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3:33:29

임달화

역대 홍콩 금상장 시상식
파일:Hong_Kong_Film_Award_Trophy.png
남우주연상
제28회
(2009년)
제29회
(2010년)
제30회
(2011년)
장가휘
(비스트 스토커)
임달화
(세월신투)
사정봉
(전인)
임달화
任達華[1]|任达华 [2]|Simon Ya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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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colbgcolor=#fff,#191919>임달화[4][5]
국적
[[틀:국기|]][[틀:국기|]][[영국령 홍콩|]](1955~1997)

[[틀:국기|
국가
홍콩특별행정구
]][[홍콩|
홍콩
홍콩특별행정구
]][[틀:국기|
속령
홍콩특별행정구
]](1997~현재)
출생 1955년 3월 19일 ([age(1955-03-19)]세)
영국령 홍콩
직업 영화 배우
신체 180cm, 79kg
학력 명애백영기전문대학
활동 1979년 ~ 현재

1. 소개2. 생애3. 주요 영화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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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홍콩의 영화배우.

한국에 최초로 개봉한(1990년) 그의 단독 주연 작품인 '낭만살수자유인'의 리뷰

2. 생애

1955년 3월 19일,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임금구(任錦球, 얌캄카우, 표준 중국어:런진추)는 1969년 홍콩 경찰로 일하다가 총격을 맞고 사망한 순직경찰.[6]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임달화도 경찰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갔으나 경찰로 가지는 않고, 홍콩의 명애백영기전문대학 (明愛白英奇專業學校)에 입학해 졸업하였다. 주윤발, 왕정, 두기봉, 임영동 감독과 동갑이다. 형(1953년 5월 11일 생) 임달영(任達榮, 얌닷윙, 표준 중국어:런다룽)은 홍콩 경무처 부처장까지 승진했고, 2010년 퇴직했으며 2021년 현재 기업가를 하고 있다.

파일:yamdat.jpg
TVB 탤런트 시절 임달화

주윤발보다 1기수 아래인 4기이며 같이 출연한 드라마로는 가변 (1977), 분투 (1978), 망중인 (1979), 친정 (1980), 천왕군영회 (1981), 북두쌍웅 (1983), 신찰사형속집 (1985) 등이 있다.

1970년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고, 이어 홍콩 대부분의 배우들이 거쳐간 TVB에 연기 연습생으로 입사,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970년대는 방송국인 TVB의 전성시대였는데, 1976년 TVB의 경찰물 CID에 출연하면서 데뷔했다. 이렇게 여러 연속극에 출연하다가 198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되자, 여러. 특히 느와르물에 자주 출연했지만,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중에 한국에서 크게 히트한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모델출신의 배우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등광영과 유덕화가 주인공이었던 재전강호, 주윤발이 주인공이었던 임영동 감독의 협도고비 등의 영화에서 악역을 자주 맡기도 했었다. 영화 고양의생에선 연쇄살인마 역을 맡기도 했으며 악역이 아닌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오우삼 감독의 첩혈가두 정도였다.[7]

한국에서 "타이거 케이지"로 소개된 '특경도룡'(1988)은 견자단, 장학우도 나오는 나름 대작이지만, 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임달화 필모그래피의 전성기는 홍콩 영화가 가장 인기 있었던 1980년대 후반이 아니라 홍콩 영화가 몰락한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물론 8,9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주로 '3급판 영화'나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에 출연한지라 당시 홍콩영화계의 주목도에서도 성룡, 주윤발, 장국영, 이연걸, 임청하, 왕조현, 유덕화, 양가휘, 양조위, 장만옥, 주성치, 왕가위 등에게 한참 밀리다 보니 한국에서도 덜 알려졌던 것.
현지에서는 당시 인기스타였으나, 다작 배우임에도 배우로써 각인될 작품이 거의 없었던데다 1990년대 초중반에 한국에서 홍콩영화 인기가 식어가면서 소개될 기회를 놓치게 된 것. 고천락, 유청운, 임설, 장조휘 등과 함께 두기봉 사단의 한 축을 맡고 있으며 미션 (1999), PTU (2003), 대사건(2004), 흑사회(2005), 흑사회 2 (2006), 익사일 (2006), 스패로우 (2008), 피의 복수 (2009) 등의 두기봉 영화에 연달아 출연했다.[8]

파일:jiexue01.jpg
첩혈가두의 "아락"역의 임달화

그리하여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전성기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의 악역, 또는 엽문 시리즈의 조연 내지 한국영화 도둑들에 출연한 홍콩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첩혈가두에서는 사이공에서 활약하는 멋쟁이 킬러로 열연했다. 적라고양 시리즈 등에서 보여 준 코믹/에로 연기도 괜찮은 편이다.

도둑들에서 홍콩팀 보스 역으로 출연했다. 그 인연으로 2013년작 한국영화 감시자들에 우정출연하기도 했다. 참고로 감시자들은 임달화와 양가휘, 서지산, 소미기 등이 출연한 홍콩영화 천공의 눈을 한국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한 영화이기도 하다. 임달화가 맡았던 캐릭터는 감시자들에서 설경구가 맡았던 캐릭터이며 양가휘가 맡은 캐릭터가 정우성이 맡았던 캐릭터에 해당된다. 도둑들감시자들 이전 유위강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전지현, 정우성, 이성재, 천호진 등이 출연했던 데이지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위에서 언급한 배우들이 2020년대 들어서 활동이 주춤하거나 이미 은퇴했거나 사망하여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가 많지 않은데, 임달화는 여전히 대륙과 홍콩을 오고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홍콩 구룡(까울룽)의 스타의 거리(Avenue of Stars)에 이름과 손바닥이 새겨져 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3. 주요 영화

  • 가법 (1979)
  • 차이나통 당구고사 (1986)
  • 여자감옥 (1988)
  • 용지쟁패 (1989)
  • 성향쌍웅 (1989)
  • 성룡의 미라클(1989)
  • 재전강호 (1990)
  • 첩혈가두 (1990)
  • 동방노호 (1990)
  • 구명선언(1990)
  • 향향무남 (1990)
  • 자유인 (1990)
  • 천왕 (1991)
  • 파호 (1991)
  • 독응당안 (1991)
  • 충간도 (1991)
  • 블랙 캣 (1991)
  • 적라고양 (1992)
  • 협도고비 (1992)
  • 사대탐장 (1992)
  • 고양의생 (1992)
  • 용등사해 (1992)
  • 오서기밀당안 (1993)
  • 애재흑사회 (1993)
  • 강간-향향기안지강간 (1993)
  • 장미장미 사랑해 (1993)
  • 흑표천하 (1993)
  • 초급학교패왕 (1993)
  • 귀파사 (1995)
  • 고혹자 인재강호 (1996)
  • 고혹자 2 맹룡과강 (1996)
  • 이연걸의 히트맨 (1998)
  • 용호살수 (1995)
  • 미션 (1999)
  • 냉전 (2000)
  • PTU (2003)
  • 툼 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 (2003)
  • 대사건 (2004) - 경찰국장 역
  • 살파랑 (2005)
  • 흑사회 (2005)
  • 데이지 (2005)
  • 흑사회 2 (2006)
  • 익사일 (2006)
  • 천공의 눈 (2007)
  • 탈수 (2008)
  • 스패로우 (2008)
  • 엽문 (2008) - 주청천 역
  • 밤과 안개 (2009)
  • 풍운 2 (2009)
  • 세월신투 (2010)
  • 블랙랜섬 (2010)
  • 8인 최후의 결사단 (2010)
  • 복수 (2010)
  • 엽문 2 (2010) - 주청천 역
  • 나이트폴 (2012)
  • 도둑들 (2012)[9]
  • 맨 오브 타이치 (2013) - 왕 경감 역
  • 감시자들 (2013)[10]
  • 구화영웅 (2014)
  • 살파랑2 (2016) - 진국화 역
  • 마담 K (2016) - Scarface(전직 경찰) 역
  • 추룡 2: 패왕 (2019) - 이 경감 역
  • 칠중주: 홍콩 이야기 (2020) - 아버지 역[11]
  • 레이징 파이어 (2021) - 록 치페이 역
  • 맨 온 엣지 (2022) - 람유청 역
  • 골드핑거 (2023) - 쩡젠차오 역

4. 여담

  • 영어를 상당히 잘하는 듯 하다. 2012년 도둑들 개봉에 앞서 방한했을 때, 백지연의 INSIDE에 출연해서 통역없이 영어로 장시간의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사실 홍콩의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은 모두 영어로 강의하기 때문에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영어에 능하다.[12] 하지만 당시의 저학력자들은 영어 구사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현재도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들은 영어를 잘 구사하지만, 고등학교 미만 학력자들은 영어가 서툴다.
  • 백지연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좌우명을 (영어로) 말했다. "Life is not easy. However, be more positive. That's where you can find happiness."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욱 긍정적으로 사십시오. 행복은 그렇게 찾아옵니다)
  • 20대의 모습 (TVB연속극 출연)은 전형적인 동남아형 남중국인의 모습인데, 30대의 (첩혈가두 출연했을때)모습은 장국영을 연상케 하는 미청년, 50대가 되자 중후한 인상이 나온다. 연기의 폭도 상당히 늘어나는 발전형 배우.
  • 도둑들에 출연했을 때, 위장 부부로 나온 김해숙이 임달화의 촬영장 매너를 극찬한 바 있다.
  • 홍콩 영화계에서도 상당한 나이스 가이로 알려져 있지만, 주성치에 대해서는 냉담한 듯하다. 2014년 영화 제작자 향화강 (상화창)의 아내 진람(천란)이 자기의 웨이보에 주성치를 비난하는 글을 올려서 홍콩 연예계의 이슈가 되자, 기자들은 향화강과 진람의 친구인 임달화에게 이에 대한 코멘트를 요구했는데, 임달화는 "나는 주성치를 잘 모르지만, 진람은 정직한 사람이다"라고 말을 해서, 주성치를 간접 디스했다.
  • 2019년 7월 20일 광둥성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악수를 청하는 한 남성에게 피습당해 복부에 부상입었다. 임달화를 자신과 채무 관계에 있는 개발업자로 오인해 칼로 찌른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임달화의 매니저는 이 남성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반응을 내놨다.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서비스는 계속 한다고 한다.
  • 홍콩 출신이지만 홍콩은 중국에 속하고 중국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13] 2019년의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때는,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다. 파이팅 중국, 파이팅 홍콩"이라는 메시지를 SNS에 올려 홍콩은 중국에 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에 중국 선전용 영화나와 나의 조국에도 출연했다.
  • 1981년 스튜어디스 하서억과 결혼했지만 1986년에 이혼했다. 1997년에 12살 연하의 모델 치치(琦琦)와 재혼해서 2004년에 딸 임청가를 낳았다. 부인이 179cm의 장신인지라 딸도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장신이다. 현재는 잡지 모델로 활동하는 중.
  • 홍콩 배우들중에 재테크로 거부가 된 사람이 많지만 임달화도 그중 한명이다. 부동산 투자가 성공하여 수백억원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알려진 것만 세계 각지에 30건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네덜란드의 와이너리. 자신이 밝힌 것처럼 제주도에도 별장을 가지고 있다. 파리, 맨해튼, 런던, 싱가포르, 베이징, 상하이, 하이난에도 부동산이 있다고 한다.


[1] 정자[2] 간체자[3] 영문명[4] 광동어로는 jam4 daat6 waa4, 얌닷와[5] 보통화로는 ren2 da2 hua2 런다화[6] 1927년 4월 3일생. 당시 홍콩 해양경찰에 복무중이었으며 순찰 도중 괴한에게 피살당했다. 사망 당시 향년 42세.[7] 작품 전개상 아주 중요한 CIA요원 역할을 맡았다[8] 사실 임달화를 포함하여 고천락, 유청운 등은 두기봉 감독에 연속 출연하면서 자신들의 필모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두기봉 감독 이후 홍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감독이 거의 전무하다보니 이들도 더 이상 신인감독이나 덜 유명한 감독과 작업하기보다는 유명한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릴정도로 연속으로 출연하게 된다.[9] 첫 한국영화출연작[10] 마지막에 카메오로 출연[11] 7명의 거장의 단편영화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이 중 6번째 작품인 임영동의 '길을 잃다'에 출연하였다.[12] 양가휘의 경우에는 대학에서 영어수업만 한지라 영어실력이 늘었고, 임달화가 한참 유년시절을 보낸 영국령 홍콩 시절에 홍콩의 상류층들은 아예 백인 교사들로 구성이 되어있고 영어 교과서로만 수업을 하는, 우리로 치면 외국인학교 내지는 국제학교와 비슷한 학교에 진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개 홍콩에서 학교를 졸업하면 아예 영국이나 미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여기에 해당하는 케이스가 장국영이다.[13] 사실 의외로 홍콩 기성세대 연예인의 대부분이 이런 입장을 표방하는데, 이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홍콩 연예계에서 삼합회가 극심하게 날뛰었고 이에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연예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 지배로 인한 차별 대우의 기억, 상당히 막장스러웠던 구룡반도 쪽의 치안 문제 등을 기억하고 있는 홍콩의 나이 든 세대는 무질서한 자유보단 차라리 중국 공산당 통제 체제 하의 질서를 원하는 경향도 있다. 게다가 중국과 각을 세우다가 황추생 같이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대륙활동이 막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