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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환조의 후궁 정빈 김씨 | 定嬪 金氏 | |||
출생 | 연대 미상 | ||
사망 | 1404년 2월 28일 | ||
능묘 | 미상 | ||
재위기간 | 고려 정안택주 | ||
연대 미상 ~ 1392년 | |||
조선 정안옹주 | |||
1392년 ~ 1404년 2월 28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 경주 김씨 | |
휘 | 고음가(古音加) | ||
배우자 | 환조 | ||
자녀 | 슬하 1남 장남 - 의안대군(義安大君, 1348 ~ 1408) | ||
봉작 | 정안택주(貞安宅主) → 정안옹주(定安翁主) → 정빈(定嬪)[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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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추존왕 환조의 후궁이자 태조 이성계의 서모(庶母).2. 생애
본래 이자춘의 첩으로, 1392년에 계자 이성계가 새 나라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친아버지(이자 정빈 김씨에게는 남편)인 이자춘을 환왕(桓王)으로 추존하는 과정에서 왕의 후궁이 된 그녀는 ‘정안옹주(定安翁主)’에 봉해진다.이후 1404년(태종4년) 2월 28일 사망한다.
그로부터 약 450년이 지난 1872년(고종 9년)에 정1품 ‘정빈(定嬪)’으로 추증된다.
3. 가족관계
배우자 / 자녀4. 기타
- 태조는 자신의 서제(庶弟)인 의안대군을 각별히 여겼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그는 김씨를 만날 때마다 무릎을 꿇고 극진하게 대했다고 한다. 더불어 김씨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 없애버리기까지 하였다.[2]
- 한편 태조가 젊었을 때, 김씨가 우연히 까마귀 5마리를 보고는 태조에게 활로 쏘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태조가 화살 한 발로 까마귀 5마리를 동시에 맞추자, 김씨는 태조에게 절대로 이러한 일을 아무데에도 발설해서는 안된다고 했다는 일화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3]