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20:37:35

자기교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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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관련 문서

1. 개요

과학이 외부의 다른 도움 없이 과학계 내부의 지식 축적 프로세스만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 가면서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는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이다. 영어로는 self-correcting이라고 한다.

2. 상세

현상에 대한 관찰과 계량화된 측정, 가설의 검증과 체계적 검토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학계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과학이 항상 옳은 말만 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한 방법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연구자들이 연구부정행위를 저지르거나 편향에 빠지거나, 답정너 식의 연구를 하게 될 때 그 개인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잘못된 지식이 유통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원리이다.

이는 학자 A의 잘못을 발견하고 지적한 학자 B가 그만큼의 명성과 신뢰성, 그리고 학계 내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메커니즘에 근거한다. 즉 건전하고 생산적인 비판을 함으로써 동료의 잘못을 짚어주는 것이 소위 의리 없는 행동이 아니라 모범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교정성이 작동하는 학계에서는 모든 동료들이 우호적인 협력자인 동시에 가장 거친 경쟁자이기도 하다.

학계에서 어떤 스캔들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내부고발이나 저널리스트의 폭로 기사로 알려지는 것이 아닌 이상, 대개의 경우는 바로 이 자기교정성이 작동한 결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학계 외부에서 그 스캔들을 밝히고 정의구현을 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면, 학계 내부에서 자기교정성이 작동한 것이다.[1] 그래서 충분히 장기적으로 본다면, 자기교정성은 대체로 잘 작동하는 편으로 여겨진다. 남은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빠르고 민감하게 작동하는가 하는 것. 비관적인 인사들은 문헌오염이 숱하게 발생하도록 문제가 발견되지 못한 채 남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의외로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자기교정성이 작동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사회심리학의 경우 초능력 논문 게재 사건 당시에 어느 때보다도 자기교정성에 철저하게 의지했지만, 디데리크 슈타펠(D. Stapel)의 연구부정행위 사건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기력한 패배를 맛보았다. 한편 경제학에서 카르멘 라인하트(C. Reinhart)와 케네스 로고프(K. Rogoff)의 재정긴축에 관한 논리는 3년 후 다른 학자들에게 처절하게 반박되었는데,[2] 심지어 이때 원본 논문의 데이터 분석에서 MS 엑셀 함수 범위를 잘못 입력하여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는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밝혀지기도 했다. 관련자료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계에서도 자기교정성은 때론 작동하지만 때론 작동하지 않아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황우석 사기 사건의 경우 국내의 BRIC은 모범적으로 자기교정을 시행했지만 《사이언스》 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만능세포 조작사건 당시 하버드는 당사자를 실드치기에 급급했지만 Caltech과 《네이처》는 해당 실험이 전혀 재현되지 못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심지어 후지무라 신이치의 조작 사건 때는... 말을 말자.

결국, 굳이 비유하자면 자기교정성이 작동하는 방식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서 거짓 정보들은 예외 없이 걸러내는 필터링 같은 것이 아니라, 거짓의 늪에 얇게 깔린 살얼음 위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내지는 거짓에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 사면으로 처절한 방어를 펼치는 수성전 같은 것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원론적으로 본다면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는) 과학은 믿을 수 있다"의 결론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장기적이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자기교정성은 과학계와 과학자들이 언제나 최우선으로 중시해야 할 금과옥조에 가까우며, 학계의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학계의 규범적인 지향점으로 이해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것이 옳다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의외로 현실은 종종 그렇지 못하기 때문. 그래서 자기교정성을 촉진할 수 있는 내부적인 제도적 장치들을 보완하기 위한 양심 있는 학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는 많은 이들이 과학을 절대적인 진리로 이해하기 때문인데,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우리를 잡아당기는 까닭은 중력 때문이 아니다. 중력은 단지 지구가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과 그 능력을 설명한 것일 뿐,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지구가 우리를 잡아당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은 세계의 법칙을 만드는 무슨 신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창조론자가 과학의 허점을 발견했다 해서 과학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중력의 작용 양상이 바뀌어 사람들이 두둥실 떠다니게 된다 해도 그것은 과학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인간이 그 동안 관찰해 온 규칙(이를 설명한 것이 과학이다)이 틀렸음을 나타내는 단순한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과학자들이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의외로 마음을 쉽게 열지 않음을 가리키는 개념도 있다. 흔히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계몽함으로써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반대자들이 죽어 사라진 뒤에야 그 발견에 친숙한 후학들이 성장하면서 받아들여진다"는 암울한 내용으로 잘 알려진 이 개념은 플랑크 원리(Planck's Principle)라고 불리며,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도 비슷한 취지로 "우리 사회는 장례를 치르면서 진보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3. 관련 문서


[1] 예를 들어 생물학계에서 에른스트 헤켈배아발생도 조작 사건이 벌어진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 창조설자들이 물고뜯고 씹어대면서도 정작 그 조작을 밝히는 과정에서 전혀 공헌한 바가 없었다, 이는 거꾸로 진화생물학계의 건전한 자기교정성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창조설자들은 퍼가요~를 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 사건에 관련하여 아무것도 기여한 바가 없다. 관련자료[2] Herndon, Ash, & Pollin,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