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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를 입은 팔라우인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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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과 팔라우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일본과 팔라우는 교류, 협력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일본측은 팔라우를 지원하고 있다.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팔라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제국에게 통치를 받았다.그 때 팔라우는 팔라우섬뿐 아니라 일본령 남양군도 전체의 수도로서 기능했으며, 당시 본토를 떠난 일본인이 다수 정착하면서 팔라우에 최신 문물과 자본을 유입시키고 경제를 순환시켰다.[1]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된 계기도 조선마냥 독립국을 잡아먹은 형태가 아니라 독일 제국의 통치권을 넘겨 받은 것이었으며[2], 일단은 국제연맹의 보호령이었던 이유로 일반적인 식민지보다는 통치가 느슨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악감정이 남을 일도 많이 없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본은 팔라우의 일본인 1만 7,800여명을 강제 송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패하면서 팔라우는 미국의 신탁통치하에 들어갔다. 1945-46년 동안 팔라우 내의 일본인은 일본으로 송환되었고 수십 년 동안 팔라우를 방문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가 1970년대부터 관광이 재개된다. 그리고나서 팔라우가 독립한 뒤에 양국은 공식수교했다.
2.2. 21세기
팔라우는 현재도 일본계 인구가 많이 거주하고 있고, 일본어가 형식적으로나마 공용어로 지정된 주도 있는 만큼,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은 편이며, 2015년 4월 일본 천황 부처가 방문했을 때는 꽤나 열렬한 환영을 했던 적도 있다. 또 천황이 방문한 펠렐리우 주는 해당 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당시 현지 노년층과의 인터뷰에서는 과거 일본의 통치를 그리워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변방 듣보잡 섬에 불과했던 팔라우가 제일 번성했을 때는, 과거 일본의 통치를 받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대만-일본 관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팔라우 자체가 일본계 후손이 많은 나라인 점도 한 몫 한다. 팔라우의 전 대통령인 토미 레멩게사우[3]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고 본인도 태평양 전쟁 중 죽은 일본인을 기리는 의식에 참가한 바가 있다.
구니오 나카무라 역시 일본계 출신 팔라우의 대통령이다.[4]
2.2.1. 2010년대
2014년 9월 17일, 요미우리신문은 아키히토 천황이 팔라우를 방문한다고 보도했다.#2015년 3월 21일, 팔라우의 코로르 인근 해역에 있던 침몰 일본함정에 중국 국기가 걸려져 있는 것이 보도됐다.#
4월 8일, 아키히토 천황 부부가 팔라우를 방문했다.# 아키히토 천황 부부는 페리류섬을 방문해 위령비에 헌화했다.#
2018년 5월 18일, 일본 정부가 개최한 태평양·섬 정상회의에 호주, 뉴질랜드, 사모아, 솔로몬 제도, 피지, 팔라우, 마셜 제도 등 18개국이 참가했다.#
2.2.2. 2020년대
2022년 5월 7일 ~ 8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피지와 팔라우를 방문했다.#9월 9일, 팔라우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나루히토 천황 부부와의 만남을 가졌다.#
2023년 6월 13일, 일본 정부는 팔라우에서 유골이 발견돼 일본군 집단 매장지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에 나섰다.#
6월 14일, 기시다 총리는 팔라우의 대통령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자 사의를 표명했다.# 그리고 팔라우 대통령에게 방류 계획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2024년 4월 24일, 일본이 실시하는 연합훈련에 피지와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투발루, 마셜 제도, 팔라우 등 16개국이 참여했다.#
6월 6일, 팔라우에서 중국발 해킹 공격이 발생하자 일본 측이 팔라우를 돕겠다고 밝혔다.#
7월 16일, 일본 정부가 도쿄에서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팔라우 등 16개국, 호주, 뉴질랜드 등 장관급도 참가한다고 밝혔다.#
9월 22일, 기시다 총리가 몽골 대통령, 팔라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3. 경제 교류
양국간의 경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일본이 팔라우에 우호의 다리를 건설하거나# 팔라우 국제공항 청사를 새로 지어주고 등 우호를 위한 투자를 한 적이 많이 있다. 또한, 일본 측에서 팔라우에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팔라우에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2021년 1월, 일본 기업 NEC가 팔라우와 미국을 잇는 해저 케이블 연결 사업을 수주했다.#
4. 문화 교류
팔라우는 일본령 남양군도시절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어는 팔라우어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팔라우어에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어휘가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팔라우에도 일본인 관광객들이 자주 오고 있다. 일본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앙가우르 주는 팔라우에선 일본어가 주의 공식 언어에 포함되어 있어서 팔라우는 일본 이외에선 일본어가 공용어에 포함된 국가이다.팔라우에서 쓰이는 일본어는 같은 오세아니아 지역인 하와이에서 쓰이는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근대 일본어의 흔적이 적지 않게 남아있어서 일본의 언어학자들이 근대 일본어에 대해 연구할 때 참고하기도 한다.
2011년 8월 17일, 미국과 일본, 팔라우 공동 연구팀이 팔라우의 응게멜리스섬의 한 수중동굴에서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서식한 뱀장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5. 교통 교류
양국간의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팔라우를 자주 방문하고 있다. 팔라우를 잇는 직항노선이 없다보니 팔라우 측에서는 일본 직항 노선을 개설하려고 하고 있다.#미국의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나리타-팔라우 노선을 개설하기로 했다.
6. 대사관
일본은 팔라우의 코로르에, 팔라우는 일본의 도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7. 관련 문서
[1] 팔라우의 국정 교과서 역시 일제의 통치에 관한 부분의 제목이 일장기의 기치 아래일 정도이고 레멩게사우 대통령에 의하면 현재도 팔라우의 노인들 중 일본을 내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2] 이 점은 대만과도 비슷하다.[3] 증조할아버지가 일본인[4] 참고로 구니오 나카무라의 경우는 어렸을 때 잠시 일본에서 살기도 했지만 인종차별로 인해 팔라우로 돌아와서 일본어는 다소 서툰 편이라고 한다. 그래도 일본에 대한 관계는 깊은 편이라 대통령 취임 이후 수 차례 방일하거나 퇴임 이후 도쿄대에서 강의하는 등 일본에 대해 친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