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20:39:55

임란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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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선정
1위2위3위4위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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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7위8위9위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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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제22대 총리
임란 아흐메드 칸 니아지
عمران احمد خان نیازی | Imran Ahmed Khan Niazi
파일:임란 칸 공식사진.jpg
<colbgcolor=#01411C><colcolor=#fff> 출생 1952년 10월 5일 ([age(1952-10-05)]세)
파키스탄 자치령 라호르
재임기간 제22대 총리
2018년 8월 18일 ~ 2022년 4월 10일
서명
파일:임란 칸 서명.svg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영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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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411C><colcolor=#fff> 부모 아버지 Ikramullah Khan Niazi
어머니 Shaukat Khanum
배우자 제마이마 골드스미스 (1995 – 2004)
리함 칸 (2014 – 2015)
부쉬라 비비 (2018 -)
자녀 3명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키블 컬리지
(PPE / B.A.) (1972년 – 1975년)
종교 이슬람교
신체 183cm
소속 정당 정의 파키스탄 운동
지역구 NA-95
의원 선수 3 (하원)
의원 대수 12•14•15
약력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 주장 }}}}}}}}}

1. 개요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2.2. 정치 활동2.3.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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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키스탄의 정치인. 파키스탄의 의회 의원이자 전 총리다. 현재 정의 파키스탄 운동의 당수를 지내고 있다.

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

1952년 10월 5일, 라호르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름 끝의 Niazi는 부족명을 뜻한다. 파슈툰족에서 부족 중 하나. 일각에서는 그의 생일이 11월 25일이며 10월 5일은 조작된 것이라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허위로 밝혀졌다. 어린 시절에는 수줍음 많고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하며, 집안 형편이 괜찮아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 본인도 공부를 매우 잘했는지 1972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PPE를 따고 1975년에 졸업했다.

거기다 크리켓에도 재능이 있어서 16살에 처음으로 프로 데뷔를 했고 왕년에는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로써 이른바 국민적인 영웅으로서 활약하였다. 1983년과 1992년에 상을 받기도 했다. 1982년부터 파키스탄 크리켓팀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특히 1992년에는 예선 리그전에서는 인도에 패했지만, 4위로 결선에 진출해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2022년 기준으로) 파키스탄 처음이자 마지막의 크리켓 월드컵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1992년 크리켓 월드컵 vs 잉글랜드 파이널 하이라이트. 인도를 누르고 83년 인도처럼 식민지 지배국이었던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했으니 그야말로 국민적 영웅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특히 일반적인 크리켓 스타들은 30대 중반이면 국제경기 은퇴를 하고, 30대 후반에서 40세가 되면 대부분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는데, 선수 커리어의 마감시기에 딱 월드컵 우승하고 은퇴했으니 더욱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좋은 것이다.
파일:$_86.jpg
1992년 크리켓 월드컵 우승 직후의 임란 칸

크리켓 월드컵 우승 직후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1994년 파키스탄 최초의 전문 병원을 라호르에 짓는 등 사회활동에 전념하다가 1996년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대학 시절 여성편력이 굉장했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들과 사귀거나 관계를 맺었으며, 그들 중에는 유력 집안의 딸들도 많았다고 한다. 플레이보이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파키스탄 국가대표 크리켓 선수에다 집안도 괜찮고 학벌까지 엄청나니 그럴 만도 하다. 젊은 시절의 임란 칸. 서양에서는 히스 레저를 닮았다는 평이 많다.

2.2. 정치 활동

사실 임란 칸은 인기 크리켓 선수라는 점 외에도 정치를 함에 있어 유리한 조건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일단 영국의 명문대학교인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고, 젊은 시절의 그는 상당한 미남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의 첫번째 부인 제마이마 골드스미스는 유대계 부호 집안의 상속자로, 칸과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사교계 유명인사였으며 다이애나 왕세자비와도 가까운 친구였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이 다이애나빈, 오른쪽의 남성이 젊은 시절의 임란 칸이고,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 서 있는 초록색 히잡을 쓴 여성이 임란 칸의 첫번째 부인인 제마이마 골드스미스.

다이애나빈이 이혼 후 만났던 애인 중 한 명이자 흔히 그녀의 마지막 진짜 사랑으로도 여겨지는 심장외과의 하스낫 칸은 임란 칸의 가까운 친척이었으며, 둘 사이를 소개해 준 사람이 다름아닌 제마이마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사람이 국가대표 크리켓 영웅이기까지 하니, 어떻게 보면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상당히 자연스럽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1996년 PTI를 창당했으며, 1997년 총선에 도전했지만 당시에 PTI는 그야말로 듣보잡 정당이었으며 총선에서 단 1석도 못 건졌다. 당수인 본인부터가 낙선했다.

현재는 흑역사로 남아 있지만, 1999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의 쿠데타를 지지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칸은 무샤라프를 "청렴하고 안전한 지도자"라며 지지를 보냈다.

2002년 국회의원으로 도전해 당선되었다. 이후로는 야권 인사로 활동하면서 무샤라프 독재정권에 항명했는데, 덕분에 정권의 탄압 대상 중 하나로 찍혔다. 급기야 2008년에는 총선 보이콧을 선언했다.

2013년 총선은 그의 인생의 한 가지 전환점이 되었는데, 비록 원내 3당에 그쳤지만 342석 중 35석을 얻으면서 정치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비록 의석수는 적어도, 득표율은 인민당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 당시 칸은 "무능부패한 기득권"이라고 비난을 받아온 기존 주류 세력의 대항마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덕분에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이미지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PTI는 높은 지지를 얻기 시작했으나, 그간의 여론조사에서는 무슬림 동맹이 우위를 보이면서 PTI의 승리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판에 양당의 격차가 급격하게 좁아지면서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PTI가 앞서는 여론조사가 나오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2018년 7월 25일 이루어진 선거 결과 최대 90석 정도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110석을 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018년의 이 선거는 파키스탄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다. 파키스탄은 건국 이후 수십 년 동안 파키스탄 인민당, 파키스탄 무슬림 동맹, 그리고 파키스탄 군부가 돌아가면서 권력을 차지해왔는데, 파키스탄 정치의 순환 고리를 마침내 깨고 임란 칸이 파키스탄의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핵무기 관리를 문제로 외교를 미국에 의존하던 군부에 대한 파키스탄 민중의 반발, 샤리프, 부토 등 유력 가문이 독점하던 정치판에 대한 피로가 폭발한 것도 크다. 임란 칸은 군부에 대해서는 군부의 부패를 규탄하며 핵무기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샤리프, 부토 등 기존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 자주외교도 못하는 벙어리들 이런식으로 도널드 트럼프식 모두까기 전술을 구사해 파키스탄 대중의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지지도를 높였다. 그래서 해외의 전문가들 평가가 파키스탄판 트럼프이자 포퓰리스트라는 것이다.

2019년 2월에 "양국간의 오해가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면서, 인도와의 갈등을 보이자 먼저 대화 제안을 하였다.# 파키스탄의 경제는 심각하게 허약한지라,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도가 먼저 핵을 쏴서 전세계에 고립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얻어터질 확률이 굉장히 높다.

2019년 9월 3일에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11월 1일에 이슬라마바드에서 급진 이슬람주의 정당 지지자 수천 명이 경제난을 이유로 임란 칸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천막 농성 시위를 벌였다.#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순교했다"고 발언했다가, 뭇매를 맞고 "실언했다"고 해명했다. #

성범죄자에 대해 사형,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3월 상원 선거에서 고전하자, 총리 신임안을 표결한다.# 과반으로 통과했다.#

중국산 시노팜 백신을 접종했지만,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의지력이 있는 게 아니므로, 여성들은 유혹을 없애기 위해 옷을 얌전하게 입어야 한다(dress modestly)"는 발언을 하여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얼마 안 지나서 비슷한 발언을 하였다는 점에서 더 욕을 먹었다.#

인도에서 코로나 19 2차 감염 웨이브가 크게 번지자 이를 우려하며, "방역에 철저하지 않으면 파키스탄까지 코로나가 대재앙처럼 번질 것"이라고 걱정하였다.영상

2021년까지 파키스탄 탈레반-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정치적 동맹이라도 있는 건지, 탈레반을 옹호하는 행보를 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ISI가 지금까지도 탈레반을 지원하는 것이 이 사람 덕 아니냐"라는 의혹이 존재하며 실제로 파키스탄 공군의 탈레반 지원에 의한 NRF에 대한 공습 사건들도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칸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아니며, 그가 속한 정당 역시 이슬람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근본주의 정당은 아니다. 칸이 탈레반을 싸고 도는 것은, "현재 파키스탄 경제가 엉망인지라 국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또한 부계가 파슈툰족이라 파슈툰 민족주의를 추종하는 탈레반과 혈연적으로 연이 있다는 점도 탈레반 지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는 관점도 있다. 그와 별개로 파키스탄은 군부가 나라의 실세이기 때문에 총리의 권한이 작다.

2022년 4월에 불신임안을 가졌으나, 무산되었다.# 정치적 돌파 위해 조기총선을 가지자는 것이다.

4월 8일 파키스탄 대법원이 칸 총리의 의회 해산 조치가 위헌이라면서 의회 복원을 지시했으며 동시에 불신임 투표를 진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법원 명령 전 야당은 과반의 표가 이미 확보되었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쫒겨나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

4월 10일, 경제 파탄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되어 불신임안이 통과되면서 총리직에서 쫒겨났다.# 임란 칸은 반발하며 지지자들에게 항의 시위를 독려하고 있다.#

5월 7일, 파키스탄 정보부에서 임란 칸을 고소했다. 죄목은 신성모독죄.# 문제는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죄의 처벌 규정은 사형이라는 것. 이게 가능한 이유는 파키스탄이 이슬람 극단주의가 보편적 정서가 되었을 만큼 종교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선 이 정서를 악용해 트집잡아 신성모독으로 뒤집어 씌우는 일이 잦다.

2022년 9월엔 재판 중에 여성 판사가 나온 것을 트집잡았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거기다 UN에 파슈툰족과 탈레반을 민족주의자라고 옹호하는 서한을 보냈다가 파키스탄 하원이 임란 칸의 개인 생각일 뿐, 파키스탄의 공식 입장은 절대로 저렇지 않다고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10월 21일.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가 임란 칸 전 총리에 대해 5년간 공직 박탈 결정을 내렸다.#

2022년 11월 3일 오후3시(현지시간) 임란 칸이 유세차량을 타고 펀자브주 동부 와지라바드에서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향하던 중 괴한의 총기공격을 받았다. 칸 전 총리는 바로 차에 타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11월 4일 총상 이후 첫 연설에서 자신이 넘어져서 죽은 줄 알고, 다른 암살자는 떠났다고 밝혔다.# 한편 임란 칸 전 총리는 사건의 배후로 샤리프 현 총리와 라나 사나울라 내무부 장관, 파키스탄 정보부 등을 지목했다. 경찰은 용의자의 단독범행을 발표했으며, 샤리프 총리는 전혀 연루된 것이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3주 만에 다시 나섰다.# 임란칸은 이번 총격의 배후에 셰바즈 샤리프 현 총리와 정보 당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2023년 5월 9일, 재임 시절 받은 선물을 불법으로 판매하거나 은닉한 혐의로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 청사 밖에서 부패방지기구인 국가책임국(NAB) 관련 요원들에게 체포됐다.[1]# 그러자 임란 칸이 이끄는 정의 파키스탄 운동(PTI) 등 지지자들이 항의시위에 나서는 등 파키스탄 정국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한편 11일 파키스탄 대법원은 이번 체포가 무효이며 2주간의 경찰 보호 하에 보석을 허가했다.# 그는 당국에 의해서 풀려났지만 측근과 지지자 등 약 5천여명은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체포의 배후에는 군이 있으며 파키스탄은 현재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이 칸 전 총리 측을 압박하는 가운데 칸 전 총리를 지지하는 야권 성향의 언론인들이 잇다라 실종되고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가 자산은닉죄로 수감된 임란 칸 전 총리에 대해 5년간 선출직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2024년 1월.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 '불법 결혼' 혐의가 인정돼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2.3. 사생활

1995년 5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22살 연하의 유대계 부호의 딸 제마이마 골드스미스[2]와 결혼했고, 이듬해 장남 술라이만을, 1999년에 차남 알리를 얻었다. 제마이마는 남편을 따라 이슬람교로 개종했다.[3] 하지만 2004년 6월 이혼했다. 공식적으로 밝힌 이혼 사유는 그녀가 정치인의 아내로 사는 삶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혼 과정도 순조로웠고, 이혼 후에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칸이 재혼하기 전까지 전남편의 성을 그대로 썼다. 조강지처인데다, 본인은 유대계 영국인이지만 우르두어도 배우고 파키스탄의 생활 양식을 많이 받아들이려 노력했기 때문에, 아직도 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퍼스트레이디처럼 여겨지고 있다. 제마이마의 1살 터울 남동생은 2016년 런던광역시장 선거영국 보수당 후보였던 잭 골드스미스 전 영국 서민원 의원이다.

두번째 아내는 파키스탄의 방송인이자 저널리스트인 리함 칸이다. 리함 칸과의 결혼생활은 불과 9개월 만에 끝났는데, 보수적인 파키스탄 사회에서 미니스커트나 딱 붙는 상의 등을 입고 방송하던 리함의 이미지가 워낙 안 좋아서 "왜 칸이 저런 여자랑 결혼하냐"는 여론이 많았기에, 이 2번째 결혼은 시작부터 삐걱였다. 둘 사이도 안 맞는 게 많았는지, 결과적으로 둘의 관계는 1년도 채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고 칸은 리함과 이혼할 때 이슬람권의 악습인 '트리플 탈라크'를 사용해 이혼하는 바람에 진보파나 세속주의자, 서방으로부터 욕을 먹었다. 트리플 탈라크(Triple Talaq)란 탈라크(뜻은 이혼)를 3번 말하면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이혼이 법적으로 허가되는 이슬람권의 악습으로,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이슬람권에서 널리 악용된다. 그리고 이슬람권이 다 그렇다시피 남성만 사용할 수 있고 여성은 해당사항이 없다. 칸은 아내에게 문자로 그냥 Talaq를 3번 쳐서 보냈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혼이 됐다. 이렇게 이혼한 것에 대해 악감정이 단단히 생겼는지, 리함은 이혼 후 선거철에 칸과 그의 정당을 씹어대는 자서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리함 본인이 파키스탄에서 비호감 이미지가 강해서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4]

세번째 아내는 수피학자 부쉬라 비비. 임란 칸은 개인적으로 수피즘에 심취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부쉬라 비비로 널리 알려진 3번째 부인은 펀자브 지방의 유력 가문의 딸로, 본래 성은 Wattoo이며 첫 번째 결혼으로 얻은 성이 Maneka이다. 둘은 수피즘 사원에서 만나서 알게 되었으며, 당시에 그녀는 첫번째 남편 카와르 마네카와 살고 있었지만 2017년 이혼했다. 이 때문에 불륜 루머가 잠시 돌았으나 전남편이 단호하게 부정하여 일단락 되었다. 앞의 두 전처와는 달리 독실한 무슬림인지라 히잡을 상시 쓸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최초의 파키스탄 총리 부인이 되게 되었다. 파키스탄은 보수적인 이슬람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탈레반 점령 구역이 아니라면 히잡은 쓰다 벗었다 해도 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이전 총리 부인들이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경우 히잡을 벗은 적도 매우 많다. 또한, 임란 칸 본인도 3번째 결혼 즈음을 계기로, 영국 귀족에 가까웠던 모습에서 일신해 무슬림 영성에 눈을 떴다는 종교적인 선언과 동시에, 아내가 쳐주는 점성술과 종교적 의식을 정치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어느날 갑자기 열성 무슬림이 되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그 뒷배경 논란이 있지만, 이것이 수피즘에 익숙한 파키스탄의 대중들에게는 알라의 가호처럼 보이면서 대중의 지지도를 높이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속주의자라 그런건지 수염을 면도하였다. 원래 이슬람 율법상 남성에게 면도는 금하는 사항이다.

파키스탄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긴 하지만 그의 영어 연설을 들어보면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유는 그가 사용하는 영어의 파키스탄식 방언이기 때문. 자세한건 파키스탄 영어 문서 참조.

[1] 사실 그는 연방수사국에 의해 여러 차례 소환 요구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고 재판 출석도 거부했으며 보석을 요청하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려다가 체포된 것이다.[2] 영국인[3] 남편과 이혼한 후 이슬람을 버렸는지는 불명이다.[4] 리함 칸은 이후 2022년 13살 연하의 모델 출신 연예인 미르자 빌랄과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