 아닌 가운데 등판해 8⅔이닝 ERA 3.12를 기록하며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3]
그리고 4월 30일에는 선발로 나와 5실점하고 강판된 김이환 대신 등판해 상황을 정리하던 주현상의 뒤를 이어 1⅓이닝 2K 무실점을 기록했고, 타선의 지원으로 팀이 역전승을 거두어 2013년 입단 후 8년 만에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 140 후반대의 패스트볼을 지속적으로 뿌릴 정도로 컨디션도 좋은 편이라 다음 등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5월 6일 삼성전에 연장 10회초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박정현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거두면서 2승째를 거두었다.

5월 9일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 6회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홀드를 기록했다.

5월 14일 키움전 9회 등판해 2사 후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면서 강재민으로 교체됐다. 강재민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세이브를 기록해서 경기가 마무리했지만, 윤호솔이 막았다면 불펜 투수가 한 명 덜 나왔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날 강재민이 2이닝이나 던졌기 때문에 더 아쉬운 피칭이었다.

5월 23일 kt전 5:0으로 앞선 9회초 무사 1루 상황에 등판해 병살타와 삼진으로 1이닝을 실점없이 막아냈다. 이날 기록한 최고 구속은 149km/h.

5월 30일 SSG전에선 1:3으로 지고 있는 9회초 등판했으나 1이닝 2피안타(1피홈런) 2자책으로 부진했다. 그래도 타자가 칠 수는 있는 강속구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2달만에 자신의 통산 출장 경기와 소화 이닝 이상의 경기와 이닝을 소화하는 데엔 성공했다.

6월 8일 키움전에서 4:2로 앞선 8회초 등판해 좌익수 우측에 떨어지는 2루타와 3루수 실책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대타 두 명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후 볼넷을 내주고 강재민과 교체되었고, 강재민이 실점없이 이닝을 끝내 ⅔이닝 1피안타 1볼넷으로 홀드를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150km/h.

6월 11일 KT전 4:3으로 뒤진 6회말 2사에 올라와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6월 13일 KT전 3:6으로 뒤진 7회말에 올라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6월 16일 더블헤더 2차전 7회 3:3 동점 상황에 올라와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팀도 역전하여 시즌 3승을 가져갔다.

6월 18일 SSG전 장시환의 뒤를 이어 2:1로 앞선 6회를 무실점으로 막아 홀드를 기록했다.

7월 1일 두산전에서 3:6으로 지고 있는 8회초 등판했으나 1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다.

7월 5일 LG전에서 ⅓이닝 동안 4개의 4사구로 자멸하며 팀의 6-7 역전패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윤호솔 때문에 나올 필요도 없던 강재민이 나와 평균자책점까지 올라버린 건 덤.

7월 11일 SSG전에서 6회 무사 만루 상황에서 김범수에 이어 3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2:2의 스코어에서 김성현이 친 초구 136km/h 슬라이더가 좌익수 뒤로 넘어가는 만루 홈런이 되면서 2:6을 만들었다.

8월 31일 kt전에서 5:1로 앞선 9회초 등판했으나 솔로 홈런 하나를 맞은 뒤 2사에서 볼넷을 주면서 정우람과 교체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5경기 출장 48⅔이닝 동안 41피안타 34사사구를 허용하며 42탈삼진을 잡았고, 3승 8홀드 ERA 4.62를 기록했다. sWAR은 0.27. 데뷔한지 아홉 시즌만에서야 프로 1군에서 승리를 비롯하여 그나마 유의미한 기록을 남긴 시즌이며, 사이버투수라는 악명을 그나마 벗어낼 수 있었던 시즌이다. 최대 시속 151km의 패스트볼을 한복판에 꽂아넣어 타자를 이겨낼 정도로 배짱 있는 투구를 하는 등 포텐을 드디어 터트리긴 했으나, 기복이 심하고 피홈런을 7개나 맞는 등 장타 억제의 필요성이 있음을 드러냈다. 게다가 체력 문제로 인하여 150에 육박하는 돌직구가 연투 한 번 하면 130대의 느린공이 되는 부분 역시 비시즌 동안 체력 및 기술적인 보강이 필요함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4.5. 2022 시즌

3월 20일 키움과의 시범경기에서 6:2로 앞선 9회말 등판, 1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3월 28일 LG와의 시범경기에서 1:15로 지고 있던 9회초 등판해 1사 이후 내야 안타와 진루타, 폭투로 2사 3루의 위기를 맞았으나 유격수 땅볼로 실점 없이 이닝을 끝내며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어 그럭저럭 잘 던지고 있었으나 1점 차로 앞선 8회초 등판하여 2피안타와 2사사구로 대역전극을 허용하였고 팀이 2:4로 패배하면서 패전을 기록했다. 이로써 팀의 직전 시즌 6연패와 2022 시즌 개막 6연패를 더해 12연패가 완성되었다.

4월 19일 롯데전에서 6회말 4:1로 앞서던 가운데 2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1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다. 패스트볼은 자신감 있게 던졌지만 변화구 제구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4월 21일 이후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며 1승 4홀드를 챙긴 상황. 주로 이기는 경기 8회에 셋업맨으로 나오고 있다.

5월 초까지 호투를 이어갔으나 이두근 통증을 느끼고 강판된 롯데전 이후인 5월 18일 대전 삼성전에서 3:1로 앞선 가운데 9회초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으나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0이닝 3자책을 기록했고, 팀이 3:5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그대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19일 대전 삼성전 연장 10회에 올라왔으나, 고의사구 2개 포함 4볼넷을 내주었고 폭투로 역전 점수를 허용하며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한화 타선이 10회말 오승환을 상대로 점수를 내지 못하면서 윤호솔은 삼성을 상대로 이틀 연속으로 불만 제대로 지르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패스트볼만 던졌고 최고구속이 151까지 찍혔지만, 제구가 너무 들쭉날쭉한 모습이었다.[4]

이후로도 필승조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직구 구사율이 지나치게 높고, 체구가 계속 커지면서 팬들의 우려를 샀다. 하지만 잘 던지고 있으니 뭐라 하기도 애매한 상황.

6월 4일 부친상으로 인한 경조사 휴가를 얻어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김규연이 대신 올라왔다.

올스타 브레이크 종료 이후에 노시환, 장진혁과 함께 복귀, 7월 29일까지 2.45의 평자를 찍어내고 있다. 직구 구속은 151까지 찍히기도

8월 2일 KIA와의 경기에서 1:4로 이기는 상황에 등판해 4:4 동점을 만들었고, 그 다음날 경기에서는 눈 뜨고도 못 볼 경기를 펼쳤는데 나성범에게 적시 2루타를 맞으며 역전을 당하는 점수를 내줬다. 이후 최형우에게 안타를 맞은 후 고종욱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5:3이 된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후 한승택의 희생플라이까지 나오면서 6:3이 되었고 ⅓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5]

8월 24일 LG전에서 오지환에게 헤드샷으로 퇴장당한 윤산흠의 뒤를 이어 세번째 투수로 등판하였으나 로벨 가르시아에게 볼넷으로 보내주고 문보경의 2타점 2루타와 유강남의 1타점 2루타로 ⅓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6]

9월 25일 두산전에서 6회말 한승주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시프트를 완전히 빗겨간 불운의 안타를 시작으로 난타당하면서 0이닝 3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5:3으로 경기를 뒤집지 못하면서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5. LG 트윈스

2022년 11월 28일, 채은성의 보상 선수로 LG로 이적했다. 윈나우 시기인 LG의 현 상황을 고려해 유망주 대신 빠른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즉시전력감 불펜 투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염경엽 감독이 해설을 할 때도 윤호솔이 체중 감량을 해야 한다고 지적을 한 만큼 체중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는데, 일단 스프링캠프에서 살을 상당히 뺀 채 등장했다.

5.1. 2023 시즌

친정팀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류원석이 사용했던 28번을 LG에서 사용할 첫 등번호로 받았다.

3월 13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등판했고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스프링캠프에서 보였던 살이 빠진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살이 많이 찐 상태로 등장했다.

5월 21일 기준 퓨처스 리그에서 7경기 ERA 6.43으로 열심히 난타당하고 있다. 한화가 왜 그를 보호명단에서 제외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또한 한화는 시즌을 치를수록 차츰 불펜이 안정화되며 전반기 기준으로 선수 유출 공백이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김유영과 함께 그를 고른 염경엽의 안목이 처참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상술한대로 자기관리도 엉망이라 당장 1군에 올라올 일은 없어 보인다.

후반기 들어 3점대까지 평균자책점을 낮추는 한편 제구력 역시 보완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염경엽 감독이 체중 관리를 언급하였고, LG 불펜진이 너무 탄탄한지라 확대엔트리 시행 이전에는 콜업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8월 26일, 전날 투수들이 한마디로 개판이 되어 염경엽 감독이 손호영을 말소하고 콜업했다.

9월 1일 잠실 한화전 9회초에 이지강의 뒤를 이어 등판하며 LG 이적 이후 첫 1군 출전이자 친정팀인 한화 상대로 첫 출전을 했다.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3일 잠실 한화전에 등판에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볼넷 하나를 허용하고 무려 세 타자를 모두 풀카운트를 만들고서야 잡아내는 등 26구를 던지며 투구수 관리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9월 8일 KIA전에 등판해 ⅔이닝 1실점 투구수 26개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9월 9일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29일 다시 1군에 콜업되었다.

5.2. 2024 시즌

염경엽 감독이 시즌 시작 전 김유영, 성동현, 김대현과 함께 차기 필승조로 언급하였다. 이번 시즌에야말로 포텐셜을 터뜨리지 못하고 새로운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범경기 NC전에 등판하여 15구를 던지는 동안 스트라이크를 단 2구 넣는 기적의 제구력을 보여주며 올해도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놀랍게도 3월 22일 발표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함덕주, 정우영 등 불펜에 부상자가 많아 임시방편으로 포함한 듯.

이후 추격조 롤을 수행하면서 1군 경기에 등판했는데 좋지 않은 제구 때문에 매 경기 20구를 넘게 던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1이닝 20개가 아니다.

4월 11일 광주 KIA전에서는 그야말로 환장할 제구력을 시전하며 스트레이트 볼넷 - 초구 안타 - 스트레이트 볼넷 - 밀어내기 볼넷으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강판되며 LG 팬들의 혈압을 올렸다. 이 모든 게 14구 동안 벌어진 일이며 스트라이크를 2구 집어넣을 동안 볼을 12구나 던졌다. 그나마 하나는 초구에 안타를 얻어맞았으니 14구 중 제대로 던진 공이 단 하나인 셈.

신인도 아니고 프로 경력이 10년이 넘는, 그것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가 다양한 볼을 던지는 스타일도 아닌데 속구 제구도 안 되는 투구를 보이고 있으니 기가 막힐 지경. 결국 다음날 칼같이 1군에서 말소되었다.

퓨처스에 내려가서도 열심히 볼넷을 남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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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형배같은 경우는 1회에 147을 뿌리다가도 2,3회 지나면 구속이 130 후반대로 뚝 떨어지는 등 체력 면에서 조상우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다.[2] 1군 등판일 기준 무려 2430일이나 걸린 통산 프로 1군 첫 승이었다.[3] 프로 1군 첫승 기념구[4] 사실 폭투라고는 하지만 윤호솔의 책임만은 아닌 것이, 그 정도의 공은 포수 박상언이 블로킹을 충분해 할만한 공이었기 때문이다. 공이 배터박스 앞 쪽에서 심하게 빗나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 그러나 박상언은 글러브로만 막았고 공이 심하게 튀었다.[5] 심지어 팀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크다.[6] 팬들은 말소를 원하지만 말소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