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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마셜 제도 |
1. 개요
마셜 제도와 일본의 관계. 마셜 제도는 남양제도 시절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마셜 제도는 남양제도 시절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남양제도에는 마셜 제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의 지배하에서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일본의 지배는 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후에 일본이 패하면서 마셜 제도는 미국의 신탁통치에 들어갔다. 미국의 신탁통치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고 이후에 마셜 제도는 독립국이 되었다. 양국은 독립 이후에 공식 수교했다.2.2. 21세기
양국 모두 교류와 협력이 매우 활발하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마셜 제도는 일본과는 협력적이고, 대만과의 관계도 협력적이다. 일본측에서도 마셜 제도를 지원하고 있다.마셜 제도에도 팔라우와 마찬가지로 일본계가 많이 존재한다. 초대 대통령도 일본계였을 정도로 일본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
2009년,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의 정상 회담에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와 IWC에서 일본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마셜 제도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3. 문화 교류
마셜어는 일본의 남양군도 당시에 일본어에서 유래된 어휘가 일부 존재한다. 사어가 된 일본어 단어를 포함하면 약 180개, 현재까지 사용되는 단어로 97개(모두 명사)가 확인된다. 이 중 34개 정도의 일본어 단어가 사용 빈도가 높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마셜어가 미국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일본어 단어들도 점점 영어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남양군도 통치기에 영향으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노인 세대, 그리고 일본인 혈통을 둔 일본계 마셜인들이 존재한다. 일본계 마셜인은 마셜인보다 일본 시대 때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았던 만큼 전후 마셜의 정치에서 엘리트 계급을 구축했다. 이러한 일본 혈통이 포함된 마셜인은 대략 6,000명으로 인구의 1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모타로와 같은 일본어에서 유래된 성씨나 이름도 현재까지 쓰인다.
한편 전후 일본계 마셜인들이 태평양 전쟁 때 사망한 일본군의 유골을 일본으로 인양하는 것을 지원하여 일본 내 일본군 유족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일본계 마셜인들은 전후 마셜 제도가 급격히 미국화 되는 것에 대해 반발감이 있었고 그 대안으로 자신들의 일본 혈통을 인식하고 중요시했기에 일본과의 관계를 연결해 줄 유골 인양을 적극 지원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로, 일본 시대를 경험한 세대가 거의 모두 죽고, 일본계 3세 이후는 일본 혈통에 대한 정체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에 일본과의 교류는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