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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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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소속 내야수 이대호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이대호는 1982년 6월 21일 부산직할시 수영구[1]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그의 삶은 눈물 없이는 듣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어려웠고 불우하였다. 3살 때[2]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났고[3] 모친은 집을 나가서 재가하는 바람에 친할머니 오분이[4] 여사 밑에서 자랐다. 오분이 여사는 어려운 여건에도 야구를 하고 싶어했던 이대호를 위해 부산 수영구 수영팔도시장에서 된장과 깻잎 좌판 장사를 이어갔다고 한다. 된장과 깻잎을 다 못 팔고 집에 가야 할 때면 "아이고 우야노. 우리 야구쟁이, 이기라도 몬팔면 닭 한마리도 못사묵을낀데"라고 안타까워했고 훈련이 끝난 이대호는 유니폼을 입은 채로 할머니와 함께 좌판 리어카를 끌고 집에 갔다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가 어렵게 번 돈으로 야구용품을 하나 둘씩 마련했고[5] 이대호는 눈물을 흘리며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다졌다고 한다. 지금의 이대호를 보면 참으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라고 볼 수 있다.[6][7]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5EC%2588%2598%25EC%2598%2581%25EC%25B4%25882.jpg
수영초등학교 재학 당시. 뒷줄 오른쪽 첫 번째가 이대호, 앞줄 왼쪽 세 번째가 추신수,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이우민(이승화)이다.
야구는 수영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하였다. 수영초 3학년 때 같은 반에 추신수가 전학을 왔는데, 후에 추신수는 무릎팍도사에서 증언하길 전학 첫날 신장부터 자기보다 훨씬 큰 이대호를 보고 깜짝 놀라 감독한테 "우리 반에 웬 고등학생이 한 명 있어요!"라고 말했다고[8] 한다. 당연하게도(?) 감독은 당장 데려오라고 지시했고, 추신수의 간곡한 설득 끝에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얼마 뒤 이대호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썰을 풀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가난해서 돈이 많이 드는 야구는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여러 번 거절했지만 결국 친척들이 지원해 준 덕분에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수영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4년 롯데기 우승 당시 수상내역이 화제가 됐다.유격수 이대호·타격왕 이승화… 94년 초등야구대회 화제

기량이 빼어났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를 주목한 건 신종세 대동중학교 감독이었다. 신종세 감독의 스카우트로 대동중 유니폼을 입었고 2년 6개월간 감독의 자택에서 살았다. 대동중 당시 투수는 채태인, 포수는 이대호, 외야수는 장기영이 맡았으며 이대호와 장기영은 경남고로 진학, 채태인은 부산상고 동문인 아버지의 뜻으로 부산상고로 진학한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30928033.7.jpg
경남고등학교 재학 당시
위의 사진에 나와 있듯이 본래는 투수 출신이다. 경남고 시절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추신수, 김태균, 정근우 등과 함께 출전했다. 준결승전에서는 호주를 상대로 결승 솔로포를 때려냈다. # 결승전에서 연장 13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조했다. 참고로 저 선수들은 모두 절친한 친구 관계이며[9], 추신수, 정근우는 이대호와 같은 부산 출신이다.[10]

이후 고3이던 200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에서 류제국의 덕수정보고에 2-3 패배를 당하고 만다. 당초 4강에 오르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패배의 쓴잔을 빨리 들고야 말았다. 안타까운 건 투수 이대호가 1회 3실점 이후 2회부터 무실점 무피안타로 호투했다는 점.

같은 해 여름 부산에서 열린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동향의 라이벌 부산상고에게 결승전에서 패했다. 여담으로 이 대회 결승은 사직 야구장에서 열렸고 평일 낮경기임에도 불구하고 KBS에서 전국으로 생중계했다.

3. 롯데 자이언츠 1기

파일:이대호/롯데 1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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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외 진출

2011 시즌을 소화한 후 FA 자격을 얻는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도 가능한 신분이다. 하지만 해외 진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의 경우,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 쪽은 기대치가 높았던 김태균의 거한 삽질로 학을 떼고 있었고, 센트럴 리그 쪽 큰 손들은 수비가 결점인 용병타자를 영입할 여력이 안되었다. 또한 추신수와의 인터뷰를 보면 본인 역시 해외진출을 내켜하지는 않는 듯 했다. 다르빗슈와 비슷한 상황인 듯 했다.

국내에 남을 경우 롯데 잔류와 이적 여부는 2011년 연봉협상 이후로 결정나게 될 만큼 미묘해졌다. 그전까지는 롯데의 아이콘적인 존재이므로 어디 가면 큰일나며 롯데 구단 역시 확실한 대우로 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연봉협상에서 보여준 태도 때문에 상황은 급변했다. 이대호가 의리로 남을 명분 자체가 없어졌다 라는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이대호가 2007년에 역대 최고 대우를 받을 때와 비견되어 이상구단장이 칭송받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11년 7월, 한신 타이거스에서 이대호의 영입을 노리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 또 2011년 포스트시즌 종료 이후 일본의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2년간 5억엔(당시 한화로 약 75억 원 정도)의 조건으로 영입준비 중이라는 기사도 뜬 상황이었다. 오릭스는 금액 부분은 부인했지만 팀내에서 타격을 보강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 따라서 이대호가 FA 신청시 그를 영입하겠다는 방침이 정해진 듯했다.# 물론 롯데는 무조건 잡는다고 말했지만 자금력이나 연봉협상의 문제 등의 문제가 있고 이대호가 롯데 우승 빼고[11] 한국에서 타자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루었기 때문에 더 큰 무대인 일본에 진출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많았다. 단 변수라면 이승엽이나 김태균 같은 뛰어난 타자들이 대지진, 원자력 사고 이후 한국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점. 이대호 입장에서는 2012년에 아이를 얻기 때문에 이점이 변수가 될 수도 있었다.1,2

결국 2011시즌 종료 후 이대호는 FA를 선언하였고 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인 11월 19일까지도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해외 진출이 유력해졌다."100억원도 NO" 이대호, 롯데와 FA 협상 결렬

우선협상 기간 동안에 이대호가 사인하지 않고 해외진출에 무게를 둔 것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한 쪽은 "100억도 안 되면 어쩌라는 거냐"고 말하는 롯데 잔류 지지파,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롯데 구단 믿지 말고 해외로 나갈 수 있을 때 나갔다 와라"고 말하는 해외 진출 지지파. 잔류를 지지했던 팬들은 원래 예상했던 4년에 60억+알파를 크게 넘어선 4년간 연봉 80억에 옵션 20억이 통 큰 베팅임을 강조한다.[12] 또한 롯데라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나 팀을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강조했던 이대호이기에 팬들이 잔류를 기대했다는 점 또한 강했다. 이게 반대로 해외진출로 무게가 실리자 배신감을 느낌 팬들이 지금까지의 인터뷰 등이 거짓이며 언플이라고 비난을 했던 것.

반대로 해외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팬들은 위에서 설명되었던 2011시즌 연봉 협상을 기억하는 쪽이었다. 타자로서 그야말로 따라올 자가 없을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그를 7000만 원 아끼자고 연봉조정신청까지 가게 한 팀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야구팀을 그저 돈 벌이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구단에 끌려다닐 필요 없이 야구선수로서 더 넓은 무대로 도전해보라는 입장이었다. 당시의 이대호가 그야말로 전성기라는 점 때문에 일본에서 제대로 성공한 타자를 보고 싶어하는 열망도 이에 포함되었다. 또한 이러한 팬들은 "60억+알파를 크게 넘어섰다"는 수식어에 비교적 덤덤한데, 이는 저 60억이라는 액수 자체가 2004년 심정수가 가진 기록이며 다시 말해 7년 전의 액수이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과 커져가는 야구판을 생각했을 때, 80억+20억이 7년 전의 FA 최고 대우였던 60억 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배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2004년 심정수의 60억중 옵션과 계약금을 제외한 금액은 40억 원이다. 옵션이 20억이었다는 말이다. 순수 연봉이 7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때 이대호에게 제안한 연봉 10억원은 롯데가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였을 것이다.

물론 물가 상승률이 6년간 50%씩, 100%씩 뛰진 않는다.[13] 당시 심정수의 60억은 돈성이라 불리는 삼성이 어마어마하게 거품을 뿌린 금액이었다. 생활물가지수 상승폭인 28%로 심정수의 연봉을 기준으로 FA 이대호의 소위 '적정가'를 환산한다면 약 77억 가량이 된다. 때문에 한해 1개 야구단의 운영비가 300억 정도로 추산되는 한국프로야구의 규모상 연봉 10억, 총액 100억이라는 액수는 구단 입장에선 충분히 무리한 수준이며, 롯데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이라고 봐야 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 팬 커뮤니티에서는 '대체 얼마를 더 주어야 자존심을 세워 줄 수 있느냐'고 이대호를 깠다. 해도 너무했다는 것. 사실 돈과 더 큰 꿈을 위해서 해외진출을 하겠다고 이대호가 공언한 상태였다면 100억이든 뭐든 롯데팬들은 배웅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대호는 당시까지 어느 인터뷰든 소위 말하는 '성골' 부산 토박이 경남고 출신 롯데맨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협상 최종일까지 모든 롯데 팬들은 대충 롯데는 65억 + @를 내놓을 것이고 이대호의 요구선은 80억이라고 생각했다. 80억 초과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결국 롯데는 지를 FA는 지른다는 전례대로 100억의 그야말로 더 이상 해줄 수가 없는 최고의 대우를 했다. 허나 이대호는 도장을 찍지 않았다. 팬들에게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당시 겨울 SK와의 협상을 포기하고 깔끔하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발표했던 정대현이 이대호와 비교되면서 롯데가 이대호의 FA에 신경쓰느냐고 다른 선수들을 신경쓰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왔던 상태라 비난이 거세졌다.

물론 그동안의 롯데가 보여줬던 행보 때문에, '롯데는 처음부터 이대호를 잡을 생각도 없었고, 저 80억+20억이란 제시금액도 실제로 줄려는 돈이 아니라 욕먹지 않기 위해 언론에 공개하기 위한 언플용 수치'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대호의 인터뷰 기사에서 100억을 제시했고 밝히는 것으로 종결. 맨 밑에서 2번째 질문 그것도 첫 만남에선 식사만, 둘째 만남에서 바로 100억을 제시했다. 일각에서 제시하는 음모론이 헛소리라는걸 말해주는 것. 이대호와 짜고 치는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는데 이대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불리해질 언플에 협조해주는게 말이 되는가? 100억 찼다고 욕을 먹고 있는 마당에 본인 입장에선 사실대로(사실은 아니지만) 70억 제시했다고 하는게 여론에도 좋았을 것이다.

일본 스포츠호치에서 오릭스가 이대호에게 최대 3년간 8억 5천만 엔, 우리돈으로 129억 정도 되는 액수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것은 롯데가 제시한 최고대우를 넘어서는 수치였다.[14]

어쨌든, 언론에서는 롯데도 이대호도 딱히 욕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롯데로서는 할 만큼 제안을 했다고 보고, 이대호도 역시 일본 제안이 좋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외국 진출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 의사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 이대호 본인도 FA협상 과정에서 구단이 보여준 성의에 감사한다고 직접 언론에 밝혔으니 만큼 롯데의 제안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파일:이대호일본.jpg

결국 오릭스 버팔로즈와 2년간 총액 7억엔(105억 원)에 계약을 매듭지었다.[15]

5. 일본프로야구

5.1. 오릭스 버팔로즈

파일:20120308.99001141735058101.jpg

5.1.1.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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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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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소프트뱅크 호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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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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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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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일본 기록 정리

  • 2012~2014년까지의 기록 정리.
원글 링크 요약하면 퍼시픽리그 3년 통산 타석 1위, 타율 5위, 홈런 2위, 안타 2위, 타점 1위, OPS 2위(출루율 4위, 장타율 1위), wOBA 2위, WRC+ 2위, OPS+ 2위.

해당 기간에 퍼시픽리그 No.1은 아니며 이대호 위에 놓을 수 있는 타자들도 몇몇 존재해서 '리그를 씹어먹었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4년 동안 꾸준히 출장한 NPB 탑클래스 타자 라는 평가에 걸맞은 성적을 올렸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일본에서 성장한 장훈과 백인천을 제외한 KBO 출신 한국타자들과 다른, 독보적으로 성공적인 선수 커리어를 이어갔고 결국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하게 된다. 일본 시절 통산 wRC+는 151로 리그 평균보다 약 50% 이상 더 나은 타격을 보여줬다.

다만 통산 WAR17.6로 연평균 4 정도 된다. 보통 각팀의 주전 타자들의 WAR이 2~3 정도인걸 고려해보면 생각보다 그다지 높은 수치는 아니다. wRC+가 리그 평균보다 50 이상 높은 강타자였는데도 이런 수치가 나온건 공격으로 벌어들인 승리기여도를 수비랑 주루에서 뭉텅뭉텅 까먹었기 때문.
  • 2014~2015년까지의 기록
델타의 NPB 기록사이트에서 뽑은 이대호 성적 참조. 원링크는 델타 사이트

통산 득점권 / 비득점권 스플릿을 포함한 통산 스플릿은 이대호 일본프로야구 성적 스플릿 참조.

이대호 이전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타자 케이스인 이승엽과 비교해보자면, 8년간 이승엽은 14.9의 WAR을 기록해[16] 4년간 17.6을 기록한 이대호에 비해 낮은 생산력을 기록했고, 비율 스텟에서도 wRC+ 120으로 평균보다는 나았지만 이대호보다는 부족했다. 이대호의 NPB OPS는 .856, 이승엽은 .818로 표면적으로는 큰 차이로 보이지 않는데, 이대호의 일본진출 시기가 하필 새로운 공인구 효과로 역대 최고 수준의 투고타저 시기였던 바에 기인한다. 실제 당시 기록을 보면 홈런과 2루타, 장타율 등의 스탯은 이승엽도 좋은 편이었지만 나머지 모든 타격 부문에서 이대호와 현격한 차이가 난다.

6.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6.1. 시애틀 매리너스

6.1.1. 2016 시즌

파일:20200618_23331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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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롯데 자이언츠 2기

파일:18041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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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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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연도별 주요 성적

이대호 개인 통산 기록
<rowcolor=#fff> 시즌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2시즌 2653 9865 2909 456 8 488 1828 1250 11 1004 .285 .355 .476 .832

참고로 입단 당시 포지션이었던 투수로 등판한 성적도 있다. 은퇴경기로 열렸던 2022년 10월 8일 사직 롯데전에서 8회초 팀의 네 번째 투수로 등판했는데 대타로 나선 LG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을 투수 앞 땅볼로 처리하면서 ⅓이닝 무실점으로 1홀드를 따냈다. 무실점으로 타자를 처리했으니 당연히 평균 자책점은 0이다. 이벤트성으로 출장한 것이었지만 실제 경기였기 때문에 KBO가 공인한 기록이다.

9.1. KBO

  • 붉은 글씨는 시즌 1위, 진한 글씨는 시즌 5위 이내.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역대 타자 기록
<rowcolor=#fff> 연도 나이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01 19 롯데 6 8 4 0 0 0 1 0 0 1 2 .500 .556 .500 1.056 201 0.17
2002 20 74 255 71 19 0 8 32 27 1 19 66 .278 .345 .447 .792 116 1.16
<rowcolor=#000> 연도 나이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03 21 롯데 54 152 37 6 0 4 13 8 0 13 37 .243 .328 .362 .689 85 0.05
2004 22 132 444 110 26 0 20 68 52 4 38 78 .248 .331 .441 .772 104 1.57
2005 23 126
(1위)
447 119 16 2 21 80
(5위)
53 1 47 76 .266 .354 .452 .805 122 3.98
2006 24 122 443 149
(2위)
26
(4위)
0 26
(1위)
88
(1위)
71
(5위)
0 39 55 .336
(1위)
.409
(4위)
.571
(1위)
.980
(1위)
192
(1위)
6.52
(1위)
2007 25 121 415 139
(4위)
29 1 29
(2위)
87
(2위)
79
(3위)
1 81 55 .335
(3위)
.453
(3위)
.600
(1위)
1.053
(1위)
194
(1위)
7.00
(2위)
2008 26 122 435 131 23 0 18 94
(3위)
73 0 62 56 .301 .400 .478 .879 147 5.51
(4위)
2009 27 133
(1위)
478 140 28 1 28
(4위)
100
(3위)
73 0 51 65 .293 .377 .531 .908 131 4.84
2010 28 127 478 174
(1위)
13 0 44
(1위)
133
(1위)
99
(1위)
0 61 77 .364
(1위)
.444
(1위)
.667
(1위)
1.111
(1위)
192
(1위)
8.82
(1위)
2011 29 133
(1위)
493 176
(1위)
26
(3위)
1 27
(2위)
113
(2위)
76 2 63 60 .357
(1위)
.433
(1위)
.578
(2위)
1.011
(2위)
180
(2위)
6.89
(2위)
2017 35 142 540 173 13 0 34
(5위)
111 73 1 50 84 .320 .391 .533 .925 132 3.95
<rowcolor=#fff> 연도 나이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8 36 롯데 144
(1위)
542 181
(3위)
30 0 37 125
(2위)
81 0 43 75 .334 .395 .594 .987 142 3.90
2019 37 135 485 138 23 1 16 88 48 0 48 65 .285 .355 .435 .790 118 1.79
2020 38 144
(1위)
542 158 27 0 20 110 67 1 53 68 .292 .354 .452 .806 106 1.35
2021 39 114 420 120 11 0 19 81 39 0 34 50 .286 .342 .448 .790 111 1.10
2022 40 143 540 179
(4위)
23 0 23
(5위)
101
(4위)
53 0 43 56 .331
(4위)
.379 .502 .881 146 3.58
KBO 통산
(17시즌)
1972 7118 2199 331 6 374
(5위)
1425
(5위)
972 11 746 1025 .309 .385 .515 .900 140 62.14

포스트시즌 기록
<rowcolor=#000> 연도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08 롯데 3 11 4 0 0 0 1 0 0 1 0 .364 .417 .364 .780
2009 4 16 9 0 0 2 3 2 0 0 3 .563 .563 .938 1.500
2010 5 20 5 0 0 1 6 1 0 2 7 .250 .348 .400 .748
2011 5 18 4 0 0 1 2 2 0 4 4 .222 .364 .389 .753
2017 5 20 7 1 0 1 1 3 0 2 2 .350 .409 .550 .959
통산 22 85 29 1 0 5 13 8 0 9 16 .341 .411 .529 .940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22 롯데 1[17] [18] 0 0 0 1 0.000 0.00 0 0 0 0 0 0 -
KBO 리그 통산
(1시즌)
1 0⅓ 0 0 0 1 0.000 0.00 0 0 0 0 0 0 -

9.2. NPB

  • 붉은 글씨는 시즌 1위(퍼시픽 리그 기준), 진한 글씨는 (퍼시픽 리그 5위 이내)
파일:NPB 로고.svg 역대 기록
<rowcolor=#9e751f> 연도 나이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2012 30 오릭스 144
(1위)
601
(2위)
150
(5위)
25 2 24
(3위)
54 91
(1위)
0 64 85 .286 .368
(4위)
.478
(2위)
.846
(1위)
163
(1위)
5.3
(2위)
2013 31 141 593 158 27 0 24 60 91 0 64 80 .303 .384 .493 .878 151
(5위)
4.1
<rowcolor=#000000> 연도 나이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2014 32 소프트
뱅크
144
(1위)
625
(5위)
170
(2위)
30 0 19 60 68 0 46 97 .300 .362 .454 .816 135 3.7
2015 33 141 584 144 30 0 31
(5위)
68 98
(4위)
0 62 109 .282 .368 .524
(4위)
.892
(4위)
155
(5위)
4.6
NPB 통산
(4시즌)
570 2403 622 112 2 98 242 348 0 236 371 .293 .370 .486 .857 151 17.7

포스트시즌 기록
<rowcolor=#000000> 연도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14 소프트
뱅크
11 45 14 2 0 1 2 8 0 3 12 .368 .422 .500 .922
2015 8 33 13 2 0 4 6 12 0 3 7 .464 .545 .964 1.510
통산 19 78 27 4 0 5 8 20 0 6 19 .409 .474 .697 1.171

9.3. MLB

파일:MLB 로고.svg 역대 기록
<rowcolor=#c4ced4> 연도 나이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wRC+ fWAR bWAR
2016 34 SEA 104 317 74 9 0 14 49 33 0 20 74 .253 .312 .428 .740 103 -0.2 0.1
MLB 통산
(1시즌)
104 317 74 9 0 14 49 33 0 20 74 .253 .312 .428 .740 103 -0.2 0.1

9.4. MiLB

파일:MILB 로고.svg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나이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wRC+
2016 34 타코마(AAA) 7 27 14 4 0 2 6 3 0 2 2 .519 .552 .889 1.441 285
MiLB 통산
(1시즌)
7 27 14 4 0 2 6 3 0 2 2 .519 .552 .889 1.441 285

[1] 이대호가 출생할 당시에는 남구였다가 수영구로 편입되었다.[2] 1984년 10월 8일. 다음날인 10월 9일에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였다..[3] 공교롭게도 이대호가 프로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2022년 10월 8일은 아버지의 38번째 기일이었다.[4] 해외에서의 첫 소속팀인 오릭스 버팔로즈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 할머니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싶은 마음에 52번의 등번호를 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5] 형 이차호가 이대호의 야구용품을 사러 갔는데 할머니가 번 돈마저도 부족했고 결국 어떤 용품은 품질이 좋지 않아 저렴한 것으로 사갔다고 한다.[6] 이 때문에 이대호는 어머니에게 감정이 좋지 않고, 할머니를 진심으로 따라 할머니에게 보은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할머니는 이대호가 고2 때 돌아가셨다. 프로 입단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모친이 같이 살자고 연락했지만 이대호는 거절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형 이차호가 뒷바라지를 해줬다.[7] 2019 시즌 후 유소년 야구선수들 대상 강의에서 밝힌 바로는 중학생 시절 선배의 괴롭힘 때문에 할머니를 보러간다며 1시간 반 넘게 걸어서 집까지 간 적도 있다고 한다.[8] 윗부분에 있는 초등학교 시절 사진만 봐도 이대호의 덩치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초등학생임에도 성인인 선생님의 키와 비슷하다. 추신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등학생 수준의 덩치로 봤을 수밖에 없다.[9]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 등이 함께 나타났던 92학번 황금 세대를 잇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10] 이때 부산에서 1982년생 동기생들이 대거 등장해 프로야구 선수로 성장했다. 추신수(부산중-부산고), 이대호(대동중-경남고), 정근우(동성중-부산고), 채태인(대동중-부산상고), 김경언(개성중-경남상고), 김백만(개성중-부산고), 장기영(대동중-경남고), 이승화(부산중-부산상고), 송산(대천중-경남상고), 김덕윤(대신중-경남상고), 백승룡(사직중-경남상고)이 그 주인공들이다. 추신수, 이대호, 이승화는 부산 수영초등학교 동기다.[11] 실제로 그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고민도 "개인적으로 상은 많이 탔는데 팀이 우승을 못 한다"였다.[12] 그러나 이 금액은 훗날 최형우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받게 된다.[13] 애초에 물가 상승률만 가지고 선수 연봉의 인상폭을 계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약 3%였지만 생활물가지수는 2004년 대비 28% 상승, 주택매매가는 동기간에 40%가 상승했다.[14] 이대호는 돈보다 롯데가 제시한 4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부담됐다고 한다. 2009년쯤 인터뷰와 달리 이때 이대호는 해외진출에 대한 열망이 몹시 컸던 것 같다.[15] 하지만 아베노믹스 때문에 환율이 급락해버려 졸지에 연봉이 깎인 셈이 되었다.[16] 08-11시즌 4년 간은 사실상 양수를 기록하지 못했다.[17] 2022년 10월 8일 LG전 은퇴식 8회초 등판[18] 상대 타자는 2022년 KBO리그 세이브 1위 고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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