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電池 / Battery물리적 또는 화학적 작용을 통해 전기 에너지를 발생, 공급시키는 장치. 영어로는 배터리(battery)라고 하며, 이는 넓은 범위에서는 전지, 좁은 범위에서는 축전지를 뜻하는 말이다. 즉 건전지는 배터리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밧데리, 빳데리, 빳떼리, 빠떼리 등으로 말하는데, 이는 쎄루모다(셀 모터), 악세레다(액셀러레이터), 도라꾸(트럭) 등과 같은 일제강점기의 언어적 잔재이다.[1] 차량 배터리 한정으로 가장 유명한 '로케트'라 불리기도 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의 전지는 역시 화학 전지. 보통 두 가지 금속의 이온화도 차이에서 오는 전위차를 이용한다. 이온의 양이 많을수록 흘려보낼 수 있는 전하의 양도 많기 때문에, 같은 종류인 전지의 용량은 크기에 거의 비례한다. 알칼리전지, 수은전지, 리튬이온전지, 건전지가 대표적인 예. 구조 자체는 간단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과학실험에도 등장한다. 구리판과 아연판을 산성 용액(묽은 염산이나 묽은 황산)에 담근 뒤 두 판에 꼬마전구로 연결되는 전선을 연결하면 전구에 불이 켜지는 실험이 그것. 집에서는 간단하게 귤이나 레몬, 오렌지 같은 산성을 띠는 과일, 심지어는 감자를 이용해도 된다. 전류가 약하기는 하지만 실사용이 아니니 상관없다.
충전 가능 여부에 따라 충전이 불가능한 1차 전지와 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로 나뉜다. "충전 가능"이란 용어를 엄밀히 풀어 쓰면, 에너지가 공급했을 때 "방전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역반응이 가능한가"로 해석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가 발전이 가능한 연료전지를 3차 전지라 칭하기도 하지만, 주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전지의 용량은 전류 x 시간을 뜻하는 암페어시(Ah)가 쓰인다. 예를 들어, 3Ah 라는 수치가 적혀있는 전지라면 시간당 3A까지의 전하를 내놓을 수 있는 전지라는 뜻. 따라서 부하가 시간당 1.5A를 사용한다면 2시간, 6A를 사용한다면 30분만에 소모되는 수치라는 의미이다.
2. 기술적 한계
전자제품, 전기차 등 더 나아가 인류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전지 기술도 발전하고 있지만, 지난 200년 간의 전기전자 기술 중 가장 발전 속도가 느린 분야가 바로 전지 분야이다. 당장 스마트폰이나 전기차를 봐도 알 수 있듯, 다른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가 에니악에서 현재의 멀티코어 프로세서로 진화하고, 수십 년 전 슈퍼컴퓨터급 성능의 프로세서가 이어폰에 들어갔다. 또한 휴대전화가 기존의 아령보다 무겁던 벽돌형 무전기에서 지금의 스마트폰으로 발전할 동안 자동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겁고 출력도 약한 납 축전지를 사용한다. 납 축전지는 150년 전에 개발된 이래 기술적으로 달라진 것도 별로 없다. 그나마 스마트폰 전원이 리튬 전지로 바뀐 것이 진보라면 진보기는 한데, 그것도 사실 현대인들의 눈높이에는 턱도 없는 수준. 그도 그럴 것이 하술할 항목을 생각하면 전지의 특성은 기계적인 기술보다는 화학적인 특성으로 성능과 안정성이 결정된다. 다시 말해 소재공학에 가까운 물건이니 급격하게 성능이 발전할 리가 없는 것이다.[2] 최근에는 휘어지는 분리막 배터리가 개발됨에 따라 배터리의 활용도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것도 결국에는 배터리의 설치용량과 안정성[3]을 어떻게든 늘리기 위한 기술이지, 배터리로서 전기를 화학적 에너지로 전환해 저장하는 효율이 획기적으로 증대된 건 아니라는 점에서 기술개발의 난점을 짐작할 수 있다.[4][5]이 외에 강화복, 이동형 로봇이나 휴대용 레일건과 코일건, 전기자동차 등 각종 미래 기술이 아직까지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배터리 때문이다.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현재의 기술로 어떻게든 구현이 가능할 정도가 된 상황이지만, 무게도 무겁거니와 충전도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이 배터리의 물리적인 한계는 현재 우리의 기술로는 어떻게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배터리 소재라고 해서 쓰이고 있는 리튬이나 코발트 등의 소재들은 부존량도 매우 적고 그마저도 편재되어 있다 보니 전기자동차 등의 상용화에 따라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리튬 같은 경우 2017년 기준으로 지난 3년 간 가격이 무려 400%나 폭등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전세계의 기업과 연구소에서 배터리 기술의 혁신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아직은 여러모로 요원한 상황이다.[6] 현시대 인류는 전기전자 기술을 중심으로 문명 발전을 하고 있는 상태라서 결국 전지 기술이 사실상 모든 문명 발전의 한계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즉, 전지 기술이 조금이라도 더 발전한다면 인류 전체 문명은 거대한 발전을 하게 된다. 이차 전지가 발달하면서 태어난 스마트폰을 생각해 보자. 스마트폰을 1.5V 알카라인 건전지로 쓴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것이다.[7][8]
여기에 더해서 또 딜레마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전지의 성능을 향상시키려면 더 많은 에너지를 더 많이 압축해서 저장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위험도는 더 커진다. 멀리 갈것 없이 많은 에너지를 압축해 담고 있는 대표적인 물질이 바로 폭탄이다. 실제로 최근 대용량의 전지를 사용하는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바로 문제들이 터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기자동차/화재 위험성 논란 등이 있다.
모든 전지는 공통으로 추운 곳에선 수명이 줄어들지만 차이는 조금씩 있다. 이차전지보단 일차전지가 조금 더 잘 버티는 편이고, 리튬이온보단 납축전지가 조금 더 잘 버틴다. iPhone 6 같은 경우는 혹한에 노출되면 수십 초 이내로 배터리가 바닥난다. 이는 추운 날씨 속에서 전지 속의 입자들이 쪼그라들어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다시 따뜻하게 해주면 입자들이 정상 크기로 불어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다. 이 역시도 전지의 발전이 필요한 부분. 그런데 저온에서 성능이 저하된다고 단순히 발열이 잘 되게 바꾸면 스로틀링이 걸려 칩셋 처리 성능이 저하될 뿐더러 심하면 배터리 자체가 터진다. 참 어려운 분야가 아닐 수 없다.
배터리는 대부분 내부에 부식성 물질이나 인화성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에 가끔씩 폭발한다는 문제도 무시할 순 없다. 각종 전자기기와 전기자동차에 사용되고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는 높은 방전률과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폭발 위험이 가장 높은 전지이기도 하다. 대개 과충전 또는 물리적 충격으로 인해 양극과 음극 간 내부 단락이 일어나며 화재를 발생시킨다. 유명한 사례로는 과거 보잉 787,[9] 갤럭시 노트7이 배터리 폭발 문제가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용량이 물리적인 크기와 직결된다. 보조 배터리만 봐도 30000mAh 이상급은 영락없는 벽돌.
3. 전기화학적 접근
화학 전공자들에게 전지라고 하면 보통 전기화학에서 배운 것을 떠올릴 것이다. 전지는 전기화학적으로 자발적인 반응을 통해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것인지, 반대로 전기 에너지를 활용해 비자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인지로 나뉘며,[10] 이 중 자발적 반응을 발생시키는 전지를 갈바니 전지(Galvanic Cell) 또는 볼타 전지(Voltaic Cell), 비자발적인 반응을 발생시키는 전지를 전해 전지(Electrolytic Cell)라고 한다.비전공자들을 위해 더욱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흔히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에너자이저 등의 방전만 가능한 건전지는 갈바니 전지라고 할 수 있으며,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 자동차 등에서 사용할 수소를 생산하는 것은 전해 전지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11]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에서 사용하는 이차 전지, 즉 사회에서 흔히 배터리라고 말하는 물건은 충전 시에는 전해 전지, 방전(사용) 시에는 갈바니 전지의 역할을 같이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전해 전지에서는 이온화 경향의 차이에 따른 전위차보다 더 큰 전압을 걸어줘야 전자가 이동하는데, 이를 응용해 이온을 이동시켜 전기 도금(Electrodeposition)을 하기도 하고, 센서도 만드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전지는 작대기를 그어서 표현하는데, 산화 전극(Anode, 애노드)이 대개는 왼쪽에 온다.[12] 기준 전극이 있을 경우 기준 전극이 무조건 왼쪽. 즉, 갈바니 전지의 (-)극과 전해 전지의 (+)극이 왼쪽에 오게 적으면 된다. 작대기 하나는 전극과 용액의 접촉면이고, 작대기 두 개는 용액간의 접촉이 직접적이지 않음을 뜻한다. 수능 수준까지는 간단하게 작대기 두 개는 염다리라고 이해해도 좋다. 예를 들어 Ag/AgCl(염화은)과 Pt를 이용한 간단한 pH 미터를 표기법에 맞게 나타내면 이렇게 된다.
Ag|AgCl(s)|HCl, H2(g)|Pt
실험실에서 실제로 쓰는 pH 미터는 주로 포화 KCl(염화칼륨)을 이용하는데 당연히 이것보다는 복잡하다.
4. 여담
- 배터리가 심하게 팽창(스웰링)되었거나 타는 냄새, 연기, 소리가 날 경우 폭발 위험이 있으니 바로 폐기해야 한다.
- 배터리에서 시큼한 냄새가 날 경우 배터리 내부 액체가 새고 있는 것이니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폐기해야 한다.[13]
- 1936년 바그다드 인근에서 출토된 파르티아 제국 시기의 항아리에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고대의 전지가 발견되었다며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전류를 흐르게 할 경우 0.5 V, 3 mA의 전류가 출력된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것은 전지가 아닌 파피루스를 넣어 매장하는 일종의 단지로서, 철 막대는 파피루스의 고정봉, 구리 판은 단지의 보호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연히 전지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5. 관련 문서
[1] Batterie라는 독일어에서 차용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렴풋한 이야기다. 본문에도 예시를 들었지만 일제강점기를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구사하는 외래어는 대부분 일본식 발음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본에서는 지금도 '밧데리'라고 발음한다. 여담으로 이런 전지를 가리키는 핀란드어 단어로 "patteri"(빳떼리)가 있다. 요새는 "paristo"가 권장되지만, 간간히 "patteri"가 사용된다고 한다. 예전에 핀란드어에서 외래어를 음차하던 방식에서 비롯된 현상.[2]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동차의 연비를 개선하고 싶으면 자동차의 파워트레인을 개선하지 휘발유를 개선하겠다고는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미 휘발유가 가지는 화학에너지를 거의 이론상 최대치에 가깝게 물리에너지로 전환해내는 성과를 거두어내고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화학공학이 근간이 되는 배터리 역시 소재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용량을 눈에 띄게 늘리기가 힘들다. 참고로 휘발유와 배터리의 무게당 에너지용량(Wh/kg)은 가장 진보된 배터리를 기준으로도 20배는 차이 난다. 원자력 전지가 일상에서 쓰는 게 가능할 수준으로 상용화될 수 있다면 또 모른다.[3] 어떻게든 기존에 안정적으로 설치할 수 없었던 곳에 배터리를 증설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4] 그래서 인류는 전지의 용량을 늘리는 것이 아닌, 같은 전력으로 더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다르게 이야하기 하면 전력을 덜 쓰고도 같은 성능을 기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반도체는 공정 미세화와 아키텍쳐 개선을 통해 동일한 전력을 쓰면서도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쪽도 공정 미세화가 진행될수록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기술 난이도가 폭증하고 있다.[5] 전기자동차 같은 경우엔 물리적인 전지 용량 때려박기 말고는 답이 없어서 그 영향으로 2차 전지 기술이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긴 하다.[6] 리튬의 바로 다음 주기이며 리튬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흔한(그래서 효율성을 높이기 쉬운) 나트륨 전지가 대체재로 연구되고 있다. 소듐 이온 전지라고도 한다. 생각보다 발상이 오래되어서, 해저 2만리의 노틸러스호의 전기공급 역시 바닷물의 나트륨을 사용해 공급된다는 설정이다.[7] 어떤 과학 유튜브에서는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지금 전자제품의 스펙을 운동선수로 설명하면 단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조건이 완벽한 손흥민이다. 그런데 그 부족한 단 하나가 심장이며, 그 심장은 마치 7살 아이의 심장과 같다." 그만큼 현재 전자제품의 스펙에서 다른 부분에 비해 배터리의 스펙이 떨어지는 게 너무나도 크다는 것.[8] 3.7V의 전압에 2,658 mAh의 용량, 9.8 Wh 소비전력인 iPhone XS 배터리에 대응하자면, 시중의 알카라인 건전지 AA를 기준으로 1.5 V의 전압에 1,000 mAh의 용량 2개를 직렬 연결하여 3줄로 병렬시켜 대략 3 (V) × 3,000 (mAh) = 9 (Wh)의 형태로서 6개의 건전지로 구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iPhone XS를 구동시키려면 알카라인 AA건전지 6개를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해볼 만하다' 생각이 들었다면 남은 내용이 하나 더 있는데, 건전지를 매일 교체해줘야 한다.[9] 대부분의 항공기 배터리는 니켈카드뮴 배터리를 이용하지만 보잉 787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했던 것이 화근.[10] 반응의 자발성에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깁스 에너지 참조.[11] 반대로 수소 자동차의 연료전지에서 수소와 산소가 물로 변하는 것은 열역학적으로는 자발적인 반응이므로 갈바니 전지라 할 수 있다.[12] 이것은 표현의 차이라, 책이나 논문에 따라 반대로 적기도 하니 주의하자.[13] 참고로 배터리 용액의 pH 농도는 0.5로, 동일한 농도의 염산보다도 강한 수준에 해당하기 때문에 절대로 피부에 접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